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산군
※ 지도 위 글자를 클릭하면 해당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
맹산군(孟山郡)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안남도 북동부에 위치해 있는 군이다.[1][2]
개요[편집]
맹산군의 면적은 723.13㎢이며 인구는 48,155명(2008)이다. 동쪽은 함경남도 요덕군, 서쪽은 덕천시와 북창군, 남쪽은 신양군, 북쪽은 녕원군과 접해 있다. 청 소재지는 맹산면 수정리이다.
내륙지방이며 낭림산맥이 동쪽에 있어서 기후는 추운 편이다. 군소재지와 각 리에는 문화회관이, 맹산읍에는 경기장이 있다. 군인 민병원을 비롯한 예방치료 기관들과 요양소 3곳, 위생방역소가 있다.[3][4]
자연환경[편집]
대동 산지의 북동부에 있는 산간 지대이다. 동쪽에는 북대봉산맥이 함경남도 요덕군과 경계를 이루면서 거의 남북 방향으로 길게 뻗어 있고 여기에 노란봉(1,501m)·병풍산(1,584m)·민봉산(1,133m) 등 높이 1,000m가 넘는 산들이 솟아 있다. 북쪽 영원군의 경계에는 북대봉산맥의 지맥에 더운봉(1,593m)·만진덕산(1,159m)·약대산(972m)이, 남쪽에는 북대봉산맥에서 갈라진 천성산맥에 북산(955m)·사악산(870m)이 솟아 있다. 이밖에도 감투봉(1,313m)·철옹산(1,093m)·소가래봉(961m) 등의 높고 험한 산들이 있다. 기본수계는 대동강의 지류들인 마탄강·동면강·맹산강으로 길이가 20㎞ 이상이다. 마탄강은 맹산령에서, 동면강은 거산령에서, 맹산강은 큰고개에서 발원하여 서쪽 경계지대에 있는 금성호로 들어간다. 남쪽에는 관개용 정평저수지가 있고 서쪽에는 수력발전에 이용되는 금성호의 일부가 있다. 지형은 서부로 가면서 낮아지면서 맹산분지와 소규모의 분지를 형성한다. 분지 안의 맹산읍·평지리·지성리·신흥리·용암리(룡암리)·송광리 일대에는 좁고 긴 평야들이 펼쳐져 있다. 동부 중흥리 일대는 높이 600m 이상의 고위평탄면을 이룬다. 가장 높은 곳은 더운봉(1,593m)이고 가장 낮은 곳은 지성리의 마탄강 골짜기 바닥(170m)이다. 군 면적의 약 86%가 산림으로 임산자원이 풍부하다. 산림 가운데 침엽수림이 31%, 활엽수림이 58%, 혼합림이 11%이다. 참나무·자작나무·단풍나무·잎갈나무·리기다소나무·잣나무·황철나무들이 많이 자라며 해발고도 1,000m 이상 지역에는 아한대성 침엽수인 분비나무·가문비나무·전나무 등이 분포한다. 산에는 머루·다래·밤·도토리와 같은 산과일과 고사리·참나물·두릅 등의 산나물, 만삼·당귀·창출 등 180여 종의 약재가 있다. 곰·멧돼지·사향노루와 같은 짐승들도 산다. 기반암은 석회암·돌로마이트·화강편마암이고 토양은 포드졸성갈색산림토·갈색산림토·충적토로 이루어져 있다. 전반적으로 석회암지대인 맹산군은 예부터 샘이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새마을리와 양산리를 비롯하여 곳곳에 100~300ℓ/s의 물이 솟아나오는 샘들이 많다. 지성리에는 약수가, 유승리에는 온천이 있다. 기후는 기온의 교차가 큰 전형적인 대륙성기후의 특성을 띤다. 도에서 연평균기온과 1월평균기온이 가장 낮은 군의 하나로 연평균기온은 7.3℃, 1월 평균기온은 -11.5℃, 8월평균기온은 22.7℃이다. 연평균강수량은 1,339㎜로서 도에서 북창군 다음으로 많다. 연강수량의 58%가 7월과 8월에 내린다.[5]
역사[편집]
이 지역은 처음에 고조선의 영역이었으나, 고조선이 망하자 한때 낙랑군의 패수현(浿水縣)에 속하였다. 그 뒤 고구려가 고대국가로 성장하면서 한반도로 세력을 뻗치자 247년(동천왕 21)에 고구려에 귀속되었다. 343년(고국원왕 13) 평양 동황성(東黃城)으로 일시 천도하고 5부 176성을 두었을 때, 이 곳에는 철옹성을 설치하였다.
