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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쿠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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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위치
투쿠만주 위치

투쿠만주(Provincia de Tucumán)는 아르헨티나의 북서부에 위치해 있는 주이다.[1][2]

개요[편집]

투쿠만주의 면적은 22,524km²이며 인구는 1,432,552(2006년)명이다.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제외하고는 아르헨티나에서 두 번째로 작은 주이다. 아르헨티나에서 6번째로 인구가 많은 주이다. 인구밀도는 64.3명/km²로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제외하고 가장 높은 주이다. 주도는 산미겔 데투쿠만인데 아르헨티나에서 5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인접해 있는 주로는 북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살타주, 산티아고델에스테로주, 카타마르카주가 있다. 투쿠만주의 별명은 "공화국의 정원"(El Jardín de la República)이다.

축구팀으로 CA 산 마르틴 데 투쿠만과 CA 투쿠만(Club Atlético Tucumán)이 있다. 엄마 찾아 삼만리에서 주인공 마르코가 엄마와 상봉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안익태가 전성기가 지난 후, 지구의 끝과 같은 이곳에서 5번이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기도 했던 곳이다.[3][4]

자연환경[편집]

동쪽은 그란차코 평지와 연결되어 있고, 서쪽은 남쪽으로 팜파스 산맥의 시에라 산맥과 북쪽으로 아르헨티나 북서부 협곡이 연결되여있다. 세로 델 볼손은 해발 5,550m의 가장 높은 봉우리다. 살리 강은 이 주의 주요 강이며 투쿠만에는 수력 발전과 관개에 사용되는 4개의 댐도 있다. 이 주의 가장 중요한 댐은 살리강의 엘 카딜랄, 혼도강의 엠발세 리오 혼도, 데로스소사강의 라앙고스투라, 마라파강의 에스카바. 산타 마리아 강은 발레스 칼차키스를 가로지른다.

기후는 열대기후와 온대기후가 만나는 양상이다. 그리고 해발고도가 높은 서부는 고산기후가 나타난다. 동부는 평균기온 18~20°C(여름평균 24°C~26°C, 겨울평균 10°C~12°C). 서부로 갈수록 고도가 높아져 평균기온이 낮아진다. 해발 2,500m 지역은 평균기온이 12°C~14°C에 그친다. 우기와 건기의 양상을 띠며 연강수량은 600mm 정도이다. 안데스산맥의 동쪽사면은 비가 많이 내린다. 연평균 1,800mm 정도다.

역사[편집]

1533년 디에고 데 알마그로는 투쿠만을 포함한 아르헨티나 북서부를 탐험했다. 1549년 페루 총독 페드로 데 라 가스카는 후안 누녜스 데 프라도에게 투쿠만의 영토를 허락했다. 프라도는 둘체 강의 바르코 마을에 첫 스페인 정착지를 세웠다. 프라도는 자신과 동맹을 맺은 현지인들의 지도자 중 한 명인 투쿠마하오의 이름을 따 자신의 지방을 "투쿠만"이라고 이름 지었다. 1552년 프란시스코 데 아기레는 칠레의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아기레는 토박이들의 반란을 일으키며 억압적인 정책을 펼쳤다. 수적으로 열세였던 식민지 주민들은 1553년에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장소로 이주하여 산티아고 델 에스테로 마을을 세웠다.

1565년에 디에고 데 비야로엘은 산미겔 데 투쿠만을 세웠고, 주리에시 디아귀타스가 조직되었다. 1685년 말론인 원주민들의 잦은 공격으로 인해 산미겔 데 투쿠만(San Miguel de Tucuman)은 미겔 데 살라스(Miguel de Salas)에 의해 처음 위치에서 약 65km 떨어진 곳으로 옮겨져 재개발되었다. 이 지역의 원주민들은 패배한 부족들을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이주시키기로 결정한 스페인 사람들에게 강한 저항을 보였다. 이러한 이전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퀼메스 시로 이주한 퀼메스 부부의 사례다. 투쿠만은 페루 부왕령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금과 은을 운송하는 중간 지점이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길에 호송인들을 위한 물자를 제공하는 소, 직물, 목재 제품을 생산했다. 중요한 지리적 위치와 시민 및 가톨릭 정부의 수장으로서 18세기 동안 특별한 중요성을 얻었다.

1776년 리오 데 라 플라타(Rio de la Plata)가 설립되면서 페루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호송선의 종말을 의미한다. 당시 2만 명의 주민이 살고 있던 투쿠만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새로운 세관으로부터 영국의 수입으로 고통을 겪기도 했다. 1783년 투쿠만의 계획은 분할되었다. 투쿠만은 살타 델 투쿠만의 계획 하에 있었고, 그 중심은 살타에 있었다. 호세 데 산 마르틴은 1813년 투쿠만에 도착해 군사학교를 설치했다. 1814년, 살타의 의도는 현재의 지방으로 분할되었다. 1816년 7월 9일 투쿠만 회의에서, 프로빈시아스 우니다스 델 리오 데 라 플라타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내부적인 갈등으로 인해 아르헨티나로 지방이 최종적으로 통합되는 것이 지연되었다.

