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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資源)은 인간에게 유용하게 쓰이는 각종 재화와 용역을 가리키는 경제용어이다. 자원은 크게 자연자원과 인문자원으로 나눠지며, 자연자원은 다시 생물자원과 무생물자원으로, 그리고 인문자원은 노동력·기술 등 인적 자원과 제도·조직·자본 등 문화적 자원으로 나눠진다. 토지와 물, 광물은 기초자원이라 하여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자연자원은 그리 풍부하지 못한 실정이며 경제발전은 주로 인적 자원과 기술적 자원에 힘입은 바 컸다. 현대에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새로운 자원이 계속 개발 중이며 우리도 개발경쟁력 강화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목차
개요[편집]
자원은 어떤 목적을 위해 자연계("自然界")에서 얻고 생산되는 물질을 의미한다.
자원의 내용은 시대·장소에 따라서 달라진다. 예를 들어 우라늄광이 자원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은 것은 그리 오래전의 일이 아니다. 과거에는 자연계에 존재했던 돌멩이의 한개에 불과하였으며, 인류가 우라늄을 자원으로 획득하는 일은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자원은 인간이 생산활동을 하기 위하여 필요로 하는 물적 원천, 예를 들면 제철공업의 원료가 되는 철광석이나 석탄 및 석회석(石灰石), 또는 제철을 할 때 있어야 할 에너지원인 전력을 생산하는 수력(水力) 등을 의미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경제조직 등 무형의 대상을 자원에 포함시키는 수도 있다.이렇게 보면 자원의 종류는 무한하게 많다.
따라서 자원을 여러 가지 기준으로 나눌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자원은 분류방법에 따라서 천연·인공 자원, 지상·지하자원 및 생물·광물 자원 등과 같이 여러 가지로 나뉜다. 그리고 사람이나 토지 자체를 인적 자원·토지 자원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화학 공업의 발전에 따라서 공기·물 자체도 자원으로서의 역할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국가자원위원회'에서는 이상과 같은 자원 외에도 그 범위를 넓혀서 공장·농장 등의 생산시설, 사회제도와 조직, 국민의 의지·건강·관습·종교까지도 자원의 일부로 간주하고 있다.
자원은 유형적 실재로서, 물자체가 아니라 물체와 인간의 요구 및 문화의 상호 연계성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은 자원을 이해하는 데 있어 토지, 물, 삼림, 임야, 광물 등 물자체를 생각해 온 낡은 자원론과는 전혀 성질이 다른 것이다.
의의와 특성[편집]
인간은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현재보다는 향상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하여 여러 형태로 자연계와 접촉하여 유용한 물자를 얻고 있다. 자원은 인간이 어떠한 목적을 위하여 채취하고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능력이나 욕망의 목적에 따라 그 종류와 양이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유동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는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던 자원이 중요하지 않은 경우가 생기는가 하면,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 새롭게 중요해지는 경우도 있다.
자원은 인간의 욕망의 대상이기 때문에, 공기와 같이 언제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거나, 해수 중에 존재하고 있는 금과 같이, 비록 욕망이 강하다 하더라도 얻을 수 있는 수단이 강구되지 않은 것은 자원의 범위에서 제외된다. 이처럼 자원과 인간의 능력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자원은 크게 자연자원과 인문자원으로 나눌 수 있으며, 자연자원은 다시 생물자원과 무생물자원으로, 그리고 인문자원은 노동력·기술 등 인적 자원과 제도·조직·자본 등 문화적 자원으로 나눌 수 있다.일반적으로 인간생활에 가장 유용한 자원은 토지와 물, 그리고 광물이다. 이 중 토지는 우리들이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터전이며, 물은 이 토지 위에서 동식물을 살게 하고 우리들의 생활의 기반을 형성해 주며, 광물은 생활을 풍족하게 해주고 있다.그 래서 이 세 가지를 기초자원이라고 하며, 이러한 기초자원을 바탕으로 초목·야생동물·수상동물 등이 서식하고 있는데 이를 천연자원이라 부른다. 이러한 기초자원·천연자원에 대하여 인간의 능력이 작용하여 비로소 눈으로 볼 수 있는 형태의 자원, 즉 식량자원·공업원료자원·에너지자원 등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자원을 제1차자원이라고도 부르며, 이것은 다시 제2차와 제3차로 가공되어 인간생활의 유용한 물자가 되는 것이다.
인간은 그 능력을 바탕으로 하여 새로운 자원을 개발해 내고 있다. 그러나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는 몇몇 특수자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자원은 편재하여 있고, 또한 그 부존량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개발될 경우 언젠가는 고갈되어 자원 위기를 맞게 될 것이 분명하다.자원은 또한 과도하게 이용하면 인간은 물론 생태계에 영향을 주어, 잘살기 위한 자원개발이 오히려 못살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므로 개발에 앞서 보전문제를 깊이 생각하여야 한다.
특징[편집]
첫째로 자원은 인류의 기술적 수준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예를 들어, 브라질 원산의 천연 고무나무에서 고무액을 채집할 수 있다는 것은 알려져 있었어도 황화법(黃化法)이 발견되기까지 그것은 인간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었으며, 고무화 기술 개발 이후에 자동차와 항공기의 급속한 발전으로 재배고무의 가치와 수요가 상승하면서 공급 확대를 위해서 플랜테이션(plantation)이 광범위하게 늘어났다. 그러나 다시 합성고무의 등장으로 자원으로서의 상대적 지위가 저하하게 된 사실을 생각하면 자원의 가치와 인류 기술과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우라늄이나 석유와 같이 한때는 자원이 아니었던 것이 사회 환경이나 기술 발전에 따라 중요한 자원이 되는 것처럼 자원은 인간의 요구와 기술의 함수(函數)로써 표현된다.
둘째로 자원은 사회적, 국가적 의미를 지녀야 한다. 자원을 개발하고 이용하는 것은 반드시 일정한 사회조직 안에서 활동하는 인간이다. 따라서 자원의 개발과 이용에는 사회 또는 국가의 성격이 반영된다. 방대한 수력에너지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아마존강이나 콩고강의 수계(水系)도 현지의 원주민사회에서는 생활의 필수조건으로서 물자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미국의 콜로라도 수계에서는 그 수력에너지가 멀리까지 운반되어 자원으로서 활용되고 있다. 이처럼 자원문제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자원을 지니는 사회의 경제단계나 조직이 문제가 되며 지역(국가)그 자체도 문제가 된다.
셋째로 자원의 분포는 불균형적이며 편재적이다. 자원이 현대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지역(국가)간에 분포의 불균형과 편재가 있기 때문이다. 국제경제의 성립은 그 분포의 형태를 수정하는 과정이며 자원은 최종적으로 문명이 가장 고도로 발달한 부유한 지역(국가)에 집중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자원의 질량 및 종별적인 분포는 고정적이 아니며 장차 반드시 수정될 성질의 것이다. 또 자본주의 경제하의 막대한 소비에서 개개의 자원은 고갈된다. 이러한 점에서도 자원의 개발은 합리적이어야 하며 그 이용은 효과적이어야 한다.
넷째로 자원은 바뀌며 그 내용은 변천한다. 오늘의 자원이 내일의 자원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그래서 제기될 수 있다. 오늘의 석유·철·구리 같은 개개의 자원은 매장량에 한계가 있어 막대한 소비가 계속되는 한 언젠가는 고갈될 수밖에 없다. 그때에 가서 인간은 같은 용도를 가진 다른 자원소재를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자원의 교대현상이 일어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고갈점에 달할 때까지 신구의 자원 사이에는 치열한 경합이 벌어진다. 그 결과 자원이용은 질·양의 양면에서 역사적으로 또 지역적으로 심한 변천을 거친다.
