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선거
부정선거(不正選擧)는 매표, 유권자의 투표 방해, 허위 유권자 등록, 불법적 대리 투표, 개표 결과 조작 등을 통해 행해진 선거를 말한다.[1]
개요[편집]
부정선거는 부정한 방법으로 선거를 치르는 행위를 말한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를 위협하는 행위이므로 엄격하게 단죄되어야 할 일이지만,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나라에서는 지금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주로 독재국가에서 독재자들이 집권기를 연장시키기 위해 많이 저지르고는 한다.
과거에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시행 1960.12.31 / 법률 제586호, 1960.12.31, 제정)도 있었으나 폐지되었다.(시행 2008.12.19. / 법률 제9147호, 2008.12.19., 폐지) 해당 법률은 1960년 4.19 혁명 이후 3.15 부정선거 관련자들을 사법처리하기 위해 제정된 법률이었으나, 이후 오랜 시간이 흐르고 여러 정치적 변화를 겪으면서 실효되었다가 48년이 흐른 2008년이 되어서야 폐지되었다. 참고로 이 날 폐지된 법률들은 5.16 군사정변 전후로 제정되었다가 이후 실효되어 유명무실해진 법률들이었다.[2]
종류[편집]
- 사전 선거운동 : 법에 정해져 있는 선거운동 기간 외에 선거운동을 하는 것.
- 금권 선거 : 유권자들에게 금품, 향응을 제공. 즉, 돈을 주거나 잔치를 벌이는 것. 아주 안 좋은 일이다. 시골 지역에선 마을 유지를 포섭한 다음에 주민들을 불러놓고 한끼 대접한 다음에 다 먹고 나서야 돈을 댄 정치인이 나와서 후원을 부탁하는 짓을 저질러서 멋도 모르고 한끼 먹던 마을 사람들이 통째로 선거법 위반으로 막중한 벌금을 무는 날벼락같은 사례도 벌어졌다고 한다.
- 금품 제공 : 말 그대로 자신을 지지하는 대가로 물품을 나누어 주는 것. 한국에서는 2000년대 초반까지도 당연히 벌어졌다. 국민소득이 높지 않던 시기에는 주로 농촌 지역에서 막걸리 대접하고, 고무신을 뿌렸기 때문에 고무신 선거, 막걸리 선거 등으로 불렸다. 이후에는 경제성장과 함께 설렁탕에 종합선물세트 식으로 아이템도 점점 업그레이드 되면서 1990년대에 가면 농촌지역에선 온천관광, 효도관광이 성행했고, 서울 강남 같은 부유층 밀집 지대에선 한끼당 최소 30,000 ~ 40,000원짜리 식사는 대접해야 먹힌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진 국회의원 출마자 한명당 최소 10억은 쓴다는게 공공연한 비밀이었는데, 당시 여야 주요 정당들이 지역조직을 동원해서 이런 식으로 금권선거를 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오랜 세월 금권선거에 길들여진 일부 유권자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금품과 향응을 요구했고, 선거철마다 떡고물을 노리고 노골적으로 이런 현상을 부채질하는 브로커들이 판을 쳤다. 2002 대선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모두 수백억에서 수천억 단위의 불법자금을 조달한 것은 이런 선거풍토 때문이었다.
- 투표함 바꿔치기 : 투표함을 몰래 바꿔치기한다.
- 개표 부정 : 개표 과정에서 부정을 저지른다. 예를 들어 A후보의 표 99장 위에 B후보의 표 한 장을 올려 놓고 B후보 100표로 계산하는 수법이라든가, 개표원을 매수하는 행위 등을 말한다.
- 관권 선거 : 정부가 선거에 개입하여 여당에 유리하도록 만드는 선거. 한국에서 이게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것이 군대였다.
- 공개 투표 : 말 그대로 누가 누구에게 투표하는지 감시원이 확인하는 방식이다. 북한의 선거가 이렇게 이루어진다.
- 릴레이 투표
- 3인조 및 5인조 선거 : 말 그대로 팀을 짜서 서로를 감시하며 특정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는 행위.
