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윷놀이"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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윷가락의 호칭은 일반적으로 하나를 도, 둘을 개, 셋을 걸, 넷을 윷, 다섯을 모라 부르는데, 이는 끗수를 나타내는 말이다. 도·개·걸·윷·모의 유래는 가축의 이름을 딴 것으로 본다. 도는 돼지[豚]를, 개는 개[犬]를, 걸은 양(羊)을, 윷은 소[牛]를, 모는 말[馬]을 가리킨 말이다. | 윷가락의 호칭은 일반적으로 하나를 도, 둘을 개, 셋을 걸, 넷을 윷, 다섯을 모라 부르는데, 이는 끗수를 나타내는 말이다. 도·개·걸·윷·모의 유래는 가축의 이름을 딴 것으로 본다. 도는 돼지[豚]를, 개는 개[犬]를, 걸은 양(羊)을, 윷은 소[牛]를, 모는 말[馬]을 가리킨 말이다. | ||
− | 도는 원말이 ‘돝’으로서 어간(語幹) 일부의 탈락형이다. 돝은 돼지의 옛날 말이다. 「용비어천가」 제65장에 “苑囿엣 도틀 티샤(斬豕苑囿)” 하였고, 『두시언해』에는 “아침 ᄒᆡ엔 ᄃᆞᆰ과 도티 흐텟도다(旭日散鷄豕).”라 함을 보아도 도가 돼지임을 알 수 있다. 개는 지금과 같이 개[犬]이다. 걸은 지금의 양(羊)을 옛날에는 ‘걸’이라 하였다. 윷은 소[牛]이니 방언에 슈·슛·슝·쥬ᇰ·중·쇼·소라고 함을 보아 알 수 있거니와 『훈몽자회 訓蒙字會』에 “저(摴)를 ᅀᅲᆺ뎌, 포(蒲)를 ᅀᅲᆺ표, 탄(攤)을 ᅀᅲᆺ놀탄”이라 하였음을 보아서 ᅀᅲᆺ은 슛으로, 이 슛은 또 윳으로 변하였는데, 최근에는 철자법 때문에 윷으로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ㅿ음(반치음)은 후대로 내려오면서 ㅈ음으로도 변하였으나 대체로 ㅅ음과 ㅇ음으로 변하였음을 본다. 모는 말[馬]이다. 방언에 몰·모·메라 함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훈몽자회』에 “馬를 ᄆᆞᆯ마”라 하였고, 「용비어천가」 제109장에는 “ᄆᆞ리 病이 기퍼(我馬孔病)” 하였음을 본다. 이 ‘·’(아래아)음은 후대로 내려오며 ‘오’·‘아’음으로 변하였다. 경상도 지방에서는 지금도 ‘오’로 사용됨을 본다.<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42794#self 윷놀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f> | + | 도는 원말이 ‘돝’으로서 어간(語幹) 일부의 탈락형이다. 돝은 돼지의 옛날 말이다. 「용비어천가」 제65장에 “苑囿엣 도틀 티샤(斬豕苑囿)” 하였고, 『두시언해』에는 “아침 ᄒᆡ엔 ᄃᆞᆰ과 도티 흐텟도다(旭日散鷄豕).”라 함을 보아도 도가 돼지임을 알 수 있다. 개는 지금과 같이 개[犬]이다. 걸은 지금의 양(羊)을 옛날에는 ‘걸’이라 하였다. 윷은 소[牛]이니 방언에 슈·슛·슝·쥬ᇰ·중·쇼·소라고 함을 보아 알 수 있거니와 『훈몽자회 訓蒙字會』에 “저(摴)를 ᅀᅲᆺ뎌, 포(蒲)를 ᅀᅲᆺ표, 탄(攤)을 ᅀᅲᆺ놀탄”이라 하였음을 보아서 ᅀᅲᆺ은 슛으로, 이 슛은 또 윳으로 변하였는데, 최근에는 철자법 때문에 윷으로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ㅿ음(반치음)은 후대로 내려오면서 ㅈ음으로도 변하였으나 대체로 ㅅ음과 ㅇ음으로 변하였음을 본다. 모는 말[馬]이다. 방언에 몰·모·메라 함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훈몽자회』에 “馬를 ᄆᆞᆯ마”라 하였고, 「용비어천가」 제109장에는 “ᄆᆞ리 病이 기퍼(我馬孔病)” 하였음을 본다. 이 ‘·’(아래아)음은 후대로 내려오며 ‘오’·‘아’음으로 변하였다. 