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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를 재배하는 논(畓, 답)

(畓, paddy field)은 을 채우고 등의 작물을 재배하는 농지를 의미한다. (畓) 또는 수전(水田)이라고도 한다.

개요[편집]

은 농사를 짓는 이다. 사전적 의미로 보면 논은 물을 대어 주로 벼를 심어 가꾸는 땅으로 설명한다. 반면 밭은 물을 대지 아니하거나 필요한 때에만 물을 대어서 채소나 곡류를 심어 농사를 짓는 땅으로 정의한다. 사전적 정의처럼 우리나라의 논농사는 곧 벼농사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벼농사는 밭 상태에서 시작됐다. 물을 채운 논에 재배했을 때 월등한 수량품질을 보이는 벼의 생육 습성에 맞게 벼농사는 논 재배로 발전했다.

논과 밭은 농사를 짓기 위한 땅 이상의 가치가 있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을 뿐 논의 기능은 실로 방대하다. 우리나라는 연중 강우량의 60~70%가 7~9월에 편중되어 있다. 논은 이 기간에 빗물을 저장하고 홍수를 조절하는 기능을 수행하며, 논에 고인 물은 지하로 침투되어 지하수의 공급원이 된다. 이 밖에 토양 유실 방지, 대기 정화, 생태계 보전, 경관적 가치 등을 지닌 논은 1㏊ 당 연간 2944톤의 홍수를 조절하고, 4143톤의 지하수 공급, 21.9톤의 이산화탄소 흡수, 15.9톤의 산소 공급 등 이를 경제적 가치로 환원하면 56조 원에 달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전체 농경지 면적의 감소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해마다 논 1만 6000㏊가 사라졌다.

농촌진흥청은 논이 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논의 새로운 변신을 꾀하고 있다. 논에 벼 이외의 타 작물 재배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서구화된 식단과 식습관 변화로 1인당 연간 소비량이 2000년 93.6㎏에서 2017년에는 61.8㎏으로 급감했다. 또한 의무 수입 물량인 41만 톤 TRQ(저율할당관세) 쌀도 매년 시장에 공급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앞으로 매년 구조적인 쌀 공급 과잉 현상이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곡물 자급률이 24% 수준에 불과한 국내 식량안보 실정상 쌀이 남는다고 무작정 논 면적을 줄일 수도 없다.

논에 밭작물을 옮겨 심기도 쉽지만은 않다. 우리나라 밭은 90% 이상이 평지가 아닌 경사지 형태로 존재한다. 많은 가 오더라도 자연스럽게 배수가 된다. 반면 편평한 땅인 논은 상대적으로 배수가 불리하다. 현재 벼 이외 논 토양에서 잘 자라는 작물은 찾기가 어렵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작물 대부분은 수분 과잉 상태에서는 정상적인 생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여름철 강수량이 많은 우리나라 기후 특성상 논에 벼 이외의 작물을 심었을 경우, 심각한 습해를 입을 가능성도 크다.

우리보다 앞서 비슷한 상황에 처했던 일본은 2016년 재배면적 15만㏊의 80%가 논에서 재배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전체 콩 재배면적의 14%(17년, 6000㏊)만 논에서 재배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나라도 논에 밭작물을 재배하는 것이 점차 늘어날 것이다. 밭작물을 논에서도 안심하고 심을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기 때문이다. 최근 농촌진흥청에서는 논에서 밭작물 습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물 관리 기술개발됐다. 논 토양 수분을 지하수위 조절을 통해 자동으로 제어하는 시스템이다. 논에서 벼와 밭작물을 물 문제없이 번갈아 가면서 재배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이로써 논은 벼 생산 기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밭작물도 재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바야흐로 논과 밭작물의 구분이 없어지고 있다.

밭작물이었던 콩이 논에 심기는 세상, 시대에 따라 논의 기능은 점점 확대되고 변화해간다. 하지만 여전히 변치 않는 것은 우리 삶 속의 스며든 논의 소중함이다. 산소가 늘 곁에 존재하기에 그 소중함을 잊고 지내듯, 우리의 땅인 논과 밭도 그 소중함을 잊고 지내는 것은 아닌가 싶다.[1][2]

역사와 변천[편집]

벼농사는 보통 논에서 이루어지지만 밭에서도 벼를 재배하였다. 처음에는 밭에서 벼를 재배하다가 나중에 논에서 재배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주로 벼농사가 화북 지방을 통해 한반도 북쪽으로 전래되었다고 생각하는 연구자들이 주장하는 견해이다. 실제로 기원 전후의 습지(濕地) 유적인 광주 신창동 유적에서 볍씨·검게 된 쌀 등과 벼 껍질 더미가 확인되었다. 토양을 분석한 결과 다량의 벼 식물 규산체가 검출되었는데, 출토된 벼 중에는 논벼와 밭벼가 모두 들어 있었다. 밭에서 벼를 재배하였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서 벼농사는 논농사로 짓는 방법 자체로 수용되었다고 하여 견해를 달리하는 주장도 있다.

