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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니아제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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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위치

이오니아제도주(그리스어: Περιφέρεια Ιονίων Νήσων)는 그리스 서해안에 위치한 주이다.[1][2]

개요[편집]

이오니아제도주의 면적은 2,306.94㎢이며 인구는 207,855명(2021년)이다. 주도는 케르키라이다. 이오니아 제도 대부분을 관할하는 주로 '펠로폰네소스, 서그리스 및 이오니아 분권 정부'에 속한다. 코르푸, 이타카, 케팔로니아, 레프카다, 자킨토스의 5개 지역 단위로 구성되어 있다. 이오니아제도주에서 관할하는 주요 섬으로는 케르키라섬, 레프카다섬, 이타카섬, 케팔로니아섬, 자킨토스섬이 있다.

근래 수십 년간 이오니아 제도는 이민으로 크게 인구가 줄고, 전통적인 산업인 어업과 약간의 농업이 쇠퇴하였다. 오늘날 이 제도의 주요 산업은 관광이다. 특히 케르키라섬은 경치가 아름답고 아름다운 폐허와 성이 많으며 큰 항구를 갖추어 순항 관광선의 인기 있는 정박지이다.

역사[편집]

기원전 1200~800년 정도에 그리스인이 처음으로 정착했다. 기원전 5세기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전장 중 하나였으니 자세한 내용은 펠로폰네소스 전쟁 문서를 참고하라. 이후 마케도니아 왕국과 로마 제국, 동로마 제국의 지배를 차례대로 받는다. 동로마 제국 시기 이탈리아인과 노르드인들의 공격을 수시로 받다가 1185년 시칠리아 왕국의 윌리엄 2세가 이곳을 함락시킨다.

1204년 베네치아 공화국은 이오니아 제도 최북단의 코르푸를 시작으로 이곳의 섬들을 서서히 장악해간다. 그리스의 대부분을 장악한 오스만 제국도 이곳은 쉽사리 정복할 수 없었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이곳을 무려 1797년 멸망할 때까지 지배하고 있었다. 이 당시 이오니아 제도의 주요 수출품은 건포도, 올리브 오일과 포도주였다. 상류층과 도시에서는 베네치아어를 사용했고 농민들은 그리스어를 그대로 사용했다.

1797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이탈리아 원정을 하며 베네치아 공화국을 멸망시키고 베네치아 영토였던 이오니아 제도를 직할 통치한다. 프랑스는 귀족을 폐지하고 민주 정권과 자치 정부를 수립했으며 공교육을 도입하는 등 혁명 사상을 퍼트리며 대중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높은 세금은 귀족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마저 등을 돌리게 하였다. 1798년부터 1799년까지 러시아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협공으로 이오니아 제도를 탈환해냈고 1800년 4월 6일 에프타니소스 공화국을 건국한다. 에프타니소스는 '일곱 개의 섬들'이라는 뜻으로 이오니아 제도를 뜻한다. 에프타니소스 공화국은 명목상 오스만 제국이 통치권을 갖고 있지만 상당한 자치가 이루어졌고 각 섬들도 각각 자치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정치적 혼란과 러시아-오스만 간의 패권 경쟁이 이어지다가 이후 1806년 러시아-튀르크 전쟁에서 이기고 있던 러시아 제국이 이 공화국의 주도권을 잡게 되고 틸지트 조약으로 러시아와 프랑스가 우호적 관계로 바뀜에 따라 러시아가 이 공화국을 프랑스 제국에 넘겼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1807년부터 1814년까지 대영 제국은 이오니아 제도를 봉쇄하고 섬을 하나하나 정복해나갔다. 결국 1814년에 영국은 모든 섬을 정복하고 1815년 빈 회의를 통해 영국의 보호령인 이오니아 제도 합중국[3]이 건국된다. 18년동안 주인이 무려 5번 바뀌었다. 이탈리아(베네치아)-프랑스-오스만-러시아-프랑스-영국이다.

이후 이오니아 제도 합중국은 1864년까지 영국의 보호를 받다가 새로 그리스 왕국의 왕이 된 요르요스 1세의 즉위선물로 영국이 그리스에게 양도하여 소멸한다. 그러다 1940년 파시즘 이탈리아는 나치 독일과 협의도 없이 그리스를 침공한다. 이에 따라 이오니아 제도 역시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게 된다. 1943년 이탈리아 왕국의 항복함에 따라 이오니아 제도는 나치 독일이 통치하게 된다. 추축국의 지배기동안 그리스 공산당 등이 파르티잔 활동을 벌이다가 1944년 그리스가 다시 독립함에 현재까지 그리스의 영토로 남아있다. 1953년 이오니아 지진이 일어나 445-800여명이 죽거나 다치는 등 큰 피해가 있었다. 현대에는 이 섬들은 어업과 농업이 쇠퇴함에 따라 지역 주민들 특히 젊은 청년층들이 일자리가 없는 고향을 떠나 수도 아테네 등 그리스 본토 지역으로 이주, 상경하고 있어 인구 유출 등 사회적 문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코르푸나 자킨토스, 레프카다, 이타카 같은 인근 섬 지역들이 외국인들 사이에서 새로운 관광 명소로 떠오르고 있어 낙후된 지역에서 신흥 관광지로서의 부활 가능성이 주목되고 있다.

