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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린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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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린토스
코린토스 위치

코린토스(그리스어: Κόρινθος)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이자 현대 도시이다. 그리스 중남부 펠로폰네소스반도에 있으며, 아테네로부터 78km 남서쪽이고 사로니코스만코린토스만을 가르는 코린토스 지협에 있다. 영어로 코린트(Corinth)라고도 한다.[1]

개요[편집]

코린토스는 그리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반도를 잇는 코린트 지협(地峽)에 있는 도시이다. 그리스 남북육상교통의 요지인 동시에 이오니아해에게해를 잇는 해상교통의 요지였다. 호메로스의 시에는 중요한 도시로 되어 있지 않으나, 시의 유적에서 미케네 시대 전기의 도기(陶器)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먼 옛날부터 번영해 온 도시임을 알 수 있다. 시는 지리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상업, 무역으로 크게 번영을 누려 왔으며, 그리스의 여러 폴리스가 쇠퇴한 헬레니즘시대에도 상업도시로서 번성하여 ‘헬라스의 별’이라고 일컬어졌다. 일찍부터 그리스 제일의 도기제조 중심지가 되어 코린트식 도기를 생산하였으나, 나중에는 그 지위를 아테네에 빼앗겼다. 교통의 요지였기 때문에 고대에는 여러 차례 국제회의의 개최지가 되었다. BC 146년 로마가 이를 철저히 파괴해버렸는데, BC 44년에 재건되어 다시 번영하였으며, 신약성서에도 그 이름이 나온다. 그러나 521년에 지진으로 큰 타격을 입어 중세 이후 쇠퇴하다가 1858년 지진으로 다시 파괴되었다. 현재의 새 코린토스시는 구(舊)코린토스시의 북동쪽 약 5km의 지점에 있으며 코린토스현의 주도이다. 코린트만의 연안에 위치하며 아테네 등의 도시와 철도, 간선도로로 연결되어 있다. 자체자원은 거의 없으며, 카란토(코린토스의 건포도), 올리브유, 견직물, 펠로폰네소스의 북동부에서 생산되는 곡류 등을 수출하고 있다.[2]

역사[편집]

코린토스 지역에 사람이 거주한 것은 기원전 3000년 무렵부터였다. 코린토스가 상업 중심지로 발달하며 도시를 이룬 시기는 기원전 8세기 초였다. 기원전 8~7세기 코린토스의 지배자는 바키아드 가문이었다. 이후 기원전 657~550년에는 바키아드 가문으로부터 권력을 빼앗은 키프셀루스 가문이 대를 이어 참주로서 다스렸다.

기원전 550년에 과두 지배체제가 참주 정치를 대체했다. 코린토스는 스파르타 동맹에 가담했고 그 일원으로서 페르시아 전쟁과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404)에 참여했다. 코린토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타가 아테네를 물리친 이후에는 스파르타와 결별하고 독자 노선을 걸었다.

그리스를 정복한 마케도니아는 코린토스의 아크로폴리스인 아크로코린토스를 수비대 진지로 삼아 기원전 243년까지 유지했다.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기원전 280년에 마케도니아의 뒤를 이은 안티고니드 마케돈에 대항하기 위해 제2차 아카이아 동맹을 결성했다.

코린토스는 다시 도시국가의 지위를 되찾은 뒤 이 동맹에 가담했다. 기원전 146년에 코린토스는 로마군에 의해 정복되었다.

기독교 신약성서 중 고린도서의 고린도가 이 도시이다. 사도 바울은 제2차 선교여행(49~52) 때 고린도에 교회를 세웠고 제3차 선교여행(53~56) 때 소아시아(현재 터키의 아나톨리아)에서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가 고린도서 전서와 후서로 편집되었다.

당시 코린토스는 기원전 44년 로마제국의 식민지로 재건된 이후 아카이아 주의 행정 중심지로 상업적으로도 번창하고 있었다. 코린토스는 지중해 연안의 해상 교통〮무역의 중심지였고 2만 명 수용 규모의 야외극장이 있었다. 아크로코린토스라고 불린 코린토의 아크로폴리스의 아프로디테 신전엔 여사제(창녀)들이 많았다.

코린토스는 근대 이후 몇 차례의 지진과 화재로 파괴와 재건을 거쳤다. 1858년 강도 6.5 지진으로 도시가 완전히 파괴되었다. 네아 코린토스(뉴 코린토스)가 구도시의 북동쪽 코린트만의 해변에 건설되었다. 1928년에 6.3도의 지진이 네아 코린토스를 파괴했고, 도시는 그 자리에 재건되었다. 1933년에는 대화재가 도시를 불태웠고 코린토스는 다시 재건되었다.[3]

경제[편집]

코린토스는 그리스의 주요 공업도시이다. 코린토스 정유단지는 유럽에서 손꼽히는 규모이다. 다른 주요 생산 품목은 세라믹 타일, 구리전선, 대리석, 육류가공, 가죽, 의료장비, 미네랄워터, 음료, 석유화학제품, 소금 등이다. 2005년 이후 산업 활동이 저조해졌고, 정유, 섬유, 육류가동 등 활동이 감소했다.

