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조프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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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조프셰주(폴란드어: Województwo mazowieckie)는 폴란드 중동부에 위치한 주이다.[1]
개요[편집]
마조프셰주의 면적은 35,579㎢이며 인구는 5,514,699명(2021년)이다. 북쪽으로는 바르미아마주리주, 북동쪽으로는 포들라스키에주, 남동쪽으로는 루블린주, 남쪽으로는 시비엥토크시스키에주, 남서쪽으로는 우치주, 북서쪽으로는 쿠야비포모제주와 접한다. 폴란드에서 면적이 가장 크고 인구가 가장 많은 주이다. 주도(州都)는 수도 바르샤바(Warsaw)이다. 5개 도시군과 37개 군, 314개 그미나(지방 자치체)를 관할한다.
1999년 1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설되었으며 주의 명칭은 10세기 이후 폴란드의 영토인 '마조비아(Masovia)'라는 지명에서 유래한다.
바르샤바에서 서쪽으로 약 54km 떨어진 젤라조바볼라(폴란드어: Żelazowa Wola)라는 작은 마을안에는 프레데릭 쇼팽의 생가가 있다. 프레데릭 쇼팽이 1810년에 태어난 곳이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파괴되었다가 복구되었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쇼팽의 사진과 악보, 악기, 가구 등을 전시하고 있다. 여름철에는 쇼팽을 기념하는 피아노 콘서트가 열린다.
주요 도시는 인구 약 180만으로 폴란드 최대 도시인 바르샤바 이외에 남부의 라돔(Radom), 서부의 프워츠크(Płock), 동부의 시에들체(Siedlce) 등이며, 바르샤바를 제외한 여타 도시는 8∼20만 명 정도의 인구를 갖는 중소도시이다. 지리적으로 서유럽과 러시아를 잇는 물류와 교역로로 전통적인 제조업과 정보통신 및 금융 등 거의 모든 산업에 걸쳐 약 90만개의 기업이 있으며 폴란드 대기업의 약 절반은 바르샤바에 본사를 두고 있다.
바르샤바에서 동쪽으로 52km 떨어진 인구 100명도 채 안 되는 작은 마을인 젤라조바 볼라(Żelazowa Wola)는 작곡가이며 피아니스트인 프레데리크 쇼팽(Fryderyk Chopin)이 태어난 곳으로, 생가는 그를 기리는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바르샤바 서북부에서 약 27km 거리에 위치한 팔미리(Palmiry)는 2차 세계대전시 민간인과 지식인이 대량 학살된 곳으로 현재는 팔미리 국립기념박물관(Palmiry National Memorial & Museum)이 들어서 있다.[2]
자연환경[편집]
주 전역은 평탄한 평지로 산과 호수가 없으며, 면적의 약 20%는 침엽수가 울창한 숲이다. 바르샤바의 북서쪽에 위치한 캄피노스 국립공원(Kampinos National Park)은 습지부터 건조지역까지 다양한 식생을 갖춘 동식물의 보고로,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보전지역으로 하이킹과 승마코스로 유명하다.
역사[편집]
15~16세기에 전성기를 누렸으나 18세기 강대국에 의한 폴란드의 분할로 프로이센과 나폴레옹 1세의 지배를 거쳐 20세기 초 폴란드가 되찾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큰 피해를 입었으나 전후 신속히 재건되어 현재는 폴란드 인구의 약 14%가 거주하고 GDP의 22%를 점하는 핵심적인 지역이다.
교육[편집]
바르샤바대학교[편집]
바르샤바대학교는 폴란드 바르샤바에 있는 공립 종합대학교이다. 폴란드 최대 규모의 대학교이다. 25개 학부와 30개의 학술연구소로 구성되어 있다. 6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바르샤바 대학교는 야기에우워 대학교와 함께 폴란드 최고의 대학교로 인정받는다. 바르샤바대학교는 2023년 QS 세계대학순위에서 세계 284위를 기록했다. 2023년 타임스고등교육의 세계대학평가에서는 세계 801-1000위권에 포함됐다. 2023년 유에스뉴스&월드리포트의 글로벌대학순위에서 세계 345위, 유럽 대학 중 144위, 폴란드 대학 가운데 2위로 평가됐다. 2022년 상하이 세계대학학술순위(ARWU)에서는 세계 401-500위권, 폴란드 1-2위권에 들었다.
바르샤바대학교는 1816년 11월 19일 왕립 대학교로 개교했다. 18세기 프로이센 왕국과 러시아제국, 신성로마제국에 의한 폴란드 분할로 인해 폴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크라쿠프에 있는 야기에우워대학교가 합스부르크 제국에 속하게 되자 러시아제국에 속하게 된 바르샤바에 있던 대학이 분리되었다. 러시아제국에 남은 고등교육기관은 리투아니아에 있는 빌뉴스 대학교가 유일했다. 러시아황제 알렉산드르 1세는 바르샤바에 법학과 정치과학, 의학, 철학, 신학, 인문학 등 5개 학부로 구성된 대학교의 설립을 허락했다. 이 대학교는 800여 명의 학생과 50여 명의 교수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이 대학교가 1830년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반러시아 무장반란인 11월 봉기에 가담하자, 러시아 당국은 바르샤바대학교를 폐교했다.
