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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볜조선족자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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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볜조선족자치주(延边朝鲜族自治州 , yán biān cháo xiān zú zì zhì zhōu)는 중국 지린성에 속하여 있는 자치주이며 중국 동북지구에 있는 유일한 자치주이다. 연변조선족자치주 또는 간략히 연변이라고도 한다. 위치는 지린성 남부 중국과 북한변경에 있으며 소재지는 옌지이다. 옌볜조선족자치주는 중국의 주요한 목재 산지 중의 하나이며 삼림 피복율이 80.04%이고 옌변림업구는 송화강, 압록강, 두만강, 목단강의 발원지이다.

이 곳은 80만명의 재중동포가 거주하는 중국 최대의 조선족 거주 지역이다. 자치주 전체 인구 가운데 조선족 인구 비율은 36.7%이며, 조선족이 전체인구의 2%에 불과한 둔화 시를 제외한 연변 지역의 조선족 인구비율은 46.5%이다.

개요[편집]

  • 행정 단위: 자치주(自治州)[1]
  • 정부소재지: 옌지시 궁위앤루 2799 (延吉市公园路2799号)
  • 면적: 4만 3300 km²
  • 인구: 208만6600 명(2018년)
  • 주장: 김수호(조선족)
  • 정부 공식 홈페이지: http://www.yanbian.gov.cn/

옌볜조선족자치주 역사는 유구하다. 일찍 2만6,000년 전 구석기 말기에 연변 땅에 ‘안도인’이 활동했고 서기 698년에 진국을 세웠다가 713년에 발해국으로 고쳤다 . 연변이란 단어는 1920년 전후에 나왔는데 이 지역이 3개 나라 접경 지대에 위치해 있고 또 연길 변무 공서의 관할에 속하기에 연변이라고 칭했다고 한다. 일본 제국주의가 중국 동북을 침략한 후, 1934년 12월에 연변을 간도성으로 만들었다. 1945년 8월 일본이 투항한 후 중국 공산당은 연변에 인민 정권을 세우고 간도성 정부를 설립하였으며 같은 해 11월에 연변 행정 독찰 전원 공서(延邊行政督察電援公署)로 개칭하였다. 1948년 3월에 연변 전원 공서를 성립했다가 1952년 9월 3일 민족구역자치를 실시하면서 연변 전원 공서를 철폐하고 연변조선민족자치구를 성립하였다. 1955년 12월에 연변조선족자치주로 개칭하고 아래에 1개 시, 5개 현을 두었다. 1958년 돈화현이 연변에 획분되어 들어왔고 1965년 도문시가 설립되었다. 1985년부터 차례로 돈화(敦化), 용정(龍井), 훈춘(暈瑃), 화룡(和龍)현이 시로 되었는데 지금 연변조선족자치주에는 연길, 도문(圖門), 돈화, 훈춘, 용정, 화룡 6개 시와 왕청, 안도 2개 현이 소속되어 있고 수부는 연길시이다.[2]

지리[편집]

연변조선족자치주는 길림성 동부에 위치해있는데 북위 41도 59분 47초로부터 44도 30분 42초, 동경 127도 27분 43초로부터 131도 18분 33초 사이에 있으며 중국과 러시아, 조선 3개 나라가 인접해있는 가운데 있고 동해를 마주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러시아와 접근해 있고 남쪽으로는 두만강과 북한함경북도, 양강도를 바라보고 있으며 서쪽에는 흑룡강성 목단강시와 접해 있다. 연변조선족자치주에는 5개의 변강 현, 시에 642개의 변강 촌, 둔(屯)이 있는데 변경선 총 길이는 755.2㎞, 그 중 중조 변경선이 522.5㎞이고 중로 변경선은 232.7㎞이다. 연변조선족자치주의 토지 총 면적은 42,700㎢로서 길림성 총 면적의 1/4을 점하고 있으며 대만성의 1.2배, 1개의 화란과 40개의 홍콩에 해당된다.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아름다운 장백산을 끼고 있는데 산간 지대 면적은 연변조선족자치주 총 면적의 54.8%를 점하며 고원은 6.4%, 지면이 경사진 우묵한 땅은 13.2%, 하곡 평원은 12.3%, 구릉은 13.3%를 차지하고 있다 . 전반적인 지세는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으며 서남, 서북, 동북 3면이 동남쪽으로 경사져 있으며 훈춘 일대가 제일 낮다.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해발이 500m 이하에 있는 토지는 20%를 차지하고 500~1000m에 있는 토지는 78%를 차지하며 1000~2000m에 있는 토지는 1.9%를 차지한다.

