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
공산주의(共産主義, Communism)는 생산수단의 공공 소유에 기반을 둔 경제·사회·정치 공동체 형성에 관한 사상 또는 이러한 사회 형성을 목표로 삼는 형식적·실질적 정치 운동에 관한 사상이다.[1]
목차
개요[편집]
공산주의는 사적 소유의 철폐와 생산수단의 공유화 등을 통해 노동자들의 자가해방을 실현해 마침내 국가와 지배와 피지배를 나누는 사회적 계급이 소멸한 사회를 추구하는 사상을 말한다.
공산주의는 단순한 경제 사상이 아니다. 경제 분야에 발을 많이 들이고 있을 뿐, 정치적, 군사적, 사회적, 체제적, 인문학적, 산업적 분야 전 방위에 걸쳐 시각을 달리하는 정치·사회·경제사상이며 사회관념에 가깝다.
공산주의는 모든 이들에게 평등하게 부를 배분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일부 혹은 다수는 오히려 이 개념을 거부했다. <고타강령> 비판에서 이들은 모든 이들이 필요로 하는 양이 다른데 어떻게 평등하게 분배하느냐고 비판했으며 진짜로 필요로 하는 양을 정하는 사회는 국가나 자본주의나 전위당이 정하는 것이 아닌 노동자 스스로가 정할 수 있는 공산주의 사회 뿐이라고 주장했다.
공산주의는 기본적으로 누군가가 누군가를 지배하는 형태로 나타나는 사회적 계급의 소멸을 주장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역시 지배계급이 프롤레타리아고 피지배계급이 부르주아인 과도기적 체제라서 소멸의 대상이며 국가가 있는 한 계급은 존재할 수 밖에 없기에 국가와 계급은 같이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정말 가루가 되도록 국가가 얼마나 억압적인 체제인지 깠으며 최종적으로는 국가를 청동기 등이 모셔져있는 고대 박물관에 박아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1]
공산주의는 최종적으로 국가의 소멸을 주장한다. 그렇기에 공산주의 국가는 이론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2] 현실의 공산주의 국가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특정한 계급의 독재가 유지되는[3] 사회주의 국가이지 공산주의 국가가 아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관료와 끊임없이 투쟁하고 전위당은 노동자들을 지원하며 스스로 역사의 뒤안길로 소멸당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도와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점진적인 국가의 소멸 대신 국가의 철폐를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대표적인 이들이 바로 자유의지주의적 마르크스주의에 속하는 평의회 공산주의자,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 좌파공산주의자들이다. 자유의지주의적 성향의 공산주의자들은 국가철폐를 주장했으며 "국가는 절대 스스로 소멸당하지 않고 오히려 노동자들을 억압한다"[4] 라고 주장했다. 그렇기에 노동자들은 "국가를 세우는 것이 아닌 철폐와 사회 조직 자체를 재개편해야한다" 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반대로 권위주의적 성향의 공산주의자[5]들은 "국가가 세워지고 노동자들을 충분히 문명인으로 발전시켜야 공산주의 사회가 가능하며 그렇지 않다면, 결국 또다시 자본주의 체제 성향을 가진 봉건반동분자들에 의해 천민자본주의가 부활하고 말 것" 이라며 비판하였다.[2]
주요 특징[편집]
- 생산수단의 공동 소유 : 생산수단을 공동으로 소유한다.
- 이윤의 폐지 : 생산 활동에서 창출된 이윤은 존재하지 않는다.
- 노동의 강제성 : 모든 사람이 노동에 참여해야 한다.
- 개인의 소유권의 부정 : 개인은 소유권을 가질 수 없다.
공산주의는 먼 과거에 경제적 평등과 사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이상적인 경제체제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효율성 저하, 혁신의 저해, 개인의 자유 침해 등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어 오늘날 공산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거의 실현되지 않고 있다.
장점[편집]
- 계급 없는 사회를 통해 경제적 평등을 실현할 수 있다.
- 사회의 공공복리를 위해 모든 사람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단점[편집]
- 시장의 자유로운 경쟁이 완전히 제한되어 생산성과 효율성이 떨어진다.
-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이 완전히 제한되어 기술 혁신이 저해되고 있다.
