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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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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binyi (토론 | 기여)님의 2021년 7월 12일 (월) 09:48 판 (아퀴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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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time, 時間)은 시각과 시각 사이의 간격 또는 그 단위를 의미하는 말이다. 길이, 질량과 같이 다른 물리량을 정하는 기본단위이고 물리적 시간을 정하기 위해 현재는 세슘 원자시계, 스트로보스코프 등을 이용한다. 이 시계를 이용하는 협정 세계시(UTC)가 국제 표준으로 운영되고 있다. 우리 말에서 시간이란 단어는 동음이의어이며, 시간의 개념 그 자체(time)와 시간의 단위 중 하나(60분, hour)를 지칭한다.[1]

개요

밀레니엄 구분 기원전 제1천년기 제2천년기 제3천년기 제4천년기 이후
[1]

시간은 사물의 변화를 인식하기 위한 개념이며, 세월(歲月) 또는 광음(光陰)이라고도 지칭한다.[2]관성계에 따른 시간의 흐름은 차이가 남으로 절대적인 물리량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즉, 시간은 상대적인 물리량이다.[1]

천체 물리학에서 시간은 곧 거리이며 이는 광속우주의 종단 속도이기 때문이다. 광속으로 움직이면 움직이는 관점에 바라볼 때 시간은 정지한다. 빛은 0의 시간에 무한대의 거리를 이동할 수 있고 이것은 중력에 의한 굴절 및 회절에도 변화하지 않는다.[1]

물리학에서 현재 주류 견해는 시간의 흐름을 입증할 만 한 증거가 없으며 과학 법칙은 과거와 미래를 구별하여 적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시간은 실재하지 않는다. 물리학에서 실재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중요한 부분이 아니고, 이것이 자연현상을 기술하는데 유용한 어휘인지 아닌지가 중요하다. 현재는 대부분의 사람이 시간이라는 단어를 잘 쓰고 있으며 잘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에 실재하는지에 대해서는 중요하지 않다.[1]

시간은 영원하지만 언젠가는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 우주의 엔트로피가 극한에 달한다면 절대 영도의 무한한 빈 공간만 존재하게 될 것이다. 어떤 물질이나 에너지도 상호작용을 하지 않기 때문에 영원히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기에 이 이후의 시간을 재는 것은 무의미한 행동이다.[1]

시간의 단위

시간의 단위 중에 , , 까지는 절대적인 불변의 값이다. 과학계의 7대 기본 단위 중 하나이며 한 초는 초 항목에 나와 있듯이 세슘 원자의 전자를 이용해 정의한 고정된 절댓값을 1초로 하고 이것의 60배는 1분, 3,600배는 1시간으로 정의한다. 1일과 1년부터는 단순히 그것을 구성하는 시간의 배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천문학적인 주기까지 뜻한다. 지구에서는 자전 속도의 감속이나 자전공전의 시간 차 때문에 그 주기가 보정을 받아서 변한다. 현재도 하루 중에 1초를 더 추가하는 윤초와 1년 중에 하루를 더 추가하는 윤년이 그 사례이다.

  • 1초
기본적으로는 1분의 60분의 1, 즉 하루의 86,400분의 1 길이의 시간으로 정의되거나, 국제단위계(SI)에서는 절대 영도에서 세슘 - 133 원자의 바닥 상태(6S1/2)에 있는 두 개의 초미세 에너지 준위(F = 4, F = 3)의 주파수 차이를 9,192,631,770헤르츠로 정의하고 그 역수를 1초로 정의한다. 복잡한 정의를 가지게 된 것은 1초에 가장 가까운 불변의 시간 단위를 맞추다 보니 어려워진 것이다.
  • 1분
= 60초
  • 1시간
= 60분
= 3,600초
  • 1일
= 24시간
= 8만 6,400초
  • 1년
= 365일
= 8,760시간
= 3,153만 6,000초
  • 1세기
= 100년
= 31억 5,360만 초
  • 밀레니엄
= 1000년
= 315억 36,000만 초[1]

시간의 단위 역사

고대 바빌론이집트에서는 천체, 태양이 하늘에서 움직인 거리를 이용하여 시간을 표현했다는 기록이 있다. '태양이 한 뼘만큼 움직이는 시간', '태양이 손가락만큼 움직이는 시간' 등의 표현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것은 정확한 시간 측정이 아니었고 정확한 시간의 측정 방법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바빌로니아인들의 60진법식 시간 측정이었다. 바빌로니아인들은 1년을 360일로 나누었으며 현재에도 1년이 360일은 아니지만, 을 360도로 분할하는 관습은 아직 남아있으며 사용되고 있다.

바빌로니아, 이집트, 그리스 등 다양한 고대 문명해시계를 이용하여 하루를 여러 개의 시간으로 나누었으며, 우리에게 익숙한 24시간은 그리스 천문학자인 히파르코스가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히파르코스는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인 분 일(추분과 춘분)의 밤을 12조각, 낮을 12조각으로 나누어 그 한 조각을 시간의 표준 단위로 사용하자고 했지만, 당시에는 그 한 조각(한 시간)이 얼마만큼의 시간을 할당하는지 나타낼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널리 사용되지 못했다.

일정한 길이의 시간을 한 시간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은 기계식 시계 발명된 14세기 이후이다. 한 시간을 60분으로 나누게 된 계기는 시계의 분침이 달린, 더욱 발달하고 정확해진 시계가 등장한 16세기부터다. 초 단위를 볼 수 있는 시계의 초침이 등장한 것 또한 16세기 중이며, 당시 초침이 달린 시계는 오늘날의 원자시계급으로 과학자들에게 필수인 물품이었기 때문에 단순히 시계방에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과학자들이 직접 고안하여 만들었다. 요하네스 케플러의 스승으로 알려진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를 통해 정밀한 천체 측정을 위한 초침이 달린 시계를 만들었는데(1581년), 기술의 한계로 인하여 시간이 정확하지 않아서 동일한 시계 4 네 개를 만들어서 그중 두 개의 평균 시각을 측정하여 사용을 했다. 크리스티안 하위헌스는 인류 최초로 1초를 정확히 측정하는 것이 가능한 전자식 시계를 발명하여 시간 측정에 혁명을 불러 일으켰다(1656년). 그 덕분에 그 당시 초정밀 시계의 개발이 급속도로 이루어졌고 18세기 중반에는 100일에 1초밖에 틀리지 않는 정밀 시계가 상용화되어 과학 및 항해 도구로 널리 사용이 되었다.