연변에는 장광재령, 목단령, 대흑령, 할바령, 장백산령, 영액령, 고려령, 노야령, 토문령 등 주요 산맥이 있고 해발이 1,000m 이상 되는 산봉우리가 27개나 있다. 그 중 장백산 백운봉은 최고봉으로서 해발이 2691m이다. 주요 평원은 대석두, 세전, 평강, 배초구, 훈춘과 구수하 평원 등이 있고 주요 하천으로는 도문강, 제2 송화강, 수분하와 목단강 4대 물줄기가 있다.

기후[편집]

연변조선족자치주는 봄철에는 건조하고 바람이 많으며 여름철은 무덥고 비가 많으며 가을철은 시원하고 상쾌하며 겨울철은 추운 날씨가 지속되는 기후 특징을 갖고 있다. 연간 일조 시간은 2,150~2,480시간이고 평균 기온은 2~6℃이며 제일 낮은 기온은 영하 23~38℃, 최고 기온은 34~38 ℃이다. 무상기는 100~150일, 가을 서리는 대부분 9월 하순에 나타나고 봄 추위 꽃샘 추위 는 5월 상순에 끝나며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추위가 계속된다.

평균 강수량은 400~800㎜, 장백산은 1000~1500㎜에 달해 길림성 전체에서 수위를 차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겨울철에 편서풍이 많이 불고 여름철에 편동풍이 많이 불며 봄철에 바람이 제일 세다. 기후 상황은 한반도와 비슷한데, 한반도에서 비가 오는 날에는 여기도 십중팔구 비가 오고, 한반도에 한파가 몰려오는 기간에는 여기도 추위에 시달린다.[3] [4]

역사[편집]

이 곳은 고대에는 부여와 북옥저, 고구려, 발해의 영역이었다. 지금의 둔화시(敦化市)에 있던 동모산(東牟山)은 발해 건국의 출발지였다. 이 지역은 발해의 중심지였던 만큼 현재도 발해 관련 유적들이 많은데,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1949년에 발견된 정혜공주묘(둔화시 육정산(六頂山) 고분군 제1구역 2호분)와 1980년에 정효공주묘가 발견된 허룽시(和龙市)의 룽터우 산 고분군(龙头山古坟群) 등이 있다.

19세기 중반부터 조선의 함경도 사람들이 두만강을 건너 이 곳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1881년, 옌볜(延邊, 연변)지역의 조선인은 약 1만명이었다. 1907년에는 옌지(延吉, 연길)에만 조선인 가구수가 5만호(戶)에 이르렀는데 한족(汉族)은 조선인의 4분의 1도 되지 않았고, 3·1 운동 전인 1916년에 연변의 조선인은 이 지역 총인구 26만5천명 중 약 20만명이었다. 1930년에는 옌지현, 허룽현, 훈춘현, 왕칭현 등 4개 현의 조선인은 39만명으로 해당 지역 총인구의 76.4%를 차지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이후 1952년에 9월 3일에 조선민족 자치구(自治区)가 설치되었는데, 자치구 성립 직후였던 1954년에 이 지역의 총인구 85만4천명 중 조선인은 53만명으로서 전체의 62%였다. 1955년에 조선족 비율이 2%에 불과한 둔화 현이 편입됨과 동시에 자치주(自治州)로 격하되었다. 조선족 자치주가 성립된 9월 3일을 기념하여 자치주 차원의 공휴일로 지정하였으며, 매년 9.3절 행사를 성대하게 치르고 있다. 2012년 9월 3일 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 60주년을 맞아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주요 인사들과 한국, 북한, 일본 등 세계 각국의 주요 인사들을 초청하여, 옌지시 체육관에서 약 3만 명이 참여하는 기념행사를 개최하였다.

