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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경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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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경표

산경표(山經表)는 조선 시대 후기 한반도 전국의 산줄기를 분류하여 정리한 도표이다.

개요[편집]

  • 산경표는 조선 후기 한반도의 산지를 정리한 책으로, 18세기 중반 영조 때 실학자 신경준이 편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경표는 눈에 보이는 산줄기인 분수계를 기준으로 산지체계를 인식한 것으로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현대의 산맥도와는 산맥의 위치나 형태가 다르게 나타난다. 백두산을 중심으로 국토를 관통하여 뻗은 대간(大幹)과 지맥(支脈)의 분포를 기재하였는데, 이는 한반도의 정기가 백두산에서 내려온다는 당시의 민간 사상을 반영한 것이다. 필사본으로 지도가 아니라 1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국의 산지들을 백두대간(白頭大幹)과 이로부터 나온 14개의 정간(正幹), 그리고 정맥으로 설명하고 있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남쪽 끝인 지리산까지 이어진 한반도의 중추 산지로 모든 산지는 이를 중심으로 뻗어나간 것으로 인식하였다. 현대의 산맥도는 지질구조선을 따라 정의한 것으로 실제 보이는 산줄기와 차이가 나타나는 반면, 산경표는 실제 나타나는 산줄기를 따라 산지를 인식하고 있다는 점과 분수계 및 지역 구분에 유리하고, 실제 생활권 구분에 더 적합하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일본인 지질학자에 의해 제시된 산맥 구분 및 명칭 이전의 한반도 전통의 산지 분류체계를 알 수 있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그러나 산경표의 단점은 겉으로 드러난 산줄기를 기준으로 산지를 인식하여 지질구조선이나 지각의 형성 요인 등에 대한 반영을 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근래에 들어 기존의 한반도 산맥도를 산경표에 제시된 것으로 대치하자는 주장도 있으나, 현대의 산맥도는 눈에 보이는 산줄기와 달리 지각 운동에 따른 지질 구조선을 기준 삼아 산맥을 분류한 것으로 서로 다른 접근의 차이로 인해 학계에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다. 필사본이었던 산경표는 1913년 민족학자 최남선(崔南善)이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에서 활자본으로 간행하여 널리 유포되었으며, 현재 서울대 규장각 등 각처에 소장되어 있다. 현대에 와서 산경표를 실제 지도로 표현하였는데, 이를 산경도(山經圖)라 한다.[1]
  • 산경표는 조선 영조 때의 실학자인 신경준이 쓴 도표로 한반도 멧줄기의 발원지와 분포를 강물의 수계를 따져 가계도처럼 그림으로 표시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산경표의 가치는 산줄기의 표현을 족보(族譜) 기술식으로 정리하여 어떤 유역들을 거느리며 변형되고 생성해 왔는지를 상세히 밝히고 있고 표의 기재 양식은 상단에 대간(大幹)·정맥(正脈)을 산경을 바탕으로 옆에 거리(이수(里數))를 부기해서 이를 펼치면 조선의 옛 지도에 나타난 산맥들을 산줄기와 하천 줄기를 중심으로 모든 구역의 경계가 나오도록 도표화했다는 데에 있다. 조선시대보다 더 전에는 낙동강 삼각주가 하나의 만이었는데, 퇴적이 진행되어 낙동강삼각주에 이 생겨나 조선 후기에는 이미 더 이상 바다가 아니게 되었다. 산경표는 낙동강이나 서낙동강에 미치지 않은 김해 분성산에서 끝나게 지어졌다. 오늘날에는 분성산을 지나는 원래의 낙남정맥은 동신어산에서 끝나는 것으로, 낙남정맥에서 갈라져 실제 서낙동강 하구에 이르는 산맥은 신 낙남정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리고 한남정맥은 아라천에 의해, 낙남정맥은 가화천에 의해 잘리게 되었다.[2]
  • 산경표는 조선 영조 재위 시기에 신경준(申景濬, 1712-1781)이 한반도의 산경(山經)체계를 도표로 정리한 역사 지리지이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조선 영조 시기의 학자로 도로고, 훈민정음 운해, 순원화훼잡설, 강계고 등 한국의 문자학(文字學)·성운학(聲韻學)·지리학(地理學)과 관련된 여러 책을 저술했던 신경준이 1700년 중엽에 한반도산맥을 고유의 방법으로 정리해놓은 것이다. 조선의 산맥체계를 수계(水系)와 연결시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놓은 책으로서, 일본인이 분류, 명명한 산맥 구분 및 산맥 명칭과는 달리 과거 전통적인 산지 분류체계에 대해 파악할 수 있다. 산경표를 표현한 지도는 산경도라고 한다. 산경도가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일본 학자가 만든 산맥도는 잘못된 것이고 우리 고유의 것인 산경도가 옳은 것이라는 잘못된 주장이 퍼졌으나, 사실 둘은 산지를 분류한 기준 자체가 완전히 다르므로 둘 중 어느 것이 옳고 그르다 할 수는 없다. 산맥도는 지질과 지각 변동을, 산경도는 유역과 수계를 반영한 것이다. 그래서 지질학적으로는 산맥도가 더 맞지만 실제로 다닐 때는 산경도의 모습이 체감상 더 와닿을 수 있다.[3]
  • 산경표는 순창 출신의 조선 후기 실학자 신경준이 편찬한 조선의 산맥체계를 정리한 지리지이다. 『산경표』는 한반도 산맥[山徑]의 갈래, 분포, 위치 등을 기록한 지리지이다. 산의 내력의 높낮이, 산이 치닫다가 생긴 고개, 산이 읍치(邑治)를 어떻게 둘러 있는지 등을 상세하고도 일목요연하게 표로 기록하였다. 『산경표』는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한 개의 대간(大幹)과 한 개의 정간(正幹), 13개의 정맥(正脈) 등 총 15개의 산맥으로 조선의 산줄기를 분류하였다. 15개의 산맥은 백두대간(白頭大幹), 장백정간(長白正幹), 낙남정맥(洛南正脈), 청북정맥(淸北正脈), 청남정맥(淸南正脈), 해서정맥(海西正脈), 임진북 예성남 정맥(臨津北禮成南正脈), 한북정맥(漢北正脈), 낙동정맥, 한남 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 한남정맥, 금북정맥, 금남호남정맥(錦南湖南正脈), 호남정맥이다.[4]

