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황해도(黃海道)란 1417년부터 1954년까지 존속한 한반도의 중서부에 있는 도(道)로, 1954년 이후로는 황해남도와 황해북도로 분리되었다. 면적은 1945년 당시 16,743.66km2였으며, 도청(道廳)은 해주시 중동(中洞)에 두고 있었다.[1]
목차
개요[편집]
황해도는 한반도 중북부에 있는 대한민국의 명목상 행정구역. 이북 5도 중 하나. 황주(黃州)와 해주(海州)에서 그 이름을 땄다. 남쪽에 경기도, 동쪽에 강원도와 함경남도, 북쪽에 평안남도와 접경하고 있다. 2008년 추정 인구는 대략 400만명으로 전라북도와 인구밀도가 비슷했다. 1950년 6월 24일 이전까지는 대한민국도 옹진반도, 연백평야 등 황해도 본토 지역을 일부 실효지배하고 있었고, 6.25 전쟁 중에는 황해도 전역을 잠시 실효지배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전 협정이 체결된 이후에는 황해도 본토는 전부 북한 치하로 넘어 갔고 서해 5도만이 남게 되었다. 기존의 황해도 지역은 수복지구 임시행정조치에 의하여 1945년 경기도 옹진군을 거쳐 1995년부턴 인천광역시 옹진군에 편제되어 있다. 전라도를 호남, 경상도를 영남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황해도 또한 이러한 호칭이 있는데 '해서(海西)'라고 부른다. 수도인 개경-한양을 기준으로 서쪽(북서쪽)에 자리하여 붙여진 별칭이다. 이북 5도 행정구역 기준으로는 황해도는 분도되지 않았으나 북한의 행정구역 기준으로는 이 영역을 황해남도와 황해북도가 차지하게 되었는데 황해남도에 해주가 있고 황해북도에 황주가 있다.[2]
역사[편집]
고대[편집]
황해도 북부는 고조선의 영역이었고 남부 일대는 진번(眞蕃)이라는 소국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고구려가 멸망하자 당나라가 설치한 안동도호부에 예속되었다가, 676년에 신라 문무왕이 이 지역을 점령하였다. 685년 신문왕이 행정구역을 9주 5소경제로 개편하면서 한주(漢州)에 귀속되었다. 발해의 건립 이후에는 그 지역이 발해와의 전선이자 국경이 되었다. 그러나 신라가 삼분되자, 후고구려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고려[편집]
고려 성종 14년(995년), 고려의 전 영토를 십도(十道)로 구획(區劃)하면서 황해도 지역과 현재의 경기도 일부를 관내도(關內道)로 삼았다. 그 이름은 추후에 5도 양계가 성립되면서 서해도(西海道)로 개명되었다. 1269년(원종 10년) 서북면 병마사의 기관(記官)인 최탄(崔坦) 등이 난을 일으켜 서경을 비롯한 북계(北界)의 54성과 자비령(慈悲嶺) 이북 서해도(西海道)의 6성을 들어 원나라에 투항하였다.
조선[편집]
조선 시대의 초반인 태조 4년(1395년)에 서해도의 이름이 풍해도(豊海道)가 되었다가, 태종 18년(1417년)에 황해도(黃海道)가 되어, 조선 팔도 가운데 하나가 되었고, 해주에 감영(監營, 당금의 도청)을 두고 감찰사(監察使, 당금의 도지사)를 파견하여 그 지역을 통할하게 했다. 광해군(光海君)은 황해도를 황연도(黃延道)로 개칭하였으나 다시 환원하였다. 1895년 제2차 갑오개혁에 따라 전국을 23부제로 나누면서 해주부와 개성부에 속해 있다가, 1896년(고종 건양 원년)에 13도(道) 가운데 하나가 되어 일제강점기까지 계속되었다.
현대[편집]
1945년 8월 15일 건국준비위원회의 건국 준비 과정에서 겸이포읍을 송림시로, 사리원읍을 사리원시로 승격하였다. 대한민국은 이북5도위원회 행정구역에서 이를 인정하고 있으나 소비에트 민정청에서는 이것이 인정되지 않았으며 1940년대 말에 북측의 별도의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 결국 송림시와 사리원시로 승격되었다. 1945년 38선 획정 이후에는 옹진반도(甕津半島)와 연백군(延白郡) 일부등의 지역을 제외하고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점령 하에 놓이게 되었다. 미군정은 38도선 이남의 황해도를 경기도에 편입하였다.
