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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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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간군 위치

명간군(明澗郡)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북도 남부에 위치해 있는 군이다.[1][2]

개요[편집]

명간군의 면적은 1,117km²이며 인구는 99,557명(2008)이다. 북쪽은 어랑군, 남쪽은 명천군, 서쪽은 길주군과 동쪽은 동해에 접해있다. 동서(삼포리~부화리) 간 길이는 55km이고, 남북(청룡리~화룡리) 간 길이는 27km이며, 도 전체면적의 6.99%를 차지한다. 현재 행정구역은 1읍 3구 22리로 되어 있으며 군 소재지는 명간읍이다.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이름은 '영안군(永安郡)'이었는데, 이 이름의 유래가 참으로 괴이하다. 이 일대에 흥남공장의 분공장인 질소비료공장을 지은 사장의 성이 '나가야스(永安, 영안)'여서 분공장을 '영안공장'이라 했고, 이게 지역명으로 굳어져버린 것. 그러니까 멀리 송림시의 겸이포의 유래만큼이나 어이없는 유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가 자기네들도 이름이 잘못됐다는걸 알았는지 1961년 군내를 흐르는 명간천에서 유래한 '명간군'으로 이름을 고쳤다.[3]

자연환경[편집]

명간군의 지형은 산지평야로 이루어졌다. 산지는 명간군 면적의 85.6%를 차지하며 대부분 지역이 해발 400~600m사이의 야산으로 되어 있다. 명간군의 서부지역에는 함경산맥에서 갈라진 만탑산맥(萬塔山脈)이 북서~남동 방향으로 뻗어 있다. 여기에는 감토봉(甘吐峯, 1,583m), 상리봉(上里峯, 1,053m), 기운봉(起雲峯, 1,874m), 중평북산(中坪北山, 1,399m), 연두봉(連頭峯, 1,287m) 등 높은 산들이 솟아 있다.

칠보산지(七寶山地)의 일부분을 이루는 동부지역에는 천덕봉(千德峯, 985m), 강릉산(江陵山, 707m), 장쾌산(763m)과 같은 산들이 솟아 있다. 명간군의 중부 화성천연안은 길주-명천 지구대의 요함지로서 주로 평야와 해발 100~200m의 구릉지대로 되어 있다. 북동부지역은 명간군에서 전형적인 현무암대지로 되어 있다. 제4기에 형성된 이 대지면은 극동, 광암, 신양 일대를 비롯한 그 주변지역에 넓게 전개되어 있는데, 덕 웃면은 해발 150~250m, 상대적 높이 100~200m 정도이다. 이 현무암덕은 토층이 두텁고 평탄하며 새땅개간의 주요 대상지로서 대면적이 과수밭으로 개간 이용되고 있다.

명간군의 중부 하평리로부터 북동부 호남리에 이르는 화성천(化成川)연안은 비교적 넓은 충적평야로 되어 있어 명간군에서 주요 농업지대를 이룬다. 명간군은 24km에 달하는 해안을 끼고 있다. 여기에는 불전끝, 전끝과 같은 바위돌기부들과 양화만(良化灣), 삼포만(三浦灣) 그리고 해주도(海州島)를 비롯한 5개의 섬이 있다. 명간군의 지질은 주로 중생대 대보계 재덕통, 신생대 함경계 용동통, 명천통, 칠보산층군, 제4기층과 단천암군, 학무산암군으로 이루어졌다. 명천통의 평륙층에는 유연탄이 많이 분포되어 있다.

이 밖에 명간군에는 팽윤토, 고령토, 주물사를 비롯한 지하자원이 있다. 연평균기온은 7.2℃, 1월 평균기온은 -9.7℃, 8월 평균기온은 22℃, 최고극기온은 39℃(1980년 6월 5일), 최저극기온은 -27.8℃(1977년 1월 29일)이다. 연평균일조율은 53%, 연안개일수는 46일 정도이다. 연평균강수량은 600mm이다. 최고강수량은 1,160.9mm(1960년), 최저강수량은 370mm(1937년)였다. 10℃이상 적산온도는 읍지구에서 2,998℃, 서부 부암에서 2,850℃이다.

