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향
개요[편집]
타향이란 말은 어쩐지 외롭고 쓸쓸하게 느껴진다. 익숙한 고향산천을 떠나, 따뜻하게 정을 주고받던 고향 사람들을 그리워하며 고적하게 살아가는 '타향살이'란 얼마나 서럽고 고통스러운가. 고향을 떠나 객지에 나가 사는 것만도 그러할건대, 고국마저 떠나 타국을 떠도는 신세란 더할 나위 없이 외롭고 불쌍하고 쓰라릴 것이다. 그런데 돌아보면 고향에 사는 분들도 타향살이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것도 딴 지역에서 이사 온 사람들이 아니라, 낯설고 물선 머나먼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울타리 너머로 정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삶에서 정만큼 소중한 것도 없을 것 같다. 타향일지라도 오래 살다 보면 정이 들게 되고 그 환경에 적응하면서 포근한 안식처로 바뀐다.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란 말도 그래서 생긴 말 같다.
타향살이하면 설움과 고생의 대명사처럼 여겨왔다. 사람들은 유행가로 그리움을 달래 보기도 했고 향수병으로 설움이 북받치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고향에서 살고 있는 사람보다 고향 밖에서 사는 사람들이 월등하게 많다. 타향살이니 객지니 하는 말들이 우리들의 뇌리에서 사라져갈 날이 멀지 않을 것 같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부모 세대의 추억 정도로만 생각될 것이다. 수시로 고향을 들락거리다 보니 타향이란 이미지가 사라진 듯하다. 사람들이 이웃나라를 제집처럼 드나들고 있는데 고향을 지척에 두고도 가기는커녕 가족들의 소식조차 알 길이 없는 비극으로 애련의 정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명절을 맞아 해마다 되풀이되는 민족 대이동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풀어주는 신선한 나들이일 것이다. 시내와 다소 떨어져 있어 주거생활지로 서는 최적이다. 실내에서 바라보는 정원 풍경은 경치 좋은 어느 정자에서 내려보는 것처럼 마음을 맑게 만든다. 솔솔 부는 바람에 단풍진 나뭇잎들이 한들거리고 어디서 왔는지 뭇 새들이 날아든다 청정한 나뭇잎들은 산소의 공급원이 돼준다. 비록 고향은 다르지만 고향 사람처럼 정이 따뜻한 이웃들도 많다.
우리는 한 조상의 후예이기도 하지만 어디로 가나 지역의 정서나 문화 역시 다를 바 없다. 때문에 이질감이나 거부감이 없는 것이 우리의 환경이다. 어디에 누구와도 쉽게 어울려 생활할 수 있고 정을 나눌 수 있는 민족이다. 떠돌이 신세와 다를 바 없는 유목민이다. 환경이 달라 다민족 사회를 이루고 있는 나라에서 우리와 같은 정서와 인정의 교감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수구초심(首丘初心), 여우도 죽을 때는 제가 살던 언덕을 향해 머리를 둔다고 하는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마는 교통과 통신이 발달되고 생활수준이 고루 향상되면서 "고향이 따로 있나 정들면 고향이지"란 말이 현실로 다가와 제2의 고향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웃과 더불어 정 나누며 살아가는 것이 고향을 만들어 가는 첩경 아닐까 싶다. [2] [3]
타향에 살고 있는 실향민[편집]
6.25 전쟁 이후에 현재까지 산발적으로 북한에서 탈출한 북한이탈주민들도 고향을 떠나 다시 가지 못하는 신세라는 점에서는 위에서 정의한 실향민과 동일하다. 이들도 고향을 그리워하는 성향에 통일을 바라는 비중이 일반 한국인보다 많은 경향이 있다. 반공 학생운동 기념사업회에서 1986년에 출간한 '한국 학생 건국 운동사'에 의하면 월남한 청년들은 백색테러단에 많이 참가하여 테러단의 지원과 지시로 북한 지역에 원정 테러를 많이 하러 갔다고 한다.
이들이 이 단체에 많이 참가한 이유는 자신들의 고향을 뺏어간 조선노동당에 대한 분노와 테러단 지도부의 교육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기회가 되면 고향에 한 번 다녀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945년 남북 분단이 되고 1950년 6.25 전쟁 통에 자의든 타의든 남한으로 넘어오게 된 북한 출신의 사람들이 밀집하게 되고 1953년 휴전 성립이 되어서 더 이상 이북에 있는 고향에 갈 수 없게 되면서, 실향민은 '북한 지역에 본적지를 두고 있으나 고향에 가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4]
타향에 살고 있는 실향민 정착 지역[편집]
전반적으로 실향민은 경기도, 경상도와 강원도, 충청남도에 많이 정착을 한 반면 전라도와 충청북도에서는 소수, 제주도에서는 극소수이다. 물론 경상도에서도 부산, 울산, 창원, 거제, 김해, 양산 등 동남부 해안지역에 많이 분포하고 있고, 전라도에도 일부 지역에는 황해도 출신 실향민들이 많이 거주한다고 알려져 있다. 전쟁 기간 1.4 후퇴 당시 많은 실향민들이 지금의 부산과 경상남도에까지 피난하였고, 상당수가 부산에 정착하였다. 조선 말기 개항을 거치면서 부산은 경상도 제1의 도시가 된 것을 넘어 기존의 한반도 제2의 도시였던 평양과 엎치락뒤치락 하는 수준까지 성장하였다. 이어서 부산은 6.25 전쟁으로 인해 피난민들이 몰린 것을 계기로 더욱 크게 성장하여 3위와 차이가 큰 대한민국 제2의 도시가 되었다.
