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게임
비디오 게임(video game)는 사용자의 입력, 조작에 따라 컴퓨터나 게임기가 비디오 기술을 이용하여 글자나 그림, 소리 등 과정이나 결과를 출력하는 게임이다.[1]
목차
개요
비디오 게임은 마이크로칩과 컴퓨터 기술을 조합하여 스크린 위에서 벌이는 게임이며 그 종류 또한 굉장히 많고, 여러가지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즐길 수 있다. 기본적인 원리는 컴퓨터가 비디오 게임 사용자의 입력을 받아 정해진 규칙에 따라 처리하고, 그 과정이나 결과를 출력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한 전자게임(electronic game)이다. 비디오 게임은 글자나 그림, 소리만으로 출력될 수도 있지만, 많은 비디오 게임이 영상 표시장치(시각장치)를 이용한 시각적 출력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실제로 플레이어가 직접 게임의 내부 세계에 참여하고 그 형태를 조작할 수 있다. 게임은 특정한 체계(system)와 규칙(rule), 그리고 목적(objective)이 있어야 성립된다. 그 목표는 적 섬멸, 스테이지 클리어, 공주 구출, 특정 아이템 획득, 게임 세계관 알아내기 등 탐험적인 것이 될 수도 있고, 경쟁을 통해 남보다 뛰어난 플레이어가 되는 것일 수도 있다. 또한 이들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장애물이 존재하는데, 그 장애물의 난이도가 플레이어를 지루하게 만들거나, 포기하게 만들거나, 즐기게 하거나의 여부가 갈린다. 최근에는 스마트폰 사용량이 늘어나면서 모바일 환경에서 즐길 수 있는 비디오 게임도 PC나 콘솔 못지않게 출시되고 있다. 성공한 PC게임들이 모바일로 재탄생하는 경우도 많다.
장르
비디오 게임에는 다양하고 많은 장르가 있다.
- 롤플레잉 게임 (RPG) : 롤플레잉 게임은 Role-Playing Game의 약자로, 역할 연기 게임을 칭한다.
- 액션 게임 : 일정한 스토리/배경에 따라 실시간으로 캐릭터의 행동을 버튼 등을 통해 직접 조작하는 비디오 게임의 총칭.
- 대전형 격투 게임: 두 명, 혹은 그 이상의 플레이어가 서로 '대결'을 하는 액션 게임 장르. 다시 말해서 격투기를 게임으로 옮긴 장르다.
- 슈팅 게임: 적의 공격을 피하며 무기를 쏘는 게임의 총칭. 영어권에서는 Shooter game 또는 shoot'em up(이것의 축약형이 Shmup)이라고 칭한다.
- 어드벤처 게임 : Adventure Game. 게임 장르의 일종. 말 그대로 '모험 이야기'.
- 시뮬레이션 게임 : Simulation Game, 모의 시험 게임이라는 뜻이다.
- 스포츠 게임 : Sports game. 스포츠를 소재로 한 비디오 게임을 말한다. 시뮬레이션 게임의 한 부류로도 볼 수 있지만 스포츠 게임 장르 자체만으로도 범위가 넓기 때문에 대부분 따로 분리하여 말한다.
- 레이스 게임 : 경쟁 상대와 스피드를 겨루는 게임이면 모두 레이싱 게임으로 분류한다.
- 퍼즐 게임 : 퍼즐은 사전적 정의와 게임 장르적 정의와는 조금 다르다. 게임에서의 퍼즐은 어떠한 규칙 대에서 정해진 행위를 통해 주어진 조건을 완료해 클리어하는 단순한 게임을 지칭한다.
- 테이블 게임 : 보드 게임, 카드게임, 주하위 게임 등 보통 탁자나 기타 평평한 표면 위에 즐기는 게임이다다. 비디오 게임에서도 즐길 수 있다.
- 퀴즈 게임 : 주로 문제를 제시해주면 그것을 풀어나가며 클리어 하는 것이 목적인 게임이다.
- 온라인 게임 : 인터넷과 같은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진행되는 게임으로, 사용자가 상품의 권한을 인증받아야 사용할 수 있는 게임의 총칭.
