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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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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비

럭비(Rugby)는 두 팀이 타원형 을 들거나 로 차서 상대 팀의 골 라인을 넘어 득점을 시도하는 격렬한 팀 스포츠다. 주요 특징은 빠른 경기 흐름, 신체 접촉, 전략적 플레이에 있으며 세계적으로 매우 인기 있는 스포츠 중 하나다.

개요

럭비 풋볼(영어: rugby football), 또는 단순히 럭비(영어: rugby, 문화어: 투구)는 을 이용한 구기 스포츠이며, 풋볼의 일종이다. 잉글랜드에서 만들어졌으며, 럭비 유니온과 럭비 리그로 나뉜다. 대한민국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럭비는 럭비 유니온을 말한다. 1920년대 일본인에 의해 한반도에 처음 소개됐고 대한민국의 럭비팀은 61개다.(2006년 7월 기준)

두 팀이 직사각형의 경기장에서 타원형의 럭비공을 H-자 형으로 생긴 상대편의 골대나 엔드라인 너머로 보내 득점하는 것이 목적이다. 식스 네이션스(six-nations)라 불리는 유럽 나라들과 트라이 내이션스의 SANZAR국가들, 오세아니아, 남아프리카, 아르헨티나 등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종목이다.

2016년 하계올림픽부터 7인제 럭비의 남녀부문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1]

역사

19세기 이전까지 럭비의 역사축구와 궤를 같이 한다. 1823년 잉글랜드의 유명 사립학교인 럭비 스쿨에서 풋볼 경기 중에 윌리엄 웹 엘리스(William Webb Ellis)라는 학생이 공을 손으로 들고 달리기 시작한 것이 기원으로 전해지지만, 후세의 창작이라는 설도 있다. 어쨌든 19세기 초 손을 이용해 볼을 들고 달렸던 형태의 풋볼 경기가 같은 이름의 지역에서 행해진 것은 확실하다. 당시 이튼, 해로우, 럭비 등 유명 사립학교들은 독자적인 규칙으로 풋볼 경기를 진행하고 있었다.

엘리스는 실존한 인물로,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후, 신부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를 기리기 위해 현재 럭비 월드컵에서 우승컵의 이름은 웹 엘리스컵(Webb Ellis Cup)이라 부르고 있다.

으로 들고 달리는 것은 1830년대에 럭비 스쿨에서 흔한 일이 되었고, 럭비 스쿨 풋볼은 1850년대와 1860년대에 영국 전역에서 인기를 끌게 되었다. 특히, 1845년에는 럭비 스쿨에서 3명의 학생들로부터 럭비 풋볼(Rugby Football)이라고 불리는 풋볼 규칙이 최초로 제정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공식적으로 럭비가 축구보다 규칙이 먼저 제정되었다.

이후 영국에서 현재의 럭비와 축구 규정이 혼용되고 있을 때였던 1863년 향후 두 종목의 분열을 가르게 될 회의가 소집되었다. 이 회의는 잉글랜드 축구 협회 (The Football Association)의 조직을 위해 17명의 관계자가 모여 축구 경기의 규칙 제정을 목표로 진행됐다. 이 회의에서는 경기 중 '손으로 공을 들고 다녀도 되느냐'는 '핸들링'의 문제뿐 아니라 , '상대편 선수가 자유롭게 공을 빼앗기 위해 넘어뜨리거나, 붙잡거나, 저지하거나, 상대방의 정강이를 차서 넘어뜨리는 해킹(Hacking)을 해도 되느냐' 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고, 관계자들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논쟁이 발생한 두 가지 규칙은 다음과 같다.

  • 만약 선수가 정당하게 공을 잡았거나, 첫 번째 바운드에 공을 잡았으면 선수는 상대방의 골문을 향해 공을 가지고 뛸 수 있다. 그러나 정당하게 공을 잡았을 경우에 만약 그 선수에게 수비가 있을 경우에는 달릴 수 없다.
  • 어느 선수든지 공을 가지고 상대방의 골문으로 있다면, 반대편의 어떤 선수라도 저지하고, 붙잡고, 발을 걸거나 정강이를 차거나 공을 비틀어 빼앗을 수 있는 자유가 있다. 그러나 누구든지 붙잡고 정강이를 차는 것을 동시에 하면 안 된다.

결국 이 회의에서 축구 협회(The FA)는 손의 사용을 최소화하고 '해킹'을 규정에서 삭제하면서 '축구'와 '럭비' 사이의 분열을 공식화하며 결성하게 되었다. 회의에 참석했던 블랙히스 럭비 클럽(Blackheath Club)은 해킹(Hacking)은 풋볼의 필수 요소라며, 규칙 제정에 만족하지 못하고 탈퇴하였고, 다른 럭비 클럽들은 이 선례를 따라 축구 협회(Football Association)에 가입하지 않았다.

결국 1863년 잉글랜드 축구 협회 (The Football Association)가 설립되었고, 1870년 12월 4일, 리치몬드의 에드윈 애쉬(Edwin Ash)와 블랙히스의 벤자민 번스(Benjamin Burns)는 타임즈에 "럭비 클럽들마다 각기 다른 규칙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럭비 형태의 경기를 하는 사람들은 연습 코드를 만들기 위해 만나야 한다"고 제안하는 편지를 실었고, 1871년 1월 26일 럭비 풋볼 유니온(RFU, Rugby Football Union)을 설립하게 되어 럭비만의 규칙을 정립하게 된다. 그 해 3월 28일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첫 럭비 국제 경기가 에딘버러에서 열리게 되었다. 이때 양 팀 선수는 20명이었으며, 주심이 없었기 때문에 양 팀 주장이 중재자 역할을 하였다. 1886년에는 럭비 규칙을 제정하고 국제적인 럭비 행정을 총괄하는 기구로 국제 럭비 평의회(IRB, International Rugby Board)가 창설되었고, 1890년 럭비 유니온이 그를 승인하게 된다.

1895년 8월 29일 맨체스터 등 노동자층 위주로 구성된 잉글랜드 북부의 21개 클럽이 상류 계층 위주로 구성된 럭비 유니온의 아마추어리즘의 고수 문제를 둘러싸고 유니온과 갈등을 빚고, 럭비 유니온을 탈퇴하였다. 그들은 웨스트요크셔주 허더스필드에서 현재의 럭비 리그인 노던 럭비풋볼 유니온(Northern Rugby Football Union)을 만들고 독자적인 룰을 발전시키면서 프로화를 진행, 1901년부터 리그를 시작하게 된다. 럭비 리그라는 명칭은 노던 럭비풋볼 유니온이 명칭을 럭비 풋볼 리그(Rugby Football League)로 바꾼 1922년부터 정착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분화된 럭비는 각각 세계로 퍼지며 두 개의 방식이 공존하게 되었다.

1948년 럭비 리그에서도 프랑스 보르도에서 럭비 리그의 국제화를 위해 국제 럭비 리그 연맹(RLIF, Rugby League International Federation)을 창설하였고, 1954년 프랑스에서 최초의 럭비 리그 월드컵을 개최했다.

1995년 8월 26일, IRB에서 럭비 경기에 참가한 선수에 대해 보수나 대가를 지불하는 것에 대한 제한을 공식적으로 철폐(오픈 선언)하면서 럭비 리그에 참여한 선수도 럭비 유니온 클럽이나 경기에 참가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고, 럭비 유니온 팀들 역시 프로화되었다.

영국에서는 유니온과 리그, 양쪽 모두의 규칙을 전후반 번갈아 사용하는 크로스코드 게임(cross-code game)을 하는 경우도 있다.[1]

럭비의 확산과 변형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에서 즐기는 럭비는 럭비 유니온 방식이고, 럭비 리그는 상대적으로 적은 나라에서 즐기는 종목이다. 오스트레일리아, 프랑스, 영국, 뉴질랜드에서 프로화 된 럭비 리그를 모두 갖추고 있으며, 특히 파푸아뉴기니에선 국기(國技)로 향유되고 있다. 러시아, 세르비아, 이스라엘, 레바논, 요르단, 남아프리카 공화국, 일본, 캐나다, 미국, 피지, 쿡 제도, 통가에서도 역시 세미프로 리그가 구성되어 있다.

반면, 유니온 방식의 럭비는 홈 유니온(Home Union)이라 불리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스를 비롯해 프랑스,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 남아프리카 공화국, 아르헨티나 등이 주도하는 ‘세계적’인 스포츠이다. 아시안 게임에서 15인제와 7인제의 유니온 럭비는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어 있고, 하계올림픽에서도 몇 차례 정식 종목으로 진행된 적이 있다. 아일랜드 더블린에 본부를 두고 있는 IRB에는 2007년 12월 현재 96개국 협회가 가맹되어 있고, 19개 국가가 준회원으로 소속되어 있다.

럭비는 그밖에 몇 가지 변형을 만들어냈다.