- 투표 무효화 : 말 그대로 투표 용지를 무효로 만들어 조작하는 수법. 실제 예시를 들자면 한국의 3.15 부정선거 당시 야당 인원을 찍은 표에 인주를 잔뜩 묻힌 손가락을 찍어 무효로 만든 '피아노 표'와 러시아의 140% 사건 당시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잉크가 지워지는 펜을 나눠준 수법 등이 있다.
- 유령 투표 : 사전에 일정한 수의 투표 용지를 미리 투입. 이따금 투표자 수가 유권자 수를 상회하는 기적을 연출하기도 한다.
- 흑색 선전 : 공신력이 있다고 믿어지는 기관을 사용하여 상대 후보에게 불리한 정보를 퍼뜨리기. 심지어 상대 후보와는 상관도 없는 일을 연관시켜 누명을 씌우는 일도 있다.
- 공권력 동원 : 상대방 후보를 누명을 씌워 체포하거나 일을 터트린 뒤 수사결과를 상대방 후보에게 불리하게 발표하기
- 정전 : 갑자기 정전을 시켜놓고 그 사이에 개표를 진행하는 것. 원칙적으로 정전 시에는 개표 작업을 진행해서는 안 된다. 말레이시아와 러시아에서 사용되는 수법이다. 3.15 부정선거 당시 '올빼미표'라는 은어로 불렸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두운 때를 틈타 개표를 허겁지겁 끝내는 것.
- 부정 발표 : 투표는 다 정상적으로 하고 개표도 제대로 한 다음 결과를 바꿔 발표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예시인 3.15 부정선거 당시에는 야당 참관인 쫓아내기, 시계 조작 등의 행위도 이루어졌다. 또 미국에서는 조지 W. 부시의 재선 투표 당시 전자 투표함을 해킹해 부시에게 표를 몰아 주었다는 상당히 근거 있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 전자 투표함이라는 게 종이로 결과를 남기는 것도 아닌데다 이 투표함 회사 사장이 나는 오하이오 주의 표를 부시에게 바치겠다라고 선언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2]
3·15부정선거[편집]
1960년 3월 15일 시행된 제4대 대통령 및 제5대 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정부가 저지른 부정 선거이다. 4 · 19 혁명이 일어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1960년에 치러진 정 · 부통령 선거에서 정권을 잡고 있던 자유당은 대통령 후보로 이승만, 부통령 후보로 이기붕을 내세웠다. 이에 맞선 민주당은 대통령 후보로 조병옥, 부통령 후보로 장면을 선정했다. 당시는 지금과는 달리 대통령과 부통령을 뽑아 대통령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부통령이 대신 통치하도록 했다.
그런데 자유당이 미리 국민들의 마음을 알아보고 선거 결과를 예측해 보니 매우 불리한 상황이었다. 대통령 후보였던 조병옥이 사망하면서 이승만은 당선이 확실했지만, 부통령 선거에서는 이기붕의 당선이 어려워 보였다. 그동안 자유당이 너무 오랫동안 정권을 잡고 있었던 데다 부정부패를 일삼고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많은 국민들이 자유당 정부에 등을 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위기를 느낀 자유당은 경찰과 공무원을 동원해 조직적인 부정 선거를 벌였다. 선거일 전에 투표하기, 3~9명씩 묶어서 공개적으로 투표하기, 미리 찍어 놓은 표가 있는 투표함으로 바꿔치기 등 갖가지 방법이 동원되었다. 이러한 부정 선거로 자유당은 승리를 거두는 듯 보였다. 그러나 부정 선거에 분노한 시민들이 선거 무효와 자유당 정부의 퇴진을 주장하는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고, 그 열기는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결국 국민들의 분노는 4 · 19 혁명으로 이어져 이승만 대통령의 퇴진과 자유당 정부의 몰락을 가져왔다.
4 · 19 혁명으로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이승만은 하와이에 머물다 다시 돌아올 것을 원했지만, 정부가 허락하지 않아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부통령 선거에 나섰던 이기붕은 성난 국민들을 피해 경무대관사에 있다가 가족과 함께 자살했다. 이기붕이 살던 집은 몰수된 뒤, 현재 4 · 19 혁명 학생 도서관으로 꾸며졌다.[3]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부정 선거〉 《위키백과》
- 〈부정선거〉 《나무위키》
- 〈3 · 15 부정 선거〉 《한국사 사전 2 - 역사 사건 · 문화와 사상》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