다섯째로 자원의 개발에는 부동성과 불안정성이 따르는 수가 있다. 동식물이나 광물자원의 개발은 일종의 파괴활동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금·은·동 등 광물자원의 개발에 따라 영고성쇠의 과정을 밟은 많은 광산도시를 생각하면 이 점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어떻든 자원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심과제가 되는 것은 자원이 각 시대에 있어 누리는 유효성, 즉 가치와 그 소재 장소라는 것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수자원[편집]
수자원(水資源)은 사람에게 실질적으로나 잠재적으로 쓸모있는 물의 원천을 가리킨다. 농업, 산업, 가정, 레크리에이션, 환경적인 활동에 물이 이용된다. 실질적으로 모든 사람에게는 깨끗한 물이 필요하다.
지구 위의 물 가운데 97퍼센트는 해수(소금기가 있는 물)이고, 나머지 3%만이 담수(민물)이며, 그 가운데 3분의 2 이상이 빙하로 얼어 있거나 극 만년설에 있다.[1] 나머지 얼지 않은 민물은 주로 지하수이며 매우 작은 양의 민물이 공기나 땅 위에 존재한다.
민물은 재생가능자원이지만 전 세계의 깨끗한 민물의 공급은 꾸준히 줄고 있다. 물 수요는 이미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초과 공급을 겪고 있으며 세계 인구가 꾸준히 늘면서 물 수요도 그만큼 커지고 있다. 생태계 서비스를 위한 물의 보존에 대한 국제적인 중요성이 최근에 강조되고 있다. 수자원을 이용자에게 할당하는 구조를 수리권이라고 한다.
한국은 PAI가 정한 물부족 국가로서, 1인당 사용할 수 있는 물의 양이 제한되어 있다. 게다가 한국의 지형학적 특징상 산악지대가 많아 하천의 길이가 짧기 때문에 물이 금방 바다로 흘러들어가, 수자원 관리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또한 대부분의 강수가 6~9월에 집중되는 것도 한국의 수자원 관리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
한국의 한 해 총 강수량 1267억m²가운데 45%(570억m²)는 증발되어 이용할 수 없으며, 또한 총 강수량의 31%(396억m²)는 그대로 바다로 흘러들어간다. 따라서 우리가 실제 사용하고 있는 물의 양은 나머지 24% 정도이다.
대한민국은 하천법 23조에 따라 수자원 관련 국가 최상위 계획으로 '수자원장기종합계획'을 20년 단위로, 하천법 25조에 따라 '하천기본계획'을 10년 단위로 수립하여 수자원을 관리하고 있다.
광물자원[편집]
광물은 일정한 화학성분과 물리적 성질을 가진 무기물로서 결정질(結晶質)로 되어 있는 물질이다. 유용한 원소나 광물이 농축된 암석의 군(群)을 광상이라 하고, 광상 중에서 채굴이 가능하고 경제적 가치가 있을 때 광물자원이라고 한다.
광물자원의 특성은 희소성과 편재성에 있다. 광물이 경제적 가치를 지니려면 일정률 이상으로 광상에 집중되어 있어야 하고, 또한 채굴 및 제련 기술도 수반되어야 한다. 광물자원의 개발과 이용은 인류의 기원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석기시대에 석기를 만들어 생활에 이용한 것은 광업의 효시라 할 수 있다.
한반도에서 금속을 처음으로 사용한 시기는 기원전 10세기경으로 추정되며, 북방계통의 청동문화는 기원전 3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청동검·동경(銅鏡)과 같은 유물이 출토됨으로써 당시의 주조기술은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것을 알 수 있다. 김해와 몽금포의 패총에서 출토되는 철기를 통해서 1∼3세기에 철의 선광과 사용이 보편화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신라·백제·고구려 등 삼국에서는 4∼10세기에 철·구리·금·은·아연 등을 채취하고 가공하는 기술이 널리 보급되었다.금속장식품·금동불상·범종 등의 유물을 볼 때 광물자원의 개발과 이용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었다고 평가된다. 백제의 임성태자(琳聖太子)가 일본에 야금술을 전하고, 백제는 철을 생산하여 일본에 수출하였다.고려시대에는 광물자원으로 구리·철·은이 개발되었다. 구리는 동종(銅鍾)·향로·동경·청동활자·화포 등을 제조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철은 철전(鐵錢)·군기(軍器)를 만드는 데 이용되었다. 은화주조도 고려 후기에 나타난다.
금속류의 수입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것을 볼 때 구리·철·은 등은 국내에서 채굴하여 자급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원나라가 고려로 하여금 군수물자를 만들게 하고 철을 공납하도록 한 데다가, 고려 중기 이후 거듭되는 전란으로 금속광의 채굴에 대한 무관심과 개발기술의 부족으로 광업은 불황기를 맞게 된다. 조선시대 금·은의 채취는 명나라에의 세공을 목적으로 행하여졌다. 태종 때에는 산금장려책을 펴 단천·수안·안변 등의 지역에서 개발에 힘썼으나 채굴기술의 낙후로 생산량은 보잘 것 없었다. 명나라와의 관계가 소원함에 따라 금·은 채굴은 1430년경부터 금지되었다. 중종 때에는 은이 부족하여 1만5000냥을 수입하였고, 효종·숙종 때 은점(銀店)을 허가하여 채굴을 독려하였으나 채굴기술의 낙후로 생산량이 미약하였다. 대원군은 1886년(고종 23)에 금·은 채굴금지법을 폐기하고, 징세를 목적으로 민간인에게 채굴권을 주는 「사금개발채례(砂金開發採例)」을 반포하였다. 그 뒤 조선이 산금국으로 유망하다는 것이 외국에 알려지자 광산에 대한 열강의 채굴권 확보 경쟁이 일어났다. 영국상사가 1885년에 처음으로 채굴허가를 신청하고, 일본이 처음으로 채굴권을 얻었으며, 잇달아 미국·소련 등도 채굴권을 획득하여 금·은·구리 등의 광물을 개발하였다.
조선에서 가장 활발하게 개발되었던 광물은 구리이다. 구리는 활자·화포·주전 제조에 사용되었기 때문에 수요가 많았다. 세종 때에는 창원·수안·장연 등지에서 채굴하였다. 그러나 생산량이 항상 수요에 미치지 못하여 일본으로부터 수입하였다.철의 생산은 세종 때에 가장 활발하여 울산·안동·합천·용궁·산음·무주·영덕·무안 등 전국의 17개 소에 철장(鐵場)이 있었고, 이곳에서 제련하였다. 전문적인 장인(匠人)은 드물고 농민들에 의해서 농한기 부업으로 채굴, 제련하여 경제성이 낮았다. 따라서, 철 생산량은 부진하였으며, 특히 선조 때에는 사직과 문묘의 제기(祭器)도 만들 수 없을 정도로 부족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광업이 전반적으로 부진하였다. 그 이유는 명나라에 대한 조공을 회피하기 위해서 금·은 채굴을 금지하였으며, 장인의 신분지위가 낮아 전문적인 광업종사자가 거의 없었고, 채굴과 제련 기술의 축적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광업의 부진으로 고려 때보다 오히려 금속공예기술이 낙후되었으며, 중국이나 일본보다 금속가공이나 군기(軍器)개발이 뒤떨어지게 되었다.