밭벼에서 논벼로 바뀌었다고 보는 경우에 눈길을 끄는 기록이 561년(진흥왕 22)에 세운 창녕 신라 진흥왕 척 경비(昌寧新羅眞興王拓境碑)이다. 이 비에는 해주 백전답(海州白田畓)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당시 신라에서 토지가 백전(白田)과 답(畓)으로 구분되어 있었음을 보여 준다. 논을 뜻하는 답(畓)이라는 한자는 수(水) 자와 전(田) 자를 합해서 한 글자로 만든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만 쓰는 글자이다. 수전(水田)은 한자 그대로 물이 있는 밭이라는 뜻이고, 백전(白田)은 물이 없는 밭이라는 뜻이다. 백(白)은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이다. 전(田) 또는 백전(白田)에서 답(畓), 즉 수전(水田)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만들어졌으니, 밭에서 벼를 재배하는 방식에서 답, 즉 논에서 벼를 재배하는 방식으로 변화해 간 것을 보여 주는 증거로 이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벼를 재배하는 더 일반적인 방식이 논이었음은 분명하다. 답(畓)이라는 한자가 등장하는 가장 이른 기록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보인다. 가야의 수로왕이 즉위 2년(기원 43) '수레를 타고 임시 궁궐의 남쪽 신답평(新畓坪)에 이르렀다'라는 기록이 그것이다. 이 기록을 그대로 믿는다면 기원 1세기부터 답(畓)이라는 한자가 있었다고 볼 수 있으나, 연대에 의심을 가질 수도 있어 그대로 따르기에는 조심스러운 측면도 있다.

또한 『삼국사기』 백제본기 다루왕 6년 2월조 기사에서 발견되는데, '나라 남쪽의 주·군(州郡)에 영을 내려 처음으로 논[稻田]을 만들게 하였다(二月 下令國南州郡 始作稻田)'라는 내용을 통해서 논은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논에 재배되는 작물로는 벼가 주된 것이지만 그 밖의 작물들도 재배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벼와 같이 물을 채우고 재배하는 작물로는 ·왕골·미나리·연근(蓮根)·쇠귀나물(慈姑) 등이 있으며, 벼의 뒷그루 또는 앞그루로서 배수하고 재배하는 작물로는 보리··감자··마늘·자운영 외에 각종 채소 등이 있다. 또한 물이 없어 벼를 심지 못하였을 경우 대용작물로는 ·메밀·콩 및 각종 채소 등이 있다.

우리나라 논 면적의 변천 추이는 즉, 1391년(공양왕 3년)의 총 경지면적은 약 110만 정보이고 논의 면적은 약 51만 정보로 전체 경지면적의 46.4%를 차지하고 있다. 조선 중기인 1646년(인조 24년)의 총 경지면적은 약 139만 정보로 약간 증가하고, 논 면적은 55만 정보 정도의 증가에 지나지 않아 논의 비율은 39.4%로 감소하였다.

조선 말기인 1896년에는 논의 경지면적이 79만 정보로 증가하였다. 민족항일기인 1940년에는 총 경지면적이 451만㏊이고, 논의 면적은 173만㏊를 차지하였다.

1988년에는 남한의 경우 총 경지면적이 무려 214만㏊이며, 논의 면적은 136만㏊이고 논이 차지하는 비율은 63.5% 정도로 나타나고, 1996년 현재 총 경지면적은 그동안 줄어들어 194만 5,480㏊이며 논의 면적은 120만 148㏊로 논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60.5% 정도이다.

2021년에 이르러 전국 총 경지면적은 154만 7천ha로 줄어들었으며, 논의 면적은 78만 ha 50.5%를 차지하며 밭의 면적은 76만 6천 ha 49.5%를 차지하고 있다.