이처럼 시계가 정확해지자 '초'를 시간의 표준 단위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1832년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가 밀리미터, 밀리그램, 초로 구성된 표준 단위계를 만들어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과학진흥협회(BAAS)가 1874년 CGS(센터 미터, 그램, 초) 표준 단위계를 정식으로 채택하여 1초가 시간의 표준 단위로 받아들여졌다. 오늘날에 사용되는 MKS(미터, 킬로그램, 초) 단위계에서도 시간의 표준 단위는 초이다.

처음에는 1초 = 1일(1 평균 태양일)의 86,400분의 1로 정의했지만, 현재는 1초의 정의가 더 정밀해지면서 1일 = 86,400초(세슘 원자 시계로 측정한 표준 초)로 정의한다. 옛날식 정의도 1956년에 한 번 바뀌었었다. 그전에는 1 평균 태양일을 기준으로 하던 것을 1956년에 정의를 바꾸면서 춘분의 하루 길이를 평균 내서 그것을 하루의 길이로 정의하게 되었다. 하지만 원자 시계의 등장으로 이 정의도 사라지고 1967년에 오늘날 사용하는 1초의 길인 세슘 원자 기준 길이가 표준으로 채택되었다.[1][3]

물리학에서의 시간

열역학 제 2법칙

시간이 왜 과거에서 미래로만 직선적으로 흘러가는지에 대한 설명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의 한 가지가 열역학 제2 법칙, 엔트로피(무질서도)의 증가이다. 열역학 제2 법칙에 의하면 고립 계에서는 항상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변하게 된다. 결국에 엔트로피가 극댓값을 가지는 평행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열역학 제2 법칙에 의하면 엔트로피가 증가함에 따라 시공간의 에너지 분포가 변하게 되면 그 전의 상태로 돌아가지 않고, 자동으로 커지는 쪽으로 시간이 흘러가는 미래가 된다. 이렇게 나타나는 시간의 방향성을 열역학적 시간의 화살이라고 지칭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의 방향성은 열역학적 시간의 방향성과 같음으로 시간이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2]

시간의 상대성

특수 상대성 이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905년 아인슈타인의 <운동하는 물체의 전기 역학에 대하여>라는 논문이 세상에 모습을 보이자 시공에 대한 일대 사고의 변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아인슈타인이 특수 상대성 이론이라고 이름을 붙인 이 이론은 아래의 다섯 가지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2]

1. 시간 지연 : 움직이는 물체는 시간이 천천히 간다.
2. 길이 수축 : 움직이는 물체는 길이가 짧아진다.
3. 동시의 상대성 : 한 사람에게 동시에 일어난 사건은 다른 운동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는 동시에 일어나지 않는다.
4. 질량 증가 : 움직이는 물체는 질량이 무거워진다.
5. 물질과 에너지의 동등성 : 물질과 에너지는 서로 바뀔 수 있다.

[2]

다섯 가지의 결론들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고전 역학적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뒤바꾸게 된다.[2]

아인슈타인은 빛의 속도는 관측자의 상태에 상관없이 항상 같다는 사실이라는 기반 아래, 기존의 갈릴레이 상대성 이론뉴턴 역학을 부정한다. 고전 물리학적 관점에 따르면, 어디에나 위치해 있는 시계는 똑같은 시간으로 맞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두 일정하게 흘러가는데 이것 또한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에 의해 부정된다.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의 기본 가정 두 가지는 아래와 같다.[2]

1. 광속 불변의 원리(빛의 속도가 지구의 공전 속도에 무관하게 299,792,458m/sec로 항상 일정하다는 사실은 미국의 마이컬슨과 몰리의 실험을 통해 밝혀졌다.)
2. 어떤 관성계에서든 물리 법칙은 동일하다.

[2]

여기서 빛의 속도는 어떤 상황과 경우에도 299,792,458m/sec로 일정하다는 기본 가정하에, 기존의 갈릴레이의 상대성 이론은 부정되게 된다. 그 이유는 빛의 속도에는 어떠한 다른 속도도 더해지거나 감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2]

빛시계

이러한 광속 불변의 원리에 따라서 빛시계를 가정하면, 움직이는 물체 안에서 시간은 더디게 간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빛시계는 일정한 거리를 위아래로 한 번 왕복하고 돌아오면 1초가 지나는 시계다. 빛시계를 움직이는 기차 안에 두면, 이 빛이 이동하는 거리는 기차 밖에 있는 빛시계의 빛이 이동하는 거리보다 길어지게 된다. 그 이유는 빛은 언제나 같은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기차 안의 시간은 느리게 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간 지연 효과는 시간은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일정한 속도로 흘러간다는 기존의 관념을 뒤 바꿔 버리는 것이다. 시간은 속도와 움직임이 다른 개체들에게 모두 다르게 흘러가면,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흘러가는 시계라는 것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다는 것이다. 시간지연 효과는 인간의 감각으로는 알아챌 수 없을 만큼 미미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아인슈타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나 이 효과는 1971년, 비행기로 지구를 동쪽과 서쪽 방향으로 돈 후, 시계를 비교해 본 결과, 서쪽으로 돈 시계는 0.000027초이며 동쪽으로 돈 시계는 0.000006초가 느려지는 것이 확인되어 이 효과는 사실로 증명되었다. 오늘날에는 우리들이 사용하는 인공위성, 스마트폰, 노트북 등 다양한 기기에 정확한 시간을 조절하는 원리로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있다.[2]