일본은 조선을 강제로 점령한 뒤 전국적으로 광상조사를 실시하고, 이 조사를 토대로 1914년부터 금광을 개발하기 시작하였다. 외국인의 광업권 취득을 제한하기 위해서 「조선광업령」을 선포하고, 진남포제련소·노량진선광제련소·겸이포제철소를 건설하여 지하자원을 채굴, 선광하고 본국으로 반출하였다. 1918년에 지질조사소를, 1922년에는 연료선광연구소를 각각 설립하여 광물과 석탄의 과학적 탐사를 실시하였으며, 이때부터 금·철·석탄의 채취량이 급격히 증가하였다. 1930년대에 선광을 목적으로 흥남제련소와 장항제련소가 준공되었으며 등록광구수는 3,800개 소나 되었다.광복이 되면서 일본인이 경영하던 광산의 소유권 귀속문제가 발생하고, 남북분단으로 광물자원이 많이 분포되어 있는 북한지역을 실지(失地)하고 전력공급이 중단되어 광물자원의 개발은 침체되었다.
1950년 이후 유엔한국재건위원회(UNKRA)의 원조로 대한석탄공사의 무연탄생산이 활발하여지고, 1953년 「한미중석협정」의 체결로 중석 수출의 길이 열려 광물자원개발이 활성화되었다. 1960년 이전에는 우리 나라 전체 수출액 중 지하자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단일품목으로는 제일 높았으며, 중석·형석·활석·흑연 등의 자원개발이 활발하였다.
1960년대에는 광물자원을 개발, 촉진하기 위하여 법령을 정비하고, 광물의 국내소비가 증대함에 따라 광업의 근대화를 추진하였다. 「석탄개발조치법」·「광산보안법」을 제정하고, 광물자원의 탐사와 개발을 도모하기 위하여 국립광업연구소·국립지질조사소·광업진흥공사가 각각 설립되었다.
우리 나라는 광물의 종류가 많아 "광물의 표본실"이라 불린다. 지금까지 발견된 종류는 300여 종에 이르는데 유용광물만도 140종이나 된다고 한다. 그러나 지하자원으로서 실제 개발되고 있는 광물은 약 30여 종에 불과하고 그나마 매장량이 풍부한 것은 한정되어 있다.지하자원으로서 산출되는 광물은 금속광물과 비금속광물로 크게 나누어지는데 금·은·동·연·수연·철 등 주요 금속광물의 광상은 화강암의 관입(寬入)과 관련하여 형성된 경우가 많고, 활석·형석 등과 같은 일부 비금속광물 또한 마찬가지이다.그런데 화강암의 관입과 관련된 금속광물의 광산은 광산규모가 작은 것이 일반적이다. 금속광물로서 매장량이 많은 것은 석탄과 석회석이다. 그러나 산업용으로 중요한 유연탄인 역청탄은 생산이 미미하다.
주요 지하자원은 남한보다 북한에 많이 매장되어 있다. 현재 개발되고 있는 30여 종의 광물자원 중 북한지역 내 부존량이 풍부한 것은 철(94%), 니켈(85%), 아연(95%), 마그네사이트(100%), 석회석(98%), 유연탄(100%), 무연탄(89%), 금(67%), 은(67%), 동 등이고 남한지역에 부존량이 풍부한 것은 휘수연(94%), 망간(86%), 형석(93%), 남석(99%), 규사(83%), 고령토(95%) 등이다.광물의 탐사와 개발기술이 점차 과학화되고, 중화학공업의 발달로 광물원료의 수요가 확대됨에 따라 국내광물의 생산량과 이용효율이 높아지고 있다.
산림자원[편집]
산림자원이란 산림의 존재로 인하여 우리 일상생활에 필요한 용재와 연료 등을 얻고, 또한 국토보전·수원함양·자연순화에 도움을 주는 자원이다. 우리 나라의 산림면적은 남북한을 통틀어 전국토 면적의 73%인 16만2000㎢이고, 남한만을 볼 때에는 66%인 6만6000㎢로서 산림국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산세가 험준하고 지질이 화강편마암으로 구성되어 있어 황폐하기 쉽고 비옥도가 낮을 뿐만 아니라, 강수(降水)가 하절기에만 집중하는 등 기후조건도 유리한 편이 아니다. 또한 예로부터 땔감을 산림에서 취해 왔고 전쟁과 사회적 혼란의 연속으로 산림정책이 문란하여 산림면적이 넓음에도 불구하고 산림자원은 매우 빈약한 실정이다.
우리 주거형태는 일찍이 목조건물이 주류를 이루면서 산림자원의 주산물인 목재의 이용이 많았고, 우리 나라의 지리적 위치상 한랭한 동절기간이 길어서 임산연료는 국민생활에 절대적 필수품이 되었다.그러나 전통적으로 산림에 대한 왕조의 시책은 왕토사상의 기본국기에 의하여 산림을 모든 국민의 연료채취장으로 하였으며, 개인의 독점을 금하여 국민 전체의 공동이용대상으로 삼아왔다.
이러한 관습은 고려 이래 조선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전래되어 오다가 조선 중기부터 사유화가 크게 늘어나기 시작하였으나, 조선 후기 정조 때까지만 하여도 임정(林政)을 강화하여 바다에서 30리 안에 있는 곳에서는 개인소유의 산이라고 하더라도 벌채를 금하는 송금절목(松禁節目)을 발표하였다. 고종 때에도 종래의 봉금정책(封禁政策)과 남벌단속을 강화하였기 때문에 삼림은 대단히 울창하였었다.
이렇게 천혜적으로 부존되었던 산림자원이 한말에 이르면서 열강의 이권쟁탈의 제물이 되어 삼림벌채가 남발되기 시작하였다. 1896년 울릉도와 두만강·압록강 유역의 벌채권이 미국과 러시아에 넘어가 1903년부터 러시아는 한성조선목상회사로 하여금 삼림벌채를 시작하게 하였다.
1904년에는 러일전쟁을 유리하게 이끌던 일본이 이 지역에 대한 삼림벌채권을 요구하고 나섰으며, 이에 따라 러시아에 허가하였던 벌채계약을 파기하고 1906년 우리 나라와 일본 양국이 압록강과 두만강 연안의 삼림을 공동으로 경영한다는 '삼림협동경영약관'이 조인되었다.
일제하에서는 식민지정책의 일환인 「산림법」(1908) 및 임야조사실시(1917∼1924) 등으로 산림자원이 수탈되기 시작하였으며, 제2차세계대전중에는 「조선목재통제령」을 발하여 조직적인 수탈이 자행되었다. 또한, 수탈농정이 실시되면서 소작인들이 화전민으로 전락하여 도처에서 산림개간을 위한 벌채가 성행하였다.
이러한 문란상은 광복 후에도 벗어나지 못한 채 표류하다가 6·25전쟁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틈타 산림은 극도로 황폐화되기에 이르렀다.특히, 북한으로부터 공급되던 열원(熱源)인 전기·석탄 등이 일시에 중단되고 6·25전쟁 직후 피해복구를 위하여 목재의 수요를 국내재에 의존하게 되면서 과잉벌채가 자행되어 산림자원은 순식간에 파괴일로를 걷게 되었다.
