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토시 나카모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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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146.11.90 (토론)님의 2018년 10월 17일 (수) 11:27 판 (필 짐머만 (Phil Zimmer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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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시 나카모토(Satoshi Nakamoto)는 세계 최초 암호화폐비트코인(bitcoin)을 만든 사람이며 블록체인 기술의 창시자이다. 그는 일본식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은 가명으로 추정된다. 그의 이름뿐만이 아니라 국적, 성별, 나이, 단일 인물 유무, 사망 유무도 알려지지 않아서 그가 정확히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사용하는 언어는 일본어가 아닌 매끄러운 영국식 영어였고 가끔씩 미국식 표현도 혼재되어 있었다는 점을 보아 일본인으로 단정지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사토시 나카모토가 P2P 재단 웹사이트에 등록해 놓은 정보인 1975년 4월 5일, 일본 거주가 전부이다. 지금까지 사토시 나카모토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여러 사람들이 노력하여 추정되는 여러 명의 인물이 등장했지만 정확히 누구라고 밝혀진 바는 없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첫 채굴을 시작한 이후로 그의 지갑에서는 약 100만으로 추정되는 비트코인이 빠져나간 적이 단 한번도 없으며 2017년 11월 말 기준으로 세계 100위정도의 부자에 해당한다.


업적

세계 최초의 암호화폐비트코인(bitcoin)을 처음 만든 것은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가명을 쓰는 사람이다. 그는 2008년 11월 1일 〈비트코인 : 개인 대 개인의 전자화폐 시스템〉이라는 9쪽짜리 논문을 작성하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담은 논문을 내려 받을 수 있는 사이트주소를 수백 명의 암호학 전문가들에게 전자우편으로 보냈다. 이 논문은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의 기본 구조를 설명한다. 그는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최초의 암호화폐인 비트코인(bitcoin)을 개발하고, C++ 언어로 작성한 소스 코드를 배포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P2P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디지털 화폐에 대한 이중 지불 문제를 처음으로 해결했다.

2009년 1월 3일 비트코인의 최초 블록인 제네시스 블록이 탄생한다. 두 번째 비트코인 사용자는 일주일 뒤인 1월10일에 나타났다. 두 번째 사용자는 할 피니라는 암호학 전문가이다. 두 사람만 비트코인을 사용하던 시절에는 소프트웨어 코드상의 오류가 발견되고 수정하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비트코인이 실제 구동된다는 것을 증명하는 시기였다.

이때부터 비트코인 사용자가 점점 늘었고, 사토시 나카모토는 자신이 논문을 올려둔 홈페이지(bitcoin.org)와 전자우편으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며 비트코인 네트워크를 확장했다. 그는 2010년 12월12일 홈페이지에 개설한 비트코인 포럼에 “분산공격(DOS)에 대해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지만, 우선 이럴 경우를 대비해 작업해둔 걸 손보는 중이고, 그 버전이 0.3.19이다. 이걸 우선 마친 뒤 제대로 시스템을 갖춰 작업해볼 생각이다”라는 글을 남겼다. 또, 사용자들이 위키리키스(WikiLeaks)에서 비트코인을 받기 위해 로비를 시작한 후, 얼리 어답터들이 비트코인의 인기를 높이려고 할 때 나카모토가 개입했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팀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 " 비트코인 프로젝트가 점진적으로 성장해야 소프트웨어가 그 길을 따라 강화될 수 있다. 나는 위키리키스(WikiLeaks)에게 비트코인을 사용하지 말라고 호소한다. 비트코인은 초기 단계에 있는 작은 베타 커뮤니티이다. 당신은 주머니 교체 이상의 것을 얻을 수 없으며, 이 단계에서 당신이 가져오는 열기(熱氣)는 우리를 파괴할 것이다." 그때만 해도 이 글이 사토시 나카모토의 마지막 메시지일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후 그는 더 이상 공개적인 글쓰기를 하지 않았다. 개발자들과 주고받은 전자우편은 2011년 4월이 마지막이었다. 다만 그는 잠적하기 전 개빈 앤드리슨을 비트코인 소프트웨어의 수석개발자로 지명해 자신의 후계자로 삼았다. 앤드리슨도 나카모토의 정체를 모른다고 밝혔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2008년 10월에 나타나 2011년 4월까지 인터넷 공간에 흔적을 남겼고, 그 뒤론 아예 사라져 버렸다. 그의 정체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나카모토가 누구인지 추정할 수 있는 정보는 단 한가지, 2009년 개인 간 거래(P2PㆍPeer to peer) 기술 관련 커뮤니티인 P2P재단 사이트에 비트코인을 소개할 때 쓴 그의 계정뿐이다. 사토시 나카모토의 성별, 사망 유무, 개인인지 단체인지 여부는 아직까지도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P2P재단 프로필에 따르면, 사토시 나카모토는 1975년 4월 5일에 태어나 일본에서 살고 있는 남자라고 적혀있다. 사토시 나카모토 역시 일본에 거주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그의 신원에 대한 조사는 거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 비트코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초창기 시절에도 사토시는 자신에 대한 세부 사항을 거의 밝히지 않았다. [1] 사토시 나카모토의 정체성에 대한 추측이 난무하고 있는 가운데 그가 일본인이 아닌 미국과 여러 유럽 국가에 거주하는 암호학자 또는 컴퓨터 과학 전문가일 것이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또, 사토시 나카모토가 매끄러운 영국식 영어를 사용했고 가끔씩 미국식 표현도 혼재되어있던 점으로 보아 한 사람이 아닌 여러 명으로 구성된 집단이라 추정되기도 한다.

