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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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스크(러시아어: Омск)는 러시아의 시베리아연방관구에 속하는 옴스크주의 주도이다. 인구는 약 115만 명이며 시베리아에서는 노보시비르스크에 뒤를 잇는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모스크바로부터는 2,555km 떨어져 있다.[1]
개요[편집]
옴스크는 오비강의 큰 지류인 이르티시강과 그 우안(右岸)으로 흘러드는 옴강과의 합류점을 중심으로 시가가 전개되어 있다. 시베리아 서부에 있는 도시이며 러시아 전체에서는 9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며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이르티쉬강 항로가 교차하는 교통의 요지다. 옴스크는 러시아 내전 당시 반(反)볼셰비키파의 수도였으며 제국의 금 보유고도 이곳에 있었다. 옴스크는 러시아, 독일, 우크라이나, 타타르, 카자흐, 벨로루시 등 120여 민족이 함께 사는 다인종 도시다. 현재 각 민족의 전통을 재현하는 민족문화센터가 50곳이 넘고 23개 종교단체가 고해 성사를 수행한다. 역사가 깊은 곳으로 고대부터 북방 유라시아 주민들이 문명을 일구었고 기원전 2000년경에 만들어졌던 찰갑이 출토되기도 했지만, 시베리아 지역이 그렇듯 러시아인의 땅이 된지는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 옴스크의 기원은 1716년에 카자크들이 옴강 좌측 강안에 만든 요새로부터 출발한다. 1760년에는 강 오른쪽 연안에도 요새가 생기고, 1804년에 시로 승격하였다. 서부 시베리아를 개척하는 기착지가 되었으며, 1849년부터 1853년까지 그 유명한 표도르 도스토옙스키가 유배를 당하면서 <죽음의 집필 기록>을 작성한 것과 죄와 벌의 배경으로도 유명하다. 서쪽으로부터 송유관과 천연가스관이 와서 관련 공업이 발달하였다. 1918년부터 1920년까지 전러시아 임시정부의 수도이기도 했다. 기계제조, 경공업, 식료품 등의 공업이 활발하다. 최근에는 우랄 지방에서 오는 시베리아 횡단 송유관이 매설되었기 때문에 정유, 석유화학 등의 공업이 급속히 발전하여 정유, 합성고무, 타이어, 합성수지, 비료 등이 제조되고 있다. 시내에는 기계, 의학, 농업, 교육, 체육 등의 연구, 교육 시설과 모스크바대학 석유화학 공학 교실의 지부가 있다. 옴스크는 시베리아 문화 중심지의 하나다. 공공 도서관이 47곳에 이르고 박물관 9곳, 전문 극장 9곳, 오락시설 23곳과 주립서커스단, 콘서트홀 등이 있다. 옴스크 극장들은 국내는 물론 국외에도 널리 알려져 있으며 국내외 저명 드라마 축제에서 여러 번 수상했다. 옴스크에서는 연간 500회 이상의 축제, 전시회, 콘서트 등의 문화 행사가 열린다.[2]
지리 및 기후[편집]
옴스크는 모스크바에서 동남쪽으로 2,555km 떨어져 있으며 카자흐스탄 수도 누르술탄에서 북쪽으로 약 450km, 시베리아 최대 도시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서쪽으로 600km 지점에 위치한다. 옴스크는 습한 대륙성 기후로 평균 기온은 7월 20°C, 1월 –17°C이며 연평균 강수량은 415mm이다.
역사[편집]
1716년 표트르 대제의 명령에 따라 이반 부크홀츠(Buchholz) 중령이 옴(Om)강 어귀에 세운 목조 요새가 옴스크의 첫 출발이다. 이심(Ishim)강과 이르티시(Irtysh)강을 따라 확장하는 러시아 국경을 스텝지역의 키르기스(Kyrgyz)와 중가르(Dzungar) 유목민들로부터 보호하고 금과 모피를 찾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트리시강 유역에는 1만 4,000여 년 전부터 인류가 정착하기 시작했지만 러시아인에 의한 탐험은 16세기에 시베리아를 정복한 전설적인 카자흐 지도자 예르마크 티모페예비치에 의해 본격화됐다. 17세기부터 시베리아 정착에 나선 러시아와 카자흐인들은 18세기 내내 시베리아 유목민들과 격렬하게 싸웠다. 옴스크는 당초 유배지로 출발했다. 죄수들은 이곳에서 다른 시베리아 요새로 보내 중노동을 시켰고 형기를 끝낸 죄수의 상당수가 옴스크에 정착했다. 죄수들은 발에 채워진 4~5kg 무게의 쇠사슬을 죽어서야 벗을 수 있었다. 무기수들의 뺨과 이마에는 BOP(도둑), 또는 KAT(죄수)란 낙인이 찍혔다.
