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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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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위치
황해남도 위치
송화군 위치

송화군(松禾郡)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황해남도 북서부에 위치해 있는 군이다.[1][2]

개요[편집]

송화군의 면적은 193.08km²이며 인구는 42,919명(2008)이다. 동쪽으로 삼천군, 서쪽으로 과일군, 남쪽으 장연군, 북쪽으로 은률군과 접해 있는 군이다. 동서(명례리~홍암리) 간의 길이는 11km이고, 남북(관양리~원당리) 간의 길이는 26km이며, 도 전체면적의 2.28%를 차지한다. 현재 행정구역은 1읍 10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군 소재지는 송화읍이다.

한국의 서단에 위치하여 강수량이 적어 농사보다는 농사와 과일 농사를 많이 한다.

송화군이란 이름은 1408년에 청송현과 가화현을 병합하면서 한 글자씩 따와서 송화현이라고 한 것이 시초이다. 1896년 황해도 송화군이 되었으며 1909년 풍천군(豊川郡, 현재의 과일군)을 병합하였다.

먹산, 수증사와 송화 온천이 명승지이다.[3]

자연환경[편집]

송화군은 북한의 서북저지대 남부저지에 놓여 있다. 북부에서 남부로 가면서 점차 낮아지는 지형을 이루고 있는데, 북부 구월산줄기(九月山-)에서 남서쪽으로 갈라지는 지맥에 먹산(657m), 월개산(月蓋山, 509m), 수리봉(435m) 등 산이 솟아 있다. 해발 100m 안팎의 야산과 언덕들이 송화군 경계를 따라 솟아 있으며 가운데로 가면서 낮아져 송화분지(松禾盆地)를 이룬다.

지질은 시생대 편마암, 편암, 석회암, 규암과 중생대 단천암군의 화강암 등이 구성암석으로 되어 있으며 여기에 금, 납, 아연, 수정, 이탄 등 지하자원이 분포되어 있다. 토양은 대부분이 갈색산림토양이며 일부 충적지토양, 논 토양도 있다. 일반적으로 토심이 40~50cm 정도이고 석비례땅이 넓게 분포되어 있다. 송화군은 바다와 떨어져 있고 북부와 서부 지역에 비교적 높은 산들이 솟아 있어 황해남도의 다른 지역에 비하여 연기온차가 큰 편이다.

연평균기온은 9.5℃, 1월 평균기온은 -6.1℃, 8월 평균기온은 23.9℃, 월평균최고기온은 15℃, 월평균최저기온은 4.6℃, 10℃이상 적산온도는 3,484℃이다. 연평균강수량은 975.1mm로서 황해남도의 평균강수량(1,030mm)보다 54.9mm 적다. 첫서리는 대부분 지역에서 10월 21일에, 산간지역에서는 10월 8일에 내리고 마감서리는 대부분 지역에서 4월 22일에, 산간지역들에서는 4월 10일에 내린다. 바람은 북서풍이 우세하다. 수계는 남부로 장연남대천이 북동~남서 방향으로 유입되어 있고 북부의 수리봉과 먹산에서 발원하는 약산천(藥山川), 위양천(外陽川), 모정천(茅亭川), 어천(魚川)이 장연남대천에 합류하고 있다.

저수지로는 주로 전후에 건설한 수증저수지(壽增貯水池), 약산저수지(藥山貯水池)를 비롯한 8개의 저수지가 있다. 온천리에는 송화온천(松禾溫泉)이 있다. 송화군에는 소나무, 잣나무, 노간주나무 같은 침엽수와 신갈나무, 떡갈나무, 단풍나무, 싸리나무, 개암나무 등 활엽수가 분포되어 있다. 광복 후 1,142정보의 잣나무숲, 41정보의 산초나무숲, 36정보의 동백나무숲을 비롯한 기름나무숲을 조성하였다.[4]

역사[편집]

송화군에서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의 유적유물들이 발굴된 것은 이 시기에 인류가 생존해 있었던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영역으로 되어 마경이(麻耕伊), 판마곶(板麻串)이라 하였고, 통일신라시대에는 굴천(屈遷)이라고 하였다. 고려왕조가 들어선 이후 995년에 관내도 청송현, 가화현에 속하였다. 1018년에 서해도 청송현, 가화현으로 되어 풍주(豊州) 관하에 소속되었으며, 1395년에 풍해도 청송현, 가화현으로 되었다. 1408년에 청송현과 가화현을 병합하여 풍해도 송화현으로 되었다. 1417년에 황해도 송화현으로 되었으며, 1895년에 해주부 송화군으로 되었다.