또 다른 추측으로 사토시 나카모토의 이름의 유래가 사실은 Samsung, Toshiba, Nakamichi, Motorola로, 4개 기업 이름의 조합으로 상기한 네 기업이 비트코인을 개발했다는 설이 있지만 구체적인 근거는 없다. [2]

추정 인물

사토시 나카모토로 추정되는 인물로는 모치즈키 신이치, 도리안 나카모토, 할 피니, 닉 재보, 크레이그 스티븐 라이트데이비드 클라이먼, 필 짐머만, 데이비드 차움, 웨이 다이, 팀 메이 ,일론 머스크, 개빈 안데르센등이 있다.

모치즈키 신이치

2013년 테드 넬슨 옥스포드대 교수는 일본의 천재수학자 모치즈키 신이치 교토대 교수를 사토시 나카모토로 지목했다. 그는 수학과 컴퓨터과학은 물론 암호학에도 능통하고 2012년 말 자신의 홈페이지에 비트코인의 기본원리와 비슷한 세계적 수학난제 ‘ABC추측’을 증명했다.

도리안 나카모토

2014년 3월에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비트코인의 얼굴’이라는 커버스토리를 통해 이름을 알린 인물이다. 그의 출생명은 사토시 나카모토였고 명문 공대인 칼텍에서 물리학을 공부했다. 또 금융정보 회사에서 컴퓨터 엔지니어로 일하기도 했다. 당시 기자들에게 “더 이상 비트코인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넘겼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는 2010년 이후 실제 나카모토가 비트코인 추가개발을 다른 개발자들 손에 넘긴 점과 일치한다. 하지만 그 이후 그는 자신은 절대 비트코인 창시자인 사토시 나카모토가 아니라고 강력 부인했다. [3]

할 피니 (Hal Finney)

할 핀니는 비트코인처럼 작업증명(Proof-of-Work) 방식으로 구동하는 전자화폐를 개발한 적이 있으며, 발신자를 밝히지 않는 전자우편 서비스를 개발했던 암호학의 대가이다. 함께 비트코인을 개발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그가 사토시 나카모토이며 1인 2역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그 외 그는 사토시가 테스트용으로 보낸 10코인을 받아 최초로 가상화폐 이체를 받은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주장에 대해선 계속 부인했다. 그는 2014년도에 루게릭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닉 재보 (Nick Szabo)

컴퓨터 과학자 닉 재보는 1998년 이미 ‘비트골드(Bit gold)’ 라는 분산된 전자화폐를 고안한 인물이다. 비트골드는 실제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비트코인의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재보는 ‘스마트 계약(Smart Contract)’ 이라는 개념을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제3자에 대한 의존도를 최소화하고 이와 유사한 최소한의 신뢰로 안전하게 저장, 전송하는 비트골드의 개념 때문에 그는 사토시 나카모토로 의심받고 있다. 하지만 그 역시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주장에 대해선 부인했다.

