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흐리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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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흐리드호(영어: Lake Ohrid, 마케도니아어: Охридско Езеро, 알바니아어: Liqeni i Ohrit)는 북마케도니아와 알바니아의 경계 지역에 위치한 호수이다. 면적은 358km², 전체 면적 가운데 248km²는 북마케도니아에, 110km²는 알바니아에 위치한다. 최대 길이는 30.4km, 최대 너비는 14.8km이며 해발고도는 693m, 평균 수심은 155m, 최대 수심은 288m, 길이는 87.53km(북마케도니아: 56.02km, 알바니아: 31.51km)이다.[1]
개요[편집]
오흐리드호는 북마케도니아의 남서부와 알바니아의 동부 사이의 산악 국경에 걸쳐 있는 호수이다. 유럽에서 가장 깊고 오래된 호수 중 하나이며, 200종 이상의 고유종이 서식하는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독특한 수생 생태계를 보유하고 있다. 동쪽으로 약 1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프레스파호와는 표고차가 150m 정도에 달한다. 프레스파호에서 흘러나온 물은 카르스트 지형을 띤 대지를 거쳐 오흐리드호 방향으로 흐른 다음에 알바니아에서 흑드린강을 거쳐 아드리아해로 흘러간다. 호수는 연안에서 흘러들어오는 물과 호수 바닥에서 솟아오르는 샘물로 가득 차나 투명도가 뛰어나게 높아 최대 20m에 달한다. 잉어 ·장어 ·송어 등이 잡히며, 어업은 부근 주민의 중요한 생업이다. 호수는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하고, 호안의 여러 도시 사이를 기선이 왕래한다. 오흐리드호와 인접한 주요 도시로는 북마케도니아 오흐리드, 스트루가, 알바니아 포그라데츠가 있다. 호수 주변에 위치한 습지는 펠리컨, 오리, 고니, 독수리를 비롯한 여러 철새들이 겨울을 보내는 곳이다. 알바니아에서는 호수의 해안 부분이 자연보호구역으로 관리되고 있다. 북마케도니아에서는 호숫가의 일부가 갈리치카 국립공원의 일부이다. 북마케도니아의 오흐리드호 쪽은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1980년에는 오흐리드의 문화 및 역사 지역도 포함하도록 확장되었다. 2014년 알바니아와 북마케도니아 사이의 오흐리드-프레스파 국경 보호구역이 유네스코 세계생물권 보호구역 네트워크에 추가되었다. 알바니아의 오흐리드호 쪽도 201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북마케도니아 쪽은 2021년에 보호 람사르 사이트로 지정되어 선포를 위한 9가지 기준을 모두 통과했다.[2][3]
유산[편집]
오흐리드 호숫가에 있는 오흐리드시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인간의 거주지 중 하나이다. 주로 7세기에서 19세기 사이에 건설된 이 도시에는 슬라브족(Slav) 수도원 중에서 가장 오래된 성 판텔레이몬(St Pantelejmon) 수도원을 비롯해 11세기부터 14세기 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비잔틴 양식의 성상(聖像)들이 800개 이상 존재한다. 이 성상들은 모스크바의 트레티야코프 미술관(Tretiakov Gallery)에 이어 세계 최고의 컬렉션으로 꼽힌다. 문자, 교육, 슬라브 문화, 이 모든 것들이 7세기부터 19세기 사이에 오흐리드에서 퍼져 나갔다. 귀중한 사본과 다른 희귀본들이 있는 이 도시는 발칸반도의 이 지역뿐만 아니라 슬라브 어를 사용하는 모든 국가의 역사에서, 그리고 세계사와 세계 문학에서 대단히 중요한 문화의 중심지이다. 빼어나게 아름다운 자연 속에 자리 잡은 도시와 역사 문화 지역은 슬라브 민족의 고대 도시 건축물들이 탁월하게 보존되어 가장 완벽한 조화를 보여 준다.
