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미아호
우르미아호(페르시아어: دریاچه ارومیه , 아제르바이잔어: اورمو گؤلو, 영어: Lake Urmia)는 이란의 북서쪽에 있는 염호로 터키와 이란의 국경 가까이에 위치한다. 호수의 면적은 약 5,200km², 길이는 140km, 너비는 16km, 최대 수심 15m, 호면 고도 1,275m이다. 우르미아호는 중동에서 가장 큰 호수이고 세계에서 6번째로 큰 염호였다. 기후 변화와 무리한 댐 건설로 호수는 2017년 기준으로 이전 면적의 90% 이상을 상실하고 소멸되어 가고 있다.[1]
개요[편집]
우르미아호는 호수 동쪽의 동아제르바이잔 주와 호수 서쪽의 서아제르바이잔 주 사이에 있으며 이 호수와 모습이 비슷한 카스피해에서 남서쪽으로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배수구가 없는 내륙호로 강물이 흘러드는 겨울과 봄, 그리고 건기인 여름 등 계절에 따라 호수의 면적이 달라진다. 염분은 15∼23%로 높으며, 어패류는 살 수 없다. 우르미아호는 이란의 환경부에 의해 국립 공원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보존 노력이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이 호수는 60% 가량 줄어들었고, 앞으로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 아랄해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있는 것이다. 이에 우르미아와 타브리즈의 시민들이 이란 정부에게 조치를 취하라는 시위를 열었는데, 평화 시위임에도 이란 경찰이 가혹히 진압하며 국제 사회의 지탄을 받았다. 2019년 4월에 갑자기 수량이 5배나 불어났는데, 그 이유가 바로 50년 만에 300mm가 넘는 비가 이란 북부에 쏟아지면서 이란 북부 전역에 홍수가 발생했고, 딱히 그렇다 할 하수시설이 없는 이란에서는 자연스럽게 물이 강줄기를 타고 우르미야호로 흘러갔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비가 계속 온다는 보장도 없는 것이고, 결국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라고 볼 수 있다. 계속 말라서 현재는 이란 환경부 측이 보호하고 있다. 그래도 아랄해보다는 상황이 나아 앞서 언급한 폭우 이후로 육지와 연결되었던 카부단 섬이 다시 섬이 되는 등 그럭저럭 전성기 면적의 70% 정도는 유지되고 있다. 다만 수심이 얕아 수중 생태계의 다양성이 저하되긴 했다. 2021년엔 2천500㎢로 줄어들었다는 통계가 있다.[2][3]
명칭[편집]
우르미아호 고대의 이름은 마티에네호(영어: Lake Matiene) 였으며 1930년대 이후 레자 샤 팔라비 황제의 이름을 따서 레자이에호(페르시아어: دریاچه رضائیه)로 불렸으나,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에 의해 이전 이름으로 되돌아갔다. 명칭은 구약 예언자 예레미야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호반 도시인 우르미아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다수설이다. 아람어로 '우르'는 도시, '미아'는 물을 의미한다.
우르미아[편집]
우르미아(페르시아어: ارومیه 오루미예, 아제르바이잔어: Urmu, Urumiyə, Urmiye, Wurmê, 쿠르드어: Wirmê, Urmîya, 시리아어: ܐܘܪܡܝܐ)는 이란 북서부에 위치한 도시로 아자르바이잔에가르비주의 주도이며 인구는 871,204명(2006년 기준)이다. 높이는 해발 1,330m이며 우르미아호 서안에 위치한다. 팔라비 왕조 시절인 1925년부터 1979년까지는 레자 샤 팔라비 황제의 이름을 딴 레자이예(رضائیه)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기도 했으며 이란에서 인구가 10번째로 많은 도시이다. 도시 이름은 수메르어로 "도시"를 뜻하는 단어인 "우르"("ur")와 시리아어로 "물"을 뜻하는 단어인 "미아"("mia")의 합성어로, 정확히 말하자면 "물의 도시"를 뜻한다. 이는 도시의 모습이 호수와 접해 있고 강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아제르바이잔인(아제리인)이 다수를 차지하며 쿠르드인과 아시리아인, 아르메니아인 소수가 거주한다. 아제르바이잔어(아제리어)를 구사하는 인구가 가장 많으며 그 다음으로는 쿠르드어, 페르시아어 등을 구사하는 인구가 많다.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인 자라수슈트라가 태어난 곳으로 알려져 있다.[4]
