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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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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선은 1949년 전라남도 보성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1974년 사법시험 16회에 수석으로 합격하여 검사로 근무하였다. 전남 보성 출신이란 약점에도 불구하고 검찰 최고의 '특수 수사통'으로 불릴 만큼 유능함을 인정받았고 강한 친화력과 화술까지 갖춰, 영남 출신 대통령들과 검찰 수뇌부 아래에서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1,2,3 과장과 서울지방검찰청 특부 1,2부장, 대검찰청 수사기획관 등 미래의 검찰총장감으로 꼽히는 검사들이 주로 맡는 요직들을 모두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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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선은 1949년 전라남도 보성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1974년 사법시험 16회에 수석으로 합격하여 검사로 근무하였다. 전남 보성 출신이란 약점에도 불구하고 검찰 최고의 '특수 수사통'으로 불릴 만큼 유능함을 인정받았고 강한 친화력과 화술까지 갖춰, 영남 출신 대통령들과 검찰 수뇌부 아래에서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대검찰청 중앙 수사부 1,2,3 과장과 서울지방검찰청 특부 1,2부장, 대검찰청 수사기획관 등 미래의 검찰총장감으로 꼽히는 검사들이 주로 맡는 요직들을 모두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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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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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후보 비자금 사건'수사유보 건의로 김대중 정부의 눈에 들게 되어 김대중 정부 때인 1998년부터 1999년까지 대통령비서실 소속 법무비서관으로 근무하였다. 이는 대검 수사기획관에 이어 검사장 승진과 검찰총장 후보군 입성이 확실시되는 요직 주으이 요직이었다. 그러나 1999년 '옷로비 사건'으로 인해 청와대 법무비서관에서 사퇴하고 대검찰청을 떠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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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후보 비자금 사건'수사 유보 건의로 김대중 정부의 눈에 들게 되어 김대중 정부 때인 1998년부터 1999년까지 대통령 비서실 소속 법무비서관으로 근무하였다. 이는 대검 수사기획관에 이어 검사장 승진과 검찰총장 후보군 입성이 확실시되는 요직 중의 요직이었다. 그러나 1999년 '옷로비 사건'으로 인해 청와대 법무비서관에서 사퇴하고 대검찰청을 떠나야 했다.
  
2000년 제16대 국회으원 선거에서는 명예회복을 위해 새천년민주당 공천을 신청했지만 탈락하고 말았다. 2004년 1월,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를 석 달 앞두고 선거구가 쪼개져 고향 보성군이 같은 당 중진 박상천의 선거구인 고흥군과 합쳐지자 탈당과 무소속출마를 선언한다. 그러나 박주선과 박상천 모두 열린우리당 신중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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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명예 회복을 위해 새천년민주당 공천을 신청했지만 탈락하고 말았다. 2004년 1월,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를 석 달 앞두고 선거구가 쪼개져 고향 보성군이 같은 당 중진 박상천의 선거구인 고흥군과 합쳐지자 탈당과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다. 그러나 박주선과 박상천 모두 열린우리당 신중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5년 나라종금 사건과 현대건설 뇌물 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는다. 이후 변호사사무실을 개업하고 민주당에 복당한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전남도지사 예비후보로 선거를 준비하였으나, 당시 한화갑 대표측의 의중으로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전략공천되어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미리 서울시장 선거를 준비중이던 김경재, 김영환 등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선거결과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와 열린우리당 강금실 후보에 밀려 3위로 낙선하였으나, 당시의 정당지지율에 비해 선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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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나라종금 사건과 현대건설 뇌물 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는다. 이후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고 민주당에 복당한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전남도지사 예비후보로 선거를 준비하였으나, 당시 한화갑 대표 측의 의중으로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전략공천되어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미리 서울시장 선거를 준비 중이던 김경재, 김영환 등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선거 결과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와 열린우리당 강금실 후보에 밀려 3위로 낙선하였으나, 당시의 정당 지지율에 비해 선전하였다.
  