첫서리는 읍지구에서 10월 초에, 서부 부암지구에서 9월 말에, 마감서리는 읍지구에서 5월 초에, 서부 부암지구에서 5월 중순에 내린다. 땅이 어는 깊이는 명간에서 60cm이다. 가을, 겨울, 봄에는 남서풍이 우세하고 여름에는 북동풍이 우세한다. 바람이 가장 강하게 부는 시기는 봄철이다. 4월 평균풍속은 3.4m/s이다.

명간군에는 어랑천(漁郞川)의 지류인 화성천과 이 하천에 유입되는 이평천(梨坪川), 웅주천(雄州川), 부암천(富岩川), 야자기천, 봉암천(鳳岩川), 송내천(松內川)을 비롯한 30여 개의 하천이 있다. 그중 길이가 5~10km에 달하는 하천이 17개, 10~20km의 하천이 10개, 20~50km의 하천이 2개, 50km 이상 하천이 2개이다.

명간군에는 극동, 광암, 신양, 입석, 명남, 양천 일대의 관개용수보장에서 의의가 큰 용산저수지(龍山貯水池), 청룡, 고성, 하월, 상장, 용반 일대의 관개용수보장에서 의의가 큰 청룡저수지(靑龍貯水池)가 축조되어 있다. 산림은 명간군 전체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소나무와 참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정보당 축적량은 41m3이다. 산림자원이 풍부한 지역은 부암리, 부화리를 비롯한 군의 서부지역이다.

산림 속에서는 머루, 다래, 돌배 등 산과실과 고사리, 고비, 참나물 등 산나물이 많이 자란다. 부령군은 소나무숲이 넓은 지역에 분포되어 있고 송이버섯의 생장에 유리한 자연지리환경이 있어 송이버섯이 많이 발생한다. 특히 화룡, 호산, 입석, 양화, 삼포, 양천, 호남, 부암 일대는 송이버섯산지로 유명하다. 명간군은 동물분포에서 조선저지소구에 속한다. 산에는 여우, 산달, 오소리, 너구리, 노루와 같은 동물들이 많이 서식하고 있다.

청서, 수달, 검은담비, 사향노루와 같은 짐승은 이평 일대의 깊은 산 속에 드물게 나타난다. 이평 일대에는 또한 북방계통의 동물로 알려진 큰 숫돌나비가 있다. 토양은 표백화갈색산림토양, 표백성토양, 갈색산림토양, 충적토, 논토양으로 이루어졌다. 표백성토양은 일부 해발이 높은 산들에 점상으로 분포되어 있다.[4]

역사[편집]

명간군 지역의 화룡리에서 도룡봉원시유적이 발굴된 것으로 보아 원시사회에 이미 사람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주변의 경성군과 청진지역에서 발굴된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 뗀석기 등 유물들이 유력한 증거로 되고 있다. 『사기』에 의하면 기원전의 여러 세기동안 숙신(肅愼), 읍루(挹婁), 예맥(濊貊), 옥저(沃沮), 부여(扶餘) 등 부족국가가 명간군 지역에서 흥망성쇠를 거듭하였으며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판도에 들어 있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일시간 당나라에 예속되어 있다가 발해국 영역에 편입되었다. 고려 초기 발해가 멸망한 뒤 명간군 지역은 여진의 관하에 있었다. 1107년(예종 2년)에 윤관(尹瓘)이 대군을 이끌고 북벌에 나섰을 때 명간군 지역은 2년여 세월동안 고려의 지배 하에 있다가 다시 금나라의 속지로 되었다.