산업[편집]

연변 자치주 지역의 소득 수준은 상위권이었지만 공업이 별로 발달하지 않아 예전만 못하다. 연변 지역이 중국 대도시와는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고, 공장이 들어서기에도 중국 내 단둥 같은 주요 항구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별로 메리트가 없기 때문이다. 농업은 주로 곡저평지(谷底平地)에서 이루어지며, 쌀·콩·조 등의 곡물을 생산한다. 특히 벼농사는 한국인이 이주한 뒤에 발달하였으며, 90년의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또 잎담배는 지린성 생산량의 5분의 4를 생산하며, 그밖에 특산물인 인삼과 과일도 많이 난다.특히 벼농사는 한국인이 이주한 뒤에 발달하였으며, 90년의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또 잎담배는 지린성 생산량의 5분의 4를 생산하며, 그밖에 특산물인 인삼과 과일도 많이 난다.

동부에는 각종 지하자원이 매장되어 있으며, 그 중 허룽과 훈춘의 석탄, 왕칭의 오일셰일(유혈암), 톈바오산(天寶山)의 구리·납, 훈춘의 금 채굴이 손꼽힌다. 공업으로는 농업기계·철강·정유·전자 분야의 발전이 두드러지며, 공장은 옌지 등의 시 지역에 분포한다.

중국은 최동남단의 훈춘(琿春)을 동북 지역에서 바다로 나가는 창구로 여기며 개발을 진행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크라스키노 - 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 등 러시아 극동지역 도시로의 육로 이동도 가능하다. 북한과 인접해있다는 것이 그나마 연길이 가진 메리트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1990년대 한중수교 이전까지 북한과의 교류가 꽤 빈번했다고 한다. 이때에는 중국의 경제 상황이 별로 좋지 않았고 북한의 공업화가 진전되던 상황이라, 북한제 물품이 중국제 물품보다 훨씬 품질이 좋아서, 북한물품이 연변 각지에서 돌아다니던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

1980년대 이후로 북한이 점차 쇠퇴되고 1990년대 와서 한중수교로 교류길이 열리면서,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게 된 것. 물론 현재도 북한과의 교류는 어느정도 있는 편이고, 북한으로 중국제 물품이나 남한제 물품을 수출하는 일종의 창구역할을 하고있지만, 그래도 남한과의 교류가 더 활발하다. 그래도 북한 내에서 한국 소식을 듣거나 중국산 공산품이 반입되는 통로이기에, 북한 입장에서는 연변과의 교류가 매우 중요하다.

북한의 상황 때문에 북한항구를 쓰기 쉽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90년대 이후에는 북한의 구매력이 형편없어지면서, 공업의 발달이 지체되었다. 아울러 개혁개방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이후로부터 많은 조선족들이 돈을 벌려고 한국이나 중국 내에 있는 대도시로 일하러 가서 인구도 감소했고, 공업의 발전이 이루어질래야 이루어질 수 없었다. 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1960년대 한국 풍경이 펼쳐질 정도이다. 2015년 기준 자치주의 1인당 GDP는 6,441$로 중국 평균(8,068$)보다 낮은 수준이었으며, 지린성에서는 9개 지급 행정구역중 7위를 기록했다.

