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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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독일어: Bern, 베른 독일어: Bärn, 프랑스어: Berne, 이탈리아어: Berna, 로만슈어: Berna)은 스위스의 연방시이며 사실상 수도이다. 인구는 약 14만 4000명으로 스위스에서 취리히, 제네바, 바젤에 이어 스위스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이다. 1983년에 베른 중심가에 있는 구시가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UNESCO World Heritage Site)으로 등록되었고 베른은 세계에서 가장 삶의 질이 뛰어난 10대 도시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1]
목차
개요[편집]
- 행정 단위: 스위스 사실상 수도
- 면적: 51.62 km²
- 지역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로만슈어
- 정부 공식 홈페이지: https://www.bern.ch/weiche_de
베른은 스위스의 수도이자, 베른주의 주도이다. 스위스의 중서부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스위스의 칸톤 중에서는 면적이 넓은 편에 속한다. 베른은 1191년 군사 요새로서 건설되었다. 1220년에는 자유도시가 되었고 1353년에는 스위스 연방에 가맹하였다. 1848년 스위스 연방 헌법이 제정되면서 스위스의 수도 역할을 하게 되었다. 베른은 행정적으로 6개 구로 세분화되며, 고전적인 도시의 모습은 고요의 나라 스위스의 대표적인 풍격을 지니고 있어 시 전체에 중세적인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구시가에는 연방의사당, 정부청사, 시청사, 대성당, 미술관 등 외에 만국우편연합, 국제철도 교통사무국 등의 본부가 있어 국제적인 활동의 장소를 이룬다. 시의 중심 아레강 좌안의 절벽 위에는 1421년부터 150년 이상이나 걸려 건설된 고딕 양식의 뮌스터 성당이 있고, 상당히 먼 거리에서도 바라다 보이는 높이 100m에 이르는 대첨탑이 솟아 있다. 구시가의 길모퉁이에는 16세기에 만들어졌다고 하는 11개의 분수가 있고, 17∼18세기에 만들어진 아케이드가 그대로 남아 있어 번화가를 이룬다. 그 근처에는 16세기에 재건되어 현재까지 베른의 상징이 되고 있는 거대한 시계탑이 있다. 시의 남부 아레강의 우안에는 스위스 산악박물관, 스위스 우편박물관, 베른 역사박물관, 자연역사박물관 등이 한곳에 모여 있다. 1834년 창설된 베른대학교에는 80만 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는 도서관이 있다. 베른에 위치한 교육기관으로는 베른대학교, 베른응용과학대학교(Bern University of Applied Sciences), 베른예술대학교(University of the Arts Bern)가 있다. 베른대학교의 시초는 16세기 목사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이 설립되면서부터다. 1834년, 대학으로 설립되었으며 현재 스위스에서 세번 째로 규모가 큰 종합대학이다.[2]
지리 및 기후[편집]
베른은 스위스 중심부에서 약간 서쪽으로 베른 알프스에서 북쪽으로 20km 떨어진 베른주의 스위스 고원에 자리 잡고 있다. 베른 주변의 시골은 가장 최근의 빙하기에 빙하에 의해 형성되었다. 베른에서 가장 가까운 두 산은 높이가 864m인 구르텐과 947m인 반티거이다. 베른의 옛 천문대는 CH1903 좌표계의 원점이다. 도시는 원래 아레강으로 둘러싸인 구릉 반도에 건설되었지만 19세기에 이르러 자연 경계를 넘어섰다. 도시가 아레강 너머로 확장될 수 있도록 많은 다리가 건설되었다. 베른은 매우 고르지 않은 땅 위에 세워졌다. 아레강(마테, 마르칠리)의 도심 지역과 더 높은 지역(키르헨펠트, 렝가세) 사이에는 최대 60m의 고도차가 있다.