1234년(고종 21년)에 금나라가 패망하자 원나라에 예속되었다. 고려 공민왕 때 강력한 북진정책으로 명간군 지역은 다시 수복되고 길주만호부(吉州萬戶府)에 소속되었다. 1398년(태조 7년)에 북도의 행정구역을 분할할 당시 명간군 지역을 명원역(明原驛)이라 하였고 당시 길주목(吉州牧) 관하에 있었다. 1461년(세조 13년) 이시애(李施愛)의 난(亂) 평정 후 길주목이 길성현(吉城縣)으로 격하되어 영평령 이북을 경계로 절반 영지를 분리하여 명천현(明川縣)을 설치하였다.

1512년(중종 7년)에 길성현에 목사(牧使)와 판관을 두고 다시 길주목으로 승격되면서 명천현을 예속시켰다가 이듬해인 1513년에 명천현을 복귀시켰다. 1517년(중종 12년)에 명천읍성을 축조하고 1605년(선조 38년)에 명천부로 승격되었다.

1895년(고종 32년)에 갑오경장으로 지방행정 개편이 시행되면서 경성부(鏡城府) 명천군으로 되어 현재 하우리 지역에 군 소재지 읍내동(邑內洞)을 두고 하우(下雩), 상우(上雩), 아간(阿間), 상가(上加), 하가(下加), 상고(上古), 하고(下古) 등 7사를 관할하였다.

1896년(건양 1년)에 다시 13도제를 실시하면서 함경북도 명천군으로 되어 하우사를 하우면(下雩面)으로, 아간사를 아간면(阿間面)으로, 상가사를 상가면(上加面)으로, 하가사를 하가면(下加面)으로, 상고사를 상고면(上古面)으로, 하고사를 하고면(下古面)으로, 상우사를 상우북면(上雩北面)과 상우남면(上雩南面)으로 각각 개편하여 8개 면을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시에 경성군의 동면(東面)과 서면(西面)을 흡수하여 10개 면을 관할하였다.

1937년에 군 소재지가 하우리로부터 오늘의 명간군 용반노동자구(龍蟠勞動者區)에 천이되었고, 광복 직후에 상우북면과 상우남면이 각각 북면과 남면으로 개칭되었다. 당시 군은 오늘의 명천군, 명간군, 화대군의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에 따라 명천군 북면 · 하우면 · 서면의 전체 리와 동면의 11개 리, 남면의 10개 리, 경성군 어랑면의 3개 리를 통합하여 영안군을 구성하였는데, 서면의 삼향리와 지경리 일부를 병합하여 영안읍(永安邑)을, 하우면의 노동리와 명천리를 병합하여 하우리(下雩里)를 각각 신설하고, 남면의 신설리 · 청룡리를 병합하여 청룡리(靑龍里)로, 남면의 규동리 · 부암리 · 측삼리를 병합하여 부암리(富岩里)로, 남면의 마전리와 상장리를 병합하여 상장리(上場里)로, 하우면의 상월리와 북면의 하월리를 병합하여 하월리(下月里)로, 북면의 용반리 · 하장리와 용덕리 일부를 병합하여 용반리(龍蟠里)로, 북면의 상아리 · 세이리와 용덕리 일부를 병합하여 용덕리(龍德里)로, 북면의 중항리 · 부화리와 서면의 서남리 일부를 병합하여 부화리(富禾里)로, 북면의 웅평리와 남면의 웅주리를 병합하여 웅평리(雄坪里)로, 북면의 장포리 · 웅점리와 서면의 서삼리 일부를 병합하여 웅점리(熊店里)로, 하우면의 용전리와 하평리를 병합하여 하평리(下坪里)로, 하우면의 석우리와 함진리를 병합하여 함진리(咸鎭里)로, 동면의 장덕리 일부와 서면의 극동리, 신창리 일부를 병합하여 극동리(極洞里)로, 서면의 평기리와 용동리를 병합하여 용동리(龍洞里)로, 서면의 입석리와 산성리를 병합하여 입석리(立石里)로, 하우면의 근동리와 명간리를 병합하여 근동리(芹洞里)로, 동면의 광암리와 수암리를 병합하여 광암리(廣岩里)로, 동면의 다진리와 삼포리를 병합하여 삼포리(三浦里)로, 서면의 우동리와 양화리를 병합하여 양화리(良化里)로, 동면의 학암리와 양천리를 병합하여 양천리(楊川里)로, 동면의 호남리와 발하리를 병합하여 호남리(湖南里)로, 동면의 신양리 · 용암리와 장덕리 일부를 병합하여 신양리(新楊里)로, 경성군 어랑면의 화룡리 · 용양리 · 교향리를 병합하여 화룡리(花龍里)로, 남면의 내포리와 고성리를 병합하여 고성리(古城里)로, 서면의 명남리와 고삼리를 병합하여 명남리(明南里)로, 하우면의 용산리와 서면의 지경리 · 신창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용산리(龍山里)로, 하우면의 백록리를 명간군 백록리(白鹿里)로, 서면의 호산리를 화성군 호산리(虎山里)로, 북면의 이평리를 화성군 이평리(梨坪里)로 각각 개편하여 1읍 29리를 관할하였다.

