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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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령시(會寧市)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북도의 북부, 두만강 연안에 위치한 도시이다. [1][2]
개요[편집]
- 행정구역: 함경북도
- 면적: 1,750km²
- 인구: 153,532명(2008년)
서쪽은 무산군, 남쪽은 부령군·청진시, 동쪽으로는 경흥군·경원군·온성군과 접해 있고, 북쪽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 지린성(吉林省) 옌볜 조선족 자치주 룽징 시(龍井, 용정)와 마주하고 있다. 남서(용천리)~북동(굴산리) 간 거리는 64km이고, 북서(덕흥리)~남동(창태리) 간의 거리는 32km이며, 도 전체면적의 10% 이상을 차지한다. 현재 행정구역은 19동 28리로 되어 있다.
동만주와 청진 사이를 오가는 차량물동량은 대부분 회령을 거치는데, 북한 도로의 사정이 좋지 않아 상태가 양호한 중국 도로를 조금이라도 더 타는 편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김정숙의 고향(생가 : 회령고향집)이라고 나름 밀어주는 도시인지라, 북한의 지방도시 치고는 나름 구색을 갖추고 있다. 온갖 음식점을 모아놓은 회령 음식점 거리는 북한의 단골 선전거리 중 하나다.
국경에 가깝고 인구가 비교적 많아 탈북민이 많은 도시이기도 하다. 탈북민의 고향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시·군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2016년 수해로 탈북 루트가 되던 마을의 주민들을 통째로 이주시켜 이곳을 통하는 탈북이 어려워졌다.
회령시의 북쪽 지역(광복 당시 종성군 행영면)에는 회령 정치범수용소(22호 관리소)가 있다.
2016년 두만강 유역 대홍수로 특히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지역이며, 이곳에서만 200여명이 죽거나 실종되었다. [3]
자연환경[편집]
회령시는 산지가 많은 지역으로서 일부 지역에 해발 1,000m 이상의 산이 솟아 있고 대부분 지역은 해발 500~800m의 야산 지대로 되여 있으며 해발 100m 이하의 지역은 없다. 함경산맥의 북서부에 위치해 있는 회령시는 북부의 두만강 연안을 제외하고 주변이 함경산맥 및 그 여맥들에 둘러싸여 지형상 하나의 큰 분지를 이루고 있다. 지형은 남부에서 북부 두만강쪽으로 가면서 점차 완경사를 이루어 해발 200~800m 정도의 저산 및 구릉성 산지를 형성한다.
무산군과의 경계에는 가라지봉(加羅支峯, 1,418m), 서재산(書齋山, 1,109m), 부령군과의 경계에는 민사봉(民事峯, 1,428m), 무릉산(武陵山, 1,007m), 청진시 청암구역과의 경계에는 기대봉(旗臺峯, 1,049m), 어명산(御命山, 1,032m), 경흥군과의 경계에는 까치봉(1,085m), 다탄산(多炭山, 817m), 경원군과의 경계에는 고연두산(高煙頭山, 841m) 등 산지들이 분포되어 있고 회령천연안에는 오봉산(五峯山, 1,329m)이 솟아 있다.
회령시 경계에는 부령군 사이에 있는 무산령(茂山嶺, 613m)을 비롯한 영들이 주요 영길로 이용되고 있다. 또한 오봉리 일대의 소서도덕(小西道imagefont), 대서도덕(大西道imagefont), 원산리의 이무덕(利茂imagefont), 굴산리의 피덕, 세천 일대의 창평덕(倉坪imagefont), 인계리의 청초덕(靑草imagefont)을 비롯하여 덕으로 명명된 고장이 많이 분포되어 있다. 큰 평야가 없으며 인계, 회령, 영수, 덕흥 일대를 비롯한 두만강연안과 회령천(會寧川), 팔을천(八乙川), 보을천(甫乙川) 하류연안에 좁은 충적지들을 형성하고 있다.
