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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비트메인의 전 대표인 우지환의 위명에 가려지긴 했지만 스티븐 다이의 전성기 시절, 비트코인의 총 해시파워중 무려 15%가량을 확보하고 있었다고 하니 당시 영향력을 알 수 있다. | 이제는 비트메인의 전 대표인 우지환의 위명에 가려지긴 했지만 스티븐 다이의 전성기 시절, 비트코인의 총 해시파워중 무려 15%가량을 확보하고 있었다고 하니 당시 영향력을 알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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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자되는 이야기로는 커뮤니케이션, 정보시스템 박사 과정을 밟던 중 "비트코인을 알아야 한다"는 교수의 말 한마디로 중국 최대 전자 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라를 박차고 나와 블록체인 업계로 뛰어들게 되었고 그의 인생은 바뀌게 된다. | 회자되는 이야기로는 커뮤니케이션, 정보시스템 박사 과정을 밟던 중 "비트코인을 알아야 한다"는 교수의 말 한마디로 중국 최대 전자 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라를 박차고 나와 블록체인 업계로 뛰어들게 되었고 그의 인생은 바뀌게 된다. |
2019년 2월 25일 (월) 11:48 판
패트릭 다이(Patrick Dai)는 중국의 이더리움이라고 불리는 큐텀(Qtum, 퀀텀이라고도 함)의 창시자이다.
학력
- Draper University
- 2007년 ~ 2011년 sichuan University Bachelor's Degree, Computer Science
- 2011년 ~ 2012년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of China Master's Degree, Computer Science
- 2011년 ~ 2015년 University of Chinese Academy of Sciences Doctor of Philosophy(Ph.D.), communication and information system[1]
약력
- 2014년 06월 ~ 2015년 01월 Alibaba.com Product Developer and Manager
- 2015년 01월 ~ 2016년 01월 Factom Technical Advisor
- 2015년 10월 ~ 2016년 03월 vechain CTO
- 2015년 10월 ~ 2016년 10월 bitse group CTO
- 2015년 04월 ~ 현재 meilink Director of Mei link China
- 2016년 03월 ~ 현재 Qtum Foundation Founder[1]
주요경력
계기
미국 경제 주간지인 포보스에서 "30세 이하 중국의 젊은 혁신가"로 선정한적 있는 큐텀 프로젝트의 대표이다.
사실 그는 중국에서도 블록체인 시장에 일찍 뛰어든 사람 중 한명이다. 패트릭(Patrick), 아니 스티븐(Steven) 다이를 처음 알린건 채굴 업자로 왕성히 활동 했던 2012년이었다.
이제는 비트메인의 전 대표인 우지환의 위명에 가려지긴 했지만 스티븐 다이의 전성기 시절, 비트코인의 총 해시파워중 무려 15%가량을 확보하고 있었다고 하니 당시 영향력을 알 수 있다.
계기
회자되는 이야기로는 커뮤니케이션, 정보시스템 박사 과정을 밟던 중 "비트코인을 알아야 한다"는 교수의 말 한마디로 중국 최대 전자 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라를 박차고 나와 블록체인 업계로 뛰어들게 되었고 그의 인생은 바뀌게 된다.
2014년 스티븐 다이는 비트코인을 활용한 결제 시스템인 비트베이(BitBay)의 개발자로 활동을 했다. 같은 해 12월 다른 개발자의 내부 고발로 비트베이는 스캠임이 알려지고 스티븐 다이는 대표적인 스캐머들(Scammer)중 한명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큐텀 탄생
그리고 그 이후 2016년 2년간의 잠적을 끝낸 스티븐 다이는 갑자기 패트릭 다이로 이름이 바뀌어 암호화폐 세계에 등장하게 됩니다. 비트코인의 UTXO와 이더리움의 EVM을 접목한 플랫폼인 큐텀으로 다시 블록체인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큐텀의 ICO 결과는 많은분들이 아시다시피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패트릭 다이는 여러 플랫폼 코인들과 함께 '근본코인'의 대명사 중 하나로 불리게 되는 이미지 쇄신을 이루어 냈다.