- 소셜 게임 :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게임으로, 주로 플래시 기반의 웹 게임을 말한다. 흔히 플래시 게임혹은 웹게임이라 불리는 것들이 이것이다.[2]
특징
비디오 게임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시도된 인공지능이다. 비디오 게임에 등장한 적들의 움직임이 바로 원시적인 인공지능인 셈이다. 알고보면 단순 반복적인 움직임을 보이지만 플레이어 캐릭터의 움직임을 인식하고 그에 대응해 움직인다는 점은 인공지능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게임 산업은 원자재나 대량의 설비투자 없이 기획력과 아이디어로 승부하기 때문에 투입 대비 산출의 비율이 여타 다른 산업보다 월등히 놏은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그리고 비디오 게임은 게임 산업 자체 뿐만 아니라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방송, 인터넷 및 네트워크, 음악 산업, 캐릭터 산업 등과 같은 주변 산업과 접목해 부가가치 및 파생상품을 창출할 수 있다는 산업적인 특징도 있다. 또한 2000년대 후반부터 유튜브 및 인터넷 방송 산업이 대중화 되면서 1인 개인 방송을 하는 사람들과 그 것을 시청하는 시청자들 사이에서 비디오 게임은 빠질 수 없는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3]
역사
기원전 1323년 사망한 고대 이집트 왕 투탕카멘의 무덤에서도 주사위와 보드게임이 발견됐을 정도로 게임의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오래됐다.[4]
시기별 역사
1940년대
1947년 미국에서 텔레비전 기술자로 일하던 토머스 골드스미스와 에슬 레이 맨이라는 사람은 특허청에 '음극관 놀이 장치를 제출하는데, 이는 제2차 세계대전을 주제로 미사일을 여러 개의 손잡이로 제어하여 목표를 맞추는 간단한 방식의 게임 구동기였으며, 슈퍼컴퓨터 님로드(NIMROD)를 통해 플레이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그러나 NIM은 디스플레이로 화면을 출력하는 방식이 아니었던 데다가 놀이보다는 군사용 프로그램적인 성향이 강했으므로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것을 최초의 게임으로 보고 있지는 않는다.[2]
1950~60년대
역사상 최초의 비디오 게임은 1958년 물리학자 윌리엄 히긴보섬(William Higinbotham)이 자신의 연구소 방문객을 위해 만든 '테니스 포 투(Tennis for two)'이다. 이 게임의 개발 목적은 자신의 연구소를 방문하던 손님들이 지루해하는 것을 보고 연구소에서 신호 계측에 사용하던 5인치 아날로그 오시로스코프에 간단한 회로와 간이 조종기를 연결하여 전시하려 했다는 것이다. 지금 보면 게임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정도일지 몰라도 당시에는 신선하고 획기적인 발명이었으며 연구소에서는 연구자의 발명품에 특허를 취득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히긴보섬은 다른 개발에 대한 특허는 취득하였으나 게임에 대한 특허는 취득 신청을 하지 않았는데, 이 결정이 훗날 게임 개발 시장에서 자칫 저작권 분쟁으로 일어날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고 자유로운 인디 게임 개발 환경의 구축에 큰 공헌을 했다고 할 수 있다.[2]
1970년대
엔지니어이자 발명가였던 랠프 헨리 베어는 TV에 추가장치를 달아 게임 시스템을 구현한다는 생각을 하게되고, 1968년 비디오 콘솔의 첫 프로토타입인 '브라운 박스(Brown Box)'를 개발하게 된다. 이를 본 마그나복스 사는 1972년 '오디세이'라는 이름으로 브라운 박스를 가정용 게임기로 상용화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세계 최초의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이자 1세대 콘솔인 '마그나복스 오디세이'로, 현재 게임의 역사에서 첫 번째 게임기로써 화자되는 기기이다. 이 마그나복스 오디세이는 당시 약 100달러 정도의 고가로 판매되었으며, 마그나복스의 대리점에서만 파는 소극적인 마케팅으로 인해 고객들은 오디세이가 마그나복스의 텔레비전에서만 작동된다고 생각했고, 이는 자연스럽게 마그나복스가 게임기에 텔레비전을 끼워 팔아먹으려는 상술로 비치게 되었다. 이러한 마케팅 작전의 결과 마그나복스 오디세이의 최종 판매 집계는 약 33만 대 정도의 저조한 판매량을 기록했고, 해당 게임기는 1975년에 단종하게 된다.
그 이후 마그나복스 오디세이는 생산을 종료한 뒤에도 아타리와 콜레코, 액티비전 등과 같은 회사들에게 특허 소송을 걸어 승소함으로써 게임에 대한 저작권의 개념을 확립하는데 일조하였다.
