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나마
마나마(아랍어: المنامة, 영어: Manama)는 바레인의 수도이다. 바레인의 수도는 원래 무하라크였으나, 1932년 '마나마'로 변경되었다. 마나마는 페르시아만에 위치해 있고, 바레인섬에서 북동쪽에 있다. 도시의 어원은 "휴식의 장소" 또는 "꿈의 장소"라는 의미의 아랍어에서 유래되었다. 마나마는 바레인의 가장 큰 도시이자 페르시아만의 주요 무역 중심지이다
목차
개요[편집]
- 행정단위: 바레인의 수도
- 면적: 30km²
- 인구: 157,474명(2011년)
- 지역어: 아랍어
- 정부 공식 홈페이지: http://https//capital.gov.bh
역사[편집]
마나마의 북부 해안가에서 청동기 시대 인간이 정착했던 흔적이 발견되었다. 딜문 문명의 중심지로 딜문 문명이 융성하던 기간에 마나마 역시 인류가 정착하여 살았던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이후 수로 시스템의 구축으로 농업이 가능했는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원정대 기록에서 농촌 지역이 존재했다는 기록을 발견할 수 있다. 딜문 문명 이후 아시리아, 바빌론, 아케메네스 왕조, 그리스 등의 세력이 바레인을 차례로 지배하였다.
중세에 이슬람의 전파 이후 바레인은 아랍-이슬람 제국의 일원으로서 역사를 상당 부분 공유하고 있는데, 이 시기에도 마나마는 여전히 중개무역항으로서 그 기능을 온전히 수행하였다. 특히 아랍-이슬람 제국의 중심지가 다마스쿠스에서 바그다드로 이동되었던 압바시야 왕조 시기, 마나마는 남아시아와 중국으로부터 수입되는 교역품을 중개하는 중간 기착지로 사용되었다. 또한 시아 무슬림이 바레인 주민의 다수가 된 14세기 이후 마나마는 이슬람 학자 계층인 울라마(ulama)가 시아파 이슬람 교리를 연구하고 교육하는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시아파 교리를 교육하고 재생산하는 마나마의 분위기는 오늘날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페르시아만으로 진출을 시도했던 포르투갈은 1521년 바레인을 함락시킨 후 마나마를 방어의 요충지로 삼아 요새를 구축하며 통제권을 행사하였다. 이 시기 마나마는 진주 채취 외에도 대추야자, 밀, 보리 등의 농업이 발달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사파비 왕조가 포르투갈을 격퇴하고 바레인에 대한 통제권을 장악한 17세기에 이르러 사파비 제국이 마나마를 대신하여 인근에 위치한 빌라드 알카딤(Bilad Al Qadeem)을 바레인의 수도로 지정했다. 하지만 이곳이 마나마에서 그리 멀지 않았기 때문에 교육과 상업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은 계속 유지될 수 있었다.
18세기 후반 들어 사파비 제국이 물러나고 알 칼리파(Al Khalifa) 가문이 바레인을 지배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마나마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끊임없는 외세의 침입 및 유력 가문 간의 내전 등으로 인해 정치적인 혼란이 가중되었고, 이 때문에 무역이 마비되고 항구가 폐쇄되는 등 경제적인 혼란 역시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19세기에 이르러 마나마는 화려했던 모습을 뒤로 하고 상당히 쇠퇴하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뒤 바레인을 보호령으로 삼았던 영국은 마나마를 중동 지역에서의 군사작전기지로 활용했다. 또한 1919년에는 바레인은 보호령이 아닌 해외 영토로서 영국의 일원으로 공식 편입되기까지 했다. 이후 1920년대부터 1930년대에 걸쳐 영국은 바레인의 혼란을 잠재우고 효율적인 통치를 시행하기 위해 일련의 행정 개혁 조치를 단행하였다. 이 시기에 마나마는 바레인의 행정 중심지로서 법원, 근대 학교, 병원 등이 설치되고 경찰직과 세관직이 신설되는 등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마나마의 경제는 1927년 일본에서 양식 진주가 성공하면서 진주 산업의 몰락과 함께 한 차례 붕괴되었으나, 1932년에 석유가 발견되어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됨에 따라 마나마의 경제는 회복될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영국은 마나마를 전략 공군 기지로 활용하였으며, 1947년 인도 독립 이후에는 마나마로 식민정부의 중심지가 옮겨지기까지 하는 등 마나마는 줄곧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로 활용되었다. 이후 1971년 영국으로부터의 독립과 함께 마나마는 독립 바레인의 수도가 되었다.
