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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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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全體主義, Totalitarianism)란 개인의 이익보다 집단의 이익을 강조하여 집권자의 정치권력이 국민의 정치생활은 물론, 경제·사회·문화생활의 모든 영역에 걸쳐 전면적이고 실질적인 통제를 가하는 것을 말한다.[1]

개요[편집]

사전적 의미로, 전체주의란 개인의 모든 활동은 오로지 전체, 즉 민족이나 국가의 존립과 발전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이념 아래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상 및 체제를 말한다.

독일나치즘 체제와 구소련의 스탈린 체제를 전형으로 하는 제1차 세계대전 후에 나타난 한 종류의 정체체제의 총칭이다. 원래 1920년대에 이탈리아 파시즘이 스스로를 전체주의라고 칭하였지만 그 후 이탈리아 파시즘뿐만 아니라 독일의 나치즘이나 소련의 공산당 지배, 특히 스탈린 체제를 부정적으로 총칭하는 말로서 서유럽이나 미국에 확대되었다. 이 말은 1940년대에 정착하여 1950년대에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전체주의의 기원』과 같은 저작도 낳았다. 그리고 이 개념은 프리드리히(Carl joachim Friedrich)와 브레진스키(Zbigniew K. Brzeinski)의 『전체주의적 독재와 전제지배』에 제시된 바와 같이 한편으로 정치학적으로 정밀화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냉전의 문맥 속에서 반소련의 이데올로기적인 의미에서 사용되는 경우도 많아졌다. 그러나 이 냉전 이데올로기적인 성격 때문에 1960년대에는 이 개념이 점차 경원(敬遠)된다. 또한 나치즘이나 스탈리니즘에 관한 실증사학적연구가 진전되어 이 양자를 일괄하여 해석하는 틀 자체가 문제시되었으며 나치즘, 스탈리니즘의 실증적 연구의 문맥에서는 그 역사적 역할을 마쳤다. 단, 오늘날에도 전체주의 체제, 권위주의 체제,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린즈(Juan J. Linz)의 구별과 같이 현대의 정체체제의 중요한 한 유형을 나타내는 개념으로서 사용되고 있다.

전체주의의 정의는 논자에 따라 다르지만 그것은 독재적인 지도자의 지배와 시민적ㆍ정치적 자유의 부정을 전통적인 전제나 폭정 및 권위주의 체제와 공유하면서 그것들과는 달리 이데올로기에 의한 정치적인 동원이 강하게 이루어짐과 동시에 사적 영역이 파괴되어 전면적인 정치화가 진행된다. 즉, 경제활동이나 종교, 문화, 사상에서 여가에 이르기까지 당과 국가 권력의 통제하에 실행하고자 하는 강제적인 획일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그 수단으로서 테러가 이용되며 강제 수용소의 존재도 그 특징으로 되어 있다.

단, 전체주의라는 개념은 정치체제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보다 널리 문명이나 사회의 방향의 문제로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2]

유래[편집]

이탈리아독재자였던 베니토 무솔리니는 1920년대 초반 이탈리아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했고, "국가 안에 모두가 있고, 국가 밖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으며, 국가에 반대하는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 것(Tutto nello Stato, niente al di fuori dello Stato, nulla contro lo Stato.)"이라고 기술했다. 이후 이탈리아의 정치인이자 언론인인 조반니 아멘돌라(Giovanni Amendola)가 무솔리니와 그의 추종자들의 정치 현상을 묘사하기 위해 최초로 '토탈리타리스모'(Totalitarismo)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3]

장점[편집]

전체주의의 가장 큰 장점은 힘의 결집이다. 전체주의는 지도자의 판단대로 다수를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 이들의 힘을 쉽게 모을 수 있고, 목표에 방해되는 개인의 불필요한 행동도 억제할 수 있다. 따라서 지도자가 올바른 방향성을 잡는다면 단기간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달성할 수 있는 건 물론, 장기적인 국가계획을 몇십 년이고 안정적으로 시행할 수 있다는 장점 또한 있다. 예를 들어 소련은 국민들의 피와 인권을 먹고 자란 전체주의를 발판 삼아, 서구에 비하면 늦었지만 기적적인 속도로 산업화를 이룩했다. 현재 민주 국가인 한국, 대만, 일본도 각각 군사독재, 장제스의 대만 계엄령, 메이지 유신 등을 거쳐 빠른 근대화에 성공했다.