1953년 12월에 입석리 일부 지역이 명남리에 편입되는 동시에 명남리 일부 지역이 입석리에 편입되었고, 1954년 10월에 웅평리는 부화리에, 삼포리 일부 지역은 양화리에, 양화리 일부 지역은 명천군 황진리(黃津里)에, 용동리 일부 지역은 영안읍에 각각 편입되었으며, 1959년 2월에 이평리가 웅점리에 흡수되면서 폐지되었다. 1967년 10월에 영안군이 명간군(明澗郡)으로 개칭되면서 영안읍은 명간읍(明澗邑)으로 개칭되었고, 웅점리가 부화리에, 용산리가 백록리에 각각 편입되면서 폐지되어 1읍 25리를 관할하였다.

1972년 11월에 용반리가 노동자구로 승격되었고, 1981년 2월에 극동리가 노동자구로 승격되었으며, 1981년 10월에 명간군이 다시 화성군(化成郡)으로 개칭되면서 명간읍이 화성읍(化成邑)으로 개칭되었다. 2001년 3월 양화리가 노동자구로 승격되었다. 2006년 현재 행정구역은 1읍(명간읍), 3구(극동노동자구, 양화노동자구, 용반노동자구), 22리(고성리, 광암리, 근동리, 용덕리, 용동리, 입석리, 명남리, 백록리, 부암리, 부화리, 삼포리, 상장리, 신양리, 양천리, 청룡리, 하우리, 하월리, 하평리, 함진리, 호남리, 호산리, 화룡리)로 되어 있다. 명간군 소재지는 명간읍이다.[5]

산업[편집]

명간군은 광복 전에 조, 수수, 보리 같은 것을 주로 심어오던 낙후한 농업 지역이었으며 공업으로는 일제가 군수품 생산을 목적으로 하여 설치한 화학공장이 하나 있었다. 광복 후 명간군은 전국적 의의를 가지는 화학공업을 비롯한 공업과 발전된 농업, 수산업을 가진 지역으로 전변되었다. 공업에서 기본은 화학공업이다. 여기에서는 베이클라이트를 비롯한 화학제품이 생산된다. 화학공업 다음자리를 차지하는 채굴업에서는 석탄, 팽윤토, 고령토, 주물사 생산이 큰 의의를 가진다.

석탄은 화성 일대에서, 고령토는 부화리에서, 팽윤토는 용덕리에서, 주물사는 신양리에서 많이 산출된다. 명간군의 고령토와 팽윤토는 질이 좋아 전국의 도자기공장들과 건재공장, 요업공장, 전기절연기자재생산공장들에 공급된다. 기계공업에서는 탄광들에서 이용하는 축전지, 안전모, 탄광설비부속품 그리고 농기구와 농기계들이 생산된다.

