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롄시
다롄시(大连, 대련시, dà lián)은 랴오둥반도 남단, 황해와 발해 접경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둥반도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중요한 항구, 무역, 공업, 관광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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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 행정 단위: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부성급 지급시[1]
- 시정부소재지: 시강구 런민광장 1 (西岗区人民广场1号)
- 면적: 12,573km²
- 인구: 595만2000명(2018년)
- 시장: 첸소오왕(陈绍旺, chén shào wàng)
- 지역전화: 0411
- 우편번호: 116000
역사[편집]
약 6천년 전에 형성된 다롄 지역에서 최초 문화유적지 흔적이 발견되었으며 신석기시대 말기에 성행했던 돌담무덤이 널리 있었다. 중국 전국시기와 진나라 때에는 랴오둥군의 관할하에 있었으며 기원전 107년에는 현을 설치하고 현급관리를 하였다. 뤼순 지역에는 목양성 유적이 있어 당시 경내에 경제가 비교적 발달하고 인구가 많았음을 보여 준다. 서기 405년부터 고구려가 랴오둥을 통치하기 시작하였고 668년에 중국 당나라가 다시 수복하였다. 당시 지금의 다롄을 칭니푸라고 불렀다. 713년에 당나라는 대조영을 발해군왕으로 책봉하였다. 명청시기 다롄을 칭니와라고 불렀으며 청나라 초기에는 전쟁이 빈번하여 인가가 적고 땅이 황폐하였다.
제1차 아편전쟁 후 영국이 다롄을 침범하기 시작하였으며 뤼순을 Port Arthur으로 부르고 해상지도에 다롄만을 DALIANWAN 이라고 표기하였다. 청나라말 양무운동 시기 청나라 정부는 뤼순을 동아시아 제일 해군기지로 불렀으며 다롄만에 대량의 포대를 건설하였다. 1894년에 중일갑오전쟁에서 일본군은 뤼순을 공략하여 뤼순대학살을 감행하여 연속 4일 동안 뤼순 인구 2만명을 살해하고 36명만 남겨서 죽은 시체를 매장하게 하였다. 중일갑오전쟁에서 패배한 중국은 랴오둥반도를 일본에 햘양하였으나, 러시아, 독일, 프랑스의 3국 간섭으로 일본은 랴오둥반도에서 철수하고, 러시아가 다롄만과 뤼순을 강제조차하고 프랑스 파리를 모방하여 달니(러시아어, Дальний)시를 건설하고 상업도시로 만들었다. 1905년에 러일전쟁에 패배한 러시아는 랴오둥반도에서 철수하고 일본이 다시 점령하면서 달니를 다롄으로 개칭하고 관둥주청을 세웠다. 현재 다롄의 대부분 거리와 건물은 일본 점령시기에 만들졌다. 당시 다롄 인구가 70여만 명이고 그 중 중국인이 50만명, 일본인, 한민족이 20여만명이었다.
1945년에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후 소련이 다롄을 점령하고 중국공산당과 함께 10여년간 관리하였다. 1955년 소련이 다롄에서 철수한 후 중국에 모든 주권을 돌려 주었다.
이름의 유래[편집]
1899년에 러시아 황제가 자유항구를 건설하는 명령을 발포하고 칭니와를 달니(러시아어, Дальний)로 개칭하였다. 1905년에 일본이 달니를 다롄으로 개칭하였는데, 러시아 달니 발음을 그대로 중국발음으로 바꾼 것이 '다롄'이다.
행정구역[편집]
다롄시는 7개의 구, 2개의 현급시, 1개의 현으로 구성되어 있다.
- 시강구(西岗区)
- 중산구(中山区)
- 사허커우구(沙河口区)
- 간징쯔구(甘井子区)
- 뤼순커우구(旅顺口区)
- 진저우구(金州区)
- 푸란뎬구(普兰店区)
- 와팡뎬시(瓦房店市)
- 좡허시(庄河市)
- 창하이현(长海县)
지리[편집]
다롄시는 랴오둥반도의 최남단에 위치해 있다. 동쪽은 황해, 서쪽은 보하이해에 접해 있다. 동북쪽은 닝안에 접해 있으며 남쪽은 산둥반도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다. 전체 면적은 12,573km²이고 해안선이 618km 이며 700여개의 섬이 있다. 바다 면적은 3만km²이다.