1896년 황해도 송화군으로 개편되면서 동련화면(東蓮花面), 방죽면(芳竹面), 상봉래면(上蓬萊面), 하봉래면(下蓬萊面), 상장양면(上長陽面), 하장양면(下長陽面), 중장양면(中長陽面), 상도원면(上桃源面), 하도원면(下桃源面), 서련화면(西蓮花面), 온정면(溫井面), 운산면(雲山面), 유산면(遊山面), 인풍면(仁風面), 진등면(眞等面), 풍해면(豊海面), 약산면(藥山面), 율리면(栗里面), 천동면(泉洞面), 상리면(上里面), 하리면(下里面), 동련방면(東蓮芳面) 등 22개 면을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시에 연방면(蓮芳面), 봉래면(蓬萊面), 장양면(長陽面), 도원면(桃源面), 연정면(蓮井面), 운유면(雲遊面), 진풍면(眞風面), 약산면, 율리면, 천동면, 상리면, 하리면, 풍해면 등 13개 면으로 개편되었으며, 1918년에 약산면을 송화면(松禾面)으로 개칭하였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 시에 따라 송화면, 율리면, 상리면, 진풍면, 풍해면, 천동면, 하리면의 전체 리와 연정면의 9개 리, 연방면의 7개 리, 운유면의 10개 리 그리고 삼천군(三泉郡) 초리면(草里面)의 1개 리와 궁흥면(弓興面)의 1개 리로 송화군을 구성하였는데, 이때 송화면의 읍내리를 송화읍(松禾邑)으로, 송화면의 선암리 · 약산리 · 생왕리를 병합하여 생왕리(生旺里)로, 송화면의 홍암리 · 화당리와 연정면의 화암리를 병합하여 홍암리(鴻岩里)로, 송화면의 무당리 · 부왕리와 용정리 일부를 병합하여 수증리(壽增里)로, 송화면의 용호리와 연정면의 두죽리 · 부산리를 병합하여 용호리(龍虎里)로, 송화면의 옥현리와 연방면의 명례리 그리고 신천군 초리면의 수원리를 병합하여 명례리(明禮里)로, 연방면의 다암리 · 방림리와 신천군 궁흥면의 성암리를 병합하여 다암리(多岩里)로, 연방면의 백화리 · 구탄리 · 마산리를 병합하여 구탄리(九灘里)로, 연방면의 연교리와 연정면의 운룡리 · 온수리 · 광대리를 병합하여 온천리(溫泉里)로, 연정면의 고양리 · 백석리 · 관어정리를 병합하여 관양리(觀陽里)로, 하리면의 수사리와 율리면의 대촌리 · 신촌리를 병합하여 산수리(山水里)로, 율리면의 대밀리 · 월현리 · 당잠리 · 세진리를 병합하여 율리(栗里)로, 율리면의 보덕리와 운유면의 당관리 · 당산리 · 조항리를 병합하여 운산리(雲山里)로, 운유면의 간촌리 · 다천리 · 사기리를 병합하여 사기리(砂器里)로, 운유면의 용수리 · 송학리를 병합하여 용학리(龍鶴里)로, 운유면의 송곡리 · 송현리와 풍해면의 천남리를 병합하여 송곡리(松谷里)로, 풍해면의 성상리 · 세교리와 하리면의 장천리를 병합하여 세교리(細橋里)로, 하리면의 노정리 · 안농리와 풍해면의 문헌리를 병합하여 장암리(長岩里)로, 풍해면의 성하리 · 천북리를 병합하여 풍해리(豊海里)로, 하리면의 청량리 · 오정리 · 두복리를 병합하여 오정리(五井里)로, 상리면의 도은리 · 철관리와 화천리 일부를 병합하여 수풍리(水豊里)로, 상리면의 신풍리 · 와룡리를 병합하여 신평리(薪坪里)로, 풍해면의 소사리 · 이현리를 병합하여 초도리(椒島里)로, 천동면의 포정리 · 석탄리 · 유포리를 병합하여 포구리(浦口里)로, 진풍면의 동현리 · 월사리를 병합하여 월사리(月沙里)로, 진풍면의 학계리 · 덕안리를 병합하여 덕안리(德安里)로, 천동면의 우영리 · 신촌리 · 대야리를 병합하여 신대리(新大里)로, 진풍면의 수산리 · 태을리 · 태양리를 병합하여 염전리(鹽田里)로, 진풍면의 석도리를 송화군 석도리(席島里)로, 진풍면의 내안리 · 덕정리를 병합하여 덕정리(德井里)로 각각 개편하여 1읍 29리를 관할하였다.

