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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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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先史時代, prehistory)는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기 이전의, 고고학적 시대를 가리킨다. 어휘 '선사', '프리히스토리'를 풀어 보면 '역사 이전', '역사에 적혀 있지 않음'이라는 뜻으로, 곧 '선사 시대'는 '인간 생활에 대한 문자 기록이 없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더 정확한 개념을 사용하기 위해 '문자 사용 이전 시대', '문해 이전 시대' 등의 용어도 사용된다. 따라서 이 시대는 문자 기록 등이 전무하고 오직 당대 사람들이 남긴 유적과 유물을 거쳐 당시의 생활을 유추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기준[편집]

선사시대의 시작 시기는 인류문화사의 시작 시기를 정하는 것과 같은 문제이다. 대개 인간이 유인원사이에서 따로 분류되기 시작한 것을 그 시작으로 본다. 과거에는 기원전 300만 년~기원전 260만 년 경을 그 기준으로 정했으나, 2002년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가 발견되면서 인류와 유인원의 공통 조상의 연대가 더 올라갔다. 이건 무려 기원전 700만 년경의 화석이었다.

선사시대가 끝나는 것은 문자의 발명인데, 전 세계적으로 문자 사용을 시작한 시기가 지역마다 다르므로 선사 시대의 종료 시점도 각자 다르다. 최초의 문자는 엄밀히 말해 기원전 5300년경에 제일 처음으로 등장했지만, 초기의 문자는 상징적이고 주술적인 용도로 쓰여 이를 통해 인간 생활을 파악하기 어렵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제일 이른 것은 기원전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최초로 쐐기문자 계열의 기록이 출현한 것으로 본다. 반대로 가장 늦은 케이스로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은 1788년 유럽인과 접촉하기 전까지 문자 기록이 존재하지 않았다.

시대 구분[편집]

일반적으로 도구를 기준으로 삼아 구석기-신석기-청동기-철기 시대로 나눴으나, 이후 세계 선사 시대의 역사를 다양하게 연구하면서, 이는 보편적인 구별 기준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다.

구리의 사용과 청동의 사용이 시작된 시간 간격이 때로 천 년이 넘을 정도로 상당함이 드러나면서 영국 학자들이 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로 전환되는 시대를 가리켜 '동기 시대'(Chalcolithic age/Copper Age)라는 시대 구분법을 제안했으나, 아직 석기-청동기-철기 3시대 구분법과 별개의 독립된 시대로 공인받지는 못하고 있다.

이러한 구분법에서는 '주된 도구'가 뭐냐에 따라서 혼동의 여지가 있다. 특히 청동기 시대에는 청동의 희귀성으로 인해 대부분의 도구는 여전히 돌로 만들어졌다. 일례로 피라미드를 세우고 엄청난 문화를 발전시켰던 이집트인들은 석기만으로 생활했고, 아메리카의 아메리카 원주민들도 거의 석기만을 사용했다. 그러나 기술적인 면에서 초기부터 구리를 사용했던 이집트와 역시 구리 제련술을 개발한 잉카 제국과 마야 문명은 엄밀히 따져보면 청동기 시대에 속한다.

문자가 일찍 등장/도래한 문화권에서는 청동기시대부터 역사 시대가 시작되며, 대부분의 경우 철기시대에 역사 시대를 맞는다. 한편 다른 대륙과의 문명 접촉이 늦었던 아메리카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서는 야금술의 등장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이러한 식으로 다루기 어렵다.

문자의 이전 시대를 가리키기 때문에 의미 그대로 따지면 고생대와 중생대 같은 지질 시대도 들어갈 것 같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있는데, 선사 시대는 인간, 즉 호모 사피엔스 종이 등장한 시점부터를 가리키므로 포함되지 않는다. 다만 영어에서 Prehistoric age라고 하는 경우에는 문맥에 따라 들어갈 수도 있다.

선사시대 종족들[편집]

선사 시대의 종족들은 크게 유목민계, 정착민계, 수렵채집민계로 나눌 수 있다. 정착민계는 정착하여 조와 피, 기장, 보리, 이후 밀과 쌀을 제배하는 민족으로, 소위 말하는 인류의 4대 문명 발상지를 바로 이들이 만들었다. 단, 현재에는 독자적으로 문명을 창조하는 인류 문명의 발상지가 그 외에도 여러 곳이 존재하여 4대 문명설은 폐기되었다. 이들은 농경에 종사하여 처음으로 잉여 식량을 생산하고 비축하는 데 성공했으나, 수렵 채집에서 얻는 다양한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하여 평균적인 영양 상태가 오히려 악화되는 경우가 많았다.

유목민계는 좋은 초원을 돌아다니며 방목 등을 거쳐 발달한 민족이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유목민 계열 민족은 지금도 존재하는 베두인튀르크인유대인들과 몽골인들이 있다. 수렵채집민계는 짐승을 사냥하고 과일과 곤충, 초본류를 채집하여 살아갔고, 사실 인류가 등장할 때부터 원래 생활했던 방식이었다. 수렵채집민 계열은 종종 식량 공급이 안정적이지 못했지만, 이들은 다양한 영양분 섭취를 통해 평균 키가 160에 불과한 농경민에 비해 큰 키인 이미 평균 키 170을 찍었다고 한다. 이것도 지금 기준으론 평범하거나 작지만 그 시대치곤 거인이다. 대신 이들은 부양할만한 인구수가 정착민과는 비교하지 못할 만큼 적었다. 보통 수렵채집민계와 유목민계가 모여 유라시아의 대다수 기마 유목 민족을 만들었으리라고 여긴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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