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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트리스"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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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트리스'''(Tetris)는 네 개의 사각형으로 이루어진 테트로미노 블록이 7가지의 모양으로 떨어지며 이를 90도씩 회전하여 수평선을 빈틈없이 채워 없애는 [[퍼즐게임]]이다. 시간이 갈수록 더 빨리 떨어지며 꼭대기에 닿게 되면 게임이 종료된다.
 
'''테트리스'''(Tetris)는 네 개의 사각형으로 이루어진 테트로미노 블록이 7가지의 모양으로 떨어지며 이를 90도씩 회전하여 수평선을 빈틈없이 채워 없애는 [[퍼즐게임]]이다. 시간이 갈수록 더 빨리 떨어지며 꼭대기에 닿게 되면 게임이 종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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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테트리스.jpg|썸네일|300픽셀|'''아타리㈜ 테트리스''']]
  
 
==개요==
 
==개요==
[[알렉세이 레오니도비치 파지트노프]](Alexey Leonidovich Pajitnov, 러시아어: Алексей Леонидович Пажитнов)가 전통 퍼즐게임인 펜토미노(Pentomino)를 보고 착안하여 만든것이며 5개의 사각형 대신 4개의 사각형만을 사용하여 게임을 더욱 단순화 하였고, 이 블록의 이름을 테트로미노라고 부르기로 했다. 테트리스는 휴대폰에서 10억번 이상 내려 받아졌고 PC 버전은 공식 집계만 7억개 이상 팔렸다. 전 세계 185개국 50개 언어로 판매 중이고 아이튠즈 앱스토에서 유료 다운로드 앱 순위 10위 안에 든다. 30개의 다양한 플랫폼으로 나왔으며, 가장 많이 이식된 게임, 공식/비공식적으로 가장 많은 아류작이 나온 게임으로 기네스북에 기재되어 있다. 20세기에 가장 히트친 게임중 하나이자 21세기에도 여전히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게임이다. 그러나 과거 테트리스 게임은 구 소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처음 개발되어 철의 장막(Iron Curtain)을 넘어 온 지구를 휩쓸 때까지 [[닌텐도]]와 [[세가]], [[아타리]] 등‘저작권’과‘라이선스’라는 법적인 장애에 부딪쳐 큰 분쟁과 논란을 불러 일으켰고, 아직까지도 그 논란이 계속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그 예외는 아니다. 결국에는 미국의 블루 플래닛(Blue Planet Software-Bullet Proof Software)사에 판권이 있는것으로 결정되었다. 1996년 알렉세이 파지트노프가 세운 테트리스사(TTC)가 판권을 관리하고 있다. 1995년 라이선스 종료와 함께 저작권을 되찾으며 저작권 수입을 얻고있다. PDA나 핸드폰, 게임보이(Game Boy) 또는 디지털 시계의 작은 액정 모니터 화면을 통해서 쉽게 즐길 수 있는 퍼즐 게임류가 주는 재미는 그 작동 방법이 단순하면서도 언제 어디서나 혼자서 얼마든지 즐길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비디오게임이나 컴퓨터게임과는 비교할 수 없다. 그와 같은 다양한 퍼즐 게임류 중에서 아마도 테트리스를 능가하는 게임은 전무후무할 것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 세계를 풍미한 테트리스 게임은 그 동안 팔린 숫자만 해도 엄청나고 이를 변형한 게임도 수없이 등장하여 비디오게임 또는 컴퓨터게임의 역사에서 한 획을 긋는 중요한 게임이다.<ref name="분쟁사">정경석 변호사, 〈[https://kocca.kr/knowledge/internal/insu/__icsFiles/afieldfile/2010/05/02/70187.pdf 테트리스 게임저작권 분쟁사]〉, 《게임산업저널》, 2018-10-05</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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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트리스는 휴대폰에서 10억번 이상 내려 받아졌고 PC 버전은 공식 집계만 7억개 이상 팔렸으며, 불법, 비공식적으로 제작되거나 유포된 것까지 하면 그 이상일 것으로 추정한다.다. 전 세계 185개국 50개 언어로 판매 중이고 아이튠즈 앱스토어에서 유료 다운로드 앱 순위 10위 안에 든다. 30개의 다양한 플랫폼으로 나왔으며, 가장 많이 이식된 게임, 공식/비공식적으로 가장 많은 아류작이 나온 게임으로 기네스북에 기재되어 있다. 20세기에 가장 히트친 게임중 하나이자 21세기에도 여전히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게임이다. 테트리스 시작시 모스크바의 성 바실리 대성당이 배경화면과 메인화면으로 자주 등장했기 때문에 테트리스의 상징이 되었으며, 러시아의 전통음악인 '브라딘스키' 등 러시아의 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역할도 하였다. 그러나 과거 테트리스 게임은 구 소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처음 개발되어 철의 장막(Iron Curtain)을 넘어 온 지구를 휩쓸 때까지 [[닌텐도]]와 [[세가]], [[아타리]] 등‘저작권’과‘라이선스’라는 법적인 장애에 부딪쳐 큰 분쟁과 논란을 불러 일으켰고, 아직까지도 그 논란이 계속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그 예외는 아니다. 결국에는 미국의 블루 플래닛(Blue Planet Software-Bullet Proof Software)사에 판권이 있는것으로 결정되었다. 1996년 알렉세이 파지트노프가 세운 테트리스사(TTC)가 판권을 관리하고 있다. 1995년 라이선스 종료와 함께 저작권을 되찾으며 저작권 수입을 얻고있다. 개인 정보 단말기(PDA, Personal Digital Assistant)나 핸드폰, 게임보이(Game Boy) 또는 디지털 시계의 작은 액정 모니터 화면을 통해서 쉽게 즐길 수 있는 퍼즐 게임류가 주는 재미는 그 작동 방법이 단순하면서도 언제 어디서나 혼자서 얼마든지 즐길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비디오게임이나 컴퓨터게임과는 비교할 수 없다. 그와 같은 다양한 퍼즐 게임류 중에서 아마도 테트리스를 능가하는 게임은 전무후무할 것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 세계를 풍미한 테트리스 게임은 그 동안 팔린 숫자만 해도 엄청나고 이를 변형한 게임도 수없이 등장하여 비디오게임 또는 컴퓨터게임의 역사에서 한 획을 긋는 중요한 게임이다.<ref name="분쟁사">정경석 변호사, 〈[https://kocca.kr/knowledge/internal/insu/__icsFiles/afieldfile/2010/05/02/70187.pdf 테트리스 게임저작권 분쟁사]〉, 《게임산업저널》, 2018-10-05</ref> 테트리스가 재미있는 이유에 대해서 파지노프는 세가지 이유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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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트리스가 추상적인 게임으로서 매력이 있다는 점이다. 테트리스는 문화적인 배경이나 특정한 캐릭터가 없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다. 문화적 배경이나 캐릭터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이 같은 매력을 모르는 사람은 아예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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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력적이지 않은 게임이기 때문에 여성들이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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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되거나 낡은 게임이 아니라 새로운 게임으로 유지하기 때문이다. 닌텐도의 스코어링 시스템, 블록의 랜덤등장, 다음블록을 보여주는 시스템, 홀드기능, 소프트 드롭기능, T스핀, 콤보기능 등 25년 동안 새로운 아이디어를 게임에 반영하고 발전시키기 때문에 처음에 고안되었던 게임에 비해서는 많이 다른 게임이라고 생각한다.<ref>김명희 기자, 〈[https://www.gamemeca.com/view.php?gid=77190 테트리스 개발자가 밝히는 테트리스의 모든 것]〉, 《게임메카》, 2009-04-01</ref>  
  