2013년 기준으로 베른의 면적은 51.62k㎡이다. 이 면적 중 9.42k㎡ 또는 18.2%가 농업 목적으로 사용되는 반면 17.21k㎡ (33.3%)는 삼림이다. 나머지 토지 중 23.76k㎡ (46.0%)가 정착(건물 또는 도로), 1.08k㎡ (2.1%)가 강 또는 호수, 0.14k㎡ (0.3%)는 불모지이다. 베른의 개발 지역 중 3.1%는 산업 건물, 22.3%는 주택 및 기타 건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12.9%는 교통 인프라에 할당된다. 전력과 수자원 기반 시설 및 기타 특별 개발 지역은 도시의 1.2%를 구성하고, 다른 6.5%는 공원, 녹지 및 스포츠 경기장으로 구성된다. 베른의 총 토지 면적 중 32.8%가 무성한 삼림이다. 농경지 중 13.3%는 작물 재배에 사용되며, 4.4%는 목초지로 지정된다. 지역 강과 시내는 시정촌의 모든 물을 제공한다.
베른의 기후는 쾨펜의 기후 구분에 따르면 냉대 습윤 기후(Dfb)를 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서안 해양성 기후(Cfb)도 물론 갖고 있다. 베른 근처에서 가장 가까운 기상 관측소는 시내 중심에서 북쪽으로 약 5km 떨어진 졸리코펜 시정촌에 있다. 베른의 가장 따뜻한 달은 7월로 일일 평균 기온은 18.3°C이고 일일 최고 기온은 24.3°C이다. 베른/졸리코펜에서 기록된 최고 온도는 37.0°C이며 2003년 8월에 기록되었다. 평균적으로 졸리코펜에서는 25°C 이상의 온도가 연간 40.7일, 30°C 이상의 온도로 연간 6일이 기록된다. 가장 따뜻한 날은 평균 32.1°C에 이른다
역사[편집]
초기[편집]
12세기 이전에 오늘날의 도심이 있었던 자리에 정착했음을 나타내는 고고학적 증거는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고대 켈트족의 오피둠은 베른 북쪽의 엥게할빈젤 (Engehalbinsel 반도)에서 있었는데, 기원전 2세기(라텐 문화 시대 후기) 이래로 요새화되었으며 카이사르가 언급한 헬베티족의 12개 오피다(oppida) 중 하나로 생각되었다. 로마 시대 동안 갈로로마인들의 비쿠스는 같은 위치에 있었다. 베른 아연판의 이름은 브레노도르 (Brenodor, "브레노의 거주지")이다. 중세 초기, 현재 베른의 구인 붐플리츠(Bümpliz)의 정착지는 중세 도시에서 약 4km 떨어져 있었다.
중세 도시는 12세기에 어퍼 부르고뉴에서 권력을 잡은 체링겐 통치 가문의 토대이다. 14세기 역사서 베른연대기(Cronica de Berno, 1309)에 따르면 베른은 1191년 체링겐 공작 베르톨트 5세에 의해 설립되었다. 1218년 베르톨트가 후계자 없이 사망한 후, 베른은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베른 황금헌장에 의해 자유 제국 도시가 되었다.
스위스 서약동맹[편집]
1353년 베른은 스위스 서약동맹에 가입하여 1353년에서 1481년 사이의 형성 기간의 8개 주 중 하나가 되었다. 베른은 1415년에 아르가우, 1536년 보(Vaud)를 비롯한 다른 작은 영토를 침공하여 알프스 북부에서 가장 큰 도시국가가 되었다. 18세기에 이르러 오늘날 베른주와 보주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도시는 아레강에 의해 형성된 반도의 경계의 서쪽을 향해 성장했다. 치트글로게 탑은 1191년부터 1256년까지 도시의 서쪽 경계를 표시했으며, 이때 케피그투름(Käfigturm)은 1345년까지 이 역할을 맡았다. 그 다음에는 크리스토펠투름(Christoffelturm, 이전에는 현대 기차역이 있던 곳 근처에 위치)이 계승했다. 30년 전쟁 기간동안 반도 전체를 보호하기 위해 소위 크고 작은 샹체(Schanze)라고 하는 두 개의 새로운 요새가 건설되었다.