역지 면적이 크게 감소한 것은 지난 30여 년 동안 공업화, 도시화 위주의 개발정책으로 도로망 및 부지 확대로 농경지가 크게 잠식되었기 때문이다. 또 그동안 농업은 상대적으로 사양 산업화되고 농업생산은 국제경쟁력의 약화, 수익성의 저위를 나타내는 가운데 우루과이 라운드(UR) 그리고 국제무역기구(WTO)의 출범으로 농산물 시장의 자유개방은 농민들의 고향농촌을 떠나는 성향을 가속화하였다. 이농현상은 농촌의 공동화(空洞化)를 나타나게 된 것은 휴경지가 크게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은 토지에 대한 애착이 강하여 끊임없이 논의 경지면적을 확대시켜왔으며, 논의 비옥도를 증진시켜왔다. 경지면적이 가장 넓은 시도는 전남으로 논 면적은 16.7만 ha로 가장 넓고 전국 논 면적 대비 21.4%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보면 논의 분포는 주로 벼농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북위 51°에서 남위 35°의 지역에 걸쳐 있는 약 35개 국가이며, 동남아시아 각국과 동북아시아 중국·한국·일본·대만 등지에 주로 분포한다.[3][4]

종류[편집]

논의 바닥은 판판하며 둘레를 흙으로 두렁을 만들고, 관배수(灌排水)를 조절하기 위하여 관개수로로부터 물이 흘러 들어오는 곳에 취수(取水) 물고를, 물이 흘러 나가는 곳에 배수(排水) 물고를 만든다.

논에는 주로 벼를 재배하지만 그 외에도 물을 댄 상태에서 왕골·택사(澤瀉)·미나리·연근 등을 재배한다. 배수하고 재배하는 작물로는 벼의 뒷그루(後作)로 보리·밀·호밀·자운영·유채·마늘 및 기타 채소류 등이 있고, 벼의 앞그루(前作)로는 감자·삼·채소류·아마 등이 있다.

벼를 재배할 때 논물의 수심은 2∼10 cm를 유지하지만 생육기간 동안 보온이 필요하거나 뿌리에 산소를 공급해 주고 불필요한 분얼(分蘖)을 억제하려 할 때는 수위를 높이거나 물을 떼어주기도 한다. 논은 관개수를 확보해야 하므로 저습지의 토지, 분지 저부(盆地低部), 하천 유역, 해안의 델타 지역, 계곡의 저지대에 보통 분포하지만 경지가 부족한 지방에서는 해발고도가 높은 곳이라도 수리시설이 확보되면 논을 만들 수가 있다.

논에 벼를 재배하기 위해서는 경운(耕耘)·쇄토(碎土)·관수(灌水)·논두렁 바르기·써레질 등의 작업을 하고 이앙작업(移秧作業)을 쉽게 하기 위하여 논바닥을 고르고 수위를 균등히 하며 비료 및 유기물을 작토층에 고루 섞어 넣는다.

논의 종류는 관개수의 편리성 정도와 토양의 성질, 벼를 재배하는 경종 양식(耕種樣式) 등에 따라 분류되고 있다.

관개수 상태에 따른 분류[편집]

