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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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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
테헤란 위치

테헤란(영어: Teheran, 페르시아어: تهران)은 이란수도이자 최대도시이다. 테헤란주의 주도이며 인구 1105만 명이다. 이란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써 이란 산업의 절반 이상이 테헤란에 집중되어 있다. 서아시아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지구에서 21번째로 큰 도시이다. 13세기 경 처음 도시로 건설되었고, 카자르 왕조의 아가 모함마드(Aga Mohammad Khan, 재위 1789~1797)에 의해 수도로 지정되었다.[1]

개요[편집]

테헤란은 북부 카스피해 연안을 따라 호상으로 펼쳐져 있는 엘부르즈산맥의 남쪽 경사면에 위치하고, 동쪽으로는 고르간 스텝 지역, 남쪽으로는 카비르 사막 지역과 연결되어 있다. 테헤란은 해발 1200m의 고원(高原)에 위치하고 있다. 1796년 카자르 왕조의 수도가 되면서 발전하였다. 도시명의 유래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이 존재하는데, '따뜻한 곳'이라는 의미를 지닌다는 주장이 있으며, 한편으로는 '끝, 바닥'을 의미하는 페르시아어 타(Tah)와 '산의 경사'를 뜻하는 란(Ran)이 합쳐진 이름이라는 해석도 있다. 테헤란은 13세기 경 처음 도시로 건설되었고, 카자르 왕조의 아가 모함마드(Aga Mohammad Khan, 재위 1789~1797)에 의해 수도로 지정되었다. 페르시아 제국부터 시작해서 세계적으로 유구한 역사로 유명한 이란이지만, 정작 이란의 수도 테헤란은 서아시아국가들의 다른 역사적 수도들에 비하면 수도로서의 역사는 비교적 짧다. 테헤란 지역 자체는 고대부터 사람이 살고 도시가 발달한 곳이었지만, 테헤란보다는 근처에 있던 도시 레이(라이)가 더 유명했다. 레이는 고대 페르시아어나 고전 그리스어로 라가이(Rhagai)라고도 알려졌으며, 고대 메디아 시대부터 중세 셀주크 제국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란 중부 지역의 주요 도시로 기능하였다. 테헤란은 레이 근처에 형성된 소도시였는데, 정작 오늘날에는 레이 지역이 테헤란의 일부로 편입되어 있다. 테헤란은 1905년 이란 입헌혁명과 1979년 이란혁명의 중심지로 기능했다. 테헤란에는 1977년 서울특별시와 이란의 수도 테헤란시의 자매결연을 기념하여 '서울로'가 있으며, 서울에도 '테헤란로'가 있다. 테헤란은 소비도시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바자르를 중심으로 한 구시가는 도매와 소매업이 성행하며, 신시가에는 상업 건물, 대형 쇼핑몰 그리고 퍼서지라 불리는 상가들이 있다. 이란-이라크 전쟁 중에는 스커드 미사일에 의해 많은 피해가 났다.[2]

지리 및 기후[편집]

테헤란은 이란고원의 북서부 해발 1200m 정도의 지점에 있다. 북부에 엘부르즈산맥이 우뚝 솟아 있으며, 이 산맥과 이란의 최고봉인 다마반드산에서 남서쪽으로 66km 떨어진 산기슭에 위치한다. 약 1,700m 달하는 도시의 최북단 경계에 비해 최남단 경계는 약 1,100m로 나타나 남북 지형의 고도 차이가 크다. 이로 인해 도시의 북부에는 높은 고도와 경관을 배경으로 하는 휴양지가 밀집되어 있는 반면, 도시의 남부는 이란 중북부에 자리한 카비르 사막과 이어져있다.

남북의 고도 차이와 산과 사막 사이라는 테헤란의 지리적 특징은 도시의 자연적·사회적 특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역사적으로 도시의 부유한 사람들은 남부의 건조한 사막보다 여름에 기온이 더 시원한 북부의 산지를 선호해왔다. 20세기에 들어 도시의 경계가 확장되면서 북부 산지가 테헤란에 통합되자, 남부와 북부 사이의 경제적 차이가 더욱 명확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테헤란은 대륙성기후 특성을 가진 반건조 기후에 속하며 지중해성기후 강수 패턴을 가지고 있다. 도시의 북쪽은 엘부르즈산맥과 맞닿아 있고, 남쪽으로는 사막과 가까워 지리적 특징에 의해 도시 기후가 결정된다. 테헤란은 전체적으로 도시 북부에 있는 엘부르즈산맥이 카스피해의 습기가 도시에 도달하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에 연중 덥고 건조한 기후를 보여 연평균 기온은 약 17℃이고 연평균 최고기온은 약 23℃, 연평균 최저기온은 약 12℃로 나타난다.