교통[편집]

코린토스는 펠로폰네소스반도그리스 본토의 길목에서 교통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코린토스는 칼라마타-트리폴리-코린토스 자동차 도로(모레아스 자동차도로 A7)를 통해 아테네로도 연결된다. 칼라마타는 펠로폰네소스반도 남서쪽에 있는 해안도시이고, 트리폴리는 반도의 중앙에 있다. 2005년에 기차역이 들어서면서 아테네 교외 철도망과 연결되었다.

지중해에 접한 코린토스항은 운하를 통해 에게해로 이어진다. 1893년에 개통된 코린토스운하는 길이가 6.4km인데 폭이 약 21m에 불과해 현대 선박은 통행하지 못한다. 이에 따라 화물운송에 기여하는 대신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사도 파울로스와 코린토스[편집]

한글 성서에서는 코린트를 고린토(공동번역성서/대한성서공회), 고린도(개역한글성서/대한성서공회), 코린토(천주교 '성경'/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로 음역하고 있으며, 사도 파울로스 활동 무대로 유명하다. 문화인류학자이자 그리스도인인 이희수 한양대 교수에 따르면, 사도 바울은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반유대주의 정책(45년)에 따라 코린트로 이주한 2만 5천 명 유대인에게 전도했으며, 전도 기간 동안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를 작성하였다. 사도 바울은 2년간 연금 생활을 마치고 로마, 고린토, 테살로니카 등에 세운 그의 교회들을 돌아본 것으로 추정한다.

코린토스전쟁[편집]

코린토스전쟁은 BC 395∼BC 386년에 코린토스, 아르고스 따위가 스파르타와 싸운 전쟁이다. 코린트전쟁이라고도 한다. BC 404년 펠로폰네소스전쟁에 이겨 그리스의 패권을 쥔 스파르타는, 그리스의 여러 폴리스(도시)를 강압적으로 지배하려 하였다. 이러한 스파르타의 지배에 불만을 품은 아테네·코린토스·아르고스가 동맹(同盟)하여 페르시아의 지지를 받으며, BC 395년 스파르타에 반기를 들었다. 같은해에 스파르타군은 보이오티아의 할리알토스에서 패하여, 장군 리산드로스가 전사하는 등, 동맹군으로부터 많은 피해를 입었다. 스파르타는 장군 안탈키다스를 페르시아에 파견,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를 설득하여 화약(和約)을 맺었다(BC 386). 이 화약을 '안탈키다스의 화약', 또는 페르시아왕이 요구하는 조건으로 화약이 맺어졌다 하여 '대왕의 화약'이라고도 한다. 이 화약으로 그리스의 여러 폴리스는 자치(自治)를 인정받았으나, 소아시아의 그리스 식민도시는 페르시아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4]

코린토스운하[편집]

코린토스운하(영어: Corinth Canal) 또는 코린트운하그리스코린토스만에게해사로니코스만을 연결하는 운하이다. 코린토스 지협을 따라 1881년부터 1893년까지 6.3km의 길이로 건설되었다. 코린토스운하는 세계 3대 운하 중 하나로, 운하를 이용할 경우 펠로폰네소스반도를 돌아가는 것보다 700km 정도 운항 거리가 줄어든다. 하지만 운하의 바닥 너비 21m, 표면 너비 25m, 깊이가 8m로 규모가 작기 때문에 운하를 이용하는 선박은 대부분 관광용 여객선이다.

코린토스운하는 그리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반도 사이의 지협부를 흐르는 운하이다. 코린토스운하는 파나마운하, 수에즈운하와 더불어 세계 3대 운하로 불리우며, 1893년 10월 28일 개통되었다. 로마제국 네로황제 때 노예들을 동원한 운하건설이 황제의 죽음으로 완성되지 못하다가 1881년부터 1893년까지 12년에 걸쳐 프랑스 기술진에 의해 완공하였다. 단단한 암석을 깊이 80m로 깎아서 만든 코린토스운하는 총 길이 6,343m, 길이 6.5km, 너비 25m, 깊이 8m의 규모로, 3개의 다리가 걸려 있으며 이곳을 지나는 배는 1~3노트의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견인선에 끌려 운하통과한다. 운하의 벽면이 석회암이기 때문에 엔진 진동에 무너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옆의 암벽은 해발 90m에 이르고 거의 수직으로 80°의 각도를 이루고 있다. 2009년 통계로 1년에 12,500척의 선박통과한다. 그러나 운하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운하를 이용하는 선박은 대부분 관광용 여객선이다. 운하의 수위가 일정하여 갑문이 없으나 약간의 조류에도 항행에 주의가 필요하다. 운하의 수면 위에 다리를 놓았으나 철도교는 폐쇄하였다.[5]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코린토스〉, 《위키백과》
  2. 코린토스(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코린트〉, 《요다위키》
  4. 코린토스전쟁(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5. 코린토스 운하〉, 《위키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동남유럽 같이 보기[편집]

동남유럽 국가
동남유럽 도시
동남유럽 지리
동남유럽 섬
동남유럽 문화
동남유럽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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