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호군
※ 지도 위 글자를 클릭하면 해당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
승호군(勝湖郡)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황해북도에 동북부에 위치해 있는 군이다.[1][2]
개요[편집]
승호군의 인구는 85,624명(2008)이다. 북쪽으로 대동강, 남쪽으로 남강이 흐른다. 동쪽으로 강동군, 북쪽으로 대동강을 사이에 두고 평양직할시 삼석구역, 서쪽과 남쪽으로 남강을 사이에 두고 각각 평양직할시 사동구역, 황해북도 상원군과 접한다. 2016년 3월 기준 총 1읍 3로동자구 9리로 구성되며 군소재지는 승호읍이다.
승호는 절승을 이룬 호수같은 여울목이 있다는 뜻으로 되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에 우리나라 군사들이 평양성을 침략해 온 외적들의 공격을 물리치고 이 지역의 호수처럼 아름다운 남강의 합탄여울가에서 휴식을 취했는데, 이때부터 이 고장을 승호라 하였다고 한다. 전에는 조개가 많이 쌓인 곳이라 하여 조개 합자와 여울 탄자를 써서 합탄이라고 하였다.
승호군에 있는 평양 만달리 동굴은 구석기 시대의 동굴 유적으로서, 만달사람으로 불리는 인류의 화석이 발견되었다. 이곳에는 고구려 후기의 고분군인 만달산 고분군이 있다.
대한민국이나 전 세계에 북한의 매우 잘 알려진 행정구역 중 하나다. 북한 최악의 정치범수용소였던 승호 수용소가 있다.[3]
자연환경[편집]
대동강에서 분리되는 남강이 승호군의 중심을 지나가며, 하중도를 하나 갖고 있다. 이 지역은 기온이 가장 낮은 군이다. 1921~1980년 사이의 기상기후 자료에 의하면 상원에서 연평균기온은 8.9℃, 1월 평균기온은 -8.7℃, 8월 평균기온은 24.1℃이다. 연평균최저기온은 2.8℃, 1월 평균최저기온은 -15.1℃, 8월 평균최저기온은 19.5℃이며 연평균최고기온은 15.8℃, 1월 평균최고기온은 -1.6℃, 8월 평균최고기온은 29.5℃이다.
1969~1980년 사이 최저극기온은 -31.8℃(1978년 2월 15일)였다. 1월 최저극기온은 -27.5℃(1972년 1월 27일), 7월 최저극기온은 9.8℃(1976년 7월 5일), 8월 최저극기온은 9.5℃(1979년 8월 28일)였다. 0℃이상 적산온도는 3,482℃, 15℃ 이상 적산온도는 2,942℃이다. 연평균일조율은 53%이다. 첫서리는 10월 상순, 마감서리는 4월 하순에 내린다. 상원군에서는 연중 북서풍이 많이 불며 연평균풍속은 2.1m/s이며 바람이 센 4월에는 2.9m/s, 바람이 약한 9월에는 1.5m/s이다. 봄철에는 상원천 상류 골짜기를 따라 산골 바람이 자주 분다.