이렇게 무질서한 산림남벌을 막고 산림보호에 관심을 기울여 임정질서를 확립하고자 1951년에 「산림보호임시조치법」이 제정되었고, 1961년부터 임업발전을 위한 각종 시책의 기반이 될 「산림법」이 제정되었다.그 뒤 산림청의 발족과 임업경영의 기반이 되는 영림계획제도가 채택되고 대단위 조림사업이 시작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이 1960년대의 임정시책은 산림보호가 첫 과제였고, 농촌연료해결책과 황폐지 복구시책이 뒤따랐다.
이와 같은 시대적·사회적 요청에 따른 정책 구현을 위하여 거시적 기획하에 전국민이 참여하는 제1차 치산녹화10년계획을 1973년부터 시행하여 4년이나 앞당긴 1978년에 목표를 달성하였다.1979년부터는 제2차 치산녹화10년계획이 시작되어 산림개발 기반조성을 위한 산림자원 증강정책이 추진되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녹화우선사업은 많은 결실을 맺었다.
산림의 자원량은 단위면적당 임목축적량으로 나타낸다. 우리 나라는 임목축적량이 1988년 현재 31㎥/㏊로서 서독·스위스 등 유럽 대부분의 나라가 80㎥/㏊ 이상이고 이웃의 일본이 약 87㎥/㏊임과 비교할 때 매우 빈약하다.우리 나라의 산림을 임상별로 보면, 침엽수림이 약 50% 정도이고 혼료림과 활엽수림이 각각 26%와 18%를 차지하고 있어 온대성 식물군을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소유별로 보면, 국유림과 사유림의 비중은 22:78로서 사유림이 월등히 많으나, 임목축적량에 있어서는 58:42로서 사유림이 국유림보다 빈약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사유림의 경영규모가 영세하여 경영의욕이 저하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산림의 남벌이 국유림보다 심하였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의 임업생산액은 국민총생산에 대하여 약 1%에도 못 미치는 상태에 있다. 이는 산림자원의 중요한 기능이 목재생산에 있는 데도 임업생산에서 목재생산의 비중은 12%에 불과하고 약재·버섯류 등 임산부산물 생산이 88%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면적의 66%를 차지하는 산림지역의 국민경제 기여도가 1%에도 미달한다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관심사이며, 따라서 금후의 산림자원의 개발방향은 국토보전·수원함양·공기순화 등 공익적 기능의 강화와 더불어 용재생산·초지농업확대 등 생산성 향상을 도모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해양자원[편집]
해양자원이라 함은 해저지질광물자원·해양생물자원과 해양물리학적 자원·해양화학적 자원 등 해양에서 생성되고 해양에 부존되어 있는 모든 자원을 말한다.
해저지질광물자원은 해저표면층과 해저구성지층으로부터 개발, 채취되는 것으로,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자원으로서 석유·가스 등의 에너지자원과 해저표면에 발달하는 광물자원이 있다. 해양생물자원은 크게 동물자원인 어패류와 식물자원인 조·해조류 등이 그 대종을 이루고 있으며, 이 중에서도 동물성 단백질 공급원인 어패류는 중요한 식료자원이다.
해양화학적 자원은 바닷물의 구성성분 자체로서 물 이외에 여러 가지 화학적 성분을 말하는데 소금을 비롯하여 마그네슘 등이 해수로부터 추출되고 있고, 그 밖에 담수(淡水) 등이 있다.해양물리학적 자원은 조류의 힘, 파도의 힘, 해류의 힘, 온도차에 의한 힘 등 모두가 바닷물의 물리적 작용에 의한 동적인 힘으로서 에너지자원으로 이용될 수 있다.
우리 나라는 3면이 광대한 해양으로 둘러싸여 있어 이와 같은 각종 자원이 거의 무진장으로 부존되어 있을 것으로 예상되어 여기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해양자원의 조사와 이용실태를 자원유형별로 살펴보면, 먼저 해양광물자원의 경우 과거 40여 년 전까지만 하여도 주로 수산자원 이용에 국한하였으나 1950년대부터 차츰 변화하여 해저광물자원의 개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1960년대에 들어오면서 미국 등지에서 해양자원 개발정책에 박차를 가하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으나 그 역사는 일천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우리 나라에서는 해저 석유와 가스류에 대한 탐사와 조사가 1966년 국립지질광물연구소에 의하여 처음으로 이루어져 포항지역의 해저에 대한 탄성파 탐사를 실시하였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다.
1970년부터 외국 해저탐사진에 의하여 서남해의 7개 광구에서 석유탐사가 진행중에 있으나 그 결과는 미지수이다. 다만, 서해 대륙붕 해저에는 상당한 두께의 제3기배사구조가 발달되어 있어 석유부존의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밖에도 해저에 부존하는 광물자원은 표사광상과 골재자원을 들 수 있는데, 지질학적으로 보면 우리 나라의 대륙붕은 빙하기까지만 하여도 대부분이 육지화되었던 지역으로서 쇄설광물자원이 서남해의 얕은 해저에 광범위하게 매몰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사광상(砂鑛床)은 한강을 비롯한 5대 강이 유입하는 연안에 발달하여 사금·규사·사철 등이 주성분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서해안과 남해안 및 동해안의 얕은 해저와 조간지대에 대한 탐사와 연구개발을 장기적 안목에서 실시하여야 할 것이다.해양화학적 자원은 무궁무진하나 그 개발은 소금·마그네슘 등에 불과하다. 그 중 소금은 인간생활에 필수적인 식료품으로서, 그 기원은 인류역사의 태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 황제시대(黃帝時代)에 이미 소금의 생산이 알려져 있고, 고대 그리스인 또한 제수(祭需)로 이용한 기록이 있다. 이와 같이, 소금은 인간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서 중요한 재화로 이용되어 왔다.
우리 나라는 1350년대에 소금에 대하여 세금을 거두었으며 조선 초부터 염전매제(鹽專賣制)를 실시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우리 나라는 암염이 없고, 서해안은 간만의 차가 심하고 일조시간이 충분하여 일찍부터 천일염이 발달하였다.근대적인 천일제염법이 1907년부터 도입되어 1910년에 광량만에서 처음으로 소금을 산출하였으며, 차츰 근대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그 뒤 일제강점기에는 민간의 염전개발이 금지되기도 하였으나 1962년에 들어와 염전매제가 폐지되어 완전한 민영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주로 천일염법에 의한 영세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어 장차 늘어나는 수요를 충당하기 위하여 기계제염방법의 이용이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그 밖에 광물자원 이용으로는 마그네슘을 일부 생산하는 정도이다.우리 나라의 서해안은 조석간만의 차가 큰 지역으로, 조력발전의 유망지로 알려져 1976년부터 조력발전 가능성에 대한 조사가 실시되어 아산만·가로림만·천수만·서산만·안흥만 등이 유리한 지역으로 판단되었으나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조사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앞으로 이들 지역에 대한 면밀한 조사를 통한 개발을 검토하여야 할 것이다.해양생물자원은 동물자원으로서 어패류와 식물자원으로서 해조류가 그 주종을 이루는데, 이들 자원의 이용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
우리 나라의 경우에도 선사시대의 패총·패각 또는 고기뼈로 만든 도구, 그물추 등이 발견되고 있음을 볼 때 오래 전부터 단백질 공급원으로서 이용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특히, 우리 나라 연안은 세계3대 어장의 하나로 각종 어족자원이 풍부하여 연안어업을 중심으로 수산업이 활발하였다. 이러한 수산업도 한말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제의 수탈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1880년대부터 우리 나라의 어장이 일본인에게 개방되기 시작하여 1883년에 통어권을 허가하였고, 1889년에 조일통어장정이 의정되었으며, 1911년에 「어업령」이 제정되면서 본격적인 수탈이 자행되었다.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수산업의 생산고는 늘었으나 그 이익은 대부분 소수의 일본인에게 돌아갔다.