1405년에 큰 화재가 발생한 후, 도시의 원래 목조 건물은 점차적으로 골조 주택으로 교체되었으며 이후 구시가지의 특징이 된 사암 건물이 되었다. 14세기에 유럽을 강타한 역병의 파도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는 주로 주변 시골에서 온 이민자들로 인해 계속해서 성장했다.
현대[편집]
베른은 1798년 프랑스 혁명 전쟁 기간 동안 프랑스 군대에 의해 점령되었으며, 당시 영토의 일부가 박탈당했다. 1802년에 베르너 오버란트의 통제권을 되찾았고, 1814년 비엔나 회의에 따라 베른 쥐라를 새로 획득했다. 이 시기에, 그것은 다시 한번 1979년 쥬라주의 재건과 분계기간 동안 연방정부의 가장 큰 주가 되었다. 베른은 1848년에 새로운 스위스 연방 헌법이 제정되면서 스위스의 수도 역할을 하게 되었다. 사회주의 제1인터내셔널과 제2인터내셔널의 다수의 대회가 베른에서 개최되었는데, 특히 스위스가 중립국이었던 제1차 세계대전 중에 그러했다.
중세 시대의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1983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에 등재되었다. 2005년에 홍수를 겪기도 했다.
이 도시의 인구는 15세기에 약 5,000명에서 1800년에는 약 12,000명, 1900년에는 60,000명 이상으로 증가하여 1920년대에 100,000명을 넘어섰다. 인구는 1960년대 165,000명을 정점으로 2000년 130,000명 미만으로 약간 감소했다. 2017년 9월 기준 거주 인구는 142,349명으로 그중 100,000명이 스위스 시민이고 42,349명(31%)이 거주 외국인이다. 추가로 추정되는 350,000명이 직접적인 도시 광역권에 살고 있다.[3]
경제[편집]
베른은 주요 교역로에 위치한 도시는 아니었기에 농업이 주요 산업이었다. 농업 외 또 다른 주요 산업은 가죽공정과 가죽 수출이었다. 14세기 들어, 유럽의 상업이 부흥하기 시작하면서 무역상들이 귀족이 되었지만 15세기 용병업에 대한 집중, 그리고 시(市) 정부의 독재 통치로 농업과 무역업은 침체하기 시작했다. 16세기 길드 활성화로 상업이 발달하였고 공예품의 질이 높아졌으며 17세기에는 절정에 이르렀다. 특히. 이시기에는 유리화(glass-painting)의 인기가 높았다.
오늘날 베른은 스위스 연방의 수도로서 경제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 특히 목축업과 치즈생산으로 잘 알려져있으며 에멘탈이 대표상품이다. 뿐만 아니라 스위스의 중앙에 위치하여 교통이 편리하고, 스위스 각지와도 철도로 한나절 권내(圈內)에 있기 때문에 정밀기계, 섬유, 화학, 약품, 초콜릿, 인쇄 등의 공업이 발달하였다. 시계제작, 헬스케어, 식품, 통신, 정밀 산업 등 다양한 분야의 글로벌 기업들이 이곳에 위치해 있다. 2018년 기준 베른의 실업률은 3.3%였으며, 3차 산업군에서 가장 많은 취업이 이루어지고 세부 분야로는 도·소매, 차량 수리, 물류, 호텔 및 레스토랑, 정보산업, 금융업, 교육, 보건 분야 등에서 구인구직이 활발하다.
교통[편집]
도시의 대중교통은 기차와 버스(트롤리버스 포함), 트램 그리고 산악지방을 이동할 때 이용할 수 있는 포스트아우토부스(PostAuto bus)가 있다. 베른을 중심으로 한 통근철도인 S-Bahn은 1974년에 첫 운영을 시작하였으며, 이후 1987년 툰(Thun), 라우펜(Laupen) 프리부르(Fribourg) 지역을 아우르는 도시 간 운행 서비스를 시작했다. 베른시의 버스시스템은 잘 구축되어 있는 편이며, 트롤리버스 또한 운행 중으로 1940년 10월 29일에 운행을 처음 시작하였다. 베른의 또 다른 대중교통 수단인 트램은 1890년 10월 처음 운행을 시작했다. 당시 트램은 오늘날과 달리 압축공기동력을 이용해 운행되었다. 이후 증기 트램을 거쳐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전기로 운행되는 트램을 운행하였다.