 
==역사==
 
==역사==
테트리스는 [[알렉세이 레오니도비치 파지트노프]]가 1984년 6월 6일 처음 만들었다. 1956년 [[러시아]]에서 태어난 알렉세이 파지노프의 아버지는 미술과 연극 비평가였고, 그의 어머니는 신문 등에 글을 기고하는 사람이었다. 위와 같은 부모의 직업적 특성에 기인하여 수학에서 재능을 보였고 모스크바 항공연구소의 수학응용분과에서 자리를 얻게 되었다. 그곳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다가 컴퓨터를 접하고 모스크바 과학 아카데미의 컴퓨터 센터로 연구 및 개발을 위해 옮겼다. 한편, 알렉세이 파지노프는 미국의 솔로몬 골롬(Solomon Golomb)이라는 수학자가 개발한 기하학적인 게임인 펜토미노(Pentomino)14)라는 것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펜토미노 게임이란 5개의 동일한 정사각형 조각으로 구성된 아래의 영어 알파벳 모양의 12가지의 글자 조각을 이용해서 하나의 직사각형(rectangle)을 만드는 게임이다. 이것을 보고 컴퓨터화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으며, 보다 간단한 4개의 정사각형으로 구성된 글자조각7개를 생각해 내게 되었고, 4개를 뜻하는 그리스 숫자 접두어인 Tetra와 파지노프가 즐겨하던 테니스를 합쳐서 만든 것이 이름의 유래이다. 참고로, 심리학에서는 7개의 숫자, 7개의 모양, 7가지의 개념과 같이 인간이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것은 일곱 개라는 이론이 있다고 한다. 알렉세이 파지노프도 7개의 테트리스 모양은 즉시 인식될 수 있고, 그것에 대한 반응도 직감적이라고 생각하였다.<ref name="분쟁사"></ref>일렉트로니카 60이라는 컴퓨터에서 개발하였으며 [[드미트리 파블로프스키]](Dmitry Pavlovsky)[[바딘 게라시모프]](Vadin Gerasimov)도움으로 이를 IBM PC로 이식한 게임이다. 이때부터 테트리스의 수많은 아류작들이 나왔으며 당시 파지노프는 소비에트 정부에 고용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저작권료를 받을 수 없었다. 테트리스 게임이 1986년 출시된 이래 예견된 바대로 전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알렉세이 파지노프는 구 소련의 국민이었기 때문에 테트리스 게임의 개발자라는 이름과 명예를 얻었을 뿐 게임의 라이선스 비즈니스로 인한 로열티 수입은 얻지 못했다. 그러다가 알렉세이 파지노프는 테트리스 게임 사업가인 헹크 로저스(Henk Rogers)의 도움을 받아 1991년 블라디미르 포힐코(Vladimir Pokhilko21))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고,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 기반을 둔 아니마텍 인터내셔널사(AnimaTek International, Inc)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미국 서부에서 소프트웨어 개발 등의 사업을 잠시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니마텍 인터내셔널사의 사장으로 일하던 블라디미르 포힐코는 회사의 경제적인 어려움을 견디다 못해 결국 1998년 9월 22일 12살 된 아들과 39살의 아내를 살해하고는 그 자신도 자살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한편, 미국으로 이민 온 알렉세이 파지노프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곳은 어디일까? 미국의 컴퓨터 관련회사 중 구 소련의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영입해 간 곳은 어디일까?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사이다. 알렉세이파지노프는 1996년 10월부터 미국 워싱턴주 레드몬드(Redmond)에 본사가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게임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는데, 슈팅게임을 좋아하지 않는 알렉세이 파지노프는 여전히‘Pandoras Box’라는 게임과 같은 퍼즐게임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후 파지노프는 소비에트 붕괴 후 1991년 미국으로 이주했으며 테트리스사를 설립한 후에 테트리스의 판권을 얻었다. 1996년에서 2006년까지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일하며 XBox에 헥시크란 게임을 포함시키기도 했다.<ref>지후대디, 〈[https://lucy7599.tistory.com/391 테트리스(Tetris) 이야기]〉, 《티스토리》, 2014-07-15</ref> 한국에 테트리스가 보급된 것은 1988년 전후로 아타리(Atari)사의 아케이드 게임 버전이다. 그런데 이 버전은  아타리가 원저작자가 아닌 미러소프트에게 속아서 구매한 불법 버전이다. 테트리스 개발자 알렉세이 파지노프는 1996년까지 테트리스로 돈을 벌지 못했다. 테트리스가 개발된 1984년은 소련이 개방을 하기 전으로 사유재산 개념이 확실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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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트리스는 [[알렉세이 레오니도비치 파지트노프]](Alexey Leonidovich Pajitnov, 러시아어: Алексей Леонидович Пажитнов)가 1984년 6월 6일 처음 만들었다. 5개의 정사각형으로 구성된 12가지의 글자조각을 이용하여 다양한 도형을 만드는 전통 퍼즐게임인 펜토미노(Pentomino)에서 착안하였으며, 5개가 아닌 4개의 정사각형만을 사용하여 게임을 더욱 단순화 하였고, 이 블록의 이름을 테트로미노라고 부르기로 했다. 4개의 정사각형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4개를 뜻하는 그리스 숫자 접두어인 테트라(Tetra)와 파지노프가 즐겨하던 테니스를 합쳐서 이 게임의 이름을 테트리스라고 하였다. 1956년 [[러시아]]에서 태어난 알렉세이 파지노프의 아버지는 미술과 연극 비평가였고, 그의 어머니는 신문 등에 글을 기고하는 사람이었다. 위와 같은 부모의 직업적 특성에 기인하여 수학에서 재능을 보였고 모스크바 항공연구소의 수학응용분과에서 자리를 얻게 되었다. 그곳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다가 컴퓨터를 접하고 모스크바 과학 아카데미의 컴퓨터 센터로 연구 및 개발을 위해 옮겼다. 한편, 알렉세이 파지노프는 미국의 솔로몬 골롬(Solomon Golomb)이라는 수학자가 개발한 기하학적인 게임인 펜토미노(Pentomino)라는 것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펜토미노 게임이란 5개의 동일한 정사각형 조각으로 구성된 아래의 영어 알파벳 모양의 12가지의 글자 조각을 이용해서 하나의 직사각형(rectangle)을 만드는 게임이다. 이것을 보고 컴퓨터화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으며, 보다 간단한 4개의 정사각형으로 구성된 글자조각7개(알파벳 I, T, O, L, J, S, Z를)를 생각해 내게 되었고, 4개를 뜻하는 그리스 숫자 접두어인 Tetra와 파지노프가 즐겨하던 테니스를 합쳐서 만든 것이 이름의 유래이다. 참고로, 심리학에서는 7개의 숫자, 7개의 모양, 7가지의 개념과 같이 인간이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것은 일곱 개라는 이론이 있다고 한다. 알렉세이 파지노프도 7개의 테트리스 모양은 즉시 인식될 수 있고, 그것에 대한 반응도 직감적이라고 생각하였다.<ref name="분쟁사"></ref>일렉트로니카 60이라는 컴퓨터에서 개발하였으며 [[바딘 게라시모프]](Vadin Gerasimov)는 테트리스의 칼라 버전을 만들 때 두달가까이 도움을 주었고, [[드미트리 파블로프스키]](Dmitry Pavlovsky)는 높은 점수를 추적할 수 있는 테이블을 추가하였다고 한다. 이 둘의 도움으로 테트리스를 일렉트로니카60에서 IBM PC로 이식할 수 있었다. 여기서 시작된 테트리스는 대중으로 퍼져나갔고, 모스크바 전역에 퍼지게 되었다. 이때부터 테트리스의 수많은 아류작들이 나왔으며 당시 파지노프는 소비에트 정부에 고용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저작권료를 받을 수 없었다. 테트리스 게임이 1986년 출시된 이래 예견된 바대로 전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알렉세이 파지노프는 구 소련의 국민이었기 때문에 테트리스 게임의 개발자라는 이름과 명예를 얻었을 뿐 게임의 라이선스 비즈니스로 인한 로열티 수입은 얻지 못했다. 그러다가 알렉세이 파지노프는 테트리스 게임 사업가인 헹크 로저스(Henk Rogers)의 도움을 받아 1991년 블라디미르 포힐코(Vladimir Pokhilko21))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고,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 기반을 둔 아니마텍 인터내셔널사(AnimaTek International, Inc)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미국 서부에서 소프트웨어 개발 등의 사업을 잠시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니마텍 인터내셔널사의 사장으로 일하던 블라디미르 포힐코는 회사의 경제적인 어려움을 견디다 못해 결국 1998년 9월 22일 12살 된 아들과 39살의 아내를 살해하고는 그 자신도 자살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한편, 미국으로 이민 온 알렉세이파지노프는 1996년 10월부터 미국 워싱턴주 레드몬드(Redmond)에 본사가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게임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는데, 퍼즐게임에 관심이 있는 알렉세이 파지노프는 여전히‘Pandoras Box’라는 게임과 같은 퍼즐게임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후 파지노프는 소비에트 붕괴 후 1991년 미국으로 이주했으며 테트리스사를 설립한 후에 테트리스의 판권을 얻었다. 1996년에서 2006년까지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일하며 XBox에 헥시크란 게임을 포함시키기도 했다.<ref>지후대디, 〈[https://lucy7599.tistory.com/391 테트리스(Tetris) 이야기]〉, 《티스토리》, 2014-07-15</ref> 한국에 테트리스가 보급된 것은 1988년 전후로 아타리(Atari)사의 아케이드 게임 버전이다. 그런데 이 버전은  아타리가 원저작자가 아닌 미러소프트에게 속아서 구매한 불법 버전이다. 테트리스 개발자 알렉세이 파지노프는 1996년까지 테트리스로 돈을 벌지 못했다. 테트리스가 개발된 1984년은 소련이 개방을 하기 전으로 사유재산 개념이 확실치 않았다.
  
