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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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만(일본어: 広島湾, ひろしまわん, 히로시마완, 영어: Hiroshima Bay)은 일본 히로시마현 남쪽 해안에 위치하는 만이다. 세토 내해에 위치하고 작은 섬이 많고 일부가 리아스식 해안에 해당한다.[1]
개요[편집]
히로시마만은 일본 주고쿠, 히로시마현 남서부 세토내해의 입구에 위치한다. 동쪽은 시코쿠섬, 남쪽은 오시마섬과 야시로섬, 서북부는 본토로 둘러싸인 해역이다. 만 안에 있는 여러 섬에서는 귤을 많이 생산한다. 굴 김 양식이 오래되고 근년에는 진주 양식도 하고 있다. 만은 남북으로 약 55km, 동서로 약 28km, 면적은 1000km², 깊이는 10~50m이다. 히로시마만은 세토우치 공업지역에 위치해 조선, 철강업이 활발해 히로시마항에서는 공업원료의 수입, 제품의 수출이 이루어진다. 만에 있는 이쓰쿠시마섬(厳島, いつくしま)에는 세계유산인 이쓰쿠시마 신사가 있다. 1952년(쇼와 27년) 국가 특별사적 및 특별 명승지로 지정되었으며, 미센산의 원시림은 천연기념물로 보호되고 있다.[2]
이쓰쿠시마섬[편집]
이쓰쿠시마(厳島いつくしま)는 세토 내해 히로시마만 남서부에 위치한 섬이다. 통상적으로 미야지마(宮島みやじま)라고 불린다. 히로시마현 하쓰카이치시에 배속되어 있다. 일본 3대 절경중 하나이다. 섬에는 세계유산인 이쓰쿠시마 신사가 있다. 1952년(쇼와 27년) 국가 특별사적 및 특별 명승지로 지정되었으며, 미센 산의 원시림은 천연기념물로 보호되고 있다. 또, 1934년(쇼와 9년)이 주변 해역은 세토 내해 국립공원으로 편입되어 자연보호법에 따라 특별보호구역이다. 이쓰쿠시마 신사는 아스카 시대인 593년 이쓰쿠시마 섬의 호족 사에치 구라모토가 창건했다고 전해지지만, 현재 모습을 띠게 된 건 다이라 가문이 권력을 잡은 헤이안 시대 말기이다. 센고쿠 시대 모리 모토나리가 스에 하루카타를 격파하고 주고쿠 지방의 패자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이쓰쿠시마 전투의 무대이기도 하다. 이후 모토나리는 신성한 섬을 전장으로 끌어들인 일을 수치로 생각해 이 섬의 자연을 보호했다고 한다.
이쓰쿠시마섬은 신성한 섬으로 벌목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자연 상태의 원시림을 가지고 있다. 식생은 적송이 대부분이며, 해발이 낮은 지역에서는 생육하기 힘든 전나무등도 볼 수 있다. 또, 가을이면 아름다운 단풍을 구경할 수 있어 케이블 카가 설치된 표고 535m인 미센 산 정상부까지 오르며 단풍을 즐길 수 있다. 섬에는 다수의 사슴과 원숭이가 살고 있다. 원숭이에 관해서는 에도 시대 어디에도 기록이 없으며, 아마 근대에 들어서면서 쇼도섬에서 건너갔다고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사슴에 관해서는 근대 이전부터 있었다는 기록이 있고, 이쓰쿠시마 신사에서는 신성한 동물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후 미군이 이쓰쿠시마 섬에 와서 사슴 사냥을 했기 때문에 종적을 감춘적도 있었다. 현재 사슴은 나라현에서 이송해온 것이다. 썰물때 모래사장에서는 많은 집게를 볼 수 있다.
근년에 들어 이쓰쿠시마 신사의 건물과 도리이 부근에서 해초인 파래가 무성해 경관을 해치고 있다. 또, 썩은 악취도 나기 때문에 미야지마 관광협회와 미야지마 정 사무소, 자치회가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매년 청소를 하고 있다. 왜 파래가 무성하게 자라는 지 그 원인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수질 악화와 수온 상승이라는 말이 있지만, 히로시마 만은 고도 성장기에 비교해서 오히려 대폭 개선되왔다. 오히려 너무 깨끗해서 굴 양식등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쓰쿠시마 섬 이외의 지역에서는 파래의 개체수가 급증하는 예는 없었다. 오히려 감소하는 지역도 있다. 이 때문에 간척사업에 따른 해류의 변화가 영향을 끼쳤다는 의견도 있다. 또, 사슴이 너무 번식해서 먹이 부족으로 관광객의 도시락과 식료품, 종이류 등을 먹어 골치를 앓고 있다. 현재 섬에 서식하고 있는 사슴에 수는 추정치로 약 600마리다. 관광협회에서 사슴의 뿔을 자르고 있지만, 뿔 달린 사슴을 만날 경우도 있기 때문에 다칠 우려도 있다. 히로시마 전철 히로덴미야지마구치 역 또는 JR 서일본 미야지마구치역에서 하차한 후, 부근에 있는 선착장에서 이쓰쿠시마섬으로 가는 배를 타야 된다. 배로는 JR 미야지마 페리(JR西日本宮島フェリー 또는 JR宮島連絡船), 미야지마마쓰다이키센(宮島松大汽船)이 있다. 또, 히로시마 항에서 출발하는 고속선도 있다.[3]
니노시마섬[편집]