수많은 선사시대의 고고학 유적을 비롯해 청동기시대 유적과 헬레니즘 시대의 유적들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는 오흐리드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인간 거주지 중 하나이다. 5,000여 년 전의 물질 문화를 보여 주는 흔적들을 간직한 이곳은 고고학의 진정한 보물 창고라고 할 수 있다. 호수 주변은 마법의 고고학 나라로 칭할 만한 곳으로, 신석기시대부터 중세 말까지의 고고학 유적이 250곳 이상이나 발굴되었다.
현재 오흐리드시 한가운데에 있는 고대 도시 리흐니드(Lihnid)는 이후 이것을 계승한 도시들만큼이나 중요하고 풍요로운 도시이다. 6~9세기에 고대의 리흐니드가 중세의 오흐리드로 변하면서 발칸 반도에서 가장 중요한 중세 도시 중 하나가 탄생했다. 성 클레멘트(St Clement)와 성 나움(St Naum)의 작품에 들어 있는 오흐리드의 사가(saga, 북유럽의 산문 문학)를 보면, 슬라브 문자와 슬라브 문화의 탄생에 대한 기억을 엿볼 수 있다. 성 클레멘트는 이 도시의 수호자로 추앙받고 있으며, 886년부터 916년까지 30여 년간 그의 노력으로 클레멘트 슬라브 대학이 설립되었다.
먼 지질학적 시대에 지각 이동의 결과로 생겨난 오흐리드 호수의 이중 능선 아래쪽 기슭에 옛 시가지가 있는데, 이곳에서 9~14세기에 건축된 수많은 성당과 소예배당을 비롯해 고대 사원과 바실리카의 유적이 발견되었다. 성 클레멘트가 플라오슈니크(Plaosnik)에 세운 고대 슬라브 수도원인 성 판텔레이몬 수도원은 2002년 8월 11일에 다시 축성(祝聖)되었는데, 이날은 최초의 슬라브인 주교(893)이자 마케도니아 정교회의 개척자였던 성 클레멘트의 유물이 오랜 세월이 흐른 끝에 이 사원에 반환된 날이다.
호수 인근의 오흐리드 산악 지대 기슭에 있는 성 소피아 대성당(cathedral church of St Sophia)에 대한 고고학 발굴 작업으로 이 성당이 초기 기독교 바실리카 건물의 기초 위에 건축되었고, 레오(Leo) 대주교 시절(1037~1056)에 재건축되었음이 밝혀졌다. 14세기의 가장 중요한 화가 중 한 명인 테오라니우스(Theoranius)의 이름이 성 소피아 성당 1층의 「다윗의 회개(Repentance of David)」라는 프레스코화에 그려진 ‘천사장의 칼(archangel’s sword)’에서 발견되었고, 오흐리드에 있는 다른 성당들의 채색 프레스코화와 성상들에서도 발견되었다. 성 클레멘트 성모 교회(St Clement’s Church)의 프레스코화들은 주로 인물 초상에서 개인적인 특징을 강조하려고 했으며, 일률적인 성상 화풍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을 분명히 하려는 화가들의 경향이 뚜렷이 보인다.[4]
오흐리드 지역의 자연 유산 및 문화 유산[편집]
총면적 94,729ha를 포괄하는 복합유산인 오흐리드 호수(Lake Ohrid)는 1979년에 처음 자연보존 가치를 인정받았고, 1년 뒤에는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등재되었다. 이때 등재된 지역은 북마케도니아 공화국에 속한 호수의 일부였다. 이 유산은 2019년 확장되어 알바니아 공화국에 있는 오흐리드 호수의 나머지 부분까지 포함하게 되었다.
