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루지나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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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루지나포카(루마니아어: Cluj-Napoca)는 루마니아 서북부 클루지 주에 있는 도시로 루마니아 제2의 도시다. 인구 약 30만 명이고 트란실바니아 지방의 중심 도시이다. 도시의 원래 이름인 클루지(Cluj)로 잘 알려져 있지만, 1974년 공산 정부가 헝가리 색채를 지우고 민족주의적 의도로 고대 로마의 정착촌 이름이었던 '나포카'(Napoca)를 덧붙여 현재의 지명이 되었다. 클루지나포카는 2018년 유럽 스포츠 도시로 선정되었다.[1]
개요[편집]
클루지나포카는 부쿠레슈티에서 445km, 부다페스트에서 461km, 베오그라드와 483km 떨어져 있다. 클루지나포카는 클루지와 나포카라는 별개의 도시로 구성되어 있었다. 나포카는 로마 제국 시절부터 발달한 유서 깊은 지역이며, 클루지는 중세 시대부터 클라우젠부르크(독일어: Klausenburg, 헝가리어: Kolozsvár)라는 이름으로 트란실바니아 지방의 중심지로 발달하였다. 독일인과 헝가리인이 많으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속했다가 제1차 세계대전 후 루마니아의 영토가 되었다. 1970년대에 클루지와 나포카가 합병하여 클루지나포카가 되었다. 클루지나포카는 대대적인 도시화 정책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역사적인 건물들과 기념물들이 남아 있다. 그중 하나는 14세기 말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성 미카엘 교회로 현재 루마니아에서 가장 높은 교회 첨탑이 있다. 교회 앞에는 이 지역에서 태어난 헝가리 왕을 기리기 위한 '마티아스 코르비누스의 승마상'이 있다. 도시의 또 다른 랜드마크는 1898년에서 1902년 사이에 지어진 '정의의 궁전(Palace of Justice)'이다. 건축가 기울라 와그너(Gyula Wagner)가 다양한 건축 양식을 도입해 설계한 이 건물은 국립극장을 비롯한 다른 여러 건물들과 함께 아브람 이안큐 광장을 장식하고 있다. 테오토코스의 안식 대성당(Catedrala Adormirea Maicii Domnului)은 클루지나포카의 루마니아 정교회 중 가장 유명한 교회다. 르네상스와 비잔틴 건축이 혼합된 루마니아 브른코베네스크 스타일로 지어졌으며, 클루지나포카 국립극장, 아브람 이안쿠 동상과 함께 아브람 이안쿠 광장에 위치해 있다. 성당은 루마니아 구왕국과 트란실바니아 연합을 거쳐 1923년부터 1933년 사이에 지어졌다. 이스탄불의 하기아 소피아 돔에서 영감을 받은 성당의 메인 돔은 루마니아 브른코베네스크 양식의 탑 4개로 둘러싸여 있다. 돔을 받치고 있는 18개의 큰 기둥은 돌로 조각되어 있다. 실내 벽화는 1928년에서 1933년 사이에 화가 아나스타시 데미안과 카툴 보그단이 그렸다.[2]
클루지나포카는 루마니아에서 가장 큰 대학교인 바베슈-볼랴이 대학교(Babeș-Bolyai University)가 있는 대학도시로서 유럽에서 온 학생들이 많고, 도시가 활기찬 편이다. 바베슈-볼랴이 대학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가 이 도시에 1872년 세운 '헝가리 왕립 페렌츠 요제프 대학'(Magyar Királyi Ferenc József Tudományegyetem)이 그 뿌리다. 1919년 이 도시가 루마니아 땅이 되자 이에 반발한 일부 구성원들은 헝가리의 세게드(Szeged)에 망명 대학교를 세웠다. 1940년 제2차 빈 중재로 클루지가 다시 헝가리 땅이 되자 복귀했으나 5년 만에 번복되면서 다시 세게드로 돌아갔고 공산화되면서 '페렌츠 요제프' 이름도 떼어져 지금의 세게드 대학교로 이어지고 있다. 이 대학 덕분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 콜로주바르는 '이중제국의 괴팅겐'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의 대학도시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루마니아가 트란실바니아를 합병한 후 페렌츠 요제프 대학을 개조해 세운 페르디난드 1세 대학교(루마니아어 사용)와 보여이 대학교(헝가리어 사용)가 합쳐져 바베슈-보여이 대학교가 된 것은 1959년이다. 대학에는 한국어과가 개설되어 있다.[3]
지리 및 기후[편집]
클루지나포카는 트란실바니아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으며, 아푸세니 산맥, 소메슈 고원, 트란실바니아 평원의 합류 지점에 있다. 소메슐미크강과 그 지류 나더스강이 만드는 계곡 사이에 자리잡았고, 3면이 높이 500m에서 700m 사이의 언덕이나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도시와 가까운 아푸세니산맥의 영향으로 겨울은 춥고 눈이 많이 내리며 여름은 서늘하고 건조하다. 유럽연합의 도시 중 가장 공기가 깨끗한 도시로 꼽힌다.
역사[편집]
로마인은 트라이아누스 휘하에서 서기 101~106년 사이에 다시아를 정복했고, 로마인의 나포카 정착 기록은 1758년 근처 아이톤 지역에서 발견된 이정표에서 처음으로 확인되었다. 아이톤 이정표는 정복 직후 서기 108년에 만들어진 고대 로마의 이정표로, 포타이사에서 나포카까지 도로가 건설된 증거다. 로마 다시아에 있는 포타이사와 나포카의 정착촌에 대한 최초의 서사적 증명이다.