2008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광주광역시 동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최고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2012년 민주통합당 소속으로 같은 선거구 출마를 준비하다가 불법 선거인단 모집 의혹으로 인해 당에서 해당 지역 무공천을 선언하면서 탈당하여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해당 선거 전국 최저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검찰에 구속되어 1심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으나 고법 파기환송심에서 벌금 80만원을 선고 받아 의원직을 유지했다. 2014년 민주통합당이 민주당을 거쳐 새정치민주연합이 되자 새정치민주연합에 입당하였다. 2015년 대한민국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이후 그 해 다시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여 무소속이 되었다. 2016년 1월 통합신당의 창당을 추진하면서 창당준비위원장으로 있었다가 국민의당과 통합을 결정했다. 이후 2016년 2월 국민의당 최고위원에 지명되었다. <ref>〈[https://namu.wiki/w/%EB%B0%95%EC%A3%BC%EC%84%A0#s-2.1 박주선 정치활동]〉, 《나무위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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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광주광역시 동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최고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2012년 민주통합당 소속으로 같은 선거구 출마를 준비하다가 불법 선거인단 모집 의혹으로 인해 당에서 해당 지역 무공천을 선언하면서 탈당하여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해당 선거 전국 최저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검찰에 구속되어 1심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으나 고법 파기환송심에서 벌금 80만 원을 선고받아 의원직을 유지했다. 2014년 민주통합당이 민주당을 거쳐 새정치민주연합이 되자 새정치민주연합에 입당하였다. 2015년 대한민국 국회 교육 문화 체육 관광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이후 그 해 다시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여 무소속이 되었다. 2016년 1월 통합신당의 창당을 추진하면서 창당 준비위원장으로 있었다가 국민의당과 통합을 결정했다. 이후 2016년 2월 국민의당 최고위원에 지명되었다. <ref>〈[https://namu.wiki/w/%EB%B0%95%EC%A3%BC%EC%84%A0#s-2.1 박주선 정치활동]〉, 《나무위키》</ref>
  
 
===블록체인 민관 협의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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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추진·논의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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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록체인산업진흥기본법 등 블록체인 산업 관련 법률 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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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록체인 산업진흥 기본법 등 블록체인 산업 관련 법률 제정
 
* 다양한 분야의 의견을 바탕으로 올바른 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정책 건의
 
* 다양한 분야의 의견을 바탕으로 올바른 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정책 건의
 
* 해외 정책 및 입법사례 연구를 바탕으로 국내 적용 방안 제시
 
* 해외 정책 및 입법사례 연구를 바탕으로 국내 적용 방안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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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세미나====
 
====정기 세미나====
2018년 11월 제1차 정기 세미나를 개최했다. 블록체인 민관 입법협의체 설립자인 박훈희 대표는 정기 세미나를 통해 지속적으로 민관이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가겠다며 협의체에 참여해 헌신해주신 민관 양측의 노력이 산업 발전과 국가 경쟁력 제고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ref>김진수 기자, 〈[http://www.kjdaily.com/read.php3?aid=1543027407453469054 박주선, ‘블록체인 민관입법협의체 정기세미나’ 개최]〉, 《광주매일신문》, 2018-11-24</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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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제1차 정기 세미나를 개최했다. 블록체인 민관 입법 협의체 설립자인 박훈희 대표는 정기 세미나를 통해 지속적으로 민관이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가겠다며 협의체에 참여해 헌신해주신 민관 양측의 노력이 산업 발전과 국가 경쟁력 제고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ref>김진수 기자, 〈[http://www.kjdaily.com/read.php3?aid=1543027407453469054 박주선, ‘블록체인 민관입법협의체 정기세미나’ 개최]〉, 《광주매일신문》, 2018-11-24</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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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8일 (월) 13:12 판

박주선(朴柱宣, 1949년 ~ )은 대한민국의 법조인이자 정치인이다. 대통령 비서실 법무 비서관, 16, 18~20대 4선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생애

박주선은 1949년 전라남도 보성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1974년 사법시험 16회에 수석으로 합격하여 검사로 근무하였다. 전남 보성 출신이란 약점에도 불구하고 검찰 최고의 '특수 수사통'으로 불릴 만큼 유능함을 인정받았고 강한 친화력과 화술까지 갖춰, 영남 출신 대통령들과 검찰 수뇌부 아래에서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대검찰청 중앙 수사부 1,2,3 과장과 서울지방검찰청 특부 1,2부장, 대검찰청 수사기획관 등 미래의 검찰총장감으로 꼽히는 검사들이 주로 맡는 요직들을 모두 맡았다.