이 섬들은 마케도니아 제국, 로마 제국, 동로마 제국, 베네치아 공화국, 프랑스 제1공화국, 오스만 제국, 러시아 제국, 프랑스 제1제국, 대영 제국, 이탈리아 왕국, 나치 독일 등 당대의 수많은 열강들이 지배했던 복잡한 역사가 있는 섬들이다. 특히 유럽의 주요 강대국은 적어도 한 번 정도는 이 섬을 통치했을 정도로 수많은 열강들이 오고 갔다.

케르키라[편집]

케르키라(코르푸)는 그리스 이오니아제도주의 섬이다. 동로마 시대의 도시명에서 유래한 코르푸(Corfu)라고도 불린다. 케르키라시는 케르키라섬의 동쪽 해안에 위치하고, 주도이자 현청 소재지이다. 동로마시대의 도시명에서 유래한 코르푸(Corfu)라고도 불린다. 도시 케르키라에 있는 이오니아대학은 현대 그리스에서 처음 세워진 대학이다. 관광업과 함께 올리브와 포도 등을 재배하는 농업이 섬의 주요 산업이다.

그리스 신화와 관련된 유적과 중세 베네치아 시대의 요새 등이 많이 남은 관광 휴양지이다. 도시 케르키라의 구시가는 200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그리스 최초 기록을 여럿 세웠다. 도시 케르키라의 이오니아대학은 현대 그리스에서 처음 세워진 대학이다. 극장 겸 오페라하우스도 이곳에 처음 지어졌다. 관광업과 함께 농업이 주요 산업이다. 고대부터 올리브와 포도를 재배해왔다. 큰 레몬처럼 생긴 시트론을 생산해 수출했다. 현대에 이르러 금귤과 함께, 향료와 기름을 채취하는 베르가모트 오렌지도 재배했다. 외교관 출신 정치인 이오안니스 카포디스트리아스가 코르푸 출신이다. 그는 그리스의 독립과 건국에 크게 기여했고 그리스 최초로 국가수반(재임 1827~1831)에 선출되었다.

코르푸섬은 그리스와 이탈리아 사이의 이오니아해에 있고, 동쪽 해협을 사이로 알바니아 및 그리스와 가까이 있다. 해협의 폭은 가장 좁은 곳은 3km이고, 가장 넓은 곳은 23km이다. 낫처럼 굽은 모양인 섬의 면적은 약 593㎢이고 남북으로 64km, 동서로 32km에 이른다. 코르푸섬에는 판토크라토르산(911m)과 스트라보스키아디산(849m)이 있다.

여름에 건조하고 겨울에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를 나타낸다. 그리스 다른 지역보다는 비가 많이 내리는 편이고, 연평균 강수량은 과거 기상 통계에 따르면 1,097mm였다. 여름 강우량은 한 달에 20mm에 못 미친다. 8월 일 중 최고기온의 평균은 31.3도였고, 1월 일 중 최저기온의 평균은 5.1도였다.

케르키라는 BC 433년 코린토스를 상대로 시보타 해전을 벌였다. 역사가 투키티데스는 이를 사상 최대의 해전이었다고 전했다. 케르키라는 당시 아테네 및 코린토스와 함께 그리스 3대 함대 보유 도시국가였다. 시보타 해전은 아테네 진영과 아테네의 패권에 맞선 스파르타 진영의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404)으로 확전되었다.

코르푸섬은 1386년부터 1797년까지 400여 년 동안 베네치아의 지배를 받았다. 좁은 골목의 다층 건물을 비롯해 케르키라 곳곳에 베네치아의 유적이 남아 있다. 특히 구시가는 베네치아의 영향이 뚜렷하다. 중세의 케르키라는 오스만제국에 맞선 유럽 국가들의 보루(堡壘)로 여겨졌다. 베네치아가 쌓아올린 철옹성 요새에서 오스만의 여러 차례 침략을 성공적으로 방어했기 때문이다. 오스만은 네 차례, 즉 1537년, 1571년, 1573년, 1716년에 케르키라를 포위공격했지만 번번이 함락에 실패했다.

영국이 나폴레옹 전쟁 이후 코르푸섬을 통치했다. 코루푸섬은 최종적으로 1864년에 이오니아 제도의 다른 섬들과 함께 그리스에 편입되었다.

케르키라의 고대 유적에는 헤라 여신의 신전을 비롯해 카르다키 신전, 아르테미스 신전 등 신전이 다수 있다. 헤라 신전은 아날립시스언덕의 정상에 세워졌고 고대 케르키라 부두 가까이 지나는 배에서도 볼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베네치아는 이곳에 두 성채를 건설했다. 옛 성채(팔레오 프루리오)와 새 성채(네오 프루리오)다. 인공섬에 쌓아 올려진 옛 성채에서는 현재 음악회 등 문화행사가 개최된다. 성벽이 거대한 새 성채는 케르키라의 북동쪽에 건설되었다. 새 성채는 그리스 독립 이후 해군 수비대가 주둔해 활용했다. 일반인에게 통제되다가 개방되었으며, 베네치아의 수호성인 성마르코를 상징하는 날개 사자상이 내부 곳곳에 있다.[3]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이오니아 제도주〉, 《위키백과》
  2. 이오니아〉, 《나무위키》
  3. 유럽지명사전 : 그리스 케르키라〉,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동남유럽 같이 보기[편집]

동남유럽 국가
동남유럽 도시
동남유럽 지리
동남유럽 섬
동남유럽 문화
동남유럽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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