한편, 1920년대부터 종래의 포획하는 어업에서 기르는 양식어업으로 관심을 돌려 1928년에 진해수산시험장의 부속양어장이 준공되어 양식어업에 대한 노력이 경주되기 시작하였다. 1960년대에 들어오면서는 본격적인 양식어업이 이루어져 연체동물과 해조류 등이 대량생산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우리 나라 어업의 구조적 변화의 특성은 천해양식업과 원양어업의 비약적인 발전이다. 우리 나라 연안의 수산자원 분포를 보면, 동해는 꽁치·명태·오징어·새우·방어·전복·미역 등이며, 남해는 겨울철 외해의 수온이 10∼15℃를 유지하고 여름에는 28∼29℃로서 어족자원의 서식환경이 매우 좋아 고등어·갈치·멸치 등 여러 가지 어류가 풍부하다. 더욱이 이 지역은 수심·해저지형·조석 등의 조건이 패류·조류, 특히 해태양식에 적합하여 이의 양식이 활발하다.
충무·거제를 중심으로 한 굴양식과 진주만·득량만의 피조개·우렁쉥이, 안흥 및 남해 일원의 보리새우 등 갑각류의 양식이 성행하고 있다. 서해에서는 조기·새우·전갱이 등이 많이 잡히고 광대한 조간대와 천해가 있어 굴·반지락·백합·맛 등이 다량 생산되고 있다.
이러한 어장을 배경으로 우리 나라 수산업은 크게 발전하고 있고, 남태평양 등 원양어업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으나, 최근 세계연안국들이 자국의 어족자원 확보를 위하여 200해리 수역설정 등 각종 규제조처를 취하고 있어 원양어업의 앞날이 밝지만은 않다.
국내어장의 경우도 간척사업과 해양오염 등으로 인하여 수산업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이러한 여건과는 반대로 국민의 수산물에 대한 수요는 증대되고 있어 수산업 발전을 위한 다각적인 연구·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다.
에너지자원[편집]
에너지자원은 인간생활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힘·열·빛을 얻기 위한 기본적 자원이다. 에너지자원은 크게 노예나 역축(役畜)을 이용한 근육에너지자원, 수력·조력·풍력과 태양열·지열 등을 이용하는 자연에너지자원, 석탄·석유·가스 등을 이용하는 화학에너지자원, 그리고 원자력과 같은 핵융합에너지자원으로 구분된다.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우리 생활에 중요한 역할을 해 온 에너지자원은 소·말 등의 역축이다. 이들은 논밭의 갈이와 물품의 운반에 이용되었으나 1960년대 이후부터 경운기 및 자동차의 보급으로 그 중요성은 크게 줄었으며, 다만 지형상 완전기계화농업이 불가능한 일부 산간지역에서는 아직도 역축을 이용하고 있다.
자연에너지자원 중 수력의 이용은 대체로 5, 6세기경으로 추정되는 물레방아 등의 이용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근대적인 수력의 이용은 1924년 총 출력 1만3570㎾의 금강산수력발전소 건설에 의한 전력개발로부터 비롯된다.일제는 우리 나라를 강점한 뒤 수력개발을 위하여 1911년부터 네 차례에 걸친 수력지점조사를 실시하였고, 1944년에 끝난 4차 조사 결과 총 163개 지점에서 6163만8000㎾의 수력발전이 가능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조사에서 북한지역에 108개 지점, 남한지역에 55개 지점이 수력발전 적지로 나타나 지형상 북한지역이 유리함을 보이고 있다.
1948년 5월 북한측의 예고 없는 단전이 단행되어 남한은 갑작스러운 전력부족난에 당면하였다. 이에 대처하여 정부는 시설투자비가 적게 드는 화력발전소의 건설을 우선하면서, 한강·낙동강·금강 등에 소양댐·안동댐·충주댐·대청댐·합천댐 등 대규모의 다목적댐을 건설하는 등 수력발전소의 건설을 계속하여 왔다.
풍력의 이용은 범선에서 가장 활발하였으며 곡식을 고르는 데도 이용되었다. 신라시대 혜초의 인도기행도 풍력을 이용한 범선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오늘날에 와서는 바람이 많이 부는 제주도에서 풍력발전을 시험 중에 있어 새로운 풍력이용방법이 개발될 전망이다. 우리 나라의 서해안 일원은 평균조차가 6m 정도로서 조력발전에 천혜적인 조건을 가지고 있다. 1970년대부터 10개 지점에 대한 조력발전 타당성 조사가 실시되었다.화학에너지자원 중 무연탄은 비교적 풍부한 부존량을 보이나, 유연탄은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고 있다.
광복 전 남북한을 합친 무연탄 매장량은 총 13억5000만 톤으로 조사되었고, 이 중 북한에 80% 이상이 매장되어 있었다. 남한의 무연탄은 강원도의 태백·영월·정선·삼척, 경상북도의 문경, 전라남도의 화순 등지에 주로 분포되어 있고, 최근에 확인된 매장량은 15억 톤에 이르며 가채매장량은 6억 톤에 달하고 있다. 석유는 아직까지 국내 부존이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이미 1880년대에 석유사용기록을 가지고 있다.
1920년대에는 일제에 의하여 국내 최초의 원산정유공장이 건설되었고, 6·25전쟁 후 남한에서는 1960년대에 울산정유공장이 건설되면서 석유의 대량소비가 시작되었으며, 공업화와 함께 석유의존도가 심화됨에 따라 원유처리시설이 늘어나고 있다. 또한, 국내에서도 석유부존 가능성이 있는 서남해안의 대륙붕탐사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천연가스는 석유와 거의 비슷한 부존상태를 가지고 있으며, 역시 국내 부존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최근에 와서 석유가격의 불안정과 천연가스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데 기인하여 수요가 급증하고 있으며 용도도 다양화하고 있다.
원자력개발은 1955년 이후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고, 최초의 원자력발전소는 1978년 경상남도 고리에 건설되었다. 이후 1988년까지 총 9기의 원자력발전소가 건설되었으며, 발전시설용량은 760만㎾에 이르고 있다.
[태양열]]의 경우는 난방과 발전의 분야에서 실험단계에 있으나 무궁한 무공해 에너지자원으로서, 실용화에 대한 기대는 다른 어떤 에너지자원보다도 크다. 이와 같은 에너지자원들을 토대로 한 국내의 에너지 소비구조를 살펴보면, 1962년에는 무연탄이 총에너지소비량의 35.7%, 신탄은 51.78%를 차지하여 국내 에너지자원에 의하여 주도되었음을 나타내고 있다.그러나 25년이 지난 1987년에는 급속한 공업화의 추진과 함께 해외의존 에너지원인 석유와 유연탄의 소비수요가 급격히 증가되어 총 에너지소비량의 47.1% 및 15.4%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원자력발전이 중요한 에너지자원으로 대두되고 있다.
