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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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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천시(端川市)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남도의 북동쪽에 있는 도시이다. 동해에 접하고 남대천이 동쪽으로 흐르고 있다. 산지에 접해 있지만, 남쪽은 단천평야가 있다. 동쪽은 함경북도 김책시(대한민국에선 성진시), 서쪽은 허천군과 덕성군,남쪽은 동해,북쪽은 량강도 김형권군이다.

개요[편집]

  • 행정구역: 함경남도
  • 면적: 2,170km²
  • 인구: 345,875명(2008년)

연혁[편집]

고구려, 발해의 지배를 받았으며, 발해가 패망한 뒤에는 오림금촌(吳林金村)이라는 이름으로 여진족의 땅이었다. 고려 예종(睿宗) 2년에 윤관(尹瓘)이 여진족을 내쫓고 복주성(福州城)을 쌓았으나(동북 9성) 2년만에 성을 헐고 그 땅을 여진족에 반환하였다. 훗날 몽골 제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 관할로써 기록에는 당시 독로올(禿魯兀)이라는 지명으로 불렸다고 한다(《고려사》). 고려 말기 공민왕(恭愍王)이 반원정책을 시행하면서 쌍성 수복과 함께 고려의 영토가 되었다.

우왕 8년(1381년)에 단주안무사(端州安撫使)로 고쳤다. 이듬해 요심 초적들의 습격을 받았으며, 동왕 11년(1385년)에는 왜구가 침공하기도 했다.

조선 왕조가 개창되고 태조 7년(1398년) 지단주군사로 고쳤으며, 이 때에 '채리'로 아오, 상가사, 어파홍, 군대의 4곳이 설치되었다. 태종 9년에는 시리(실실리), 기원, 마곡 등 3개 역소가 설치되었고, 동왕 13년에 단천이라는 이름으로 고쳐졌다. 세종 3년에 심합배역이 더 설치되었고, 31년에 읍성을 쌓았다.

임진왜란 발발 당시 단천군수로 있던 강찬(姜燦)이 정문부의 의병에 호응해 거병하여 왜군을 몰아냈다. 숙종 31년에 이인엽(李寅燁)이 경연 석상에서 단천군수를 마천령(摩天嶺)을 맡은 방어사로 삼아 성진(城津), 길주(吉州)와 함께 수비하게 하자고 주장하였으나, 최석정(崔錫鼎)은 단천군수를 방어사로 삼을 필요 없이 단천과 길주가 함께 마천령을 지키고 안변과 회양이 함께 철령을 지키도록 하고, 평강 한 길은 두 도의 도신에게 물어 처리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고 주장하였다(《임하필기》).

1939년 10월 1일 단천면 일원, 복귀면 일부(두언태리, 오몽리, 룡암리)를 단천읍으로 승격하였다. 1952년에 일부를 광천군과 허천군에 넘겨줬다. 1974년에 광천군이 없어지면서 광천군을 흡수했다. 광천읍은 로동자구로 개편했다. 1983년 시로 개편하였다.

지리[편집]

북·동·서부는 높은 산지로 깊고 험한 골짜기가 있으며, 남쪽에는 단천평야가 있다. 북쪽에는 화산분출에 의해 이루어진 현무암대지가 있고 두류산(2,309m)이 솟아 있다. 동쪽에는 안반덕(1,830m)·소반덕(1,664m)·용연산(룡연산:1,598m), 서쪽에는 검덕산(2,151m), 만탑산(2,102m), 태소봉(2,084m), 은태산(1,712m), 산봉산(1,264m), 복개봉(1,565m), 개화산(1,310m) 등이 있다.

기반암은 주로 하부원생대 마천령계의 지층과 하부원생대 이원암군·중생대 단천암군·평강암군이며, 편마암·결정편암·대리암·규암·석회암·화강암·섬록암 등이 분포한다. 지하자원으로 납·아연·마그네사이트·금·동·몰리브덴·니켈·인회석·석탄·석면 등이 매장되어 있다. 특히 양질의 납·아연·마그네사이트 매장량이 많다.

연평균기온은 8.8℃, 연평균강수량은 674.7mm로서 타지역에 비해 적은 편이다. 하천은 북대천과 남대천 등 7개의 본류와 70여개의 지류가 있으며, 용덕(룡덕)저수지·금송저수지·송정저수지 등이 있다.

산림은 시면적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주요 수종은 소나무, 참나무, 잎갈나무, 자작나무, 사시나무, 잣나무 등이다. 해발고도 500m까지는 소나무숲이, 500m∼800m는 소나무·참나무의 혼합림이, 800∼1,200m 지대에는 신갈나무·갈참나무·박달나무·피나무·고로쇠나무 등 활엽수림이, 1,200∼2,000m 지대에는 잎갈나무숲이나 잎갈나무·분비나무의 혼합림이, 2,000m 이상 지대에는 사스래나무와 곱향나무·만병초 등이 자란다.