지질은 주로 두만계(豆滿系), 대동계(大同系), 함경계(咸鏡系), 제4기층 그리고 이원암군, 두만강암군, 단천암군, 압록강암군, 회령암군 지대로 되어 있으며 학포 · 궁심 · 덕흥 · 원산 · 유선 일대에는 석탄이, 오류 · 대덕 일대에는 금, 풍산에는 동, 유선 일대에는 고령토와 팽윤토, 송학 · 중도 · 성동 · 풍산 일대에는 석회석이 분포되어 있다. 기후는 대륙성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연평균일조율은 58%로서 함경북도에서 가장 높으며 일조 조건이 불리한 7월에도 42%에 달한다.
연평균기온은 5.6℃, 1월 평균기온은 -12.4℃, 8월 평균기온은 21.2℃이며 최고극기온은 40.5℃(1977년 7월 30일)로서 북한에서 최고봉에 도달했으며 최저극기온은 -35.6℃(1956년 1월 22일)이다. 10℃이상 적산온도는 회령에서 2,808℃, 풍산 · 창태 등 남부지역에서 2,500℃이다.
연평균강수량은 600mm로서 북한에서 강수량이 적은 지역에 속하며 최대강수량은 819mm(1928년), 최소강수량은 220.9mm(1924년)로서 두만강연안에서 산악지대로 가면서 점차 많아진다. 연평균상대습도는 66%이며 함경북도에서 비교적 낮다. 풍산 · 창태 등 남부지역에서 첫서리는 9월 24일에, 마감서리는 5월 18일 경에 내린다. 겨울에는 서풍 혹은 북서풍, 여름에는 동풍이 불며 연평균풍속은 2.8m/s이다. 보을천, 회령천, 팔을천 등 계곡을 따라 산곡풍이 분다. 겨울 동토의 깊이는 회령에서 90cm, 남부지방에서 1m이다.
하천은 모두 두만강 수계에 속하며 5km 이상의 하천이 40여 개 되는데 그중 5~10km의 하천이 33개, 10.1~20km의 하천이 3개, 20.1~50km의 하천이 5개, 50km 이상 하천이 2개 된다. 북부로는 중국국경을 따라 두만강이 흐르고 있고 회령천(會寧川), 팔을천(八乙川), 보을천(甫乙川), 용천천(龍川川) 등 큰 하천들이 시 구역을 관류하고 있다. 하천망밀도는 0.20~1.13km/km2이다.
회령시에는 팔을천의 물로 저수되는 창효저수지(彰孝貯水池)와 두만강물로 저수되는 장덕저수지(長德貯水池)가 있다. 산림은 회령시 전체 면적의 82%를 차지하며 소나무, 잎갈나무, 잣나무, 참나무, 고로쇠나무, 물푸레나무, 박달나무 등으로 주종을 이루었다. 풍산리, 창태리, 오류리, 용천리를 비롯한 남부 지방은 산림자원이 풍부하여 산과, 산채, 약재가 많이 채취되고 있다. 계하리, 창태리, 원산리, 신흥리에는 송이버섯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동물로는 오소리가 많이 서식하고 있으며 오봉산 일대에는 날다람쥐, 청서, 곰 등 포유류들도 있다. 토양은 대부분 지역이 갈색산림토양이고 일부 고지대가 표백화갈색산림토양으로 되어 있으며 하천연안에는 충적토, 논토양이 많이 분포되어 있다.[4]
역사[편집]
회령시 지역의 오동유적과 거문개봉유적에서 청동기시대의 유물이 출토된 것과 인접한 여러 지역에서 구석기시대로부터 신석기시대에 이르는 다량의 유물들이 발굴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원시시대에 사람이 살았던 것이 분명하다.
역사문헌에 따르면 고대사회 수백 년에 걸쳐서 숙신(肅愼), 읍루(挹婁), 예맥(濊貊), 옥저(沃沮), 부여(扶餘), 말갈(靺鞨) 등 부족국가들이 판을 치고 있었고, 삼국시대에 들어서서는 고구려의 영역에 속해 있었다. 고구려가 신라와 당나라에 의해 패망한 뒤에는 당나라의 판도로 되었으며 699년 발해국 개국에 이르러 발해 동경용원부(東京龍原府)에 소속되었다. 발해가 거란에 의해 패망한 후 회령시 지역은 수세기 동안 줄곧 이민족에게 예속되어 있었다. 특히 회령시 지역은 오랫동안 여진족의 손아귀에 들어 있었다.