인구자원[편집]
인구는 일정한 지역 안에서 사회집단을 구성하여 생활하고 있는 인간의 수를 말하며 옛날에는 인구라 하지 않고 호구(戶口)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인구는 경제생활과 두 가지 측면에서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첫째, 인구는 생산요소의 하나인 노동력의 모체이며, 광의로는 자원의 공급이란 점이다. 이런 관점의 인구는 단순히 양적 측면뿐만 아니라 질적 측면에서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지역의 인구 구성에서 양질의 노동자 구성비가 높을 경우 자원적 의미는 더욱 크다고 말할 수 있다.
둘째, 인구는 각종 생산의 소비자로서 일정한 구실을 한다는 점이다. 소비자 관점의 인구는 유효수요의 창출과 시장확대에 공헌하며 규모의 경제에 이익을 가져다 주는 역할을 하였다.
이처럼 한 지역의 인구는 노동력이란 생산요소의 역할과 소비시장 규모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집단인 것이다. 그러나 인구가 과잉일 때는 경제활동을 오히려 저해하게 된다. 따라서 과잉인구는 인구문제, 자원문제를 야기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인구가 갖는 자원으로서의 역할은 성별, 연령별, 직업별 등의 구조가 그 기본이 된다. 그 중에서도 연령별 인구 구성이 매우 중요한데, 대개 0∼14세는 연소층 인구, 65세 이상은 노령층 인구, 15∼64세는 생산층 인구라 부른다.
생산층인구비중이 두터울 때는 노동력 자원은 견실한 것이 된다. 그런데 최근 평균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노령화지수가(老齡化指數)가 크게 높아지고 있다. 한편 소비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는 절대인구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역사적 자료에 기초한 조선시대의 인구 추정에 의하면, 조선왕조 창건 당시(14세기 말) 우리 나라의 인구는 약 500만∼550만 명 정도였으나 조선 말기인 1900년경에는 약 1700만 명으로 증가하였고, 1925년 최초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1902만 명에 달했다.
그 뒤 광복이 되기까지 약 20년간은 인구가 크게 증가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일제의 압박으로 인한 우리 국민의 해외이주자가 350만 명이나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을 합친 광복 당시의 남북한 총인구는 약 2900만 명에 이른다.그 뒤 남한의 인구는 해외동포의 귀국, 6·25전쟁 후의 수많은 북한동포의 이주, 그리고 전쟁 후에 흔히 있는 베이비붐의 영향으로 급속히 증가하여 1960년에는 광복 당시의 남북한을 합친 인구와 비슷한 약 2495만 명, 그로부터 10년 후인 1970년에는 약 650만 명이 증가한 3144만 명, 또 10년 후인 1980년에는 약 600만 명이 증가한 3742만 명, 그리고 1995년에는 약 4485만 명에 달하였다. 면적상으로는 198개 독립국가 중 99위인 우리 나라는 인구면에서는 22위의 인구대국으로 부상하였다.
기술자원[편집]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의 하나는 훈련이나 숙련을 거쳐 기술을 습득하고 생활에 활용하는 것이다. 넓은 의미에서 기술이란 인간이 이용하는 물건을 제작, 사용하는 방법이나 지식의 총체이며, 좁은 의미에서는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원리 및 원칙과 그 성과를 응용하여 산업을 개발하고 사회복지를 증진하는 것이다.
경제적 의미에서 기술은 생산요소의 일부이며, 기술의 진보는 기존의 생산기능을 변화시켜 생산활동을 촉진하고 신제품을 출현하게 하여 생활을 편리하고 윤택하게 만든다. 기술은 원리나 방법, 시설물의 유형, 이용 분야 등의 기준에 따라 분류할 수 있다. 이용분야별로는 정보산업기술·재료관련기술·산업요소기술·에너지·자원기술·공공기술로 분류하며, 여러 가지 기술을 상호 결합하여 복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기술발달로 세계문화에 일대 혁신을 가져온 역사적 사건들을 살펴보면, 선사시대와 고대에 있어서는 석기와 불의 이용, 청동기·철기의 사용, 관개와 연금술의 개발 및 문자의 사용 등이고, 중세에서는 인쇄술·항해술·증기기관의 발명 등이며, 산업혁명 이후에는 전기·석유의 사용, 엔진기관 개발 등이고, 현대에는 핵기술·우주과학기술·컴퓨터 및 사무자동화 등의 이용이다.
우리 나라 전통과학기술의 발전과정을 살펴보면, 기원전 1000년경에 청동기를 사용한 흔적이 나타나고, 기원전 4, 3세기에 철기가 중국으로부터 전래되었으며, 이를 발전시켜서 1, 2세기경에는 삼한(三韓)에서 철판을 제조하는 기술이 발달하여 철제품을 낙랑과 일본에 수출하였다.
신라·백제·고구려의 고분에서 출토되는 공예품과 철칼은 삼국시대의 뛰어난 주조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천체를 관찰하기 위한 첨성대, 정교한 건축기술을 보여주는 석굴암, 합금주조기술의 소산인 범종(梵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인 『다라니경』 등의 유물을 볼 때, 당시의 천문·건축·주조·인쇄기술이 매우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저수지와 철기를 활용한 도작농법(稻作農法)도 삼국시대에 사용되었다. 고려시대의 기술은 신라 기술의 전통을 토대로 송나라 문화를 도입하여 독특하게 발전하였다. 고려시대의 발달된 기술을 대표하는 것은 목판인쇄기술·금속활자제조기술·자기(磁器)제조기술 등이다.
팔만대장경판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뛰어난 최고(最古)의 목판이다. 금속활자제조기술은 신라시대 이래의 청동범종주조기술과 토착적인 먹과 종이 제조기술을 바탕으로 목판인쇄의 번거로움을 극복하기 위한 창의적 기술이다. 고려청자는 송나라 자기의 영향을 받았지만, 비색(翡色)·문양·기형(器形)의 우아함으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조선시대에 두드러지게 발달한 과학기술로는 금속활자인쇄술·강수량측정기술·천문관측기술·도자기제조기술·군사기술·의약제조기술 등이 있다.금속활자 제조기술은 고려의 금속활자 주조방법을 계승, 발전한 것으로, 조선시대에는 총 25회에 달하는 금속활자의 주조가 있었다. 특히, 태종·세종 때에는 금속활자를 개발, 보급하는 데 주력하여 당대의 어느 지역의 인쇄본보다 깨끗한 금속활자본을 제조하였다.세종 24년(1442)에는 측우기(測雨器)와 수표(水標)를 발명하였으며, 그 뒤 400년 동안 규칙적으로 전국의 여러 지역에서 강우량을 측정하였다. 세종 때에는 경복궁에 대간의대(大簡儀臺)라는 천문관측소를 세우고 간의(簡儀)·수운혼천의(水運渾天儀)와 각종 해시계를 설치하였으며, 자격루(自擊漏)라는 물시계, 옥루(玉漏)라는 천상시계(天象時計) 등 기계를 사용하여 기상과 시간을 계측하였다.
한편, 자기제조기술은 고려자기의 제조기술을 전승하고 청나라의 자기제조기술을 도입하여 특유의 백자(白磁)를 제조하기에 이르렀다. 조선 초기 이래로 화포·화차·거북선 등의 제조로 군사기술의 개발과 이용도 활발하였다. 특히, 거북선은 연안해전용 공격형 선박으로 15, 16세기에 건조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다.의약기술은 15, 16세기에 정리되고 체계화되어 『향약본초(鄕藥本草)』·『의방유취(醫方類聚)』·『동의보감』 등 의학서적이 출간되었다. 15세기에 출간된 『농사직설』을 보면, 당대의 집약적 수전농업(集約的水田農業)의 기술보급내용을 알 수 있다.