현대 럭비 종목
  • 럭비 유니온 (15인제 럭비)
  • 7인제 럭비
  • 태그 럭비 (신체 접촉을 허용하지 않는 럭비)
  • 럭비 리그 (13인제 럭비)
  • 9인제 럭비
  • 오즈 태그 (태그 럭비의 오스트레일리아 버전)
  • 터치 럭비 (신체접촉을 최소화한 럭비)
  • 비치 럭비
럭비에서 파생된 종목
  • 미식 축구 (미국 방식의 풋볼)
  • 아레나 풋볼
  • 플래그 풋볼
  • 캐나다식 축구 (캐나다 방식의 풋볼)
  • 캐나다식 플래그 풋볼
  • 오지 풋볼 (오스트레일리아 방식의 풋볼)[1]

경기 방법 및 규칙

양팀의 주장이 토스로 킥업 또는 사이드를 정한 뒤 공을 킥업함으로써 시작된다. 온사이드의 경기자는 스크럼 · 태클이 된 경우 이외에는 언제든지 공을 차거나 드리블, 또는 가지고 달릴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손이나 발로 스로 · 퍼트 · 녹온하든가 다른 경기자에게 패스 녹온할 수도 있다. 이런 방법으로 공을 상대편 인골까지 가지고 들어가 땅에 찍는 트라이를 하거나, 페널티 킥 · 드롭 킥 등을 하여 점수를 따낸다. 정해진 시간내에 보다 많은 점수를 얻은 팀이 승리한다.

심판

주심 1명과 선심 2명이 경기를 진행한다. 주심은 경기 전체를 통제하며, 선심은 공이 경기장 밖으로 나갔을 때 나간 장소를 알리고, 골킥이 성공했는지를 판정하며, 또한 선수의 반칙을 주심에게 알린다.

규칙

럭비의 규칙은 15인제인 유니온과 13인제인 리그의 것이 조금씩 다르다. 뿐만 아니라 각각에서 분화된 7인제 럭비와 9인제 럭비 경기도 있다.

두 종목은 같은 종류의 럭비공을 사용하며, 앞으로 공을 패스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고 전진을 위해선 공과 함께 뛰거나 발로 차는 방법만 허용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득점 역시 트라이나 골을 통해서만 가능한데, 트라이는 상대편 진영의 골라인 너머의 지면에 공을 갖다 놓는 것을 말하며, 골은 골 포스트 사이에 있는 크로스바 위로 공을 차 넘기는 것이다. (각각의 배점은 두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점수
  • 골라인을 터치 즉 트라이 점수 5점.
  • 보너스 킥- 럭비공을 땅에 세워 H 골대를 향해 킥을 해서 H 사이로 통과하면 2점.

총 7점

  • 상대방이 심한 반칙을 했을 경우 페널티킥이 주어지고 반칙을 한 지점에서 공을 세워놓고 발로 차서 H 골대로 넘어가면 3점 을 획득한다.
15인제 와 13인제의 차이점

두 종목의 주요한 차이점은 15명과 13명이 한 팀을 이룬다는 것과 태클 이후 어떻게 진행되느냐에서 드러난다. 럭비 리그에선 두 플랭커들이 빠져 있다. 럭비 리그에서는 유니온과 달리 한 팀이 여섯 차례 태클을 당하는 사이에 득점을 하지 못하면 공의 소유권이 상대팀으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여러 소소한 차이들이 존재한다.[1]

경기 시설 및 용구

  • 경기장: 144×69m의 장방형으로, 골 라인 · 하프웨이 라인 · 25야드 라인 · 데드볼 라인 · 10m 라인 · 5m 라인 등의 선이 그어져 있다.
  • 골 포스트: 골 라인 중앙에 5.57m 간격으로 높이가 3.05m인 두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크로스바를 가로 얹는다.
  • 공: 길이 28 - 28.6cm, 세로 둘레 76 - 79cm, 가로 둘레 61 - 65cm, 무게 383 - 425g.[1]

기술

개인 기술

럭비 풋볼의 개인 기술로는 패스 · 캐치 · 킥 · 드리블 · 세이빙 · 태클 등이 있다.

  • 패스: 럭비 풋볼의 가장 기초가 되는 중요한 기술이다. 공은 옆으로나 뒤로만 패스할 수 있으며, 앞으로는 패스할 수 없다. 항상 두 손으로 공을 잡고 패스하는데, 정지 상태에서 하는 스탠딩 패스와 달리면서 하는 러닝 패스 등이 있다.
  • 캐치: 공을 주시하고 두 손을 가볍게 벌려 공을 받는 즉시 다른 동작으로 연결한다.
  • 킥: 공은 킥에 의해서만 앞으로 보낼 수가 있다. 펀트 킥 · 드롭 킥 · 플레이스 킥 등이 있다.
  • 드리블: 달리면서 발의 안쪽과 발등을 사용하여 공을 다루는 기술.
  • 세이빙: 상대편의 드리블 공격을 일시적으로 수비하거나, 몸을 옆으로 굴려 공을 끌어안아 상대방의 전진을 막는 기술.
  • 태클: 상대편이 공을 가지고 달릴 때 넘어뜨려 전진을 방해하거나 패스 또는 킥을 못하게 막는 기술.
  • 집단 기술: 집단 기술에는 포워드 플레이 · 백스 플레이 등이 있다.
  • 포워드 플레이
  • 스크럼:보통 5인 또는 7인 또는 8인의 포워드가 스크럼을 짜는데, 타이트 스크럼이라고도 한다. 스크럼 안에 공이 들어오면 후커는 재빨리 후킹하고 스크럼 밖으로 힐 아웃시키도록 한다. 앞에 3명 중간에 4명 뒤에 1명으로 구성이 된다.
  • 럭:두 팀에서 각각 1명 이상의 경기자가 공이 있는 지점에서 서로 짝을 짓거나, 몸을 밀착시키고 있는 상태로, 루즈 스크럼이라고도 한다.
  • 라인 아웃:볼이 터치 라인 밖으로 나갔을 때 경기를 재개시키는 방법이다.
  • 백스 플레이: 스크럼이나 라인 아웃부터 공을 처리하는 기술로 스크럼 하프의 공을 패스하는 작전 등을 익힌다.[1]

용어

  • 낫 스트레이트(not straight)
투입된 공이 직선이 아닌 반칙. 라인아웃의 스로인에서는 이 반칙에 대해 상대측은 다시 던지든가 터치라인으로부터 13.5m(15yd) 지점에서 스크럼을 짜든가 어느 한쪽을 선택할 수 있다.
  • 낫 인(not in)
스크럼에 공을 던질 때 정당하게 공이 들어가지 않아 다시 던질 것을 명령하는 일.
  • 낫텐야드(not 10 yards)
킥오프 때 볼이 9m(10yd) 지점까지 이르지 않는 것. 상대는 다시 킥오프를 시키거나 하프웨이 라인의 중앙에서 스크럼을 짤 수 있음.
  • 낫파이브야드(not 5 yards)
라인아웃일 때 공이 4.5m(5yd)에 이르지 않는 것. 상대는 다시 던지거나 13.5m(15yd) 지점에서 스크럼을 짤 수 있음.
  • 녹온(knock on)
공이 경기자의 손이나 팔에 맞아 상대의 데드볼라인 방향으로 나가는 것.
  • 더미(dummy)
패스할 자세를 취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공을 손에서 놓지 않고 다시 돌려놓아 상대를 혼란시키는 동작.
  • 브레이크(break)
포워드가 스크럼을 푸는 일.
  • 스로 포워드(throw foward)
공을 상대의 데드볼 라인 방향으로 패스하는 것.
  • 스윙 플레이(swing play)
포워드에게서 힐 아웃된 공을 재빨리 박스로 돌려놓고, 태클 당하면 포워드는 럭이나 몰을 짜서 반대측 오픈사이드로 좌우 패스 공격을 해서 상대 진영을 교란시키고 트라이하는 전법. '흔들어 놓기 전법'이라고도 한다.
  • 스크럼 트라이(scrum try)
스크럼 속에 공을 커트한 채 상대의 인골로 밀어넣어 그라운딩 했을 때의 트라이.
  • 시저스(scissors)
같은 편끼리 서로 반대 방향으로 달려 나와 크로스할 때 패스를 하는 기술. '가위'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이렇게 부른다.
  • 액시덴털 오프사이드(accidental offside)
공을 가진 경기자가 우연히 자기편 오프사이드의 경기자에게 부딪힌 경우.
  • 언윌풀 오프사이드(unwillful offside)
공을 가지고 전진하는 경기자가 전방의 자기 편에게 무의식적으로 닿은 경우.
  • 오브스트럭션(obstruction)
플레이를 방해하는 행위.
  • 캐리 백(carry back)
필드오브플레이에서 공을 자기편의 골로 들고 들어와 데드가 되었을 경우.
  • 컨버트(convert)
공이 크로스바 위를 완전히 넘어 골인됨.
  • 페어 캐치(fair catch)
상대의 킥 · 스로 포워드 · 녹온 등의 공을 직접 잡아내고, 동시에 '마크'라고 외쳐 두 발이 지상에 있는 경우.
  • 프롭(prop)
포워드가 세트 스크럼을 짰을 때 프런트로 양측에 위치하는 경기자.
  • 픽업(pick up)
지상의 공을 집어드는 행위.
  • 필드오브플레이(field of play)
경기를 하는 장소. 곧, 골 라인과 터치 라인에 에워싸인 지역으로, 단 골 라인과 터치 라인은 포함되지 않는다.
  • 휠링(wheeling)
스크럼 속에 공을 둔 채 스크럼을 회전시키면서 드리블 러시하는 공격법.[1]

