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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빙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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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이상의 지구 온도 그래프

소빙하기(小氷河期, Little Ice Age)는 지구의 기온이 간빙기에 비해서 비교적 낮게 내려갈 때를 이르는 말이다. 평균 기온이 2~3도 정도 강하해서, 농업 생산력과 어류 움직임 등이 크게 변화하는 사태가 나타난다. 현재로서는 근대적 측량 기록이 남은 17세기 중후반에는 기온 저하가 극에 달했음이 확인되어, 1400년/1500년에서 1850년까지가 장기적인 '소빙하기'로 설정되는 경향이 있다. 처음에는 지리학자나 기후학자가 아닌 한 기자가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라고 하며 현재로서도 그 실체에 대해서는 논의 중이므로 다소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는 있다.

개요[편집]

소빙하기는 약 AD 1,300년부터 1,850년 사이 현재보다 온도가 낮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이다. 소빙하기는 유럽 지역에서 보다 뚜렷하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가장 먼저 인식되었다. 소빙하기 동안 유럽과 북미지역의 겨울 평균 기온은 현재에 비해 약 2℃, 북반구 전체의 연평균 기온으로는 20세기 후반에 비해 약 1℃ 낮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건의 명명과 주요 특징[편집]

"소빙하기"라는 용어는 네덜란드 출생 미국 지질학자인 F.E. Matthes에 의해 1939년 과학문헌에 처음 소개되었다. 그 정의와 명명에 있어서 학자들 간의 이견으로 약간의 모호함이 내재되어 있으나, 비교적 다양한 역사 기록이 존재하는 AD 1,300년경부터 산업화 이전까지 알프스 빙하가 현재에 비해 크게 전진했었고 온도가 낮았던 시기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소빙하기의 역사기록은 유럽을 포함한 북대서양 인근 지역에서 특히 우세하게 나타나며, 알프스 빙하를 비롯해 북반구 다양한 지역에서 곡빙하들이 전진하면서 스위스, 프랑스 등지의 빙하 주변에 위치해 있던 농장, 교회, 마을들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갔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추운 겨울과 선선하고 습한 여름 기후가 지속됨에 따라 당시 의식주 활동의 근간인 농업이 전 방위적으로 실패하고 대기근이 유럽지역을 강타하였다. 15세기 초에 북대서양을 건너 그린란드 남부를 지나 현재의 캐나다 동부 뉴펀들랜드 지역까지 진출했던 바이킹들은 소빙하기에 이르러 북대서양 중위도 지역까지 확장된 해빙의 영향으로 항해에 큰 어려움을 겪었고 그들의 정착지를 연이어 포기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북아메리카에서도 기록이 되어 소빙하기에 해당하는 시기 동안 식생이 점차 건조한 환경을 선호하는 종으로 대체되고 초기 북미 토착민들은 그들의 주요 의식주를 기존 농업에서 사냥으로 변경하였다. 이러한 기후적 특징은 아시아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일본에서는 겨울 평균온도가 약 3.5 ℃까지 하강했다는 보고도 있다. 최근 한국역사에 기록된 조선왕조의 대기근이 근본적으로 당시 소빙하기로 인한 기후 악화에 의한 것일 수 있다는 주장이 일부 학자들을 중심으로 대두되고 있다.

증거[편집]

  • 소빙하기는 초창기 사진, 서양화, 역사 문서 등 다양한 기록을 통해서 실증할 수 있으며, 그 외에도 신생대의 고기후를 복원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록시 기록들이 가장 풍부하게 산출되는 기간이다. 소빙하기를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기록물들로는 빙하코어, 호수 퇴적물, 산호, 나무나이테, 동굴생성물 등이 있다.
  • 최근 동아시아 지역의 동굴생성물 기록에는 소빙하기의 증거가 대체로 잘 남아 있는데, 이러한 증거는 동굴생성물의 산소동위원소 조성 변화로 나타내진다. 특히, 중국과 한국의 동굴생성물 자료는 매우 유사한 경향을 보여 두 지역의 소빙하기가 유럽지역과 마찬가지로 동 시기에 존재했음을 보여주며, 동굴생성물 산소동위원소 기록이 주로 동아시아 몬순의 강화 및 약화와 관련된 강수량 변화로 해석되고 있으므로 소빙하기 동안 동아시아 지역은 온도 하강과 함께 강수량이 더 적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 소빙하기 동안에는 다양한 지역에서 빙하 전진의 지형 증거들이 발견되었는데, 현재까지 유럽은 물론, 알래스카 등 고위도/고산 지역에서 직접적인 증거들이 수집되었다. 남반구에도 소빙하기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그 양상과 기간에 이견이 있지만, 뉴질랜드와 파타고니아 등지에서도 빙하 전진의 증거가 제시되었다.