하지만 새롭게 시작해 탄탄대로만 걸을 줄 알았던 큐텀에게도 어두운 장막이 드리우기 시작 했다. 이런 문제점이 어디서부터 발현됐나를 살펴보면 놀랍게도 시발점은 대표인 패트릭 다이 였다.
그는 호재를 앞두면 항상 커뮤니티에 직접 나타나 홀더들에게만 알려 준다면서 흘리기 시작 했다. "곧 이러한 호재가 공식 발표 될거예요!"
커뮤니티를 사전정보 전달을 통한 1차 펌핑, 공식 호재 발표를 통한 2차 펌핑을 노리기 위한 방법이었을 것이라 추측 할 수 있겠다. 예상과 다르게 홀더들은 커뮤니티에 호재가 알려질때 빠른 시세 차익을 거두었습니다. 공식 발표를 노리고 큐텀을 매수 했던 사람들은 손절을 거듭 했고 이후 "큐텀은 호재가 악재다."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
난항
통상 댑(Dapp)들은 자신들이 기반으로 삼는 플랫폼 코인으로 ICO를 진행해 모금행위를 한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악순환 고리로 인해 하락이 가속화된 큐텀가격 하락은 큐텀기반 모금 프로젝트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설상가상으로 QRC토큰(큐텀기반 토큰 규격명)들은 거래소 상장이 난항을 겪게 되는 상황에서 패트릭 다이는 "그것은 댑(Dapp)개발사의 능력 부족일뿐"이라고 논란을 일축 하며 참여한 프로젝트들의 신뢰를 잃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2018년 댑 300개를 유치하겠다던 자신 만만한 패트릭이었지만 이런 문제점들로 인해 자신이 공식적으로 어드바이저 임을 밝힌 3개의 프로젝트 중 보디와 큐바오는 큐텀 댑에서 이더리움 댑으로 전향을 하였다. 얼마전 살펴본 거꾸로 가는 코인 사전 498위로 소개 됐던 스페이스체인은 스캠 의혹으로 큐텀과 함게 힘든 시간을 겪었다.
직접 관리하는 댑들이 상황도 이런 상황이었으니 그 범주외의 댑들 상황은 더 열악했다. 큐텀의 킬러앱으로 기대 했던 잉크, 루나, 플레이코인 등 수많은 댑들이 자체 메인넷을 진행하거나 아예 다른 플랫폼으로 스왑을 강행하며 큐텀 진영을 떠났다.
300개의 댑을 바라던 큐텀은 오히혀 노답(No Dapp)이라 불리며 조롱의 대상이 되기까지 했으니 몇년 사이에 그이 인생사는 다사다난하다고 볼수 있겠다. 이제 큐텀의 전성시대로 잊혀진 '스티븐 다이'의 이름이 다시 불려지게 되며 두 이름을 많으 암호화폐 투자자들에게 각인시키고 있다.
현재 그는 직면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기업향 프라이빗 블록체인인 '큐텀 엔터프라이즈'개발에 전념 하고 있다고 한다.
2011년 채굴왕
2014년 스캠왕 스티븐 다이
2017년 근본와 패트릭 다이
2020년에는 어떤 모습의 패트릭 다이를 만나게 될런지 다시 성공적이 이미지 쇄신과 성장을 이룰 수 있을지 앞으로 지켜보도록 하겠다.[2]
각주
- ↑ 1.0 1.1 <Patrick Dai>, 《LinkedIn》
- ↑ 헤리티지블록스, <HERITAGE BLOCKS>, 《네이버블로그》,2019-02-14
참고자료
- 정미하 기자, 〈(암호화폐 부자들) ⑤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결합한 퀀텀 만든 패트릭 다이〉, 《IT조선》, 2018-02-07
- 차지혜 기자, 〈(토큰포스트 인터뷰) 퀀텀 CEO 패트릭 다이 “누구도 하지 않은 일을 시도하는 것이 혁신”〉, 《토큰포스트》, 2018-06-12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