언어[편집]

연변자치주 곳곳의 가게들을 보면 간판에 한국어를 위에 쓰고 아래에 중국어를 병기한 경우나 좌우로 한국어와 중국어를 병기해 놓은 곳이 많은데, 간판에 한국어를 써넣지 않으면 가게 허가가 안 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국의 모든 소수민족 자치구들은 중국어를 쓰되, 그 지역 소수민족 문자로도 병기를 해야 한다. 조선족이 운영하는 곳은 한국식의 세련된 폰트나 북한 폰트, 한족이 운영하는 곳은 굴림체나 돋움체, 궁서체 계열을 많이 쓴다. 자치주 외에서도 조선족이 많이 사는 하얼빈시, 무단장시 등의 도시 일부 지역에서 이러한 간판 형태가 발견되기도 한다. 훈춘의 경우 러시아 접경으로 러시아어 - 한국어 - 중국어의 3개 언어 병기를 볼 수 있으며 이곳 조선족들은 러시아어를 섞어 쓴다. 조선족들의 외래어 차용어는 중국어를 제외하면 대개 러시아어 차용어들이며, 영어 차용어와 일부 프랑스어 차용어가 존재하는 남한식 한국어와 달라 서로 말이 안 통하기도 한다. 애초에 동북 방언에 중국어와 러시아어 차용어들이 많다. 그러다가 한국과의 교류가 많아지면서 남한식 한국어의 영향도 점점 많아지는 추세이다.

주변 지역과의 교류[편집]

국과 이래저래 교류가 많다. 과거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출신들이 괄시를 받는 경향이 있었다고는 하나(남한 출신이 북한 출신에 비해 괄시를 받았다는 의미), 1990년대 이후로는 한국에 친척이 있는 조선족들이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한국에 취직하면서 사정이 뒤집혀졌다. 경제적ㆍ문화적ㆍ사회적으로도 한국의 깊은 영향을 받는 지역이라서 한국매체를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 노래나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음식도 쉽게 맛볼 수 있지만, 한국영사관은 설치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연변 주민들이 한국행 비자를 발급받으려면 700여 km(연길 기준) 떨어진 선양의 대한민국 총 영사관까지 가야 한다. 이 거리면 자동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이용해도 최소 9시간 걸린다.

아울러 북한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창구이다. 북한 제조업은 90년대 고난의 행군으로 대차게 타격을 입으면서 주요 소비재들이 중국을 통해 수입되고 있고, 아울러 북한 경제가 장마당 위주로 돌아다니게 되면서 장마당 경제를 쥐락펴락하고 있는 돈주들의 돈줄 상당수도 연변과 맞닿아있기 때문이며, 한국 소식들이나 영상매체들도 연변을 통해서 유통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중요한 창구가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 주로 함경도 일대의 유통을 책임지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1990년대 당시에는 남한가요가 북한에서는 연변가요로 알려지기도 했다. 물론 어느정도 정보가 퍼지고 한국 가수들의 공연도 여러번 벌어진 2000년대 이후로는 다들 남한가요라고 알 수 있다. 최근에는 북한의 핵실험으로 방사능 유출에 대한 불안감이 심화되자 방사능 오염에 대한 검사를 하고 있다.

자연 자원[편집]

연변조선족자치주에는 자연 자원이 매우 풍부하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장백림해(長白林海)와 국내외에서 인정해주는 토산 제품을 갖고 있다. 연변조선족자치주의 활림목 총 축적량은 3억 7천만㎥이고 유림지 축적량은 3억 6천만㎥이며 삼림 피복률은 80.3%에 달한다. 산천 임해에는 1,460 여종의 야생 경제 식물이 있는데 그중 인삼, 영지, 황기, 천마, 오미자 등 약용 식물이 800 여종 있고 송이버섯, 검정귀 버섯[목이 버섯], 원마 등 균류 식물이 10여종 있으며 월귤, 다래, 산머루, 잣, 호두 등 식용 식물과 야생 과일이 가득하다.

장백삼림구에는 550 여종의 야생 동물이 있는데 그중 담비, 동북 호랑이, 불범, 꽃사슴, 검정곰 등 경제 동물이 250여종 있다. 녹용, 녹태, 사향, 웅담, 개구리 기름 등은 연변에서 나오는 진귀한 약재이다. 연변 특산인 사과배는 과일이 크고 껍질이 얇고 물이 많고 달콤하며 보관하기 쉬워 세상에 널리 알려졌으며, 연변에서 많이 나는 담배는 색깔이 곱고 향기로워 운남 담배와 비견된다.