조선왕조가 들어서면서 1398년(태조 7년)에 두만강하구에 경원부(慶源府)를 설치하였는데, 그 후 여진의 침입으로 경성부(鏡城府)로 옮겨졌다. 1434년에 6진이 개척되면서 이곳에 성보를 두고 영북진절제사(寧北鎭節制使)가 겸하여 관할하게 하다가 와무허(斡木河)에 별도로 진을 두고 처음으로 회령이라 칭하고, 그 해 가을에 회령도호부(會寧都護府)로 승격시켰다.
1895년(고종 32년)에 지방행정구역 개편 시에 경성부 회령군(會寧郡)으로 되어 부남(府南), 공북(拱北), 대덕(大德), 영유(永綏), 운두(雲頭), 봉의(鳳儀), 풍산(豊山), 영산(靈山), 관해(觀海), 용성(龍城), 신흥(新興), 창효(彰孝), 옹희(雍熙), 인계(仁溪), 원산(元山) 등 15개 사를 설치하였다. 1896년에 다시 13도제를 실시하면서 함경북도 회령군으로 되었으며 15개 사가 면으로 개편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시에 공북면(拱北面) · 부남면(府南面)과 대덕면(大德面) · 창효면(彰孝面)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회령면(會寧面)을, 영유면(永綏面)과 대덕면 일부를 병합하여 벽성면(碧城面)을, 풍산면(豊山面) · 영산면(嶺山面) · 대덕면 일부를 병합하여 창두면(昌斗面)을, 용성면(龍城面) · 신흥면(新興面)을 병합하여 용흥면(龍興面)을, 옹희면(雍熙面) · 인계면(仁溪面)을 병합하여 화풍면(花豊面)을, 창효면 일부와 원산면(元山面)을 병합하여 팔을면(八乙面)을 각각 신설하여 회령, 벽성, 운두, 봉의, 창두, 용흥, 화풍, 팔을 등 8개 면을 관할하였다.
1939년에 회령면을 읍으로 승격하였고 운두면과 봉의면을 병합하여 보을면(甫乙面)으로 개편하여 광복 전까지 1읍(회령), 6면(보을, 벽성, 용흥, 창두, 팔을, 화풍), 43동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949년 행정구역 개편 시에 회령읍(會寧邑)이 면으로 강등되면서 7개의 면을 관할하다가 1952년 군면리 대폐합에 따라 전 회령군 회령면 · 창두면 · 화풍면의 전체 리와 팔을면의 5개 리, 벽성면의 4개 리, 부령군 서상면의 1개 리, 종성군 남산면의 2개 리를 통합하여 회령군을 구성하여 회령면의 삼일리 · 오동리 · 성천리 · 오산리 · 동명리와 팔을면 창효리 일부를 병합하여 회령읍(會寧邑)을 신설하고 벽성면의 덕흥리와 서촌리를 병합하여 덕흥리(德興里)로, 창두면의 창두리와 풍산리를 병합하여 풍산리(豊山里)로, 창두면의 무산리와 부령군 서상면의 신명리를 병합하여 무산리(茂山里)로, 창두면의 창태리 · 영산리 · 종암리를 병합하여 창태리(蒼苔里)로, 팔을면의 원산리와 영천리를 병합하여 원산리(元山里)로, 화풍면의 인계리와 신금생리를 병합하여 인계리(仁溪里)로, 화풍면의 학포리와 종성군 남산면의 방원리 일부를 병합하여 학포리(鶴浦里)로, 종성군 남산면의 세천리와 신천리를 병합하여 세천리(細川里)로, 벽성면의 대덕리와 회령면의 요동리를 병합하여 대덕리(大德里)로, 팔을면의 창효리 일부를 분리하여 창효리(彰孝里)로, 회령군 벽성면의 오봉리를 회령군 오봉리(五鳳里)로, 회령군 팔을면의 금생리를 회령군 금생리(金生里)로, 회령군 화풍면의 궁심리를 회령군 궁심리(弓心里)로, 회령군 화풍면의 사을리를 회령군 사을리(沙乙里)로, 회령군 팔을면의 신흥리를 회령군 신흥리(新興里)로, 회령군 회령면의 망양리를 회령군 망양노동자구(望陽勞動者區)로 각각 개편하여 1읍(회령), 1구(망양), 15리(오봉, 덕흥, 풍산, 무산, 창태, 창효, 금생, 원산, 인계, 궁심, 사을, 학포, 세천, 신흥, 대덕)를 관할하였다.