연평균강수량은 987.6mm이다. 7~8월 사이의 강수량은 556.5mm로서 연강수량의 56%를 차지한다. 강수량이 가장 많았던 1964년에는 연강수량이 1,621.5mm, 가장 적었던 1977년에는 연강수량이 505.1mm였다. 군에는 북부경계를 따라 흐르는 남강과 여기에 유입되는 상원강 및 그 지류들이 유입되어 있는데, 길이가 5~10km인 하천은 6개, 10~20km인 하천은 2개, 20~50km인 하천은 2개이며 가장 긴 강은 상원강으로서 그 길이는 42.1km이다.[4]
역사[편집]
1952년 군면리 대폐합에 따라 평안남도 강동군의 일부 면을 통합하여 평안남도에 승호군을 구성하였는데, 이때 강동군 승호면의 승호일리 · 승호이리 · 승호삼리 · 파릉리 · 응암리 · 대성리를 병합하여 승호읍(勝湖邑)으로, 강동군 청룡면의 이천리 · 법수리 · 이목리를 병합하여 이천리(梨川里)로, 강동군 승호면의 괴음리 · 운학리 · 입석리 · 광청리를 병합하여 괴음리(槐陰里)로, 강동군 승호면의 화천리를 승호군 화천리(貨泉里)로, 강동군 승호면의 금옥리와 삼등면의 청탄리를 병합하여 금옥리(金玉里)로, 강동군 청룡면의 이현리 · 모운리 · 내도리를 병합하여 이현리(梨峴里)로, 강동군 청룡면 오류리를 승호군 오류리(五柳里)로, 강동군 청룡면의 대원리 · 추미리 · 삼합리 · 대수리 · 회리 · 산사리를 병합하여 대원리(大園里)로, 강동군 청룡면의 금탄리 · 사도리 · 양지리 · 기림리 · 지탄리를 병합하여 금탄리(金灘里)로, 강동군 원탄면의 고비리와 훈암리를 병합하여 고비리(高飛里)로, 강동군 원탄면의 봉도리 · 송오리 · 마산리를 병합하여 봉도리(鳳島里)로, 강동군 원탄면의 흑룡리 · 삼청리 · 탑하리를 병합하여 삼청리(三靑里)로, 강동군 원탄면의 원흥리 · 내리 · 신룡리 · 상리 · 하리를 병합하여 원흥리(圓興里)로, 강동군 원탄면의 원신리 · 문우리 · 남경리를 병합하여 원신리(元新里)로, 강동군 시족면의 성문리 · 연화리 · 철봉리를 병합하여 성문리(聖文里)로, 강동군 시족면의 대천리 · 송학리 · 지산리 · 송화리를 병합하여 대천리(大泉里)로, 강동군 시족면의 노산리 · 삼산리 · 내리 · 토포리 · 성산리를 병합하여 노산리(魯山里)로, 강동군 시족면의 삼석리 · 청운리 · 건지리 · 석삼리를 병합하여 삼석리(三石里)로, 강동군 시족면의 호남리 · 남경리와 원탄면의 표대리를 병합하여 호남리(湖南里)로 각각 개편하여 1읍, 18리를 관할하였다.
1954년에 괴음리의 일부를 분리하여 입석리(立石里)를 신설하였다. 1959년에 평안남도 중화군의 일부 지역과 병합하여 평양시 승호구역으로 되어 승호읍을 승호동으로 개편하였고, 고비리 · 삼청리 · 화천리 · 금옥리를 강동군에, 호남리 · 원흥리 · 원신리 · 대천리 · 성문리 · 노산리 · 삼석리를 삼석구역에 각각 편입하였다. 중화군의 추당리(楸塘里) · 당정리(堂井里) · 대현리(大峴里) · 석정리(石井里)를 흡수하여 1동, 12리를 개편 관할하였다.
1960년에 추당리 · 당정리 · 대현리 · 석정리를 역포구역에, 금탄리를 사동구역에 각각 편입하였고, 강동군의 화천리 · 금옥리 · 삼청리를 재차 흡수하였다. 1963년에 승호동을 분리하여 승호일동(勝湖一洞) · 승호이동(勝湖二洞) · 만달리(蔓達里)를 신설하였고, 1965년에 대원리 · 오류리 · 이현리를 사동구역에 편입하였다. 1967년에 화천리를 화천동으로 개편하고 승호일동 일부를 분리하여 앞새동을, 삼청리 일부를 분리하여 독골동을 각각 신설하여 5동, 7리를 개편 관할하였다.
1972년에 입석리를 입석동과 남강동(南江洞)으로 분리하였고, 봉도리 일부를 입석동에 편입하였다. 1985년에 괴음리를 광정리(廣井里)로 개칭하였고, 1995년에 화천동을 화천일동(貨泉一洞)과 화천이동(貨泉二洞)으로 분리하였다.
평양시의 관할 면적을 줄이면서 평양시로부터 쫓겨나 황해북도에 편입되면서 군으로 지위가 바뀌었다. 2010년 5월 5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황해북도 승호군 리천리에서 신석기 유적 발굴을 보도함에 따라 승호군으로의 변경이 확인되었다.