동시성의 상대성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절대적 동시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예를 들어, 멈춰있는 어떤 사람에게 다른 방향에서 오는 두 불빛이 동시에 반짝였다면, 이것은 그 사람에게 동시에 일어난 사건이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앞이나 뒤로 이동하고 있는 사람에게 이 불빛은 동시에 반짝이지 않는다. 이유는 빛의 속도는 항상 일정하기 때문이다. 즉, 움직이고 있는 사람 입장에선 어는 순간 한 불빛과 점점 가까워지는 반면, 다른 한 불빛과는 점점 멀어지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불빛을 먼저 보게 되고 멀리 떨어져 가는 불빛은 뒤늦게 보게 된다. 결론적으로 운동 상태와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개체들에게 동시라는 건 모두 다르게 관측된다.[2]

엘러건트 유니버스 책

엘러건트 유니버스

브라이언 그린의 1999년 시간에 관한 내용이 담긴 엘러건트 유니버스 책이다.[4]

두 상대성 이론이 한 일

특수 상대성 이론이 시간과 공간에 대한 기존 관념을 뒤바꾼 것처럼 일반 상대성 이론도 중력 개념에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 시간과 공간은 관측자의 운동상태에 영향을 받을 뿐더라 물질이나 에너지가 존재하는 곳에서는 뒤틀리고 휘어질 수 있는 난해한 물리량이 되었다. 시간과 공간은 우주의 사건이 진행되는 무대 배경이 아니라 사건들과 함께 어우러져 우주의 스토리를 만들어 가는 주체였던 것이다.[4]

특수 상대성 이론이 말하는 시간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

아인슈타인이 시공간의 개념에 일대 혁명을 가져온 지 100년 가까이 지났지만, 우리는 아직도 시간과 공간을 절대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이려는 부분이 있다. 왜냐하면 특수 상대성 이론을 일상생활 속에서 피부로 직접 느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특수 상대성 이론의 결과는 우리가 경험을 토대로 쌓아온 직관과 굉장히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상대론적 효과는 움직이는 속도가 빠를수록 크게 나타나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자동차나 비행기의 속도는 빛의 속도에 비교했을 때, 달팽이보다도 느리기 때문이 그 효과를 거의 알 수 없고 볼 수도 없다. 빛의 속도가 불변이라는 것은 반박의 여지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랜 세월 당연하게 믿어왔던 동시성의 개념을 버려야 한다. 지구와 화성, 안드로메다은하, 화성 그리고 그 밖의 우주 곳곳에서 항상 동일한 속도로 돌아가는 공정한 시계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은 것이다. 서로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두 명의 관측자들은 그들 앞에서 일어난 사건들의 동시성에 의견 일치를 볼 수 없다. 왜 우리는 그동안 이러한 놀라운 사실을 모르는 채로 살아오고 있었다. 빛의 속도에 비해 굉장히 느린 일상적인 속도에서 이 효과는 너무 미미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4]

상대론적 회춘법이 작동하는가

계속해서 움직이는 사람은 제자리에 정지해 있는 사람보다 더 오래 사는가에 대해서 이는 그렇지 않다. 시간이 늦게 가는 것은 시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움직이는 사람의 심장 박동을 비롯한 모든 생체 현상도 똑같이 느려진다. 정작 당사자는 아무런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빠른 속도로 달리면서 젊음을 유지하는 상대론적 회춘법에 허황된 꿈을 품고 머물게 되었다.[4]

시간과 공간의 운동을 나눠 갖는다

아인슈타인 머릿속에 떠올랐던 아이디어는 서로 다른 방향의 차원들에 대하여 운동이 분배 된다는 개념이었다. 이것은 특수 상대성 이론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상대론에서 운동 요소를 나눠 갖는 차원 목록에 공간 뿐 아니라 시간까지 포함되어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경우, 물체의 운동은 공간이 아닌 시간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만일 어떠한 물체가 우리를 기준으로 정지해 있다면, 이 물체는 공간 이동이 전혀 없다. 따라서 이 물체의 모든 운동은 시간 차원 쪽으로만 진행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를 기준을 정지해 있는 모든 물체들은 한결같이 동일한 속도를 유지한 채로 시간 차원을 따라 이동하고 있다. 즉, 이들 모두는 나이를 먹는 것이다. 그리고 공간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물체는 시간 차원을 향하던 속도 중 일부가 공간 차원 쪽으로 할당되어 그 덕택에 움직이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을 예상한다.[4]
빛의 속도는 정지 상태에서 시간 차원을 따라 광속으로 진행되던 운동이 모조리 공간차원에서의 운동으로 전환되는 경우다. 이렇게 된다면, 시간 차원에서는 더 이상 끌어다 쓸만한 속도가 남아있지 않음으로 물체의 공간 이동 속도는 절대로 광속을 초과할 수 없다. 그리고 광속으로 이동하는 물체에게는 시간의 흐름이 정지된다. 빅뱅 때 탄생한 광자(빛을 구성하는 입자)가 150억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영원히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광속으로 움직이는 물체는 결코 나이를 먹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4]

철학에서의 시간

불교 철학에서는 시간은 실체가 아니고 단순한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서양 철학에서 시간과 관련된 논의는 형이상학의 시초인 플라톤 이후로 다양하게 전개되었다.[2]

불교와 플라톤

불교

불교에서는 모든 유위법이 생명 변화할 때의 그 변화 상태를 가설적으로 이름하여 시간이라고 한다. 시간이란 실체가 없는 것에 불과하며 설정된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2]

플라톤

플라톤(Plato)

플라톤에게 시간이란 진정한 본질인 이데아의 모상일 뿐이고 현실 세계의 불완전함을 나타낼 뿐이다. 그는 사물이 본질의 순수성을 구현하기 위해선 타자와 관계를 맺지 않은 독립적이고 부동의 상태에서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간이 흐르는 현실 세계에서는 이러한 본질의 순수성이 구현되지 않고, 시간이 존재하지 않아 아무런 변화도 운동도 일어나지 않는 이데아에서만 본질의 순수성이 구현될 수 있다. 그에게 시간은 이데아인 영원의 모상에 불과하였다.[2]