연변조선족자치주에는 85가지 지하 광물질이 매장되어 있는데 그중 이미 밝혀낸 것이 55종에 달하고 개발 이용할 수 있는 것이 39종에 달한다. 2003년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철광석 매장량은 1억77천만 톤, 석탄 매장량은 8억 8천만 톤에 달한다. 연길 분지에 1억 톤 이상의 석유가 매장되어 있다.

민속 습관[편집]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조선족이 모여 사는 주요 집거지로 조선민족 자치법을 실시하는 고장이다.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조선족들이 장기적인 생산과 사회실천 속에서 조선족 인민들은 독특한 민속 습관을 형성하였다. ‘백의동포’라고 불리고 있는 조선족은 줄곧 무지개를 광명과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여겨왔다. 그래서 칠색단(색동)으로 어린이들에게 옷을 지어 입히는데 이런 옷을 입은 어린이는 더욱 아름답고 귀엽다.

조선족 음식은 보통 음식과 특제 음식으로 나뉜다. 보통 음식은 주로 쌀밥, 국, 된장, 김치와 기타 짠지로 한다. 짠지는 흔히 도라지, 고사리, 배추, 무우, 오이, 영채 등을 주요 원료로 하는데 반찬으로 제격이다. 뿐만 아니라 그 만드는 방법 또한 간단하고 가격이 저렴하여 중국 동북 지역은 물론 중국의 많은 도시에서도 풍미 음식으로 식탁에 올리고 있다.

배추 김치는 조선족 음식 가운데서 민족 특색이 짙은 한 가지 품종이다. 특제 음식은 떡, 냉면과 개고기이다. 찰떡을 상등 음식으로 여기고 있는 조선족은 명절이나 경사가 있는 날에 손님을 접대할 때면 꼭 찰떡을 식탁에 올린다. 개고기는 조선족들이 특별히 즐기는 육식 가운데의 한가지로, 귀한 손님이 올 때면 흔히 전통적인 풍습대로 집에서 개고기 연회를 베푼다. 냉면은 조선족 음식의 일대 특색 음식으로서 이미 중국 전국 각지에 파급되었다.

관광 자원[편집]

연변조선족자치주는 독특한 자연 경치와 인문 경치를 갖고 있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장백산은 그 기세가 웅장하고 풍경이 특이하며 경치가 마음에 들어 국내외 유람객들의 관광 명소이기도 하다. 치솟은 백운봉, 맑고 푸른 천지, 포효하며 쏟아져 내리는 폭포, 여기저기 총총하게 널려있는 온천, 미끈하게 쭉쭉 뻗어 올라간 미인송. 특히는 다채로운 조선족 민속은 미묘하기 그지없어 유람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현재 이미 개척한 연변조선족자치주의 7개 관광 개발구로는 장백산 자연 풍경 유람구, 연길 민속 유람구, 훈춘 변경 풍모 유람구, 용정 역사 유적지 유람구, 도문강 변경 도시 유람구, 화룡 용왕산 유람구 등이고, 이미 개통한 유람 항목으로는 장백산 겨울철 유람, 원지 만족 발원지 유람, 연변 조선족 민속 유람, 중조 변경 유람, 중로 변경 유람, 도문강 수상 유람, 발해 고적지 유람, 용정 역사 유적지 유람, 화룡 약물 건강 유람, 헬리콥터 항공 유람 등이며 주요한 관광 풍경 지점은 장백산 풍경, 장백산 천지, 장백산 폭포, 온천(거룡천), 소천지(은환호), 지하 삼림(谷底森林), 방천 경치, 화룡 선경대, 용정 민속 박물관, 안도 홍기촌 등이다 .