 
그래서 소련 정보기관 소속이었던 파지노프는 이 게임에 대한 개발비나 수익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실질적인 저작권은 파지노프가 아닌 소련 정부 기관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1991년 소련 붕괴 후 파지노프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고 1996년 [[헨크 로저스]]와 함께 ‘테트리스 컴퍼니 : 블루플래닛 소프트웨어’를 세워서 돈을 벌게 되었다. 1992년 영국이 [[닥터 스핀]](Doctor Spin)은 테트리스의 음악 중에 Kalinka를 유로 댄스풍으로 편곡한 ‘테트리스’라는 곡으로 영국차트 6위까지 올랐다. 테트리스에는 러시아 민요인 Bradinsky, Karinka, Loginska, Troika가 8비트 전자음악으로 들어가 있었다. 또, [[스테이지]]를 깨면 러시아 민속 춤을 추는 남자가 등장해 러시아의 문화를 알리는 데도 한 몫 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테트리스는 2011년 네덜란드 VU 암스테르담 대학에서 만든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테트리스다. 광집게 장비를 이용해서 만들어진 이 게임은 [[전자현미경]]으로 봐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큰 테트리스는 2014년 4월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 빌딩 벽면을 LED 램프를 이용한 테트리스 게임이다. 29층의 필라델피아 시라 센터의 외벽에 1,400개의 LED전구를 달고 100m 떨어진 곳에서 [[조이스틱]]으로 테트리스 게임을 했다. 테트리스를 많이 하면 머리가 좋아진다. 테트리스는 많이 할수록 긍정적인 효과가 많다는 연구 결과가 꽤 많다. 미국의 심리연구네트워크 연구진은 10대 소녀 27명을 대상으로 하루에 30분씩 3개월간 테트리스를 하게 한 결과 좌측 전두엽과 측두엽의 피질이 두꺼워지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테트리스를 많이 할수록 기억력, 집중력, 공간 문제 해결력 등이 향상 된다는 뜻이다.<ref>썬도그, 〈[http://www.earlyadopter.co.kr/1672 테트리스 30주년, 재미있는 이야기 11가지]〉, 《얼리어답터》, 2014-06-14</ref>
 
그래서 소련 정보기관 소속이었던 파지노프는 이 게임에 대한 개발비나 수익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실질적인 저작권은 파지노프가 아닌 소련 정부 기관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1991년 소련 붕괴 후 파지노프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고 1996년 [[헨크 로저스]]와 함께 ‘테트리스 컴퍼니 : 블루플래닛 소프트웨어’를 세워서 돈을 벌게 되었다. 1992년 영국이 [[닥터 스핀]](Doctor Spin)은 테트리스의 음악 중에 Kalinka를 유로 댄스풍으로 편곡한 ‘테트리스’라는 곡으로 영국차트 6위까지 올랐다. 테트리스에는 러시아 민요인 Bradinsky, Karinka, Loginska, Troika가 8비트 전자음악으로 들어가 있었다. 또, [[스테이지]]를 깨면 러시아 민속 춤을 추는 남자가 등장해 러시아의 문화를 알리는 데도 한 몫 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테트리스는 2011년 네덜란드 VU 암스테르담 대학에서 만든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테트리스다. 광집게 장비를 이용해서 만들어진 이 게임은 [[전자현미경]]으로 봐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큰 테트리스는 2014년 4월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 빌딩 벽면을 LED 램프를 이용한 테트리스 게임이다. 29층의 필라델피아 시라 센터의 외벽에 1,400개의 LED전구를 달고 100m 떨어진 곳에서 [[조이스틱]]으로 테트리스 게임을 했다. 테트리스를 많이 하면 머리가 좋아진다. 테트리스는 많이 할수록 긍정적인 효과가 많다는 연구 결과가 꽤 많다. 미국의 심리연구네트워크 연구진은 10대 소녀 27명을 대상으로 하루에 30분씩 3개월간 테트리스를 하게 한 결과 좌측 전두엽과 측두엽의 피질이 두꺼워지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테트리스를 많이 할수록 기억력, 집중력, 공간 문제 해결력 등이 향상 된다는 뜻이다.<ref>썬도그, 〈[http://www.earlyadopter.co.kr/1672 테트리스 30주년, 재미있는 이야기 11가지]〉, 《얼리어답터》, 2014-06-14</ref>
  
 
==테트로미노==
 
==테트로미노==
[[파일:테트로미노의 색.jpg|썸네일|200픽셀|'''테트로미노의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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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테트리스 색상표.jpg|썸네일|300픽셀|'''테트로미노의 색''']]
이미지-링크 http://usbc.egloos.com/v/2372740
 
  
==저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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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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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리의 테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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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의 테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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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게임 테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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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테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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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트리스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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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가의 테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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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M의 DOS 테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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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렉트로니카의 테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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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분쟁==
 
테트리스는 순식간에 모스크바를 장악하고 러시아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당시 러시아는 공산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사업은 오로지 정부의 소관이었다. 즉, 알렉세이 파지노프는 테트리스를 만들었음에도 돈을 벌지 못했다. 영국의 안드로메다 소프트는 테트리스에 반해서 게임 판권을 얻고자 파지트노프에게 협상을 요청했다. 당황한 그는 과학 아카데미에 알렸고 곧 지루한 협상이 시작됐다. 모두가 돈을 원했지만 러시아인들은 사업에 서툴렀다.
 
테트리스는 순식간에 모스크바를 장악하고 러시아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당시 러시아는 공산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사업은 오로지 정부의 소관이었다. 즉, 알렉세이 파지노프는 테트리스를 만들었음에도 돈을 벌지 못했다. 영국의 안드로메다 소프트는 테트리스에 반해서 게임 판권을 얻고자 파지트노프에게 협상을 요청했다. 당황한 그는 과학 아카데미에 알렸고 곧 지루한 협상이 시작됐다. 모두가 돈을 원했지만 러시아인들은 사업에 서툴렀다.
안드로메다 소프트는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러시아 측 소견을 확대해석해 테트리스를 다른 회사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미국과 러시아는 평화 분위기였고 테트리스는 러시아 느낌이 물씬 나도록 디자인되어 미국에서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아직 정식으로 판권 계약서에 사인도 하지 않은 상태로 말이다.안드로메다 소프트는 뒤늦게 PC 판권을 확보했다. 하지만 세상엔 오락실용 아케이드 게임기도 있고, 닌텐도는 가정용 게임기에 이어 휴대용 게임기까지 개발했다. 모두가 테트리스를 원했다. 안드로메다 소프트는 또 확보하지도 못한 판권을 열심히 팔았다. 게임회사 남코, 세가 등이 연루되며 판이 커졌고, [[닌텐도]]와 [[아타리]]는 존재하지도 않는 판권을 놓고 소송을 벌였다. 이 와중에 러시아는 저작권 협회인 ELORG를 신설해 테트리스 판권을 처음부터 다시 검토했고, 파지트노프는 국가 이익에 큰 손해를 입혔다며 조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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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메다 소프트는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러시아 측 소견을 확대해석해 테트리스를 다른 회사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미국과 러시아는 평화 분위기였고 테트리스는 러시아 느낌이 물씬 나도록 디자인되어 미국에서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아직 정식으로 판권 계약서에 사인도 하지 않은 상태로 말이다.안드로메다 소프트는 뒤늦게 PC 판권을 확보했다. 하지만 세상엔 오락실용 아케이드 게임기도 있고, 닌텐도는 가정용 게임기에 이어 휴대용 게임기까지 개발했다. 모두가 테트리스를 원했다. 안드로메다 소프트는 또 확보하지도 못한 판권을 열심히 팔았다. 게임회사 남코, 세가 등이 연루되며 판이 커졌고, [[닌텐도]]와 [[아타리]]는 존재하지도 않는 판권을 놓고 소송을 벌였다. 이 와중에 러시아는 저작권 협회인 ELORG를 신설해 테트리스 판권을 처음부터 다시 검토했고, 파지트노프는 국가 이익에 큰 손해를 입혔다며 조사를 받았다. 덤으로 기네스 기록중에 하나가 심심하니까 게임보이에 테트리스 넣고 미르 우주정거장에 간 러시아 우주 비행사가 있다. 그래서 세계 최초로 우주에서 플레이 한 비디오 게임이 되었으며, 2011년 그 게임보이가 경매에 붙여졌다. 세계 최초의 두뇌 발달 기능성 게임에 올랐다. 비디오 게임으로 인한 최대 법정 구형이다. 비행기에서 테트리스 하다가 4개월을 구형받았
  