  • 심수답(深水畓) : 연중 물이 괴어 있는 논으로서 배수가 곤란하므로 논으로서는 열등한 편이다.
  • 저수답(貯水畓) : 벼를 거둔 뒤에는 이듬해 봄, 부근에 있는 논들의 관개수를 마련해두기 위해서 보를 막아 겨울 동안 강우와 관개수를 끌어들여 저수해두는 논으로서 저수지의 대용이 되는 논이며, '물잡이논'이라고도 부른다. 이와 같은 논은 물의 근원이 부족한 곳으로서 비교적 우묵한 위치에 있는 것이며, 이듬해 논의 못자리 관개용수의 중요한 구실을 한다.
  • 습답(濕畓) : 일명 '민갈이'라 하는 논이며, 관개를 중단해도 늘 다소의 물이 괴어 있고 배수가 불충분한 논이다.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1만㏊ 이상의 습답이 있다.
  • 건답(乾畓) : 배수가 잘 되어 밭과 같이 되는 가장 이상적인 논이다. 이러한 논에는 2모작이 가능하여 맥류·서류 등이 재배되며, 남부 지방에서는 이러한 논을 '보리논'이라고도 한다.
  • 천수답(天水畓) : '천둥지기'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모내기 때의 강우가 늦어져서 늦심기가 되기 쉬우므로 불리하다. 또한 천수답의 토양은 대체로 토박하며 장마 때 수해를 입는 곳이 많다. 따라서 천수답은 수리시설을 갖추는 일이 시급하지만 경제성이 적은 곳은 정비가 어렵다.
  • 수리안전답(水利安全畓) : 관개시설이 잘 되어 있는 논이다. 토지개량조합(이전에는 수리조합)의 논은 수리안전답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 건도답(乾稻畓) : 천수답 중에서 건도를 재배하는 논인데, 이것은 우리나라 서북부 지방에 주로 분포한다. 건도란 직파하여 밭 상태로 가꾸다가 우기에 든 다음 물을 가두어 논 상태로 만들어 가꾸는 것인데, 서북부 지방의 건도 품종은 그 특성이 수도 품종과는 다소 다르게 분화되어 있다.
  • 갯논(潟畓, 干拓地畓) : 해안을 개척해서 만든 논을 '갯논' 또는 '간척지논'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서해안남해안에 걸쳐 이러한 논이 분포되어 있다. 최근에 이루어진 간척 사업으로는 미면·계화도·강화도·남양만·삽교천·천수만간척지 등이 있다. 갯논에서는 땅속에 배어 있는 소금기를 씻어 없애는 것이 선결문제이다.
  • 노후화답 : 우리나라에서의 노후화답은 각처에 비교적 널리 분포되어 있다. 사질 양토의 땅이 많아 모래흙을 많이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에서는 가을에 깨씨무늬병이 자주 발생하는데, 그 징후로 보거나 서남해안에 접하여 분포된 해성토에서의 수도 재배에 비하여 규산의 효과가 큰 것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아직도 노후화된 논이 많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객토로 그 면적이 줄어들고 있다.

재배양식에 따른 분류[편집]

재배양식에 따른 분류는 일모작답, 이모작답, 삼모작답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봄이나 여름에 씨를 뿌려 가을에 거두는 벼농사에 모내기가 도입되었기 때문에, 못자리를 마련하기만 하면 모를 키우는 동안 해당 자리에 다른 작물을 키울 수 있어 이모작이 널리 보급되었다. 대표적인 이모작 작물이 보리인데, 쌀이 떨어지는 시기와 보리의 수확기 사이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보릿고개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남부 지방은 이모작, 중부 지방은 한 해 걸러 보리를 심는 2년 3작을 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보릿고개 시절 전후까지 보리의 이모작이 활발했으나 보리 수매가 중단된 이후로는 이를 포기하는 농부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그 대신 비닐하우스 과일과 쌀의 이모작이 확대되고 있다고. 수요의 변화에 의한 농업환경 변화의 대표적인 케이스라 할 수 있다.

2013년 농촌진흥청의 발표에 의하면 남부지역 3모작 재배를 위한 현장 실증 연구를 통해 5월에 조생종 벼, 9월에 하파 귀리, 11월에 호밀을 이어짓는 삼모작 재배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개발한 삼모작 재배기술은 쌀을 안정적으로 생산하면서 이모작 재배보다 조사료를 한 번 더 생산할 수 있다.

  • 벼만 단작(單作) 하고 그루갈이(畓裏作)를 하지 않는 논을 일모작답(一毛作畓)이라 한다. 쉽게 말하면 1년에 한 번만 작물을 재배하는 논이다.
  • 한 번 그루갈이를 하는 논을 이모작답이라고 한다. 벼, 보리를 두 차계 이어 짓는 논이다.
  • 그루갈이를 두 번 하는 논을 삼모작답이라고 한다. 벼, 귀리, 호밀을 세 차례 이어 짓는 재배기술이다.[5][6][7][8]
삼모작답(벼, 귀리, 호밀)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 《네이버 국어사전》
  2. 고종민, 〈논(畓)에서 변하지 않는 것〉, 《이투데이》, 2018-11-27
  3. 박찬흥, 〈벼농사와 밭, 전〉, 《우리역사넷》
  4. 조환석, 〈농업면적조사〉, 《통계청》, 2022-02-25
  5. 〉, 《네이버 지식백과》
  6. 논(畓)〉,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7. 이모작〉, 《나무위키》
  8. 농촌진흥청, 〈남부지역 논 ‘삼모작 시대’ 열린다〉, 《정책뉴스》, 2013-12-13

참고 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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