인구 구성[편집]

2021년 말 기준 연변의 총 인구는 2,029,400명이다. 연변 '조선족' 자치주지만 정작 조선족보다 한족이 더 많다. 한족이 122만 1,500명으로 전체 인구의 60.19%, 조선족이 72만 2,400명으로 35.60%를 차지한다. 조선족의 출산율이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한국보다도 낮은데, 2010년 기준으로 조선족의 합계 출산율이 0.98이었다. 통계상으로 보면 1999년까지 출산율이 2명대 정도였지만 그 이후로 한국과 중국 대도시 지역으로 급속히 빠져나가며 줄어든 것이다. 동북 3성 자체가 극도의 저출산과 고령화, 타 지역으로의 인구 유출로 중국 내에서도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지역으로 손꼽히지만 연변은 그 정도가 심한 편이다. 2021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내 조선족 인구 비중이 30% 수준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2016년부터 연변에 3자녀 출산을 허용하며 대책에 들어갔다.

행정 구역[편집]

옌볜조선족자치주 행정구역

옌볜조선족자치주는 6개의 현급시와 2개 현으로 구성되었다.

  • 연길시 - 연길시는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수부이고 연변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이며 유엔 개발계획서에서 지정한 도문강 유역 개발에서의 ‘금삼각’(연길-북한청진-러시아블라디보스톡)의 3개 도시 중의 하나이다. 연길시는 면적이 1,350평㎢이고 총 인구는 38만 6,000명으로서 그 중 조선족 인구는 58.4%를 차지한다. 연길시는 전국 30개 소수 민족 자치주 수부 도시에서 경제와 사회, 사업의 앞자리를 차지한 도시의 하나이다. 2001년 연길시는 국내 생산 총액 44억 3,000만원을 올렸는데 1인당 국내 총 생산액은 1만 968원이고 총 재정 수입은 7억 5,000만 원이었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연속 3년 동안 길림성 종합 경제 실력 평의에서 제1위를 차지하였으며 2001년에는 중국 전국 시(현)급 사회 경제 종합 실력 100강의 행렬에 들어섰다. 연길시는 중국 전국 민족 단결 진보 선진시, 기초 교육 선진시, 법률 보급 선진시, 중국 전국 위생 도시와 중국 전국 옹군 우속 옹정 애민(擁軍優俗擁情愛民) 모범 도시로 평의 선발되었다. 연길 경제 개발구는 이미 특색 사업 공업 단지, 한국 중소기업 공업 단지, 민영(과학기술) 공업 단지, 고신기술 창업 단지를 내용으로 한 ‘한 개 구역, 여러 개 단지’의 발전 모식을 기본적으로 형성하였다.
  • 훈춘시 - 훈춘시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중국, 북한, 러시아 3국 변계에 자리 잡고 있는 도시로서 면적이 5,120㎢이고 인구는 25만 명으로, 그 중 조선족 인구가 46.9%를 차지한다. 유엔 개발계획서에서는 훈춘의 개발을 도문강 하류 지구 국제 합작 개발에 있어서 선차적으로 지지하는 대상으로 확정하였다. 중국 국무원에서는 1992년 3월 훈춘시를 중국의 첫 변경 개방 도시 범위에 넣었고 1992년 9월에는 훈춘 변경 경제 합작구를 설립하는 것을 비준하였다. 강택민 총서기는 1995년 6월 훈춘을 두 번째로 시찰할 때 “훈춘을 개발하고 도문강 유역을 개발하여 동북아 각국과의 친선 관계를 발전시켜야 하겠습니다.” 라는 제사를 썼다. 2000년 4월과 2001년 2월 중국 국무원에서는 또 각기 합작구에 수출 가공구, 중·러 통상 무역 지구를 설립하는 것을 비준함으로써 훈춘 변경 경제 합작구가중국에서 유일한 경제 개발구, 수출 가공구, 통상 무역 지구를 일체화한 대외 개방 창구로 되게 하였다. 변경 관광은 훈춘의 중요한 특색 가운데 한가지로 북한, 러시아를 관광할 수 있어 아시아와 유럽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편리한 통로가 되고 있다.