결국 파지트노프는 테트리스의 저작권을 되찾았다. 해피엔딩은 아니다. 박스 브라운은 어처구니없는 희극과 끔찍한 비극이 교차하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뒤엉킨 치사한 비즈니스 전쟁을 간결한 선과 노란색 포인트 컬러만 활용해 유머러스한 그래픽노블로 재창조했다. 우리에게는 게임 테트리스 외에도 즐길 거리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ref>박성표,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267 테트리스 개발자의 운명을 건 저작권 게임]〉, 《시사인》, 2017-10-18</ref><ref>게임어바웃,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16827546&memberNo=11710666 소련의 힘(?)을 보여준 게임, '테트리스'의 이면에서 벌어진 싸움은?]〉, 《네이버 포스트》, 2018-10-05</ref><ref name="분쟁사"></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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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파지트노프는 테트리스의 저작권을 되찾았다. 해피엔딩은 아니다. 박스 브라운은 어처구니없는 희극과 끔찍한 비극이 교차하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뒤엉킨 치사한 비즈니스 전쟁을 간결한 선과 노란색 포인트 컬러만 활용해 유머러스한 그래픽노블로 재창조했다. 우리에게는 게임 테트리스 외에도 즐길 거리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ref>박성표,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267 테트리스 개발자의 운명을 건 저작권 게임]〉, 《시사인》, 2017-10-18</ref><ref>게임어바웃,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16827546&memberNo=11710666 소련의 힘(?)을 보여준 게임, '테트리스'의 이면에서 벌어진 싸움은?]〉, 《네이버 포스트》, 2018-10-05</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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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세이 파지노프가 만든 테트리스 게임은 간단하고 중독성이 있어서 삽시간에 마치 요원의 불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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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1985년 젤레노돌스크(Zelenodolsk)에서 열린 컴퓨터게임 대회에서 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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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는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테트리스가 철의 장막(Iron Curtain)을 넘어 서구까지 퍼지는 것은 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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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제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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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트리스가 제일 먼저 건너간 곳은 헝가리였다. 헝가리에서는 헝가리 컴퓨터 프로그래머에 의해 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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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 게임의 IBM PC 버전이 애플II 버전과 코모도어(Commodore) 64 버전으로 변형되어 있었다.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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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등장하는 인물이 헝가리 출신의 정치적 망명가 로버트 스타인(Robert Stein)이다. 로버트 스타인은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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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에서 안드로메다(Andromeda)라는 소프트웨어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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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apest)에 있는 컴퓨터 과학 연구소인 SZKI를 방문했을 때 테트리스를 처음 만나게 되었고, 게임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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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 아닌 자신이 그것을 좋아할 정도면 테트리스는 매우 좋은 게임이란 것을 느끼고는 테트리스가 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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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의 과학아카데미 컴퓨터 센터에서 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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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타고난 사업가인 로버트 스타인은 사전에 러시아 과학아카데미나 알렉세이 파지노프로부터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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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런 승낙도 받지 않고 테트리스 게임에 관한 아케이드(coin-op) 버전과 휴대용(hand-held) 버전을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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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모든 권리를 영국의 미러소프트(Mirrorsoft)회사와 미국의 스펙트럼 홀로바이트(Spectrum Holoby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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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게 판매하였다. 그리고 나서는 러시아 과학아카데미나 알렉세이 파지노프로부터 라이선스를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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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위해 애를 썼고, 모스크바까지 날아가서 준비된 계약서에 서명을 받으려고 하였지만, 러시아의 관련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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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들은 로버트 스타인이나 그의 의도에 대해 의심을 하였고, 몇 일간의 협상이 결렬되고 결국 로버트 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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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은 서명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모스크바를 떠나게 되었다. 따라서 로버트 스타인은 테트리스 게임은 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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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 프로그래머에 의해 발명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테트리스 게임에 대한 권리를 훔칠 생각까지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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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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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미러소프트와 스펙트럼 홀로바이트는 위와 같은 로버트 스타인의 법적인 문제점을 알지 못한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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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에서 PC용 테트리스 게임을 아메리카와 유럽에서 출시하였고,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그러자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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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Evening News의 한 리포터는 철의 장막 건너편에 있던 테트리스 게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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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스타인에게 전화를 걸어 테트리스 게임에 관한 것을 물어보기 시작하였고, 로버트 스타인의 잘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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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 행동과 계획은 실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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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러시아에서는 새롭게 조직된 엘로그가 테트리스 게임에 대한 협상권을 인수받았고, 그 감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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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rector)인 알렉산더 알렉싱코(Alexander Alexinko)는 그간 모스크바와 런던 사이에 오간 모든 서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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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토하고는 알렉세이 파지노프가 실수를 범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엘로그는 따라서 로버트 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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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사업을 중지시키고 테트리스 게임의 국제적인 사업을 직접적으로 인수하려고 하였다. 궁지에 몰린 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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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 스타인은 비열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모스크바에 대한 스캔들을 만들겠다고 협박하였고, 엘로그와 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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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 스타인은 잠시 서로의 약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며 긴장관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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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결국 로버트 스타인과 엘로그는 합의하여 1988년 5월 10일 서면계약을 체결하게 되었고, 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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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기존에 서구에서 제작된 테트리스 게임을 승인하고, 로버트 스타인의 안드로메다에게 테트리스를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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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한 종류의 컴퓨터(different types of computers)에 변형(adapt)시키는 권리를 주었다. 로버트 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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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아케이드 게임과 휴대용 버전에 대한 권리를 부여받지 못했으며, 또한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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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맷의 버전에 대해서도 역시 권리를 부여받지 못해 또 다른 분쟁의 불씨를 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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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스타인이 곧 아케이드 게임 및 휴대용 버전에 대한 권리도 곧 취득하게 될 것이라는 말만 믿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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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러소프트는 미리 앞서가 그 권리를 아타리 게임즈(Atari Games)에게 판매하였고, 따라서 아타리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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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는 아메리카에서 판매하게 될 자신의 아케이드용 테트리스 게임을 준비하고 있었고, 일본에서 아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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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용 테트리스 게임에 대한 권리는 세가(Sega)에게 판매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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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스타인과 알렉산더 알렉싱코는 프랑스 파리에서 만나 다시 협상을 하였으나, 둘은 전혀 동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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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의 관계에 있었다. 로버트 스타인은 급하게 테트리스 게임의 아케이드 버전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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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알렉싱코는 그 동안 미지급된 로열티를 문제 삼았다. 두 가지의 서로 다른 주제에 관하여 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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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견을 전혀 좁히지 못했고, 서로의 입장 차이만 확인한 채 헤어져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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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헹크 라저스의 등장과 함께 테트리스 게임의 라이선스 관계는 점점 더 복잡해지는데, 헹크 라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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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1988년 전자무역쇼에서 스펙트럼 홀로바이트의 컴퓨터게임을 본 후 그 게임을 일본에서 컴퓨터, 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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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게임 시스템, 아케이드 플랫폼으로 배급하기 위해 스펙트럼 홀로바이트와 접촉하였다. 그리하여 헹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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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저스는 일본에서 테트리스 게임의 컴퓨터게임 권리(플로피 디스크)와 비디오게임 권리를 취득하게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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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스펙트럼 홀로바이트의 길먼 루이(Gilman Louie)는 위 딜(deal)의 성사를 보고하기 위해 런던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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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러소프트의 짐 마코노치(Jim Mackonochie)에게 전화를 했다가 깜짝 놀라게 된다. 미러소프트가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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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권리를 아타리 게임즈에게 팔아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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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먼 루이는 할 수 없이 헹크 라저스에게 사과하면서 아타리 게임즈가 자신도 모르게 이미 일본과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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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대한 테트리스의 비디오 게임권을 갖게 되었고, 다만 헹크 라저스의 플로피 디스크권은 안전하다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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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서 만약 일본에서 다른 권리를 원한다면 아타리 게임즈와 협상해야만 한다고 하였다. 이에 헹크 라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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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아타리 게임즈에 접촉하였으나, 테트리스의 일본에 대한 아케이드 게임권은 이미 세가에게 팔려 버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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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러자 헹크 라저스는 최소한 일본에서 비디오게임 시스템에 대한 테트리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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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는 확보하고 싶었고, 아타리 게임즈의 히데 나카지마(Hide Nakajima)와 접촉하여 결국 일본에서 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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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스 게임의 컴퓨터권과 닌텐도의 패미콤(Famicom)을 비롯한 가정용 비디오게임 시스템의 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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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게 되었다. 헹크 라저스는 PC용 테트리스 게임을 일본에서 1988년 11월에 출시하고, 한 달 뒤 패미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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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전도 출시했다. 일본에서도 테트리스 게임이 인기를 끈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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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닌텐도사의 미노루 아라카와(Minoru Arakawa)는 게임 보이(Game Boy)를 출시하면서 테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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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 게임을 여기에 장착시키고 싶어 했는데, 그의 변호사들은 미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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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트는 이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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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미노루 아라카와는 헹크 라저스를 만나는 자리에서 만약 헹크 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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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가 테트리스의 휴대용 버전에 대한 권리를 얻는다면, 닌텐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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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그로부터 서브라이선스(sublicense)를 받겠다고 제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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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헹크 라저스는 로버트 스타인과 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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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스의 휴대용 버전에 대한 권리 취득 여부에 대해 여러 차례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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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로, 편지로, 팩스로 논의하였지만, 결국 직접 모스크바로 날아가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 헹크 라저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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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로 가서 알렉세이 파지노프와 새로 바뀐 엘로그의 책임자 에프게니 니콜라에비치 벨리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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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geni Nikolaevich Belikov)를 만나 딜을 성사시켰다. 모두가 만족한 상태에서 헹크 라저스는 자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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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팔고 있는 테트리스의 홈비디오게임 버전을 러시아인들에게 내보였다. 그러나 그 순간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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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들은 깜짝 놀라면서 자신들은 홈비디오게임 버전을 승인한 적이 없다고 하였고, 헹크 라저스는 아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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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즈와 텐젠사로부터 사 들인 것이라고 하였으나, 곧 헹크 라저스는 자신이 권리가 없는 자들로부터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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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를 사들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헹크 라저스는 위와 같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러소프트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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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리 게임즈와 싸우면서 테트리스 게임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새로운 파트너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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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닌텐도사가 테트리스 게임 분쟁사에서 전면에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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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헹크 라저스의 도움으로 니콜라이 벨리코프는 복잡한 라이선스 관계를 정리하는 과정을 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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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로버트 스타인과의 관계에서 기존에 부여한 테트리스 게임의 컴퓨터 권리의 범위를 명확히 하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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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아케이드 버전과 휴대용 버전에 대한 권리를 취득하기 위해 찾아온 로버트 스타인에게 기존 계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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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대한 추가본(amendment)이라고 하면서 한 장의 종이를 내민다. 그리고는 위 추가본 계약서에 서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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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만 아케이드 버전과 휴대용 버전에 대한 협상을 할 수 있다고 하였다. 한 장의 추가본 계약서에는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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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로열티 지급 스케쥴(schedule)과 그 지분(percentage)이 나와 있었고, 원본 계약의‘컴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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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uter)’를“퍼스널 컴퓨터(personal computer)란 프로세서(processor), 모니터(monitor), 디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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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disk drive), 자판(keyboard) 및 작동시스템(operating system)으로 구성된 것을 말한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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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규정하는 정의(definition) 조항이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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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로 돌아와서 유심히 위 추가계약서를 또 보고 또 보았지만, 로버트 스타인은 결국 행간의 의미를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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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하지 못하고, 그동안 엘로그와 안드로메다 사이에 로열티 지급이 가장 문제가 되었던 점을 감안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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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인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바로 로열티가 제때에 제대로 지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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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지 않은 점이라고 생각하고는, 위 추가계약서에 서명을 해 주고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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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물론, 로버트 스타인이 테트리스 게임의 아케이드 권리를 얻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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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지만, 선급금으로 15만불을 지급하여야 했다. 로버트 스타인은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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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니콜라이 벨리코프의 연막작전에 넘어가고 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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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미러소프트의 케빈 맥스웰은 로버트 스타인보다 더 어려운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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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였다. 케빈 맥스웰이나 로버트 스타인, 헹크 라저스가 모스크바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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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로그를 찾은 것은 모두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졌다. 케빈 맥스웰은 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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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라이 벨리코프에게 왜 아케이드용 버전과 휴대용 버전에 대한 딜이 늦어지는지 물었으나, 니콜라이 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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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코프는 전혀 다른 주제를 갖고 나왔다. 즉, 니콜라이 벨리코프는 헹크 라저스가 가져 왔던 테트리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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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게임 카트리지를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다. 케빈 맥스웰은 자신의 회사가 아타리 게임즈에게 위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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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게임에 관한 권리를 주어서 위 게임이 출시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따라서 케빈 맥스웰은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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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회사가 만든 위 게임을 아마도 해적판(pirated game)일 것이라고 하였다. 니콜라이 벨리코프는 위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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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게임에 관한 것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 케빈 맥스웰에게 프로토콜 약정서(protocol agreement)를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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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고는 여기에 서명케 하고 미러소프트에게 테트리스의 남은 권리--아케이드 권리, 휴대용 버전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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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 상품화권(merchandising right)--에 대해 제안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는 일 주일 이내에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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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할 것을 요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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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이 테트리스 게임의 휴대용 버전에 대한 권리를 취득하고 로버트 스타인과 케빈 맥스웰과의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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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관계까지도 명확히 한 이후, 닌텐도사의 미노루 아라카와는 이제 비디오게임에 관한 권리를 얻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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헹크 라저스를 다시 모스크바로 보내기로 결정하는데, 이번에는 존 허즈(John Huhs)라는 뉴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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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대동시켰다. 모스크바에서 엘로그와 미팅을 마친 헹크 라저스와 존 허즈 변호사는 닌텐도사를 대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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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엘로그에게 테트리스의 홈비디오 게임에 관한 권리에 대하여 제안을 하였고, 위 제안의 내용에는 헹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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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저스와 존 허즈가 닌텐도사 아라카와로부터 권한을 부여받은 엄청남 금액의 개런티(guarantee)도 담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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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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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엘로그로부터 테트리스의 홈비디오 게임에 관한 권리에 대해 제안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은 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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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맥스웰은 엘로그의 재촉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기간 내에 제안을 하지 않았다. 케빈 맥스웰은 자신의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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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 만든 테트리스 홈비디오 버전을 해적판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회사가 홈비디오 버전에 대해 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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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을 스스로 인정하고는, 그 권리를 얻기 위한 입찰에도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헹크 라저스와 엘로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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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에 놀아나 버린 것이다. 딜의 성사를 확신한 존 허즈 변호사는 곧바로 미국 워싱턴주 레드몬드의 닌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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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사에 전화를 해서 즉시 모스크바로 날아 올 것을 요청했다. 이미 게임은 끝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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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와 같이 테트리스 게임에 관한 서구의 여러 게임업체들의 경쟁이 결국은 헹크 라저스와 닌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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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의 승리로 막을 내리면서 한 가지 필요한 절차가 남아 있었다. 그것은 바로 소송이었다. 미러소프트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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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 일본 내에서 테트리스 게임의 비디오권을 부여받은 아타리 게임즈는 이미 테트리스의 텐젠(Ten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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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전을 개발, 보급하기 위해 수백만 달러를 투자했는데, 갑자기 닌텐도사로부터 위 테트리스의 개발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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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라는 경고장을 받은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소송은 불가피했고, 텐젠사는 닌텐도사를 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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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 소송에서 아타리 게임즈의 주장은 로버트 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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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엘로그로부터 허여받은 테트리스 게임의 컴퓨터권에는 당연히 닌텐도사의 NES도 포함된다는 것이었다. 즉, 닌텐도사 스스로도 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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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Famicom 즉, ‘Family Computer’라고 부르듯이 컴퓨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텐젠사가 받은 권리는 그 사슬(chain)이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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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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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 name="분쟁사"></ref>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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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27일 (화) 11:09 판

