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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루치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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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루치스탄

발루치스탄 또는 발로치스탄(발루치어: بلوچستان, 영어: Balochistan/Baluchistan)은 발루치족이 주로 거주하는 이란고원의 건조한 사막 지대로,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이란에 걸쳐 펼쳐져 있다. 그들은 서기 1000년경에 서쪽에서 들어왔다. 파슈토어, 페르시아어, 브라후이어 등이 이 영역에서 사용된다. 발로치스탄의 남부는 마크란(Makran)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지역의 고유종인 피그미 저보아의 서식 지역이기도 하다. 일부 발루치족파키스탄 중앙정부에 대항하여 발루치스탄 분리독립 운동을 벌이고 있다.[1]

개요[편집]

발루치스탄은 발루치족(발로치, 발루슈)족이 사는 땅이라는 뜻이다. '스탄'은 산스크리트어나 고대 페르시아어로 땅을 의미한다. 영어의 Stand와 같은 어원이다. 오늘날 발루치스탄은 파키스탄령 발루치스탄과 아프가니스탄 남부의 발루치스탄 및 이란 동부의 발루치스탄 지역으로 나뉜다. 주요 도시로는 퀘타, 과다르 등이 있다. 주로 건조한 사막 지대이며 바다와 접해 있지만 역사적으로 항만 배후지가 잘 발달하지 못한 관계로 이웃 신드주, 구자랏주, 오만, 호르무즈해협 지역이 해상무역이 활발한 것과 다르게 해상무역이 빈약한 편이다.

발루치스탄 지역은 이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의 3개국으로 나뉜다. 행정적으로 파키스탄발루치스탄주, 이란시스탄오발루체스탄주, 아프가니스탄 남부의 님루즈, 헬만드, 칸다하르주 등으로 구성된다. 북쪽으로는 카이베르 팍툰크주와 지역, 동쪽으로는 신드주파키스탄, 서쪽으로는 이란의 여러 주와 접한다.[2][3]

역사[편집]

헬레니즘 시대 이후 이 지역에는 기원전 2~1세기 무렵 토하라인에게 밀려나 중앙아시아에서 남하해온 인도-스키타이족이 정착하였으며, 사카스탄 혹은 시스탄이라고 불렸다.

서기 9세기 무렵 이 지역은 이슬람화하고 이란계, 타지크계, 튀르크계, 파슈툰계 여러 왕조들이 이 지역의 영유권을 주장했다. 근대에는 아프가니스탄의 두라니 왕조의 영토였다. 근대 영국이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듀랜드 라인을 만들면서 이 땅을 인도제국의 소유로 넘겨버렸다.

발루치스탄을 두고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은 지금도 역사적인 갈등이 있다.

발루치족의 주요 거주지[편집]

행정구역 상으로는 이란시스탄오발루체스탄주, 파키스탄발루치스탄주, 아프가니스탄님루즈주, 헬만드주, 칸다하르주에 걸쳐져 있다. 파키스탄에 약 820만 명, 이란에 약 150만 명, 아프가니스탄에 약 67만 명이 살고 있다. 발루치스탄 밖에 사는 발루치족아랍에미리트에 약 47만 명, 오만에 약 43만 명, 투르크메니스탄에 약 10만 명, 사우디아라비아에 약 1만 6천 명으로 추산된다.

발루치스탄에는 발루치족 외 다른 소수민족으로 드라비다어족 계열 브라후이족, 아프가니스탄에서 발루치스탄 퀘타로 이주 정착한 하자라족들도 거주한다.

관광[편집]

아프가니스탄 접경 지역보다 여행하기에 위험한 지역이다. 실제로 한동안은 현재의 출국권고~여행금지에 준하는 특별여행경보가 발령되어 있었다. 흔히 위험한 지역으로 알려져있는 카이베르파크툰크와 등 북서부 지역은 훈자 계곡 등 관광 수요가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치안이 유지되고 있으며, 외교부에서도 출국권고(여행금지보다 한 단계 아래)지역으로 지정하고 있다. 하지만 발루치스탄은 이슬람 근본주의, 분리주의, 탈레반 등이 모두 모여있는 지역이다.