학력

  • 1962년 : 보성남국민학교 졸업
  • 1965년 : 보성중학교 졸업
  • 1968년 : 광주고등학교 졸업
  • 1974년 : 서울대학교 법학대학 행정학 학사
  • 1980년 :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
  • 1987년 : 케임브리지대학교 대학원 법학 (박사과정 수료)

약력

  • 1974년 03월 : 제16회 사법시험 수석 합격
  • 1976년 10월 ~ 1979년 10월 : 육군 법무관
  • 1976년 : 서울지검 검사
  • 1983년 : 제주대학교 강사
  • 1989년 03월 ~ 1990년 11월 : 광주지방검찰청 해남지청장
  • 1997년 08월 ~ 1998년 02월 : 대검찰청 수사기획관
  • 1998년 02월 ~ 1999년 11월 : 대통령 법무비서관
  • 2000년 05월 : 16대 국회의원(전남 화순/보성)
  • 2002년 05월 : 새천년민주당 제1정책조정위원장
  • 2003년 01월 : 새천년민주당 개혁특별위원회 위원
  • 2003년 02월 : 노무현대통령당선자 중국 특사
  • 2003년 02월 :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
  • 2003년 09월 : 새천년민주당 기획조정위원장
  • 2003년 11월 : 새천년민주당 전국 대의원 대회 준비위원장
  • 2003년 11월 : 새천년민주당 사무총장 직무대행
  • 2005년 12월 : 민주당 인사영입 위원장
  • 2005년 12월 : 세계일보 선정 올해의 인물
  • 2006년 : 조선대학교 초빙교수
  • 2006년 04월 :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시장 후보
  • 2007년 04월 : 민주당 중앙위원
  • 2007년 08월 : 광주동구 지역위원회 위원장
  • 2007년 10월 : 제17대 대통령선거 광주선거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 및 후보특보단장
  • 2008년 04월 : 제18대 국회의원
  • 2008년 04월 : 통합민주당 18대총선 불법부정선거 특별대책위원회 위원장
  • 2008년 07월 : 민주당 최고위원
  • 2008년 07월 : 국회 환경포럼 대표
  • 2008년 08월 : 제 18대 전반기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
  • 2008년 09월 ~ 2009년 08월 : 북한대학원 대학교 초빙교수
  • 2009년 01월 : 민주당 국회유린 및 야당탄압저지대책위원회 위원장
  • 2009년 02월 :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공동대표
  • 2009년 03월 : 민주당 복지지원금 집행비리 진상조사 특위 위원장
  • 2009년 03월 : 민주주의수호및 공안탄압저지 대책위원회 위원장
  • 2009년 06월 : 이명박정권 정치보복 진상규명 특위 위원장
  • 2009년 09월 : 민주당 임진강참사 진상조사단 위원장
  • 2009년 10월 : 민주당 무효언론약법폐지투쟁위원회 위원장
  • 2009년 12월 : 한명숙 상임고문 공안탄압대책위원회 위원장
  • 2010년 03월 : 국회 사법개혁특위 위원, 검찰개혁소위 위원장
  • 2010년 04월 : 민주당 검찰개혁 및 사법제도개선 특별위원회 위원장
  • 2010년 05월 : 6.2지방선거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 공동선거대책위원장
  • 2010년 10월 : 민주당 최고위원
  • 2011년 01월 : 민주당 영남특별위원회 공동위원장
  • 2011년 03월 : 국회남북관계특별위원회 위원장
  • 2011년 09월 : 민주당 이명박정부권력형비리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
  • 2012년 04월 : 제19대 국회의원
  • 2012년 07월 : 국회외교통일위원회 위원
  • 2013년 08월 : 국회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 2014년 : 국회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
  • 2014년 07월 : 국회평창동계올림픽 및 국제경기대회지원특별위원회 위원장
  • 2015년 07월 : 국회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
  • 2016년 02월 : 국민의당 최고위원
  • 2016년 04월 : 제20대 국회의원(광주동구남구을)
  • 2016년 06월 ~ 2018년 05월 : 대한민국 국회부의장
  • 2016년 07월 : 국민의당 당헌당규제개정위원회 위원장
  • 2016년 12월 : 국민의당 전당대회준비위원회 위원장
  • 2017년 03월 ~ 2017년 04월 : 국민의당 제19대 대통령선거 경선후보자
  • 2017년 05월 ~ 2017년 08월 :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 2018년 02월 ~ 2018년 06월 : 바른미래당 공동대표[1]