트라이아누스의 후계자 하드리아누스는 나포카에 있는 로마 정착지에 자치구의 칭호와 지위를 부여했다. 이후 2세기에 이 도시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통치 기간 중 콜로니아 아우렐리아 나포카로서 식민지의 지위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나포카는 다시아 지역의 지방 수도가 되었고 이 식민지는 로마 행정부에 의해 274년에 폐기되었다. 이후 나포카는 황폐화되었고 천년 가까운 기간 동안 그 지역에 도시가 건설되었다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뒤 정착지에 대해 언급된 신뢰할 만한 기록은 1275년 헝가리의 왕 라디슬라우스 4세가 쿨루스바르 마을(Villa Kulusvar)을 트란실바니아 주교에게 부여하는 문서에서 처음 발견된다. 1316년 8월 19일 헝가리의 카롤 1세 통치 기간에 클루지는 도시의 지위를 부여받는데, 이는 트란실바니아의 통치귀족(voivode) 라디슬라우스 칸이 일으킨 반란을 진압하는 데 색슨족이 기여한 공을 인정한 것이다. 1331년 트란실바니아 통치귀족은 쿨루스바르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했고, 쿨루스바르는 콜로즈바르-클라우센부르그라는 이름을 얻고 1405년 헝가리 왕실의 자유 도시가 되었다.
1541년 클라우센부르그는 오스만 투르크가 헝가리 왕국의 중앙부를 점령한 후 트란실바니아 공국의 일부가 되었다. 알바 이울리아가 공국의 정치적 수도 역할을 담당했고 클라우센부르그는 주로 문화 · 종교적 중심지로 기능했다. 1581년 트란실바니아의 통치자 스테판 바토리(Stefan Batory)가 클라우센부르그에 예수회 학원을 설립하는 데 앞장섰다.
1545년에서 1570년 사이에 많은 수의 독일인(Saxons)이 유니테리언 교리의 도입으로 도시를 떠났다. 남은 독일인들은 헝가리인들에게 동화되었고, 도시는 헝가리 귀족과 지식인들의 중심지가 되었다. 1699년 카를로비츠 조약으로 클라우센부르그는 합스부르크 군주국의 일부가 되었다.
1790년부터 1848년까지, 그리고 1861년부터 1867년까지 클라우센부르그는 오스트리아 제국 내 트란실바니아 공국의 수도였으며, 도시 역시 트란실바니아 의회(diets)의 중심지였다. 1830년 초부터 이 도시는 주로 헝가리 민족 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1848년 혁명 당시 클라우센부르그는 폴란드 장군 요제프 벰(Józef Bem)의 지휘 아래 헝가리군에 의해 12월에 점령되었다.
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탄생하고 클라우센부르그와 트란실바니아는 다시 헝가리 왕국으로 통합되었다. 이 시기 동안 콜로즈바르는 왕국의 가장 크고 중요한 도시 중 하나였으며, 콜로즈 주에 포함되어 있었다. 1897년 헝가리 정부는 헝가리어 명칭만을 허용하도록 결정하고 공식 정부 문서에 도시 이름을 독일어, 또는 루마니아어로 표기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1872년에는 클루지에 헝가리어만을 사용하는 대학교가 설립되었고, 이에 루마니아인이 불만을 가지기 시작했다.
제1차 세계 대전 후, 클루지는 트란실바니아의 나머지 지역과 함께 루마니아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1940년 클루지는 제2차 비엔나 심판을 통해 헝가리로 반환되었으나, 1944년 10월 이 도시의 헝가리군은 소련군과 루마니아군에 패했다. 클루지는 1947년 파리 조약에 의해 루마니아로 복원되었다.[4]
관광[편집]
클루지나포카에는 국립 트란실바니아 역사박물관, 민족 박물관, 클루지나포카 미술관, 약학 박물관, 물 박물관, 바베슈-볼랴이 대학의 여러 박물관(대학 박물관, 광물 박물관, 고생물 박물관과 성층 박물관, 철자학 박물관, 식물 박물관, 동물학 박물관) 등 다양한 박물관이 소재하고 있다.
여러 종류의 축제가 클루지나포카에서 개최되고 있다. 매년 6월 21일에는 프랑스 문화 센터가 주최하는 음악 축제가 클루지나포카를 포함한 루마니아의 몇 개 도시에서 열린다. 소메슐미크강 하구에서는 여름 내내 다양한 맥주 축제를 개최하는데, 그중에는 독일의 옥토버페스트를 모델로 한 셉템버페스트(9월 축제)가 유명하다.
루마니아 영화진흥협회가 주관하고 있는 트란실바니아 국제영화제(TIFF)는 루마니아 최초의 국제영화제로 2001년부터 클루지나포카에서 개최되고 있다. 2009년부터는 희극분야 영화제인 '코미디 클루즈'도 개최되기 시작했다. 음악 부문에서는 루마니아의 중요 클래식 음악 행사인 '토암나 무지칼러 클루제아너(Toamna Muzicală Clujeană)'가 1965년부터 트란실바니아 주립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의해 개최되고 있으며, 1991년부터 모차르트 페스티벌도 해마다 열린다. 1992년부터 루마니아 국립오페라가 주관하는 '오페라 볼(Opera Ball)', 2007년부터 헝가리 극장에서 열리는 국제 영화 교류 축제 역시 클루지나포카를 대표하는 문화 축제다.[5]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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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 ↑ 〈클루지나포카〉, 《위키백과》
- ↑ 〈클루지나포카(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 〈클루지나포카〉, 《나무위키》
- ↑ 〈Cluj-Napoca〉, 《요다위키》
- ↑ 〈클루지나포카(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 〈클루지나포카〉, 《위키백과》
- 〈클루지나포카〉, 《나무위키》
- 〈Cluj-Napoca〉, 《요다위키》
- 〈클루지나포카(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클루지나포카(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