1953년에 덕흥리 일부가 유선군(遊仙郡) 영수리(永綏里)에 편입되었고, 1954년 10월에 세천리가 세천노동자구(細川勞動者區)로, 1961년 5월에 궁심리가 궁심노동자구(弓心勞動者區)로 각각 승격되었고, 1974년에 유선군이 회령군에 흡수되면서 유선읍이 유선노동자구(遊仙勞動者區)로 강등되었으며 종성군의 낙생리(洛生里), 행영리(行營里), 방원리(防垣里), 굴산리(窟山里), 중봉노동자구(仲峯勞動者區)가 회령군에 이관되었다.
1989년 7월에 회령읍 일부 지역과 대덕리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남문노동자구(南門勞動者區)를, 금생리 일부 지역을 분리하여 수북노동자구(水北勞動者區)를 각각 신설하였으며 1991년 7월에 회령군을 회령시로 승격시키면서 회령읍을 오산덕동(鰲山德洞) · 성천동(城川洞) · 역전동(驛前洞) · 동명동(東明洞)으로, 유선노동자구를 유선동(遊仙洞) · 계림동(鷄林洞) · 보을동(甫乙洞)으로, 남문노동자구를 남문동과 산업동(産業洞)으로, 세천노동자구를 세천동과 신천동(新川洞)으로 각각 분리 개편하였으며, 수북노동자구를 수북동으로 개편하고 일부 지역을 분리하여 칠월팔일동을 신설하였으며, 오봉리 일부와 덕흥리 일부를 병합하여 강안동(江岸洞)과 새마을동으로 각각 개편하였다.
동시에 망양노동자구를 망양동(望陽洞)으로, 궁심노동자구를 궁심동(弓心洞)으로, 중봉노동자구를 중봉동(仲峯洞)으로 각각 강등시켰으며 1992년 12월에 대덕리 일부 지역을 분리하여 중도동(中島洞)을 신설하였다.
현재 행정구역은 19동(강안동, 계림동, 궁심동, 남문동, 동명동, 망양동, 보을동, 산업동, 새마을동, 성천동, 세천동, 수북동, 신천동, 역전동, 오산덕동, 유선동, 중도동, 중봉동, 칠월팔일동), 28리(계상리, 계하리, 굴산리, 금생리, 남산리, 대덕리, 덕흥리, 낙생리, 용천리, 무산리, 방원리, 벽성리, 사을리, 성동리, 성북리, 송학리, 신흥리, 영수리, 오류리, 오봉리, 원산리, 인계리, 창태리, 창효리, 풍산리, 학포리, 행영리, 홍산리)로 되어 있다.[5]
산업[편집]
회령시는 지하자원, 산림자원 등 자연부원이 풍부하지만 광복 전 일제의 식민통치로 경제상 아주 낙후하였다. 당시 농업이 경제의 주류를 이루었고 산업시설물로는 일제가 석탄약탈을 목적으로 부설한 궁심, 유선, 학포 탄광과 제재공장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광복 후 회령시는 현대적인 공업과 다각적인 농업경제를 가진 지역으로 부상되기 시작하였다. 경제에서 공업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주로 채굴업, 기계 공업, 제지업을 비롯한 중앙공업과 지방원료원천에 기반을 둔 지방공업이 이루어졌다.