테트리스(Tetris)는 네 개의 사각형으로 이루어진 테트로미노 블록이 7가지의 모양으로 떨어지며 이를 90도씩 회전하여 수평선을 빈틈없이 채워 없애는 퍼즐게임이다. 시간이 갈수록 더 빨리 떨어지며 꼭대기에 닿게 되면 게임이 종료된다.

아타리㈜ 테트리스

개요

테트리스는 휴대폰에서 10억번 이상 내려 받아졌고 PC 버전은 공식 집계만 7억개 이상 팔렸으며, 불법, 비공식적으로 제작되거나 유포된 것까지 하면 그 이상일 것으로 추정한다.다. 전 세계 185개국 50개 언어로 판매 중이고 아이튠즈 앱스토어에서 유료 다운로드 앱 순위 10위 안에 든다. 30개의 다양한 플랫폼으로 나왔으며, 가장 많이 이식된 게임, 공식/비공식적으로 가장 많은 아류작이 나온 게임으로 기네스북에 기재되어 있다. 20세기에 가장 히트친 게임중 하나이자 21세기에도 여전히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게임이다. 테트리스 시작시 모스크바의 성 바실리 대성당이 배경화면과 메인화면으로 자주 등장했기 때문에 테트리스의 상징이 되었으며, 러시아의 전통음악인 '브라딘스키' 등 러시아의 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역할도 하였다. 그러나 과거 테트리스 게임은 구 소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처음 개발되어 철의 장막(Iron Curtain)을 넘어 온 지구를 휩쓸 때까지 닌텐도세가, 아타리 등‘저작권’과‘라이선스’라는 법적인 장애에 부딪쳐 큰 분쟁과 논란을 불러 일으켰고, 아직까지도 그 논란이 계속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그 예외는 아니다. 결국에는 미국의 블루 플래닛(Blue Planet Software-Bullet Proof Software)사에 판권이 있는것으로 결정되었다. 1996년 알렉세이 파지트노프가 세운 테트리스사(TTC)가 판권을 관리하고 있다. 1995년 라이선스 종료와 함께 저작권을 되찾으며 저작권 수입을 얻고있다. 개인 정보 단말기(PDA, Personal Digital Assistant)나 핸드폰, 게임보이(Game Boy) 또는 디지털 시계의 작은 액정 모니터 화면을 통해서 쉽게 즐길 수 있는 퍼즐 게임류가 주는 재미는 그 작동 방법이 단순하면서도 언제 어디서나 혼자서 얼마든지 즐길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비디오게임이나 컴퓨터게임과는 비교할 수 없다. 그와 같은 다양한 퍼즐 게임류 중에서 아마도 테트리스를 능가하는 게임은 전무후무할 것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 세계를 풍미한 테트리스 게임은 그 동안 팔린 숫자만 해도 엄청나고 이를 변형한 게임도 수없이 등장하여 비디오게임 또는 컴퓨터게임의 역사에서 한 획을 긋는 중요한 게임이다.[1] 테트리스가 재미있는 이유에 대해서 파지노프는 세가지 이유를 들었다.

