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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0년간의 관직생활을 마치고 기업체 사장으로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1996년 6월, 오명이 김영삼 정부의 건설교통부 장관을 막 끝내고 나왔을 당시 동아일보 김병관 회장은 그를 도앙일보 사장으로 초빙했다. 오명은 취임하자마자 간부들과 기자들을 설득해 신문사의 전반적인 쇄신을 위한 컨설팅을 받기로 하는 데 성공했다. 처음에는 반대와 반발, 비난도 있었지만 회사의 모든 간부들과 직원들이 컨설팅 회사의 질문과 조사에 충실하게 응했다. 결과적으로 모든 문제가 노출되어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진단과 그 해결책이 강구되었다. 오명은 이 방안에 따라 동아일보의 기술발전과 혁신, 신문의 새로운 모습을 창조했다. 그는 신문학 여구나 기자의 경력 하나 없는 비 언론계 인사였지만, 명 신문사장이 되어 회장까지 승진하여 2001년 7월까지 만 5년 이 넘는 시간 동안 동아일보의 발전을 진두지휘했다. 1996년 동아일보 사장 및 회장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KT 사외이사, 동부정밀과학 사외이사, 에쓰오일 과학문화재단 이사장, 동부정밀화학 사외이사 그리고 현재 DB그룹 제조유통부문 회장으로 활동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아주대학교 및 건국대학교 총장을 지냈으며 카이스트 이사장을 맡는 등 교육면에서도 활동을 활발히 하였다.<ref name="김운하"></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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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0년간의 관직 생활을 마치고 기업체 사장으로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1996년 6월, 오명이 김영삼 정부의 건설교통부 장관을 막 끝내고 나왔을 당시 동아일보 김병관 회장은 그를 동아일보 사장으로 초빙했다. 오명은 취임하자마자 간부들과 기자들을 설득해 신문사의 전반적인 쇄신을 위한 컨설팅을 받기로 하는 데 성공했다. 처음에는 반대와 반발, 비난도 있었지만 회사의 모든 간부들과 직원들이 컨설팅 회사의 질문과 조사에 충실하게 응했다. 결과적으로 모든 문제가 노출되어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진단과 그 해결책이 강구되었다. 오명은 이 방안에 따라 동아일보의 기술발전과 혁신, 신문의 새로운 모습을 창조했다. 그는 신문학 연구나 기자의 경력 하나 없는 비 언론계 인사였지만, 명 신문사장이 되어 회장까지 승진하여 2001년 7월까지 만 5년 이 넘는 시간 동안 동아일보의 발전을 진두지휘했다. 1996년 동아일보 사장 및 회장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KT 사외이사, 동부정밀과학 사외이사, 에쓰오일 과학문화재단 이사장, 동부정밀화학 사외이사 그리고 현재 DB그룹 제조유통 부문 회장으로 활동을 하였다.<ref name="김운하"></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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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9일 (화) 11:01 판

오명

오명코리아씨이오서밋(Korea CEO Summit) 명예이사장이자, 전 부총리 및 과학기술부 장관을 역임했다. 오명은 청와대 경제 비서관과 체신부 장관 및 차관으로 일하며 한국 정보통신 혁명의 기틀을 닦았다. 전국 전화 자동화 사업 4메가 디램 반도체 개발 등 정보화 사회에 필요한 기초작업을 진행했다.

생애

어린 시절

오명은 서울특별시에서 7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으며 장남이다. 어린시절 장남이라 귀한 아들로 자라왔으며 유년 시절 자기주장도 강했으며 남한테 지기 싫어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학창시절 공부를 잘하는 편이였던 오명은 경기고등학교에 진학하였다. 경기고등학교에서는 매년 2, 3명이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했는데, 당시 교장 선생님이 '훌륭한 학자가 되려거든 서울대학교에 가라. 하지만 비전을 가진 훌륭한 국가의 리더가 되려거든 육군사관학교에 가라'고 한 말에 영향을 받아 그해 30여 명이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했다. 오명 또한 경기고등학교의 수재라면 서울대학교에 진학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좋은 기업에 취직하기보다 나라를 위해 힘을 쓰고 싶다는 일념하에 육군사관학교로 진학하였다. 몸도 약하고 키도 작은 오명이 육사를 지원하니 모두들 걱정을 했지만, 많은 어려움을 성공적으로 이겨내고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여 친구들 간에 큰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육군사관학교에서 물리, 화학, 생물과 같은 기초과학뿐만 아니라 기계공학, 전자공학, 토목공학을 배우면서 기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졸업 이후 포병장교로 근무하던 당시 군 장비들이 전자식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전자 시대가 올 것을 예견한 그는, 과학기술을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어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로 편입을 하게 되어 뉴욕주립대학교 박사학위까지 받게 되었다.

