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마구역
※ 지도 위 글자를 클릭하면 해당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
천리마구역(千里馬區域)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남포시 북동부에 위치해 있는 구역이다.[1][2]
개요[편집]
천리마구역의 인구는 139,489(2008)명이다. 서쪽으로 강서구역, 북쪽으로 평안남도 대동군, 남쪽으로 대안구역과 경계를 접하였다. 명칭은 전설상의 말인 천리마에서 유래하고, 이 곳에 있는 제강소가 천리마운동의 발상지로 여겨지는 데에서 이름 붙여졌다. 평양 시내를 통과하고 남북으로 흐르는 대동강의 서안에 있다. 천리마구역은 광복 당시 평안남도 강서군의 초리면, 보림면, 유치면 지역이었다.
미국 외교전문지 디플로맷(The Diplomat)은 강선 우라늄시설은 평양 외곽 천리마구역에 위치하며 북한의 영변시설 외 비밀 핵시설이라고 밝혔다. 이는 북한이 2000년부터 지어온 것으로 판단되며 만약 이가 사실이라면 북미관계 개선 및 북미정상회담 진행에 있어서 차질이 있을 것이다.
구글 지도에는 평양시 소속으로 되어있지만 명백한 오류다. 실제 북한 언론에서도 남포시 소속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특히나 구글 지도에는 중화군 등이 평양시 소속으로 잘못 나와있기도 하는 등 오류가 많다.
자연환경[편집]
해안을 따라 서북쪽에 석다산(石多山, 271m)이 있고, 서남쪽에 운룡산(雲龍山, 356m)·봉황두산(鳳凰頭山), 동남쪽에 무학산(舞鶴山, 346m)·서학산(棲鶴山, 272m) 등이 솟아 있으며, 이 밖에 왕등산이 있다. 그 밖의 지역은 대체로 평야 지대이다.
평야를 흐르는 작은 하천들은 대개 서해로 흘러들어 가지만, 동부지역의 광탄천(廣灘川)·수교천(水橋川) 등은 대동강으로 흘러든다. 서한만의 연안에는 포구도 있으나 교통과 어업에는 그다지 이용되지 못하고 있으며, 보림면의 보산항(保山港)은 해로로 활용되었다.
다만 여러 곳에서 간척사업이 활발히 진행되어 대동강 하류의 하중도(河中島)인 합도(蛤島)에는 80여 가구가 살고 있으며, 이들에 의해 논밭이 개관되었다. 함종면에서 해안으로 810m 지점에는 이압도(二鴨島)와 북조압도(北漕鴨島)가 있는데, 북조압도에는 특히 어항이 발달되어 있다.
이 밖에도 소당도(素堂島)·무도(巫島)·초도(草島)·소초도(小草島)·전도(箭島) 등의 섬이 서해에 있다. 기후는 대체로 대륙성기후에 속하나 해양에 접해 있으므로 기온은 비교적 온화한 편이다.
연평균기온 10.2℃, 1월 평균기온 -6.9℃, 8월 평균기온 25.2℃이며, 연 강수량은 818㎜로 전국적으로 보아 과우지(寡雨地)에 속한다. 대개 10월 24일경 얼음이 얼기 시작하여 다음 해 3월 30일이면 녹게 된다.[3]
역사[편집]
선사시대 유적으로는 동진면 태성리에서 1957∼1958년에 걸쳐 주거지 1기, 고인돌 2기, 고분 등이 조사되었으며, 강서면 삼묘리와 동진면 태성리 등에서는 고구려의 벽화고분이 다수 발견되었다.
압록강 중류 동가강(佟佳江)가에서 발전하기 시작한 고구려의 세력이 이 군에 미친 것은 4세기 초 미천왕 때의 일로 생각되며, 장수왕의 평양 천도로 고구려의 중심부에 위치하게 되었다. 강서군의 고구려 고분은 그러한 사실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나당연합군에 의해 고구려가 멸망하게 되자, 당나라 군사의 약탈과 통일신라의 평양 포기 결과, 이 군도 통일신라의 세력이 미치지 않게 되어 황폐하여졌다.
고려가 건국되고 북진정책을 써서 평양을 수복하고 서경(西京)으로 삼자, 본래 비옥한 이 군은 다시 활발하게 개척되었다. 현종 때의 지방행정 구획정비로 서경 주변의 특수 행정지역인 서경기(西京畿)에 속하게 되었다.
인종 때에는 서경천도(西京遷都)·칭제건원(稱帝建元)의 자주정책을 내세우다가 열세에 몰리게 된 묘청(妙淸) 등 서경파(西京派)가 1135년(인종 13)에 난을 일으켰으며, 이에 따라 병화가 미치었다. 묘청의 난이 평정된 뒤, 1136년 서경기를 분할할 때 이악(梨岳)·대구(大垢)·갑악(甲岳)·각묘(角墓)·독촌(禿村)·증산(甑山) 등 6개 향(鄕)을 합해 강서현을 설치하고 현령을 파견하였다.
이는 묘청의 난의 근거이던 서경의 세력을 억누르기 위해 주변의 부곡(部曲)이나 향을 묶어서 중앙에서 직접 지방관을 파견해 관장하게 함으로써 고려의 정규 지방행정구역으로 편속시키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생각된다. 이 때부터 이 곳은 비옥한 농업지대로 많은 사람이 모여들게 되었다.