크레이그 스티븐 라이트(Craig Steven Wright)와 데이브 클라이먼(Dave Kleiman)

크레이그 스티븐 라이트는 1970년 생으로 호주의 프로그래머이자 사업가이다. 2015년 12월 9일, 와이어드 매거진에서 크레이그 라이트와 이미 사망한 상태인 미국의 법의학자 데이브 클라이먼을 사토시 나가모토로 추정을 사토시 나카모토로 추청했다. 그 이유는 비트코인 개발자를 추적하던 해커가 라이트의 이메일을 해킹했는데 거기에 개발 증거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당시 의혹제기에 답을 하지 않았던 라이트는 약 반년후에 자신이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주장하며 이를 영국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는 비트코인의 최초 거래시 사토시가 사용한 암호블록인 제네시스 블록에 전자서명을 해 기술적으로 증명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며칠 뒤 라이트는 다시 공식 블로그를 통해 기술적 증명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이 증명을 해낼 수 있지만 그동안 지켜온 익명성이 증명을 통해 깨어지면 그 뒤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는 이 결정이 다른 동료 개발자들에게 큰 타격이 될 것을 우려하며 “이 결정이 비트코인의 신뢰도에 먹칠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라이트는 이후 비트코인 기술에 대한 증거를 입증하는데 실패하면서 거짓말쟁이로 낙인찍히게 된다. 여기까지만 해도, 크레이그 라이트가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것은 신빙성이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가 50억달러에 달하는 소송에 휘말리면서 그가 사토시라는 주장이 힘을 받게되었다. 소송을 제기한 인물은 이라 클라이먼으로 위에서 언급된 데이브 클라이먼의 형이다. 이라 클라이먼은 동생인 데이브 클라이먼이 2013년 숨지기 전 생전에 크레이그 라이트와 수 많은 메일을 교환했고 동생이 숨지자, 크레이그 라이트가 동생의 비트코인과 비트코인 관련 특허를 훔쳤다고 주장한다. 크레이그의 가족들은 플로리다주 연방법원에 제출한 자료에서 클레이먼이 채굴한 100만개 이상의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다. 또한 두 사람이 비트코인 개발 이전부터 함께 일했으며, 채굴 활동을 통해 110만개의 비트코인을 공동 관리해 왔다고 주장했다. 만약 크레이그 스티븐 라이트가 데이브의 형인 이만 클라이먼에게 일정부분 이상 배상하라는 것으로 판결이 난다면, 간접적으로 크레이그 스티븐 라이트가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것을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4]

필 짐머만 (Phil Zimmermann)

1991년 PGP라는 암호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PGP는 암호학 일대 혁명을 가져온 프로그램으로, 정부나 군대 그리고 정보기관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일반 사람들까지 암호화 기능을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PGP는 사용자가 암호화를 하기위한 퍼블릭 키와 암호해독을 하기 위한 프라이빗키와 같은 한 쌍의 키를 생성 할 수 있도록 한다. 이것은 암호화폐가 블록체인으로 알려진 기술의 학샘이기도하며 사용자가 전통적인 트랜잭션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은행과같은 중계업자를 대신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비트코인이 등장한 이후 암호가 개인의 정보 권리, 언론의 자유, 정치의 자유, 불합리한 수색과 압류로부터의 자유, 남겨둘 자유라고 밝혔다.

데이비드 차움 (David Chaum)

1990년 암호화된 금융거래 기술회사를 창업했던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이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 교수는 암호화폐 초기 모델인 디지캐시를 1983년 개발한 바 있다.

웨이 다이 (Wei Dai)

비머니와 비트골드의 개발자이다.

팀 메이 (Tim May)

1990년대 초 익명성을 유지하되 열린 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암호 기술을 개발했다.

일론 머스크 (Elon Reeve Musk)

전기차 테슬라의 창업자. 경제와 암호학에 능통하다.

개빈 안데르센 (Gavin Andresen)

2010년 이후 비트코인 개발을 공식적으로 책임을 졌다.

각주

  1. Travis Patron,〈who is Satoshi Nakamoto?〉, 《DIGINIMICS》, 2013-01
  2. 사토시 나카모토〉,《나무위키》
  3. 편집국,〈사토시 나카모토의 정체를 밝히다〉, 《비트웹》, 2018-03-03
  4. prosong77, <크레이그 라이트(Craig Wright)"가장 유력한 사토시 나카모토">,《steemKR》

참고자료

(사토시 나카모토 씀, 임민철 번역, 〈비트코인: 개인-대-개인간 전자 화폐 시스템〉, 2008년 11월 01일)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