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뗀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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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s1208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5월 9일 (목) 10:3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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뗀석기(chipped stone implement, 打製石器). 사진출처-우리역사넷
경기도 연천군 전곡면 전곡리에 있는 전기구석기시대의 유적. 주먹도끼. 사적 제268호.

뗀석기(chipped stone implement, 打製石器)란 돌을 깨서 만든 석기구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이다. 타제석기(打製石器)라고도 한다. 구석기 시대(약 200만년 ~ 1만년 전)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만들었으며, 보통 나무를 자르거나 동물을 사냥할 때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종류는 다양하며, 대형석기와 소형석기로 나뉘며, 돌망치나 뿔망치로 돌에 직접 타격을 가하여 만들거나, 뿔·뼈·나무·긴 자갈 등을 쐐기처럼 써서, 간접적으로 타격을 가하여 만든다. 또한 뿔·뼈로 만든 날카로운 가압기를 써서 돌날에 대고 눌러 격지를 떼어내는 방법 등이 있는데 만드는 기술이 전기·중기·후기에 따라 변화한다.

대형석기에는 주먹도끼·찍개·안팎날찍개·주먹괭이·자르개·다각면원구(多角面圓球) 등이 있는데, 주로 전기 구석기 시대에 많이 만들어 썼다. 중기·후기에는 그 비율이 줄어들었으며 한국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소형석기는 격지석기와 돌날석기로 나뉘는데, 격지석기로는 긁개·첨기(尖器)·홈날·톱니석기·유경석기·르발루아석기 등이 있다. 돌날석기는 끝긁개·밀개·송곳·조각칼·복합석기·첨두형돌날·기하문형석기(幾何紋形石器)와 다듬은 돌날 등이다. 격지석기들은 석기·후기 구석기시대에도 만들어졌지만 주로 중기에 주된 뗀석기로 썼으며, 돌날석기는 주로 후기에 만들어졌다.

개요[편집]

돌을 깨거나 떼어 만든 석기를 뗀석기라고 한다. 인류는 처음에 나무나 동물의 뼈를 도구로 이용하다가 차츰 돌을 깨뜨려 뗀석기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이들이 사용한 뗀석기에는 찍개와 주먹도끼, 긁개, 찌르개 등이 있다.

처음에 사용한 뗀석기는 자갈돌을 내리쳐서 한쪽 끝을 떼어 낸 찍개와 미리 정확한 의도를 가지고 용도에 맞게 다듬은 주먹도끼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뗀석기는 점차 발전하여 구석기 시대 후기에는 몸돌에서 떼어 낸 작고 날카로운 조각으로 긁개, 찌르개 등의 정교한 석기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우리나라의 뗀석기는 전기 구석기 시대부터 후기 구석기 시대 말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돌연모가 폭넓게 사용되었으며, 찍개와 주먹도끼가 모두 발굴되어 세계의 보편적인 구석기문화를 향유하였음이 밝혀졌다. 한반도에 살았던 구석기인들은 청원 두루봉 동굴, 제천 점말 동굴, 단양 금굴 유적에서 확인되듯이, 뗀석기로 주위에 있던 짐승들을 사냥하여 잡은 짐승의 뼈를 깨뜨려 뼈 연모를 만들기도 하였다.

뗀석기는 흔히 인류 최초의 도구라 일컫기도 하지만 사실 나무 막대기 같은 유기물 도구가 앞섰을 것이다. 뗀석기는 자연적으로 거의 분해되지 않기에 가장 흔한 선사시대 유물로 중요한 고고학 자료가 되었다.

뗀석기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간석기가 있다. 그러나 이 두 개념은 사실 상호배타적이라 말할 수 없다. 많은 간석기를 만들기 위해선 먼저 돌을 떼어내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제작과 사용의 긴 과정에서 연속적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구석기시대에는 뗀석기, 신석기시대에는 간석기만을 만들고 썼으리란 생각도 잘못이다. 뗀석기가 더 일찍 등장해 진화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나라 후기 구석기시대의 여러 유적에서 간석기가 나온다.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유적에서도 많은 뗀석기가 발굴되고 있다.