  • 테트리스가 추상적인 게임으로서 매력이 있다는 점이다. 테트리스는 문화적인 배경이나 특정한 캐릭터가 없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다. 문화적 배경이나 캐릭터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이 같은 매력을 모르는 사람은 아예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 폭력적이지 않은 게임이기 때문에 여성들이 좋아한다.
  • 오래되거나 낡은 게임이 아니라 새로운 게임으로 유지하기 때문이다. 닌텐도의 스코어링 시스템, 블록의 랜덤등장, 다음블록을 보여주는 시스템, 홀드기능, 소프트 드롭기능, T스핀, 콤보기능 등 25년 동안 새로운 아이디어를 게임에 반영하고 발전시키기 때문에 처음에 고안되었던 게임에 비해서는 많이 다른 게임이라고 생각한다.[2]

역사

테트리스는 알렉세이 레오니도비치 파지트노프(Alexey Leonidovich Pajitnov, 러시아어: Алексей Леонидович Пажитнов)가 1984년 6월 6일 처음 만들었다. 5개의 정사각형으로 구성된 12가지의 글자조각을 이용하여 다양한 도형을 만드는 전통 퍼즐게임인 펜토미노(Pentomino)에서 착안하였으며, 5개가 아닌 4개의 정사각형만을 사용하여 게임을 더욱 단순화 하였고, 이 블록의 이름을 테트로미노라고 부르기로 했다. 4개의 정사각형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4개를 뜻하는 그리스 숫자 접두어인 테트라(Tetra)와 파지노프가 즐겨하던 테니스를 합쳐서 이 게임의 이름을 테트리스라고 하였다. 1956년 러시아에서 태어난 알렉세이 파지노프의 아버지는 미술과 연극 비평가였고, 그의 어머니는 신문 등에 글을 기고하는 사람이었다. 위와 같은 부모의 직업적 특성에 기인하여 수학에서 재능을 보였고 모스크바 항공연구소의 수학응용분과에서 자리를 얻게 되었다. 그곳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다가 컴퓨터를 접하고 모스크바 과학 아카데미의 컴퓨터 센터로 연구 및 개발을 위해 옮겼다. 한편, 알렉세이 파지노프는 미국의 솔로몬 골롬(Solomon Golomb)이라는 수학자가 개발한 기하학적인 게임인 펜토미노(Pentomino)라는 것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펜토미노 게임이란 5개의 동일한 정사각형 조각으로 구성된 아래의 영어 알파벳 모양의 12가지의 글자 조각을 이용해서 하나의 직사각형(rectangle)을 만드는 게임이다. 이것을 보고 컴퓨터화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으며, 보다 간단한 4개의 정사각형으로 구성된 글자조각7개(알파벳 I, T, O, L, J, S, Z를)를 생각해 내게 되었고, 4개를 뜻하는 그리스 숫자 접두어인 Tetra와 파지노프가 즐겨하던 테니스를 합쳐서 만든 것이 이름의 유래이다. 참고로, 심리학에서는 7개의 숫자, 7개의 모양, 7가지의 개념과 같이 인간이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것은 일곱 개라는 이론이 있다고 한다. 알렉세이 파지노프도 7개의 테트리스 모양은 즉시 인식될 수 있고, 그것에 대한 반응도 직감적이라고 생각하였다.[1]일렉트로니카 60이라는 컴퓨터에서 개발하였으며 바딘 게라시모프(Vadin Gerasimov)는 테트리스의 칼라 버전을 만들 때 두달가까이 도움을 주었고, 드미트리 파블로프스키(Dmitry Pavlovsky)는 높은 점수를 추적할 수 있는 테이블을 추가하였다고 한다. 이 둘의 도움으로 테트리스를 일렉트로니카60에서 IBM PC로 이식할 수 있었다. 여기서 시작된 테트리스는 대중으로 퍼져나갔고, 모스크바 전역에 퍼지게 되었다. 이때부터 테트리스의 수많은 아류작들이 나왔으며 당시 파지노프는 소비에트 정부에 고용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저작권료를 받을 수 없었다. 테트리스 게임이 1986년 출시된 이래 예견된 바대로 전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알렉세이 파지노프는 구 소련의 국민이었기 때문에 테트리스 게임의 개발자라는 이름과 명예를 얻었을 뿐 게임의 라이선스 비즈니스로 인한 로열티 수입은 얻지 못했다. 그러다가 알렉세이 파지노프는 테트리스 게임 사업가인 헹크 로저스(Henk Rogers)의 도움을 받아 1991년 블라디미르 포힐코(Vladimir Pokhilko21))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고,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 기반을 둔 아니마텍 인터내셔널사(AnimaTek International, Inc)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미국 서부에서 소프트웨어 개발 등의 사업을 잠시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니마텍 인터내셔널사의 사장으로 일하던 블라디미르 포힐코는 회사의 경제적인 어려움을 견디다 못해 결국 1998년 9월 22일 12살 된 아들과 39살의 아내를 살해하고는 그 자신도 자살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한편, 미국으로 이민 온 알렉세이파지노프는 1996년 10월부터 미국 워싱턴주 레드몬드(Redmond)에 본사가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게임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는데, 퍼즐게임에 관심이 있는 알렉세이 파지노프는 여전히‘Pandoras Box’라는 게임과 같은 퍼즐게임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후 파지노프는 소비에트 붕괴 후 1991년 미국으로 이주했으며 테트리스사를 설립한 후에 테트리스의 판권을 얻었다. 1996년에서 2006년까지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일하며 XBox에 헥시크란 게임을 포함시키기도 했다.[3] 한국에 테트리스가 보급된 것은 1988년 전후로 아타리(Atari)사의 아케이드 게임 버전이다. 그런데 이 버전은 아타리가 원저작자가 아닌 미러소프트에게 속아서 구매한 불법 버전이다. 테트리스 개발자 알렉세이 파지노프는 1996년까지 테트리스로 돈을 벌지 못했다. 테트리스가 개발된 1984년은 소련이 개방을 하기 전으로 사유재산 개념이 확실치 않았다.

그래서 소련 정보기관 소속이었던 파지노프는 이 게임에 대한 개발비나 수익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실질적인 저작권은 파지노프가 아닌 소련 정부 기관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1991년 소련 붕괴 후 파지노프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고 1996년 헨크 로저스와 함께 ‘테트리스 컴퍼니 : 블루플래닛 소프트웨어’를 세워서 돈을 벌게 되었다. 1992년 영국이 닥터 스핀(Doctor Spin)은 테트리스의 음악 중에 Kalinka를 유로 댄스풍으로 편곡한 ‘테트리스’라는 곡으로 영국차트 6위까지 올랐다. 테트리스에는 러시아 민요인 Bradinsky, Karinka, Loginska, Troika가 8비트 전자음악으로 들어가 있었다. 또, 스테이지를 깨면 러시아 민속 춤을 추는 남자가 등장해 러시아의 문화를 알리는 데도 한 몫 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테트리스는 2011년 네덜란드 VU 암스테르담 대학에서 만든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테트리스다. 광집게 장비를 이용해서 만들어진 이 게임은 전자현미경으로 봐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큰 테트리스는 2014년 4월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 빌딩 벽면을 LED 램프를 이용한 테트리스 게임이다. 29층의 필라델피아 시라 센터의 외벽에 1,400개의 LED전구를 달고 100m 떨어진 곳에서 조이스틱으로 테트리스 게임을 했다. 테트리스를 많이 하면 머리가 좋아진다. 테트리스는 많이 할수록 긍정적인 효과가 많다는 연구 결과가 꽤 많다. 미국의 심리연구네트워크 연구진은 10대 소녀 27명을 대상으로 하루에 30분씩 3개월간 테트리스를 하게 한 결과 좌측 전두엽과 측두엽의 피질이 두꺼워지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테트리스를 많이 할수록 기억력, 집중력, 공간 문제 해결력 등이 향상 된다는 뜻이다.[4]