또한 1972년 놀런 부슈널이 게임 제작사 아타리를 설립하고, 곧이어 최초로 상업적 성공을 거둔 게임으로 기록된 퐁(PONG)을 출시하여 엄청난 판매고를 올린 한 해이기도 했다. 퐁은 탁구를 모방한 2인 전용의 게임으로, '화면 상단에 점수 계산 표시'시스템이 적용되어 있었다. 같은 시기에 이미 비디오 게임에 대한 특허를 가지고 있었던 마그나복스 오디세이의 개발자 랠프 베어가 퐁이 마그나복스사의 몇몇 게임들을 표절했다는 이유로 아타리에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부슈널은 그 특허를 70만 달러에 사겠다 하였고, 베어는 게임 열풍이 얼마 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여 부슈널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도 하였다.[2] [5]
1980년대
1983년, 게임계 최대의 절망스러운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1982년까지 30억 달러 규모까지 미친 듯이 성장하였다. 이로인해 게임 산업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너나 할 거 없이 게임 산업에 뛰어들어 퀄리티가 저급한 게임들과 콘솔들을 양산하여 시장에 물량을 부어 넣은 결과 소비자들의 불만이 터져버렸다. 소비자들의 불만이 많아지면서 게임에 대한 신뢰와 게임 산업의 시장 기반을 망가뜨리게 된 사건이다.[2] 이 사태가 바로 북미 비디오 게임 시장 붕괴 사건으로 불리는'아타리 쇼크(ATARI Shock)이다. 게임 회사인 아타리는 1972년에 설립됐다. 이 회사는 그 해 11월 퐁 게임을 선보이며 게임신드롬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무수한 게임들을 선보였다. 그 후 1981년 초 게임 업계에선 "쓰레기를 넣은 게임도 1백만 개는 팔릴 것" 이라는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이 시기 막대한 자금과 영향력을 가지게 된 아타리는 밀려드는 돈을 주체하지 못하고 자제력을 상실해 버린다. 서드 파티 회사들의 게임을 모아 계약을 하는 퍼블리싱도 이때 우후죽순 생겨났는데, 그들이 주는 로열티도 컸기 때문에 게임에 대한 수준 등 전권을 넘겨버리는 일이 빈번했다. 회사에선 노는 인력들이 늘어났고, 아타리 2600으로 어떤 게임이 나오는지도 모르는 상황이 마구 생겨났다.
이때 서드파티는 대혼란이었다. 이미 출시된 게임을 베낀 게임들이 범람했고, 심의가 없었기 때문에 성인 게임들이 마구 출시됐다. 동일한 게임이 이름만 바뀌어 나오는 건 기본이었고, 이때 등장한 경쟁 게임기로 이식돼 문제를 확장시켰다. 점점 특징과 변화가 저조한 게임이 몇 백 개씩 출시되었고,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성인 게임이었다. 게임의 표지부터 내용까지 성을 주제로 묘사가 이루어졌고 게임 중에는 도망가는 여자를 잡아 집으로 끌고 들어가 관계를 맺는 내용부터 카우보이가 벌거벗고 있는 인디언 여성을 잡는 내용 등이었다, 이로 인해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급격히 약화됐고 일부 학교, 학부모를 중심으로 게임에 대한 규제의 목소리가 나오게 됐다. 그러던 중 아타리는 매우 결정적인 실수를 하게 되는데 당시에는 발주 기반의 유통 산업이었기 때문에 판매 수량을 체크해 제품을 생산하는 형태로 업무를 진행했다. 1981년 말 미친듯한 성장을 기록 중인 비디오 게임 시장의 수요를 예측하기 어려웠던 업체들은 내년 판매할 수량을 매우 높게 책정해 아타리에 발주를 요청한다. 그렇게 등장한 게임이 바로 팩맨이다. 팩맨은 이미 유명한 게임이었기에 발주를 높게 책정하여 주문하였다. 그로 인해 생각보다 많은 재고가 남게 되었고, 팔린 게임들조차 각종 버그와 품질 문제로 반품 요청이 늘어났다. 여기에 연말 실적 향상을 위해 물량을 대거 뽑아놓은 아타리 2600 E.T 게임이 완전히 망하면서 아타리와 모회사는 엄청난 손해를 입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산업의 붕괴는 빠른 속도로 시장 전체를 몰락시켰다. 30달러 정도였던 게임은 과도한 물량을 감당하지 못해 5달러 미만에 판매되기 시작했고, 업체들은 결국 버티다가 줄도산 하기 시작했다.[6]