1954년 10월에 황해도황해남도황해북도로 분도되면서 황해남도 송화군으로 개편되었으며, 1958년에 세교리가 풍해리에 편입되었고, 1963년 3월에 풍해리, 신평리, 수풍리, 신대리, 염전리, 포구리, 덕안리, 월사리, 덕정리, 오정리, 장암리, 송곡리, 용학리, 사기리, 운산리, 율리, 산수리, 초도리, 석도리 등 19개 리를 분리하여 송화과수농장지구를 신설하였다.

1967년 10월에 은률군(殷栗郡) 원당리(院堂里)를 흡수하였고, 송화과수농장지구에 속하였던 19개 리를 분리하여 과일군을 신설하였으며, 1981년 생왕리를 약산리(藥山里)로 개칭하였다. 2003년 현재 행정구역은 1읍(송화읍), 10리(관양리, 구탄리, 다암리, 용호리, 명례리, 수증리, 약산리, 온천리, 원당리, 홍암리)로 구성되어 있다. 송화군 소재지는 송화읍이다.[5]

산업[편집]

송화군은 광복 전 장연남대천과 같은 을 끼고 있으면서도 관개체계가 되어 있지 않아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하였다. 조, 피, 수수 등을 주로 심었다. 광복 후 지방공업과 발전된 농업을 가진 지역으로 전변되었다. 지방공업은 식료, 일용품, 방직 및 피복, 편직, 기계, 건재, 종이, 화학, 제약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중에서 자체의 지방원료에 의한 식료품공업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밖에 목재일용품, 철제일용품, 수지일용품 등이 산출되고 있으며 구럭, 방석을 비롯한 왕골제품은 질이 좋아 다른 나라에도 수출된다.

농경지는 군 전체면적의 50%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논이 35%, 밭이 43%, 과일밭이 15%, 뽕밭이 6%이다. 주요 농산물은 벼, 옥수수, 콩, 팥, 녹두, 담배 등이 있다. 송화군은 예로부터 과일 산지로 알려졌다. 1961년 4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 북청확대회의 이후에 700여 정보의 과일밭을 새로 조성하여 야산과 언덕들을 과일동산으로 만들었다. 전후에 조성한 호두숲만 하여도 1,000여 정보나 된다. 과일 구성에서는 사과 35%, 배 44%이다. 이밖에 복숭아, 감, 살구, 대추, 포도, 단버찌, 자두 등이 있다.

과일군은 1909년 이래로 송화군에 속했으나 1967년 과수원이 밀집한 북서부 지역에 과일군이라는 이름을 붙여 과일 집중 생산지로 따로 분리되었다. 그러나 다른 논작물 및 밭작물과 함께 과일밭도 농경지의 상당수를 차지한다.

축산업에서는 소, 양, 염소, 돼지, 닭 등을 많이 사육하고 있으며 전문화된 돼지공장, 닭공장 등 축산기지가 마련되어 있다. 온천리, 약산리, 명례리, 관양리 일대에서는 양봉업이 성하다.[6]

교통[편집]

교통은 은률선과 장연선이 통과하고 있으며 여기에 송화역(松禾驛), 구탄역(九灘驛), 송화온천역(松禾溫泉驛)이 설치되어 있다.

은률선과 장연선이 송화군을 지나며, 그 분기역인 수교역은 지금은 삼천군으로 분리됐으나 현재의 송화군 경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은률선은 송화읍을 지나고, 은률선이 개통되기 전에 읍내에서는 수교역이나 송화온천역을 이용했다.

도로망은 사리원에서 재령, 신천을 거쳐 장연, 용연 방향과 과일, 은률 방향으로 이어지는 2급도로가 통과하고 있다. 송화~은률, 송화~장연, 송화~과일, 송화~삼천 간 정기 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황해남도 소재지인 해주시까지는 철길로 148km, 은률까지는 37km, 삼천까지는 22km이다.[7]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송화군〉, 《위키백과》
  2. 송화군〉, 《나무위키》
  3. 조선향토대백과: 황해남도 송화군 개요〉, 《네이버 지식백과》
  4. 조선향토대백과: 황해남도 송화군 자연〉, 《네이버 지식백과》
  5. 조선향토대백과: 황해남도 송화군 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6. 조선향토대백과: 황해남도 송화군 경제〉, 《네이버 지식백과》
  7. 조선향토대백과: 황해남도 송화군 교통〉,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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