  • 화룡시 - 장백산의 동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화룡시는 도문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의 양강도, 함경북도와 마주하고 있다. 화룡시는 면적이 5069㎢이고 22.2만 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는데 그 중 조선족 인구가 54%를 차지하고 있다. 화룡시는 생태 발전의 길로 나아가면서 무공해 입쌀, 중약재, 무공해 남새[채소], 양질 잎담배 등 열대 생태 기지를 힘써 건설하고 있다. 그 증가액은 화룡시 GDP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무공해 입쌀, 천연 중초약 농축액은 국내외 시장에서 잘 팔리고 있으며 목재 종합 이용의 초보적인 규모를 갖추었다. 유엔 공업 발전 기구에서는 화룡시를 ‘중국 고신 기술 녹색 식료품 원료 기지 건과재 가공 시범구’, ‘중국 녹색 식료품 원료 기지 건설 과재 가공 중점 대상 시범구’로 명명하였다. 새로 개발한 도문강에서 장백산까지의 관광 코스는 사면팔방의 유람객들을 끌고 있다.
  • 도문시 - 길림성 동부의 도문강변에 자리 잡고 있는 도문시는 길림성에서 제일 큰 변경 통상구이다. 도문시의 총 면적은 1142㎢이고 총 인구는 13만 6,000명으로 그 중 조선족 인구가 57.29%를 차지하고 있다. 도문시는 교통이 사통팔달 하였는 바 도로, 철도, 수상 운수가 모두 ‘금삼각’의 인후 지대에 있다. 도문시는 중국 동북 지구, 북한, 러시아 극동 지구의 도로 운수, 철도 운수를 이어주는 국제 교통 중추이다. 도문 통상구는 중국의 중요한 북한 무역 통상구로서 중국, 북한, 러시아, 일본 등 나라들의 수출입 물자를 중계·수송하는 과업을 짊어지고 있다. 도문시에는 중국 9대 신문 종이 생산 기업소의 하나인 석현 백록 제지업 주식 유한 회사가 있다. 석유 화학, 경·방직, 비닐, 석탄 등 부류의 기업소도 분포해 주도산품기제 종이, 고속 원심 분리기 등의 제품은 중국 국가 인정 양질, 부문 인정 양질 칭호를 받았다.
  • 안도현 - 안도현은 서쪽으로는 돈화시, 남쪽으로는 백산시, 화룡시와 인접해 있다. 장백산 기슭의 첫동네라고 불려지고 있다. 안도현은 총 면적이 7438㎢이고 22만 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는데 그중 조선족이 22.7%를 차지하고 있다. 이름을 널리 떨치고 있는 장백산은 안도현에 독특한 관광 자원을 제공하였을 뿐더러 남달리 우월한 수력 자원도 마련해 주고 있다. 안도현의 연간 물 흐름량은 24억1700만㎡이며 수력 발전량은 28억 6000 만kw로서 53개소의 수력 발전소를 개발할 수 있다. 안도현에서는 지금 이미 14개의 중소규모의 수력 발전소를 세웠는데 총 설비 용량은 8만6745kw이고 연간 발전량은 3억2300만kw이다. 안도현은 중국 전국적으로 첫 100개 전기화 시점현의 하나로 되었으며중국 전국 수력 경제 발전 선진형의 칭호를 받았다. 지금 개발하고 있는 사호구 발전소의 총 설비 용량은 15만kw이며 연간 발전량은 3억600만kw이고 총 투자는 중국 인민페로 13억7000만원이나 된다.