테헤란은 덥고 건조한 여름이 가장 길게 지속되지만 사계절은 뚜렷하게 나타난다. 여름철인 6월부터 9월까지는 평균 기온이 약 28℃에 달해 연중 가장 더운 시기에 속하고, 겨울철인 12월부터 2월까지는 평균기온이 약 5℃로 비교적 온화한 겨울 날씨가 이어진다. 역사상 극한 온도는 최대 43℃에 달한 적이 있으며 영하 20℃를 기록한 적도 있다. 연평균 강수량은 약 230mm이고 겨울인 12월에서 3월까지 가장 많은 강수가 발생하여 연강수량 중 60% 이상이 이 시기에 내린다. 반면 여름인 6월부터 9월까지는 평균 강수량이 8mm에 불과한 건기가 이어진다.[3]

역사[편집]

테헤란이 역사 기록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1세기로, 레이(Ray)의 북쪽에 있는 작은 마을로 묘사되었다. 레이(Ray)는 대표적인 고고학 유적지로, 기원전 6,000년 경부터 정착지였다. 레이는 11세기에 셀주크 왕조의 수도가 되었으며, 1220년 레이가 몽골군의 침공에 의해 파괴된 후, 테헤란은 13세기 초 처음으로 도시로 건설되었다. 13세기 테헤란은 석류로 유명한 시장 마을이었다. 16세기 중엽에는 사파비 왕조의 타흐마스프 1세가 테헤란에 시장과 4개의 문이 있는 성벽을 축조했고, 이후 사파비 왕들은 성채를 비롯한 많은 건축물을 지었다. 이에 테헤란은 점차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고, 지역 수도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18세기 초, 잔드왕조의 카림 칸은 테헤란을 수도로 선포하기 위해, 궁궐과 관청을 건축하라고 명령하였으나 결국 쉬라즈로 수도를 옮겼다. 카자르 왕조의 발족과 함께 1786년 시조 카자르 왕조의 아가 모하마드 칸(Agha Muhammad Khan, 재위 1794~1797)에 의해서 수도로 지정되었다. 이와 같은 결정은 사파비 왕조와 잔드 왕조의 수도였던 이스파한과 쉬라즈 지역의 지역 세력들에 대한 경계의 의미이기도 하였다. 1796년 이후 테헤란 인구는 세 배 이상 증가하여 10년 만에 5만 명에 이르렀다. 인구가 5∼6만으로 증가한 19세기 후반에는 성벽 주위를 15.5km의 크기로 확대되었다. 19세기 후반 근대화의 물결로 테헤란은 본격적으로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나갔다. 테헤란에 기관과 건물, 지역구가 새롭게 건설되는 등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고, 빈곤과 경제 문제 등 테헤란 내 계층화가 시작되었다.

카자르 왕조(1779~1925)의 뒤를 이어 1925년 성립된 팔레비 왕조(1925~1979) 시기에도 테헤란은 수도로 지정되어 성곽을 철거하고 직선도로를 건설하는 등 근대화가 추진되었다. 또한 팔레비 왕조의 중앙집권화 정책이 시작되었고, 도시 중산층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산업화가 촉진되었고, 전국의 교통망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지방 인구 유입으로 팔레비 왕조 성립 당시 30만에 불과했던 인구가 1946년에는 88만, 1966년에는 272만으로 급증하였다. 시가지는 성벽 밖으로 크게 확장되었으며, 흙벽과 골목길로 이루어진 구시가와 밝고 현대적인 유럽풍의 신시가가 큰 대조를 이루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소련군과 영국군이 테헤란에 입성하였고, 1943년에는 연합국 수뇌가 테헤란 회담을 가졌다. 전후,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는 근대화를 추진하기 위해 고레스탄 궁전이나 오울드 테헤란 지역의 건물, 성벽과 성 등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여 많은 건축물이 철거되어 재건축되고, 거리의 모습도 바뀌었다. 바자르도 절반 이하로 축소됐다.

1974년 아시안 게임이 이곳에서 개최되었다. 1970년대 들어 팔라비 왕조가 이란 민족주의를 고취시키고, 대대적인 개발에 착수하며 테헤란을 비롯한 대도시들에는 다양한 건축 사업이 벌어졌다. 1977년 골람레자 닉페이 테헤란 시장이 방한한 것을 기념해 한국은 서울에 테헤란로를 만들고, 이란은 테헤란에 서울로를 만들었다.

1978년 12월 12일 테헤란의 아자디 광장에 2백만 명 이상의 시위대가 군집하였고, 팔레비 국왕인 레자 샤 팔레비(Mohammad Reza Shah, 재위 1941~1979)의 퇴위를 요구하는 시위는 절정에 이르렀다. 레쟈 샤는 1979년 1월 16일 이란에서 도망치고, 1979년 2월 1일 종교지도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테헤란 메흐라바드 국제공항에 도착하면서, 이슬람 공화국이라는 새로운 국가의 장이 펼쳐지게 되었다. 하지만 1980년부터 계속된 8년간의 이란-이라크전쟁으로 인해 테헤란 도시 곳곳에 많은 폐해와 빈곤과 경제적인 쇠퇴를 겪었다. 악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대통령(임기 1989~1997)과 하타미 대통령(임기 1997~2005)의 경제와 정치 개혁 정책으로 1990년대부터 테헤란은 본격적으로 현대화된 모습을 갖추어 갔다.

