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닐라삼(abaca)은 바나나과에 속하는 아바카(abaca)로 만든 천연 식물섬유이다. 필리핀의 마닐라 항구를 통해 많이 수출되어 '마닐라삼'이란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정확한 이름은 '아바카'이지만, 한국에서는 '마닐라삼' 또는 '마닐라 대마'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마닐라삼(Manila hemp)은 삼베 또는 대마(hemp)가 아니지만, 오랜 기간 한국에서 삼베가 주요 섬유로 이용되었기 때문에, 아바카에 삼베라는 이름을 붙여서 마닐라삼 또는 마닐라 대마라고 부른다.
마닐라삼(Abacá)은 파초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지름 20∼40cm, 높이는 6m 정도이며 잎은 크고 긴 타원형이다. 잎은 식물의 원줄기에 달리며, 잎 아랫부분은 잎집이 되어 줄기를 감싼다. 이 잎집에는 귀중한 섬유가 들어 있다. 정련되지 않은 섬유는 길이가 약 1.5-3.5m이고, 주로 셀룰로오스·리그닌·펙틴 같은 식물성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분리해낸 섬유는 마닐라라는 상품명으로 판다.
마닐라삼은 필리핀 원산이며 섬유를 채취하기 위하여 재배한다. 마닐라삼은 3-8개월에 한 번씩 수확한다. 성숙한 식물체만 자르고 뿌리는 땅 속에 남겨두는데, 이는 오래된 뿌리에서 새로운 식물체가 자라기 때문이다. 잘라낸 식물체에서 잎집을 길게 떼어낸 뒤 섬유만 남겨두고 펄프를 긁어낸다. 마닐라삼 섬유는 질기며, 물·햇볕·바람에 대한 저항력이 크므로 밧줄을 만드는 데 사용한다. 마날라삼은 종이를 만들 때도 쓰인다. 물에 대하여 내구력이 강해 선박용 ·어업용 로프와 해저전선(海底電線)의 피복물의 재료로 이용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바나나같이 생겼지만 잎이 보다 좁고 총생하며 열매에는 종자가 많이 들어 있어 먹지 못한다. 번식은 종자로도 할 수 있지만 변이가 많고 더 많은 기간이 소요되므로 보통 흡아로 번식한다. 심은 후 2년이면 꽃대가 보이게 되는데 이 때가 양질의 섬유를 얻기에 가장 알맞은 수확기이다. 인도네시아의 보르네오 ·수마트라에서도 많이 재배한다.
아바카로 만든 섬유는 흡습성이 매우 풍부한 것이 특징이다. 천연섬유 중에서도 가장 강도가 강한 섬유답게 오랫동안 침수하여도 잘 부패하지 않는다. 물과 햇볕, 바람에 대한 저항력이 커서 습식 및 건식 상태 모두에서 잘 버티는 데다가 형태가 잘 변하지 않는다. 생분해성이라 환경을 해치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심지어 지역 환경에도 좋은 영향을 끼친다.
아바카는 토양에서 물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어 열대 우림 지역의 산사태를 예방한다. 해안 지역의 침식 문제도 줄어들어 물고기에게도 이롭다. 폐기물은 비료로 사용된다. 이런 장점들 덕분에 합성 섬유가 사용되기 전까지 아바카는 고품질 섬유의 주요 공급원이 될 수 있었다. 마젤란이 필리핀에 도착하기 전부터 원주민들은 야생 아바카에서 섬유를 채취하여 직물로 활용했다고 전해지는데, 민다나오 등에서는 조개껍데기로 섬유의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은 뒤 옷감으로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스페인 식민지 시대가 되면서 아바카는 필리핀 전통의상인 바롱 타갈로그(Barong Tagalog)를 만드는 것에 사용되기 시작했고, 마린두케 클로쓰(medriñaque cloth)라고 불리면서 유럽으로 수출되기도 했다. 아바카로 만든 로프가 내구성이 뛰어나고 유연한 데다가 바닷물에 잘 손상되지도 않는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선박용 밧줄(로프)이며 어망, 낚싯줄, 마대 자루, 매트 등을 만드는 용도로 인기를 끌게 된 것이다. 마닐라지(목재 펄프에 마닐라삼을 섞어서 만든 질긴 종이)를 만드는 데도 유용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전 세계로 수출되게 되었다.
하지만 아바카가 밧줄이나 종이를 만드는 것에만 사용된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이 기특한 식물은 두꺼운 밧줄은 물론이고 가방, 카펫, 모자, 신발, 의류, 공예품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다. 요즘은 펄프(종이)를 이용하여 티백(tea bags)이나 커피 종이필터, 담배 필터 등을 만들기도 한다. 내구성이 좋아 지폐 제조에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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