테트로미노

테트로미노의 색

종류

아타리의 테트리스 닌텐도의 테트리스 한게임 테트리스 건물 테트리스 테트리스 99 세가의 테트리스 IBM의 DOS 테트리스 일렉트로니카의 테트리스


저작권 분쟁

테트리스는 순식간에 모스크바를 장악하고 러시아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당시 러시아는 공산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사업은 오로지 정부의 소관이었다. 즉, 알렉세이 파지노프는 테트리스를 만들었음에도 돈을 벌지 못했다. 영국의 안드로메다 소프트는 테트리스에 반해서 게임 판권을 얻고자 파지트노프에게 협상을 요청했다. 당황한 그는 과학 아카데미에 알렸고 곧 지루한 협상이 시작됐다. 모두가 돈을 원했지만 러시아인들은 사업에 서툴렀다. 안드로메다 소프트는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러시아 측 소견을 확대해석해 테트리스를 다른 회사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미국과 러시아는 평화 분위기였고 테트리스는 러시아 느낌이 물씬 나도록 디자인되어 미국에서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아직 정식으로 판권 계약서에 사인도 하지 않은 상태로 말이다.안드로메다 소프트는 뒤늦게 PC 판권을 확보했다. 하지만 세상엔 오락실용 아케이드 게임기도 있고, 닌텐도는 가정용 게임기에 이어 휴대용 게임기까지 개발했다. 모두가 테트리스를 원했다. 안드로메다 소프트는 또 확보하지도 못한 판권을 열심히 팔았다. 게임회사 남코, 세가 등이 연루되며 판이 커졌고, 닌텐도아타리는 존재하지도 않는 판권을 놓고 소송을 벌였다. 이 와중에 러시아는 저작권 협회인 ELORG를 신설해 테트리스 판권을 처음부터 다시 검토했고, 파지트노프는 국가 이익에 큰 손해를 입혔다며 조사를 받았다. 덤으로 기네스 기록중에 하나가 심심하니까 게임보이에 테트리스 넣고 미르 우주정거장에 간 러시아 우주 비행사가 있다. 그래서 세계 최초로 우주에서 플레이 한 비디오 게임이 되었으며, 2011년 그 게임보이가 경매에 붙여졌다. 세계 최초의 두뇌 발달 기능성 게임에 올랐다. 비디오 게임으로 인한 최대 법정 구형이다. 비행기에서 테트리스 하다가 4개월을 구형받았