뗀석기 제작 기법[편집]

몸돌석기 격지석기.jpg
직접떼기와 간접떼기.jpg
눌러떼기와 던져떼기.jpg

뗀석기는 원석에 타격을 가해 쓸모없는 격지[剝片]를 떼어낸 다음 원석(原石)을 자기가 원하는 모양으로 만든 몸돌석기[石核石器]와, 타격으로 떨어져 나간 격지를 손질해 만든 격지석기로 나눌 수 있다.

석기를 제작하는 데에는 원석에 타격을 가하는 방법에 따라 직접떼기와 간접떼기로 나뉜다. 직접떼기는 원석에 직접 타격을 가하는 방법으로, 망치를 돌로 쓰느냐 아니냐에 따라 하드해머(hard hammer)기법과 소프트해머(soft hammer)기법으로 나뉜다. 전자는 망치로서 돌을 이용하는 기법이며, 후자는 원석보다 경도가 약한 나무나 뿔, 뼈 등을 망치로 이용하는 기법이다. 소프트해머기법은 형태를 보다 원하는 꼴로 다듬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으며, 전기 구석기시대 말부터 보편화되었다. 간접떼기는 원석에 직접 타격을 가하지 않고 다른 물체를 원석에 대고 타격하는 것으로서, 원하는 형태의 격지를 보다 용이하게 얻을 수 있다.

이 밖에도 돌에 타격을 가하지 않고 다른 물체를 댄 후 눌러서 격지를 얻는 눌러떼기 기법도 넓은 의미에서 뗀석기 제작방법이라 할 수 있으며, 그 밖에 돌을 단단한 물체에 던져서 깨뜨리는 던져떼기방법도 있다. 뗀석기는 이러한 여러 기술이 발전하며 보다 정제된 형태로 만들어지게 되었는데, 석기 발전의 역사는 주어진 석재를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향으로 발전하였다.

인류 최초의 석기공작인 올두바이유적에서는 주로 하드해머를 통한 직접떼기로 석기를 제작하였으나, 호모 에렉투스의 단계에서는 소프트해머를 이용한 제작기법과 르발루아기법(Levallois technique)이라고 하는 기술이 등장하여 도구 제작상의 커다란 발전이 있었다. 르발루아기법은 소위 ‘준비된 몸돌(prepared core)’을 이용한 석기제작 기술이다. 이전까지의 석기 제작에서는 원석의 형태와 크기에 따라 얻을 수 있는 날의 길이와 형태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던 데 비해, 준비된 몸돌기법은 본격적 석기제작에 앞서 몸돌을 미리 특정 형태로 제작한 다음 여기에서 일정한 형태의 격지를 계속 떼어내, 이것을 가공하여 원하는 석기를 만드는 방법이다. 몇 단계의 연속적인 도구 제작과정을 통해 정형화된 형태의 도구를 만들 수 있게 한 이 방법은 아마도 인류 최초의 대량생산기술이라고 부를 만한 중요한 기술사상의 전기를 가져왔다.

눌러떼기는 현생인류가 등장한 이후 널리 보급되었다. 직접떼기·간접떼기가 원석에 순간적인 타격(打擊)을 가하여 격지를 얻기 때문에 격지를 일정한 크기 이하로는 얻을 수 없지만, 눌러떼기는 극히 제한된 면적에 서서히 힘을 가함으로써 아주 작은 크기의 격지도 원하는 형태대로 떼낼 수 있는 방법으로, 보다 작고 정교하며 전문적인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석기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신석기시대 이후에도 제작이 손쉬운 뗀석기는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신석기시대 돌도끼는 거의 전부가 완전뗀석기거나 또는 부분을 간 뗀석기이며, 청동기시대에도 뗀석기는 각종 목적에 널리 사용되었다.