산경표의 종류[편집]

  • 지금까지 전하는 대표적인 『산경표』의 본(本)은 세 가지, 규장각 『해동도리보』(海東道里譜) 중의 『산경표』, 장서각의 『여지편람』(輿地便覽) 중의 『산경표』, 영인본으로 조선광문회 최남선이 1913년에 간행한 『산경표』가 있으나 모두 같은 내용으로 전국의 산줄기를 하나의 대간, 하나의 정간, 13개의 정맥으로 규정하고 여기에서 다시 가지쳐 뻗은 기맥을 기록하였고 모든 산맥의 연결은 자연 지명인 산 이름, 고개 이름 등을 원본대로 족보 기술식으로 정리하였다. 전국의 산경을 바탕으로 작성된 산경표는 백두대간으로 알려진 한반도의 산줄기들을 분수계를 기준으로 대간(大幹)과 정간(正幹), 정맥(正脈)으로 나타냈다.

산경표의 저자[편집]

  • 신경준(申景濬)의 자는 순민(舜民), 호는 여암(旅庵)이며 본관은 고령이다.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의 남산대(南山臺)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진사 신래(申淶)이며, 어머니는 한산 이씨로 이의홍(李儀鴻)의 딸이다. 1754년(영조 30) 증광시에 을과로 급제하여 정언·장령·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1769년에 종부시정(宗簿寺正)이 되어 강화의 선원각(璿源閣)을 중수하였다. 영조의 명으로 『여지승람(輿地勝覽)』을 감수하였고, 1770년에는 『문헌비고(文獻備考)』 중 『여지고(輿地考)』의 집필을 담당하였다. 많은 저술을 하였는데 특히 『운해 훈민정음』, 『언서 음해(諺書音解)』, 『강계지(疆界志)』, 『산수고(山水考)』, 『도로고(道路考)』 등 문자학(文字學)·성운학(聲韻學)·지리학(地理學) 등을 중심으로 다방면에 걸쳐서 업적을 남겼다. 『산경표(山經表)』는 1913년에 최남선(崔南善) 편으로 조선 광문회(朝鮮光文會)에서 활자본으로 간행, 널리 유포되었다. 필사본 1책 48장으로 이루어졌다. 사주 단변(四周單邊)에 행자수(行字數)는 일정하지 않으며, 어미(魚尾)는 없다. 규격은 반곽(半郭) 23.2×15.0㎝이다. 국립 중앙 도서관과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 산경표는 현재 1913년 활자로 만들어진 책들이 여러 권 있다. 이후 현대에 산악인 박성태가 신산경표를 간행하였다. 사실 산경표는 『산경표』의 저자와 간행 시기는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의견으로 신경준 연구가들은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보아 『산경표』의 저자가 신경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시대 상황으로 미루어 보아 조선조 후기 영조 때의 실학파 지리학자 신경준의 『여지고』(輿地考)를 바탕으로 후대 사람이 쓴 책이라는 정도만 알려져 있기도 하다.