이란 - 이라크 전쟁에서 스커드 미사일의 표적이 거듭되는 공습도 막대한 피해를 냈다. 동시에 테헤란에는 난민이 모여 혼잡을 빚었다. 이란 - 이라크 전쟁 당시 소련식의 집합 주택이 난립하면서 테헤란은 또한 역사적 건축물을 잃었다. 현재는 50층이 넘는 아파트 등 초고층 건물의 빌딩이 늘고 있다. 높이 435m의 새로운 랜드 마크 밀라드 타워도 지어졌다.[4]

경제[편집]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란의 2008년 도시 GDP는 1270억 달러로 세계 47위이다. 이란 국내 산업의 절반 이상이 테헤란에 기반을 두고 있다. 주요 산업은 자동차 제조, 전자기기 및 부품 제조, 무기 제조, 섬유, 설탕, 시멘트, 화학 등 또한 카펫 제조 및 가구 제조도 활발하다. 테헤란 근교에는 석유 정제소가 위치한다. 파르스 오일(Pars Oil), 스피디(Speedy)와 같은 주요한 석유정제회사가 테헤란에 본사를 두고 있다.

산업 다각화 시도에도 불구하고, 석유산업은 여전히 테헤란을 비롯한 이란의 중심 산업이다. 21세기 초 석유는 이란 외환 수입의 5분의 4를 차지할 정도로 가장 중요한 자원이었다. 테헤란은 이란 무역과 산업의 중심지로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해왔지만, 1978~1979년 이란혁명과 1980년에 시작된 이란-이라크전쟁으로 인해 테헤란의 경제 상황은 악화되었다. 유가하락과 높은 인플레이션 현상, 전쟁과 국내 정치 불안, 그리고 높은 두뇌유출 현상은 이란 경제 상황을 악화시키는 배경이 되었다. 석유산업의 수익으로 공공부문의 투자가 이루어졌으며, 은행과 대기업들이 급격히 성장 하였다.

교통[편집]

철로[편집]

테헤란 중앙역에서 유럽 방면을 포함하여 24시간 열차가 운행되고 있다.

공항[편집]

테헤란 메흐라바드 공항이 도시의 서쪽에 있다. 국내선과 순례자의 공항에서 공군 기지도 겸하고 있다. 시의 남쪽 50km에 테헤란 이맘 호메이니 국제공항이 있고, 거의 대부분의 국제선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지하철[편집]

테헤란 지하철은 1999년에 개통되었으며, 지하철 건설 계획 자체는 1970년대 팔레비 왕조 시절부터 있었지만 1980년대에 이란-이라크 전쟁이 있던 관계로 지하철 공사가 늦어진 것이다. 늦은 시기에 개통된 것을 감안하면 노선망은 제법 잘 갖추어진 편이다. 여타 중동국가의 지하철이 그러하듯이 남성칸 여성칸이 나뉘어 있다. 당연하겠지만 출퇴근시간대에 사람들이 많이 붐비기도 한다. 2021년까지 7호선까지 운영 중이며 장기적으로 11호선까지 건설될 예정이다.

버스[편집]

시장의 주선으로 2008년부터 BRT라는 도로에 버스전용 차선이 만들어지고 거기에 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버스전용 차선은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일반 차량은 전혀 진입되지 않으며, 버스만 도로를 고속으로 주행한다. 현재는 3개 노선에서 버스 정류장은 60개소이다. 아시아 최초였던 트롤리버스도 건재하다.

관광[편집]

중심부인 페르도우시 거리(Ferdowsi Street)에 있는 테헤란 국립보석박물관 역시 테헤란의 주요 관광지다. 광물학과 보석학적 관점에 따르면 보관, 전시하고 있는 유물들 대부분이 세계에서 유일한 것들이며 아주 진귀한 보물이라고 한다. 과거 이란 왕가가 보유했던 보석들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어, 보석을 통해 이란의 역사를 추적해볼 수 있다. 특히 희귀한 보석들은 수많은 지역을 정복한 왕들이 그 지역에 있는 모든 보물들을 빠짐없이 수집하거나 본인의 힘을 과시하기 위하여 거대한 보석을 제작한 것들이다. 이 중에서 '바다의 빛'이라고 불리는 182캐럿의 다이아몬드는 세계에서 가장 큰 핑크 다이아몬드이다.

테헤란에도 유명한 전통시장이 몇군데 있는데, 테헤란 남쪽에 위치한 테헤란 그랜드 바자르는 역사적인 장소로 남아 있어 쇼핑의 장소이자 관광 장소라 할 수 있다. 그랜드 바자르에는 상점 이외에도 모스크, 게스트하우스, 은행 등이 있다. 그랜드 바자르는 그 길이만 10Km가 넘고, 다양한 상품들을 판매한다. 그랜드 바자르에는 융단이나 수공예품 같은 전통 상품 이외에도 시계·보석 기장이 있고 전통음식도 경험할 수 있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테헤란〉, 《위키백과》
  2. 테헤란(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Tehran", Wikipedia
  4. 테헤란〉, 《요다위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페르시아 같이 보기[편집]

페르시아 국가와 도시
페르시아 지역
페르시아 지리
페르시아 문화
페르시아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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