신사들이 하는 불량한 스포츠

영국의 오래된 말에 따르면 축구는 불량배들이 하는 신사적인 스포츠이고, 럭비는 신사들이 하는 불량배적인 스포츠라고 한다. 축구는 규칙 자체가 선수들 간에 많은 신체적 접촉이 제한되어 있어 신사적으로 보이지만 축구 선수와 관객들은 상대 팀에 대한 심한 욕설 및 심판 판정에 항의가 잦은 반면(축구 심판), 신체적 접촉이 허용되는 럭비는 규칙이 잔인하고 게임의 모습이 매우 난폭하고 격렬하지만 모든 선수와 관객들은 상대 팀과 상대 팀을 응원하는 관객들, 그리고 경기를 진행하는 심판을 배려하며 존중하고 신사답게 행동하는 형태라서 실질적으로는 선의의 경쟁으로 펼쳐지는 스포츠라서 생긴 말이다.

럭비에서 심판의 권한은 절대적이며, 축구와 달리 선수들은 심판에게 화를 내거나 극도로 항의하지 않는다. 근육질의 선수들은 순한 양과 같이 심판을 존중하고 그가 내린 판정에 순응한다.(This is not Soccer) 이는 영국 상류 계층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반대로 심판도 선수들을 존중할 필요가 있으며, 자신의 판정에 대해 설명해야 하고 실수를 했으면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경기 종료를 'Game Set' 혹은 'Game Over'라고 표현하는 다른 스포츠들과는 달리 럭비는 게임 종료를 노 사이드(No Side)라고 한다. 즉, 게임 종료와 함께 팀 구분 없이 선수 모두가 하나이고 우리는 친구라는 의미이며, 게임 중에 벌어진 일들은 모두 잊어버리고 모두가 악수를 하며 서로를 격려한다. 때때로 선물을 교환하거나 선수들이 함께 모여 하느님께 기도를 올리고 성호를 긋는 경우도 있다. 이런 노사이드 정신은 럭비의 핵심 가치 중 하나다. 때문에 경기 도중 멱살 잡고 싸우는 것은 대부분 문제가 되지 않으나, 노사이드 선언 후 그런 부적절한 행동을 하면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들여진다. 오히려 축구의 레드카드 불복보다도 더욱 심각하게 인지해서 럭비라는 스포츠 자체나 럭비를 하는 목적에 대한 신성모독으로 여기는 경우가 매우 많다.

역사적으로 축구가 서민(노동자 계급)의 스포츠였다면 럭비는 상류층의 스포츠였다. 이미 머나먼 옛날 옛적에부터 영국에서 내로라하는 부르주아나 귀족, 왕실 구성원의 취미 활동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위에서 서술하였듯이, 애초에 럭비는 영국의 전통 명문 사립학교인 "럭비 스쿨(Rugby School)"에서 탄생한 풋볼이다. 예로 최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영국의 공립 학교에는 축구팀이 있는 반면, 사립 학교에는 럭비팀들이 있을 정도였다. 이는 엘리트주의에 럭비가 굉장히 적합했기 때문이다. 럭비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둘 다 강해야 하기 때문에 상류층에서는 엘리티시즘에 알맞는 스포츠로 여겼다. 엘리트주의보다 더 본질적인 이유는 초창기 당시 라이벌 종목이었던 축구가 프로화의 길에 접어들었지만 럭비는 아마추어리즘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19세기 유럽 신사 사회에서 스포츠는 순수하게 취미로 즐기는 아마추어를 숭상했고, 돈을 받고 뛰는 프로페셔널은 하층민이나 하는 매우 저급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축구가 프로의 길로 접어들자 영국 상류 사회에서는 저급한 스포츠로 취급하여 외면하고 럭비에 관심을 더욱 더 기울이게 되었다. 따라서 오랫동안 아마추어를 유지했던 럭비는 축구만큼 세계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대신 반대로 상류층이 기반이 된 스포츠라서 스포츠맨십이나 신사 문화가 축구보다 발달했다. 이것은 북미로 전해져서 이들 국가에 전술한 미식축구, 캐나디안 풋볼 등 럭비 파생 종목들이 있음에도 사립 학교에는 대부분 전통적으로 럭비팀이 있고, 미국의 아이비 리그 대학들에도 상류 스포츠라 여겨지는 조정과 함께 럭비팀이 있는 이유다. 물론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은 꽤 많이 바뀌어서 공립 학교에도 럭비팀이 있고, 럭비를 더욱 더 세계적인 스포츠로 키우기 위해 월드 럭비가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럭비가 축구만큼이나 세계적으로 성장하지 못하였던 이유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럭비는 항상 엘리트 스포츠였고,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얼마나 "남자다운지" 증명하기 위해 영국 상류층의 "퍼블릭 스쿨(Public School)"과 "그래머 스쿨(Grammar School)" 학생들이 하던 스포츠이다. 그 외에도 럭비의 인기가 축구만큼 성장하기 힘들었던 몇몇 요소들이 있었다.

  • 럭비는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그라운드나 딱딱한 그라운드에서 경기하기 어렵다.
트라이를 위해 몸을 날리거나 태클과 같은 신체적 접촉이 많고 그라운드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은 럭비 경기는 깔끔하게 손질된 잔디나 부드러운 경기장을 필요로 한다. 부유한 학교들이나 군대 등 특정 기관에 소속된 사람들만이 이러한 시설에 접근할 수 있었다. 오직 부유한 사람들만이 가능했다.
  • 럭비는 오랫동안 아마추어를 철저하게 고수했었다.
영국에서 럭비와 축구의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럭비는 심지어 1995년까지 아마추어 스포츠였다. 이것은 가난한 사람이 아무리 럭비에 재능이 있고 관심을 가지더라도 선수로서 소득이 없기 때문에 직업으로 삼을 수 없었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가난한 노동자층의 서민들보다는 중상류층들이나 즐길 수 있는 스포츠였다. 또한, 럭비는 엄청난 신체적인 힘을 필요로 하는 스포츠이다. 럭비 선수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 적절한 훈련과 영양 섭취를 해야 하는데,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급여가 없으면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이다. 오직 돈이 많은 부자들이나 신사들만 할 수 있는 여가의 스포츠였다.
  • 럭비는 부상당하기 쉬운 스포츠이다. 가난한 사람은 부상을 입을 여유나 부상을 치료할 금전적 여유가 없었다.
아마추어리즘의 연장선상으로, 선수로서 급여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럭비를 하다 부상을 입으면 본업에 제한이 생겨 그들의 많은 수입을 잃게 만들 것이고, 이것이 그들이 럭비를 하기에 망설이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이유들로 초창기 잉글랜드 전역에서 인기가 높던 럭비는 상류 계층 젠틀맨들만의 스포츠가 되었고, 이러한 럭비의 아마추어리즘은 프로페셔널리즘을 일찍 받아들인 축구와는 완전히 상반되며, 결국 축구는 노동자 계급의 마을에 속한 선수들이 훈련이나 경기에 대해 임금을 잃지 않고 경기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고, 이러한 이유로 사회 전반에 걸쳐 노동자 계층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점점 성장할 수 있었고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축구는 위의 언급된 이유들과 같이 많은 부상 및 신체적인 조건을 필요로 하는 럭비에 비해 신체적인 조건에 크게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다른 유럽 국가들을 비롯하여 특히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와 같은 대륙에 쉽게 보급 및 정착될 수 있었다.