중세 스콜라 철학

아우구스티누스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Hipponensis)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의 수많은 역설과 문제를 탐구했다. 그는 '시간은 정말로 무엇인가? 나에게 아무도 묻지 않더라도 나는 안다. 그러나 내가 질문자에게 설명하고자 한다면 나는 알지 못한다.'라고 말하면서 시간 탐구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현재가 과연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 사이의 형식적인 분기점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인지, 시간을 어떻게 과거와 현재, 미래로 분할할 수 있는지, 시간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이고 무엇인가에 관해 탐구하였다. 그는 자신이 품은 시간에 관한 일련의 물음들의 답을 인간의 정신(혼)에서 구했다. 그가 보기에 인간이 시간의 분할에 대하여 이해하는 것은 영원 속에서 유한한 시간을 뽑아낼 수 있는 정신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영원은 시간의 연장이 아닌 신에게 귀속된 인간이 인식할 수 없고 인간은 유한한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는 창조 이전과 종말 이후에는, 끝없는 시간 혹은 무 시간이 아닌 영원성일 뿐이고 인간이 인식하는 시간은 유한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죽음, 재생, 죽음이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순환적인 시간관을 거부했다. 그는 시간을 인간 정신의 산물로 봤으며 인간은 신의 창조 이후 약 수천 년 동안 지속할 역사의 과정에서 살고 있음을 주장했다.[2]

아퀴나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아퀴나스는 세계가 어떻게 신에 의해 창조되었는지 설명하기 위해 독특한 시간관을 도입했다. 그가 봤을 때, 세상은 시간과 함께 창조된 것이지 시간으로부터 창조된 것이 아니다. 신은 시간공간에 갇혀 있는 분이 아니시고 초시간적인 존재이지만, 인간은 시간과 공간에 갇힌 존재이다.[2]

뉴턴과 라이프니츠

뉴턴 
라이프니츠 

아이작 뉴턴에게 시간은 공간과 더불어 언제 어디서나 변화치 않고 항상 균일하게 흘러가는 실체였다. 그의 저서 프린키피아에서 그는 이렇게 말을 전했다. '수학적이며 진리적인 절대 시간은 외부의 그 어떤 것과 상관없이 그것 자체로 흐른다.' 사물의 존재나 변화와는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한 뉴턴 적 시간은 사물이 생성되는 순서 결과로 시간이 생긴다는 라이프니츠의 시간관과 대립 관계를 이룬다.[2]

칸트

칸트 

근대 서구 철학자 칸트는 뉴턴과 라이프니츠를 넘어서 새로운 시간관념을 주장했다. 그는 절대 시간과 절대공간은 실체가 아니고 관념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칸트는 시간을 선험적 종합판단, 공간과 더불어 어떤 대상에 대한 현상학적인 인식을 가능하게 해주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지닌 인식의 형식으로 봤다. 이 형식은 인간의 주관적인 의식이 만들어 내는 도구일 뿐이고 물리계에 실재하지 않는다. 칸트의 저서 형이상학 서설에 따르면 '공간과 시간은 인간이 가진 감성의 형식적 조건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기본적인 형식이 인간 내부에 존재한다는 발상은 인식의 주체를 외부에서 내부로 돌림으로써 데이비드 흄인식론적 회의주의를 극복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2]

앙리 베르그송

앙리 베르그송 

앙리 베르그송제논의 역설에 대해 강의하던 중 서양 철학이 이때까지 시간의 본성을 망각한 채 시간을 공간화해서 이해하지 않았냐라는 물음을 갖게 되었다. 앙리 베르그송은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공간으로 치환해서 측정하는 과학적, 물리적 시간과는 질적으로 다른 의식의 시간, 삶을 경험하는 방식으로서의 시간이 진정한 시간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러한 의식의 시간을 지속이라고 명명하였다. 지속은 시간이 흐른다는 것이고 이 흐름에 따라 생명이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속으로서의 시간, 의식으로서의 시간은 내가 직접 느끼고 경험하는 진짜 시간이지만, 체험이 배제된 기계적 시간은 단지 형식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2]

하이데거

하이데거 

하이데거서양철학을 플라톤 이후부터 시간과 상관없이 시간이 흘러도 변화하지 않는 본질을 찾아 쓸데없이 헤맸다고 비판했다. 그가 보기엔 진정 중요한 철학의 주제는 '본질에서 시간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이 어떻게 시간 속에서 존재하는가?'의 문제였다. 하이데거는 현 존재의 진정한 의미를 시간성에서 찾는다. 인간은 시간성으로 존재하고 인간의 실존은 근본적으로 시간적이다. 시간성이란 오면서(과거), 마주하면서(현재), 다가감(미래)이다.[2]

헤겔

헤겔 

헤겔의 시간관은 칸트의 시간 관가 비슷하다. 시간을 외부의 실체가 아닌 내부의 형식으로 보는 시간관을 수용했다. 그러나 그의 시간은 관념 속에서만 존재하는 추상적인 형식보다 정신 속에서 존재하며 정신의 의미를 규정하는 시간, 즉 역사적 시간이다. 영원히 순환하는 자연적 시간이 아닌 역사적 시간 속에서 자아는 자신의 고유한 동일성의 구성 원리를 간파하고 자신의 존재를 확립한다. 헤겔은 근대적 의미의 시간 의식과 근대적 의미의 자아를 확립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시간은 순수 자기의식으로서의 자아의 동일성의 원리다. 이 시간은 고대 그리스의 자연적 시간에서처럼 만물이 시간 속에서 생성되는 원리보다는 시간 그 자체가 생성, 생기와 소멸, 존재하는 사상 활동, 모든 것을 생산하면서 동시에 그 산아를 절멸해 버리는 크로노스다.'라고 말을 전했다.[2]