백두대간[편집]

  • 백두대간(白頭大幹)은 북한의 백두산에서 남한의 지리산까지 한반도의 남북으로 이어지는 긴 산줄기이다. 한반도에서 전통적으로 인식하던 산지체계 중 북쪽 끝의 백두산에서 한반도의 남쪽 끝 큰 산인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높이가 높고 연속적인 산줄기를 가리킨다. 이것을 체계화한 것은 조선 후기 실학자 신경준이 작성한 산경표(山經表)이다. 산경표의 특징은 백두산을 중심으로 시작하여 한반도의 정기(精氣)가 남쪽의 지리산까지 흐르고 있음을 강조한 것이며, 지질구조선을 바탕으로 표시된 현대의 산맥도와 달리 눈에 보이는 산줄기를 기준으로 산맥을 인식한 점에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산맥도와 차이가 있다.
  •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오늘날 산맥구분 체계에서 일컫는 마천령산맥, 함경산맥, 낭림산맥, 태백산맥을 거쳐 소백산맥으로 이어지며 소백산맥의 끝자락인 지리산까지 이르는 국토의 큰 줄기를 이루는 산지체계로, 이 산맥들은 오늘날 소위 한반도의 1차 산맥이라 일컫는 산맥들인데, 높이가 높고 연속성이 뚜렷하여 전통적으로 지역의 경계 기준이 되었다. 또한 이런 높은 산지들은 분수계(分水界)를 이루어 하천 유역을 바탕으로 한 한반도의 전통적인 생활권 영역 형성과 이에 따라 방언 등 문화의 차이에 영향을 미쳤다. 이 산줄기를 이루는 주요 산은 먼저 북한에서 백두산(2,750m)을 기점으로 포태산(2,289m), 두류산(2,309m) 등 해발고도 2,000m 내외의 고봉으로 이어지며, 북쪽의 두 강인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을 양분하는 경계선을 이루게 된다. 산줄기는 다시 남쪽으로 차일봉(1,742m), 철옹산(1,085m), 추가령(752m)으로 이어지며 높이는 점차로 낮아진다. 또한 동해안을 끼고 태백산맥을 따라 금강산(1,638m), 설악산(1,708m), 오대산(1,563m), 대관령(832m), 두타산(1,353m)을 거쳐 태백산(1,567m)에 닿는다. 여기서 방향을 남서쪽으로 돌려 소백산맥을 따라 소백산(1,440m), 죽령(689m), 속리산(1,059m)으로 뻗어내린 뒤, 황악산(1,111m), 덕유산(1,614m), 지리산(1,915m)으로 이어지면서 백두대간이 끝난다. 신경준의 산경표에 따르면, 한국의 산지는 1개 대간과 1개 정간(正幹) 및 13개 정맥(正脈) 체계로 되어있다. 이러한 산줄기[山經]의 개념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도 잘 나타나있다. 제일 굵은 선으로 표시한 것은 대간, 두 번째 굵은 선으로 표시한 것은 정맥, 세 번째 굵은 선으로 표시한 것은 지맥, 기타는 골짜기를 이루는 작은 산줄기 등이다. 이렇듯 대간을 중심으로 여러 갈래로 뻗어나간 산줄기들은 삼국시대의 국경을 이루기도 하였고, 조선시대의 행정경계를 이룬 것들이 많다. 백두대간은 한반도의 자연적 상징이며 동시에 한민족의 인문적 기반이 되는 산줄기라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현재 사용하고 있는 지질구조선에 따른 현대식 산맥체계 대신에 이러한 우리의 전통적인 산지체계를 한반도 지형도의 기본으로 사용하자는 주장도 있다.

