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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초기의 피시방은 인터넷 카페와 비슷한 형태로 시작했다. 엠팔(EMPAL)의 멤버 안상수와 금누리가 홍대 상권에서 1988년 3월에 첫 개장하여 1991년에 폐장된 전자 카페가 피시방의 시초다.<ref name="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D%94%BC%EC%8B%9C%EB%B0%A9 피시방]〉, 《위키백과》</ref> 당시 전자 카페는 16비트 PC 2대에 전화선을 연결해 PC 통신을 이용했다. 이후 1994년,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BNC라는 이름의 인터넷 카페가 개장되었다. 이것이 국내 최초의 인터넷 카페다. 이 같은 인터넷 카페가 대학가 등 주요 상권에서 하나둘씩 오픈하기 시작했다. 1988년부터 1993년까지 언론에서 소개한 인터넷 카페들은 전부 전자 카페로 불렸으나 1994년부터는 이것들을 모뎀 카페, 네트워크 카페, 사이버 카페 등으로 불렀고, 바둑 등 간단한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1988년부터 1994년 사이 등장한 업종들은 지금의 PC방과는 거리가 멀었다. 외국의 인터넷 카페와 비슷한 느낌으로 출발해 PC 이용이 주목적이라기보다는 커피나 음료를 즐기는 사교 공간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ref name="ㅇㄹ"> 이상혁, 〈[http://www.ilovepcbang.com/news/articleView.html?mod=news&act=articleView&idxno=49385&sc_code=&page=&total (창간특집) 창간 17주년에 돌이켜본 PC방의 역사]〉, 《아이러브피시방》, 2016-06-17</ref> 그 후 오락실과 현재 PC방의 중간 형태쯤 되는 업소도 등장했다. 오락실용 기계 세트를 이용해 안쪽에 컴퓨터와 키보드 등을 설치하고 시간제로 [[워크래프트]] 2 등을 할 수 있는 업소가 일부 있었다. 그렇지만 전국적으로 흥행하지는 못했다.<ref name="나무"></ref> PC를 전면에 내세워 현재의 PC방과 같은 업종은 1996년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한 대량 실직 사태와 게임 [[스타크래프트]]가 등장하면서 PC방 시장이 단기간에 확장되었다. 1998년과 2000년 사이에 스타크래프트의 인기와 함께 전국에서 2만여 개의 PC방이 창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ref name="ㅇㄹ"></ref> 처음에는 게임방과 PC방이라는 용어를 혼재해서 사용했다. 컴퓨터 활용이 적고 숙련자도 많이 없었으며, 게임 외의 수단이 적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인터넷 검색, 컴퓨터 업무 처리, 이메일 확인, 정보 검색, 인쇄 등이 가능해지고, 이용자 수가 늘면서 게임방보다 PC방으로 더 많이 불리게 되었다.<ref name="나무"></ref> 1998년 IMF 외환위기 때 PC방 수가 늘어난 데에는 직장을 잃은 직장인들이 비교적 적은 자본으로 창업할 수 있는 PC방 자영업을 시작했기 대문이고 또 다른 이유는 김대중 정부가 IMF 위기 극복 대책으로 IT 산업을 추진해서였다. 스타크래프트와 리니지 등 인터넷 게임에 대한 열풍도 PC방 산업을 발전시키는데 주요한 동력을 제공했다. 이때부터 인터넷과 인터넷 게임들이 등장하고 PC방이 본격적으로 보급되었다.<ref name="나무"></ref> PC방의 대중화로 인해 PC방 시장은 블루오션으로 인식되었다. 게임 열풍과 피시방 산업 대중화로 인해 이를 받쳐줄 수 있는 컴퓨터 사양이 필요하였고, 이것이 PC의 고사양화가 가속화되는 효과를 불러왔다. 이후, 컴퓨터 게임 뿐만 아니라 2000년에 들어서는 화상 채팅이 퍼지면서, 많은 피시방들이 웹캠(WebCamera)을 설치했다. 또한 [[넥슨]], [[넷마블]] 등 온라인 게임 서비스 업체들은 피시방을 중심으로 이벤트 형식의 마케팅을 시행했으며, 피시방에서 온라인 게임을 이용하면 보너스 경험치 같은 혜택을 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2002년 이후 각 가정에서 컴퓨터 보급이 증가하고 인터넷 접속이 용이해지면서 피시방 산업에 진입했다가 퇴출하는 수가 증가했다.<ref name="백과"></ref> 피시방 사료 중 최장기간 집계되어 온 데이터인 게임백서 자료를 보면, 2000년 21,460개의 업종에서 2014년 13,146개로 피시방 수가 38.74% 감소한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15년 동안 창업과 폐업이 반복되면서 업장 수가 10분의 6으로 감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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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초기의 피시방은 인터넷 카페와 비슷한 형태로 시작했다. 