이렇게 게임 시장이 망하는가 싶었지만 다행히도 현재까지도 게임기를 개발하고 있는 닌텐도와 세가가 이 시기에 게임 시장에 뛰어들어 혁신적인 시도에 많이 도전함으로써 가까스로 게임 시장은 살아날 수 있었다. 이때 나온 게임 중 대표작이 바로 갤러그, 스트리트 파이터, 더블 드래곤이다. 게임 산업 부활의 시작은 바로 1983년 7월 15일, 일본의 닌텐도가 카트리지 교환식 8비트 비디오 게임기를 출시한 사건이었다. 출시한 게임기의 정식 명칭은 '패밀리 컴퓨터(Family Computer)'였으며 이후 패미컴으로 불리게 된다. 1883년 화투 및 트럼프 제작으로 시작해 장난감 회사로써 성장하던 닌텐도는 급변하는 시대상에 맞추어 전자오락 산업의 성장성에 주목하고, 패미컴을 선두로 게임 시장에 야심 차게 진출하였으나 마침 아타리가 망쳐놓은 게임에 대한 이미지 때문에 소비자들 입장에서 게임에 대한 여론은 영 좋지 못한 편이었다. 아타리 쇼크의 영향으로 당시 세간에 "비디오 게임은 해악"이라는 인식에 맞서, 닌텐도는 미국 시장을 겨냥해 패미컴의 상표명을 NES(Nintendo Entertainment System)로 변경하고 캐릭터 등을 추가하여 아이들에게 친숙한 느낌이 들고 "건전"해 보이는 인식을 심는 방향의 접근을 택했다. 또한 닌텐도는 게임기에서 게임에 필요한 부분 이외의 기능은 모두 없애서 성능을 극대화하고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를 중시하였으며, 당시에 아케이드 시장을 이끌어나가고 있던 몇몇 회사를 세컨드 파티로 영입했다. 또한 먼저 시안을 테스트해서 일정 이상의 퀄리티 인 게임만 닌텐도 라이선스와 개발 허가를 주는 방식을 도입하는 등 전체적인 게임의 퀄리티를 높여서 가정용 게임기 시장을 다시 살려내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게임 개발 업계에서 주로 사용되는 서드파티 제도로, 닌텐도는 아타리 쇼크로 거의 사장된 가정용 게임기 업계에 충분한 관리만 따르면 게임도 명품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음을 서드파티를 통해 증명한 셈이다. 닌텐도는 85년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를 시작으로, 86년도엔 젤다의 전설과 악마성 드라큘라, 87년도에는 록맨과 파이널 판타지까지 만들어냈다.
이러한 닌텐도의 독주를 막기 위해 많은 회사들이 품질 관리와 서드파티 운영을 중심으로 한 게임 산업의 재구축에 들어갔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1985년 10월 일본의 세가가 자국 내에서 출시한 세가 마크 III라는 게임기다. 이전부터 게임 제작사로써 인지도를 쌓고 있었던 세가는 1978년부터 미국의 비디오 게임 회사 고블린과 제휴하여 게임 기판의 제작과 아케이드 게임의 유통을 맡기 시작하면서 비디오 게임 분야에도 진출하기 시작했다. 성능상으로는 세가가 우수했으나 이미 닌텐도가 구축해놓은 시장 장악력에 밀려 패배하고 만다. 이후 해외시장 진출을 위해 세가는 1986년 6월 세가 마크 III를 케이스와 이름만 바꿔 세가 마스터 시스템(Sega Master System)라는 이름으로 미국에서 출시했고, 이는 이미 패미컴이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던 일본과 북미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 대히트를 침으로써, 세가가 가정용 콘솔의 중요도를 재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래서 세가는 다시 가정용 기기의 개발에 착수. 단 2년 뒤인 1988년 10월 29일에 메가드라이브, 북미명 세가 제네시스로 불리는 게임기를 발매한다. 이는 세가가 야심 차게 준비한 계획에 따라 16bit cpu를 장착한 게임기. 다만 액션 게임과 슈팅 게임 주류의 게임 발매와 세가의 홍보에 힘입어 출시가 얼마 지나지 않아 북미시장의 과반수를 점유하는 저력을 보이며, 닌텐도와 나란히 서기 이전까지는 게임 시장 부동의 1위를 차지하는 영광을 누린 게임기로 기록되었다.