정치인

뉴욕주립대학교 박사학위를 취득한 오명은 국방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을 약 2년간 재직한 뒤 1980년 청와대 경제비서관으로 관계에 입문해 1년 뒤 41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채신부 차관에 발탁되어 장관까지 역임하게 된다. 무려 8년여 동안 체신부 차관, 장관을 역임하며 정보화시대의 중요성을 깨닫고 전전자교환기’(TDX), ‘4메가 D램 반도체’, ‘슈퍼미니 컴퓨터 개발’을 과감히 추진해 대한민국 정보통신산업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였다고 평가받았다. 이로 인해 그에게는 한국통신의 대부, 한국의 IT 그랜드 디자이너라는 닉네임이 따른다.

그는 미래를 내다보는 큰 비전을 가지고 조직을 이끌어 나가되 충분한 대화를 통해 부하들과 목표를 공유하고 부하들에게 과감히 권한을 위임하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의 리더십은 아랫사람들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여주고, 그들의 능력과 경험을 믿고 일을 과감히 맡기되, 그 자신은 전체 흐름을 조율하면서 부하들의 일이 순조롭게 추진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방식이다. 또한 성공에 대한 모든 공을 부하들에게 돌리고 그 자신은 늘 겸손했다. 오명은 명분이나 체면보다는 논리와 효율에 따라 움직이는 과학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으며, 온화하고 부드러운 자세를 가지면서도 한번 결정한 것은 끝까지 밀고 나가는 단호함을 보였다. 그는 늘 '윗사람 눈치 보기보다는 아랫사람 존경을 받으라'고 가르쳤다. 그 자신이 모범을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공직자로서의 자세가 부하직원들로부터 존경받고, 오랜 기간 공직에 머물면서 많은 일을 성공시킨 근원이 되었다.[1]

또한 전국의 통신요금을 통일한 요금제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도시와 농·어촌 구별 없이 같은 수준의 통신 시설을 공급했으며 통신요금을 통일시켰다. 이후 1993년 대전 엑스포의 정부 대표 겸 조직위원장을 맡아 성공적으로 개최하여 노태우 정부 체제에서도 체신부 장관, 김영삼 정부의 교통부장관과 건설교통부장관을 역임하였다. 그가 정부 대표 겸 조직위원장이었던 93 대전엑스포에는 108개국, 33개 국제기구, 1,400만 명의 관람객이 참여하는 대성공을 거둬 그는 2007년 국제박람회기구(BIE)의 황금 메달을 받았다. 교통부 장관을 역임하던 시절 인천국제공항 건설, 고속도로 전용차로제 도입 등 교통 부문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보였다. 또한, 노무현 정부의 과학기술부 장관과 초대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을 맡으면서 20년간 장관을 직업으로 삼았으며 4명의 대통령과 함께한 진귀한 기록도 가지고 있다.[2]

그는 초대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바이오산업 육성과 우주기술 개발에 앞장섰다. 우주개발진흥법을 제정하고 한국 최초 우주인을 탄생시켰다. 그는 우주기술 협력을 위해 직접 러시아를 방문하고 협정서에 서명하기도 했다. 오명은 미국, 프랑스, 일본, 독일, 러시아, 중국과 함께 ITER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는 방사능이 수반하지 않는 행융합발전소 건설사업으로, 지구상에 작은 태양을 만드는 사업이었다. 해당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인류의 에너지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는 것이었다. 이 역사적인 프로젝트의 선진 6개국의 하나로 참여한 것은 과학한국의 장래를 빛낼 쾌거였다. 오명은 자신이 모시던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이 구속되었을 때,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로 내정되었으나 모시던 상사를 비난할 수 없다는 이유로 후보 자리를 물러났다.[1]

기업인

약 20년간의 관직 생활을 마치고 기업체 사장으로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1996년 6월, 오명이 김영삼 정부의 건설교통부 장관을 막 끝내고 나왔을 당시 동아일보 김병관 회장은 그를 동아일보 사장으로 초빙했다. 오명은 취임하자마자 간부들과 기자들을 설득해 신문사의 전반적인 쇄신을 위한 컨설팅을 받기로 하는 데 성공했다. 처음에는 반대와 반발, 비난도 있었지만 회사의 모든 간부들과 직원들이 컨설팅 회사의 질문과 조사에 충실하게 응했다. 결과적으로 모든 문제가 노출되어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진단과 그 해결책이 강구되었다. 오명은 이 방안에 따라 동아일보의 기술발전과 혁신, 신문의 새로운 모습을 창조했다. 그는 신문학 연구나 기자의 경력 하나 없는 비 언론계 인사였지만, 명 신문사장이 되어 회장까지 승진하여 2001년 7월까지 만 5년 이 넘는 시간 동안 동아일보의 발전을 진두지휘했다. 1996년 동아일보 사장 및 회장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KT 사외이사, 동부정밀과학 사외이사, 에쓰오일 과학문화재단 이사장, 동부정밀화학 사외이사 그리고 현재 DB그룹 제조유통 부문 회장으로 활동을 하였다.[1]