-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과 삶의 방식이 제한된다.[3]
주요 사상[편집]
마르크스주의[편집]
마르크스주의는 프랑스 혁명과 산업혁명의 여파가 유럽의 정치와 사회에 격심한 파동을 일으킨 격동의 시대 산물이었다. 프랑스혁명은 자유·평등·박애(Liberté, Égalité, Fraternité)의 3대 이념을 목표로 내세운 민주주의혁명으로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 프랑스 혁명은 봉건적 전제군주제를 전복하고 시민적 자유와 인권을 천명하는 데는 일단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천명한 자유와 인권은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제도화되지 못하고, 우여곡절을 거친 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제정으로 다시 후퇴해버리고 말았다. 더욱이 평등의 이념은 법률 앞의 평등에 그쳤을 뿐 사회의 실질적 평등을 실현하지 못하였으며, 실현할 수 있는 조건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프랑스 혁명은 재산권의 신성을 선언한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으로 규정되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은 서유럽 국민들의 의식과 양심 속에 인간평등의 관념을 심어 놓았으며 그 후에 일어난 각종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 운동에 정신적 기반을 제공하였다.
프랑수아노엘 바뵈프, 오귀스트 블랑키, 빌헬름 바이틀링 등 혁명적 공산주의자와 클로드 앙리 생시몽, 샤를 푸리에, 로버트 오언 등 비폭력적인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은 모두 프랑스 혁명의 평등 사상의 영향을 크게 받은 사람들이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도 프랑스 혁명의 자유와 평등이념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는데, 자기들의 조국 독일에 비하면 프랑스는 사상적으로 멀리 앞선 선진국이었다. 그리하여 마르크스는 반봉건적 절대주의국가인 독일에서 프랑스식 민주혁명을 수행하는 것을 실천적 과제로 삼고 있었다.
그러나 부르주아지(Bourgeoisie, 자본가 계급)가 취약하고 무력하였던 독일의 상황에서, 부르주아지가 혁명의 주체는 될 수 없다고 판단하고 그 대신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 근대 노동자 계급)를 혁명의 주체로 간주하였다. 마르크스는 독일의 해방은 단순한 정치적 해방(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만으로는 불충분하며, 인간적 해방만이 독일의 완전한 해방을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 이 인간적 해방을 수행할 수 있는 사회적 계급은 바로 '인간성의 완전한 상실이며, 그러므로 인간성의 완전한 회복에 의해서만 자기를 회복할 수 있게 되는 한 계급', 즉 프롤레타리아트라고 상정하였다.
레닌주의[편집]
레닌은 이 공산주의의 제1단계를 '사회주의'라고 규정하였고,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의하여 수립되는 '사회주의' 정권은 반드시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정권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레닌 이래로 공산주의자들은 마르크스주의를 강령으로 하지 않는 사회주의,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를 거부하는 사회주의는 결코 사회주의로 인정하지 않는 전통을 세웠다. 그리하여 민주주의라는 용어와 마찬가지로 사회주의라는 용어도 공산주의자와 비공산주의자 사이에서는 전혀 별개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공산주의의 제2단계, 즉 '보다 높은 단계'는 생산력의 높은 발전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여기서는 개인이 분업에 노예처럼 예속되는 상태가 소멸되며, 따라서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차이가 없어지고, 노동이 단지 생활의 수단이 아니라 생활의 '제일의 욕구'로 되고, '개인은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를 받는다'는 것이다. 레닌주의는 이 낭만적인 공산주의의 미래상을 계승하였다.
그러나 레닌주의가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를 계승한 것은 여기까지이며, 레닌주의에는 마르크스가 주장하지 않은, 레닌 등에 의해 덧붙여진 부분도 상당히 많다. 이는 사실상 필연적인 것이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자본주의가 몰락할 필연적인 이유'를 기술하고 그 대안으로서 나타날 공산주의를 예언하였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통해서 자본주의를 무너뜨릴 것인지에 대해서나 공산주의 사회가 어떤 형태를 띨 것이며 어떤 생산방식이 나타날 것인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체적인 실천 방식에 대한 내용은 전부 마르크스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레닌 등이 새로 만들어낸 부분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현대의 공산주의는 사실상 마르크스만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대표적인 부분이 생산 수단의 국유화다. 오늘날에는 공산주의 내지 사회주의와 국유화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지만, 다만 레닌주의자들은 국유화와 사회화라는 단어를 별 구분을 안하며 쓰는데 이는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결국 생산수단인 하부토대를 노동자가 소유한다면 상부토대인 국가와 전위대는 소멸하기 때문에 국유화든 사회화든 결국 국가는 소멸하고 생산수단은 노동자의 것이 된다.가 되버리기에 큰 차이를 두지 않는다. 문제라면 생산수단을 노동자가 쥐었다고 모든 사회적 문제와 중앙집권적 국가가 소멸되는게 아니라 더 억압적이게 변했다는 점이지만.
