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마을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말 또는 마실 그리고 타운(Town)이라고도 한다. 주로 도시(City)보다는 작고, 촌락(Village)보다는 큰 거주지역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나, 한국어에서는 촌락이나 부락 등의 단어가 마을을 대신하여 사용되기도 한다.
개요[편집]
마을은 한자 뜻이 같은 촌, 촌락과 혼용된다. 취락은 가옥의 집적이라는 의미의 일반 용어이다. 그러므로 도시와 농촌에 모두 적용된다. 부락은 주로 일본에서 사용된 용어로, 그 영향을 받아 촌락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마을 용례는 매우 다양해서 일반화하기는 쉽지 않지만 대체로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기초 사회 단위로 이해되며, 주로 민속학에서 선호하는 용어라 할 수 있다.
마을은 발생 차원에서 자연촌・행정촌, 가옥의 밀집도에 따라 집촌(集村)・산촌(散村), 주민들의 씨족 구성에 따라 동성마을・각성마을, 신분 구성에 따라 반촌(班村)・민촌(民村)・반상혼거촌(班常混居村), 마을 크기에 따라 대촌・중촌・소촌, 생업 기반에 따라 농촌・어촌・산촌 등 다양한 기준으로 분류될 수 있다.
마을은 한반도 역사가 시작된 후 20세기 중반의 농업사회 시대까지 다수의 사람이 거주해 온 생활공간이자 민속・의례・신앙 등 전통문화를 일궈 온 문화공간이었다. 20세기 후반부터 이촌향도(離村向都) 현상과 도시 중심의 지역개발로 인해 전통마을의 기능이 쇠락하고 있지만, 한국의 전통마을이 담아내고 있는 삶의 지혜와 정신을 현대 감각으로 재창조할 필요가 있다.
전통마을의 입지[편집]
전통마을의 기본 입지는 무엇보다 자연환경 요소와 연관이 있다. 동서양 모두 인류는 산・구릉・강・바다와 같은 자연환경에 순응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마을을 형성하였기 때문이다. 인간이 어느 지역의 자연환경을 삶을 영위하는 장소로 택하여 마을이 형성될 경우 이 마을을 둘러싼 '자연환경'은 마을 공간구성의 한 요소로서 마을의 '자연공간'이 된다.
어떠한 자연환경을 마을 입지로 택하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사례연구가 축적되어 있다. 그것은 배산임수(背山臨水)의 기본 조건에 마을 주변 좌우에 산자락이 있고, 조금 멀리 앞산도 있어 사방에서 산들이 마을을 아늑하게 감싸 주는 자연환경이 있는 공간이다. 여기에서 만약 배산임수의 뒷산이 북에서 남으로 오는 산줄기라면 자연스럽게 마을의 가옥들은 남향이 되어 더욱 선호하는 장소가 된다.
마을의 입지 선택은 풍수 논리로 적절하게 설명될 수 있다. 풍수는 산 자의 주거지나 죽은 자의 무덤이나 모두 그 입지 조건의 기본은 사방(四方)으로 산의 보호 안에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 사방에서 보호해 주는 산을 현무(뒷산), 주작(앞산), 청룡(왼쪽 산), 백호(오른쪽 산)라고 한다. 이를 총칭하여 사신사(四神砂)라고 한다. 사신사에서 핵심은 뒷산에 해당하는 현무이기 때문에 흔히 주산(主山) 또는 진산(鎭山)이라고 한다. 마을을 둘러싼 사신사는 그 조화 상태에 따라 우열이 매겨진다. 핵심 기준은 사방의 사신사가 마을을 향해 감싸는 형상이다. 예를 들어 왼쪽 청룡에 해당하는 산이 마을을 감싸지 못하고 밖으로 휘었을 경우는 물이 마을을 빠져나가는 수구(水口)가 열렸다고 하여 좋지 않게 본다. 그쪽 방향의 바람을 막아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주산에서 내려오는 좋은 마을의 기운도 담아내지 못하고, 물의 흐름도 마을을 감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은 산에서 만들어 낸다. 산이 마을을 감싸야 물도 마을을 감싸며 돌아 나가는 것이다.