활동

정치

'김대중 후보 비자금 사건'수사 유보 건의로 김대중 정부의 눈에 들게 되어 김대중 정부 때인 1998년부터 1999년까지 대통령 비서실 소속 법무비서관으로 근무하였다. 이는 대검 수사기획관에 이어 검사장 승진과 검찰총장 후보군 입성이 확실시되는 요직 중의 요직이었다. 그러나 1999년 '옷로비 사건'으로 인해 청와대 법무비서관에서 사퇴하고 대검찰청을 떠나야 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명예 회복을 위해 새천년민주당 공천을 신청했지만 탈락하고 말았다. 2004년 1월,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를 석 달 앞두고 선거구가 쪼개져 고향 보성군이 같은 당 중진 박상천의 선거구인 고흥군과 합쳐지자 탈당과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다. 그러나 박주선과 박상천 모두 열린우리당 신중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5년 나라종금 사건과 현대건설 뇌물 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는다. 이후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고 민주당에 복당한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전남도지사 예비후보로 선거를 준비하였으나, 당시 한화갑 대표 측의 의중으로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전략공천되어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미리 서울시장 선거를 준비 중이던 김경재, 김영환 등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선거 결과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와 열린우리당 강금실 후보에 밀려 3위로 낙선하였으나, 당시의 정당 지지율에 비해 선전하였다.

2008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광주광역시 동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최고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2012년 민주통합당 소속으로 같은 선거구 출마를 준비하다가 불법 선거인단 모집 의혹으로 인해 당에서 해당 지역 무공천을 선언하면서 탈당하여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해당 선거 전국 최저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검찰에 구속되어 1심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으나 고법 파기환송심에서 벌금 80만 원을 선고받아 의원직을 유지했다. 2014년 민주통합당이 민주당을 거쳐 새정치민주연합이 되자 새정치민주연합에 입당하였다. 2015년 대한민국 국회 교육 문화 체육 관광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이후 그 해 다시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여 무소속이 되었다. 2016년 1월 통합신당의 창당을 추진하면서 창당 준비위원장으로 있었다가 국민의당과 통합을 결정했다. 이후 2016년 2월 국민의당 최고위원에 지명되었다. [2]

블록체인 민관 협의체

블록체인 민관 협의체는 민관이 함께 소통하며 블록체인 산업의 균형 잡힌 발전을 위한 법제화를 목적으로 대한민국 국회와 글로벌 민간자문위원단이 함께 만든 비영리 협의체이며, 국회에서 법안 발의를 위해서는 최소 10명의 국회의원 동의가 필요한 만큼 자체적으로 법안 발의가 가능한 유일한 협의체다.

박주선은 한 국가의 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민관 관계가 필수적이며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영역인 블록체인 산업이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국경과 산업을 초월하여 민간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국회 차원의 신중한 검토와 사회적 논의를 거쳐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요 추진·논의 사항

  • 블록체인 산업진흥 기본법 등 블록체인 산업 관련 법률 제정
  • 다양한 분야의 의견을 바탕으로 올바른 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정책 건의
  • 해외 정책 및 입법사례 연구를 바탕으로 국내 적용 방안 제시
  • 국경을 초월한 글로벌 민간 자문위원회 구성

정기 세미나

2018년 11월 제1차 정기 세미나를 개최했다. 블록체인 민관 입법 협의체 설립자인 박훈희 대표는 정기 세미나를 통해 지속적으로 민관이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가겠다며 협의체에 참여해 헌신해주신 민관 양측의 노력이 산업 발전과 국가 경쟁력 제고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3]

각주

  1. 바른미래당 박주선 공식 홈페이지 - http://www.parkjoosun.pe.kr/system/
  2. 박주선 정치활동〉, 《나무위키》
  3. 김진수 기자, 〈박주선, ‘블록체인 민관입법협의체 정기세미나’ 개최〉, 《광주매일신문》, 2018-11-24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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