혁명을 실행하기 위한 정당을 어떻게 운영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내용 역시 레닌주의에 속한다. 레닌주의적 정당운영방식은 민주집중제(Democratic centralism)라고 불린다. 대한민국에도 정당을 민주집중제로 운영할 것을 주장하는 정치인들이 있었지만, 실제로 레닌주의를 생각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며 별다른 반향을 이끌어내지도 못했다.
혁명의 과정 역시 문제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무너질 것이라고 예언했을 뿐 어떤 방식으로 무너트리라는 행동지침은 제시하지 않았다. 공산주의 혁명에서의 행동지침은 마르크스주의보다 더 역사가 긴 러시아의 혁명가들에 의해 오랜 세월에 걸쳐 다듬어진 것을 레닌이 최종적으로 정리한 것이며, 마르크스 본인이 기여한 바는 거의 없다. 마르크스는 어디까지나 혁명에 이론적 기반과 정당성을 부여했을 뿐이다.
이 때문에 현대의 사회주의자 중에는 심지어 혁명 자체도 공산주의 본래의 내용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무너질 것이라는 예언은 자본주의를 무너트리려고 노력하는 혁명가들에게 확신을 주기 위한 것이며, 자본주의를 인정하면서 노동자의 권익 향상을 꾀하던, 마르크스가 '공상적 사회주의자'라고 부른 사람들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따라서 자본주의 체제를 부정하지 않고 점진적인 개량을 추구하는 것은 적어도 마르크스가 제시한 방향은 아니다.
다른 측면에서 보다 직관적으로 정리를 한다면 마르크스주의는 철학+경제+역사 이론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레닌주의는 본질적으로 정치이론 + 혁명이론에 더 가깝다.
부패한 제정 러시아를 무너뜨리기 위해 여려 계통의 혁명세력이 경합을 벌인 가운데 결국 마르크스주의를 이론적 기반으로 하는 혁명세력이 두 차례의 연속된 혁명의 와중에 10월 혁명을 통해 결정적으로 승리를 거두게 되었는데, 이는 마르크스 이론과는 괴리가 있음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다.
혁명이 개시되기 전, 이러한 괴리를 해소하기 위한 두 가지 다른 사상적 접근이 있었던 바, 러시아 사회민주당의 "멘셰비키"로 알려진 계통은 정통 마르크스 이론에 따라 일단 혁명을 통해 러시아가 먼저 근대자본주의 국가로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그에 따라 러시아의 마르크스 주의자들은 제정 러시아를 전복하기 위한 혁명에서 결정적인 조력자로서 대의제 민주주의를 수립해야 하며,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은 그 대의제 속에서 주류 정당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볼셰비키"의 생각은 이와 달랐으며, 레닌은 제정 러시아를 무너뜨리기 위해 집적된 러시아 민중의 힘을 사용하여 제정을 무너뜨린 후 그 힘을 고스란히 서유럽 모델의 근대자본주의 국가를 만드는데 헌납하는 것은 일종의 결정적 후퇴, 배신 행위로 생각해 좀 더 급진적인 모습을 보였다.