1857년 바르샤바의학대학(Akademia Medyko-Chirurgiczna)으로 재개교했다. 1862년 법학과와 행정학과, 철학과, 역사학과, 수학과, 물리학과가 대학에 추가되며 교명이 슈코와구브나(Szkoła Główna)로 변경되었다. 그러나 1863년 옛 폴란드-리투아니아연방에 속했던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일부, 러시아서부 지역에서 러시아제국의 지배에 반대하는 1월 봉기가 일어나며 자유주의의 시대는 다시 끝났다. 폴란드어로 진행되던 모든 교육기관이 다시 폐쇄되었다. 1857년부터 1863년까지 바르샤바 의과대학에서 배출된 3,000여 명의 학생은 이후 폴란드 지식인의 주축을 형성했다. 슈코와구브나는 러시아어로 교육과정이 진행되는 바르샤바제국대학교(Императорский Варшавский Университет)로 재개교했다. 대학의 설립 목적은 바르샤바에 주둔한 러시아 군인들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었으나, 사실 학생의 70% 이상이 폴란드인이었다.
차르 정권은 러시아식 대학이 폴란드 사회의 러시아화를 이룰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폴란드 학생들은 지하조직을 꾸리며 곧 바르샤바 사회를 주도하게 되었다. 1905년 러시아혁명에 참여한 폴란드인 대부분은 바르샤바제국대학교 출신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1915년 독일제국이 바르샤바를 점령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폴란드인의 협력을 얻기 위해 자유화 정책을 실시했다. 덕분에 바르샤바대학교에서도 폴란드어 교육이 재개되었고, 학생 수는 1,000명에서 4,500명으로 크게 늘었다.
1918년 폴란드가 독립한 이후 바르샤바대학교는 더욱 빠르게 성장했다. 해외에서 활동하던 학자들이 대거 고국으로 돌아오면서 대학교의 교육 수준은 빠르게 서유럽의 수준까지 따라잡았다. 1930년대 바르샤바대학교는 폴란드 최대의 대학교가 되었다. 교수의 수는 250명, 학생의 수는 1만 명을 넘겼다. 당시 대학교의 경제적 사정이 여의치 않아 교육비가 다소 비쌌음에도 불구하고 입학생은 끊이지 않았다. 폴란드의 독립영웅이자 제2공화국의 독재자 유제프 피우수트스키가 1935년 사망한 뒤 교명은 그의 이름을 따서 유제프 피우수트스키 바르샤바대학교(Uniwersytet Warszawski im. Józefa Piłsudskiego)로 변경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고 나치 독일이 바르샤바를 점령한 뒤 대학교는 폐교되었고, 시설은 병영으로 유용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교직원과 학생들이 돌아와 학교를 재건했다. 40년대 후반까지 대학교는 상당한 자율을 누렸으나, 이후 스탈린주의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많은 교수들이 비밀경찰에 체포되었고 도서류는 이념적 검열에 시달렸다. 그 반면 대학교육이 무료화 되면서 학생의 수가 더 늘어난 측면도 있었다. 다행히 대학교는 공산주의시대 내내 자유로운 사상과 교육의 중심지로 남아있었고, 이곳에서 배출된 학생들이 폴란드사회의 민주화를 이끌었다.[3]
바르샤바[편집]
폴란드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이고 마조프셰주의 주도이다. 9세기 정착지가 형성돼 16세기에 중부 유럽에서 정치 · 경제 · 문화의 중심 도시로 성장했다. ‘동쪽의 파리’로 불렸으나 외세의 잦은 침략으로 수난을 겪었다. 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에 의해 도시의 85%가량이 파괴되었다. 전후 구시가지와 왕궁 등을 완벽에 가깝게 복원했으며, 1980년 ‘바르샤바 역사지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1989년 폴란드 민주화 이후 경제가 발전하고 있으며 1996년 서울과 자매도시가 되었다.
평균 고도는 해발 100m. 도시의 약 4분의 1이 공원이다. 여름은 짧고 따뜻하며 겨울은 길고 춥다. 연평균 기온은 8.5℃이며 1월 평균 –1.8°C, 7월 평균 19.2°C이다.
UNESCO 세계유산에 등재된 바르샤바 역사지구(26ha)가 바르샤바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비스와강 서쪽에 위치한다. 성 요한 대성당, 삼위일체 교회, 왕궁, 옛 시장 등 복원된 건축물들을 볼 수 있다. 왕궁 앞에는 1611년 바르샤바를 수도로 선포한 지그문트 3세 왕의 동상이 있다.
시내에는 민중봉기박물관을 비롯한 63개의 박물관과 79곳의 공원이 있다. 1956년 완공된 문화과학궁전은 원래 명칭이 스탈린 문화과학궁전이었으며, 외세 지배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산하 민주제도인권사무소(ODIHR) 본부도 바르샤바에 있다.[4]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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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 ↑ 〈마조프셰주〉, 《위키백과》
- ↑ 〈두산백과: 마조비에츠키에주〉, 《네이버 지식백과》
- ↑ 〈세계의 대학 : 바르샤바대학교〉, 《네이버 지식백과》
- ↑ 〈유럽지명사전 : 폴란드 바르샤바〉,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 〈마조프셰주〉, 《위키백과》
- 〈두산백과: 마조비에츠키에주〉, 《네이버 지식백과》
- 〈세계의 대학 : 바르샤바대학교〉, 《네이버 지식백과》
- 〈유럽지명사전 : 폴란드 바르샤바〉,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동유럽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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