오흐리드호는 최상의 자연현상으로 제3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수많은 고유종과 담수 유존종 동식물을 위한 서식처이다. 구조적 기원(tectonic origin)으로 생성된 오흐리드 호수는 대략 2백만 년에서 3백만 년 전부터 이 자리에 있었다. 빈영양호(oligotrophic lake, 식물성플랑크톤이 적게 살고 수질이 오염되지 않은 맑은 호수나 연못) 속에는 조류, 와충강 편형동물(turbellarian flatworm), 달팽이, 갑각류 등이 살고 있으며, 이 호수에서만 사는 200종 이상의 동식물과 2종의 송어와 17종의 고유종 어류, 그리고 다양한 조류가 있다.
오흐리드 호숫가에 있는 오흐리드시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인간 정주지 중 하나이다. 주로 7세기에서 19세기 동안 건설된 이 도시에는 슬라브족(Slav) 수도원 중에서 가장 오래된 성 판텔레이몬(St Pantelejmon) 수도원이 있고 11세기부터 14세기 말까지 조성된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잔틴 양식의 성상(聖像)들이 800개 이상 있다. 오흐리드의 건축물들은 유럽 내 고대 도시 건축물 가운데 보존 상태가 우수한 완벽한 앙상블로 손꼽힌다. 슬라브 문화는 오흐리드에서부터 유럽의 여러 지역으로 전파되었다. 오흐리드의 구시가에서 이루어진 고고학 발굴 조사로 지금까지 7개의 바실리카가 발견되었다. 이 바실리카 건물들은 4세기, 5세기, 6세기 초 사이에 건축되었으며 의심할 여지없는 리크니도스(Λυχνιδός, Lychnidos, 오흐리드의 옛 이름)의 비상과 영광을 나타내는 건축적, 장식적 특징을 보인다. 모자이크 바닥으로 강조된 초기 기독교 바실리카와 함께 도시 건축물들은 다수의 고고학 유적지 덕분에 더욱 중요성이 강화된다. 오흐리드 구도시의 건축물과 관련해서 특히 석조 건축 유산에 주목해야 한다. 오흐리드의 전통적 영향은 18세기와 19세기에 이르는 오스만 후기 시대의 주거용 도시 건축물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한편 이 지역은 건축을 하기는 제한적인 부지였으므로 매우 좁은 도로망이 형성되어 있다.
6세기 중반 오흐리드호 서쪽의 린 반도(Lin Peninsula)에 건축된 초기 기독교 린 교회(Early Christian Lin church)는 건축적 형태, 모자이크 장식의 바닥도 그렇지만 아마도 교회의 전례에 있어서도 오흐리드 마을의 바실리카들과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스트루가(Struga) 마을은 오흐리드 호수의 북쪽을 따라 있지만 마을 사람들들은 호수에서 흘러나오는 츠른 드림 강(Црн Дрим, 흑드린강) 유역에 집중해서 살았다. 스트루가는 호숫가를 따라 나무 기둥 위에 지은 호상(湖上) 가옥들이 있는 여러 어촌 마을과 관련이 있다. 방대한 규모의 고고학 유적지는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 마케도니아헬레니즘 시대, 로마시대, 중세 초기의 모습을 입증한다. 호수의 서쪽 가장자리에도 선사시대 말뚝 위에 세운 호상 가옥 주거지와 비슷한 주거지가 있었다. 그리고 유산의 문화적, 물질적, 정신적 유산의 질적 수준과 다양성과 함께 잘 보존된 자연적 가치가 이 지역의 진정성을 더한다.[5]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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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 ↑ 〈오흐리드호〉, 《위키백과》
- ↑ 〈오흐리드호(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 〈오흐리드 호〉, 《요다위키》
- ↑ 〈오흐리드〉, 《네이버 지식백과》
- ↑ 〈오흐리드 지역의 자연 유산 및 문화 유산〉, 《유네스코와 유산》
참고자료[편집]
- 〈오흐리드호〉, 《위키백과》
- 〈오흐리드 호〉, 《요다위키》
- 〈오흐리드호(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오흐리드〉, 《네이버 지식백과》
- 〈오흐리드 지역의 자연 유산 및 문화 유산〉, 《유네스코와 유산》
같이 보기[편집]
동남유럽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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