한국 전통마을의 입지가 처음부터 풍수 논리로 선택되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바람으로부터의 보호, 편안한 경관, 윤택한 생산 조건, 편리한 일상생활을 만들어 줄 수 있는 마을 입지에 대한 오랫동안 누적된 인간의 지혜는 결국 풍수 입지 논리와 일치한다. 그 결과 풍수사상이 유행하면서 마을 입지와 풍수 논리가 더욱 자연스럽게 결합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유명한 반촌일수록 입향시조가 입향할 때 지리와 산수를 보고 입지를 선택하였다는 구전이나 문헌기록, 와우형(臥牛形)이니 행주형(行舟形)이니 하여 전국 마을에 널리 전승되고 있는 마을 물형론(物形論)의 존재, 마을을 보호해 주는 주변 산들이 다소 부족할 경우 행해지는 다양한 비보(裨補) 행위는 이 점을 잘 보여준다.
한국의 전통마을 자연공간에는 죽은 자의 묘지공간이 있었다. 주로 자연공간 내 마을로 내려오는 주산 아래 또는 좌우의 산능선(청룡, 백호) 또는 앞산에 묘지를 마련하였다. 동성마을의 경우 집안의 번영을 위하여 풍수에 맞는 명당을 찾아 마을과 떨어진 장소에 선산(先山)을 마련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이러한 묘지공간을 염두에 두고 마을의 자리를 잡기도 하였다. 또한, 마을 뒷산이 내려오는 중요한 길목에 산신당, 입향시조(入鄕始祖), 서낭당 등 마을 공동제사 대상물을 배치하기도 하였다. 동성마을의 경우 공동의 사당을 두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역사마을[편집]
한국의 역사마을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하회와 양동은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전통마을이다. 낙동강은 안동에 이르러 비로소 큰 물줄기를 만들어 내 풍천면에 접어들어 큰 'S'자를 그리면서 마을을 감싸 안고 흐른다. 마을 이름도 하회(河回)라고 했다.
하회마을(중요민속자료 제122호)은 풍산류씨가 600여 년간 대대로 살아온 한국의 대표적인 동성마을이며, 와가(瓦家:기와집)와 초가(草家)가 오랜 역사 속에서도 잘 보존된 곳이다. 특히 조선시대 대 유학자인 겸암 류운룡과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 형제가 태어난 곳으로도 유명하다.
마을의 동쪽에 태백산에서 뻗어 나온 해발 271m의 화산(花山)이 있고, 이 화산의 줄기가 낮은 구릉지를 형성하면서 마을의 서쪽 끝까지 뻗어있으며, 수령이 600여 년 된 느티나무가 있는 곳이 마을에서 가장 높은 중심부에 해당한다.
하회마을의 집들은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강을 향해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좌향이 일정하지 않다. 서로가 비스듬히 서 있다. 한국의 다른 마을의 집들이 정남향 또는 동남향을 하고 있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다. 또한, 큰 와가(기와집)를 중심으로 주변의 초가들이 원형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는 것도 특징이다. 하회마을에는 서민들이 놀았던 '하회별신굿탈놀이'와 선비들의 풍류놀이였던 '선유줄불놀이'가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다.
경주 양동마을은 신라의 고도 경주에서 동북방향으로 20km 지점에 위치한 산세와 지세가 좋아 물자형 골짜기를 따라 대소고가가 어우러져 있으며 선비들이 많이 배출된 전형적인 조선시대 반촌마을이다. 양동마을은 단일 성씨로 이루어지는 전통마을과 달리 특이하게 서로 인척관계로 맺어진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 두 집안이 함께 500여년을 이어왔다.
전통 민속마을 중 가장 큰 규모와 오랜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대표적 반촌인 양동마을은 특이하게 손(孫), 이(李) 두 성이 서로 협조하며 반세기 역사를 이어 전통문화 보존 및 볼거리, 역사적인 내용 등에서 가장 높은 가치를 평가받고 있다.