그리고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당시 1914년 8월 4일 영국이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을 때, 럭비는 대응이 늦었던 축구와는 달리, 전쟁에 대한 대응의 신속성에서 두드러졌으며, 럭비 풋볼 유니언은 즉각적으로 모든 경기를 무기한 정지시켰고, 훈련 목적을 위해 트위크넘 스타디움을 포함한 모든 럭비 경기장을 군대에 넘겼다. 그리고 잉글랜드 럭비 풋볼 유니언 대표팀은 새로운 전투에 직면하게 되었는데 바로 90% 이상의 럭비 선수들이 조국을 위해 군대에 입대하였고, 몇몇 선수들은 궁극적으로 희생을 치르기도 하였다. 이것은 럭비 선수(Rugby Union Footballer)들에 의해 만들어진 사례였으며, 당시 영국의 육군성은 다른 스포츠맨들에게 군대에 입대함으로써 럭비 유니언 선수들의 '영광스러운 모범'을 따르라고 충고하는 포스터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또한 이는 잉글랜드 신사의 덕목에 있어 가장 본질적 요소인 용기와 희생에 대한 이야기이며, 1914년과 1918년 사이에 국제 럭비 선수들이 영국의 거의 모든 전쟁에 어떻게 관여했는지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전쟁 이후, 럭비는 조국에 대한 더욱 큰 애국심으로 인하여 특히, 사립 학교들에서는 더욱 더 인기가 급증하였고, 이는 럭비의 가치가 어린 소년들에게 심어주고 싶은 가치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한편 2014년 영국 Ofsted의 스포츠 관리기구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여전히 31명으로 구성된 잉글랜드 럭비 국가대표팀의 스쿼드 중 20명이 최소한 학비를 지불하는 사립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상위 리그에서는 사립학교 출신 비율이 61%에 해당하고, 공립학교 출신은 오직 39%라고 한다. 그리고 6년 뒤 조사에서도 2020년 식스 네이션스의 잉글랜드 대표 선수 32명 중 오로지 11명의 선수만이 과거에 공립학교에 진학하였고, 나머지 선수들은 학비를 지불하는 사립학교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2]

인기

영국

럭비 풋볼의 중심 국가이며, 럭비의 종주국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잉글랜드가 럭비의 종가이다. 그러므로 다른 국가의 럭비 협회와는 달리 잉글랜드는 국가명을 따로 붙이지 않고, 말 그대로 럭비 풋볼 유니언이다.

잉글랜드에서 국가대표 경기로는 축구와 더불어 엄청난 인기를 자랑한다. 2003 럭비 월드컵 결승전 (잉글랜드 VS 호주)은 그 해 영국 스포츠 프로그램 시청률 1위를 기록하였고, 2007년 프랑스에서 개최한 럭비 월드컵에서는 영국 내 티켓 가격이 무려 747만 원까지 치솟는 등 엄청난 인기를 자랑한다. 북반구에 위치한 국가로서는 잉글랜드가 유일하게 럭비 월드컵 우승한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우승 당시에는 럭비 월드컵 우승 영웅들인 잉글랜드 럭비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버킹엄 궁전에 초대를 받아 함께 인사를 나누기도 하였고, 주장이었던 마틴 존슨은 우승 트로피인 웹 엘리스 컵(Webb Ellis Cup)을 여왕에게 직접 선보이기도 하였다.

영국의 4개 구성국 모두 럭비 강국이다. 축구와 더불어 전통 민족주의자들에게 내셔널리즘을 가장 잘 나타내는 스포츠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 스코틀랜드에서의 최초의 럭비 경기는 1857년 12월에 치러진 에든버러 대학과 에든버러 아카데미 간의 경기이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정기 럭비 경기로는 1858년에 처음으로 열린 머키스턴 캐슬 스쿨(Merchiston Castle School)과 "에든버러 아카데미(Edinburgh Academy)" 출신 학생들 사이에서 치러진 경기이다. 스코틀랜드에서 국가대표 경기로는 럭비가 축구보다 더욱 인기가 많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자랑한다. 햄던 파크에서 열리는 스코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는 평균 관중이 27,000명 이하인 반면, 머리필드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스코틀랜드 럭비 유니언 국가대표팀의 경기는 거의 매번 67,000석을 가득 채운다. 월드 럭비 랭킹도 2023년 잉글랜드를 누르고 5위까지 올라갔을 정도로 강호다. 스코틀랜드 럭비 국가대표팀의 럭비 월드컵 최고 성적으로는 1991년에 열린 럭비 월드컵에서 4위를 차지했을 때이다.

또한,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와 오래된 라이벌 관계인데, 특히 이 두 국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1871년 3월 27일에 에딘버러에 있는 레이번 플레이스(Raeburn Place)에서 어느 풋볼 코드를 막론하고 세계 최초로 국제 럭비 경기를 치렀었는데, 150주년이 되는 2021년, 트위크넘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식스 네이션스 챔피언십의 '캘커타 컵(Calcutta Cup)'에서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를 상대로 승리하기도 하였다. 스코틀랜드 럭비 유니언의 후원자인 영국 왕실의 프린세스 로열 앤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150주년 국제 럭비 경기를 기념하기도 하였고, 잉글랜드를 상대로 승리한 스코틀랜드 대표팀을 축하해주기도 하였다.

웨일스에서 럭비는 국가의 정체성을 나타내고 민족 의식과 애국심을 가장 잘 고취시키며, 국기(國技)로서 국민들이 엄청 환장하는 최고 인기 스포츠이다. 특히, 2012년 식스 네이션스에서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웨일스 럭비 유니언 국가대표팀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버킹엄 궁전에 초대를 받기도 하였으며, 2019년 대회에서 또 한번의 그랜드 슬램과 더불어 2019 럭비 월드컵에서도 역사상 3번째 4강에 오르는 등 좋은 성적을 거뒀다. 이때 8강에서 승리한 이후 월드 럭비 랭킹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북아일랜드는 독립한 아일랜드와 함께 단일 국가대표팀을 이루어 함께 출전하며, 북아일랜드에 해당하는 얼스터 지역을 연고로 하는 프로 럭비 클럽팀인 얼스터 럭비팀(Ulster Rugby)이 존재하고, 1998/99시즌에는 아일랜드 프로 럭비 클럽팀으로서 최초로 하이네켄 컵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며, 2011/12시즌 하이네켄 컵에서 역시 결승까지 올라가 준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좋은 성적을 거두어 상당히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1883년에는 영국의 4개 구성국은 홈 네이션스(Home Nations)를 이루어 홈 네이션스 챔피언십을 결성하고 매년 잉글랜드,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대표팀끼리 경기를 치렀는데, 1910년에 프랑스, 2000년 이탈리아가 합세하여 현재는 매년 6개국이 경쟁하는 식스 네이션스 챔피언십이 되어 럭비 월드컵 다음 가는 세계 최고의 행사로 거듭났다.

또한, 1888년 영국은 Home Nations(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국가들이 연합하여 축구에는 존재하지 않는 브리티시 & 아이리시 라이언스라는 최고의 선수들로 구성된 럭비 연합팀을 결성하여 남반구 국가이면서 영연방(英聯邦)국가에 속하는 호주, 뉴질랜드, 남아공을 매 4년마다 순회하며 럭비 경기를 갖는다. 이를 "브리티시 & 아이리시 라이언스 투어"라고 하는데, 이 팀은 해당 국가에 투어를 가서 국가대표팀과 3경기를 비롯하여 프로 클럽팀들과 총 10여회의 경기를 치른다. 해당 투어 국가의 대표팀과는 3번의 경기로 승부를 결정짓고, 이긴 팀은 그 해 시리즈 우승 타이틀을 가져가게 된다. 최근 2021년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투어 경기를 치렀고, 4년 후인 2025년에는 호주로 투어 경기를 가질 예정이다. 축구에서는 이렇게 4개 구성국이 단일팀으로 모이기 힘들지만 럭비에서는 라이언스라는 단일팀이 존재하며 4년마다 럭비 월드컵과 해마다 열리는 식스 네이션스 챔피언십에서 4개의 구성국이 자존심을 걸고 서로 경쟁하기도 하고, "브리티시 & 아이리시 라이언스"라는 팀으로 연합하는 것을 보면 영국의 럭비 사랑은 대단하다.[2]

영연방

잉글랜드가 종주국이라 그런지 럭비는 영연방 회원 국가들에서 매우 인기가 많은데, 럭비의 초창기 시절 영국의 구성국이자 영연방 회원국이었던 아일랜드에서도 럭비는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중 하나이다. 또한 종주국인 잉글랜드와 마찬가지로 아일랜드에서도 럭비는 상류층의 스포츠로 여겨진다. 물론 아일랜드 내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로는 게일릭 풋볼이 꼽히지만, 이건 아일랜드 내에서만 행해지는 스포츠인 반면 국제 스포츠로는 럭비 대표팀의 인기가 가장 많다.

축구와 달리 아일랜드는 현재 영국에 속하는 북아일랜드와 함께 아일랜드섬 전체를 대표하는 단일팀으로 출전하고 있다. 그래서 독립 이후 국가나 국기 문제에 있어 논란이 계속 있어 왔는데, 럭비에 한해서는 4지방기(IRFU의 깃발IRFU)를 내걸기도 하고, 아일랜드 삼색기와 얼스터 지방기를 함께 사용하기도 한다. 4지방기는 전통적인 아일랜드 4개의 지방인 먼스터, 렌스터, 얼스터, 코노트의 깃발을 한데 합쳐 만든 것으로,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과 아일랜드 럭비 풋볼 유니언과 같은 몇몇 전(全) 아일랜드 조직에서 사용하고, 아일랜드 삼색기나 성 패트릭기보다도 가치중립적인 깃발이라고 여긴다. 또한, 아일랜드 럭비 유니언 국가대표팀은 경기 전 Irealnd's Call(아일랜드의 부름)이라는 협회가를 제창한다. 홈 경기장인 더블린에 위치한 아비바 스타디움에 한해서는 아일랜드 국가(國歌)인 The Soldier's Song(Amhrán na bhFiann)과 Ireland's Call 모두 제창하기도 한다.