한편 북미의 PC 게임은 아타리 쇼크에서도 살아남았다. 1982년 등장한 8비트 컴퓨터인 코모도어 64가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가정용 PC 시장을 휩쓸었고, 그 이전에 등장했던 Apple II와 함께 북미 PC 게임 시장의 양대 하드웨어로 등극, PC 게임의 8비트 시대를 이끌었다. 아타리 쇼크 이후 닌텐도가 등장하기 전까지 짧은 기간 동안 콘솔 게임의 수요가 상당수 PC로 흘러갔고, 북미 게임 제작사는 대거 PC로 게임을 출시했다.
PC는 당시 여러 하드웨어가 있었지만 어느 하드웨어도 닌텐도식의 서드파티 룰을 강요하지 않았고, 아타리식의 출시 룰을 강요하지 않았다. 즉 PC 게임 제작 환경은 제작사에게 가장 큰 자유가 주어진 시장이었다. 품질 관리가 되지 않기 때문에 저질의 게임이 나올 가능성이 컸지만, 반대로 하드웨어 제조사의 간섭으로 저질 게임이 나올 수밖에 없는 환경을 강요하는 일도 없었으므로 양질의 게임이 나올 가능성도 컸다.
이런 자유로운 환경은 명작급의 게임이 대거 출시되는 결과로 나타났고, PC 게임은 북미 게임 시장의 한 축을 당당히 차지하게 된다. PC 게임은 기본 인터페이스가 키보드였기 때문에 콘솔과는 다른 영역을 점차로 개척해 나갔다. SSI 사는 워 게임을 모티브로 한 각종 전략 게임 시리즈를 내놓으며 전략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를 개척했고, 게임 제작자 윌 라이트는 맵 에디터에 도시 건설 요소를 집어넣은 심시티를 내놓으며 건설&경영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를 창시했다. RPG는 울티마 시리즈, 마이트 앤 매직 시리즈 등의 수많은 명작이 나오면서 JRPG와는 차별화된 WRPG 장르를 구축했고, 어드벤처는 시에라를 세운 켄 윌리엄스와 로베르타 윌리엄스 부부가 최초의 그래픽 퍼즐 어드벤처 게임인 미스터리 하우스를 내놓으며 북미식 퍼즐 어드벤처 장르를 개척했다.
또한 1980년대 말 PC, 거치형 콘솔, 휴대용 콘솔, 아케이드 등등 기종을 뛰어넘어 전 세계적인 열풍을 불러일으킨 퍼즐 게임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테트리스다. 1984년 소련의 프로그래머 알렉세이 파지노프가 만든 테트리스는 우연한 기회에 세상에 알려졌고, 당시 존재하던 거의 모든 기기에 이식되면서 전 세계적인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닌텐도도 게임보이용으로 테트리스를 출시했고, 게임보이 사상 최고의 판매량(3500만 장)을 기록했다.
한편 한국에서는 1988년 하이콤이 설립되면서 게임 시장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2]
1990년대
1990년대는 비디오 게이밍의 이노베이션으로 간주되는 시기이다. 래스터 그래픽에서 3D 그래픽으로 변화하는 시기로, 1인칭 슈팅게임, 실시간 전략 게임, MMO를 포함한 여러 장르의 비디오 게임의 증가를 이끌었다. 부분적으로는 1989년 게임보이의 출시 덕에 휴대용 게이밍이 유명해졌다. 아케이드 게임은 1990년대 초중반에 다시 유행하였고, 가정용 콘솔이 일반화되면서 1990년대 말에 침체되었다.