2017년 7월 외교부에서 특별여행경보를 발령하여 발루치스탄으로의 여행을 금지해서 2018년 8월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무장 독립운동이 벌어지는 곳이라 2017년 5월 24일에 중국인 교사가 납치되고 고속도로를 공사하던 도중에 인부들이 무장괴한의 총격에 의해 숨지는 사건이 발생되는 등 치안이 매우 불안하기 때문이다.

파키스탄 인권 침해[편집]

국제적으로 묻혀졌지만 발루치인들에 대힌 파키스탄 측의 묻지마 인권 침해가 장난 아니다. 그저 길을 지나가는데 다짜고짜 민간인을 잡아다가 구타와 고문을 벌인다. 한국에 난민 신청을 한 발루치인 무함마드라는 사람은 KBS 다큐멘터리에 나와 독립운동 참가한 적도, 지원도 안했는데 그저 숙부를 만나러 가던 자기와 주변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끌고가 구타와 고문을 했다고 하소연했다.

무고함이 드러나서 석방되었지만 사죄도 보상금도 그 어느 것도 없었고 구타와 고문 여파로 무함마드는 팔과 머리 수술도 받았으며 당시 끌려간 몇몇 사람은 죽어서 끌려가던 걸 보고 도저히 파키스탄에 살 수 없었다고 해외로 나간 것. 한국으로 온 식구를 데리고와 난민신청을 했고 다행히 난민으로 인정받아 한국에서 모두 살고 있다. 그는 한국에서 발루치인들에 대한 인권 침해에 대한 소식을 찾아보기 어려운 걸 아쉽고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라서 안타깝다고 인터뷰했다.

파키스탄[편집]

파키스탄은 인구는 약 225,199,168 명(2021년)으로 세계에서 5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이며, 무슬림의 수는 세계에서 2번째로 많다. 면적은 약 796,095km²로 세계에서 33번째로 거대한 크기이다. 아라비아 해와 오만 만을 따라 1,046km의 해안선을 남쪽에 맞대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인도, 북서쪽으로는아프가니스탄, 서쪽으로는 이란, 북동쪽으로는 중화인민공화국과 마주하고 있으며, 오만과는 해상 국경을 서로 접하고 있다.

파키스탄은 여러 고대 문명들의 발원지로, 8,500년이 넘은 남아시아 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신석기 유적이 발견되기도 하였으며, 청동기 인더스 문명의 태동지이기도 하다. 이후 아케메네스 제국이 등장하였으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잠시 헬레니즘 제국을 통하여 파키스탄 지방을 정복한 이후에는 셀레우코스 제국, 마우리아 제국, 쿠샨 제국, 굽타 제국 등이 연달아 나고 지는 것을 반복하였다.[3] 또한 우마이야 칼리파조, 가즈나 제국, 델리 술탄국, 무굴 제국, 두라니 제국, 시크 왕국 등이 파키스탄 지역을 통치하였으며, 근대기에는 영국 동인도회사의 지배를 받았고 1858년부터 1947년까지는 인도 제국으로 묶여 영국의 통치를 받았다.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점차 인도 제국의 국민들이 자결주의에 눈을 뜨기 시작하자, 파키스탄 지방에서도 무슬림들을 중심으로 파키스탄 운’이 일어나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요구하기 시작하였고, 1946년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1947년 마침내 영국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이루어냈다. 다만 이 과정에서 힌두교가 주축이던 인도와, 이슬람교가 주축이던 파키스탄이 서로 분리독립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강제로 이주하거나 살해당하는 대규모 디아스포라가 벌어지기도 하였다. 파키스탄은 민족적, 언어적으로도 굉장히 다원화된 국가이며, 지리와 야생환경도 다양한 편이다. 파키스탄은 1956년 헌법을 제정하여 이슬람 공화국임을 명시하였으며, 1971년에는 동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이후 방글라데시로 새롭게 탄생하였다. 이후 약 40여 년 동안 파키스탄은 문민 정부와 군부 정권이 서로 번갈아가면서 집권하며 복잡한 정치 체제를 유지하였으며,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속세주의와 이슬람 극단주의가 공존하는 굉장히 미묘한 사회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5] 파키스탄은 2008년에 완전한 문민정부를 선거를 통해 구성하였으며, 2010년에는 주기적인 선거제도를 포함한 의회민주주의 제도를 채택하기도 했다.

