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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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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세(山勢)란 이 생긴 모양을 말한다.[1]

산(山)의 모양과 풍수[편집]

오행산(五行山)

산의 모양을 살피는 것은 산의 정기(精氣)를 알아보는데 목적이 있다. 이 정기를 살피기 위해서는 가까이에서 살피는 것보다는 그 산 전체를 볼 수 있는 곳까지 가서 멀리서 살펴야 한다. 산은 그 모양에 따라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의 오행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것을 오행산(五行山) 또는 오성산(五星山)이라고 한다.

목산(木山) 또는 목성산(木星山)은 산의 모양이 사람이 서있는 상체의 모습을 하거나 정상부에서 꽃봉우리 모양을 이루거나 길쭉하게 홀(笏)처럼 생긴 산을 말한다. 목산 중에서도 산의 정상부가 마치 붓의 끝부분 같이 뾰쪽한 산을 문필봉(文筆峰)이라 한다. 목산이 있는 지세에서는 학문을 숭상하는 사람이 많이 배출되고 고급공무원이 많이 나타난다.

화산(火山) 또는 화성산(火星山)은 산의 정상부가 두개 이상의 뾰족한 봉오리를 이루고 있으면서 마치 나무가 불에 탈 때 나타나는 불꽃의 모양을 닮은 산이다. 화산이 있는 지세에서는 화재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종교인이나 예술가가 배출된다.

토산(土山) 또는 토성산(土星山)은 산의 정상부가 평탄하게 수평으로 펼쳐져 궤짝이나 함 모양의 산을 말하는데, 일(一)자와 유사하여 일자문성(一字文星)이라고도 부른다. 토산이 있는 지세에서는 왕이나 왕비가 나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금산(金山) 또는 금성산(金星山)은 철모 모양을 하거나 종을 닮기도 하고 솥이나 바가지를 엎어 놓은 것과 같은 산을 말한다. 농사를 끝내고 노적가리를 쌓아 놓은 모양과 유사하다 하여 '노적봉(露積峰)'이라고도 한다. 금산이 있는 지세에서는 재물이 많이 모여 부자가 배출되며, 또한 산의 형태가 둥글면서 힘차게 보이는 산은 금산 중에서 '투구봉'이라고 하는데, 장군이 배출되기도 한다.

수산(水山) 또는 수성산(水星山)은 산 정상부에 여러개의 봉우리가 거의 비슷한 크기를 이루며 연속적으로 부드럽게 연결되어 마치 물결이 굽이치거나 뱀이 꿈틀거리면서 기어가는 모양의 산을 말한다. 수산 중 두 개의 봉우리로 된 수산은 봉우리 사이에 연결된 능선이 낮아서 마치 말의 안정과 같은 모양을 이루어 '천마(天馬)'라고 하며, 혈(穴) 앞에서 천마가 놓이면 속발한다.

산의 모양 중에서 오행의 한 가지 모양만을 닮은 산은 간단하게 구분할 수 있으나, 오행으로 구분되지 않는 산의 모양도 실제로 많이 있다. 특히 오행의 기운이 혼합된 모양도 많이 있다. 산의 모양에 대하여는 위와 같은 몇 가지의 구분 외에도 다양하게 구분할 수 있다. 즉, 산이 추하고 아름답고, 산이 살찌고 여위고, 산이 급하고 완만하고, 산이 날카롭고 유순하고, 산이 무겁고 가볍고, 산이 귀하고 천하고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외에도 산의 모양에 따라 강룡(强龍)·약룡(弱龍)·병룡(病龍)으로 구분하기로 한다. 또한 물형(物形)에 따라 비룡승천(飛龍昇天), 연화부수(蓮花浮수), 매화낙지(梅花落地 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산의 기운을 해석함에 있어서 산의 모양을 면밀하게 관찰하여야 한다. 즉, 산의 모양을 논하는 목적은 그 산의 기상(氣像)과 지세(地勢)를 알아내기 위한 것이다. 주산의 기운뿐만 아니라 주변의 사(砂)의 기운을 해석함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2]