니노시마섬(일본어: 似島)은 세토 내해(瀬戸内海)의 히로시마만(広島湾)에 있는 일본의 섬이다. 행정구역상으로 히로시마현 히로시마시 미나미구 니노시마초에 속하며 시 영역의 최남단에 위치한다. 일본 히로시마현 히로시마항(廣島港)에서 남쪽으로 약 3㎞ 떨어진 히로시마만에 있는 섬이다. 히로시마시에 속해 있는 섬으로서는 가장 크다. 섬의 북동쪽에는 해발고도 278m의 아키노코후지산(安芸小富士, 서쪽의 후지산)이 있다. 17세기에서 19세기 중엽에 걸쳐서는 중계항으로 번창하여 ‘화물의 섬’이라고 불렸다. 히로시마만의 수심이 얕아 대형 선박이 본토의 연안까지 직접 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 이 섬에 화물을 풀어 놓고, 보다 작은 배로 실어 날라야 했다. 산지가 많고 평지가 적은 지형이며, 남쪽에는 천연의 모래해변과 간석지가 있다. 어업으로는 굴 양식이 성하여 섬을 둘러싸듯이 굴 양식용 뗏목이 떠 있으며, 해삼, 낙지, 볼락 등의 연안 어업도 한다. 이전에는 일본에서 자갈 운반선이 가장 많았을 정도로 자갈의 채취·운반업이 성했다. 1895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까지 일본군의 검역소가 이 섬에 있었으며, 당시 군사시설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러일전쟁 때는 포로수용소도 설치되었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을 당시에는 검역소가 임시 야전병원으로 이용되어 1만 명으로 추산되는 피폭자가 니노시마로 실려왔다. 섬에는 사망자의 위령비가 있다.[4]
세토 내해[편집]
세토내해(일본어: 瀬戸内海 세토나이카이)는 일본의 혼슈 서부, 규슈, 시코쿠로 둘러쌓인 내해이다. 수면 면적 약 2만3천203km²로 일본 최대의 내해이다. 해안선의 총 연장 길이는 약 7,230km이다. 동서 길이는 450km, 남북은 15 - 55km이고 평균 수심은 약 38m이다. 호요 해협이 가장 깊어 최대 수심은 약 105m이다. 세토내해 기후는 온난다습하여 비가 많이 내리고 주변의 산지로 인한 지형적 영향으로 해륙풍이 불며 거센 바람이 잦은 편이다. 밀물과 썰물의 차이 또한 커서 조류가 거세다. 여름철에는 짙은 안개가 자주 발생하여 해난사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세토 내해는 전체적으로 볼 때 서쪽이 깊고 동쪽으로 갈 수록 얕아진다. 남북의 폭이 좁고 동서가 긴 띠 모양이어서 곳곳에 만, 나다(灘, 여울), 해협, 수도 등의 이름을 갖는 지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로라 불리는 곳은 강력한 조류로 해저가 침식되어 형성된 곳이다. 섬이 많아 일본의 다도해로 불리며 둘레 100m 이상의 섬은 787개가 있고 그 보다 작은 암초는 수 천개에 달한다. 세토 내해에 있는 주요 섬들로는 동부의 야와지섬, 쇼도섬, 중부의 오오미섬, 인노시마, 오오사키카미섬, 이쿠치섬, 무카이섬, 호포로섬, 서부의 야시로섬, 구라하시섬, 노미섬, 이쓰쿠시마섬 등이 있다. 세토 내해는 밀물과 썰물의 차가 크다.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히우치나다 인근은 2 m 이상의 차이를 보인다. 이때문에 세토 내해는 조류가 강하게 흘러 나루토의 소용돌이와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세토 내해의 거센 조류는 해저의 양분을 끌어올리는 작용을 하여 수중 식물의 생장과 어장의 형성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세토 내해로 흘러드는 강들로는 기노카와강, 요시노강, 요도강, 야마토강, 가코강, 요시이강, 아사히강, 다카하시강, 오타강, 히지강, 오노강 등이 있다.
세토내해와 맞닿는 세토우치 지방으로는 야마구치현, 히로시마현, 오카야마현, 효고현, 오사카부, 와카야마현, 도쿠시마현, 가가와현, 에히메현, 오이타현, 후쿠오카현이 있고 이들 부와 현의 인구는 2023년 기준 2천9백만 여 명에 이르러 일본 인구의 4분의 1이 세토 내해와 인접하여 생활하고 있다. 세토 내해는 옛부터 규슈와 기나이를 잇는 서일본의 주요 해상 교통로로 이용되었다. 700개 이상의 섬이 있어 일본의 다도해를 이루며 경치가 빼어난 곳이 많고 다양하고 풍부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의사이자 박물학자였던 필리프 프란츠 폰 지볼트를 비롯하여 메이지 시대 이후 일본을 방문한 서양인들도 뛰어난 경치를 특별히 기록하고 있다. 메이지 유신 직후인 1860년 세토 내해를 방문한 독일 지리학자 페르디난트 폰 리히트호펜은 《중국여행일기》에서 "이보다 더 빼어난 경치는 세상에 없을 것"이라 극찬하였다. 오늘날에도 경치가 뛰어난 곳이 많은 여행지로 꼽힌다. 세토 내해 국립공원이 지정되어 있다.[5]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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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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