엠팔(EMPAL)의 멤버 안상수와 금누리가 홍대 상권에서 1988년 3월에 첫 개장하여 1991년에 폐장된 전자 카페가 피시방의 시초다.<ref name="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D%94%BC%EC%8B%9C%EB%B0%A9 피시방]〉, 《위키백과》</ref> 당시 전자 카페는 16비트 PC 2대에 전화선을 연결해 PC 통신을 이용했다. 이후 1994년,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BNC라는 이름의 인터넷 카페가 개장되었다. 이것이 국내 최초의 인터넷 카페다. 이 같은 인터넷 카페가 대학가 등 주요 상권에서 하나둘씩 오픈하기 시작했다. 1988년부터 1993년까지 언론에서 소개한 인터넷 카페들은 전부 전자 카페로 불렸으나 1994년부터는 이것들을 모뎀 카페, 네트워크 카페, 사이버 카페 등으로 불렀고, 바둑 등 간단한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1988년부터 1994년 사이 등장한 업종들은 지금의 PC방과는 거리가 멀었다. 외국의 인터넷 카페와 비슷한 느낌으로 출발해 PC 이용이 주목적이라기보다는 커피나 음료를 즐기는 사교 공간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ref name="ㅇㄹ"> 이상혁, 〈[http://www.ilovepcbang.com/news/articleView.html?mod=news&act=articleView&idxno=49385&sc_code=&page=&total (창간특집) 창간 17주년에 돌이켜본 PC방의 역사]〉, 《아이러브피시방》, 2016-06-17</ref> 그 후 오락실과 현재 PC방의 중간 형태쯤 되는 업소도 등장했다. 오락실용 기계 세트를 이용해 안쪽에 컴퓨터와 키보드 등을 설치하고 시간제로 [[워크래프트]] 2 등을 할 수 있는 업소가 일부 있었다. 그렇지만 전국적으로 흥행하지는 못했다.<ref name="나무"></ref> PC를 전면에 내세워 현재의 PC방과 같은 업종은 1996년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한 대량 실직 사태와 게임 [[스타크래프트]]가 등장하면서 PC방 시장이 단기간에 확장되었다. 1998년과 2000년 사이에 스타크래프트의 인기와 함께 전국에서 2만여 개의 PC방이 창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ref name="ㅇㄹ"></ref> 처음에는 게임방과 PC방이라는 용어를 혼재해서 사용했다. 컴퓨터 활용이 적고 숙련자도 많이 없었으며, 게임 외의 수단이 적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인터넷 검색, 컴퓨터 업무 처리, 이메일 확인, 정보 검색, 인쇄 등이 가능해지고, 이용자 수가 늘면서 게임방보다 PC방으로 더 많이 불리게 되었다.<ref name="나무"></ref> 1998년 IMF 외환위기 때 PC방 수가 늘어난 데에는 직장을 잃은 직장인들이 비교적 적은 자본으로 창업할 수 있는 PC방 자영업을 시작했기 대문이고 또 다른 이유는 김대중 정부가 IMF 위기 극복 대책으로 IT 산업을 추진해서였다. 스타크래프트와 리니지 등 인터넷 게임에 대한 열풍도 PC방 산업을 발전시키는데 주요한 동력을 제공했다. 이때부터 인터넷과 인터넷 게임들이 등장하고 PC방이 본격적으로 보급되었다.<ref name="나무"></ref> PC방의 대중화로 인해 PC방 시장은 블루오션으로 인식되었다. 게임 열풍과 피시방 산업 대중화로 인해 이를 받쳐줄 수 있는 컴퓨터 사양이 필요하였고, 이것이 PC의 고사양화가 가속화되는 효과를 불러왔다. 이후, 컴퓨터 게임뿐만 아니라 2000년에 들어서는 화상 채팅이 퍼지면서, 많은 피시방들이 웹캠(WebCamera)을 설치했다. 또한 [[넥슨]], [[넷마블]] 등 온라인 게임 서비스 업체들은 피시방을 중심으로 이벤트 형식의 마케팅을 시행했으며, 피시방에서 온라인 게임을 이용하면 보너스 경험치 같은 혜택을 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2002년 이후 각 가정에서 컴퓨터 보급이 증가하고 인터넷 접속이 용이해지면서 피시방 산업에 진입했다가 퇴출하는 수가 증가했다.<ref name="백과"></ref> 피시방 사료 중 최장기간 집계되어 온 데이터인 게임백서 자료를 보면, 2000년 21,460개의 업종에서 2014년 13,146개로 피시방 수가 38.74% 감소한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15년 동안 창업과 폐업이 반복되면서 업장 수가 10분의 6으로 감소한 것이다.
  