파키스탄은 현재 6번째로 거대한 규모의 군대를 갖추고 있으며, 핵보유국이며 핵무기를 다량 보유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개발도상국에 속하며, 그 경제성장률은 세계적으로도 가장 빠른 편에 속한다. 파키스탄은 독립 이후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경제 성장과 벌어지는 빈부 격차, 군부의 권력 확장, 정치적 불안정, 부정부패, 높은 문맹률 등과 관련한 심각한 사회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고심하고 있다. 파키스탄은 UN, 상하이 협력 기구, OIC, 커먼웰스, SAARC, 비동맹 운동의 일원이기도 하다.[4]

아프가니스탄[편집]

아프가니스탄은 내륙국으로 북쪽은 투르크메니스탄·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 북동쪽은 중화인민공화국, 동쪽과 남쪽은 파키스탄, 서쪽은 이란과 맞닿아 있다. 수도는 카불이다. 다민족 국가로서 주류 민족인 파슈툰족을 비롯해 타지크족, 하자라족, 우즈베크인, 아이마크인 등이 거주한다. 역사적으로 중동과 아시아의 여러 지역의 문화가 만나는 곳이었으며, 여러 세기를 거쳐 다양한 민족들의 고향이 되었다.

전략적인 위치로 인해 수많은 군사 활동이 이루어진 곳이 되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정복 세력으로는 알렉산더 대왕, 이슬람 제국, 몽골 제국, 대영제국, 소련, 그리고 현대의 서방 세력에 이른다. 쿠샨 제국, 에프탈 제국, 사만 토후국, 사파르 토후국, 가즈나 제국, 고르 술탄국, 할지 술탄국, 무굴 제국, 호타크 제국, 두라니 제국, 기타 등등의 제국들을 일으킨 민족들의 근원지가 되기도 하였다. 1747년, 아흐마드 샤 두라니는 두라니 제국을 세웠는데, 이 때가 근대 아프가니스탄의 시발점으로 여겨진다.[3] 나중에 두라니 제국의 도읍은 칸다하르에서 카불로 옮겨졌으며, 제국 영토 대부분은 이웃 강국들에게 빼앗겼다. 19세기 말, 영국령 인도 제국과 러시아 제국이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을 벌이는 가운데 아프가니스탄은 두 제국의 완충국으로 전락하였다.[4] 제3차 앵글로-아프간 전쟁 이후 1919년 8월 19일에 이 나라는 대영제국에게서 독립을 쟁취하였다. 자히르 샤의 40년 통치 동안 아프가니스탄은 평화를 유지하였다.

1970년대 말부터 아프가니스탄은 내전 상태에 빠진 상황이였으며, 1979년에 소비에트 연방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2001년 미국 주도로 탈레반을 축출한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외국의 점령을 겪게 되었다. 2001년 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대서양 조약기구 군대로 구성된 국제 안보 지원군(ISAF) 창설을 승인하였다. 아프가니스탄은 후발 개발도상국의 하나로, 농업과 목축업의 의존도가 높다. 현재 해외 원조로 재건되고 있으나 심각한 내부 분쟁을 겪고 있다. 최근에는 1000억 달러 규모의 전국적인 재건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미군 철수 직후 이어진 탈레반의 공격(2021년 탈레반 공세)으로 2021년 8월 15일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정부가 탈레반에 항복하고 대통령 등이 외국으로 도주함에 따라(카불 함락), 아프가니스탄의 대부분은 탈레반에게 권력이 넘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판지시르주에 있는 민병대와 기존 정부군, 부통령 등의 정치가가 합세하여 판지시르 저항군을 결성해 판지시르주에서 탈레반에 대한 조직적 저항을 하며,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미군의 철수를 시작으로 탈레반이 승리하기 시작하고 2021년 탈레반 공세를 마지막으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탈레반의 승리로 끝나고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은 멸망하고 20년만에 아프가니스탄은 탈레반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5]