명간군에서는 지방의 풍부한 석탄, 점토자원에 기초하여 시멘트와 벽돌을 생산하고 있으며 임산업과 목재 가공공업도 발전시켜 갱목, 합판 등을 생산하고 있다. 지방공업에서 의의가 큰 것은 일용품생산이다. 그 중 수지 일용품은 종류가 다양할 뿐 아니라 질이 좋아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명간군에서는 또한 식료품, 천과 옷, 가구류, 교구비품, 학용품, 철제일용품, 털가죽제품, 의약품, 질그릇, 오지관 같은 것도 생산된다.

군의 농업은 곡물 생산을 기본으로 하는 농산업과 축산업, 과수업 등으로 이루어졌다. 농경지는 군 전체면적의 11%를 차지하며 그의 95%가 화성 천연안과 동부산지대에 분포되어 있다. 농경지에서 논이 39%로서 그 면적은 함경북도에서 어랑군 다음 자리를 차지한다. 농산업에서 기본은 곡물과 채소, 공예작물 생산이다. 주요 곡물은 벼, 옥수수, 콩 등이 있다.

옥수수는 전반지역에서 재배되고 있으나 논이 적은 화성천 상류 일대에서 주로 재배된다. 백록리와 용반 일대는 군에서 옥수수를 가장 많이 재배하는 지역이다. 벼는 극동, 광암, 신양, 입석 일대를 비롯한 화성천 하류 일대에서 많이 재배한다. 주요 채소는 배추, 무, 양배추, 시금치, 오이, 양파, 고추, 파, 마늘 등이 있다. 주로 읍지구와 노동자구 그리고 그 주변에서 많이 생산된다. 공예작물에서 기본은 담배이다.

그 재배지역은 호남, 양천, 명남, 백록, 함진, 용반, 상장, 청룡, 고성 일대이다. 명간군에는 규모가 큰 닭 공장과 종축장들이 있다. 축산업이 발달되어 있는데 닭, 토끼, 염소, 양, 돼지, 오리 등을 사육하고 있다. 명간군의 과수밭면적과 그 생산량은 함경북도에서도 손꼽히고 있다. 명간군에서는 극동, 광암 일대의 덕지대와 하천연안의 구릉지대들을 개간하여 많은 과수밭을 조성하였다. 과일에서 배가 기본인데, 이 지역에서 재배되는 배는 당분이 많고 알이 크며 색깔이 좋아 명산물로 알려졌다.

이외 군에서는 사과, 복숭아, 백살구, 포도와 같은 과일도 생산된다. 군에서는 양화만, 삼포만과 같은 어항조건이 좋은 지역에 수산기지를 조성하고 중세소어업을 기본으로 하여 명태, 정어리, 가자미, 임연수어, 낙지, 문어, 미역 등 수산물을 생산하고 있다. 또한 해안에 천해양식장을 넓은 수역에 걸쳐 조성하고 다시마, 섭, 가리비 같은 것을 생산하고 있다.[6]

교통[편집]

교통은 명간군의 중부로 평라선이 통과하고 있다. 평라선이 명간군 내에서 통과하는 길이는 40km이며 그 사이에는 내포역, 용반역, 상룡전역, 용동역, 삼향역, 극동역, 조막산역 등이 설치되어 있다.

도로 교통은 평라선과 병행하여 원산~우암 간 1급도로가 달리고 있으며 화성~양화, 화성~호산, 화성~근동, 화성~청룡, 화성~평륙 간 정기 버스가 운행되고 있다.[7]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명간군〉, 《위키백과》
  2. 명간군〉, 《나무위키》
  3. 조선향토대백과: 함경북도 명간군 개요〉, 《네이버 지식백과》
  4. 조선향토대백과: 함경북도 명간군 자연〉, 《네이버 지식백과》
  5. 조선향토대백과: 함경북도 명간군 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6. 조선향토대백과: 함경북도 명간군 경제〉, 《네이버 지식백과》
  7. 조선향토대백과: 함경북도 명간군 교통〉,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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