1953년 휴전선이 확립되며 한반도가 분단된 이후에 황해도의 일부 도서(서해 5도)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이 북한의 점령지가 된다. 서해 5도 이북의 일부 도서 또한 대한민국이 점령하고 있었으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인계하게 되었다. 1954년 황해남북도로 나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경기도 개성시, 개풍군 등을 개성직할시로 편성되었다가 황해북도에 편입되었다. 한편, 대한민국에 귀속되었던 황해도의 일부 도서는 그대로 경기도 옹진군의 관할 지역으로 유지되었고, 1995년에 이르러서 인천광역시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1]
지리[편집]
황해도 지질은 조선계(朝鮮系)에 속하는 수성암(水成岩)이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해주에서 구월산에 이르는 지역은 화강암 분출대(花崗岩噴出帶)를 이룬다. 화강암은 연백과 평산에 이르는 멸악 산지와 수안 지방에도 일부 나타난다. 해주와 구월산을 잇는 동쪽과 연백 서북부, 금천·평산·수안 일부에서는 시생대의 회색 화강편마암이 발달해 있고, 재령강 양안과 예성강 중류 지방에는 상부 대동계(大同系) 지층이 분포하며, 예성강 서쪽 금천지방에는 평안계(平安系) 수성암이 나타난다.
신계·곡산 지방에는 제3기에 분출한 현무암(玄武岩)이 용암대지(熔岩臺地)를 이루며, 재령평야와 연백평야의 일부 지역과 소하천 연안에는 제4기 충적층이 분포한다. 또한 동서·남북 방향으로 발달된 여러 개의 구조선상에는 수많은 온천이 용출해 우리 나라 제일의 온천지대를 이룬다. 동서로 횡단하는 산맥으로는 요동 방향의 언진·멸악산맥과 중국 방향의 마식령산맥이 있다. 언진산맥은 낭림산맥 남단에서 분기되어 도의 동북부를 달리는 험준한 산맥으로, 하람산(霞嵐山, 1,486m)·서백년산(西百年山, 1,217m)·언진산(1,120m) 등 1,000m 이상의 높은 봉우리가 연이어 솟아 있다.
멸악산맥은 동서로 관통하는 산맥으로, 멸악산(816m)·장수산(長壽山, 747m)·수양산(首陽山, 899m)·불타산(佛陀山, 608m) 등 800m 내외의 산지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하천에 의해 산맥의 여러 곳이 끊어지고 낮은 안부(鞍部)가 발달해 교통상 큰 장애는 없다. 이러한 대산맥 사이를 남북으로 가로질러 4개의 소산맥이 발달하였다. 구월산맥은 강령에서 미륵산(彌勒山)을 지나 구월산으로 서해안을 따라 이어지며, 자모산맥(慈母山脈)은 연안에서 운달산(雲達山, 600m)·차일봉(遮日峰)·고방산(高坊山)·자모산으로 이어진다.
육장현산맥(六將峴山脈)은 예성강 하구에서 차유령(車踰嶺)·육장현으로 이어지며, 마항산맥(馬項山脈)은 예성강과 임진강의 분수령을 형성한다. 이러한 산맥들의 형세에 따라 동북부와 서쪽이 높고 중앙 북부의 재령강 유역과 남서부가 낮은 지세를 나타낸다. 주요 하천으로 동부 지역을 흐르는 예성강은 대각산에서 발원해 지석천(支石川)·구룡천(九龍川)·누천 등의 지류를 합하고 남쪽으로 흘러 한강에 합류된다.
멸악산맥 남쪽 예성강 서쪽에 전개되는 연백평야는 호남평야·재령평야에 이어 우리 나라 제3의 평야로, 해안 부근에는 충적지가 넓게 발달되었으나 주변 지역은 다소 기복이 있는 파랑상의 구릉지이다. 재령강은 지남산에서 발원해 은파천(銀波川)·서흥강(瑞興江) 등의 지류를 합치고 북쪽으로 심한 곡류를 형성하면서 대동강으로 유입된다. 하천의 길이는 129㎞에 지나지 않으나 그 유역에는 재령평야가 발달하였다.