경상도 지방에서는 지금도 ‘오’로 사용됨을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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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축은 옛날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큰 재산이었고, 일상생활에 있어서는 가장 친밀한 짐승이었다. 그러므로 그 가축의 이름과 함께 몸의 크기와 걸음의 속도도 윷놀이에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곧, 몸 크기의 차이를 보면 개보다는 양이, 양보다는 소가, 소보다는 말이 더 크며, 또 걸음의 속도도 돼지가 한 발자국의 거리를 뛰는 사이에 말이 한 발자국을 뛰는 거리는 돼지의 다섯 발자국 뛰는 정도의 거리가 되므로, 이런 식으로 비교하여 끗수를 정한 것으로 보인다.<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42794#self 윷놀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f> | ||
==의의== | ==의의== |
2021년 7월 26일 (월) 13:24 판
윷놀이란 정월 초하루부터 대보름까지 즐기며, 4개의 윷가락을 던지고 그 결과에 따라 말을 사용하여 승부를 겨루는 민속놀이로, 여러 사람이 편을 갈라 즐기는 놀이이다.[1]
개요
윷놀이는 대한민국의 전통 놀이 중 하나이다. 지금 시대에는 줄다리기와 함께 민속놀이 중에서 가장 유명한 놀이이며, 다른 민속놀이와 달리 여럿이서 팀을 짜거나 게임 시간이 어느정도 있는 등 보드게임 요소의 장점으로 가장 많이 애용되는 놀이이기도 하다. 윳놀이가 아니라 윷놀이다. 이는 발음할 때도 마찬가지라 이를테면 "윷이"를 발음할 때 [유시]가 아니라 [유치]라고 발음해야 하는데 [유시]로 발음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한국 한자어로는 척사(擲柶), 척사희(擲柶戲), 사희(柶戲) 등으로 표현하는데 擲(던질 척)은 투척물같은 단어에 쓰이는 '던진다'는 의미이고 柶(수저 사)는 수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윷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놀이판은 둥근 것과 네모난 것이 있는데, 1990년대 이후 공장에서 윷판이 대량으로 보급되면서 윷판 인쇄나 원단 가공 등등 면에서 원형보다 대량생산이 좋은 네모난 윷판이 널리 퍼져 지금은 네모난 윷판이 흔하지만, 그 이전에는 둥그런 윷판이 더 많이 사용되었다. 실제로 고인돌이나 선돌 등에 암각화로 남은 윷판 문양을 보면 둥그런 윷판이 많다.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종이에 그린 말판과 한 쪽만 평평하게 깎은 납작하고 둥근 나무 막대기(윷) 4개가 필요하다. 크기는 상관없으며 굳이 나무 막대가 아니어도 한 면이 둥글고 한 면은 납작한 물체만 있으면 된다. 참가하기 위해 필요한 숫자는, 이론상으로는 최대 인원이 정해져 있진 않지만 참가자가 너무 많으면 혼란스럽기 때문에 개인전이라면 약 6명 정도가 가장 적절하다. 개인전도 있지만 보통 여러 명이 팀을 갈라서 하는 편이 많다. 그만큼 팀, 개인 설정이 자유로운 놀이이다.[2]
역사
윷놀이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에 관하여 조선 실학자 이익(李瀷)은 『성호사설』 사희조(柶戱條)에서 “윷놀이를 고려의 유속(遺俗)으로 본다.”라고 하였다. 하지만 중국의 『북사 北史』와 『태평어람 太平御覽』 등의 문헌에 백제에는 저포(摴蒲)·악삭(握槊) 등의 잡희(雜戱)가 있었다고 쓰여져 있었고, 이 저포는 현재의 윷놀이와 유사한 것으로 여겨지므로 윷의 기원은 삼국시대 이전으로 추정된다.