그리고 전체주의 국가는 선거가 없거나 있어도 형식에 불과하기에 국민 여론에 대한 걱정이 민주주의 국가보다 덜하다. 극단적인 예시로, 적국의 장군 수백 명이 모인 벙커 주위에 적 민간인 수천 명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민주주의 국가든 전체주의 국가든 이 벙커를 파괴하면 지휘관의 사망으로 적군이 와해되어 승리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므로 크나큰 이득이다. 하지만 폭격에 민간인이 단 한 명이라도 휩쓸린다면 국제적 비난과 국민들의 반전여론이 쏟아지는데,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지도자는 국민들에 의해 선출되기 때문에 이런 여론을 절대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그 사실을 극비에 부치거나 온갖 선전선동을 동원해야 한다. 하지만 전체주의 국가는 그런 눈치를 볼 필요 없이 그곳에 타격을 줄 수 있다.

이 때문에 민주주의 국가들도 계엄령 등, 특수한 상황에서는 시민들의 권리를 강제로 제한하는 제도를 두고 있다. 권한 집중과 효율성 면에서는 민주주의에 반하더라도 강제력을 가진 전체주의적 제도가 장점이 있다는 걸 민주주의 국가들도 어느 정도 시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단지 계엄령을 남발하느냐, 아니면 필요한 시기에만 제한적으로 시행하느냐로 전체주의 국가와 민주주의 국가가 판가름나는 것이다.[4]

단점[편집]

전체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최고지도자에 대한 맹목적 추앙으로 연결되기 매우 쉽다는 것이다. 전체주의에서는 힘의 결집을 위해 개인에게는 아무 가치가 없고, 오직 공동체에게만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런데 정작 그 공동체(국가)는 하이브 마인드 같은 자아와 판단능력을 가진 지성체가 아닌, 단지 특정 행동과 심리를 가진 개인들의 집합이거나(사회계약론), 개인 총합 이상의 힘을 지녔긴 해도 그저 안정적인 구조를 이룬 규범과 조직(사회실재론)에 불과하다. 이러다 보니 전체주의 하에서의 개인은 명목상으로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 그 자체에 헌신해야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해당 공동체를 지배하는 권력층과 최고지도자에게 충성하게 된다.

따라서 전체주의 아래의 모든 개인은 이러한 현실에 인지부조화를 느끼게 되어,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각종 논리 및 권위를 보충하기 시작한다. 억압적인 분위기와 체제는 공동체(실질적으로는 기득권층)를 유지하기 위해 마땅히 받아들여야 하는 의무로, 기득권층의 사리사욕에 대한 탐닉은 공동체의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하는 전체의 뜻으로 포장된다. 그 결과 해당 국가에 소속된 모든 구성원이 무조건적으로 복종해야 할 공동체의 화신, 즉 '절대적 개인'이 탄생한다. 결국 전체주의는 국민들을 양심을 가진 존엄한 '인간'이 아닌, 그저 지배층의 뜻을 따르기만 할 뿐 생각은 하지 않는 '도구'로 만들어버린다. 이런 체제는 전제군주제와 근본적으로 다를 게 없으며, 당연히 전제군주제에서 보인 왕권(최고지도자)과 신권(관료조직)간의 대립 등의 문제가 전체주의에서도 나타나게 된다.

이렇듯 모든 국민들이 의심 없이 국가를 따라야 하는 전체주의에서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은 처단해야 할 적에 불과하다. 따라서 많은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국민들을 통제하고 반동분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정치경찰을 만들었다. 정치경찰은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건 물론 국민들끼리도 서로를 감시토록 해 이웃, 가족까지 믿지 못하게 만들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무력해진 개인은 국가의 명령만을 따르는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 결국 전체주의는 개인보다 사회를 강조하면서도 정작 구성원들은 개인으로서의 정체성 상실에서 오는 고독을 느끼게 된다.

또한 전체주의에서의 관료제는 조직이 그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존재한다. 그렇기에 한 사람이 여러 관직을 차지하고 조직간 하는 업무가 자주 겹쳐, 실제로 조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외부는 물론 내부에서도 알 수 없게 되기 일쑤다. 나치 친위대가 이것저것 다 하고 옛 소련이나 현재 북한을 보면 어떤 기구가 무슨 일을 하고 또 얼마나 힘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기 어려운 것도 전체주의의 이런 특성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지도자는 조직이 지나치게 커지고 경직되는 것을 막기 위해 조직간 경쟁을 유도하며, 심하게는 관료들을 숙청해버린다. 실제로 히틀러는 나치 내 특정 조직이 너무 성장하면 그걸 견제하기 위한 다른 조직을 만들어 힘을 실어주는 방식으로 조직을 관리했고, 스탈린과 마오쩌둥은 대대적인 숙청을 벌여 정치적으로 대립하던 관료들을 주기적으로 제거했다.