아일랜드 럭비 유니언 국가대표팀은 식스 네이션스 챔피언십의 초창기부터 함께 해 오고 있으며, 4년마다 열리는 럭비 월드컵에도 매번 본선에 진출하는 럭비 강국이다. 월드컵에서는 이상한 징크스가 있어서 4강에 진출한 적이 아직 없지만, 2018년과 2023 식스 네이션스 챔피언십에서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기도 했고(Ireland Grand Slam 2018), 2018년에 이어 2021년과 2022년 Autumn Nations Series에서 세계 최강팀인 뉴질랜드 럭비 유니언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승리하기도 했다.

또 아일랜드는 클럽팀이 매우 강세다. 프로 클럽으로 먼스터 럭비, 렌스터 럭비, 얼스터 럭비, 코노트 럭비가 있으며 모두 유나이티드 럭비 챔피언십 상위권을 차지하는 강팀인데, 특히 렌스터는 유러피언 럭비 챔피언스 컵 우승 후보에 항상 드는 매우 강한 전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먼스터(Munster) 럭비팀과 렌스터(Leinster) 럭비팀 간의 경기는 최고의 라이벌 경기로 손꼽힌다. 특히 2009년 당시, 현재 아비바 스타디움에 해당하는 랜스다운 로드(Lansdowne Road)의 재건축으로 인해 경기장 사용이 불가능한 기간 동안에, GAA(게일릭 체육 협회)의 기타 스포츠에 대한 경기장 사용 허가 덕분에 82,300명의 관중을 수용하는 GAA 소유의 크록 파크(Croke Park)에서 열린 먼스터 럭비팀과 렌스터 럭비팀의 하이네켄 컵 경기에서는 82,208명이라는 클럽 럭비 경기 역사상 최대 관중 세계 신기록을 세우기도 하였다. 이 기록은 아직도 아일랜드 내의 클럽 럭비 경기로는 여전히 최다 관중 기록으로 남아 있다.

뉴질랜드, 호주를 포함한 오세아니아 대륙에서 럭비는 가장 사랑받는 스포츠이다. 그 중에서 뉴질랜드 럭비 유니언 국가대표팀, 일명 올 블랙스(All Blacks)는 승률이 75%가 넘는, 역사적으로 최강의 팀이라는 데 아무도 이견을 제시하지 않는 강호 중의 강호이며 2023 럭비 월드컵까지 10번 개최된 럭비 월드컵에서 결승전에 5번 진출하여 3번 우승한 최다 결승전 진출국이다. 올 블랙스는 경기 전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의 전통 춤인 마오리 하카를 추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뉴질랜드, 호주 외에 오세아니아의 다른 섬나라들에서도 럭비는 인기가 가장 많은 스포츠로, 피지, 사모아, 통가를 퍼시픽 3강으로 보며, 파푸아뉴기니, 쿡 제도 등에서도 인기가 매우 많다.

호주에서도 럭비는 인기 있는 스포츠이나, 역사적으로 럭비 유니언은 본국인 영국과 마찬가지로 유산계급 즉, 상류층의 스포츠였다. 그래서 호주에서도 사립학교는 럭비 유니언, 공립학교는 럭비 리그 체계로 간다. 제1차 세계 대전 때 젊은 이들을 해외로 보내기 위해 호주 정부는 럭비 및 스포츠 경기들을 중단시켰고, 유산계급의 스포츠였던 럭비 유니언은 이 정부의 지침을 잘 지켰기 때문에 럭비 유니언이 호주에서 동네 풀뿌리 스포츠로 자리잡는 데 실패하게 된다. 반면, 무산계급의 스포츠였던 럭비 리그는 정부 지침을 무시하거나 정부의 묵인 아래 계속 진행될 수 있었으며, 이 때문에 호주는 동네 풀뿌리 스포츠로서 럭비 유니언보다 럭비 리그가 더 인기가 있는 지역이 된다. 한편 사립 고등학교를 중심으로 럭비 유니언은 지속적으로 유산계급의 스포츠라는 정체성을 확보하였으며, 유산계급은 다른 영연방 국가들의 유산계급과 사립학교 대항전 및 국제 대회 개최에 더 유리하였으므로 호주에서 국가 대항전은 럭비 리그보다 럭비 유니언이 더 인기가 있게 된다. 결국 NSW와 퀸즐랜드에서 각 풋볼 코드는 계급의 상징물로 고착화된다. 참고로 이것은 NSW, 퀸즐랜드에 한정된 것이다. 남호주, 빅토리아는 오스트레일리안 풋볼이 무산계급의 스포츠였다. 그러나 이 지역들에서도 유산계급의 스포츠는 사립학교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럭비 유니언이었다.

이 때문에 호주 럭비 유니언 국가대표팀 월러비스(Wallabies)는[48] 호주 어디를 가든 사랑받는 존재가 된다. 호주 역시 1991년과 1999년 럭비 월드컵에서 2번의 우승, 2003년과 2015년엔 준우승한 럭비 강국으로, 해마다 뉴질랜드, 남아공, 아르헨티나와 함께 럭비 챔피언십에 참가한다. 특히, 호주는 뉴질랜드와 라이벌 관계인데, 매년 해마다 치러지는 End of Year Internationals, 럭비 챔피언십을 통해 뉴질랜드와 블레디슬로 컵을 두고 서로 경쟁한다. 현재는 일반적으로 매년 3경기가 진행되는 시리즈로 구성되어 있고, 2경기는 럭비 챔피언십에 반영된다. 뉴질랜드는 2023년까지 승리함으로써 51번째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게 되었고, 호주는 2002년 12번째 시리즈 우승을 끝으로 2003년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한 번도 우승을 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블레디슬로 컵이 진행될 때 호주의 양대 인기 프로 리그인 오스트레일리안 풋볼 리그(AFL)과 내셔널 럭비 리그(NRL)가 한창 달아오를 시기라 아무리 호주가 럭비 유니언을 열렬히 사랑한다고 해도 럭비 월드컵이 아닌 이상 인기가 시들할 수 밖에 없다. 팀의 저조한 성적과 시리즈가 시작되는 날짜가 묘하게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프로 럭비 대회가 개막되는 시기와 비슷하기 때문에 선수들이 서로 한 둘 빠지는 경우가 있어 뉴질랜드와 달리 하드코어 럭비 팬들 덕분에 관중 동원은 성공하더라도 TV 시청률은 우려가 될 정도로 저조한 상황이다.

이는 뉴질랜드가 럭비 유니언을 계급과 상관없이 스포츠 자체를 국가의 정체성으로 삼은 반면, 호주에선 럭비 유니언이 유산계급의 스포츠로서 지위로 한정되어 있고, 오스트레일리안 풋볼을 비롯한 다양한 풋볼 코드를 즐기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한 때 호주 럭비 유니언은 NSW 럭비 유니언이 전부 담당했던 시절이 있었으며, 호주 럭비 유니언 클럽팀인 와라타스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팀으로 호주의 영국 식민지로서의 문화적 정체성을 대표한다. 그래서 럭비 오스트레일리아는 과거 와라타스가 타국 대표팀과 치렀던 경기를 테스트 매치라고 소급 인정하기도 하였다.

앞서 설명한 뉴질랜드, 피지 등 섬나라와 호주가 구성하는 럭비 유니언 다국적 프로 리그인 슈퍼 럭비 퍼시픽에 호주에 연고를 둔 팀은 5개밖에 되지 않으며, 프로화는 되었으나 여전히 아마추어리즘의 잔재가 남아 있다. NSW주의 대표 클럽팀인 와라타스가 국가대표팀에서 뛰고 싶거나 경제적인 사정 때문에 빨리 프로로 데뷔하고 싶어했던 럭비 유니언 유망주였던 앵거스 크라이튼 및 청소년 선수들에게 23살이 되기 전까지는 성인 무대인 슈퍼 럭비에서 뛸 수 없다고 말하였고, 그렇게 시드니 럭비 리그 클럽들에게 유망한 유스 선수들을 다 빼앗긴 건 유명한 이야기이다.