채굴업에서는 석탄생산이 첫 자리를 차지하며 여기에는 규모가 큰 학포, 유선, 궁심 탄광과 지방석탄수요를 보장하는 중소규모의 탄광이 있으며 생산된 석탄은 주로 함경북도의 제철 · 제강공업과 화학공업의 원 · 연료로 이용되고 있다. 채굴업에서 석탄 버금으로 되는 것은 석회석, 고령토 생산이며 석회석은 중도에서, 고령토는 유선지방에서 생산되고 있다.
유선에서는 제철 · 제강공업에 이용되는 내화벽돌도 생산되고 있다. 기계공업에서 탄광설비생산이 기본으로 되고 있다. 그중 회령탄광기계공장(會寧炭鑛機械工場)에서는 함경북도 내 탄광의 종합적 기계화를 실현하는 데서 큰 몫을 담당하고 있으며 쇠동발, 탄차, 컨베이어, 권양기, 통풍기, 채탄기 등 탄광설비들을 생산하여 함북북부지구탄광(咸北北部地區炭鑛)에 공급하고 있다.
회령시는 북한 종이생산지의 하나로서 제지업이 발달하였으며 상당한 규모를 갖춘 제지공장들에서는 크라프트지, 모조지, 투사지, 제도지 등을 생산하고 있다. 순환식 채벌 방법을 적극 이용하여 통나무도 적지 않게 생산하고 있다. 지방공업은 식료품, 일용품, 방직 및 피복 공업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주로 회령과 유선 일대에 배치되어 있다.
지방공업에서 식료품생산이 기본으로 되고 있다. 회령시에는 회령곡산공장이 있으며 옥수수를 주원료로 물엿, 당과, 녹말, 기름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식료품을 생산하고 있다. 회령시의 식료공장에서는 된장, 간장, 기름과 여러 가지 채소 및 과일가공품을 생산하고 있다. 그 중에서 백살구통조림, 백살구젤리, 백살구단물 등 백살구가공품은 회령시의 특산물로 유명하다.
시멘트, 벽돌, 기와, 전동기, 변압기, 농기구와 농기계들도 생산하고 있다. 회령시에서 생산되는 김장독, 단지 등 오지그릇들은 견고하고 가볍고 특이한 빛깔로 하여 예로부터 회령오지로 유명하다. 회령시는 함경북도에서 농경지가 많이 분포되어 있는 지역의 하나로서 주로 두만강연안과 회령천(會寧川), 보을천(甫乙川), 팔을천(八乙川), 용천천(龍川川) 연안에 분포되어 있다.
농경지는 시 전체면적의 10%를 차지하며 그중 밭이 79%, 논이 8.5%, 과수밭이 9%를 차지한다. 주요 곡물로는 옥수수, 벼, 콩 등이 있다. 원산, 금생, 궁심, 대덕, 창태, 풍산 일대에는 옥수수가 많이 재배되고 있으며 원산의 옥수수 생산량은 회령시에서 첫 자리를 차지한다. 벼는 주로 하천연안의 덕흥, 대덕, 창효, 금생, 원산, 인계, 성북 일대에서 재배되며 인계, 대덕 일대에서 많이 산출되고 있다.
회령시에서는 예로부터 콩을 많이 재배하여 왔으며 시의 전반 지역에서 콩이 재배되고 있다. 공예작물로는 주로 담배이며 원산, 창태, 금생, 성북, 풍산, 홍산, 궁심 일대에서 재배되고 있다. 채소업에서는 도시주변에 채소기지를 세우고 배추, 무, 양배추, 시금치, 가지, 오이, 마늘, 고추 등 여러 가지 채소를 재배하고 있다. 회령, 유선, 인계, 오류 일대에서는 수박과 참외농사가 잘 된다.