뗀석기의 종류[편집]

만드는 방법이 다양한 만큼 뗀석기의 종류도 많다. 먼저 몸돌과 격지가 가장 기본이며, 한쪽이나 양쪽에 돌을 두드려 생긴 우둘투둘한 흔적이 있는 돌망치[망칫돌, hammerstone] 역시 뗀석기의 일종이다. 사실 가장 많은 유물은 뗀석기 도구를 만드는 과정에서 떨어져 나온 부산물이다.

특히 몸돌을 준비하고, 도구를 제작하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부산물이 나오며, 이 역시 중요한 고고학 자료이다.

몸돌과 격지, 도구는 크기에 따라서, 형태에 따라서, 그리고 사용된 기술에 따라서 여러 종류가 있다.

몸돌은 준비하지 않고, 가능한 대로 격지를 떼어낸 흔적을 지닌 막몸돌(casual core)과 타면을 준비한 몸돌(prepared core)로 나눌 수 있다. 대표적인 준비된 몸돌은 돌날몸돌인데, 사실 몇몇 사례에서는 특별한 준비 과정 없이도 돌날을 떼어낸 흔적이 남아 있다.

뗀석기 도구의 분류는 관행적으로 크기에 따라 10㎝를 기준으로 대형과 소형으로 나눈다. 대형 석기의 종류 가운데는 주먹도끼(handaxe)를 비롯해 찍개(chopper), 몸돌, 몸돌긁개, 가로날도끼(cleaver), 뾰족끝도끼(pick), 다면구(polyhedron) 같은 것이 있다.

한국에서는 대체로 규암 자갈돌을 떼어내 만든 것이 많다. 주먹도끼는 반반한 자갈돌을 골라 직접 주변을 돌아가면서 격지를 떼어내 날카로운 날을 세운 것이 있지만, 먼저 커다란 격지를 떼어낸 다음, 이 격지를 소재로 다시 주변에 작은 격지를 떼어내면서 손질한 것도 있다.

소형 석기의 대부분은 격지를 소재로 잔손질한 것이다. 격지의 한쪽에 잔손질한 긁개(scraper)와 홈날(notch), 톱니날(denticulate) 같은 것에서 격지나 돌날의 한쪽 끝을 정교하게 잔손질한 밀개(endscraper), 끝을 사선으로 떼어낸 새기개(burin), 뾰족하게 만든 뚜르개(awl, borer)와 찌르개(point) 등이 있다.

그런데 사실 여러 유물은 재사용, 재가공의 결과일 수도 있다. 석기 기술은 감쇄 과정(reduction process)이기 때문에 제작과 사용의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작아진다. 얼마든지 한 번 쓴 도구를 버리지 않고 다시 날을 잔손질해 다른 용도로 쓸 수도 있다.

창끝에 찌르개를 매달아 사냥 도구로 쓰다가 다 쓰거나 깨진 유물을 그냥 버리지 않고 사냥감을 해체하는 데 유용하게 쓸 수 있다. 그러니 석기는 이런 역동적인 인간 행위와 감쇄 과정의 일부이거나 한 단계일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뗀석기와 인류문화의 진화[편집]

뗀석기의 등장과 변화는 선사시대 인류문화를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현재 가장 오래된 석기는 케냐의 롬크위(Lomekwi)에서 확인되었는데, 약 330만 년 전의 유적이다. 기존에 알려졌던 에티오피아의 고나(Gona) 유물군보다 무려 70만 년이나 이르다.

이런 초기 유물은 큼직한 자갈돌을 깨뜨려 만든 몸돌과 격지가 중심인데, 유명한 초기 인류 유적인 탄자니아의 올두바이 고지(Olduvai Gorge) 유적의 이름을 따서 올도완(Oldowan) 전통이라 부른다.

아프리카에서는 약 170만 년 전부터 양면에 격지를 떼어 내 길쭉하게 자르는 날을 세운 주먹도끼(handaxe)와 가로날도끼(cleaver)가 중심인 아슐리안(Acheulean) 전통이 시작되었다.