서울 주위 산의 산세[편집]

북한산
북한산

북한산(北漢山)은 서울 근교의 산 중에서 가장 높고 산세가 웅장하여 예로부터 서울의 진산으로 불렸다. 서울의 북쪽과 경기도 고양시에 걸쳐있으며 최고봉인 백운봉의 높이는 해발 836.5m이다. 그리고 봉우리는 32개가 있다. 중생대 말기에 지층에 파고든 화강암이 지반의 상승과 침식작용으로 표면에 드러났다가 다시 풍화작용을 받아 험준한 바위산이 되었다. 주봉인 백운대에 오르면 서울 시내와 근교가 한눈에 들어오고, 도봉산·북악산·남산·관악산은 물론 맑은 날에는 강화도·영종도 등 황해의 섬도 보인다. 백운대 북쪽에 있는 인수봉은 암벽 등반 코스로 인기가 높다. 정상부의 산세는 불규칙하다. 그밖에 노적봉(716m)·영봉(604m)·비봉(碑峰:560m)·문수봉(716m)·보현봉(700m) 등 이름난 봉우리만도 40여 개나 된다.

조선시대 때 수도의 방어를 담당했던 북한산성, 비봉의 진흥왕 순수비 터를 비롯해 유명한 북한 이궁지(離宮址), 진관사·문수암·태고사·원효암·상운사(祥雲寺)·도선사(道詵寺)·승가사·화계사 등 많은 사찰과 문화유적이 산재한다. 대서문을 지나면 나타나는 민지암(閔漬岩)은 너른 바위인데 고려때 민지라는 정승이 이곳에 머물렀기에 이름지어졌다. 민지암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칠유암(七遊岩)이 나오는데 조선시대 선비들이 이곳에서 탁족회를 하였던 자리라고 한다. 사찰로는 고려시대 창건된 승가사(僧伽寺 :구기동 소재), 진관동에 있는 고려시대 사찰 진관사(津寬寺), 신라시대에 창건된 삼천사(三川寺), 우이동계곡에 위치하며 신라시대 도선대사가 창건한 도선사(道詵寺), 화계사(華溪寺), 진국사(鎭國寺), 상운사(祥雲寺), 국녕사(國寧寺), 부왕사(扶旺寺)가 있다. 그리고 북한산성을 관리하는 총융사의 공덕을 기리는 총융사선정비(摠戎使善政碑)와 애민선정비, 영세불망비 등이 있다. 비봉 정상에는 진흥왕순수비가 있었던 자리를 표시하는 비석인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지가 있다. 진흥왕순수비는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북한산은 서울 외곽에 있으면서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명산으로 인기가 높다. 연중 등산객과 일반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1983년 도봉산과 함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2003년 10월 31일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경기도 고양시와 서울특별시 강북구가 관리한다.[3]

도봉산의 전경
도봉산

도봉산(道峰山)은 서울 북쪽 도봉구와 경기도 양주 경계에 있는 산이다. 높이는 740.2m이며, 가장 높은 봉우리는 자운봉(紫雲峰)이다. 북한산(北漢山)과 함께 북한산국립공원에 포함되어 있으며, 서울 북단에 위치한다. 우이령(牛耳嶺:일명 바위고개)을 경계로 북한산과 나란히 솟아 있으며, 북으로 사패산이 연이어 있다. 면적이 24㎢로 북한산의 55㎢에 비해 등산로가 더 조밀하며, 산 전체가 큰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자운봉·만장봉·선인봉·주봉·우이암과 서쪽으로 5개의 암봉이 나란히 줄지어 서 있는 오봉 등 각 봉우리는 기복과 굴곡이 다양하여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그외 도봉산의 능선을 이루는 칼바위, 기차바위, 해골바위, 피바위 등 재미있는 이름의 바위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그중 선인봉은 암벽 등반코스로 유명하다.