학업인

오명 부총리는 자신이 공학박사학위를 받은 미국 뉴욕주립대학교(Stony Brook University)의 ‘University Professor’로 임명됐으며, 명예인문학 박사 학위를 추가로 받았다. 그는 외국대학으로는 첫 번째로 모교인 뉴욕주립대학교를 인천 송도에 유치했으며, ‘한국뉴욕주립대학교’(SUNY KOREA)의 명예총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그는 작년 4월 모교 스토니부룩대학에 만들어진 명예의 전당에 제 1호로 이름을 올렸다.[1]

학력

  • 1955년 ~ 1985년 : 경기고등학교
  • 1958년 ~ 1962년 : 육군사관학교 학사
  • 1964년 ~ 1966년 : 서울대학교 전자공학 학사
  • 1968년 ~ 1970년 : 뉴욕주립대학교 스토니브룩캠퍼스 대학원 전자공학 석사
  • 1970년 ~ 1972년 : 뉴욕주립대학교 스토니브룩캠퍼스 대학원 전자공학 박사
  • 2009년 : 아순시온국립대학교 명예박사

경력

  • 1979년 01월 ~ 1980년 10월 : 국방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
  • 1980년 10월 ~ 1981년 05월 : 대통령 경제수석비서실 과학기술비서관
  • 1981년 05년 ~ 1987년 07월 : 제 18대 체신부 차관
  • 1987년 07월 ~ 1988년 12월 : 제 36대 체신부 장관
  • 1989년 11월 ~ 1993년 12월 : 대전세계박람회(EXPO) 정부대표 겸 조직위원장
  • 1993년 11월 ~ 1993년 12월 : 한국야구위원회 총재
  • 1993년 12월 ~ 1994년 12월 : 제 39대 교통부 장관
  • 1994년 12월 ~ 1995년 12월 : 제 1대 건설교통부 장관
  • 1996년 06월 ~ 2001년 07월 : 동아일보 사장 및 회장
  • 1999년 05월 ~ 2002년 05월 : 한국정보보호진흥원 이사장
  • 2000년 03월 ~ 2004년 03월 : 국립암센터 이사장
  • 2002년 03월 ~ 2003년 12월 : 제 10대 아주대학교 총장
  • 2002년 03월 ~ 2003년 12월 :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부회장
  • 2002년 03월 ~ 2003년 12월 : 제 7대 사립대학총장협의회 회장
  • 2003년 12월 ~ 2004년 10월 : 제 6대 과학기술부 장관
  • 2004년 10월 ~ 2006년 02월 : 부총리 겸 제 6대 과학기술부 장관
  • 2006년 09월 ~ 2010년 08월 : 제 17대 건국대학교 총장
  • 2007년 02월 : KT 사외이사
  • 2007년 05월 : 국가미래정책포럼 이사장
  • 2008년 06월 : 제 7대 한국대학총장협회 회장
  • 2008년 10월 : 2008 산학협력EXPO 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
  • 2010년 03월 ~ 2011년 06월 : 동부하이텍 사외이사
  • 2010년 09월 ~ 2012년 12월 : 웅진에너지 회장
  • 2010년 09월 ~ 2012년 11월 : 웅진폴리실리콘 회장
  • 2010년 09월 : KAIST 이사장
  • 2010년 11월 : 동부정밀화학 사외이사
  • 2011년 01월 : 에쓰오일 과학문화재단 이사장
  • 2011년 07월 ~ 2013년 01월 : 동부익스프레스 사외이사
  • 2012년 08월 : 한국국제협력단 자문위원
  • 2013년 02월 ~ 2017년 10월 : 동부그룹 제조유통부문 회장
  • 2016년 07월 : 한국뉴욕주립대학교 명예총장
  • 2017년 11월 : DB그룹 제조유통부문 회장
  • 2018년 01월 : 코리아씨이오서밋(Korea CEO Summit) 명예이사장

주요활동

코리아씨이오서밋(Korea CEO Summit)

코리아씨이오서밋(Korea CEO Summit)은 2003년에 설립되었으며, 한국의 비즈니스 회사 대표이사(CEO)들을 회원사로 하는 경영자 협의체 조직이다. 코리아씨이오서밋 주최로 마블스(Marvels) 등 각종 콘퍼런스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코리아CEO서밋이라고도 쓴다. 이사장은 박봉규이다.