조선의 과학기술은 대체로 15세기 이전에 활발히 개발, 보급되었지만 그 뒤로는 임진·정유의 양란과 주자학의 융성으로 인해 그 기반이 흔들렸다. 17, 18세기에 들어와 청나라를 통한 서구 근대과학의 자극으로 인하여 실학파를 중심으로 선진기술을 보급하고 과학적 개량을 추구하였으나, 기술을 천시하는 시대적 상황과 그들의 사회적 신분의 한계에 부딪혀 기술개발과 축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영조·정조 시대에 과학기술의 재정비를 시도하였으나 청나라를 통하여 전래되는 서구의 근대과학에 압도되어 전통기술은 답보상태를 거듭하였다. 19세기 말부터 일제의 침략과 통치로 고유의 기술이 위축되고, 서구의 과학기술은 체계적으로 도입, 수용되지 않았다.
1960년 이전에는 농업 중심의 산업구조와 해외경제교류의 미약으로 체계적으로 발달하지 못하였으나, 1962년부터 고도경제성장과 수출지향의 경제개발계획의 실행으로 과학기술진흥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1964년에 「과학기술촉진법」이 제정되고 과학기술처가 발족되었으며, 1966년에 한국과학기술연구소가 설립되어 과학기술진흥의 초석이 되었다.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과학기술은 정부의 주관 아래 해외기술을 도입하고, 모방·소화하는 데에 치중하였다. 1970년대에는 해외기술을 선별적으로 도입하고 이를 개량하여 기술축적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980년대에는 민간연구소의 활성화에 따라 기업의 사내 기술축적과 실용화가 정착되고 있다.
정부출연 과학기술연구기관은 과학기초연구 이외에도 에너지 및 자원에 관한 기술, 기술집약산업과 수출전략산업·방위산업, 그리고 공업용 소재 개발 등에 관한 기술연구 분야에 치중하여 성과를 거두고 있다. 기업부설연구소는 신제품개발과 기존제품의 개량에 관한 기술개발에 집중하고 있으며, 특히 기계·금속·전자·화공·섬유 부분에 대한 연구활동이 활발하다.또한 정부출연연구소·민간연구소·대학의 연구 부문에 대한 협력과 기술개발을 촉진하기 위하여 대덕연구단지가 총 면적 27.8㎢의 부지 위에 세워졌다.
산업 분야별 과학기술개발의 현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전기·전자 분야의 첨단기술은 반도체·컴퓨터·통신 분야로 나눌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 반도체를 처음으로 조립한 것은 1974년의 웨이프가공이다. 1983년에 64KDRAM을 독자적으로 개발한 데 이어서 256KDRAM에서 1MDRAM의 개발과 실용화단계에 도달하였다. 1988년에 4MDRAM의 개발도 성공하였다.
컴퓨터 분야에서는 1982년부터 연구개발단계에 돌입하여 1980년대 후반에는 16∼32비트의 개인용 컴퓨터를 생산하게 되었고, 주변기기인 터미널·프린터·모뎀과 중형컴퓨터를 조립, 생산하는 수준의 기술을 보유하게 되었다.
통신분야에서는 1980년대에 TDX-1교환기·팩시밀리·비디오텍스 등을 상용화하고, 자료와 음성통신을 종합적으로 처리하는 종합정보통신망(ISDN)의 개발이 진행중에 있다.
전기·전자 분야의 기술은 공정에 따라 회로설계·가공·조립 기술, 시험·검사 기술 등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이 중 가공·조립 기술은 개발수준이 선진국에 가깝지만 회로설계기술은 낙후되어 있다.
기계 분야 중에서 공작기계기술은 1960년대까지는 관련산업 부문의 영세화와 생산량의 왜소로 기술축적이 미미하였으나, 1973년부터 정부의 중화학공업육성책과 대기업의 참여로 활성화되고 있다.
NC공작기계는 1977년에 처음으로 생산된 이래로 보급이 급속하게 증가되고 있으며, 로봇의 생산도 1985년부터 시작되어 용접용 및 조립용 로봇이 국산화되고 있다. 그리고 FMS와 CAD·CAM의 기술은 도입단계에 있다.
자동차 제조기술은 1975년에 고유의 상표를 부착한 자동차가 보급된 이래로 소형 및 중형 자동차의 조립생산기술을 보유하고 설계기술의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한편, 항공산업분야의 기술은 소형비행기의 조립과 헬리콥터 동체 조립, 그 밖에 B747기 및 MD-11기종의 부품을 생산하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
금속소재 생산기술도 급속하게 확산되어 범용철강의 조업기술은 세계적 수준에 도달하였으며, 특수강·핫코일·전자기산업용 소재의 생산기술도 보유하게 되었다. 비철금속소재 중 리드프레임소재를 독자적으로 개발하여 상품화한 데 이어 형상기억합금의 개발도 실험단계를 거치고 있다.비금속광물과 화학 분야에서 파인세라믹은 원료를 외국으로부터 수입, 가공하는 단계이나 기업부설연구소에서 소재의 국내기술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합성수지와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의 공정기술은 외국으로부터 도입하고 있으나, 고강도섬유인 아라미드섬유와 탄소섬유의 제조기술은 국내에서 자체개발에 성공하였다.
정밀화학분야에서도 정제황산알루미늄, 카세트테이프용 산화철, 일부 항생제와 형광안료, 농약 부문에서 국내기술의 축적과 상품화가 성공을 거두고 있다.
생명공학 분야는 1980년 이후 국내에서 기술연구활동이 시작되었으며, 짧은 연혁에도 불구하고 인체활성물질과 항생·항암물질·인슈린·인공종자·미생물비료·백신·인터페론·바이오화장품 등을 개발하였다.
우리 나라 기술개발의 과제는 국민총생산의 5% 수준까지 기술투자를 확대하고, 민간대기업이 기술개발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며, 중소기업에까지 기술의 확대·보급을 꾀하는 한편, 기술·기능 인력을 장기적으로 확보하는 대책을 마련하고, 연구기관·학교·기업의 산학협동을 도모하고 산업기술정보체제를 확립하는 데 있다. 아울러 국제기술협력을 강화하고 기술용역 수출을 확대하여야 할 것이다.
이용[편집]
자원은 과학의 발전과 수요의 증대로 그 종류가 다양해질 것이다. 오늘날 이용되지 않는 소재도 자원화할 가능성은 있다.인간은 자원을 개발하고 이용하는 일에 꾸준히 힘을 기울여 그것을 산업의 기초로 삼았다. 새로운 문화가 개화하면 새로운 자원이용의 방법이 안출되어 자연은 광범위하게 자원화되어 왔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자원의 분포는 지역적으로 고르지 않으며 또 산업이나 인구의 편재로 인해 충분히 이용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반면 자원의 편향적 개발이 자연을 파괴하여 재해를 초래하는 일도 있었다. 그래서 자원을 개발하는 데 있어서는 기술과 경제상의 문제 이외에 그 자체의 파급영향을 고려에 넣는 합리적인 계획의 입안과 실천이 필요해진다. 그래서 오늘날 자원의 효과적 이용을 위해 넓은 시야에 서서 산업입지(産業立地)의 적정화를 기하고 관련이 있는 각종 자원과 지역을 동시에 개발하는 합리적인 산업계획이 여러 곳에서 입안, 실시되고 있다.