산경표의 내용[편집]

  • 산경표는 조선후기 문신 · 학자 신경준이 조선의 산맥[山經]체계를 도표로 정리하여 영조 연간에 편찬한 지리서. 역사 지리지이다. 표의 기재 양식은 상단에 대간(大幹) · 정맥(正脈)을 표시하고 아래에 산(山) · 봉(峰) · 영(嶺) · 치(峙) 등의 위치와 분기(分岐) 관계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난외 상단에 주기(註記)로 소속 군현을 명기하였다. 내용은 백두대간(白頭大幹)과 이에서 연결된 14개의 정간(正幹) · 정맥으로 구분되어 있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으로부터 시작하여 지리산에서 그치며, 장백정간(長白正幹)은 황토령(단천)에서 시작하여 함경도 지역의 산계들을 포함한다. 산경표는 조선의 산맥체계를 수계(水系)와 연결시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놓은 책으로서,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일본인이 분류, 명명한 산맥 구분 및 산맥 명칭 이전의 조선의 전통적인 산지 분류체계를 파악할 수 있는 점에 중요한 의의가 있다. 규장각도서에 있다. 1913년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에서 활자본으로 간행, 널리 유포되었다.[5]
  • 낙남정맥(洛南正脈)은 지리산 취령(鷲嶺)으로부터 경상도 서남부 일대를, 청북정맥(淸北正脈)은 낭림산(강계)으로부터 평안북도 일원을, 청남정맥(淸南正脈)은 백운산 (개천)으로부터 평안남도와 황해도 북부 일부 지역을 포함한다.
  • 해서정맥(海西正脈)은 발은산(勃隱山)으로부터 황해도 일대를, 임진북예성남정맥(臨津北禮成南正脈)은 개련산(開蓮山)으로부터 황해도 및 경기도의 임진강과 예성강 사이 지역을 포함한다.
  • 한북정맥(漢北正脈)은 백운산(白雲山)으로부터 한강 이북과 임진강 이남 지역을, 낙동정맥(洛東正脈)은 태백산으로부터 경상도 동부 · 서북부 지역을 포함한다.
  •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은 속리산으로부터 충청북도 및 경기 일부 지역을, 한남정맥(漢南正脈)은 광교산(光敎山 : 수원)으로부터 경기도충청남도 일부 지역을, 금북정맥(錦北正脈)은 송악(松岳)으로부터 충청남도 일원을 포함한다.
  • 금남호남정맥(錦南湖南正脈)은 장안산(長安山)으로부터 전북특별자치도 일대를, 금남정맥(錦南正脈)은 계룡산(공주)으로부터 시작하여 충청도 및 전북특별자치도 서부 지역을, 호남정맥(湖南正脈)은 굴치(屈峙)로부터 전라남도 지역의 산지들을 계통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산경표의 의의[편집]

  • 산경표는 조선 시대 영조 때 여암 신경준이 편찬한 것으로 알려진, 조선의 산맥체계를 도표로 정리한 책을 말한다. 한반도 옛 지도에 나타난 산맥들을 산줄기와 하천 줄기를 중심으로 파악하여 산맥체계를 대간 · 정맥 · 정간 등의 표현으로 백두대간과 연결된 14개의 정간 · 정맥으로 집대성하였다. 《산경표》는 고토 분지로 등 일본 학자들이 한반도의 지질 구조선에 바탕을 두고 분류한 근대 산맥체계보다 현 산세 줄기를 따라서 산세를 파악함으로써 지역 구분은 물론 유역 구분 등 생활권 구분에 보다 가깝고 현실적인 준거를 제시하고 있다.
  • 산경표의 산맥체계는 몇 가지 특징을 보인다. 첫째, 대간과 정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하천의 수계(水界)를 기준으로 산줄기를 나누었다. 둘째, 대간·정간·정맥 등으로 산줄기에 위계성(位階性)을 부여하였다. 셋째, 산경표에 나타난 간과 맥들은 혈맥이 서로 통하듯이 연결되어 단절이 없다. 넷째, 백두산이 국토의 중심 또는 출발점으로 인식되었다. 산경표는 한반도의 산맥체계를 수계(水系)와 연결시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놓은 책으로서,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일본인이 분류, 명명한 산맥 구분 및 산맥 명칭 이전의 조선의 전통적인 산지 분류체계를 파악할 수 있는 점에 중요한 의의가 있다.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산경표(山經表)〉, 《두산백과》
  2. 산경표〉, 《위키백과》
  3. 산경표〉, 《나무위키》
  4. 산경표〉, 《향토문화전자대전》
  5. 산경표(山經表)〉,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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