  • 용정시 - 용정시는 도문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의 함경북도 회령시, 온성군과 마주하고 있다. 중국 북방의 중요한 변경 도시의 하나이다. 용정시는 중국 경내에서 조선족이 제일 집중되고 또한 조선족 문화가 제일 완정하게 보존된 지방이다. 용정시의 면적은 2,591㎢이고 26만 6000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는데, 그 중 조선족이 67.6%를 차지한다. 용정시는 민족 단결의 전통을 가지고 있어 1994년 9월 중국 국무원으로부터 민족 단결 진보 모범시로 명명받았다. 용정시는 조선족 음악 무용, 민족 풍속을 비교적 완정하게 보존하고 있어 중국 조선족 민속 문화의 보물고로 불리우고 있다. 용정시는 물산 자원도 풍부하다. 용정시에는 도문강, 해란강 등 8개 강이 흐르고 있다. 입쌀, 잎담배, 사과배, 송이버섯 등 특산물을 재배하고 있는데 입쌀은 ‘궁정어미’로 국내외에 명성을 날리고 있다. 용정시에는 중국에서 가장 큰 펄프 생산 기지인 길림 진명 아송 펄프 종이 회사와 금룡 아마방직 주식 유한 공사가 있다.
  • 돈화시 - 연변의 서부에 자리 잡고 있는 돈화시는 북쪽으로는 흑룡강성 목단강시와 인접하여 있고 서쪽으로는 길림시와 이웃을 하고 있다. 돈화시는 길림성에서 지역 면적이 가장 큰 현급 도시로서 면적이 1만1957㎢이고 48만 명의 인구를 갖다. 예로부터 “천년 도읍, 백년현”이라 불러왔다. 돈화시는 특색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 입각하고 ‘장백산 입체 보물고’의 우세를 발휘하면서 중점적으로 의약, 목제품, 녹색 식료품 등 3대 기둥 산업을 발전시키고 있다. 길림 오동 약업 집단 주식 유한 회사는 중국 전국에 이름을 날린 기업소로 발돋움을 하였고 길림단봉 임업 유한 회사에서 생산하는 여러 가지 가구들은 미국, 일본 등에 수출하는 인기 상품으로 되었다. 특산물인 작은 콩은 국제 시장에서 공급이 수요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돈화시는 2001년에 국내 총 생산액 35억 8,000만원을 올렸고 2억 8,000만원의 재정 수입을 올렸다. 길림성 현급 종합 경제 실력 평가 대회에서 제3위를 차지하였다. 돈화시는 중국 전국 위생 도시, 중국 전국 옹군 우속 옹종 애민 모범 도시, 중국 전국 민족 단결 진보 모범 집체, 중국 전국 문화 선진현으로 평가·선발되었다.
  • 왕청현 - 왕청현은 북쪽으로 흑룡강성 목단강시와 인접하고 남쪽으로는 2개의 개방 도시인 훈춘시, 도문시와 이웃하고 있다. 왕청현은 러시아 변경과 40㎞, 북경 변경과는 18㎞ 떨어져 있어 우월한 지리적 위치를 갖고 있다. 왕청현은 총 면적이 9,016㎢이고 27만 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다. 왕청현은 자원 우세를 이용하여 특색 경제를 대대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이미 검정귀 버섯(목이 버섯) 산지 건설, 만무 중약재 기지 건설, 잎담배 산업 개발, 해리서와 고기개 산업 개발, 만천성 풍경구 관광 산업 개발을 주도로 하는 기둥 산업의 초보적인 규모를 갖추었다. 대외 무역의 부단히 발전하였는데 최근에는 일본, 독일, 한국, 러시아, 북한,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스페인 등 20여 개 나라와 무역 관계를 설립하였다. 왕청현은 농촌 문화 건설을 매우 중시하여 농민들의 사상 도덕과 과학 문화 자질을 제고시켜 중국 전국 문화 선진현이 되었다. 복흥진, 백초구진과 춘양진은 각기 중국 국가와 길림성으로부터 ‘중국 농민화의 고향’, ‘상모춤의 고향’, ‘길림성 현대 민간 회화의 고향’으로 명명 받았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자치주(중화인민공화국)〉, 《위키백과》
  2. 연변조선족자치주〉, 《세계한민족문화대전》
  3. 연변 조선족 자치주〉, 《나무위키》
  4. 연변 조선족 자치주〉,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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