따라서, 레닌주의는 마르크스가 이론 상 "자본주의 아래에서 인간 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최고의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자본주의의 득세, 부르주아지 계급의 형성을 건너뛰고 바로 권력의 장악 및 사회주의/공산주의 체제의 건설을 정당화하기 위한 변형이론으로 분류하는 학자들도 많으며, 실제로 레닌주의가 마르크스주의의 (소위) "정통" 계보에 속해있는 변형이론으로서 '마르크스-레닌주의'인지, 아니면 마르크스주의를 왜곡하고 타락시킨 것인지에 대해 반세기가 넘게 키배가 이루어져왔음에도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여하간, 위와 같은 상황에서 레닌은, 자본주의적 토대의 건설과정 자체를 넘어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공산주의 국가 건설을 위한 물적 토대의 집적 및 부르주아지의 활동을 허용하되 부르주아지에 의한 권력장악은 막아서고 그 과정 전체를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관리하겠다는 생각을 했으며, 마침 그 상황에서 "레닌주의"라고 불리우게 될 사상에 기여를 한 것이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이었다.
즉, 정통 마르크스주의가 얘기한 조건의 미비를 극복하기 위하여 혁명을 이룩한 러시아(후일 '소비에트 연방')는 비록 공산주의로 이행하기 위한 제반 조건이 미비하더라도, 세계적이고 영구적으로 지속 될 혁명의 발화지점으로 일종의 선봉의 역할을 하게 되며, 이러한 혁명이 서쪽으로 유럽, 동쪽으로 아시아로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퍼져 나가면서 세계국가들 사이의 원활한 상호원조 및 협력이 이루어지게 되면 비로서 그러한 원조를 통해 러시아 사회는 무난하게 물적 토대를 쌓아갈 수 있으리라 기대한 것이다.
즉, 본질적으로 레닌주의는, 전쟁에서 적지에 상륙작전을 감행하듯, 비록 조건이 미비하다 하더라도 러시아가 선봉으로 먼저 공산혁명을 이룩하여 본격적인 세계혁명이 일어나기까지 선봉 및 기폭제로서 역할을 하면 된다는 대전제를 깔고 있는 것이며, 사실 그러한 대전제 아래에서 사회적, 물질적 조건이 불충분하더라도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혁명을 일으킨 괴리 및 모순을 시한부로 정당화하기 위한 이론적 성격이 강하다. 즉, 실질적으로 1924년 레닌 사후 당장 유럽 전역에 혁명이 터질듯한 흉흉한 분위기가 정리되고, 레닌이 다음 혁명의 전파지로 기대하고 있던 독일 내의 상황이 완전히 정리되어 버리며, 소련에서는 스탈린이 장악하여 스탈린주의로 넘어가면서 사실상 효력을 잃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유럽공산주의[편집]
1950년대에 헝가리 혁명을 소련이 군대로 무력진압하는 것을 본 서유럽의 공산당들은 자신들은 소련의 공산당 노선과는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소련식 공산주의를 비판하면서 만들어진 서유럽의 독자적인 공산주의 노선.
기존 레닌주의와의 차이점은 극단적인 폭력혁명을 버리고 합법적인 의회과정으로 공산주의를 실현하고 소련과 중국과 같은 일당제가 아닌 다당제의 공산주의를 실현, 어느 정도의 사유재산제를 허용할 것, 유물사관과 국가 무신론이 아닌 종교의 자유를 선언한 것, 68혁명의 영향으로 신좌파 세력의 요구를 다수 수용한 것에 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공산주의가 대부분 무너진 지금도 활동하는 다당제 민주주의 국가들의 공산당들은 중국, 베트남, 라오스, 쿠바, 북한과 같은 일당제 체제의 공산당을 제외하고 유럽공산주의 노선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 공산주의 사상을 유로커뮤니즘 또는 신공산주의라고도 부른다.
1960년대 이후로 자본주의 진영에 속한 국가들 중 합법적으로 활동하는 공산당 야당들은 대부분 유럽공산주의의 이념을 따르고 있다. 초창기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이 정립한 사회민주주의도 이와 유사한 성격을 가졌다.
유럽공산주의 말고도 다당제를 추구하는 경우도 많은데, 네팔의 프라찬다주의나 일본 공산당 등이 있다.[2]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편집]
- 부르주아 경제학으로부터의 비판 : 공산주의는 유토피아적 체제로서, 사람들의 근본적인 '욕구'를 무시한 체제이다. 개인의 동기부여가 되지 않음으로 인해 공산주의 체제는 낮은 생산성과 개인의 불행이 만연한 체제가 되었다. 한편, 자유주의 경제학자 루트비히 폰 미제스는 "공산주의자는 자신의 의지와 사회의 의지를 동일시한다는 점에서 완벽한 독재자"라는 언급으로 공산주의의 내적 결함을 지적한 바 있다.