재령강 양안에는 낮은 평지가 잘 발달해 재령나무리벌·신천어루리벌과 같은 평야를 이루는데, 그 곳은 쌀 생산지로 유명하다. 이 밖에도 평안남도와 경계를 이루는 남강(南江), 장연의 남대천(南大川), 해주 서쪽의 취야천(翠野川) 등이 있다. 해안선은 1,618㎞에 달하는데, 장산곶 북쪽은 출입이 단조로운 데 반해 옹진반도를 비롯한 남쪽은 매우 복잡하다. 해상에는 초도(椒島)·기린도(麒麟島) 등 130여 개의 섬들이 분포하고, 조차는 7m 내외로 간석지가 크게 발달해 간척 사업이 활발하다.[3]
기후[편집]
황해도는 대체적으로 냉대하계고온기후(冷帶夏季高溫氣候)에 속하며 멸악산맥 북쪽의 북부 서안형, 멸악산맥 남쪽의 중부 서안형, 동북부 산악지대의 북부 내륙형 등으로 세분된다. 1월평균기온은 -5∼-8℃로 경기 지방보다 2∼4℃가 낮고 관서 지방보다 2∼4℃가 높으나, 같은 위도상의 동해안 지방에 비하면 3∼4℃ 내외가 낮다. 최저 기온은 곡산에서 기록된 -33℃였다. 7월평균기온은 24∼25℃ 내외로 우리 나라의 다른 지방과 큰 차이가 없으며, 기온의 연교차는 경기지방보다 훨씬 크다.
강수량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크다. 동북부의 산악지대는 1,200㎜, 멸악산맥 이남 지방은 1,000㎜ 내외를 보이나, 멸악산맥 이북의 서북부 지방은 700∼800㎜로 우리 나라 최과우 지역 중 하나이다. 강우 분포는 계절풍이 부는 여름철에 60% 이상 집중적으로 내려 하계다우형이다. 증발량은 1,300㎜ 내외에 달하고, 쾌청 일수 110일, 일조 시수 60∼62%를 나타내어 우리 나라에서 최다조 지역(最多照地域)을 이룬다.
대개 첫서리는 10월 10일, 마지막 서리는 이듬해 4월 10일경으로 무상 기일이 180일 정도이다. 해안 지방에는 안개 현상이 심한데, 특히 장산곶 부근이 심하다. 이와 같이 멸악산맥을 경계로 기후의 차이가 심해 식생 및 농업에 영향을 미친다. 멸악산맥은 감나무·동백나무 등 난대 식물의 북한계를 이루며, 벼에 있어서도 중생종과 조생종의 경계가 된다. 또한 한때는 육지면(陸地綿)의 북한계선을 이루었다.
산업[편집]
황해도는 예로부터 하천과 연해를 통한 무역으로 상업을 하여 왔으며, 연철(鉛鐵)·면화·미곡의 생산과 더불어 어업 및 제염업에도 힘써왔으나, 도내에는 재령평야·연백평야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평지가 곳곳에 잘 발달하여 농업이 주를 이루었다.
농업[편집]
황해도는 평야가 많아 경지율이 약 34%로 전국에서 제일 높으며, 특히 연백·신천·재령·안악 등의 평야지방에서는 50 ~ 60%에 이른다. 경지면적은 약 60만ha로서 전국의 약 14%를 차지하며, 농가 1호당 경지면적도 2.4ha에 달하여 전국에서 1위였다. 연백미·재령미는 품질이 우수하여 예로부터 왕실의 공어미(貢御米)로 쓰여왔고, 특히 재령미는 북률무사미(北栗無砂米)로 유명하였다. 재령평야는 원래 갈밭으로 덮인 저습지였으나 1920년대에 이르러 재령강의 곡류(曲流)를 바로잡고 배수와 관개에 노력하여 옥답으로 바꾸었는데, 재령강상류의 안녕저수지(安寧貯水池)와 서흥강 상류의 재신저수지는 관개용 대저수지이다. 연백평야는 해안지방을 제외하면 저평하지 않다. 그래서 종래에는 밭으로 많이 이용되었으나, 멸악산 남쪽 산록에 연해저수지·황해저수지를 구축하고 해안에 대규모 제방을 쌓아 간척사업을 벌인 결과 논의 면적이 크게 중가하였다.