니체

니체 

니체의 저서 차라투스트라에서 그의 영원 회귀적 시간관을 표현한다.' 끝에 와서는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간다. 그것은 재귀할 뿐이다. 그것은 결국 나에게 돌아온다.'라고 말을 전했다.[2]

레비나스

레비나스 

레비나스는 윤리적 책임을 설명하기 위해 독특한 시간관을 도입했다. 레비나스에 따르면, 윤리적 책임은 기억과 역사의 시간으로 환원될 수 없는 새로운 시간의 개념이 필요하다. 그는 기존의 전통적인 시간관과 달리 지속하지 않고 중단된 시간관을 주장했다.[2]

시간의 흐름

3차원 현실 우주는 세로, 가로, 높이의 방향으로 펼쳐지는 공간과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을 기초로 하여 성립된다. 시간은 공간과 함께 과학, 철학의 기저를 이루는 주요한 개념이다.[2]

시간(時間)과 시각(時刻)의 차이

시간시각이란 말이 혼동되어 쓰이곤 하는데, 두 단어는 엄연히 의미가 다르다. 시간의 흐름을 1차원의 직선으로 생각해보았을 때, 직선 위의 0차원의 점이 있다고 했을 때, 이것이 시간의 어느 한 시점 시각이고 시각과 시각 사이의 1차원 구간이 시간이다.[2][5]

평균 항성시와 평균 태양시

지구를 중심으로 한 하늘의 구면(球面)을 천구(天球)라고 칭한다. 항성이 천구에 달라붙어 있을 때, 북극성을 중심으로 별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이는 것은 관찰자 입장에서 천구가 약 1일에 1회전의 속도로 돌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이 현상을 천구의 일주 운동(日周運動)이라고 칭한다. 천체의 회전은 지구가 자전하는 현상이므로 이 회전축은 지구의 회전축, 즉 지구의 북국과 남극을 관통하는 직선으로 이 직선이 천구와 교차하는 점을 각기 하늘의 북극, 하늘의 남극이라고 칭한다. 이 점들은 천구가 회전하여도 움직이지 않으며 우리들의 머리 위에 있는 천구상의 점인 천정(天頂)과 하늘의 북극을 연결하는 큰 원을 자오선이라고 칭한다. 자오선은 시간과 함께 얼마만큼 회전하였는지를 표시하면 된다. 일상생활에 가장 관계가 깊은 것은 태양이므로 태양의 시각(時角 = 천체와 하늘의 북극을 연결하는 큰 원과 자오선 사이의 각)의 크기로 시각을 나타내면 시각을 생활 주기에 쉽게 연관 지어 설명이 가능하다.[2]

세계시와 협정 세계시

시각은 하늘을 보는 사람의 자오선을 기준으로 측정하므로 보는 장소가 다르면 시각의 값이 달라진다. 영국의 그리니치를 통과하는 자오선으로 측정한 평균 태양시세계시라고 칭한다. 지구가 일정한 속도로 자전하고 있다면, 평균 태양의 시간 각도로 결정되는 태양시의 연평균이 일정할 것이므로, 평균 태양시의 정오부터 다음의 정오까지의 간격을 1 평균 태양일로 하고 이를 24시간으로 나누면 시, 분, 초의 시간 정의가 가능하다. 실제로는 지구의 자전 속도는 일정하지 않다. 바닷물의 밀물과 썰물 때에 해저에서 마찰이 발생하면, 이 마찰이 원인이 되어 자전 속도 조금씩 느려진다. 더불어 불규칙, 돌발적인 속도의 변동도 영향을 미친다. 평균 태양시로 시각을 정하는 것에 문제는 없지만, 예로 들어 평균 태양일의 시각의 간격으로 시간을 정의할 수 없다. 시간의 단위인 초는 원자의 진동으로 정의가 된다. 세슘 원자 시계로 실현되는 일정하고도 불변하는 길이의 초를 1초, 1초씩 더하면, 하나의 연속된 시간의 흐름이 형성됨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만들어진 시각을 세계시와 0.95초 이상 차이가 나지 않도록 한다. 만약 이 한도 이상으로 차이가 날 염려가 있을 때는 1초를 더하거나 뺀다. 이러한 1초를 윤초라고 칭한다. 윤초는 협정 세계시(UTC)를 기준으로 6월 30일 또는 12월 31일의 23시 59분 59초 다음 23시 59분 60초로 가산하고 다음 날은 0시 0분 0초가 된다. 한국 표준시를 기준으로 하면 1월 1일 또는 7월 1일의 오전 8시 59분 59초의 다음 8시 59분 60초 가산하면, 다음이 오전 9시 0분 0초가 된다.[2]

공전과 자전의 비율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 지구의 공전 시간과 자전 시간이 정수비(整數比)가 되는 것은 거의 드물다. 지구가 한 번 공전하는 동안 태양에 대한 자전은 365회 정도, 정확하게 말하자면 1년은 365.24219879일(1900년 초의 값)이 된다. 1년을 365일로 하면 모자라고 366일로 하면 남는 것이다. 그로 인해 4년에 1회씩 366일로 계산하는데, 이것이 윤년이다. 달은 지구의 둘레를 공전하는데 [[우주 공간에 대해서 27.3일에 한 바퀴씩 돈다. 이를 1항성월이라고 칭한다. 지구는 달을 데리고 태양의 둘레를 공전하기 때문에 지구에서 보면 만월과 다음의 만월 사이는 29.5일 정도가 소요된다. 이를 1삭망월이라고 부른다.[2]

시간의 측정

해시계

해시계(앙부 일구) 