폴리곤을 이용한 3D 컴퓨터 그래픽은 곧 스즈키 유의 게임 비디오 레이싱, 버추어 파이터를 통해 유명해졌으며, 세가 모델 1, 아케이드 시스템 보드에서 동작하였다. SCE의 전 개발자 아카가와 료지와 회장 마루야마 시게오에 따르면 플레이스테이션은 원래 2D 지향 하드웨어로 간주되었으며 버추어 파이터가 아케이드에서 성공을 거두기 전까지는 플레이스테이션을 3D 지향 하드웨어로 설계하려고 마음먹지 않았다고 한다. 텍스처 매핑, 텍스처 필터링이 곧 3D 레이싱 및 격투 게임을 통해 인기를 끌게 되었다. 그러나 32비트와 64비트 콘솔이 1990년대 중순에 등장하면서 세가 새턴, 플레이스테이션, 닌텐도 64와 같은 가정용 비디오 게임 콘솔 또한 텍스처 매핑 3D 그래픽을 구현할 수 있게 되었고, 세가와 남코 등의 아케이드 제조업체들이 3차원 그래픽스의 경계를 가정에까지 현실화시키는 일을 계속했다.
1990년에 접어들면서 휴대용 게임기 산업이 도래됐다.
1989년, 닌텐도는 10년 전의 불운의 마이크로비전 이후로 최초의 휴대용 게임 콘솔인 게임보이를 출시하였다. 요코이 군페이 주도의 디자인 팀은 게임 앤드 워치 시스템의 작업도 맡고 있었다. 이 시스템에 포함된 테트리스는 사상 가장 많이 판매된 비디오 게임들 가운데 하나가 되어 다양한 시스템에 이식되었다. 일부 경쟁작들은 1990년대 초에 데뷔하였는데 여기에는 세가 게임 기어와 아타리 링크스가 포함된다. 이러한 시스템들은 더 기술적으로 진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배터리 소모량이 많고 타사 개발사의 지원이 부족하여 제한을 받았다. 다른 시스템들 중 일부는 1990년대 중순까지 개발이 지속되었지만, 게임보이와 성공적인 파생작들, 즉 게임보이 포켓, 게임보이 컬러, 게임보이 어드밴스가 실질적으로 핸드헬드 시장에서 우세를 점하게 되었고 2004년 플레이스테이션 포터블이 출시되면서 닌텐도의 게임 보이 계열을 계승하는 닌텐도 DS와 경쟁하기에 이른다.
1996년 6월 23일에는 후발주자 닌텐도에서 64bit 게임기인 닌텐도 64를 내놓음으로써 잠시 게임 시장은 새턴 vs 플스 vs 64의 3각 구도를 보였으나. 먼저 새턴이 뒤처지고, PS와 닌텐도 64의 경쟁 구도가 굳혀지게 된다. 닌텐도는 같은 게임기를 1996년 9월 29일에 북미와 캐나다에 동시 출시하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으나, 플스보다 더 우월한 성능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롬 카트리지 방식을 고수한 덕에 플스가 보여준 동영상 컷신과 같은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것이 불가능했고, 계속된 닌텐도의 갑질에 지친 상당수의 서드파티들이 소니 측에 붙어버렸으며, 협력 계약 파기로 인해 고품질 사운드칩을 공급받지 못하는 등의 악재가 겹쳐 결국 플스의 아성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물론 닌텐도 64는 플스와의 경쟁에서 한 발짝 뒤처졌을 뿐, 전 세계적으로 보면 상당한 판매량과 시장 점유도를 확보한, 결코 실패했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게임기였으나, 기존의 닌텐도가 기록하던 기록과 비교했을 때 차이는 분명히 존재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닌텐도는 몇 년간 앉아있던 비디오게임 시장의 왕좌를 소니에게 내주게 된다. ex) [7]
2000년대 이후
2013년 11월 15일, 일본 소니의 8세대 비디오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 4가 399.99 달러의 가격으로 북미에 출시된다. 2013년 11월 22일, 마이크로소프트는 엑스박스 원을 북미에 출시한다. 2010년 기준으로 보면 콘솔 게임 시장(287억 달러)의 규모가 온라인 게임(157억 달러) 시장 보다 130억 달러 정도 더 컸다. 하지만 2014년에 그 차이가 30억 달러로 줄어들었다. 또한 모바일 게임은 시장규모가 2014년 110억 달러를 달성하여 향후 온라인 게임과 콘솔 게임의 50%에 이를 성장세를 보여줬다.ex) [2]
전망
전 세계 게임 산업은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연평균 7.4% 증가하여 2019년에는 1,768억 달러 시장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플랫폼별로는 가장 큰 시장 규모를 유지해 왔던 비디오 게임 시장이 2016년을 기점으로 모바일 게임 시장에 추월당하게 되었으며 고성능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지속적인 출시, 4G, 5G 등 네트워크의 진화, 화려한 그래픽을 가진 롤플레잉게임이나 시뮬레이션 게임의 부상 등이 모바일 게임 시장 성장의 토대로 분석된다.[8]