축산업에서는 닭, 토끼, 염소, 양, 돼지, 오리 등 여러 가지 가축들을 사육하고 있으며 창효 · 궁심 지방에는 검은 얼룩 젖소가 많다. 창효리에는 창효닭공장이 있다. 과수업에서는 야산과 경사지를 개간하여 수백 정보의 백살구밭을 조성하였고 마을과 도로 주변에도 백살구나무를 재배하여 백살구산지로 유명하다. 백살구는 과수 재배면적의 90% 이상을 차지하는데 주로 창효, 대덕, 풍산, 금생, 덕흥 일대에서 많이 재배되고 있다. 수분, 단맛이 많고 신맛이 적고 향기가 있는 것으로 하여 명산물로 유명하다. 그 외 자지방의 기후풍토에 맞게 배, 사과, 복숭아도 많이 재배되고 있다. 양잠업에서는 뽕누에가 90% 이상 차지한다.[6]
교통[편집]
교통은 함북선(咸北線)이 회령시의 중심을 남북방향으로 통과하고 있으며 여기에서 회령~유선, 금생~궁심, 신학포~세천 간의 지선이 분리되고 있다. 영역 내에 전거리역, 풍산역(豊山驛), 창두역(昌斗驛), 중도역(中島驛), 대덕역(大德驛), 회령청년역(會寧靑年驛), 금생역(金生驛), 고령진역(高嶺鎭驛), 신학포역(新鶴浦驛), 학포역(鶴浦驛), 신전역(新田驛), 간평역(間坪驛) 등 역이 설치되어 있다.
도로 교통은 청진~회령 간 2급 도로와 회령~무산, 회령~온성, 회령~새별 간 도로가 달리고 있다. 시내 교통으로는 회령~원산, 회령~용계, 회령~창태, 회령~계상, 회령~궁심, 유선~용천, 유선~오류 간에는 버스가 운행되고 있다.[7]
행정 구역[편집]
현재 회령시는 19동, 28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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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편집]
회령은 김일성(金日成)의 첫 번째 부인이자 김정일(金正日)의 생모인 김정숙의 출생지여서 군사분계선 이북 지역 중 비교적 잘 꾸며져 있는 곳이다.
- 김정숙혁명사적관: 1974년 10월에 개관했다. 김정숙에 관련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 오산덕: 회령시 오산덕동에 위치한 작은 산이다. 김정숙의 동상과 사적 비가 위치해 있다.
- 회령교두: 회령시 중심부에서 서북쪽으로 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다리로, 중국 지린성(吉林省) 룽징(龍井, 용정)과 연결되어 있다.
- 회령인민도서관: 회령시 성천동에 위치한 도서관이다. 1993년 12월 24일에 개관했다. 건물 외관이 화려하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 〈회령시〉, 《위키백과》
- 〈회령시〉, 《두피디아》
- 〈회령시〉, 《나무위키》
- 〈조선향토대백과: 함경북도 회령시 개요〉, 《네이버 지식백과》
- 〈조선향토대백과: 함경북도 회령시 자연〉, 《네이버 지식백과》
- 〈조선향토대백과: 함경북도 회령시 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 〈조선향토대백과: 함경북도 회령시 경제〉, 《네이버 지식백과》
- 〈조선향토대백과: 함경북도 회령시 교통〉,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 함흥시
- 량강도
- 자강도
- 함경도
- 함경남도
- 평안남도
- 평안북도
- 황해북도
- 황해남도
- 대동강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함경북도
- 무산군
- 부령군
- 청진시
- 경흥군
- 경원군
- 온성군
- 두만강
- 지린성
- 옌볜 조선족 자치주
동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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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령시〉, 《위키백과》
- ↑ 〈회령시〉, 《나무위키》
- ↑ 〈조선향토대백과: 함경북도 회령시 개요〉, 《네이버 지식백과》
- ↑ 〈조선향토대백과: 함경북도 회령시 자연〉, 《네이버 지식백과》
- ↑ 〈조선향토대백과: 함경북도 회령시 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 ↑ 〈조선향토대백과: 함경북도 회령시 경제〉, 《네이버 지식백과》
- ↑ 〈조선향토대백과: 함경북도 회령시 교통〉, 《네이버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