이란[편집]

이란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들의 발상지이다. 기원전 4000년 경 엘람의 왕국들이 세워지기 시작하였고, 기원전 700년경에 이란계 메디아인들이 이란 유역을 통합하는 데에 성공하였으며 기원전 6세기 경에 키루스 대제가 아케메네스 제국을 건설하면서 그 국력의 정점을 찍었다. 당시 아케메네스 제국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제국들 중 하나였기도 했다. 그러나 아케메네스 제국은 기원전 4세기 경,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패퇴하면서 멸망하였고, 그 자리에 여러 헬레니즘 국가들이 세워지면서 쪼개지게 된다. 기원전 3세기에는 페르시아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그리스인들을 몰아내고 파르티아 제국을 세웠으며, 3세기경에는 파르티아 제국을 계승하여 사산 제국이 새로이 들어섰다. 사산 제국은 이후 약 400여 년 동안 세계적인 제국으로 군림하였다. 7세기에는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인들이 제국을 정벌하였고, 이후 페르시아 지방의 급격한 이슬람화가 진행되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페르시아, 즉 이란 지역은 이슬람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로 번영하면서 이슬람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약 200여 년 동안 여러 무슬림 왕조들이 페르시아 지방을 중심으로 나고 짐을 반복하였고, 나중에는 셀주크튀르크와 몽골인들이 페르시아를 정복하였다. 15세기에는 사파비 왕조가 다시 외세를 물리치고 페르시아 계열의 왕조를 다시 세우는 데에 성공하였으며, 시아파를 페르시아의 중심 교파로 삼는 데에 성공하면서 이후 시아파가 페르시아와 이란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된다. 페르시아는 18세기 나디르 샤의 재위기에 다시 한번 세계적 열강 세력으로 떠오르게 되지만, 19세기에 러시아 제국과의 마찰을 거치며 막대한 영토의 손실을 입기도 했다. 20세기 초에는 페르시아 헌법 혁명이 일어났고, 원유 생산을 국유화하고 독립을 확고히 하려는 과정에서 1953년에 이에 반발한 서구 세력들이 주도한 이란 쿠데타가 일어났다. 이로 인하여 레자 팔라비 국왕의 권위주의 독재가 심각해졌으며, 서양 세계의 정치적 개입은 갈수록 심해져만 갔다. 팔라비 국왕은 1963년에 대규모 서구식 개혁을 실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팔라비 왕조의 부정부패와 서구와의 결탁, 탄압 등에 실망한 국민들이 1979년에 루홀라 호메이니를 중심으로 이란 혁명을 일으키면서 마침내 현재의 이슬람 공화국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란대통령제 민주주의를 가미한 신정 국가로, 국가의 모든 권력이 종교적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에게 집중되어 있다. 현재 이란의 아야톨라는 1989년 이래 호메이니의 뒤를 이어 자리에 오른 알리 하메네이이다. 이란 정치체제는 권위주의로 평가받으며, 국제사회로부터 인권을 탄압하고 시민권을 무시하며, 여성과 아이들의 인권이 열악하며 부정선거가 벌어진다는 내용의 비판도 종종 듣는 편이다.

이란은 현재 지역강국이자 중견국이며, 지리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17] 이란은 UN, ECO, OIC, OPEC의 창립회원국이자, 막대한 양의 원유가 매장되어 있어 이를 통하여 큰 수입을 올리고 있다. 이란에는 세계에서 2번째로 거대한 천연가스 양이 매장되어 있으며, 원유 매장량은 무려 세계 4위에 달하기도 한다. 또한 유구한 역사 덕에 현재 22개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민족적, 언어적, 종교적으로도 굉장히 다원화된 사회를 유지하고 있다.[19] 가장 대표적인 민족들에는 페르시아인, 쿠르드인, 아제르바이잔인 등이 있다.[6]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발루치스탄〉, 《위키백과》
  2. 발루치스탄〉, 《나무위키》
  3. 발루치스탄〉, Wikipedia
  4. 파키스탄〉, 《위키백과》
  5. 아프가니스탄〉, 《위키백과》
  6. 이란〉, 《위키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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