주요 전작물은 조·기장·수수·콩·팥·밀 등이다. 기후관계로 2모작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토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3종류의 작물을 2년에 3번갈아 수확하는 2년3작농법이 채용되고 있으며, 혼작·간작 등의 경종법(耕種法)도 전역에 보편화되었다. 특용작물로는 면화·대마·인삼·담배 등이 많이 재배된다. 풍토가 면화재배에 적합하여 평안남도와 더불어 재래면의 2대 산지였는데, 1940년대에 들어와 완전히 육지면으로 바뀌었다. 이밖에도 대마와 담배는 동북부에서 재배되며, 인삼은 금천·서흥 지방에서 많이 재배된다. 과일로는 사과·배·복숭아·밤 등이 많이 재배된다. 황주지방은 일조량이 많고 구릉지는 배수가 양호하여 사과재배에 알맞다. 황주사과는 국내는 물론 만주·동남아시아에 이르기까지 명성이 높았는데, 이후 재배지역은 황주를 중심으로 하여 봉산·평산·은율·송화 등지로 확산되었다. 동북부 산간지방은 양잠업이 성하여 가내공업으로 이루어지는 명주의 소산지이다. 축산업도 활발하며 북부 산간지역은 소사육지로 유명하여 광복 전에는 연간 약 2만 마리를 일본 등지로 수출하였다.
수산업[편집]
황해도 서쪽과 남쪽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1,600여 km의 해안선을 가지고 있으며, 연해의 수심이 얕고 난류와 한류가 교차하므로 양식과 어업에 알맞다. 대표적인 수산물 어종은 조기로서, 연평도 근해는 우리나라 최대의 조기어장이다. 성어기에는 전국에서 수천 척의 어선들이 운집하여 파시(波市)를 이루며 대부분이 경인지방으로 공급되는데, 연간어획량은 7,000여 톤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이밖에도 새우·갈치·민어·해삼 등이 많이 잡히고, 용호도(龍湖島)를 중심으로 한 옹진반도 연안에서는 김양식이 성하다. 또한, 연안지방에서는 간척에 의한 대규모의 염전이 조성되어 있다.
광업[편집]
황해도는 각종 유용광물의 부존이 많으며 주요 광물은 금·은·철·석탄·텅스텐·형석·아연·규사·중정석·석면·붕광(硼鑛)·각종 희유 원소광 등이다. 금은 수안홀동(隧安忽洞)·수안·옹진 등 광산이 유명하다. 철광은 하성(下聖:재령군)을 최대 광산으로 하고, 재령(載寧)·은룡(銀龍, 재령군)·은율(殷栗)·송림(松林, 황주군) 등 광산이 있고, 갈탄은 사리원 탄전에서, 텅스텐은 단연 타도의 추종을 불허하며, 곡산군의 기주·백년 광산에서 많이 산출된다. 형석은 물개(物開):평산군)·은적(銀積:재령군)·하성 등 광산에서, 중정석은 은적·은율·안악 등 광산에서, 석면은 평산·신계 등 각지에서, 규사는 순위도·몽금포·구미포 등 해안에 많이 있다. 아연광은 은적광산에서, 희유원소(稀有元素)광은 적암(積岩:평산군)·소연평도·홀동·해월 등지에서 난다.