행정 구역[편집]

현재 단천시는 39동, 39리로 구성되어 있다.

  • 복천동
  • 남풍동
  • 백금산동
  • 영웅동
  • 금산동
  • 돈산동
  • 금골1동
  • 금골2동
  • 금골3동
  • 항구1동
  • 항구2동
  • 항구3동
  • 해안1동
  • 해안2동
  • 양산동
  • 내문동
  • 금봉동
  • 덕흥동
  • 대흥1동
  • 대흥2동
  • 대신동
  • 양천동
  • 북두동
  • 무학동
  • 룡대동
  • 동암동
  • 포거동
  • 광천동
  • 선광동
  • 백암동
  • 탐사동
  • 지초동
  • 전진동
  • 본산동
  • 사오동
  • 문화동
  • 직절동
  • 신단천1동
  • 신단천2동
  • 문호리
  • 신호리
  • 련대리
  • 양평리
  • 달천리
  • 송파리
  • 령산리
  • 백산리
  • 가원리
  • 쌍룡리
  • 신동리
  • 정동리
  • 석우리
  • 삼거리
  • 복평리
  • 오몽리
  • 장내리
  • 룡연리
  • 문암리
  • 돌산리
  • 답동리
  • 가응리
  • 덕주리
  • 화장리
  • 두연리
  • 송정리
  • 봉화리
  • 영평리
  • 룡잠리
  • 룡덕리
  • 신풍리
  • 운천리
  • 와동리
  • 신평리
  • 리파리
  • 증산리
  • 원산리
  • 룡흥리

산업[편집]

주요 공업은 광업·건재공업·금속공업·기계공업·전력공업이다. 1930년대 말 개발된 검덕광산에서 유색금속광물을 생산하는 검덕광업연합기업소가 있다. 이곳에서 생산된 납·아연 정광은 주로 단천제련소에 공급된다. 용양(룡양)·대흥지구는 유명한 마그네사이트 산지이며, 단천산화마그네슘공장이 있다.

건재공업은 시의 공업총생산액에서 큰 비중를 차지하며, 시멘트 벽돌 등도 생산한다. 또 광산기계공장·선박수리공장·기계공장·농기구공장 등이 있다. 발전소로는 허천강 4호발전소 등 중·소형발전소가 많다. 20여 정보의 염전과 40여 개의 공장이 있다.

시에는 단천수산사업소 등 3개소의 수산사업소와 8개소의 수산협동조합이 있다. 주요수산물은 명태·도루묵·가자미·이면수·송어·정어리·문어·해삼·게·섭조개·다시마·미역이다.

경작지는 논이 20%, 밭이 60%, 과수원 10%를 차지하며, 주요농산물은 쌀·옥수수·콩이다. 쌀은 시의 남부지역인 남대천 하류 연안의 단천평야에서 주로 생산된다. 무·배추·양배추·시금치·파·마늘·고추 등 채소를 재배하며 담배·박하·들깨 등의 특용작물도 재배한다. 축산업도 발달하여 검덕젖소목장·단천닭공장·단천오리공장·잠업농장 등이 있다.

교통[편집]

철도·도로·해상운수가 있다. 철도는 평라선·금골선·허천선이 있고 길이는 113.8㎞이다. 원산∼우암, 갑산군·이원군(리원군) 방면의 도로가 나 있다. 또 단천항·용대항이 있다.

증산리(甑山里)에는 다섯가지의 색이 골고루 물들어 아름다운 오색화강암(북한 천연기념물 295)이, 포거동(堡巨洞)에는 가장 아름답고 깨끗한 옥돌인 포거옥돌(북한 천연기념물 294)이, 이파리(리파리, 梨坡里)에는 세계적으로 감소종이며 특이한 생활습성을 가진 단천산양(북한 천연기념물 293)이, 두연리(斗淵里)에는 두연못 연꽃(북한 천연기념물 297)이, 달전리에는 단천만지송(북한 천연기념물 298)이 있다. 유적으로는 조선시대의 누정인 공민루와 동덕사가 있다.

문화[편집]

단천광업단과대학이 있으며 공장대학 3개소, 전문학교 4개소, 고등중학교 71개소, 인민학교 23개소, 유치원 90개소가 있다. 금골노동자문화회관을 비롯한 60여 개의 문화회관이 있으며, 26개의 병원·휴양소·정양소 등이 있다.

지도[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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