피지에서도 럭비는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로서 15인제 럭비에서도 강팀 중 하나지만, 특히 7인제 럭비 강국 중의 강국이다. 2016년에 열린 리우 올림픽 7인제 럭비 종목에서 영국 단일팀을 이기고 금메달, 2021년에 열린 2020 도쿄 올림픽에서도 천하의 뉴질랜드를 꺾고 금메달을 획득하여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하였다. 피지 럭비 유니언 국가대표팀은 플라잉 피지언(Flying Fijians)으로 불리며, 뉴질랜드처럼 경기 전 시비(Cibi)라는 전통 춤을 추고, 경기가 끝난 후에 체인징 룸이나 경기장에서 We Have Overcome(피지어: Eda sa qaqa)과 Mo Ravi Vei Jisu 등 여러 찬송가들을 부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프로 럭비 클럽팀으로는 호주의 내셔널 럭비 챔피언십에 참가했던 피지언 드루아가 2022 시즌부터 슈퍼 럭비 퍼시픽에 참가하고 있으며, 2023시즌에서 8위를 차지하는 준수한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통가 역시 영연방 국가면서 오세아니아의 섬나라들이 늘상 그렇듯이 럭비는 가장 인기가 많은 국가 스포츠이며, 그들의 삶의 한 방식이기도 하다. 통가 럭비 유니언 국가대표팀은 아직 럭비 월드컵에선 본선 진출이 최고 성적이고 8강 이내에 진출한 적은 없으나, 줄곧 세계 랭킹 10 ~ 15위 사이를 오가는 강팀이다. 사모아, 피지에 비교해도 가장 적은 인구와 작은 국토에 비해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다. 통가 대표팀 역시 폴리네시아인으로 구성된 팀답게 경기 전 시피 타우(Sipi Tau)라는 전통 춤을 춘다.

사모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도 럭비다. 마누 사모아(Manu Samoa)라고 불리는 사모아 럭비 유니언 국가대표팀은 럭비 강팀 중 하나로, 럭비 월드컵에서의 성적도 괜찮다. 8강에 진출한 적도 2번 있고 유럽의 강호들도 줄곧 잡을 때가 많아 만만치 않은 적수로 평가받고 있다. 사모아 대표팀은 뉴질랜드 대표팀의 하카처럼 경기 전 시바 타우(Siva Tau)라는 전통 춤을 춘다. 또한, 사모아 선수들은 체인징 룸이나 특별 행사에서 Lavalava Samoa라는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라바라바(Lavalava)는 사모아인들이 입는 스커트 형식의 전통 복장이다.

피지, 사모아, 통가 3국이 구성하는 퍼시픽 네이션스 컵이 매해 개최되고 있으며, 2024년부터 미국과 캐나다도 정식으로 대회에 편입된다. 뉴질랜드를 연고로 하지만 다수의 통가, 사모아 선수들이 소속된 모아나 퍼시피카라는 팀이 슈퍼 럭비 퍼시픽에 참가하고 있으며, 팀의 이름처럼 태평양 섬나라 선수들을 위한 팀이다. 묘하게 피지언 드루아와 겹치는 이미지가 있는데, 다만 실력은 피지언 드루아와 달리 리그 최하위권으로 매 시즌 전패 위기다.

아프리카에도 영연방 국가들이 있으며,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나미비아 두 나라에서 럭비는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중 하나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럭비 유니언 국가대표팀 스프링복스와 나미비아 럭비 유니언 국가대표팀 웰위치아스는 영연방 국가답게 백인 선수들이 주축을 이루고 백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다. 호주와 마찬가지로 럭비 유니언이 백인 유산계급의 스포츠였기 때문이다. 특히,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표팀은 자국에서 개최한 1995 럭비 월드컵에서 우승한 경력이 있다. 아파르트헤이트 때문에 오랫동안 국제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던 남아공은 월드컵 개최 1년 전만 하더라도 잉글랜드에 큰 점수 차이로 질 정도로 약체였지만 넬슨 만델라의 적극적인 지원 하에 1995년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감동 드라마를 이룩할 수 있었다. 1995년 럭비 월드컵 첫 우승 이후 남아공은 여전히 백인들이 잘 살고, 흑인들은 못 사는 사회적 계층 구조가 달라지지 않았으며, 백인 상류층만 모인다는 럭비 대표팀 스프링복스는 백인들의 전유물이었지만, 2019 럭비 월드컵 대표팀 주장으로 127년 역사상 첫 흑인 주장 시야 콜리시가 뽑혔으며, 주전 15명 중에서 6명의 흑인 선수가 두각을 나타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는 흑인 선수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2007 럭비 월드컵, 2019 럭비 월드컵, 그리고 2023 럭비 월드컵까지 최초로 월드컵을 4번 우승한 초 강국이다. 참고로 지리적으로 럭비 유니언 최강국 뉴질랜드 올 블랙스의 라이벌은 호주지만, 정작 역사적으로 가장 치열한 라이벌리를 형성한 건 스프링복스다. 뉴질랜드를 대적할 실력자가 오직 남아공 뿐이었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 정부 당국이 1970년대에 어쩔 수 없이 마오리족 뉴질랜드 선수들을 명예 백인 취급하여 경기에 뛸 수 있게 한 계기가 되었다.

나미비아 럭비 유니언 국가대표팀 또한 럭비 월드컵에 꾸준히 출전하고 있지만 동네북 취급이고 세계 대회에서의 성적은 좋지 않다. 사실상 아프리카에서 경쟁자가 없어서 본선에 매번 진출하는 농어촌 전형이다. 나미비아 외에 케냐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스포츠다. 케냐는 7인제 럭비 최강 팀 피지를 잡은 경험이 있는 강자다. 케냐 럭비 유니언 국가대표팀은 짐바브웨와 함께 아프리카의 3인자로 손꼽힌다.

캐나다는 영연방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아이스하키 종주국으로서 아이스하키의 인기가 가장 많으며, 미국의 영향으로 미국 4대 프로 스포츠 리그의 인기가 대체적으로 많다. 하지만 럭비도 꽤 인기 있는 스포츠며, 특히 브리티시 컬럼비아, 애틀랜틱 캐나다, 온타리오와 같은 특정 지역들에서는 상당히 인기를 얻고 있다. 미국처럼 럭비에서 파생된 캐나다 고유의 스포츠인 캐나디안 풋볼이 있기 때문에 인기를 독차지하기에는 쉽지 않지만 뉴펀들랜드에서는 가장 인기 있는 여름 스포츠로 여겨지고,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에서는 캐나디언 풋볼보다 인기가 많다. 캐나다 럭비 유니언 국가대표팀은 미국과 함께 럭비 월드컵에 자주 출전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도 의외로 럭비를 많이 한다. 10인제 럭비인 럭비 텐스가 말레이시아에서 탄생하였으며 10인제 럭비에서 가장 권위 있는 "COBRA Rugby Tens"라는 세계 대회를 매년 개최한다. 10인제 럭비 경기 럭비 텐스는 1967년 말레이시아의 COBRA(Combined Old Boys Rugby Association)에서 아시아 선수들이 전통적인 럭비 국가들의 체격이 큰 선수들과 게임에서 조금 더 경쟁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도입되어졌다. 참여도로 보면 국내에 4만 명이 넘는 선수가 등록되어 있고 300개가 넘는 클럽과 600여 곳의 학교에서 럭비를 가르치고 있다. 다만 실력은 좋지 못해서 럭비 월드컵 아시아 예선도 뚫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등록 선수가 1000명도 되지 않는 한국이 훨씬 잘 한다.

7인제 럭비의 경우, 영국과 영연방 국가들이 참가하는 영연방 대회인 커먼웰스 게임에서 럭비는 필수 종목으로 꼽힌다.

다만, 영연방임에도 불구하고 인도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같은 남아시아 나라들에서는 크리켓이 종교 이상으로서 더욱 인기가 많고, 럭비의 인기는 많지 않다. 남미에 위치한 자메이카, 트리니다드 토바고와 같은 영연방 국가에서도 럭비가 아닌 크리켓의 인기가 가장 높다. 이는 럭비 유니언이 태생적으로 유산계급 스포츠기 때문이다. 가난한 나라에서 가난한 국민들은 몸이 망가지면 부실한 사회 복지 시스템 때문에 재기하기 힘들 뿐더러, 보상을 받기도 쉽지 않기 때문에 럭비 유니언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질 않는다. 반면에 크리켓은 부상의 염려가 적고, 공과 배트 그리고 쓰레기통만 있으면 어디서든 플레이를 할 수 있는 데다가 아시아인들이 좋아하는 스탯질이나 전략들 등 머리 쓰고 놀 요소들이 많아 아시아인들이 딱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게다가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이던 시절에 신체 접촉이 요구되는 럭비 경기들은 거의 철저하게 인종이 분리되어 진행되었다. 당연히 인도인과 영국인이 맞붙으면 죽어라 들이받을게 뻔하니 상위 계층으로 군림하던 영국인들이 인도인들과 럭비 경기를 거의 하지 않았고, 가뜩이나 후덥지근한 인도의 날씨와 맞지 않은 럭비 및 풋볼 코드들은 인도와 주변 국가에서 풀뿌리 스포츠로 자리잡는 데 완벽하게 실패한다.[2]