해시계 또는 일구(日晷)는 태양의 일주 운동을 이용하여 시간을 알 수 있게 만든 장치다. 해 시계는 인간이 만든 가장 오래된 시계다. 원시시대부터 나무 그림자를 보고 시간을 측정하였고 중세 유럽에 기계식 시계가 출현, 보급되기 전까지는 널리 사용되었다. 해시계의 종류에는 수평식과 수직식으로 두 가지가 있다. 그림자의 길이를 재는 방법의 해시계는 그 지역의 시간만을 측정할 수 있는 한계가 있었으며 태양의 움직임이 복잡하게 변하기 때문에 유용성이 떨어지는 문제도 발생했다. 그리하여 막대기를 지구의 자전축과 평행이 되도록 기울이는 방법을 쓰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선 다이얼(Sun dial)의 시초이자 시계 역사의 시초가 되었다. 이에 대한 예로는 고대 이집트에서 오벨리스크그노몬으로 사용했는데, 지침(指針)은 지축에 평행하게 기울어지도록 하였다. 이러한 선 다이얼은 계절에 관계없이 같은 장소에 그림자의 위치가 일정한 곳에 오지만 그림자의 길이는 수시로 변했다.[6]

선 다이얼은 기원전 1500년 무렵에 이집트 해시계가 가장 오래된 것이지만 이것을 먼저 발명한 것은 바빌로니아인이었을 것으로 추측을 한다. 이후 그노몬은 기원전 6세기 초에 그리스에 소개되는 등 점차 동, 서 방향으로 전해지게 됐다. 하지만 밤이나 날씨가 좋지 않을 때는 사용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렇지만 17세기까지만 해도 기계식 시계보다 오히려 정확성을 보여주었다.[7]

물시계

물시계(자격루) 

해시계가 비교적 정확한 시간 측정 기구지만, 여전히 시간을 세분화하는 데에 서는 적합하지 않았다. 이러한 결점을 보완하여 물방울을 이용한 물시계 클랩시드라(clepsydra, 물 항아리)가 발명되었다. 시간을 일종의 강이나 흐름 같은 것으로 보는 원초적인 관념을 기반으로 액체(수은, 물)나 모래 같은 것이 흐르는 속도를 이용해서 시간을 재도록 유도하였다. 물시계를 처음 발명한 것은 칼데아 사람들이나 이집트 사람들인 것으로 생각한다. 물받이를 층층이 겹쳐 놓고 물이 가장 윗부분에 있는 물받이로부터 아랫부분에 위치한 물받이로 차례대로 흘러내리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잘못된 것으로 판명이 됐다. 물이 흐르는 속도 자체도 일정하지 않고 그릇의 수압이 떨어질수록 그 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물시계는 고대 문명에서 널리 사용되었는데, 그 예로는 기원전 100년 무렵에 아테네에서 공식 시간을 대중에게 가르쳐주고자 시장 앞에 물시계를 세워두기도 하였다. 아테네와 로마의 법정에서는 발언 시간을 규제하기 위해 물시계를 사용했었다.[2]

자격루(自擊漏)는 조선 세종 때의 물시계이며 자동으로 시간마다 종이 울리도록 한 국가 표준 시계이다. 1434년(세종 16) 왕명을 받아 장영실(蔣英實), 이천(李蕆), 김조(金銚) 등이 처음으로 물시계를 만들었는데 시(時), 경(更), 점(點)에 따라서 자동적으로 종, 북, 징을 쳐서 시보를 알리도록 되어 있다. 그 구조는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와 국조역상고(國朝曆象考)에 실려 있으며, 보루각(報漏閣)의 자격루와 [[흠경각[[(欽敬閣)의 자격루가 기록되어 있다.[2][8]

불시계

불시계 

1206년 아랍의 한 문헌에서는 촛불시계에 대해 묘사를 하고 있다. 초에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을 뚫어 공을 넣어 놓으면 초가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타들어 가면서 그 공이 떨어지게 된다. 초 하나가 타는데 열세 시간을 기준을 하였으며 떨어진 공은 작은 기계 장치를 움직여 타고 남은 심지를 잘라내게 되어있다.[2]

중국 사람들도 불을 이용하여 시간을 잘 쟀다. 그들은 미로 모양의 둥근 틀을 이용하였는데, 여기에 인화성 물질을 뿌려 놓고 도화선이 타들어 가는 원리를 이용하여 시간을 쟀다. 한쪽 끝에 불을 붙이면 실이 점점 타들어 가면서 가는 길목에 묶어 놨던 조약돌들을 떨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 불 시계의 가운데에는 주로 수(壽)나 복(福) 글자가 쓰여 있다.[2]

기계식 시계

기계식 시계 

기계식 시계는 크게 동력 공급 장치(메인 배럴), 동력 배분 장치(톱니바퀴기어), 동력 전달 장치(이스케이프먼트), 기어 회전 속도 조절 장치(밸런스포크), 시간 표시 장치(초침, 분침, 시침)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용두에 의해 메인 배럴 내부 메인 스프링에 동력이 저장되고 스프링에 저장된 동력에 의해서 메인 배럴이 회전하면서 밸런스휠과 헤어스프링이 조립된 품복을 회전시킨다. 이때 팔렛(pallet 혹은 레버 lever)이라는 부품을 이용하여 밸런스휠이 계속 돌아가도록 한다. 팔렛은 밸런스휠 중앙에 위치한 주얼핀을 밀어서 밸런스휠을 회전시킨다. 팔렛이 연속적으로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스케이프휠이라는 부품을 사용 해야 한다. 이스케이프휠의 돌기는 팔렛 양단에 달린 보석을 한쪽으로 밀어서 밸런스휠이 운동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스케이프휠과 팔렛의 상호작용으로 시계는 규칙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된다. 다음으로는 동력을 제어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다른 한쪽의 팔렛 주얼이 그 역할을 담당한다. 다른 팔렛 주얼은 롤러의 주얼핀이 돌아와 아래 팰럿 주얼을 풀어줄 때까지 동력을 정지시켜서 이스케이프휠을 잡아줌으로써 동력이 필요할 때에만 제공하도록 한다. 여기에 전달되는 동력을 배분하기 위해서 기어와 톱니바퀴를 사용하는데, 이 기어를 이용하여 초침, 분침, 시침이 돌아가도록 한다. 자세한 이해를 위해서 아래의 미국 해밀턴사가 제작한 기계식 작동 원리를 설명한 영상을 참고하면 된다.[2]