또한, 일본 『만엽집 萬葉集』 주석(註釋)의 권위자인 시카모치(鹿持雅澄)는 『만엽집고의 萬葉集古義』에서 일복삼향(一伏三向)을 ‘고로(コロ)’, 삼복일향(三伏一向)을 ‘시쿠(シク)’라 방훈(旁訓)하였는데, 가쓰라기(葛城末治)는 이 삼복일향을 ‘시쿠’, 일복삼향을 ‘고로’라 훈(訓)한 데 대하여 의문을 품어 오다가 우리 나라의 윷놀이 중에서 그것을 발견하였다. 삼복일향과 일복삼향이란 도(徒)와 걸(杰)이라는 것을 생각해내고 마침내 그 뜻을 밝혔다. 즉, 우리 한자음으로는 ‘杰’자를 ‘걸’이라고 발음하므로 걸이 와전되어 ‘고로’로 되었다 하며, 그 일례로 현재도 노루[獐]를 일본인은 ‘노로(ノロ)’라 하고 있는 것을 들었다. 이 이두법(吏讀法)은 신라에서 건너간 것으로 생각되고 시쿠는 ‘도’, 고로는 ‘걸’이라는 우리말이 변화된 것으로 보인다.
사카이(酒井欣)는 그의 『일본유희사 日本遊戱史』에서 “일본문화는 주로 외래문화를 받아들여 이것을 소화하여 일본화 하였으며, 당시 당나라 문화도 삼한(三韓)을 거쳐 들어온 것은 사실이다. 삼한과의 교섭도 역시 빈번히 행하여졌던 관계상 그곳의 문물이 일본에 많이 유입되었고, 유희도 역시 그러하였다.”라고 하여 일복삼향의 유희가 삼국시대에 우리 나라에서 건너간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학설로 비추어볼 때, 윷놀이는 고려시대는 물론이고, 8세기 일본의 『만엽집』이 찬성(撰成)되기 이전, 즉 신라시대에 이미 존재함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윷가락의 호칭은 일반적으로 하나를 도, 둘을 개, 셋을 걸, 넷을 윷, 다섯을 모라 부르는데, 이는 끗수를 나타내는 말이다. 도·개·걸·윷·모의 유래는 가축의 이름을 딴 것으로 본다. 도는 돼지[豚]를, 개는 개[犬]를, 걸은 양(羊)을, 윷은 소[牛]를, 모는 말[馬]을 가리킨 말이다.
도는 원말이 ‘돝’으로서 어간(語幹) 일부의 탈락형이다. 돝은 돼지의 옛날 말이다. 「용비어천가」 제65장에 “苑囿엣 도틀 티샤(斬豕苑囿)” 하였고, 『두시언해』에는 “아침 ᄒᆡ엔 ᄃᆞᆰ과 도티 흐텟도다(旭日散鷄豕).”라 함을 보아도 도가 돼지임을 알 수 있다. 개는 지금과 같이 개[犬]이다. 걸은 지금의 양(羊)을 옛날에는 ‘걸’이라 하였다. 윷은 소[牛]이니 방언에 슈·슛·슝·쥬ᇰ·중·쇼·소라고 함을 보아 알 수 있거니와 『훈몽자회 訓蒙字會』에 “저(摴)를 ᅀᅲᆺ뎌, 포(蒲)를 ᅀᅲᆺ표, 탄(攤)을 ᅀᅲᆺ놀탄”이라 하였음을 보아서 ᅀᅲᆺ은 슛으로, 이 슛은 또 윳으로 변하였는데, 최근에는 철자법 때문에 윷으로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ㅿ음(반치음)은 후대로 내려오면서 ㅈ음으로도 변하였으나 대체로 ㅅ음과 ㅇ음으로 변하였음을 본다. 모는 말[馬]이다. 방언에 몰·모·메라 함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훈몽자회』에 “馬를 ᄆᆞᆯ마”라 하였고, 「용비어천가」 제109장에는 “ᄆᆞ리 病이 기퍼(我馬孔病)” 하였음을 본다. 이 ‘·’(아래아)음은 후대로 내려오며 ‘오’·‘아’음으로 변하였다. 경상도 지방에서는 지금도 ‘오’로 사용됨을 본다.
가축은 옛날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큰 재산이었고, 일상생활에 있어서는 가장 친밀한 짐승이었다. 그러므로 그 가축의 이름과 함께 몸의 크기와 걸음의 속도도 윷놀이에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곧, 몸 크기의 차이를 보면 개보다는 양이, 양보다는 소가, 소보다는 말이 더 크며, 또 걸음의 속도도 돼지가 한 발자국의 거리를 뛰는 사이에 말이 한 발자국을 뛰는 거리는 돼지의 다섯 발자국 뛰는 정도의 거리가 되므로, 이런 식으로 비교하여 끗수를 정한 것으로 보인다.[3]
의의
규칙
기능
각주
참고자료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