- 포스트모더니즘으로부터의 비판 : 공산주의는 존재론을 근대화한 것에 관한 최종적 산물이며, 역사적 단계론도 역시 이러한 근대주의적 사고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
- 무정부주의(아나키즘)자들로부터의 비판 : 공산주의 이론은 레닌주의에서부터 잘못되었다. 본래 마르크스주의에서 '국가'라는 것은 영구한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없어져야 할 권위체임에도 불구하고, 레닌주의는 국가를 절대화시켰다.[1]
공산주의에 대한 오해[편집]
공산주의에 관한 오해는 크게 다음 두 가지로 나눠진다.
공산주의는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제도로 독재 정치를 옹호한다. 공산주의는 모든 재산을 평등하게 나누며, 노동의 대가도 일한 것과 무관하게 똑같이 받는다. (1)은 냉전 시기 공산국가라 칭해지던 소비에트 연방과 동구사회주의권의 정치 현실에 착안하여 널리 통용되는 오해이다. 카를 마르크스 이론의 적통을 이어받는다는 의미에서의 공산주의를 말할 때, 공산주의가 민주주의에 대하여 후진적인 사회라고 규정한 것은 맞다. 이후 논의되는 문건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대다수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민주주의를 사회주의의 아래 단계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경제 영역에서 자본주의가 갖고 있는 내적 모순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 한 상태에서는 사회주의보다 열등한 민주주의적 정치가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는 공산주의자들이 민주주의를 사회주의보다 열등한 사회 체제라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현재 공산주의 집단 사이에서 격렬하게 논의되는 “인민민주주의 혁명이나, 사회주의 혁명이냐?”라는 주제가 있다. 북한의 경우 자신들을 인민민주주의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주권이 국민이 아닌 독재자에게 있으므로 민주주의가 아니다.
(2)은 카를 마르크스의 이론에서 규정하는 노동(Arbeit)의 역할을 이해하지 못 했을 경우 오해하는 것이다. 카를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사회에 대하여 “인간의 경제 행위가 노동(arbeit) 그 자체로서 발현될 수 있는 완전히 해방된 사회”라고 하였다. 이것은 노동이 생산 수단을 점유한 특정 계급에 의해 열화되는 것이 아닌, 인간이 자율적인 사고하에서 그 자체로 표현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산주의 사회에서 유·무형 재산은 물론이고, 노동의 대가는 이에 맞춰지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사회를 “필요에 따라 분배를 받으며, 능력에 따라 노동하는 사회”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것이 적용될 때는 엄청난 계급의 불평등을 자아낸다.
대한민국의 사례[편집]
대한민국에서 공산주의는 경제, 정치, 철학적이고 학술적인 공산주의의 의미가 아니라 왜곡되고 적대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경우가 있다. 이는 한국 전쟁의 경험에서 기인한 것으로, 한국 전쟁 발생 20년 전후로 출생한 사람들이 남북한 대립의 상황으로 인해 공산주의라는 단어 자체를 꺼내는 것을 금기시하거나 적대적인 것과 관련있다.
대한민국에서 공산주의는 철학적 이념, 정치·경제 체제와 더불어 절대적인 의미에서의 통치 체제를 가리키는 말로 이해되고 있기도 하다. 그것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 경제 권력이 김일성, 김정일 일가에 독점되는 특유의 시스템과 결함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정권들을 거치면서 공산주의가 민주주의의 반의어인 것처럼 쓰였다는 주장도 있다.
대한민국의 군인 대통령 시대를 지나 사회가 선진국식 민주화와 전지구적 시장경제로 점차 진행되고 냉전이 종료된 뒤는 공산주의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는 분위기는 상당히 없어졌다. 하지만 대한민국 내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구체적인 인식은 지지정당과 관계없이 부족한 편이다.[1]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공산주의〉 《위키백과》
- 〈공산주의〉 《나무위키》
- 쏭쎄두리, 〈자본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뜻, 특징, 차이점 장단점 정리(경제체제 소개)〉 《네이버 블로그》, 2023-10-25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