지리[편집]
마나마는 바레인 본섬의 북동부 끝에 작은 반도 형태로 되어 있으며 페르시아만과 그 주변의 섬으로 둘러싸여 있다. 마나마의 지형은 약간의 구릉을 제외하고는 대개 평탄하며, 건조기후로 인한 사구 등의 지형이 주변에 나타난다. 대개의 사막과 마찬가지로 알려져 있는 영구 하천은 없다. 마나마의 전역이 시가지로 뒤덮여 있으며, 산림이나 초지, 공원은 찾기 어렵고 해안 또한 간척과 개발을 통한 인공적인 경관이 주를 이룬다.
마나마는 아열대 사막기후(BWh)에 속한다. 마나마의 여름은 극히 더우며, 한여름인 7월과 8월의 평균기온은 38℃ 내외를 기록하며, 최고기온은 50℃ 에 육박한다. 반면 겨울철에는 다소 온난하며 가장 추운 달인 1월 평균기온은 14℃ 수준이다. 가장 추울 때도 영하 이하로 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연 강수량은 70mm 수준이며, 그 중 대부분은 11월과 4월 사이에 내린다.
마나마와 그 주변의 해양은 산호초 등을 천혜의 해양 생물종 다양성이 높은 지역이지만, 이 지역의 높은 개발 수요로 인하여 간척이 활발히 진행되고 해안선에 대한 개발을 많이 진행하면서 이에 대한 파괴가 많이 진행된 바 있다. 이는 유전개발과 전쟁으로 인한 오염을 경험한 근해 페르시아만 오염과 함께 주요한 해양 환경문제라고 할 수 있다.
도시 구조[편집]
독립 이후 줄곧 바레인의 수도로서 기능하는 마나마는 원래 별도의 주(州)였으나, 2002년 행정구역 개편 이후 주변 지역과 통합되어 바레인 수도주(Capital Governorate)의 일원이 되었다. 역사적으로 마나마는 마나마 항구(Manama Port)와 마나마 시장(Manama Souq) 등을 포괄하는 올드 마나마 지역만을 가리킨다. 하지만 바레인에서 줄곧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지역이기 때문에 역사의 흐름과 함께 그 영역이 차츰 확대되어 오늘날 마나마의 행정구역은 총 24개의 구(區, hayy)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6개 구 정도가 올드 마나마를 이루는 지역이며, 나머지는 이후 마나마에 포함된 지역들이다.
마나마는 도로 교통을 중심으로 도시구조가 형성되어 있다. 바레인에 자동차가 처음으로 수입되었던 1910년대 이후 마나마의 개발은 도로 교통의 효율성에 중점을 두고 진행되었다. 이에 따라 올드 마나마 지역 역시 도로의 개량이 순차적으로 진행되었고, 1980년대까지 순환 고속도로가 지속적으로 건설되며 마나마의 크기를 더욱 확장시켰다. 이에 따라 마나마에서는 차량으로 접근하기 힘든 거주구역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인구[편집]
마나마는 전통적으로 중개무역항으로 기능을 하던 곳이었기 때문에 역사 속에서 항상 국제적인 도시로 기록되던 곳이다. 20세기 초인 1904년 인구조사 기록에 따르면 마나마의 인구가 2만 5천 명이었고, 이 가운데 절반이 인도,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 바레인 출신이 아닌 외국 출신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현재 마나마의 인구는 약 43만 명에서 44만 명 사이인 것으로 추산되며, 오늘날까지도 과거와 같이 국제적인 경향이 줄곧 이어져 마나마 인구의 상당수가 외국인이다.
종교적 스펙트럼 역시 다양한데, 시아파 이슬람과 수니파 이슬람을 필두로 기독교, 유대교, 힌두교 등의 종교 공동체가 마나마에 존재한다. 이 가운데 힌두교도는 인도에서 이주한 외국인 노동자 집단이며, 기독교와 유대교 공동체는 소수 토착 바레인 주민도 존재한다.