  • 2018 코리아 CEO 서밋
2018년 1월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서울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경영자 회의인 '코리아씨이오서밋(Korea CEO Summit)'이 개최되었다. 이 행사는 '2018 Korea CEO Summit 신년하례회 겸 창조도시문화융합대전 동방지혜 개막식'으로 열렸고 정치, 경제, 문화, 연예, 사회, 교육계 등 각계각층 인사 400여명이 참여했다. 이 자리에서 오명은 명예 이사장으로 위촉되었다. 또한 중국, 태국, 몽골, 터키 등의 해외 인사들이 방문하기도 했다. 코리아씨이오서밋을 주최한 박봉규 이사장은 코리아씨오서밋이 창립한지 15주년이 되어간다며 동방지혜라는 주제로 진행되는 코리아씨이오서밋 창조도시문화융합대전은 대한민국의 국가 브랜드를 홍보하고 창조,도시,문화,융합산업의 우수한 경영인들의 교류의 장이 되어 비즈니스 기회가 폭넓은 네트워크르 구축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3]
  • 월드블록체인서밋 마블스 서울 2019
제7회 월드블록체인서밋 마블스 서울 2019는 오는 2019년 11월 20일에 신라호텔에서 개최된다. 행사를 앞두고 성공개최 다짐을 위한 'KCS 이사회 겸 오찬간담회'를 가졌다. 박봉규 코리아씨이오서밋 이사장은 "2년전 블록체인이란 이름조차 생소하게 느꼈던 분야였지만 일상의 변화를 가져올 새로운 물결로 판단했다. 블록체인을 학습하고 온 열정을 다해 커뮤니티를 확대하다 보니 어느덧 일곳번째 마블스(MARVELS)를 개최하게 되었다."며 말했다.[4]

과학기술부

과학기술부는 과학기술의 진흥을 위한 기본정책을 수립하고 기술협력 및 원자력, 기타 과학기술진흥에 관한 사무를 총괄하는 중앙행정기관이다.1962년 경제기획원 안에 설치한 기술관리국이 과학기술 업무를 담당하였다. 하지만 제2차 경제개발계획촉진과 함께 1967년 4월 12일 과학기술처로 확대 및 개편되면서 출범하였다. 이후 1998년 정부조직 개편 당시 과학기술정책의 효율적 추진을 위하여 과학기술부로 승격했으며, 2008년 2월 정부조직법 개정에 따라 교육과학기술부로 개편되면서 해체되었지만 2013년 미래창조과학부라는 이름으로 다시 개편되고 2017년부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라는 이름으로 과학기술부가 이어가고 있다.

전전자교환기(TDX) 개발

오명은 체신부 장관·차관으로 재직하던 시절 240억원 투자하여 전전자교환기(TDX) 개발을 진행하였다. 삼성, LG, OPC, 대우 등 4개 그룹의 엔지니어를 전자통신연구원으로 파견하여 공동개발을 진행하였다. 당시 경제기획부가 TDX개발비용을 편성하지 않아 한국전기통신공사가 조성한 연구개발비로 진행되었다. 오명 장관이 주도한 이 모델 개발은 4메가디램, 수퍼미니컴퓨터, 행정전산망을 넘어 코드분할다중접속(CDMA)까지 이어졌으며, 정보사회화의 진입으로 전 국민이 통신요금을 위치에 관계없는 하나의 요금체계로 만들고 농어촌 구별 없는 통신시설을 구축하였다. 이로 인해 오명은 한국 정보통신 혁명의 기틀은 마련해 정보화 사회로 가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다.[5]

각주

  1. 1.0 1.1 1.2 1.3 김운하 해외편집위원, 〈(특별한 만남)오명 전 과학기술부 장관〉, 《재외동포신문》, 2018-01-23
  2. 오명〉, 《네이버캐스트》
  3. 박봉규,〈한국을 대표하는 최고경영자 회의 '2018 코리아 CEO 서밋(Korea CEO Summit)' 성황리에 마쳐〉,《네이버 블로그》,2018-01-22
  4. 블록체인투데이, 〈블록체인서밋 마블스 성공개최 간담회 가져〉, 《블록체인투데이》, 2019-10-23
  5. 이천설봉신문, 〈|창간 특별인터뷰| 오명 전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 《이천설봉신문》, 2017-07-13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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