668년 고구려가 나당연합군에게 망하자, 한반도 지배에 야심을 품은 당나라가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두고 고구려 땅에 42주제를 실시했을 때, 이곳은 맹주(孟州)가 되었다. 당나라 군대는 다른 점령지에서와 같이 마구 약탈을 일삼았으며 이 때 불각(佛閣)이 3개나 파괴되었다.
당나라 군대는 676년 신라에 의해 완전히 축출되었으나, 통일신라의 영토가 대동강 이남으로 한정되었기 때문에 맹산은 신라의 영역 밖에 놓이게 되어 여진족이 넘나드는 가운데 황폐해졌다.
고려태조의 북진정책에 따라 이 지방이 수복되어 안북부(安北府)에 속했으나 실제로는 여진족이 그대로 살고 있었다. 993년(성종 12) 거란이 고려의 서북지방을 쳐들어왔는데, 이듬해 중군사(中軍使) 서희(徐熙)가 외교담판에 성공해 거란군을 철수시키고 강동 6주를 얻어 내 압록강 동쪽의 여진족을 몰아냈다. 이때 지금의 안주군 동면 맹주리에 맹주를 설치하였다.
1019년(현종 10) 맹주방어사를 지금의 영흥군 횡천면 산성리에 두었다. 고려는 1033년(덕종 2)부터 1044년(정종 10)에 이르는 12년 동안 압록강 입구 함원(咸遠 : 지금의 義州)으로부터 안수(安水 : 지금의 价川)·영변(寧邊)·맹산을 거쳐 함경도의 영흥·정평(定平)·도련포(都連浦)에 이르는 천리장성을 축조하였다. 이는 거란족의 침입에 대한 방비인 동시에 강성해지는 여진족에 대한 대비책이었다. 이 무렵 맹주에 목사가 주류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뒤 몽고군의 침략이 심해져 이 곳에 인적이 드물어지자 1257년(고종 44)은주(殷州, 順川郡 殷山)에 병합되고, 1261년(원종 2)안주현(安州縣)의 속현(屬縣)으로 편입되었다. 1270년 고려의 항전을 꺾은 원나라가 동녕부(東寧府)를 설치했을 때는 그 압제하에 놓여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1290년(충렬왕 16)동녕부가 철폐되자 맹산 땅에 다시금 고려의 행정력이 뻗쳐 그 해에 철성(鐵城)으로 부르고 성주를 파견해 행정 및 군사업무를 겸임하게 하였다. 1389년(공양왕 1)에 일반행정구역으로 체제를 바꾸어 현령을 두고 철성현(鐵城縣)이라 불렀다.
고려 말에는 홍건적이 넘나드는 일도 있었으나 조선 건국 후 서북지방에 대한 지배력이 강화되면서 1400년(정종 2)에 안주(安州)에 합해졌다. 그 뒤 1413년(태종 13)에 서북면을 평안도로 정하고 관찰사를 두게 되었을 때 다시 안주에서 분리되어 맹산현이 설치되었다.
1414년덕주(德州 : 지금의 德川)와 합해 맹덕현(孟德縣)을 설치했다가 이듬해에 다시 분할해 맹산현이라 하고 현감을 두었다. 이 때의 맹산현감은 병마절제도위(兵馬節制都尉)를 겸하였다.
1896년(고종 33)에 평안도가 남·북도로 분할될 때 평안남도에 속하였다. 8·15광복 전에는 맹산면(孟山面)·동면(東面)·원남면(元南面)·학천면(鶴泉面)·봉인면(封仁面)·옥천면(玉泉面)·지덕면(知德面)·애전면(窮田面) 등 8개 면 85개 리로 되어 있었다.
1949년 10월 북한은 맹산면 향내리를 오산리·북상리로, 동면 대흥리를 대흥리·신흥리로, 원남면 중추리를 추리·중평리로, 학천면 가리를 가리·신평리로, 옥천면 남양리를 남양리·곤동리로, 송사리를 송사리·신풍리로, 신석리를 신리·석리로, 회안리를 회안리·선유리로 나누었다.
1952년 12월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 때 면을 폐지하면서 옥천면·봉인면·학천면이 신설된 북창군에 이관되었고 함경남도 영흥군 횡천면의 대흥리·중흥리·산성리를 흡수·통합하였다. 1953년 12월 인흥리 일부가 시억리에, 목장리 일부가 중흥리에, 유승리 일부가 영운리(령운리)에, 장현리 일부가 유승리에 편입되었다. 1967년 10월 방목리·목장리가 합쳐져 양산리가 되었고 장현리가 갈라져 은포리와 유승리에 흡수·통합되었다.