개발[편집]
자원은 그것을 이용하는 인간이 사는 것에 가깝게 많이 분포하여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인간이 일정한 곳에 거주하게 되면 우선 가까운 곳에 있는 재료를 이용하여 집을 짓고 밭을 간 것처럼 개발의 경로도 '가까운 것에서부터 먼 곳으로' 미치고 있다. 이 사실은 미국에 있어서의 탄전이나 유전의 개발, 소련에 있어서의 토지개발의 예를 보아도 확실하다. 물론 여기에서 ‘가깝다’는 것은 시장에의 근접성, 다시 말해서 자원의 매장(분포)지와 소비시장의 시간거리로써 표현된다.개발수단의 기계화와 교통수단의 발전으로 기왕에 방치되어 있던 지역의 자원도 다음 단계에 가서 개발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도 자원은 가까운 곳에서부터 고갈한다고 말할 수 있다.또한 새 자원지역의 개발에는 반드시 격렬한 저항이 따르는 법이다. 제국주의적인 식민지 획득전쟁에 있어서의 열강의 대립, 식민지주민의 민족독립운동 같은 대규모의 사회적 저항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자원의 개발에는 기술적 곤란을 극복하는 문제 외에 사회적 저항을 극복하는 문제가 따른다.
자원개발에 따르는 문제 문명이 발달함으로써 한 쪽에서는 농경지 개간을 위해 삼림이 불태워지고 또 한 쪽에서는 목재 이용의 다양화와 수요의 증가로 벌채 활동에 활발해져서 남벌(濫伐)현상이 일어났다. 그 결과 삼림자원이 현격히 감소되어 현재는 육지면적의 15 ~ 20%를 차지하는 데 불과하다. 임업의 근대화 내지는 대기업화에 반비례해서 삼림면적은 극도로 감소되어 자연의 균형마저 깨어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임업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어업의 경우 어선의 동력화, 대형화, 고성능화 및 경영의 합리화로 자칫하면 수산자원의 번식과 어획고의 균형이 깨어지며 남획현상은 번번이 국제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자원보존의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지만 아직 개발의 문제 만큼은 진전되어 있지 않다.
자원의 개발과 경합 자원은 그 질적 내용에 따라 식물, 동물, 광물로 대별되고, 소재에 따라 지상자원, 지하자원, 수산자원으로 구분되며, 또 나아가서는 원형대로 존재하는 천연자원과 그것을 가공한 배양자원, 그리고 이용방법에 따라서 건설용과 화학용으로 분류되는 에너지자원 등이 있다. 이러한 여러 자원은 상호관련을 맺으면서 치열한 경합을 거듭하고 있다. 예컨대 에너지자원의 경우 인력 → 가축력 → 풍력 → 수력 → 기계력으로 이어지는 혁명은 산업혁명 이래 인간의 생산활동에 크나큰 변혁을 초래했다. 에너지자원간의 경합은 특히 변혁기에는 치열한 것이다. 우리들의 생활 무대에도 그와 같은 현상이 존재한다.
보존[편집]
인류의 자원에 대한 욕구가 인구의 증가와 문화의 진전에 따라 무한하게 커짐으로써 자연계에서 얻으려는 물자의 양도 무한하게 커졌다. 그러나 천연자원의 부존은 한정되어 있을 뿐 아니라 지구상에 고루 분포되어 있지 않고, 지역에 따라 그 양에 많은 차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석유·우라늄 등과 같이 극단적으로 특정 지역에 매장되어 있는 자원이면서도 근대 공업이나 인간생활에 절실히 요구되는 것에 대해서는 이를 구득하려는 욕망을 크게 자극하게 되고, 나아가서는 이 자원을 둘러싸고 국경 문제, 영토 문제를 일으키고, 이른바 자원전쟁을 일으킨다. 에스파냐가 지국령 사하라 지역을 포기하게 된 동기도 풍부한 인광석(燐鑛石)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열강의 압력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또 구에스파냐령 사하라를 둘러싸고 인접한 모로코·알제리·모리타니 등이 서로 병합하려고 지금까지 분쟁을 계속하고 있는 일이나, 또는 해저에 유전이 있을 가망성이 크므로 대한민국과 일본의 해저 공동개발 계획에 중국이 간섭하는 것도 이의 보기가 된다.
식물자원과 동물자원은 그 자체가 번식력을 갖는 점에서 본질적으로는 재생할 수 있는 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에 있어서 대한민국의 산림자원은 한동안 축적량이 크게 감소되었다가 근년에는 그 축적량이 증대되어 가는 과정에 있다. 입산금지와 남벌(濫伐)·도벌(盜伐)을 막는 일을 철저히 하고, 자연보호에 힘쓴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세계의 삼림자원은 고갈 상태에 다다르고 있는 실정이다. 문명이 발달하고 인구가 증가됨에 따라 주택·공장·도로 등에 빼앗기는 토지 때문에 삼림면적이 감소되는 것이며, 또 토양의 황폐로 인한 삼림의 파괴가 원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벌채에 의한 삼림자원의 감소를 억제하기 위하여 각 지역에 인공림의 조성이 활발해졌다. 이러한 인공림의 조성에 따라 식물자원은 재생할 수 있는 자원이라는 것이 실증되었다. 그러나 삼림의 재생은 일정한 시간적 경과를 필요로 하는 것이므로 벌채와 재생과의 사이에는 시간적·양적인 밸런스가 있어야 한다. 결국 과벌(過伐)함으로써 삼림자원이 고갈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물자원도 남획 등으로 감소하는 경우가 많다. 대어장(大漁場)이 남획으로 괴멸 직전에 이른 것도 있고, 어느 종류의 유용동물은 멸종한 것도 있다. 대한민국 동해안의 정어리는 자연적인 원인인지 아니면 인위적인 원인인지 대한민국 근해에 나타나지 않는다. 베링해나 남빙양(南氷洋) 등에서는 연어·송어·고래 등과 같이 국제협정을 맺어 포획을 제한함으로써 이들 수산동물의 보전이 가능하다는 것을 실증하였다. 또한 목축업의 발달과 사육 방법의 개량·시설의 확장 등으로 동물자원을 증가시킬 수 있게 되었다. 토지자원은 그 자체는 감모를 회복시키는 힘이 없으나 인력으로 토지자원을 재생시킬 수 있는 자원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농산물을 계속 재배함으로써 감모된 지력(地力)을 회복시키게 되었다. 또 윤작(輪作)이나 이농(移農) 등으로 지력의 회복을 도모하고, 적극적인 방법으로는 관개(灌漑)·수리(水利)시설의 발달과 화학비료의 증산 등으로 지력은 재생산자원으로 간주되었다.
수자원(水資源)은 대기(大氣)를 통하여 순환하는 동안에 거의 무진장한 자원으로 간주되었다. 오늘날처럼 자원을 국가가 통제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국가간의 자원에 대한 자극이 커지고 전쟁의 우려는 한층 증대되어가는 과정에 있다. 세계의 원유 매장량이 점점 적어지고 있다. 관광자원도 각종 산업에 의해 아름다운 풍경이 파괴되고, 삼림이 남벌되고, 수질 등이 오염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근래 세계 각국이 관광자원의 보전과 개발에 주력함으로써 새로운 관광지가 개발되어 가고 있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