한국 최대 규모의 대표적 조선시대 동성취락으로 수많은 조선시대의 상류주택을 포함하여 500년이 넘는 고색창연한 54호의 고와가(古瓦家)와 이를 에워싸고 있는 고즈넉한 110여 호의 초가로 이뤄져 있다. 양반가옥은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낮은 지대에는 하인들의 주택이 양반가옥을 에워싸고 있다.
경주손씨와 여강이씨의 양 가문에 의해 형성된 토성마을로 우재 손중돈선생, 회재 이언적선생을 비롯하여 명공(名公)과 석학을 많이 배출했다.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 수백년 된 기와집과 나지막한 토담으로 이어지며, 통감속편(국보 283), 무첨당(보물 411), 향단(보물, 412), 관가정(보물 442), 손소영정(보물 1216)을 비롯해 서백당(중요민속자료 23) 등 중요민속자료 12점과, 손소선생 분재기(경북유형문화재 14) 등 도지정문화재 7점이 있다. 와가와 초가 등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지며 전통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아름다운 풍경과 낮은 토담길 사이를 걸으며 긴 역사의 향기를 넉넉하게 감상할 수 있다. 유교 전통문화와 관습 등을 체험할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이 있어 아름다운 우리 예절과 전통문화도 체험할 수 있다.
기타 전통마을[편집]
영주 무섬마을은 강물이 산을 만나 휘휘 돌면서 만들어 내는 물돌이 마을로서 물위에 떠 있는 섬이라 하여 무섬마을이라고 불리고 있다. 순우리말로, 처음엔 '물섬마을'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350년을 넘은 세월을 지켜온 한옥이 서로를 의지하며 마을을 지켜오고 있다. 강을 가로지르는 외나무다리를 건너야 들어갈 수 있는 아늑한 마을에서 전통문화를 경험하고, 집집마다 숨겨진 신비한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힐링을 맛볼 수 있다.
경주 교촌마을은 원효대사와 요석공주가 만났던 요석궁의 역사와 경주 최부자 고택 등 유명한 관광명소와 문화유적의 원형을 잘 보존하는 한국 대표 한옥마을이다. 다양한 볼거리와 더불어 먹거리와 놀거리가 풍성할 뿐만 아니라 대릉원과 첨성대, 동궁과 월지 등 살아 있는 신라 천년의 숨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역사문화유산을 함께 둘러 볼 수 있는 마을여행지라고 할 수 있다.
예천 '금당실 마을'은 조선시대 정감록이 전하는 '천하명당 십승지'중 하나이며 조선 초 태조 이성계가 도읍으로 정하려다 큰 강이 없어 포기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마을 안쪽에 위치한 천연기념물인 송림과 나지막한 돌담길 골목이 굽이굽이 이어지며 여유와 힐링을 함께 누릴 수 있는 마을이다. 금당실 마을에서는 여행객들이 주위 경관에 마음을 빼앗겨 골목을 따라 걷다가 길을 잃고 헤매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영남 제일의 길지로 손꼽히는 성주 '한개마을'은 예전에 이곳에 큰 개울 또는 나루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장원급제자가 많아 '장원방'이라 불렸던 칠곡 '매원마을', 아늑한 숲과 연못, 오래된 고택이 어우러진 포항 '덕동마을', 천연기념물 마을지킴이 사촌 숲으로 유명해진 의성 '사촌마을', 200여년 된 고가옥들이 30여 동이나 늘어서 있고 영양 남씨 집성촌으로 400여 년간 세거를 누리며 살고 있는 영덕 '괴시리마을' 등도 추천할 만한 전통마을 여행지이다.[1]
각주[편집]
- ↑ 권광순 기자, 〈수백년 이어온 공존 생명체의 숨결 그대로… 영주 무섬마을·경주 교촌마을·성주 한개마을 등 둘러봐야 할 명소 많아〉, 《조선일보》, 2019-10-17
참고자료[편집]
- 〈마을〉, 《위키백과》
- 〈마을〉, 《한국민속대백과사전》
- 권광순 기자, 〈수백년 이어온 공존 생명체의 숨결 그대로… 영주 무섬마을·경주 교촌마을·성주 한개마을 등 둘러봐야 할 명소 많아〉, 《조선일보》, 2019-10-17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