진자시계

진자시계 

1602년경 갈릴레오 갈릴레이진자의 진동 주기가 진폭으로부터 거의 독립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것을 진자의 등시성이라고 칭한다. 1656년에 네덜란드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크리스티안 하위헌스는 진자의 위와 같은 성질을 이용하여, 시계의 시간 조절기에 진자를 활용하였고 그전보다 정확하게 시간을 측정할 수 있게 됐다.[2]

수정시계

수정시계 

수정의 탄성 진동압전 효과를 이용한 진동자를 시간 표준으로 사용한 시계이다. 지름이 역 6.35센티인 수정 고리에서 10만 헤르츠의 진동수가 발생하면 진동수 분할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그 진동수를 감소 시켜 기계식 기어 장치를 통해 시계 문자판과 연결된 동기 전동기에 전달한다. 10만 헤르츠의 진동수를 한 번에 600만 : 1의 전기식, 기계식 조합 기어 감속 장치에 적용하면 시계의 초침은 변수를 제외하고 시계 관점에서 60초에 1회전 한다.[2]

원자시계

원자 손목시계 

원자의 진동수가 일정함을 이용하여 만들었고 초당 정해진 숫자로 진동한다는 점을 이용하여 수정시계의 오차를 보정한 시계다. 온도, 기압 등의 외부 영향을 거의 받지 않기 때문에 정확도가 매우 높다. 암모니아, 수소, 루비듐 등이 사용되나 그 중에서 국제원자시의 표준이 되는 세슘 원자로 만든 시계가 정확성이 제일 높다. 세슘-133 원자 핵이 9,192,631,770번 진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1초로 한다.[2][9]

전자시계

전자시계 

수정시계 또는 원자시계와 같이 전자의 진동을 사용하여 시간을 측정하는 시계다.[2]

핵시계

원자 주위를 도는 전자를 시계의 추로 사용하는 원자시계와 달리 원자핵의 회전하는 중성자를 시계 추로 사용하여 시간을 측정하는 시계이다.[2]

직선적 시간과 순환적 시간

원초적이고 원형적인 시간 개념에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시간을 돌이킬 수 없는 일직선으로 바라보고 다른 하나는 시간을 순환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2]

직선적 시간

오늘날 우리는 시간을 사건들이 일직선을 이룬 사슬 또는 수십억 년 전의 과거에서 시작되었고 무한히 먼 미래까지 연장되는 연속된 과정으로 생각한다. 현재 과학계에서도 이러한 직선적인 시간관이 우세한 위치에 있다. 서구에서 이미 예전부터 직선적인 시간관을 매우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고 물리학 분야에서 시간에 대한 이론과 관념의 발전은 이러한 경향을 더욱 가속했다. 주관적이고 인식론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면, 인간은 누구나 나이를 먹고 돌이킬 수 없는 주관적인 심리의 변화를 겪게 되므로 직선적인 시간 개념이 더욱 타당하다고 생각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2]

진화론

서구의 직선적인 시간관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것 중의 하나가 찰스 다윈진화론이다. 다윈에 의하면, 땅 위의 생명체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는 기계적이고 결국에는 우연에 의한 것일 뿐이라고 한다. 따라서 시간은 완전히 수학적인 개념의 하나가 된다.[2] 진화론의 논리는 오랜 시간 전에 동물의 세포와 식물의 세포는 동일한 원형의 성질을 띠었다. 최초의 유기체는 동물과 식물의 형태를 모두 가지고 있었지만, 환경에 의한 적응, 효율적인 생존 전략의 선택 등의 원리에 따라서 서로 다른 길로 진화해온 것이다. 식물 생활과 본능 생활 그리고 이성적인 생활, 이 세 가지 생활은 개체의 본성 차이에 따라서 유기체가 물질적 세계에 적응하고 자신의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와 정보를 획득하여 최적의 비율을 찾는 방향으로 분배되는 것이다.[2] 하나의 개체가 가장 효과적인 적응 양식을 선택하고 발전해 왔다고 해도 여전히 다른 적응 양식이 희미하게 그 속에 남아있는 것은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간에게도 이성적인 측면과 아울러 동물의 본능적 측면, 식물의 무감각적 측면이 여전히 남아있는 걸 알 수 있다. 이렇듯 우린 진화의 길을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 한 일이다. 인간이 식물의 무감각적 측면이나 동물의 본능적 측면을 주된 생존 전략으로 다시 선택하고 발전시키는 방법은 비효율적이고 무의미하다. 이러한 논의는 자연스럽게 시간을 어떤 직선적인 흐름으로 가정하게 되는 것이고 우연적인 자연 선택이 가능하고 객관적이고 기계적인 시간을 전제하는 것이다.[2]

순환적 시간

원시 사회에서 시간은 천체와 계절의 주기적인 순환을 관찰한 경험을 바탕으로 측정됐다. 대부분의 원시 문화에서 직선적인 시간관보다 순환적인 시간관이 우세한 것을 알 수 있다. 최초의 시간 측정 경험으로부터 기인한 것을 볼 수 있다. 순환적인 시간관은 끊임없이 돌아가는 오세아노스 강과 자기 꼬리를 물고 돌고 있는 12절기의 뱀으로 시간을 표상한 것에서 알 수 있다.[2]

성서에 나타나는 순환적 시간관

성서에 나타나는 순환적 시간은 신과 인간의 관계가 일정한 순서와 리듬에 따라 진행이 되고 반복되는 것을 뜻한다. 성서에서 신은 정의와 행복과 조화의 세계를 창조하신다. 그러나 인간이 저지르는 온갖 악한 죄악과 불의에 의해 평화로운 세상에 불협화음이 생긴다. 신은 죄악으로 율법을 어긴 인간을 심판하시고 인간은 자신의 죄악을 회개하며 인간 사회를 질서 있는 사회로 다시 되돌린다. 조화롭고 평화로운 신의 세계에서 인간이 타락하고 심판받고 다시 회개하고 복권하는 과정이 반복되는 것을, 성서에서의 순환적 시간의 관념이다. 카인아벨의 이야기, 노아의 홍수, 바벨탑, 에덴동산에서의 아담의 유혹 등 성서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은 순환적 흐름의 일부다. 대표적으로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에서 나타난 시간 순서를 다음과 같이 살펴볼 수 있다.