도봉산 남서쪽 도봉계곡에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휴양을 즐기던 곳으로 알려져있다. 그리고 도봉서원이 위치하는데 조선시대 개혁파였던 조광조의 위패를 봉안하는 곳이다. 또한 우암 송시열의 도봉동문이라는 암각화가 전해진다. 산중에는 인근 60여 개 사찰이 있으며 제일 오래된 사찰은 천축사(天竺寺)로 무학대사가 조선왕조 창건과 함께 중창하였다고 전해진다. 도봉산 만장봉(萬丈峰)에 있는 석굴암은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며 그외 사찰로는 망월사(望月寺)·쌍룡사(雙龍寺)·회룡사(回龍寺) 등이 유명하여 연중 참례객·관광객이 찾는다.[4]

남산
N서울타워의 자물쇠
남산

남산(南山)은 서울특별시 중구와 용산구에 걸쳐 있는 산이다. 높이는 해발 270.85m로서 서울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서울의 랜드마크가 되기도 한다. 정상에는 N서울타워가 있으며, 그 부근까지는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고 남산 1·2·3호 터널이 뚫려 있다.

대부분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북쪽의 북악산(北嶽山), 동쪽의 낙산(駱山), 서쪽의 인왕산(仁旺山)과 함께 서울의 중앙부를 둘러싸고 있다.

남산은 조선시대 초 태조가 1394년 풍수지리에 의해 도읍지를 개성에서 서울로 옮겨온 뒤에 남쪽에 있는 산이므로 '남산'으로 지칭되었으며, 풍수지리상으로 안산(案山)에 해당한다. 또 나라의 평안을 비는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산신령을 모시는 신당을 세웠는데, 이 신당은 목멱대왕 산신을 모시고 있어 '목멱신사'라고 불렸으며, 이때부터 이 산을 목멱산(木覓山)으로 불렀다. 목멱은 앞산의 이두식 표기로 목멱산은 산이 두 번 들어가는 옳지 못한 표현이다.

조선 도읍 초기부터 신성한 영산으로 여겨져 온 남산은 종남산(終南山)·인경산(仁慶山)·열경산(列慶山)·마뫼 등으로도 불렸다. 북악산, 낙산, 인왕산과 더불어 한양의 내륙분지를 형성하던 곳이고, 조선 도읍 초기에는 이들 산군들의 능선을 따라 성곽이 쌓였다. 정상에는 조선 중기까지 봄과 가을에 초제(醮祭)를 지내던 국사당(國祀堂)과, 통신제도의 하나인 봉수제(烽燧制)의 종점인 봉수대(烽燧臺)가 있었다. 또한 성벽 일부가 남아 당시의 흔적을 보여 준다.

1908년 일본제국은 남산 일대를 무상 증여받아 옛 남산식물원에서 남산 3호터널에 이르는 공간에 공원을 조성하였다. 1910년에는 시민공원으로 개장하였으며, 1916년에는 남산 전체를 공원화하는 계획을 수립하였다. 1918년에는 사대문 안 어디서든 보일 수 있도록 남산에 조선신궁을 세웠다. 조선신궁에서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와 메이지 천황을 제신으로 삼아 숭배하게 했다. 지금의 힐튼호텔 맞은편 어린이 놀이터에서 안중근의사기념관과 남산식물원 터를 아우르는 43만 제곱미터의 넓은 면적이다.

탑골공원에 이어 남산도 시민공원으로 개발되어 한양공원이라 불렀다. 당시 공원 묘지로 세웠던 '漢陽公園(한양공원)'이라는 고종 친필의 석비가 지금도 구 통일원 청사 옆에 보존되어 있다.[5]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산세〉, 《네이버국어사전》
  2. 박준모, 〈오행산(五行山)〉, 《법조신문》, 2015-11-02
  3. 북한산〉, 《네이버지식백과》
  4. 도봉산〉, 《네이버지식백과》
  5. 남산 (서울)〉, 《위키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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