비(非)영연방

  • 서유럽
잉글랜드와 앙숙이자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는 프랑스에서 럭비는 프로 럭비 클럽 대회인 'TOP 14' 평균 관중 수가 1만 5천 명에 육박할 정도로 상당히 인기가 많으며 또한 럭비 강호다. 프랑스 출신인 파비앙은 유튜브에서 "프랑스는 축구의 나라라기보단 럭비의 나라에 가까운것 같다"고 말했다. 이민자들이 많은 프랑스에서 축구는 백인은 물론 아프리카계 흑인 및 중동 이민자들에게도 인기가 많지만, 럭비는 주로 백인들에게 상당히 인기가 많다. 물론 백인들 중에도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럭비는 축구와 달리 유색 인종을 찾아보기 힘들만큼 특히 백인들에게 더욱 인기가 많다.
럭비 풋볼은 1870년대 초 영국인들에 의해 프랑스에 도입되어졌으며, 19세기 후반에 프랑스 귀족 출신 교육자 피에르 드 쿠베르탱(Pierre de Coubertin)은 럭비 스쿨을 여러 차례 방문하기도 하였는데, 그는 나중에 자신의 가장 주목할 만한 업적인 1896년 현대 올림픽 창설의 주요 영감 중 하나로 럭비 스쿨을 꼽기도 하였다. 특히, 그는 럭비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프랑스로 돌아왔을 때, 불로뉴의 부아에서 럭비를 하였고, 에콜 몽주(Ecole Monge)와 같은 학교에서 럭비의 확산을 장려하기도 하였다.
프랑스는 해마다 열리는 Six Nations 챔피언십에 1910년부터 참가하고 있으며, 올림픽 럭비에서 첫 금메달을 받은 게 프랑스였다. 2019년까지 9번 치러진 럭비 월드컵에선 1991, 2015, 2019년 대회를 빼고 5번을 4강(3번 준우승, 4위 2번)에 진출할 정도로 영연방이 아닌 나라로 유일한 럭비 월드컵 4강을 꾸준히 진출하는 강호다. 이런 인기와 같이 인프라도 꽤 좋아서 2007년 럭비 월드컵이 이 곳, 프랑스에서 열리기도 했다. 이때 장 마리 르 펜을 비롯한 프랑스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많은 흑인이 포함된 프랑스 축구 대표팀 보단 순수 백인으로 이루어진 럭비 대표팀이야말로 진정한 프랑스 대표팀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하며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프랑스 축구 대표팀은 프랑스 태생의 백인 선수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59] 럭비는 대부분이 프랑스 태생의 백인이다. 따라서 진정으로 프랑스를 대표하는 스포츠는 축구가 아니라 럭비라고 여기는 의식이 프랑스 국민들 사이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2022년에 열린 Six Nations 챔피언십에서 프랑스 럭비 대표팀은 그랜드슬램으로 12년 만에 우승을 차지하기도 하였다. 또한, 2023년 럭비 월드컵은 또 다시 프랑스에서 개최되기도 하며, 2023년은 럭비가 탄생한지 200주년이 되는 중요한 해이기도 하다. 이로써 프랑스는 럭비 월드컵을 2번 개최한 나라가 된다. 프랑스에서 프로 럭비 클럽 대회로는 Top 14이 운영되고 있으며, 영국 및 호주, 남아프리카 공화국, 뉴질랜드, 피지, 사모아 등 많은 럭비 선수들이 Top 14에서 활약하고 있다. 그리고 Top 14의 결승(Final) 경기는 해마다 최다 관중을 끌어 모은다.
이탈리아에서 럭비는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대부분 럭비팀이 이탈리아 북부의 베네토나 롬바르디아에 있으며, 이는 이탈리아의 산업 중심지인 북부 포 밸리(Po Valley)를 중심으로 한 지역들이다. 이 지역들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부유한 곳이긴 하지만, 이곳 주민 전체를 상류층으로 간주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탈리아에서 럭비를 상류층 스포츠라고 하기엔 다소 어려움이 있다. 그리고 이탈리아 남부 지역에는 이렇다 할 럭비 클럽팀들이 없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럭비의 존재감을 얻지는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탈리아 럭비 유니언 국가대표팀은 월드 럭비에 의해 티어1 국가로 분류되며, 해마다 열리는 식스 네이션스 챔피언십과 4년마다 열리는 럭비 월드컵에 참가하고 있다. 클럽 대회로는 프로 럭비클럽인 베네통 럭비와 제브레 파르마가 유럽 다국적 프로 럭비 클럽 대회인 유나이티드 럭비 챔피언십에 참가하고 있고, 국내 1부 세미프로 대회인 세리에 A 엘리트도 평균 수천의 관중 동원력을 자랑한다.
포르투갈에선 아직 아마추어 스포츠이나 꽤나 인지도가 있는데, 2023 럭비 월드컵에서 포르투갈 럭비 유니언 국가대표팀은 조 최약체 주제에 8강에 올랐던 피지를 때려잡는 기적을 보였으며, 본선에서 보여준 활약이 촉매제가 되어 주목받고 있다.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매 경기마다 수만 명의 포르투갈인이 자국 대표팀을 응원했으며 2020년대 들어 엄청난 성장을 이룬 팀으로 월드 럭비 차원에서 예전과는 대접이 완전히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스페인에서도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스포츠다. 스페인 럭비 유니언 국가대표팀은 럭비 월드컵 본선 진출권에 있는 2티어의 강자다.
  • 동유럽
조지아에서 럭비 유니언은 국가 스포츠이자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중 하나인데, 그들의 전통 스포츠인 'Lelo'(Lelo Ball)와 많은 유사한 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언뜻 보기에는 럭비의 몰(Maul)과 스크럼(Scrum)의 모습이 떠오른다. 또한, 조지아 럭비 유니언 국가대표팀은 러시아 럭비 유니언 국가대표팀과 라이벌 관계에 있다. 특히, 과거 2008년 8월에 러시아와 조지아 간에 일어난 전쟁 이후로 두 국가 사이에 긴장감이 고조되었고, 이러한 이유로 2009년과 2010년에는 양국 간의 럭비 경기가 중립국에서 치러지기도 하였다.(Russia Vs. Georgia) 그리고 조지아 럭비 유니언 국가대표팀은 4년마다 개최되는 럭비 월드컵에 꾸준히 참가하고 있다. 21세기에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면서 2014년부터 럭비 유럽 인터네셔널 챔피언십 우승컵을 독식하고 있고, 2015 럭비 월드컵에선 조 3위를 하는 이변을 일으키며 다음 대회 자동 진출권을 획득하기도 하였다. 오늘날에는 월드 럭비 랭킹 12위까지 올랐고 유럽을 넘어 세계 수준으로 나아가기 위해 식스 네이션스 챔피언십 참가 승인을 호소하는 등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티어1 국가들로 분류된 이탈리아와 웨일스를 꺽는 이변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러시아는 챔피오나트 로시 포 럭비라는 프로 리그가 있다. 그렇지만 실력 자체는 조지아, 스페인, 루마니아 등에 밀려 월드컵 본선과는 거리가 조금 있다.
  • 북미
미국에서는 미식축구의 인기에 가려 큰 존재감은 없지만, 군대와 학교를 중심으로 꽤 튼튼한 저변이 마련되어 있다. 특히, 미국해군사관학교는 전국 대학 최강의 팀 중 하나다. 미국 럭비 유니언 국가대표팀은 럭비 월드컵에 자주 본선 진출하여 참가하고 있다. 럭비 월드컵에서 미국 럭비대표팀의 성적은 그리 좋지 않지만, 미국 7인제 럭비 대표팀은 세계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강하다. 애초에 미식축구가 럭비의 파생인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 미식축구를 하다가 럭비로 넘어오는 선수들이 제법 있다. 7인제 럭비 최고 스타선수인 페리 베이커도 미식축구를 하다 전향했다. 전진패스 유무를 제외하면 규칙이 매우 비슷해서 쉽게 적응이 가능하기 때문에 미식축구에서 경쟁에 밀리면 럭비로 전향해볼만 하다.
그리고 매년 월드 럭비 세븐스 시리즈 중 라스베이거스에서 LA 세븐스를 개최하고 있으며, 6만 명이 넘는 관중들을 끌어모아 NBC를 통해 중계되기도 한다. 그리하여 2018년에 비로소 프로 럭비 유니언 리그인 메이저 리그 럭비를 출범하기에 이르렀다.
  • 남미