이렇게 체제 유지만을 위해 정부 조직을 비효율적으로 만드니 국정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따라서 전체주의에서는 지도자의 즉흥적인 결정이나 내부 유력자들간의 유착 등으로 국정수행에서 큰 비효율이 발생하기 쉽다. 예를 들어 나치당은 독일 재계인사와 유착해 전시 도중에도 여러 부정부패를 자행해 자국의 전쟁수행능력을 심각하게 깎아먹었으며, 1944년 말에 들어 전황이 막장으로 흘러가는 와중에 등장한 국민돌격대 또한 재계인사의 부패와 밥그릇 싸움으로 무장 혼선이 심각했다. 한편 스페인 내전 이후 스페인 전국이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들 중 하나를 차지하며 전쟁의 참화를 회복하지 못했던 시절, 프랑코가 계급 투쟁의 승리를 과시하며 조장했던 구 귀족층의 초호화 결혼, 사치 같은 행각은 스페인 사회에 깊은 분열과 불신의 씨앗을 남겼다.

마지막으로, 전체주의 국가는 체제 유지를 위해 모든 다양성과 창의성을 말살했기에 싱크 탱크 같은 연구기관의 활동 또한 억제되어, 이들이 객관적이고 정확한 결과를 내기 어렵다. 따라서 나라에 필요한 인재를 제대로 충원하지 못하며, 창의성이 중요한 문화 및 과학기술 발전에도 자본의 흐름이 자유롭고 다양한 사상이 존중받는 자유주의 국가보다 약세를 보인다. 이는 경제 부문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전체주의 국가는 대개 제대로 된 경제성장을 하지 못한다. 마오쩌둥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제사해 운동 등은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는 전체주의의 폐해다.[4]

용어 남용[편집]

냉전 시기 자본주의권에서는 반공주의(反共主義)의 영향으로 인해 '전체주의'라는 용어가 공공의 이익을 중시하는 모든 사상에 들씌워지는 주홍글씨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해당 용어의 남용 사례는 매카시즘의 광풍이 불던 1950년대 미국에서 대표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시기에는 복지 국가 형성과 관련된 이론, 사상은 물론이고 사회계약론까지 전체주의의 일종이라고 여겨졌다.

역사학자 월터 라퀘르(Walter Laqueur)는 자유 진영에서 전체주의라는 용어가 대대적으로 퍼지는 것에 대해 “공산주의 및 국민의 복리증진을 요구하고 달성하려는 사상을 유럽에서 발생한 '야만의 정치'인 파시즘과 억지로 엮어서 이 두 사상을 등치시키려는 우익 권위주의자들의 고질적인 선동 방식이다.”라고 평가하였다. 이어서 라퀘르는 전체주의라는 개념은 마르크스주의나 소비에트 연방의 사회 구조를 설명하는 데에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한 방식이며, 이러한 모든 방식이 빈곤한 이론적 기초 위에 놓여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러시아/소련사학자 실라 피츠페트릭(Sheila Fitzpatrick)은 이오시프 스탈린 집권기의 단점이 서방권 내에서는 심하게 과장이 되었으며, 대부분의 내용이 사실과 다른 동시에, 근거가 부족한 주장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빈곤한 주장 위에 놓여져 있는 '전체주의'라는 용어는 학술적으로 엄밀한 의미의 개념이 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또한 피츠페트릭은 스탈린의 정책으로 인해 소비에트 연방의 시민이 과거의 삶보다 윤택한 삶을 살 수 있었고, 동시에 더 많은 기회를 누릴 수 있었는데, 전체주의 용어 남용이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모조리 숨긴다고 지적했다. 피츠페트릭은 한 시대의 역사적 상황에 따른 선택 및 그 맥락을 이해하지 못 하게 하는 전체주의 용어 남용은 역사 왜곡 시도의 일종이라고 비판했다.[3]

각주[편집]

  1.  〈전체주의〉 《두산백과》
  2.  〈전체주의〉 《21세기 정치학대사전》
  3. 3.0 3.1  〈전체주의〉 《위키백과》
  4. 4.0 4.1  〈전체주의〉 《나무위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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