이 지역의 인종 구성은 식민지화 과정에서 형성됐다. 러시아인, 독일인, 폴란드인, 벨라루스인을 포함한 많은 민족이 이곳으로 파견되거나 추방됐다. 1756년 목조 요새가 석조로 재건축됐고 1782년 시로 승격했다. 1829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본떠서 넓은 전망, 커다란 구획, 우아한 분수, 무쇠 다리와 정원 등이 특징인 옴스크 도시개발계획이 완성됐다. 19세기에는 옴스크의 상징이 된 수많은 건축물이 세워지면서 독특한 건축 양식이 갖춰졌다. 1892년 시베리아 횡단철도 건설로 도시가 획기적 발전의 전기를 맞았고 20세기로 접어들면서 교역과 농산물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1910년 시베리아 농공업박람회는 큰 인기를 끌었고 ‘시베리아의 시카고’란 별칭을 안겨 주었다. 1917년 10월 혁명 직후 옴스크는 서시베리아에 새로 세워진 소비에트의 정치적 중심지였고 내전이 한창때인 1918년 6월~1919년 11월까지는 적군에 맞서는 백군의 수도였다. 1920년 1월 소비에트 당국은 모든 부동산을 국유화하고 200여 거리를 개명했다. 1930년대 말까지는 도시 시설을 복구하느라 힘든 과정이 오래 지속됐다. 옴스크는 산업화 시기에 농기계산업의 주요 거점이 됐고 금속 가공도 급속히 발달해 생산량이 혁명 이전의 4배로 폭증했다.
소련 정부가 서시베리아의 행정 중심지로 노보시비르스크를 선택함에 따라 행정, 문화, 교육 기관이 대거 옴스크에서 옮겨갔다. 옴스크는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때 서부 전선에서 소개된 200여 기업과 병원, 교육기관, 극장, 박물관 등과 함께 난민 수십만 명이 몰려들면서 새로운 동력을 얻었다. 모스크바 전투(1941.10~1942.1)에서 독일군에 패할 경우 임시 수도를 옴스크로 이전하는 비상 계획이 수립되기도 했다. 1950년대 중반에는 시베리아 정유·유화산업이 크게 발전했고 현재는 러시아 최대의 정유산업단지로 자리매김했다.
1970~80년대에는 급속한 도시 발전에 힘입어 인구가 매년 2만~3만 명씩 늘어났으며 1975년에는 옴스크시의 100만 번째 시민이 태어났다.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옴스크는 경제적 불안정과 정치적 침체를 겪었다. 국영 기업 대부분이 공산당 간부 출신인 졸부들과 세력을 급속히 키운 범죄집단의 먹잇감으로 전락했고 정치권의 내분으로 자원이 탕진되면서 도시 발전에 제동이 걸렸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기업, 은행, 금융 등 민간 부문의 발전이 두드러졌다. [3]
교통[편집]
옴스크는 시베리아 횡단철도 북부와 남부의 분기점인 동시에 고속도로망의 거점이다. 이르티시강의 포구를 통해 시베리아 인근 지역은 물론 카자흐스탄 도시들과도 연결된다. 카자흐스탄의 석탄 및 광물과 북시베리아의 석유, 천연가스, 목재가 수로를 통해 옴스크에 공급된다. 옴스크는 국내는 물론 독일과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외국과 연결되는 시베리아와 극동 러시아의 항공 교통 중심지이기도 하다. 버스, 트롤리, 전차로 구성된 대중교통망이 운영되고 있으며 승합택시도 있다. 이트리시강을 건너는 다리는 자동차용 상층은 이미 개통됐지만 지하철용 하층은 미완성이다.[4]
옴스크 국립공과대학교[편집]
옴스크 국립공과대학교(Omsk State Technical University)는 러시아의 시베리아 남서부 옴스크시에 위치한 공학 특화 대학교이다. 1942년에 설립되었다. 설립 당시의 명칭은 옴스크 기계제작대학교(Omsk Machine-Building Institute)였다. 1993년에 옴스크 국립공과대학교(Omsk State Technical University)로 개칭했다. 8개 학부와 8개 단과대학에서 학사과정과 석사과정, 박사과정을 제공한다. 박사과정은 공학 전공분야 이외에 자연과학 전공과 인문·사회과학 전공 분야에서도 운영한다. 2022년 QS 의 세계대학순위에서 신흥유럽 · 중앙아시아지역(EECA) 대학 가운데 230-240위권으로 평가됐다. 2023년 에듀랭크(EduRank)의 평가에서는 세계 4038위, 유럽 대학 중 1090위, 러시아 대학 가운데 93위를 기록했다.
옴스크 국립공과대학교는 인문학부와 수송, 석유, 가스학부 등 8개 학부와 기계공학대학과 석유화학대학 등 8개 대학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학부와 대학이 학사과정과 함께 석사과정, 박사과정을 운영한다. 박사과정은 기계공학과 화학공학, 소재공학, 항공, 로켓, 우주공학, 핵에너지공학 등 공학 전공 외에 화학과 지구과학, 수학, 물리학 등 자연과학 전공과 경제학, 어문학, 철학, 윤리학, 종교학 등 인문 · 사회과학 전공에서도 제공한다.
옴스크 국립공과대학교의 캠퍼스가 소재한 옴스크시는 러시아 옴스크주의 주도(州都)로 지역의 행정과 경제 중심도시이다. 1950년대 중반 이후 시베리아 정유, 유화산업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인구 약 120만 명의 대도시이다. 옴스크는 남서쪽으로 카자흐스탄과 가깝다. 옴스크와 카자흐스탄 국경과의 거리는 약 110km이다.[5]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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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 ↑ 〈옴스크〉, 《위키백과》
- ↑ 〈옴스크(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 〈옴스크〉, 《요다위키》
- ↑ 〈옴스크(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 ↑ 〈옴스크 국립공과대학교(세계의 대학)〉,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 〈옴스크〉, 《위키백과》
- 〈옴스크〉, 《요다위키》
- 〈옴스크(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옴스크(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 〈옴스크 국립공과대학교(세계의 대학)〉,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북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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