다른 여러 중남미 국가들과 달리 전체 인구의 95%가 백인으로 구성된 남아메리카의 아르헨티나에서도 럭비는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스포츠다. 역사적으로 아르헨티나의 럭비는 럭비 종주국인 잉글랜드와 마찬가지로 상류층의 스포츠였으며, 여전히 부유한 사람들이 하는 스포츠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 아르헨티나에서 럭비는 여전히 아마추어 스포츠지만 이러한 아마추어리즘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 럭비 국가대표팀은 2007년 프랑스에서 열린 럭비 월드컵에서 3위를 차지하였고, 강력한 팀 중 한 팀으로 떠올랐다. 아르헨티나 럭비 국가대표팀의 별명은 로스 푸마스(Los Pumas)다. 아르헨티나에서 첫 번째 럭비 경기는 1873년에 영국인들에 의해 소개되어 진행되었다. 역대 럭비 월드컵에서 유일하게 남미 국가로서 4강에 두 번이나 진출한(2007년 3위, 2015년 4위) 경력을 갖고 있으며, 럭비 월드컵에서도 꽤 좋은 성적들을 내고 있다. 영국 구성국 및 영연방 국가들이 우승과 4강, 8강 토너먼트를 휩쓰는 이 대회에서 준우승 3번을 거둔 프랑스와 같이 유일한 비영연방 국가로서 4강에 진출해왔다.
2012년 아르헨티나 럭비 대표팀은 영연방 국가이자 남반구에 위치한 호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그간 매년 럭비 경기를 치르던 트라이 네이션스 시리즈(Tri Nations Series)에 참가함으로써 럭비 챔피언십이라는 명칭으로 확장되었다. 이후 올 블랙스를 격파하며 뉴질랜드를 꺾은 7번째 국가가 되었다. 한편, 2016년부터 호주, 뉴질랜드, 남아공 럭비 클럽팀들이 함께 참가했던 슈퍼 럭비에 참가하기 위해 재규어스라는 프로 클럽팀을 창설하였고, 일본의 선울브스와 함께 참가했으나 2020년 코로나로 인해 중단되면서 참가할 대회가 없어지자 해체되었다.
우루과이에서도 럭비는 역사적으로 아르헨티나와 함께 럭비가 상류층의 스포츠이며, 제법 인기가 있다. 국가대표팀의 홈구장인 에스타디오 차루아에 14,000명의 인원이 가득 차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다. 로스 테로스(Los Teros)라 불리는 우루과이 럭비 유니언 국가대표팀은 1940년대 후반부터 국제 럭비 경기를 해왔으며 1999 럭비 월드컵부터 본선 무대를 밟기 시작했다. 2019 럭비 월드컵에서는 피지를 이기는 기적을 일궈내며 만만하게 볼 팀이 아님을 증명했다. 또 아메리카의 다국적 리그인 슈퍼 럭비 아메리카스에 참가하는 프로 구단 페냐롤 럭비도 차루아 경기장을 사용하는데, 수천의 관중이 경기를 관람한다. 2023 럭비 월드컵에서 기대 이상의 실력을 보이며 세계적으로 기대치가 매우 높아졌다.
칠레는 2010년대 후반부터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다가 마침내 2023 럭비 월드컵 본선에 진출, 매 경기 투혼을 발휘하여 첫 출전국이 4경기에서 도합 4트라이를 찍는 좋은 모습을 보였다. 상상 이상으로 경기장에 많이 모였던 칠레 팬들은 덤. 국내 리그로 프리메라 나시오날을 비롯한 6단계의 리그가 형성되어 있으며, 자국 유일의 프로팀 셀크남 럭비의 창단과 월드컵 본선 진출을 기점으로 앞으로도 성장을 이루어갈 것으로 기대된다. 월드 럭비는 2023년 월드컵에서 포르투갈과 칠레가 보여준 고무적인 성과에 힘입어 럭비 월드컵 본선 진출국을 2027 럭비 월드컵부터 24개국으로 확장하기로 결심했다. 대회 전까지만 해도 2031 럭비 월드컵부터 확장될 수 있다는 소문'만' 돌았던 것을 생각하면 파격적인 조치다.
  • 아시아
일본도 재팬 럭비 리그 원이라는 최상위 세미프로 리그가 있으며, 3부 리그로 구성되어 있다. 인기도 꽤 많아 경기당 관중 수가 평균 6,000명, 최대 4만 명도 넘길 정도이다.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큰 리그가 뿌리를 내렸으며 국가대표팀에 대한 관심도 높은데, 2015 럭비 월드컵에서 우승 후보였던 남아공을 34:32로 꺾었다. 이 사건은 럭비 역사상 최대의 이변으로 평가받고 카잔의 기적처럼 "브라이튼의 기적"이라 불리며 호주에서 영화화까지 되었다. 2019년에는 아시아 최초로 럭비 월드컵을 개최했고, 아시아 최초로 유치한 것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조별리그에서 우승 후보 아일랜드에 이어 스코틀랜드까지 꺾고 전승으로 8강에 진출하는 모습을 보였다. 8강에 진출하는 순간 일본에서 5,500만명이 이를 지켜봤다고 한다.
럭비 월드컵은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아시아를 벗어나자는 '탈아론(脫亞論)'을 내세우며 '아시아의 유럽'이 되는 것을 목표로 했던 일본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 메이지 정부는 럭비 종주국인 영국과 1902년 동맹을 맺기 전부터 럭비를 장려했다. 럭비가 강조하는 팀워크, 희생정신, 끈기는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추구하던 당시의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1920년대 일본 전역에 수천 개의 럭비팀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인기였다. 이런 전통 덕에 럭비는 지금도 일본에서 인기 스포츠 종목 중 하나로 손꼽힌다. 특히 3월에 진행하는 대학부의 일명 "하나조노" 대회는 일본에서 매우 유명하며, 시마 시리즈처럼 대학 동문이나 기업 문화를 숭상하는 극화 작품에서도 가끔 등장한다. 대학 럭비부 출신은 기업에서 환영하는 인재들이다. Meiji(明治) vs Waseda(早稲田) 모리 요시로 전 일본 총리는 와세다대학 럭비부 출신으로 정치권에도 적지 않은 럭비 팬이 자리 잡고 있으며, 럭비는 많은 일본 기업들로부터 적지 않은 후원을 받고 있다. 일본 럭비 유니언 국가대표팀은 일찍이 뉴질랜드, 피지, 통가, 남아공 등 럭비 강국에서 인재들을 등용해 귀화시키는 등 럭비 대표팀의 전력 강화를 위해 많은 노력해왔고, 그 노력의 성과로 두 차례 월드컵에서의 이변을 일으킬 수 있었다. 마침내 2023년 4월 11일 월드 럭비는 일본 대표팀이 티어 2에서 티어 1로 승격됐다. 럭비 챔피언십, 식스 네이션스 참가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이 됐다고 공식 인증을 받은 셈이다. 백인 및 폴리네시아 등 외국 혈통의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수혈하여 전력 강화를 노리고 있으며, 한국의 구지원도 일본 대표팀으로 뽑혔다.
한때 영국령이었던 홍콩에서도 인기가 상당히 많다. 홍콩에서 럭비는 150년 전부터 존재해왔으며,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 가는 2인자다. 영국의 식민지였기에 이곳 홍콩에 정착한 영국 및 영연방계 사람들에게는 럭비의 인기가 상당하며, 홍콩 럭비 유니언 국가대표팀의 선수들은 거의 모두 백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15인제 럭비로는 월드컵 예선도 뚫지 못하는 변방이지만, 홍콩이 가장 유명한 것은 7인제 럭비의 가장 권위 있는 대회인 홍콩 세븐스(Hong Kong Sevens)다. 월드 럭비 세븐스 시리즈의 하이라이트로, 해마다 십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2박 3일간 대회를 보기 위해 홍콩을 찾는다.
  •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서도 럭비는 국가 스포츠로 가장 인기가 많다. 사실 마다가스카르는 영국의 식민지 혹은 보호령이었던 것도 아니고, 영국 혹은 영연방 국가들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던 것도 아니나, 경제적 필요성 등의 이유로 영연방 가입을 희망하거나 추진하고 있는 국가다. 마다가스카르에서 럭비는 1890년대에 프랑스 철도 노동자들에 의해 도입되었는데, 역사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격렬한 취미로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전국적으로 인지도가 크게 증가해왔다. 평일 대낮에 열리는 여자 경기에도 수천의 관중이 모일 정도다. 특히, 마다가스카르에서 열린 럭비 아프리카 컵 디비전 1B 결승 경기에서 뜨거운 인기를 과시하기도 하였고, 2015 럭비 월드컵 잉글랜드 / 예선 경기에서는 4만 명의 자국 팬들 앞에서 아프리카의 2인자 나미비아를 제치고 승리하기도 했다. 의외로 클럽 리그도 있는데, 큰 경기장이 가득 찰 정도로 열기가 높다. 다만 이런 열정에도 불구하고 마다가스카르의 국력이 약한 탓에 국제 무대에서의 성적은 별볼일 없는 것이 아쉽다.
짐바브웨에서도 3 ~ 4위정도 되는 인지 스포츠다. 짐바브웨 럭비 유니언 국가대표팀은 초기 월드컵 본선 진출국이다.[2]

동영상

각주

  1. 1.0 1.1 1.2 1.3 1.4 1.5 1.6 럭비〉, 《위키백과》
  2. 2.0 2.1 2.2 2.3 럭비〉, 《나무위키》

참고자료

  • 럭비〉, 《위키백과》
  • 럭비〉, 《나무위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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