1981년 10월 향교리가 새마을리로 개칭되었다. 현재 행정구역은 맹산읍과 새마을·장동·송광·매향·정평·수전·신상·주포·기양·인흥·시억·대흥·평지·지성·신흥·용암(룡암)·송산·광하·양산·은포·풍림·유승·영운·중흥리 등 1개 읍 24개 리로 이루어져 있다. 군소재지는 맹산읍이다.[6]
산업[편집]
경작지는 평안남도 경지면적의 약 2.8%, 군 면적의 9.5%를 차지한다. 그 중에서 밭이 77%, 논이 9.7%로 주로 밭농사가 행해진다. 경작지의 대부분은 높이 200~300m 지역에 있다. 주요 농산물은 옥수수·쌀·콩·수수이다. 옥수수는 중흥리를 비롯하여 대부분 지역에서, 쌀은 맹산분지와 맹산강·마탄강 연안에 있는 평지리·용암리·맹산읍 일대에서 주로 생산된다.
채소류는 비닐하우스 재배에 의한 생산 비중이 높고 오이·고추·쑥갓 등이 나온다. 특히 중흥리는 마늘 생산으로 유명하며 특용작물로는 잎담배를 재배한다. 또한 석회암 지대에서는 뽕나무가 잘 자라는 조건을 이용하여 누에를 많이 친다. 뽕밭은 전체 경지면적의 약 8.6%를 차지하며 뽕밭 면적의 약 14%가 은포리에 있다. 동부의 고위평탄면에는 수백 정보의 방목지가 펼쳐져 있다. 이곳에서는 주로 소와 양을 기르며 특히 양산리에서는 수천 마리의 양을 사육한다.
군에는 철·망간토·금·납·수은·인회석·무연탄·석회석·토탄 등의 지하자원이 매장되어 있다. 유승리 일대의 인회석과 맹산읍·새마을리·지성리·송광리 일대의 석회석은 질이 매우 좋다. 무연탄은 송광리에 매장되어 있다. 군내에는 식료품·직물·피복·일용품·건재·종이·제약 공장 등이 있으며 이들 공장에서는 600여 종의 제품이 생산된다. 군 공업 총생산량의 약 30%를 차지하는 식료품공업 부문에서는 된장·간장·맥주·술·사이다·식초 등 40여 종의 식료품이 생산된다. 특히 만삼술을 비롯한 주류는 유명하다.[7]
교통[편집]
맹산군은 평안남도의 동부 내륙 지대에서 동서남북 지방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이다. 북대봉산맥의 맹산령을 넘는 동서 방향의 순천~금야 간 도로와 북쪽의 두류고개를 지나는 남북 방향의 희천~평산 간 도로가 맹산읍에서 만난다. 이 길들을 통하여 영원군·북창군·양덕군, 함경남도 요덕군과 연결된다. 북청군으로 지나는 평덕선 철도의 옥천역까지는 24㎞이며 옥천~맹산~영원~대흥 사이는 주요 버스 노선이다. 북창까지는 28㎞, 덕천까지는 26㎞, 영원까지는 36㎞, 도소재지인 평성까지는 110㎞이다.[8]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 ↑ 〈맹산군〉, 《위키백과》
- ↑ 〈맹산군〉, 《나무위키》
- ↑ 〈두산백과: 맹산군의 사회문화〉, 《네이버 지식백과》
- ↑ 〈맹산군〉, 《한국민족문화대박과사전》
- ↑ 〈두산백과: 맹산군〉, 《네이버 지식백과》
- ↑ 〈두산백과: 맹산군의 연혁〉, 《네이버 지식백과》
- ↑ 〈조선향토대백과: 맹산군의 산업〉, 《네이버 지식백과》
- ↑ 〈조선향토대백과: 맹산군의 교통관광〉,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 〈맹산군〉, 《위키백과》
- 〈맹산군〉, 《나무위키》
- 〈두산백과: 맹산군의 사회문화〉, 《네이버 지식백과》
- 〈맹산군〉, 《한국민족문화대박과사전》
- 〈두산백과: 맹산군〉, 《네이버 지식백과》
- 〈두산백과: 맹산군의 연혁〉, 《네이버 지식백과》
- 〈조선향토대백과: 맹산군의 산업〉, 《네이버 지식백과》
- 〈조선향토대백과: 맹산군의 교통관광〉,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