 
[[파일:피시방통계.jpg|600픽셀|썸네일|'''연도별 PC방 증감 추이(2000~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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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시방 수의 변화를 살펴보면 PC방 수가 가장 많이 집계된 시점은 2001년이며, 가장 많이 감소한 것은 2011년임을 알 수 있다. 2010년부터는 피시방 산업이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보였다. 2001년에는 [[스타크래프트]]와 리니지 열풍, IMF 사태 이후 자영업 진입, IT 산업의 장려 등 피시방 산업이 흥할 수 밖에 없는 요건이었다. 반면, 2010년에는 피시방에 대한 다양한 규제가 시작된 시점이다. 피시방 전면금연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된 데에다가, 한국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 7 출시 이후 본격적으로 저작권 활동을 강화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수익 악화와 비용 증가는 대량 폐업 사태로 이어졌다. 2000년부터 2014년까지 피시방 수가 약 40% 감소했지만, 피시방 평균 피시 보유수는 오히려 증가했다. 피시방 전문 리서치 게임트릭스에 따르면, 피시 가동률 집계를 시작한 2008년 피시방 평균 피시 보유 대수 63.16대에서 2015년에는 78.51대로 늘었다. 불과 8년 사이에 평균 피시 대수가 15.35대, 24%나 증가한 것이다. 이러한 통계는 소형 피시방이 시장을 이탈하며 업소 수는 줄었지만 소수 피시방의 대형화가 진행되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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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시방 수의 변화를 살펴보면 PC방 수가 가장 많이 집계된 시점은 2001년이며, 가장 많이 감소한 것은 2011년임을 알 수 있다. 2010년부터는 피시방 산업이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보였다. 2001년에는 [[스타크래프트]]와 리니지 열풍, IMF 사태 이후 자영업 진입, IT 산업의 장려 등 피시방 산업이 흥할 수밖에 없는 요건이었다. 반면, 2010년에는 피시방에 대한 다양한 규제가 시작된 시점이다. 피시방 전면금연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된 데에다가, 한국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 7 출시 이후 본격적으로 저작권 활동을 강화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수익 악화와 비용 증가는 대량 폐업 사태로 이어졌다. 2000년부터 2014년까지 피시방 수가 약 40% 감소했지만, 피시방 평균 피시 보유수는 오히려 증가했다. 피시방 전문 리서치 게임트릭스에 따르면, 피시 가동률 집계를 시작한 2008년 피시방 평균 피시 보유 대수 63.16대에서 2015년에는 78.51대로 늘었다. 불과 8년 사이에 평균 피시 대수가 15.35대, 24%나 증가한 것이다. 이러한 통계는 소형 피시방이 시장을 이탈하며 업소 수는 줄었지만 소수 피시방의 대형화가 진행되었음을 보여준다.
  