베른 중앙역은 베른 교통의 핵심으로 도시 전체와 스위스의 다른 주들과 연결된다. 1858년 첫 개통했으며 1999~2003년 일부 개보수가 이루어졌다. 베른 중앙역은 스위스의 다른 주들과 연결됨과 동시에 인접국가들인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네덜란드, 스페인 등을 연결하고 있다.[4]
관광[편집]
베른은 1405년 대화재 이후 16~17세기 재건된 도시의 모습이 지금까지 남아 있어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구시가지는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아레강에 둘러싸인 언덕 위에 세워진 이곳은 12세기~15세기 사이 건설되었으며 중세시대 베른의 중심지였다. 1405년 큰 화재가 있었지만 재건되었고 18세기 실질적인 복구가 이루어져 오늘날까지 중세시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대성당, 교회, 르네상스 스타일 분수 등을 비롯하 역사적인 건축물 외에도 연방, 주 및 시 정부 청사들이 이 곳에 위치하고 있다. 구시가지에 위치한 지트글로그 시계탑(The Zytglogge Turm)은 베른의 랜드마크로 1219년에 건설되었다. 시계탑은 지난 800년 동안 많은 개조를 거치면서 경비탑, 교도소, 시계탑 등의 역할을 수행하며 도시의 상징물로 거듭났다. 시계탑의 천문시계는 15세기에 만들어졌으며 오늘날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 베른대성당 : 베른대성당은 1421년에 착공하여 1893년 완공되었다. 최고 높이가 100.6m로 스위스에서 가장 높은 성당이다. 성당의 정문에는 고딕양식으로 조각된 최후의 심판(The Last Judgement)이 있다. 조각의 오른쪽에는 벌거벗은 사악한 자들, 왼쪽에는 흰옷을 입은 의인들이 조각되어 있다. 이 가운데에는 정의가 표현되어 있음과 동시에 대천사 미카엘이 검을 치켜들고 서 있다. 최후의 심판은 종교개혁 당시 우상 파괴에서 생존한 유일한 조각상이라 그 가치가 높다. 47개의 조각상들은 복제품으로 원본들은 베른 역사 박물관에 있다.
- 성령교회 : 성령교회(Heiliggeistkirche)는 베른의 랜드마크 중 하나다. 1228년에 착공될 당시 베른의 외곽에 위치했지만 베른시가 점점 팽창함에 따라 오늘날에는 중심가에 자리한다. 오늘날 교회뿐 아니라 전시회, 음악회를 비롯한 여러 행사들을 위한 공간으로도 사용된다. 교회 내부는 합창단을 위한 공간이 없으며 오로지 설교를 위한 공간이 있다.
- 베른 역사박물관 : 베른 역사박물관(Bern Historical Museum)은 스위스에서 두 번째로 큰 역사박물관으로 1894년에 건축되었고 2009년에 증축되었다. 박물관에는 선사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베른 역사와 관련된 소장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 아인슈타인하우스 : 베른에는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거주했던 아인슈타인하우스(Einsteinhaus)가 있다. 이곳은 그가 1903년~1905년까지 가족과 살았던 곳으로 당시 그는 연방지적재산권 사무소에서 기술직 3급 견습생으로 일하고 있었다. 특히, 1905년은 아이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제시하고 현대 물리학의 기초를 세웠던 ‘기적의 해(Annus Mirabilis)’라고 불린다. 이곳은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어 당시 그의 가족들 생활 모습과 가구 그리고 아인슈타인의 전기를 볼 수 있다.[5]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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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베른〉, 《위키백과》
- 〈베른〉, 《나무위키》
- 〈베른〉, 《요다위키》
- 〈베른(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베른(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서유럽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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