공업[편집]
황해도는 풍부한 농산자원·지하자원·노동력 등의 호조건을 갖추었으나 교통의 불비로 부진한 상태에 놓여 있다. 공업 중심지는 첫째, 해주 중심의 중화학과 식품공업 지역이다. 즉 화약·시멘트·도자기·조선·제련·제철·제지·양조·정비·제분공업 등이고, 다음은 사리원을 중심한 식료품·섬유공업과 요업지역이다. 즉 조면·제사 제분·시멘트 등 공업이다. 셋째 지역은 송림 중심의 중공업지역이다. 즉, 제철·제강·인조비료·코오크스 등 공업이며, 기타 지방에는 농산 가공의 제사(서홍)·양조·정미업 등의 소규모 공장이 산재해 있을 따름이다.[1]
교통[편집]
황해도는 주요 종단 국도는 철도 경의선을 따라 도의 중앙부를 종관하는 선과 금천·신계·곡산·평남 양덕방면으로 북상하는 도의 동부선이 있으며, 남천에서 신계·수안·평양 방면으로 통하는 선과 해주에서 재령·남포 방면으로 가는 선이 중요하다. 횡단 국도로는 옹진에서 해주·연안·토성에 달하는 선과, 장연에서 해주·남천에 달하는 선이 중요하다. 철도는 1905년에 개통된 경의선의 경의가도와 병행하여 부설됨에 따라 신막·사리원 등의 신흥교통취락이 성립되었으며, 그뒤에 부설된 사리원 장연간의 사장선(沙長線), 사리원 해주간의 토해선(土海線), 해주 옹진간의 해옹선(海甕線, 일명 黃海線) 등은 산업지대를 관통하고 있다. 예성강·재령강의 수운교통은 철도가 개통됨에 따라 쇠퇴하였으나 그 이전에는 물자수송에 지대한 구실을 하였다. 예성강 연안의 하항(河港)은 벽란도·조포·한포 등이며, 재령강 연안의 하항은 상해포·해창·신환포 등이다. 특히 재령강은 재령평야의 풍부한 농산물과 철광석의 수송에 큰 몫을 담당하였다. 해상교통은 고려시대에 중국·일본 등지와의 연락로로 많이 이용되었으며 근대적인 개항장은 해주뿐이다. 이 밖에도 겸이포·나진포·구미포 등의 양항이 있다.
관광[편집]
황해금강(黃海金剛)이라 일컫는 장수산, 곡산군 선암에서 평남 양덕까지의 해서금강, 서흥군 귀진사(歸眞寺) 부근의 소금강, 평산군의 태백산성, 해서의 웅악(雄岳) 수양산, 단군 전설이 깃든 한국 4대 명산의 하나인 구월산, 역사가 서린 정방산(正方山)의 기경(奇景), 백사 청송(白砂靑松)의 장산곶과 구미포·몽금포 해수욕장, 배천·연안·평산·신천·삼천·달천·안악·송화 지방의 온천군(溫泉群) 등의 명승지와 대방태수 장무이묘, 봉산 휴류산성, 당토성, 황주 유물 포사탑 등의 고적이 있다. 또한 심원사 보광전, 성불사 극락전, 응진전, 광조사 진철대사 보월승공탑비, 학림사 오층석탑 등 많은 보물이 있어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남북통일 후 전망[편집]
통일이 되고나면 서울 - 평양 중간에 있다보니 제2의 충청권과 같이 교통의 요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경기도 개성에서 평안남도 평양 연선으로 개발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충청도의 경우를 보더라도 1960년대~1990년대에 경부선, 경부고속철도와 경부고속도로가 통과하는 천안, 아산, 대전, 청주, 세종과 수도권과 가까운 서산, 당진 등 북서쪽은 발전했지만 충북 남부 3군과 북동 지역, 충남 서남부 해안 지역 및 내륙 지역은 인구 유출이 심하다.
경의고속도로와 경의고속철도가 개통되면 사리원시는 해주시를 위협하는 황해도 제1의 도시로 발전할 것이다. 이미 인구 수에서 해주를 추월하긴 했다. 그렇지만 해주는 수도권을 보호하고 중국을 견제하는 해상 요충지다보니 창원시 진해구나 일본의 사세보와 같이 한국 해군과 주한미군 해군이 주둔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황해도는 평안남도와 수도권 사이에 끼어 있어, 제대로 된 지역발전정책이 수립되지 않으면 남북통일 이후에도 수도의 기능을 유지할 서울과 평양 사이에 끼어서 상대적으로 발전이 지체될 가능성도 크다. 보통 지역 발전은 지역의 중심지를 기준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서울, 개성과 평양을 잇는 황해도 중동부 축선에 비해 경로에서 빗겨가는 황해도 서부의 돌출 지역은 개발에서 상당히 소외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렇게 될 경우 해서 지방의 전통적인 중심지인 해주시가 몰락할 수 있다.[2]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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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