경제[편집]
바레인 경제와 산업의 중심지로 중동 지역의 이슬람 금융허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바레인 정부가 중점적으로 육성하는 이슬람 금융은 21세기 들어 새로운 형태의 금융으로 각광받고 있으며,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와 함께 양대 이슬람 금융의 허브로 마나마가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금융업과 함께 마나마를 지탱하는 또 다른 산업은 관광업이다. 석유 이후의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바레인 정부는 관광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자원이 마나마에 집중되어 있다.
사회[편집]
유적[편집]
딜문 문명까지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마나마는 도시 크기에 비해 유적과 유물이 다채로운 편이다. 다만 딜문 문명을 상징하는 유적은 마나마 근교에 산재해 있는 편이다.
- 바르바르 사원(Barbar Temple)과 딜문 고분군(Dilmun Burial Mounds) 등이 바로 그것인데, 이 유적은 모두 마나마 근교에 위치해 있다.
- 마나마 시내에서 접할 수 있는 유적으로는 마나마 시장의 정문인 바레인 문(Bab al-Bahrain, bab이 문이라는 뜻)
- 14세기에 건설된 해안 요새인 바레인 요새(Bahrain Fort)
- 바레인 전통 가옥을 복원하여 바레인 고유의 문화와 전통을 보여주는 빈 마타르 하우스(Bin Matar House)
관광[편집]
바레인은 관광산업을 미래 산업으로 집중 육성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수도인 마나마가 관광산업의 중심지로 변모하고 있다. 이는 ‘바레인 경제비전 2030’에 따른 것으로, 외국인 관광객들이 관광 시에 불편을 겪지 않도록 여러 부문을 개혁하고 발전시키고 있다. 이를 위해 허가된 호텔과 음식점에서는 주류를 판매할 수 있으며, 호텔과 카페에서 봉사료를 부과할 수 없도록 조치했다. 또한 정부 차원에서 해외 주요도시에 관광사무소를 개설하고 다양한 관광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에 매진하고 있다.
마나마 시내에서 접할 수 있는 관광 자원도 다양하다. 1988년에 개관한 알파테 모스크(Al-Fateh Mosque)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모스크 중 하나이며 동시에 7천 명을 수용할 수 있다. 1984년 개관한 진주잠수박물관(Museum of Pearl Diving), 1988년에 개관한 바레인 국립박물관(Bahrain National Museum), 2008년에 개관한 바레인 요새 박물관(Bahrain Fort Museum) 등에서는 바레인의 고고학, 민속학 등을 관람할 수 있다. 또한 빈 마타르 하우스(Bin Matar House) 역시 바레인의 전통을 체험할 수 있는 중요한 명소이다.
이밖에도 마나마 시내를 벗어나면 더 다양한 관광 명소들이 존재한다. 바레인 남부주에는 모터스포츠 경기가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바레인 인터내셔널 서킷(Bahrain International Circuit)이 전 세계 F1 애호가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마나마 북부 해역에는 대규모 수중테마공원인 다이브 바레인(Dive Bahrain)이 2019년에 개관했으며, 사막 한가운데에서 400년 이상 생존해 있는 생명의 나무(Tree of Life) 역시 중요한 관광 명소이다.
교육[편집]
마나마는 이슬람교의 전통적인 교리 교육 외에도 바레인 최초의 근대 교육기관이 설립된 도시이기도 하다. 1892년 미국 개혁 교회가 세운 선교 초등학교가 바로 그것이다. 이 학교에서는 영어, 수학, 기독교 교리 등을 교육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후 마나마에는 수많은 공립학교와 사립학교가 문을 열고 교육 사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또한 외국인 인구가 많은 특징이 반영되어 미국계 외국인 학교와 인도계 외국인 학교 등도 마나마에 설치되어 있다.
아울러 마나마에 캠퍼스를 설치하고 고등교육을 실시하는 기관으로는 아힐라 대학교(Ahlia University), 응용과학대학교(Applied Science University), 아랍걸프대학교(Arabian Gulf University), 바레인은행금융원(Bahrain Institute of Banking and Finance), 보건스포츠과학대학(College of Health and Sport Sciences) 등이 있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아라비아 같이 보기[편집]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