IDC에 따르면 2002년도 전세계 비디오게임 시장의 매출 규모는 265억 달러에 달하여 전년대비 38.4%라는 높은 증가추세를 보였다. 이러한 추세는 일정한 성장주기를 특징으로 하는 비디오게임 시장이 성장 최고점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하며, 앞으로 2~3년간은 매출규모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1.3%와 -3%의 소폭 증가와 감소가 예상되는 2003년과 2004년의 매출 규모는 각각 269억 달러와 261억 달러에 그칠 것으로 보이나 최근 IT산업 전반에 걸친 부진한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이 같은 수치는 매우 고무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9]
이런 단면만 본다면 국내 비디오 게임 시장은 클 것도 같지만, 사실 한국에서 비디오 게임 시장의 입지는 미미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 4월 발간한 '2017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게임 시장에서 비디오게임의 예상 매출액은 2711억 원으로 전체 매출액에서 약 2%를 차지할 뿐이다. 점유율이 40%가 넘는 온라인 게임과 모바일 게임에 비해 초라할 뿐이다.[10]
개발
비디오 게임의 개발은 비디오 게임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다. 최초의 게임에는 엔터테인먼트의 가치가 거의 없었으며 개발은 사용자 경험과 분리되어 초점이 맞춰졌다. 게임 개발을 위해 필요한 직종으로는 크게 게임기획, 게임원화, 게임그래픽, 게임프로그래밍이다. 게임 기획으로는 게임의 기본적인 스토리를 구상하고 그에 맞는 시스템을 기획한다. 맵 내의 동선이나 난이도 조절, 및 퀘스트 기획 등을 주로 한다. 게임 원화란 게임 기획서를 토대로 캐릭터, 배경, 몬스터, 아이템, UI등 게임에 들어가는 모든 요소를 2D형태로 표현한다. 게임 그래픽은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게임 내 표현되는 모든 것을 만들어낸다. 3D모델러, 맵퍼, 리거, 애니메이터, 이펙터로 크게 분류한다. 게임프로그래머는 위에서 작업한 모든 작업을 하나로 연결하는 직업이다. 게임 내 규칙에 따라서 게임이 진행 될 수 있도록 코딩하고 게임을 완성시키는 직업이다. 각자 완전히 다른 분야의 전공을 배운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의 게임을 만들어낸다.[11]
비디오 게임의 장점과 단점
장점
게임은 문화다. 다른 문화생활인 영화와 책 읽기를 할때 사람들은 그 영화나 소설 속의 주인공에게 "나"를 대입하곤 한다. 이러한 모습은 게임 속 캐릭터에 자신을 대입하는 것과 같다. 일부 사람들은 게임이 현실과 게임의 경계를 흐릿하게 하여 매우 좋지 않은 것이라는 의견을 내는데, 이것은 영화나 책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영화를 보고 만화책이나 소설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에 '나'를 대입한다. 즉, 가상 세계와 현실을 분리하는 것은 사람의 능력이다. 게임을 해서 가상 세계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미디어를 접했을 때도 그렇게 될 확률이 높다.
게임은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 게임 중에는 역사를 배경으로 한 게임이 있다. 플레이어는 특정 역사적 사건에 대해 게임을 하면서 자세히 배우게 된다. 또한 기존에 게임을 이용하여 교육적인 모습으로 응용할 수 있다.
단점
세계보건기구(WHO)는 비디오 게임을 너무 많이 하면 정신 건강 장애가 의심된다고 밝혔다. 게임을 너무 많이 하다보면 현실 세계와 게임 속 세상의 경계가 흐릿해진다. 게임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게임의 반 사회적인 영향을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부분의 비디오 게임은 서로 싸우거나, 상대방을 죽여 재산을 강탈하는 등 폭력적이고 반사회적인 모습이 많이 나타나는데 게임 중독이 심해지면 현실 세계와 게임 속 세계를 구분하지 못해 현실에서 게임 속 자신의 캐릭터가 하는 폭력적인 행위를 발휘할 수 있다.