기후[편집]
다롄은 냉대 동계 소우 기후(쾨펜의 기후 구분 Dwa)와 습윤 대륙성 기후(쾨펜의 기후 구분 Dfa)의 사이에 속하며, 연평균 기온은 10℃이다. 연 강수량은 601.9mm, 일조시간은 2733.8시간이다. 봄은 건조하고 비교적 따뜻하며 여름은 습하고 비가 많다. 가을에는 비가 점차적으로 적어지고 서늘하고, 겨울은 건조하고 바람이 많다.
인구[편집]
2018년까지 등록된 다롄 인구는 595만 2000명이며 55개의 민족이 거주한다. 한족, 만주족, 몽골족, 조선족, 회족, 시버족, 좡족, 투자족, 먀오족, 위글족, 이족, 부이족, 장족, 요족, 바이족, 리족, 카자흐족 등이다.
경제[편집]
다롄은 1992년 이래로 매년 두 자리 수의 GDP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2008년 도시의 GDP는 16.5%의 증가를 기록했다. 국가 통계국에 의한 전국 평가에 따르면 중국 전체 도시들 중에서 8위의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조사되었다. 도시의 주요 산업은 기계 제조와 석유 화학과 정유 및 전자 산업이다. 수 많은 한국 일본 기업들이 오랫동안 활동해왔고 수 많은 외국인 전용 유흥업소가 존재하여 홍콩에 비교되는 유흥도시이기도 하다.
중국에서 가장 큰 조선, 내연기관, 정유, 베어링 관련 17개 업체가 다롄시에 위치해 있다. 다롄은 목재와 금속을 처리하고 그 구성 성분을 분해하고 합치고 분배하는 일과 관련하여 우수한 위치에 있다. 다롄은 또한 IT와 소프트웨어 산업의 중심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금융과 다른 서비스 산업도 성장하고 있다. 현재 21개의 외국 은행 및 금융 기관들이 다롄에 지사와 대리점을 두고 있다. 전시회 또한 많이 열리고 있다. 싱하이 회의박람회장은 300개가 넘는 이벤트를 개최하였다.
다롄에는 STX조선해양의 초대형 조선소 STX다롄이 위치해 있다.
교통[편집]
공항[편집]
다롄저우쑤이즈 국제공항과 건설 중인 다롄진저우완 국제공항이 있다. 다롄진저우완 국제공항은 중국 대륙에서 첫번째 해상공항이며 제1기 공정이 2020년에 완공 및 사용될 계획이다.
고속철도[편집]
- 다롄하얼빈 고속철도: 2012년 12월에 개통되었으며 다롄시에서 하얼빈시까지 3시간이 걸린다.
- 다롄선양 고속철도: 중국 6개 주요 고속철도선로 중의 하나이며 선양까지 2시간이 걸린다.
전차[편집]
궤도 전차가 2개 노선이 있고 무궤도 전차가 1개 노선이 있다.
지하철[편집]
지하철은 모두 4개 노선이 있으며 전체 길이는 157km이다. 현재 건설 중에 있는 지하철 노선이 3개 있다.
관광[편집]
- 뤼순 형무소
- 뤼순 형무소는 중국 랴오닝성 다롄시 뤼순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형무소이다. 한국의 독립운동가 안중근과 신채호가 수감되었던 곳이다. 1902년 러시아가 동북 3성에 항의하는 중국인들을 제압하기 위해 건축하였으나 러일전쟁으로 일본이 뤼순을 점령하게 된 후 1907년 현재 형태의 규모로 확장되었다. 총 면적은 약 26,000㎡로 275개의 여러 형태 감방이 있으며 2천여 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다. 주로 한국인, 중국인, 러시아인 등이 많이 수감되어 있었고, 1906~1936년 사이 수감자는 연간 약 2만여 명에 달했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 이후에는 한국과 중국의 항일지사와 사상범을 닥치는 대로 체포하여 이곳에 수감하였고 온갖 고문을 가했으며 수많은 수감자들이 형무소 안에서 처형당했다. 1942년에서 1945년 8월 사이에 약 700여 명의 수감자가 이곳에서 처형당했다. 1909년 만주의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독립운동가 안중근이 수감되어 순국하였으며 역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신채호도 이곳에 수감되었다가 옥사하였다. 1945년 8월 소련 군대가 뤼순에 주둔하면서 사용이 중지되었고 그후 1971년 복원을 통해 전시관으로 꾸며져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었다. 1988년 중국 정부는 이곳을 국가중점 역사문화재로 지정하였다.
지도[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