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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과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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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과학연구소(國防科學硏究所, Agency for Defense Development, ADD)
국방과학연구소(國防科學硏究所, Agency for Defense Development, ADD)

국방과학연구소(國防科學硏究所, Agency for Defense Development, ADD)는 대한민국의 국방력 강화와 자주국방의 실현에 기여토록 국방과학연구소법에 의하여 설립된 특수법인으로 대한민국 방위사업청 산하의 기타공공기관이다. 첨단무기 체계 개발 및 국방 과학기술 조사, 분석, 연구를 담당한다. 일반적으로 대한민국에서 신무기의 개발은 국방과학연구소가, 생산은 방위 산업체가 담당한다. 본부는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있으며, 경상남도 창원시에 분소가 위치하고 있다.

개요[편집]

대한민국 정부 및 국방과학연구소는 정책적으로 국방과학연구소가 핵심전력체계/핵심기술개발에 중점을 두고 업체가 기피하는 고위험/비경제성 분야와 육해공군의 주력 플랫폼 무기들의 무인화/첨단화분야, 미래를 대비한 신특수무기 분야에 연구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무기체계개발 및 핵심기술개발에 대한 업체주관 및 산학연주관 사업과제를 꾸준히 확대하고, 업체 및 산학연에 대한 국방과학연구소의 기술이전 및 전수 활동이 강화되고 있다. 1979년에는 미국대사와 8군사령관이 외무부와 국방부를 방문하는 등 수차례 서신 등 여러 방법으로 국방과학연구소 주도로 개발 중인 유도탄 개발 배치 계획은 동북아 평화를 파괴한다고 하였다. 1982년에는 전두환 정권이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국방과학연구소의 유도탄 개발 팀을 해체하기도 했다. 하지만 1983년 9월 1일 대한항공기 격추사건 이후에 드러난 한국의 군사력이 종이 호랑이 수준이라는 것에 놀라 유도탄을 다시 개발하기로 했다. 이리하여 몇몇 유도탄 개발에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 시절에 계획한 작전에 중요한 첩보 수집 능력을 향상하기 위한 기술 연구개발은 부활시키지 않았다. 2522명의 인력과 8000여억 원(2008년)의 예산을 가진 대형 국책연구기관으로서, 연구개발 인력이 82%를 차지하며, 박사 학위 소지자는 31%, 석사 이상 학위 소지자는 94%이다.[1]

역사[편집]

국방과학연구소는 과학기술로써 자주국방의 사명을 다하고자 1970년 8월 6일 창설되었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중반 이후 북한의 군사적 위협 증대와 미국의 대아시아정책의 변화로 자주국방정책을 추구하게 되었다. 1970년 초 박정희 대통령은 국방부 연두순시에서 방위산업을 전담할 부서설치를 지시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국방과학연구소가 창설되었다. 창설 당시 연구소는 정부기관 성격을 가지되 예산회계업무상 불필요한 제약을 배제하고자 특수법인체로 창설되었다. 연구소는 1971년 말 방위산업을 촉진하고 예비군 무장화를 조기에 달성하기 위한 긴급병기 개발(번개사업) 착수를 기점으로 소화기, 발칸포, 로켓, 탄약 등 기본적인 무기체계와 장비, 물자 등의 개발능력과 기술을 확보하였다. 1972년 11월 서울 홍릉에 새로운 신축 청사를 마련하였으며, 1974년 2월에는 유도탄 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항공공업 육성계획에 따라 대전기계창을, 1976년 5월에는 해군 장비개발을 위한 진행기계창을 설치하였다. 연구소는 1980년 9월 2일부로 종전의 지역개념 조직체계를 무기체계별 임무개념으로 전환하여 5개 사업단, 즉 지상병기(서울), 해상병기(진해), 항공기 및 유도무기(대전), 통신전자(대전), 화공기재(대전)사업단으로 조정하고, 시험평가단(안흥)과 더불어 6개의 단으로 편성하였다. 그리고 1983년 1월 연구소 본부를 서울 홍릉에서 대전으로 이동하였다. 이후 1995년 5월 창원 기동시험장, 진해 해상시험장을 건설하고 1998년 민군겸용기술센터를 설립했으며, 2008년 9월 해미 항공시험장을 건설·운용 중이다. 이러한 변화 과정에서 부설 기관이었던 국방관리연구소(현 국방연구원)가 1987년 3월에, 국방품질관리소(현 국방기술품질원)가 2006년 2월 에 각각 국방과학연구소에서 분리되었다.

연혁[편집]

  • 1970년 08월 : 국방과학연구소 창설(서울) 대통령령제5267호, 법률제225호(170년 12월 31일)에 따라 특별법에 의한 특수법인으로 출범
  • 1974년 02월: 항공사업본부 신설(대전)
  • 1976년 05월: 해상/수중사업본부 신설(진해)
  • 1977년 10월: 시험평가단 신설(안흥)
  • 1981년 07월: 부설 국방품질검사소 설립(서울)
  • 1983년 01월: 연구소 본부 대전 이전
  • 1995년 05월: 기동시험장(창원), 해상시험장(진해) 건설
  • 1999년 01월: 국방정보체계연구소 통합
  • 2006년 01월: 부설 국방품질관리소 분리 독립(국방기술품질원)
  • 2014년 01월: 민군협력진흥원, 국방고등기술원 신설
  • 2014년 05월: 부설 방위산업기술지원센터 설립
  • 2015년 03월: 삼척연구센터 준공(삼척)
  • 2016년 12월: 서이말 해상시험소 준공(거제)
  • 2019년 04월: 부설 지상기술연구원(5본부), 해양기술연구원(6본부), 항공기술연구원(7본부)으로 조직개편
  • 2020년 04월: 안전보안센터 설립(前 비상보안안전실)

주요 개발품[편집]

  • K-2차기전차(흑표)
  • K-9자주포 참여기업: 삼성중공업
  • 지대지 미사일 현무 - 파생형 천룡 순항 미사일
  • 함대함 미사일 해성
  • KA-1 전선통제기/경공격기(KT-1 기본훈련기/KO-1 전선통제기)
  • 어뢰시스템: 청상어 경어뢰, 백상어 중어뢰, 흑상어 어뢰
  • 대잠 미사일(ASROC): 홍상어 미사일
  • 전투기 외장형 전자방해장비 'ALQ-200K'
  • 포탄용 텅스텐 관통자 소재
  • 공군기본훈련기 KT-1 개발자 삼산 외 000명: 참여기업 대우중공업(주)
  • 30미리대공자주화기: 비호 참여기업 대우중공업(주)
  • K200 장갑차: 유엔 평화유지군의 무장으로 유럽에서 맹활약하였다. 참여기업: 대우중공업(주)
  • 전장감시 장비
  • 전투식량: 무곰 등
  • 전투기용 전지: 참여기업 (주)로케트전기

현황[편집]

1970년대 국내 산업기반이 전무한 시절에 자주국방의 실현을 위해 소총, 화포, 지대지미사일 등을 개발하여 국내 방위산업과 국가기술발전에 크게 이바지 하였으며, 1980년대에는 유도무기와 전차, 장갑차 및 고성능 잠수정 등을 개발하여 육·해·공군의 전력증강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였다. 1990년대에는 신형 155미리 자주포, 중어뢰, 기본훈련기(KT-1) 등 고도정밀무기를 개발하였으며, 2000년대에는 항공기 및 함정 탑재 전자전 장비와 함대함유도탄을 비롯한 세계수준의 복합무기체계 독자개발 능력을 갖추는 등 국방 및 국가 과학기술 발전을 선도하고 있다.[2]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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