 
[[파일:평균피시대수.jpg|400픽셀|썸네일|'''연 평균 PC 대수 (2008~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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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20일 (화) 09:54 판

PC방(피시방, Personal Computer 房)은 여러 대의 컴퓨터를 설치하고 손님들이 돈을 지불한 만큼 일정 시간 동안 컴퓨터를 이용하는 서비스 사업장이다.[1]

개요

PC방(피시방)은 컴퓨터 사용을 주 서비스로 하는 서비스 제공 공간이다. 주로 피시(Personal Computer)용 오락 게임을 위해 이용하는 사람이 많다. 현재의 피시방은 오락 게임뿐만 아니라 음식을 같이 제공하여 서비스와 휴게음식점을 병행하고 있다. 피시방 업은 법률상으로 인터넷 컴퓨터 게임 시설 제공업이다. 게임 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기 전의 법률상의 명칭은 멀티미디어 문화 콘텐츠 설비 제공업이었다. 초창기와 달리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기능을 확장하고 있다.[1]

역사

대한민국 초기의 피시방은 인터넷 카페와 비슷한 형태로 시작했다. 엠팔(EMPAL)의 멤버 안상수와 금누리가 홍대 상권에서 1988년 3월에 첫 개장하여 1991년에 폐장된 전자 카페가 피시방의 시초다.[2] 당시 전자 카페는 16비트 PC 2대에 전화선을 연결해 PC 통신을 이용했다. 이후 1994년,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BNC라는 이름의 인터넷 카페가 개장되었다. 이것이 국내 최초의 인터넷 카페다. 이 같은 인터넷 카페가 대학가 등 주요 상권에서 하나둘씩 오픈하기 시작했다. 1988년부터 1993년까지 언론에서 소개한 인터넷 카페들은 전부 전자 카페로 불렸으나 1994년부터는 이것들을 모뎀 카페, 네트워크 카페, 사이버 카페 등으로 불렀고, 바둑 등 간단한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1988년부터 1994년 사이 등장한 업종들은 지금의 PC방과는 거리가 멀었다. 외국의 인터넷 카페와 비슷한 느낌으로 출발해 PC 이용이 주목적이라기보다는 커피나 음료를 즐기는 사교 공간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3] 그 후 오락실과 현재 PC방의 중간 형태쯤 되는 업소도 등장했다. 오락실용 기계 세트를 이용해 안쪽에 컴퓨터와 키보드 등을 설치하고 시간제로 워크래프트 2 등을 할 수 있는 업소가 일부 있었다. 그렇지만 전국적으로 흥행하지는 못했다.[1] PC를 전면에 내세워 현재의 PC방과 같은 업종은 1996년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한 대량 실직 사태와 게임 스타크래프트가 등장하면서 PC방 시장이 단기간에 확장되었다. 1998년과 2000년 사이에 스타크래프트의 인기와 함께 전국에서 2만여 개의 PC방이 창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3] 처음에는 게임방과 PC방이라는 용어를 혼재해서 사용했다. 컴퓨터 활용이 적고 숙련자도 많이 없었으며, 게임 외의 수단이 적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인터넷 검색, 컴퓨터 업무 처리, 이메일 확인, 정보 검색, 인쇄 등이 가능해지고, 이용자 수가 늘면서 게임방보다 PC방으로 더 많이 불리게 되었다.[1] 1998년 IMF 외환위기 때 PC방 수가 늘어난 데에는 직장을 잃은 직장인들이 비교적 적은 자본으로 창업할 수 있는 PC방 자영업을 시작했기 대문이고 또 다른 이유는 김대중 정부가 IMF 위기 극복 대책으로 IT 산업을 추진해서였다. 스타크래프트와 리니지 등 인터넷 게임에 대한 열풍도 PC방 산업을 발전시키는데 주요한 동력을 제공했다. 이때부터 인터넷과 인터넷 게임들이 등장하고 PC방이 본격적으로 보급되었다.[1] PC방의 대중화로 인해 PC방 시장은 블루오션으로 인식되었다. 게임 열풍과 피시방 산업 대중화로 인해 이를 받쳐줄 수 있는 컴퓨터 사양이 필요하였고, 이것이 PC의 고사양화가 가속화되는 효과를 불러왔다. 이후, 컴퓨터 게임뿐만 아니라 2000년에 들어서는 화상 채팅이 퍼지면서, 많은 피시방들이 웹캠(WebCamera)을 설치했다. 또한 넥슨, 넷마블 등 온라인 게임 서비스 업체들은 피시방을 중심으로 이벤트 형식의 마케팅을 시행했으며, 피시방에서 온라인 게임을 이용하면 보너스 경험치 같은 혜택을 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2002년 이후 각 가정에서 컴퓨터 보급이 증가하고 인터넷 접속이 용이해지면서 피시방 산업에 진입했다가 퇴출하는 수가 증가했다.[2] 피시방 사료 중 최장기간 집계되어 온 데이터인 게임백서 자료를 보면, 2000년 21,460개의 업종에서 2014년 13,146개로 피시방 수가 38.74% 감소한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15년 동안 창업과 폐업이 반복되면서 업장 수가 10분의 6으로 감소한 것이다.