결국 파지트노프는 테트리스의 저작권을 되찾았다. 해피엔딩은 아니다. 박스 브라운은 어처구니없는 희극과 끔찍한 비극이 교차하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뒤엉킨 치사한 비즈니스 전쟁을 간결한 선과 노란색 포인트 컬러만 활용해 유머러스한 그래픽노블로 재창조했다. 우리에게는 게임 테트리스 외에도 즐길 거리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5][6] 알렉세이 파지노프가 만든 테트리스 게임은 간단하고 중독성이 있어서 삽시간에 마치 요원의 불꽃처럼 모스크바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1985년 젤레노돌스크(Zelenodolsk)에서 열린 컴퓨터게임 대회에서 테트 리스는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테트리스가 철의 장막(Iron Curtain)을 넘어 서구까지 퍼지는 것은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이었다. 테트리스가 제일 먼저 건너간 곳은 헝가리였다. 헝가리에서는 헝가리 컴퓨터 프로그래머에 의해 테트 리스 게임의 IBM PC 버전이 애플II 버전과 코모도어(Commodore) 64 버전으로 변형되어 있었다. 여기 서 등장하는 인물이 헝가리 출신의 정치적 망명가 로버트 스타인(Robert Stein)이다. 로버트 스타인은 영 국에서 안드로메다(Andromeda)라는 소프트웨어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Budapest)에 있는 컴퓨터 과학 연구소인 SZKI를 방문했을 때 테트리스를 처음 만나게 되었고, 게임이용 자가 아닌 자신이 그것을 좋아할 정도면 테트리스는 매우 좋은 게임이란 것을 느끼고는 테트리스가 러시 아의 과학아카데미 컴퓨터 센터에서 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타고난 사업가인 로버트 스타인은 사전에 러시아 과학아카데미나 알렉세이 파지노프로부터 아 무런 승낙도 받지 않고 테트리스 게임에 관한 아케이드(coin-op) 버전과 휴대용(hand-held) 버전을 제외 한 모든 권리를 영국의 미러소프트(Mirrorsoft)회사와 미국의 스펙트럼 홀로바이트(Spectrum Holobyte) 회사에게 판매하였다. 그리고 나서는 러시아 과학아카데미나 알렉세이 파지노프로부터 라이선스를 받 기 위해 애를 썼고, 모스크바까지 날아가서 준비된 계약서에 서명을 받으려고 하였지만, 러시아의 관련 인 사들은 로버트 스타인이나 그의 의도에 대해 의심을 하였고, 몇 일간의 협상이 결렬되고 결국 로버트 스타 인은 서명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모스크바를 떠나게 되었다. 따라서 로버트 스타인은 테트리스 게임은 헝 가리 프로그래머에 의해 발명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테트리스 게임에 대한 권리를 훔칠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반면, 미러소프트와 스펙트럼 홀로바이트는 위와 같은 로버트 스타인의 법적인 문제점을 알지 못한 상 황에서 PC용 테트리스 게임을 아메리카와 유럽에서 출시하였고,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그러자 미국 CBS Evening News의 한 리포터는 철의 장막 건너편에 있던 테트리스 게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로버트 스타인에게 전화를 걸어 테트리스 게임에 관한 것을 물어보기 시작하였고, 로버트 스타인의 잘못 된 행동과 계획은 실패하였다. 한편, 러시아에서는 새롭게 조직된 엘로그가 테트리스 게임에 대한 협상권을 인수받았고, 그 감독관 (director)인 알렉산더 알렉싱코(Alexander Alexinko)는 그간 모스크바와 런던 사이에 오간 모든 서신을 검토하고는 알렉세이 파지노프가 실수를 범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엘로그는 따라서 로버트 스타인 의 사업을 중지시키고 테트리스 게임의 국제적인 사업을 직접적으로 인수하려고 하였다. 궁지에 몰린 로 버트 스타인은 비열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모스크바에 대한 스캔들을 만들겠다고 협박하였고, 엘로그와 로 버트 스타인은 잠시 서로의 약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며 긴장관계에 있었다. 그러나 결국 로버트 스타인과 엘로그는 합의하여 1988년 5월 10일 서면계약을 체결하게 되었고, 엘로 그는 기존에 서구에서 제작된 테트리스 게임을 승인하고, 로버트 스타인의 안드로메다에게 테트리스를 다 양한 종류의 컴퓨터(different types of computers)에 변형(adapt)시키는 권리를 주었다. 로버트 스타인 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아케이드 게임과 휴대용 버전에 대한 권리를 부여받지 못했으며, 또한 다른 포맷의 버전에 대해서도 역시 권리를 부여받지 못해 또 다른 분쟁의 불씨를 안고 있었다. 로버트 스타인이 곧 아케이드 게임 및 휴대용 버전에 대한 권리도 곧 취득하게 될 것이라는 말만 믿고서 미러소프트는 미리 앞서가 그 권리를 아타리 게임즈(Atari Games)에게 판매하였고, 따라서 아타리 게임 즈는 아메리카에서 판매하게 될 자신의 아케이드용 테트리스 게임을 준비하고 있었고, 일본에서 아케이 드용 테트리스 게임에 대한 권리는 세가(Sega)에게 판매해 버린 것이다. 로버트 스타인과 알렉산더 알렉싱코는 프랑스 파리에서 만나 다시 협상을 하였으나, 둘은 전혀 동상이 몽의 관계에 있었다. 로버트 스타인은 급하게 테트리스 게임의 아케이드 버전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였고, 알렉산더 알렉싱코는 그 동안 미지급된 로열티를 문제 삼았다. 두 가지의 서로 다른 주제에 관하여 둘은 이견을 전혀 좁히지 못했고, 서로의 입장 차이만 확인한 채 헤어져야 했다. 한편, 헹크 라저스의 등장과 함께 테트리스 게임의 라이선스 관계는 점점 더 복잡해지는데, 헹크 라저스 는 1988년 전자무역쇼에서 스펙트럼 홀로바이트의 컴퓨터게임을 본 후 그 게임을 일본에서 컴퓨터, 비디 오게임 시스템, 아케이드 플랫폼으로 배급하기 위해 스펙트럼 홀로바이트와 접촉하였다. 그리하여 헹크 라저스는 일본에서 테트리스 게임의 컴퓨터게임 권리(플로피 디스크)와 비디오게임 권리를 취득하게 되었 다. 스펙트럼 홀로바이트의 길먼 루이(Gilman Louie)는 위 딜(deal)의 성사를 보고하기 위해 런던에 있는 미러소프트의 짐 마코노치(Jim Mackonochie)에게 전화를 했다가 깜짝 놀라게 된다. 미러소프트가 이미 위 권리를 아타리 게임즈에게 팔아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길먼 루이는 할 수 없이 헹크 라저스에게 사과하면서 아타리 게임즈가 자신도 모르게 이미 일본과 미국 에 대한 테트리스의 비디오 게임권을 갖게 되었고, 다만 헹크 라저스의 플로피 디스크권은 안전하다고 하 면서 만약 일본에서 다른 권리를 원한다면 아타리 게임즈와 협상해야만 한다고 하였다. 이에 헹크 라저스 는 아타리 게임즈에 접촉하였으나, 테트리스의 일본에 대한 아케이드 게임권은 이미 세가에게 팔려 버렸 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러자 헹크 라저스는 최소한 일본에서 비디오게임 시스템에 대한 테트리스의 권리는 확보하고 싶었고, 아타리 게임즈의 히데 나카지마(Hide Nakajima)와 접촉하여 결국 일본에서 테 트리스 게임의 컴퓨터권과 닌텐도의 패미콤(Famicom)을 비롯한 가정용 비디오게임 시스템의 권리를 갖게 되었다. 헹크 라저스는 PC용 테트리스 게임을 일본에서 1988년 11월에 출시하고, 한 달 뒤 패미콤용 버전도 출시했다. 일본에서도 테트리스 게임이 인기를 끈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편, 닌텐도사의 미노루 아라카와(Minoru Arakawa)는 게임 보이(Game Boy)를 출시하면서 테트리 스 게임을 여기에 장착시키고 싶어 했는데, 그의 변호사들은 미러소 프트는 이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 이 에 미노루 아라카와는 헹크 라저스를 만나는 자리에서 만약 헹크 라 저스가 테트리스의 휴대용 버전에 대한 권리를 얻는다면, 닌텐도사 는 그로부터 서브라이선스(sublicense)를 받겠다고 제안하였다. 게임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헹크 라저스는 로버트 스타인과 테 트리스의 휴대용 버전에 대한 권리 취득 여부에 대해 여러 차례 전 화로, 편지로, 팩스로 논의하였지만, 결국 직접 모스크바로 날아가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 헹크 라저스는 모스크바로 가서 알렉세이 파지노프와 새로 바뀐 엘로그의 책임자 에프게니 니콜라에비치 벨리코프 (Evgeni Nikolaevich Belikov)를 만나 딜을 성사시켰다. 모두가 만족한 상태에서 헹크 라저스는 자신이 일본에서 팔고 있는 테트리스의 홈비디오게임 버전을 러시아인들에게 내보였다. 그러나 그 순간 러시아 인들은 깜짝 놀라면서 자신들은 홈비디오게임 버전을 승인한 적이 없다고 하였고, 헹크 라저스는 아타리 게임즈와 텐젠사로부터 사 들인 것이라고 하였으나, 곧 헹크 라저스는 자신이 권리가 없는 자들로부터 권 리를 사들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헹크 라저스는 위와 같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러소프트와 아 타리 게임즈와 싸우면서 테트리스 게임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새로운 파트너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바 로 닌텐도사가 테트리스 게임 분쟁사에서 전면에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헹크 라저스의 도움으로 니콜라이 벨리코프는 복잡한 라이선스 관계를 정리하는 과정을 밟는다. 우선, 로버트 스타인과의 관계에서 기존에 부여한 테트리스 게임의 컴퓨터 권리의 범위를 명확히 하기 위 해서, 아케이드 버전과 휴대용 버전에 대한 권리를 취득하기 위해 찾아온 로버트 스타인에게 기존 계약서 에 대한 추가본(amendment)이라고 하면서 한 장의 종이를 내민다. 그리고는 위 추가본 계약서에 서명을 해야만 아케이드 버전과 휴대용 버전에 대한 협상을 할 수 있다고 하였다. 한 장의 추가본 계약서에는 단 지 로열티 지급 스케쥴(schedule)과 그 지분(percentage)이 나와 있었고, 원본 계약의‘컴퓨터 (computer)’를“퍼스널 컴퓨터(personal computer)란 프로세서(processor), 모니터(monitor), 디스크 드라이브(disk drive), 자판(keyboard) 및 작동시스템(operating system)으로 구성된 것을 말한다.”라 고 규정하는 정의(definition) 조항이 있을 뿐이었다. 호텔로 돌아와서 유심히 위 추가계약서를 또 보고 또 보았지만, 로버트 스타인은 결국 행간의 의미를 파 악하지 못하고, 그동안 엘로그와 안드로메다 사이에 로열티 지급이 가장 문제가 되었던 점을 감안하면 러시아인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바로 로열티가 제때에 제대로 지급 되지 않은 점이라고 생각하고는, 위 추가계약서에 서명을 해 주고 만 다. 물론, 로버트 스타인이 테트리스 게임의 아케이드 권리를 얻기는 하였지만, 선급금으로 15만불을 지급하여야 했다. 로버트 스타인은 결 국 니콜라이 벨리코프의 연막작전에 넘어가고 만 셈이다. 다음, 미러소프트의 케빈 맥스웰은 로버트 스타인보다 더 어려운 상 대였다. 케빈 맥스웰이나 로버트 스타인, 헹크 라저스가 모스크바의 엘로그를 찾은 것은 모두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졌다. 케빈 맥스웰은 니 콜라이 벨리코프에게 왜 아케이드용 버전과 휴대용 버전에 대한 딜이 늦어지는지 물었으나, 니콜라이 벨 리코프는 전혀 다른 주제를 갖고 나왔다. 즉, 니콜라이 벨리코프는 헹크 라저스가 가져 왔던 테트리스의 비디오게임 카트리지를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다. 케빈 맥스웰은 자신의 회사가 아타리 게임즈에게 위 비 디오게임에 관한 권리를 주어서 위 게임이 출시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따라서 케빈 맥스웰은 자신 의 회사가 만든 위 게임을 아마도 해적판(pirated game)일 것이라고 하였다. 니콜라이 벨리코프는 위 비 디오게임에 관한 것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 케빈 맥스웰에게 프로토콜 약정서(protocol agreement)를 내 밀고는 여기에 서명케 하고 미러소프트에게 테트리스의 남은 권리--아케이드 권리, 휴대용 버전에 대한 권리, 상품화권(merchandising right)--에 대해 제안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는 일 주일 이내에 제 안할 것을 요청하였다. 위와 같이 테트리스 게임의 휴대용 버전에 대한 권리를 취득하고 로버트 스타인과 케빈 맥스웰과의 권 리관계까지도 명확히 한 이후, 닌텐도사의 미노루 아라카와는 이제 비디오게임에 관한 권리를 얻기 위해 헹크 라저스를 다시 모스크바로 보내기로 결정하는데, 이번에는 존 허즈(John Huhs)라는 뉴욕 변호사 도 대동시켰다. 모스크바에서 엘로그와 미팅을 마친 헹크 라저스와 존 허즈 변호사는 닌텐도사를 대리하 여 엘로그에게 테트리스의 홈비디오 게임에 관한 권리에 대하여 제안을 하였고, 위 제안의 내용에는 헹크 라저스와 존 허즈가 닌텐도사 아라카와로부터 권한을 부여받은 엄청남 금액의 개런티(guarantee)도 담겨 있었다. 한편, 엘로그로부터 테트리스의 홈비디오 게임에 관한 권리에 대해 제안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은 케 빈 맥스웰은 엘로그의 재촉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기간 내에 제안을 하지 않았다. 케빈 맥스웰은 자신의 회 사가 만든 테트리스 홈비디오 버전을 해적판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회사가 홈비디오 버전에 대해 권리가 없음을 스스로 인정하고는, 그 권리를 얻기 위한 입찰에도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헹크 라저스와 엘로그의 의도에 놀아나 버린 것이다. 딜의 성사를 확신한 존 허즈 변호사는 곧바로 미국 워싱턴주 레드몬드의 닌텐 도사에 전화를 해서 즉시 모스크바로 날아 올 것을 요청했다. 이미 게임은 끝나버렸다. 다만, 이와 같이 테트리스 게임에 관한 서구의 여러 게임업체들의 경쟁이 결국은 헹크 라저스와 닌텐도 사의 승리로 막을 내리면서 한 가지 필요한 절차가 남아 있었다. 그것은 바로 소송이었다. 미러소프트로부 터 일본 내에서 테트리스 게임의 비디오권을 부여받은 아타리 게임즈는 이미 테트리스의 텐젠(Tengen) 버전을 개발, 보급하기 위해 수백만 달러를 투자했는데, 갑자기 닌텐도사로부터 위 테트리스의 개발을 중 지하라는 경고장을 받은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소송은 불가피했고, 텐젠사는 닌텐도사를 상대 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 소송에서 아타리 게임즈의 주장은 로버트 스타인 이 엘로그로부터 허여받은 테트리스 게임의 컴퓨터권에는 당연히 닌텐도사의 NES도 포함된다는 것이었다. 즉, 닌텐도사 스스로도 NES 를 Famicom 즉, ‘Family Computer’라고 부르듯이 컴퓨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텐젠사가 받은 권리는 그 사슬(chain)이 너무 약했다. [1]

각주

  1. 1.0 1.1 1.2 정경석 변호사, 〈테트리스 게임저작권 분쟁사〉, 《게임산업저널》, 2018-10-05
  2. 김명희 기자, 〈테트리스 개발자가 밝히는 테트리스의 모든 것〉, 《게임메카》, 2009-04-01
  3. 지후대디, 〈테트리스(Tetris) 이야기〉, 《티스토리》, 2014-07-15
  4. 썬도그, 〈테트리스 30주년, 재미있는 이야기 11가지〉, 《얼리어답터》, 2014-06-14
  5. 박성표, 〈테트리스 개발자의 운명을 건 저작권 게임〉, 《시사인》, 2017-10-18
  6. 게임어바웃, 〈소련의 힘(?)을 보여준 게임, '테트리스'의 이면에서 벌어진 싸움은?〉, 《네이버 포스트》, 2018-10-05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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