또한 게임을 오래 하게 되면 신체활동이 적어지고 디스플레이를 오랫동안 보게 되어 시력저하가 급속도로 진행된다. 몸을 움직이지 않게 되면서 바르지 못한 자세로 오랫동안 있게되니 건강이 망가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살이 급속도로 찌거나 빠짐으로써 극단적인 경우에는 수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12]
각주
- ↑ 위키백과 - https://ko.wikipedia.org/wiki/%EB%B9%84%EB%94%94%EC%98%A4_%EA%B2%8C%EC%9E%84#%EA%B0%9C%EC%9A%94
- ↑ 2.0 2.1 2.2 2.3 2.4 2.5 2.6 비디오 게임의 역사 나무위키 - https://namu.wiki/w/%EB%B9%84%EB%94%94%EC%98%A4%20%EA%B2%8C%EC%9E%84%EC%9D%98%20%EC%97%AD%EC%82%AC
- ↑ PDF문서 - https://www.kocca.kr/knowledge/internal/insu/__icsFiles/afieldfile/2010/05/02/70263.pdf
- ↑ 자그니, 〈당신이 몰랐던 게임의 역사, 그리고 게임 속 반도체 이야기(feat. Tenacity Syndrome 4편)〉, 《SK하이닉스뉴스룸》, 2020-05-08
- ↑ 기획부 이재휘 기자, 〈(기획특집) 비디오게임 - ② 게임의 발전〉, 《사이드뷰》, 2019-03-19
- ↑ 임기영, 〈게임 멸망 '아타리 쇼크'는 왜 벌어졌을까?〉, 《브런치》, 2018-11-23
- ↑ 비디오 게임의 역사 위키백과 - https://ko.wikipedia.org/wiki/%EB%B9%84%EB%94%94%EC%98%A4_%EA%B2%8C%EC%9E%84%EC%9D%98_%EC%97%AD%EC%82%AC#3D%EC%97%90%EC%84%9C_CD%EB%A1%9C%EC%9D%98_%EB%B3%80%ED%99%94
- ↑ 박지훈 미래한국 기자, 〈(시장분석) 게임산업의 특성과 성장....온라인게임, 모바일게임, 비디오게임, 아케이드게임, PC게임〉, 《미래한국》, 2019-03-14
- ↑ 이윤철, 〈비디오게임 시장현황과 전망
- ↑ 전현수 기자, 〈국내 게임시장 ‘비디오게임’ 비중 2%, 왜 콘솔은 안될까〉, 《플레이지》, 2018-07-28
- ↑ 꼬부기의 게임교실, 〈[1]〉게임만드는직업, 《티스토리》, 2016-06-09
- ↑ 하비엔,〈[2]〉할까? 말까? 비디오 게임의 장단점,《네이버 블로그》, 2019-04-04
참고자료
- 비디오 게임의 역사 나무위키 - https://namu.wiki/w/%EB%B9%84%EB%94%94%EC%98%A4%20%EA%B2%8C%EC%9E%84%EC%9D%98%20%EC%97%AD%EC%82%AC
- 비디오 게임 위키백과 - https://ko.wikipedia.org/wiki/%EB%B9%84%EB%94%94%EC%98%A4_%EA%B2%8C%EC%9E%84#%EA%B0%9C%EC%9A%94
- 임기영, 〈게임 멸망 '아타리 쇼크'는 왜 벌어졌을까?〉, 《브런치》, 2018-11-23
- 자그니, 〈당신이 몰랐던 게임의 역사, 그리고 게임 속 반도체 이야기(feat. Tenacity Syndrome 4편)〉, 《SK하이닉스뉴스룸》, 2020-05-08
- 기획부 이재휘 기자, 〈(기획특집) 비디오게임 - ② 게임의 발전〉, 《사이드뷰》, 2019-03-19
- 이윤철, 〈비디오게임 시장현황과 전망〉
- 박지훈 미래한국 기자, 〈(시장분석) 게임산업의 특성과 성장....온라인게임, 모바일게임, 비디오게임, 아케이드게임, PC게임〉, 《미래한국》, 2019-03-14
- 전현수 기자,〈[3]〉국내 게임시장 ‘비디오게임’ 비중 2%, 왜 콘솔은 안될까,《플레이지》, 2018-07-28
- 하비엔,〈[4]〉할까? 말까? 비디오 게임의 장단점,《네이버 블로그》, 2019-04-04
- 꼬부기의 게임교실, 〈[5]〉게임만드는직업, 《티스토리》, 2016-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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