연도별 PC방 증감 추이(2000~2014년)

피시방 수의 변화를 살펴보면 PC방 수가 가장 많이 집계된 시점은 2001년이며, 가장 많이 감소한 것은 2011년임을 알 수 있다. 2010년부터는 피시방 산업이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보였다. 2001년에는 스타크래프트와 리니지 열풍, IMF 사태 이후 자영업 진입, IT 산업의 장려 등 피시방 산업이 흥할 수밖에 없는 요건이었다. 반면, 2010년에는 피시방에 대한 다양한 규제가 시작된 시점이다. 피시방 전면금연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된 데에다가, 한국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 7 출시 이후 본격적으로 저작권 활동을 강화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수익 악화와 비용 증가는 대량 폐업 사태로 이어졌다. 2000년부터 2014년까지 피시방 수가 약 40% 감소했지만, 피시방 평균 피시 보유수는 오히려 증가했다. 피시방 전문 리서치 게임트릭스에 따르면, 피시 가동률 집계를 시작한 2008년 피시방 평균 피시 보유 대수 63.16대에서 2015년에는 78.51대로 늘었다. 불과 8년 사이에 평균 피시 대수가 15.35대, 24%나 증가한 것이다. 이러한 통계는 소형 피시방이 시장을 이탈하며 업소 수는 줄었지만 소수 피시방의 대형화가 진행되었음을 보여준다.

연 평균 PC 대수 (2008~2015년)

피시 대수가 300~400대에 가까운 초대형 피시방은 수도권보다 임대료가 저렴한 지방에서 먼저 출현했다. 그리고 2010년경 서울에 400대 피시방이 등장하면서 수도권에서도 초대형 피시방의 시작이 예고되었다. 이듬해 인천 부평과 부천 지역 등에서 잇따라 300~400대 규모의 피시방이 개장했다. 이 같은 피시방 대형화 현상으로 피시방 시장이 축소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매장 수는 감소했지만 피시방 수요량은 크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피시방 수가 크게 감소한 반면 피시 대수는 증가한 현상을 피시방 업계의 구조조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중소형 피시방은 감소했지만 대형 피시방의 신규 창업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3]

종류

인터넷 카페

피시방

코인 피시방

성인 피시방

https://www.nocutnews.co.kr/news/5269425 http://m.kyeongin.com/view.php?key=20200915010003508

사이버 지식 정보방

https://namu.wiki/w/%EC%82%AC%EC%9D%B4%EB%B2%84%20%EC%A7%80%EC%8B%9D%20%EC%A0%95%EB%B3%B4%EB%B0%A9

외국의 피시방

베트남

https://www.ipn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86099

중국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onenuri888&logNo=221569677774

일본

http://www.sisaplus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1170

북한

https://www.idailynews.co.kr/m/view.php?idx=56645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5/07/13/2005071370205.html

피시방 요금 및 혜택

요금

https://namu.wiki/w/PC%EB%B0%A9/%EC%9A%94%EA%B8%88

https://www.donga.com/news/Economy/article/all/20190114/93685439/1

https://www.inven.co.kr/webzine/news/?news=211436

혜택

https://namu.wiki/w/PC%EB%B0%A9%20%ED%98%9C%ED%83%9D

사업 정보

경제적 측면

https://www.hankyung.com/economy/article/2020071716141

개인 소상공인 VS 대형 프랜차이즈

https://webcache.googleusercontent.com/search?q=cache:WlQmXI8B46sJ:https://rankro.tistory.com/189+&cd=1&hl=ko&ct=clnk&gl=kr

https://multion.tistory.com/217

유명인 피시방 창업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8943999&memberNo=4505449

주요 사건

https://www.mk.co.kr/news/society/view/2018/08/549955/

https://www.donga.com/news/Economy/article/all/20190114/93685439/1

각주

  1. 1.0 1.1 1.2 1.3 1.4 PC방〉, 《나무위키》
  2. 2.0 2.1 피시방〉, 《위키백과》
  3. 3.0 3.1 3.2 이상혁, 〈(창간특집) 창간 17주년에 돌이켜본 PC방의 역사〉, 《아이러브피시방》, 2016-06-17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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