1820년 3월 22일, 아르헨티나의 첫 독립 정부가 실패하자, 베르나베 아라오즈 주지사는 투쿠만 연방 공화국의 창설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 실험은 이듬해 이웃한 카타마르카와 산티아고 델 에스테로 지방이 철수하면서 무너졌다. 20세기 초, 세관의 제한과 철도의 도착으로 지방과 사탕수수 생산에 번영하는 경제 시대를 가져왔다. '7월 9일 공원'과 '투쿠만 정부궁' 등 수많은 랜드마크가 세워졌고 1912년 창간된 일간지 '라 가세타'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밖에서 가장 많이 발행되는 아르헨티나 일간지가 됐지만 1960년대 설탕 가격 위기와 후안 카를로스 옹가니아 대통령의 대형 국영 제당소 11곳 설립 명령은 1966년 문을 닫았다. 투쿠만의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고, 그 지방은 불안정한 시대로 이어졌다.

1975년 이사벨 페론 대통령은 주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 포고령은 독립 작전으로 이어졌는데, 이 작전은 적어도 지역 치안 판사, 국회의원, 교수진에 대한 잔혹한 군사 작전이었다. 1976년 페론을 폐위시킨 독재 정권의 명령에 따라 이 작전의 지휘관인 안토니오 도밍고 부시 장군이 주지사로 임명될 때까지 폭력은 완전히 줄어들지 않았다. 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무자비할 정도로, 부시는 교착 상태에 빠진 여러 공공 공사의 완공을 감독했지만, 그 고통스러운 1976-77년 기간 동안 최악의 인권 유린을 담당하기도 했다. 부시는 1995년 자신의 권리로 주지사로 선출되었지만 4년의 재임 기간 동안 그의 초기 인기는 많이 떨어졌다.

투쿠만에서의 삶은 그 이후로 일정한 정상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르헨티나의 경제는 2002년 이후 10년 동안 확장된 기간 동안 강력하게 회복되었다. 2003년 주지사로 선출된 호세 알페로비치는 공공사업에 대한 기록적인 투자를 주관하는 한편 임기 제한을 없애려는 시도로 비판을 받아왔다.

산업[편집]

"공화국의 정원"(El Jardín de la República)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작물 재배에 안성맞춤이다. 사탕수수 재배와 제당업이 발달해 있으며, 레몬, 딸기, 키위, 콩, 옥수수도 활발하게 재배한다. 초원 지역이기 때문에 소, 양, 염소 등의 가축업도 활발하다.

오랫동안 가장 낙후된 아르헨티나의 주들 중에서 투쿠만주는 빠르게 성장을 해왔다. 투쿠만의 제조업은 처음에는 설탕 생산에 중점을 두었으나 1960년 이후 크게 다양해졌다. 제당 공장은 전체 경제의 약 15%를 차지했으며 사탕수수를 설탕, 종이 및 알코올로 산업화하는 것 외에도 식품, 섬유, 자동차 및 야금 산업이 있다. 폭스바겐 그룹이 지배하는 스웨덴 스카니아 회사가 운영하는 화물 트럭 조립 회사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문화와 스포츠 관광이 발달했으며, 매년 많은 아르헨티나 관광객들을 끌어들인다. 팬아메리칸 고속도로(9번 국도)는 산미겔 데 투쿠만을 가로지르며 산티아고 델 에스테로, 부에노스아이레스와 연결된다. 이 도시는 아르헨티나 북서부의 다른 지방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을 위한 중간 정류장 역할도 한다.

교육[편집]

투쿠만국립대학교[편집]

투쿠만국립대학교는 아르헨티나 북서부에 위치한 투쿠만주의 산미겔투쿠만에 위치한 국립 종합대학교이다. 1914년 설립된 유서 깊은 대학교이다. 투쿠만국립대학교는 농학 · 축산학부 등13개 학부와 공학교육원 등 7개 교육원에서 교과 과정을 제공한다.

대학평가기관 QS의 2023년 세계대학순위에서 세계 1201-1400위권, 라틴아메리카 대학 중 145위를 기록했다. QS의 분야별 평가에서 농학 및 임학 분야가 세계 251-300위권에 들었다. 2023년 유에스뉴스&월드리포트의 글로벌대학순위에서는 세계 1809위, 라틴아메리카 대학 중 97위, 아르헨티나 대학 가운데 9위로 평가되었다.[5]

산미겔데투쿠만[편집]

아르헨티나 투쿠만주(州)의 주도이며 안데스 산맥의 지맥 아콩키아 산맥의 동쪽 기슭, 살리강의 서쪽 기슭에 있다. 16세기에 코르도바와 볼리비아의 광산을 잇는 중계지로서 에스파냐인(人)이 건설하였으며, 페루 쪽으로부터 행해진 식민의 중심이 되었다. 1816년에는 리오데라플라타 합주국(合州國)이 이 곳에서 에스파냐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주변의 비옥한 평원에서는 19세기 말부터 사탕수수 재배가 성행하였으며, 그 집산 및 가공으로 번영하였다. 그 밖에 알코올 양조·제분·제재 등의 산업이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로부터 안데스산맥를 넘어 칠레·볼리비아·페루에 이르는 철도와 도로가 통한다. 투쿠만국립대학(1914), 대성당 등이 있다.[6]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투쿠만주〉, 《위키백과》
  2. 투쿠만〉, 《나무위키》
  3. 투쿠만주〉, 《네이버 지식백과》
  4. 투쿠만주〉, 《요다위키》
  5. 투쿠만국립대학교〉, 《네이버 지식백과》
  6. 산미겔데투쿠만〉,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남아메리카 같이 보기[편집]

남아메리카 국가
남아메리카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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