1394년(태조 3)에 증산을 나누어 따로 현(縣)을 두게 되어 갈려나가고, 강서현은 동부(東部)·사진(沙津)·보원(普院)·부암(浮巖)·초성(草城)·학림(鶴林)·거암(擧巖)·영천(永川)·한룡(閑龍)·용연(龍淵)·서부(西部)의 11방(坊)을 거느리게 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선조가 의주몽진 도중 이 곳에서 2개월 동안 머무른 일이 있었으며, 그 사실이 강서성적비(江西聖蹟碑)에 기록되어 있다.
강서군은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 증산군을 폐하고 진방면(鎭坊面)·초곡면(草谷面)은 평원군(平原郡)에 이속되고, 나머지는 강서군에 이속되었다. 이 때 강서군은 총 16개 면이 되어 군의 경역이 크게 확대되었다. 1929년에는 장안면(長安面)이 함종면에 합병되고 신흥(新興)·풍정(豐井) 두 면이 신정면이 되어 모두 14개 면으로 개편되었다.
현재의 천리마군은 역사적으로는 강서군의 일부로, 초리면·보림면·유차면 일대의 지역이었다. 북한의 제1차 5개년 계획의 첫 해인 1956년에 김일성이 강서군 강선리의 강선제강소(降仙製鋼所)를 시찰해 노동자에게 증산을 호소했고 이듬해인 1957년에는 강재(鋼材)의 대증산을 달성했다고 여겨진다. 강선제강소는 자력 갱생과 증산을 목표로 하는 천리마 운동의 상징이 되었고 이후 제강소의 이름도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千里馬製鋼連合企業所)로 고쳐졌다.
1978년, 강서군의 구역은 대안시에 편입되었다. 1979년에 남포시가 직할시로 승격되면서 대안시는 남포시 소속이 되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이 지역도 남포시에 편입되었다. 1983년 대안시가 대안구역으로 개칭되었고,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를 중심으로 한 이 지역을 대안시로부터 분리하여 천리마구역을 신설했다. 천리마구역이라는 이름은 천리마 운동에서 따온 것인데,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가 북한에서는 천리마 운동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곳이라 그렇다. 2004년, 남포직할시가 해체되었을 때 강서구역·대안구역과 함께 군이 되어 평안남도에 편입되었다. 2010년 다시 남포시에 편입되어 '천리마구역'이 되었다.
산업[편집]
천리마구역에는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가 위치해 있으며 옛 이름은 강선제강소로서, 원래는 일본에 의해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미쓰비시 제강의 공장이었다.
농산물로는 쌀이 많이 생산되고, 이 밖에 잡곡류와 질이 좋은 목화, 그리고 고추·깨 등도 생산된다. 누에치기·농우사육·양돈·양계 등으로 농가소득을 올리고, 대동강변의 반어촌 지역에서는 봄 가을로 농어·숭어·뱅어·모래무지와 조개류 등으로 소득을 올리고 있다.
농가에서는 누에치기·농우사육·양돈·양계 등으로 농가소득을 올리고 있다.
교통[편집]
평양 남포간 고속도로는 북한의 평양시와 남포시를 잇는 고속도로 구 평양-남포간 고속도로, 즉 평양-남포간 1급 도로는 1970년대 착공하여 1978년 완공되었으며, 현 노선인 청년 영웅도로는 1998년 착공해 2000년 완공되었다. 청년 영웅도로는 완공 당시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인력만으로 완공한 고속도로' 라며 북한측에서 격찬하기도 했다. 무슨 소리냐면 완전히 삽과 곡괭이, 마대자루만 들고 고속도로를 깔았다는 소리이다.
그런데 21세기가 코앞으로 다가온 때 그런 짓을 하는 것이 과연 칭찬받을 일인지 잘 모르겠다. 추가로 이 청년영웅도로 공사에 동원된 시기 학번의 당 간부들은 그 앞뒤 학번들과 비교하면 참 무식하다고 한다. 남쪽 사람들도 관련 서적 한두 권 읽어보면 아는 로동당 주요 역사도 모를 정도라고 한다. 참고로 문제의 청년영웅도로는 왕복 12차로(!!!)이다. 만약에 남북통일이 됐는데도 평양-남포 간 통행량이 많지 않으면 제6차로는 졸음쉼터, 자전거 도로 또는 가변차로로 쓰일 듯하다.
평양-남포간 1급 도로는 강을 끼고 달리며, 대안지역을 통과하는 노선으로 여러분이 아는 안골입체다리 기점 고속도로가 바로 이 노선이다. 특이하게도 남포에서는 서해갑문 부근인 와우도구역을 기점으로 하고 있다. 흔히 평양 남포간 고속도로 사진이라면서 도로 위에 농작물이 널려 있고 소달구지가 다니는 flickr 출처의 사진은 청년영웅 도로가 아닌 강안도로 사진이다.
청년영웅 도로는 평양시 만경대구역 인근의 '갈림길'에서 출발해 남포시 청년다리까지 이어진다. 기존 강안 도로와 달리 강선(천리마), 강서 등 평남선 연선 도시들과 인접해 있다.[4]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천리마구역〉, 《위키백과》
- 〈천리마구역〉, 《나무위키》
- 〈강서군 (江西郡)〉, 《한국민족문화대박과사전》
- 〈평양남포간 고속도로〉, 《나무위키》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