2016년 3월 기준 총 1읍 3 로동자구 9리로 구성되며 군소재지는 승호읍이다. 승호군으이 재설치되면서 립석동이 승호읍이 되었고 승호 1동과 승호 2동이 로동자구로 개편되었으며, 화천 1동과 화천 2동이 화천리로 합쳐졌고 나머지 동은 리가 되었다. 2016년 3월 조선행정구역도에서 화천리가 화천 로동자구로 승격됨이 확인되었다. 실제로 북한 매체에서 '승호1 로동자구', '만달협동 농장'이라는 표기를 쓰기도 하였다.[5]
교통[편집]
구역내로 평덕선 철로가 통과하고 있으며 여기에 입석리역, 승호리역, 만달리역, 화천역, 금옥역 등 5개 역이 설치되어 있다. 도로망은 평양~흑령~강동, 평양~승호~강동 간 2급 도로가 개설되어 있으며 구역소재지인 입석과 구역내 각 동리를 연결하는 3급 도로망이 완벽하게 구축되어 있다.[6]
승호 수용소[편집]
승호 수용소는 평양시 내의 승호구역(현 황해북도 승호군)에 존재하던 수용소였다. 다른 수용소와는 달리 마을 형태 수용소가 아닌 감옥 형태의 수용소로, 수성 교화소와 유사하다.
북한 주민들에게는 요덕 제15호 관리소, 청진 제25호 관리소와 함께 공포의 대상이었다. 정치범 수용소 중에서도 가장 처참한 인권유린과 혹독한 탄압으로 악명을 떨쳤으며, 정치범에 대한 무차별적인 고문 또한 다른 수용소에 비해 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옥 형태의 수용소였으며 감시도 이중 삼중으로 철저했기 때문에 김일성이나 김정일의 특별 사면 없이 살아서 나가거나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탈북자 중에서도 경험한 사람이 없는 데다가 이미 폐쇄된 수용소이기 때문에 그 참상이 구체적으로 전해진 바는 없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의 경우 이 수용소의 비참함을 간접적으로나마 증언하고 있는데, 탈북자 출신의 조선일보 기자 강철환과 납북되었다가 가까스로 탈북에 성공하여 한국으로 돌아온 신상옥 감독이 바로 그들이다.
1994년 김일성 사후 김정일에 의해 전격 폐지되었다. 평양과 지나치게 가까웠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1991년 국제 인권단체인 엠네스티에서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의 실체에 대하여 최초로 폭로할 때 언급된 수용소였기 때문이다. 북한 정부는 폭로에 큰 충격을 받고 수용소의 정치범들을 재배치하였으며, 엠네스티로의 정보 유출 경로를 알아내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였으나, 끝끝내 알아내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북송교포와 일본인 처들도 수용되어 있었다고 한다.[7]
지도[편집]
※ 지도 위 글자를 클릭하면 해당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 ↑ 〈승호군〉, 《위키백과》
- ↑ 〈승호군〉, 《나무위키》
- ↑ 〈조선향토대백과: 황해북도 승호구역 지명유래〉, 《네이버 지식백과》
- ↑ 〈조선향토대백과: 황해북도 상원군 자연〉, 《네이버 지식백과》
- ↑ 〈조선향토대백과: 황해북도 승호구역 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 ↑ 〈조선향토대백과: 황해북도 승호구역 교통〉, 《네이버 지식백과》
- ↑ 〈승호 수용소〉, 《나무위키》
참고자료[편집]
- 〈승호군〉, 《위키백과》
- 〈승호군〉, 《나무위키》
- 〈승호 수용소〉, 《나무위키》
- 〈조선향토대백과: 황해북도 승호구역 지명유래〉, 《네이버 지식백과》
- 〈조선향토대백과: 황해북도 상원군 자연〉, 《네이버 지식백과》
- 〈조선향토대백과: 황해북도 승호구역 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 〈조선향토대백과: 황해북도 승호구역 교통〉,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