한반도 실향민의 대표적 마을이나 지역은 주로 최북단 지역 등에 집중되어 있으며 강원도 속초시 청호동에 함경도 출신 실향민 집단촌인 아바이 마을이 있다. 그리고 속초 외에도 강릉이나 춘천 등에도 많이 거주한다. 정감록의 영향을 받아 실향민이 정착한 곳도 있다고 한다. 영주시 풍기읍, 공주시 유구읍이 거론된다. 그 외에도 포로수용소가 있었던 경남 지역에 주로 분포하는데, 부산이나 창원 등지에는 '해방촌'이라는 이름이 붙은 동네가 한두 군데씩 꼭 있으며 이북식 정통 냉면을 하는 가게도 도시마다 찾아볼 수 있을 정도이다. 특히 부산의 원도심인 중구, 영도구, 동구, 서구 등 항만 지역에 많이 있다. 경기 지방의 경우, 서울특별시 용산구 해방촌이나 중구 소공동, 오장동, 장충동 등지에 실향민이 많이 거주했었고, 여전히 해당 지역에는 이북식 음식점이 널리 분포하고 있다. 그리고 인천 중구, 동구, 미추홀구와 같은 원도심이나 강화군, 옹진군, 경기도 북부 지역에도 실향민들이 많이 거주한다. 대구에도 마찬가지로 실향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4]
타향살이 노래[편집]
1934년 봄 콜럼비아레코드사가 조선일보사의 후원으로 개최한 전 조선 명가수 선발음 악대회에서 23세의 고복수가 2등으로 입상하였다. 그는 몇 달 뒤 오케레코드사에 발탁되어 자기보다 두 살 아래인 청년 가요 작곡가 손목인의 처녀 작품「타향」을 첫 취입하였다. 느린 3박자의 서정 가요(단조 구성)로, 가요형식의 원형인 A, B형식의 16소절로 된 짧은 노래이다. 고복수의 구수한 목소리와 별로 기교가 없는 순수한 창법이 대중들의 호감을 샀는지「타향살이」는 고복수의 대명사가 되다시피 하였다. 만주로 이민 가서 사는 동포들에게는 고향을 그리는 마음의 노래, 즉 망향가처럼 불리었다.
가사[편집]
-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고향 떠난 십여 년에 청춘만 늙어
- 부평 같은 내 신세가 혼자도 기막혀서 창문 열고 바라보니 하늘은 저쪽
- 고향 앞에 버드나무 올봄도 푸르련만 버들피리 꺾어 불던 그때는 옛날[5]
관련 기사[편집]
고향을 떠나 타향으로 간 이유는 다 다르겠지만 이민자들의 공통적인 바람은 아마도 다 같을 것이다. 돈을 벌어 가족을 돕겠다거나 좀 더 잘 살아보자는 이유다. 타향살이는 그리 만만치 않다. 언어는 물론 모든 것이 다른 문화와의 싸움이다. 그리고 고향 생각으로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 초창기의 타향살이! 이를 극복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1960년경 독일은 외국인 노동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할 만큼 경제 성장이 눈부셨다. 가장 먼저 서독 땅을 밟은 사람들은 이탈리아 사람들로 벌써 1955년에 파 독했으며 그 뒤를 이은 사람들로는 스페인과 터키 사람들 그리고 위에 열거한 나라 등약 1,400만 명의 노동자들이 왔다. 독일의 눈부신 발전은 더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필요로 했다. 그런데다 독일인들이 선호하지 않는 곳에도 노동력이 필요했기에 더욱 그랬다. 이에 우리나라에서는 광산과 병원에 많은 인력을 파견하게 됐던 것이다. 독일 경제성장하면 외국인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빼곤 절대 논할 수 없는 만큼 외국인 노동자들의 희생적인 노동 역사는 잊어서는 안 된다.[6]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 ↑ 〈타향〉, 《네이버 국어사전》
- ↑ 김성중, 〈타향에서 더불어 살아야 하는 세상〉, 《전북일보》, 2009-07-09
- ↑ 박완규 수필가, 〈타향도 정(情)들면〉, 《경상투데이》, 2022-08-29
- ↑ 4.0 4.1 〈실향민〉, 《나무위키》
- ↑ 〈타향살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 이영남 작가, 〈함부르크 시청 주최 터키인 파독 60년 기념행사에 다녀와서〉, 《재외동포신문》, 2021-11-01
참고자료[편집]
- 〈타향〉, 《네이버 국어사전》
- 〈실향민〉, 《나무위키》
- 〈타향살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김성중, 〈타향에서 더불어 살아야 하는 세상〉, 《전북일보》, 2009-07-09
- 박완규 수필가, 〈타향도 정(情)들면〉, 《경상투데이》, 2022-08-29
- 이영남 작가, 〈함부르크 시청 주최 터키인 파독 60년 기념행사에 다녀와서〉, 《재외동포신문》, 2021-11-01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