아슐리안 전통의 존속 기간은 150만 년 가까울 정도로 오랫동안 이어졌다. 약 70만 년 전부터 시작하는 후기 아슐리안 전통에서 주먹도끼는 더욱 얇고 좌우 대칭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져 석기 기술이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1970년대 말 동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연천 전곡리에서 주먹도끼가 발견되었고, 이후 여러 유적에서 수습되었다. 주먹도끼는 중국에서도 널리 확인되는데, 광시좡족자치구 보써[百色] 분지에서는 약 80만 년 전까지 올라가는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다.

아프리카와 유럽에서는 약 25~30만 년 전부터 주먹도끼의 빈도가 줄어들거나 사라지고 격지를 소재로 한 여러 잔손질 도구가 중심인 중기 구석기시대로 접어든다. 이때 몸돌을 마치 거북이 등처럼 돌아가며 먼저 떼어낸 다음 날카로운 격지를 떼어내는, 이른바 르발루아(Levallois) 기법이 유행하였다. 이런 방식으로 격지와 찌르개, 그리고 길이가 너비보다 두 배 이상 큰 돌날도 만들었다.

그러나 이런 르발루아 기법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주먹도끼와 찍개, 다면구를 중심으로 하는 석기군이 약 4만 년 전까지 지속하였다.

의의 및 평가[편집]

석기 기술의 진화는 현생인류의 확산과 더불어 꽃을 피운 후기 구석기시대 뗀석기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돌날이 체계적으로 제작되었으며, 일반 돌날보다 훨씬 작은 세석기가 널리 만들어지고 쓰였다.

돌날은 다시 잔손질해서 밀개나 새기개, 뚜르개로 썼다. 이런 도구는 잘 손질해 나무나 뿔, 뼈를 손잡이로 삼아 더 정교하게 만들어 가죽을 다듬고 구멍을 뚫고, 사냥 도구를 만들었다.

작은 돌날은 나무나 뼈, 뿔에 홈을 파고 박아 넣고 아교로 붙여 날카로운 칼이나 뾰족한 사냥 도구로 만들었다. 이처럼 구석기시대 석기 기술은 오랫동안 매우 느리지만 꾸준히 진화했으며, 그 발전의 속도도 후기 구석기시대에 이르러 더 빨라졌다.

한국의 후기 구석기시대 뗀석기 기술의 특징은 슴베찌르개와 돌날로 요약할 수 있다. 이른 구석기시대에는 거의 쓰이지 않던 규질 응회암이나 셰일 등 정질의 암석을 소재로 다듬어 몸돌을 준비한 다음 길쭉한 돌날을 만들고 이 돌날을 잔손질해 여러 도구를 만든 것이다. 이 가운데 슴베찌르개는 돌날이나 끝이 날카로운 격지를 잔손질해 슴베를 만들어 나무에 끼워 쓰는 창의 일부였던 것으로 보인다.

슴베찌르개는 이후 등장한 세석기와 오랫동안 후기 구석기시대 석기군의 중요한 구성 성분이었다.

구석기시대가 끝날 무렵 찌르개는 매우 작아지고, 양면을 정교하게 잔손질한 유물이 나타난다. 이렇게 뗀석기 기술의 발달은 화살촉의 등장으로 이어졌으며, 청동기시대까지 돌화살촉[석촉]은 널리 쓰였다. 제주 고산리에서는 뗀화살촉[타제석촉]이 1,000점 넘게 수습되었다.

후기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에는 석기의 날 부분과 같은 일정한 부분만을 갈아서 만든 유물이 적지 않다. 돌도끼나 돌낫, 돌칼, 돌화살촉 같은 유물 중 일부가 대표적이다. 신석기시대부터 전면을 갈아 만든 간석기가 등장하였으며, 청동기시대에 들어서면서 대부분 석기가 전면을 갈아서 만든 것이다. 그럼에도 날카로운 날을 가진 격지와 뗀석기가 일상생활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계속하였다.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 뗀석기〉, 《위키백과》
  • 뗀석기〉, 《티칭백과》
  • 뗀석기〉, 《두산백과》
  • 뗀석기〉,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유용한 교육정보, 〈뗀석기〉, 《네이버 블로그》, 2015-04-28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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