우르미아는 문화적으로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쿠르드, 아시리아 문화의 접경지이고 자지라 평원, 아나톨리아 고원, 이란 고원을 이어주는 교통로 상에 위치했기에 먼 옛날부터 도시가 있었다. 16-18세기에는 오스만 제국가 사파비 왕조를 공격할 때에 타브리즈와 함께 종종 점령했으나 결국 이란 수중으로 남았다. 중세 시기까지 중소 도시였지만 17-19세기 아프샤르 부족의 우르미아 칸국이 세워지며 발전하였고 1795년 아가 모하마드 칸이 대관식을 치르기도 하였다. 20세기 초엽 우르미아는 주민의 40%가 아시리아 / 아르메니아 계일 정도로 기독교세가 강한 도시였고, 따라서 19세기 서방 선교사들의 이란 지역 첫 선교 대상지였다. 다만 1차 대전 중인 1915년과 1918년 오스만 제국군이 점령하여 기독교도들을 학살하거나 추방한 결과 현재는 약 5천명 만이 남아있다. 유대인 역시 다수 거주했으나 1940년대 페르시아 침공과 마하바드 공화국 설립 등의 혼란기에 이스라엘로 이주하였다. 따라서 현 주민의 대다수는 아제리인이고 그외에 페르시아인, 쿠르드인, 아시리아인, 아르메니아인이 거주한다. 다양한 민족과 함께 이란의 주요 교육 도시 중 하나로, 시내에는 우르미아 대학교와 말레크 아슈타르 대학교 및 이슬람 아자드 대학교의 우르미아 캠퍼스 등 16개의 대학이 있다. 고지대에 위치하여 기후는 여름에도 35도를 잘 넘지 않고 겨울에는 영하 15도까지 내려가는 등 서늘한 편이다.[5]
이란[편집]
이란(페르시아어: ایران)은 서아시아의 이슬람 공화국이다. 정식 국명은 이란 이슬람 공화국(페르시아어: .جمهوری اسلامی ایران )이다. 북서쪽으로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과 접경하고 있고, 북쪽으로는 카스피해가 있으며 북동쪽에는 투르크메니스탄, 동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이 있다. 남동쪽에는 파키스탄이 자리하며, 남부 해안선을 따라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이 있으며 서쪽으로는 튀르키예(TURKEY)와 이라크와 접경하고 있다. 서아시아에서는 2번째로 거대한 국가이며, 수도이자 최대 도시는 테헤란이다. 이란은 대통령제 민주주의를 가미한 신정 국가로, 국가의 모든 권력이 종교적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에게 집중되어 있다. 현재 이란의 아야톨라는 1989년 이래 호메이니의 뒤를 이어 오른 하메네이이다. 이란의 경제는 중앙계획의 국유 석유회사와 국유 기업, 농촌지역의 농업 및 소규모의 상업, 벤처에 의한 서비스업 등의 민영 기업으로 이루어져 있는 혼합경제며, 전체 경제 비중에서 약 3분의 2가 국영 기업의 몫이다. 석유개발 이전에는 농업이 주요산업이었으며, 공업은 페르시아융단을 생산하는 전통적 수공업이 있을 뿐이었으나 정부는 이전부터 줄곧 시장화 개혁을 행하여, 석유에 의존하는 이란 경제의 다각화를 도모하여, 수익을 자동차 공업, 우주항공 산업, 가전 제조업, 석유화학 공업, 핵 산업 등 타 부문에 분산 투자하고 있다.
이란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들의 발상지이다. 기원전 2800년경 엘람 왕국들이 세워지기 시작하였고, 기원전 700년경에 이란계 메디아인들이 이란 유역을 통합하는 데에 성공하였으며 기원전 6세기경에 키루스 대제가 아케메네스 제국을 건설하면서 그 국력의 정점을 찍었다. 당시 아케메네스 제국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제국들 중 하나였기도 했다. 그러나 아케메네스 제국은 기원전 4세기경, 알렉산드로스 왕에게 패퇴하면서 멸망하였고, 그 자리에 여러 그리스식 국가들이 세워지면서 쪼개지게 된다. 이란은 현재 지역강국이자 중견국이며, 지리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란은 UN, ECO, OIC, OPEC의 창립회원국이자, 막대한 양의 원유가 매장되어 있어 이를 통하여 큰 수입을 올리고 있다. 이란에는 세계에서 2번째로 거대한 천연가스 양이 매장되어 있으며, 원유 매장량은 무려 세계 4위에 달하기도 한다. 또한 유구한 역사 덕에 현재 22개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민족적, 언어적, 종교적으로도 굉장히 다원화된 사회를 유지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민족들에는 페르시아인, 쿠르드인, 아제르바이잔인 등이 있다.[6]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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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