1. 카인은 동생에 대한 질투로 인해 동생을 죽임으로써 신이 주신 율법을 어기고 타락한다.
2. 카인은 심판에 회부된다.
3. 카인에게 형벌이 집행된다. 그가 계속 노력해도 그의 땅은 더는 열매를 맺지 않는다.
4. 하나님은 표시를 내리셔서 그에게 보호막을 씌우시고 카인은 복권된다.

성서에서 수백만 년이나 수십억 년의 기간과 같은 현대 지질학이나 천문학의 절대적 시간 척도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가 되는 것은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현상들의 질서와 리듬이 있고 조화로운 배음들이다. 그것들의 시간의 순환적 흐름을 규정하는 것이다.[2]

고대 그리스 창조 신화에 나타나는 순환적 시간관

고대 그리스의 창조 신화를 다룬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에서 순환적 시간의 개념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스의 창조신화에 의하면 시간은 땅의 여신인 가이아(Gaia)와 하늘의 신인 우라노스(Ouranos)가 같이 누운 이후에 시작되었다. 우라노스가이아의 남편이면서 아들이다. 우라노스는 어머니인 가이아와 에레보스(Erebus) 사이에서 태어났다. 에레보스와 가이아는 무질서한 상태 속에서 수많은 혼합된 특성들의 식별하기 어려운 어두운 심연인 혼돈(chaos)에서 태어났다. 우라노스는 앞으로 태어날 자식들이 자신의 자리를 차지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자식들을 다시 가이아의 자궁 속으로 밀어 넣는다. 가이아는 시샘이 많은 남편을 속이면서 비밀 병기를 만들어 이 상황을 헤쳐나가려 한다. 그녀는 아이들을 땅의 깊은 구덩이에 숨기고 커다란 낫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몰래 보여준다. 가이아가 숨긴 많은 아들 중 크로노스는 가이아가 만든 커다란 낫으로 아버지 우라노스를 거세한다. 우라노스를 죽인 크로노스는 자기 자식들을 없앴던 우라노스의 사악한 태도를 계승한다. 크로노스는 수많은 자식인, 그들을 삼켜 없앤다. 아버지가 아이들을 죽이는 악순환의 반복은 크로노스의 마지막 아들인 제우스가 크로노스를 처치함으로써 막을 내리게 된다. 그리스 신화에서 크로노스는 시간이 의인화된 것으로 표현되고 그의 이름은 그리스어로 시간, , 척도를 의미한다. 로마의 라틴 문법학자이자 철학자인 마크로비우스는 '하나의 고정된 척도로서의 시간은 하늘에서 일어나는 변화로부터 비롯된다. 시간은 하늘에서부터 시작되고 크로노스도 여기에서 탄생했다고 믿어진다. 바로 이 크로노스가 시간을 창조했다.'라고 말하였다.[2]

인도의 순환적 시간관

인도 사람들은 유가(yuga, 1,080,000년)라는 시간을 기본으로 우주가 정기적으로 소멸하고 다시 생성된다고 생각했다. 유가가 네 번 지날 때마다(인도에서 숫자 4는 완전 또는 완성을 의미한다.) 시간은 한 바퀴 돈 것으로 간주한다. 이렇게 한 바퀴 도는 것을 마하유가(mahayuga)라고 하며 마하유가는 무한히 되풀이된다. 마하 유가를 이루는 네 개의 유가의 의미는 아래를 참고하면 된다.

첫 번째 유가 : 번성, 즉 황금기
두 번째, 세 번째 유가 : 점점 쇠퇴하는 쇠락기
네 번째 유가 : 모든 것의 끝을 의미하는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암시

하나의 마하 유가는 12,000 신년(神年)으로 보통 세월의 단위로 4,320,000년 간 지속된다. 마하 유가가 수천번 지나가게되면 1 겁이 된다. 1 겁은 인도 신화에서 세상의 창조, 유지, 파괴를 담당하는 세 신 중 하나인 브라흐마에게는 하루를 의미한다. 마하유가가 일정한 리듬으로 끝없이 순환하는 시간으로부터 출생과 죽음이 끝없이 되풀이되는 윤회가 일어난다.[2]

각주

  1. 1.0 1.1 1.2 1.3 1.4 1.5 1.6 1.7 시간〉, 《나무위키》
  2. 2.00 2.01 2.02 2.03 2.04 2.05 2.06 2.07 2.08 2.09 2.10 2.11 2.12 2.13 2.14 2.15 2.16 2.17 2.18 2.19 2.20 2.21 2.22 2.23 2.24 2.25 2.26 2.27 2.28 2.29 2.30 2.31 2.32 2.33 2.34 2.35 2.36 2.37 2.38 2.39 2.40 2.41 2.42 2.43 2.44 2.45 시간〉, 《위키백과》
  3. 초 (시간)〉, 《위키백과》
  4. 4.0 4.1 4.2 4.3 4.4 4.5 최준석, 〈시간이란 무엇일까?〉, 《최준석 과학 네이버 블로그》, 2018-01-26
  5. 시각〉, 《위키백과》
  6. 해시계〉, 《위키백과》
  7. 해시계〉, 《위키백과》
  8. 이은성, 〈자격루(自擊漏)〉,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95
  9. 원자 시계〉, 《위키백과》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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