발생 원인[편집]

  • 소빙하기는 가장 최근 발생한 고기후학적 사건이고 다른 어떠한 사건보다 다양한 증거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 발생 원인에 대해서는 상대적인 기여도 측면에서 이견이 존재한다.
  • 소빙하기의 주요 원인들로는 지구 공전궤도, 태양활동 주기, 화산활동, 해양순환 변화, 인구 증감, 기후자체 변동성 등 다양하게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들 중 어느 한 요인이 소빙하기의 원인을 전적으로 설명하기 보다는 적어도 세 가지 이상의 요인이 주요하게 관여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한 연구에서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소빙하기의 후반부 기간 동안 관측된 태양 흑점 관찰 횟수. Maunder Minimum의 경우, 그 이후 시기에 비해 뚜렷하게 적은 횟수의 태양 흑점 관찰이 기록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Sunspot_Numbers.png.
  •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요소로는 태양흑점 주기와 화산활동을 들 수 있다. 낮은 흑점 주기가 어떻게 낮은 온도로 이어지는 지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피드백 메커니즘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소빙하기 동안에는 뚜렷한 세 번의 흑점 극소기가 존재하고 있다(그림 1). 이들은 각각 울프, 스푀러, 몬더 극소(Wolf, Sporer, Maunder Minimum)로 알려져 있으며, 이 중에서도 몬더 극소기(Maunder Minimum)는 소빙하기 기간 중 가장 추웠던 1,645-1,715년과 일치한다.
  • 소빙하기 중에는 대규모 화산활동이 빈번했는데, 이러한 화산활동의 결과로 지구의 기온이 하강했다는 주장이 있다. 대표적으로 1,815년 인도네시아의 탐보라 화산 폭발을 들 수 있는데, 이 활동으로 성층권까지 상승한 화산재에 의해 지구 대기를 통해 입사하던 태양복사에너지가 감소하여 1,816년에는 "여름이 없는 해(the Year Without a Summer)"로 기록될 만큼 한 여름인 6월과 7월에도 서리와 눈이 북미대륙의 북동부 지역과 북유럽 지역에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역사적 소빙하기[편집]

남극 Law Dome에서 시추된 빙하 코어에 기록된 시대별 이산화탄소 분포. 17세기에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현저히 적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7세기 소빙하기의 원인은 아직 미상이다. 몇몇 학자들은 태양 활동의 후퇴를 지목한다. 17세기 후반에는 마운더 극소점(Maunder Minimum)으로 지목되는 흑점 활동이 가장 미약한 시기가 존재했는데, 이것이 태양 활동의 약화로 설명된다는 것. 또한 혜성이나 운석 등 지구 밖의 동향이 영향을 미쳤다거나, 화산 폭발 등의 또다른 자연재해가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 있다. 현재는 당시의 역사 기록뿐만 아니라 꽃가루 측정, 빙하 퇴적 측정, 나이테 측정 등을 통해 원인을 알아내려는 연구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명확하게 증명된 이론은 없다.

기자인 찰스 만은 베스트셀러 저서 '1493'에서 소빙하기는 태양 흑점 변화에 의해서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으며, 주된 원인은 유럽인 도래에 의한 아메리카 원주민 수 감소에 있다고 지적한다. 만이 인용한 2003년 버지니아대학교의 윌리엄 루더만(William F. Ruddiman)의 이론에 따르면 인디언의 전통적 벌목 방식은 인력에 의한 채벌이 아닌 불지르기였다. 북미 인디언들은 정착지와 농경지 확보를 위해 이스턴 와베나키, 와음퍼나그, 레너피, 호터노쇼우니, 포우하탄, 튜탤로와 이웃, 쿠알레, 티무쿠아 등 북미 동부(17세기부터 유럽인이 정착하여 포트 로열, 뉴암스테르담, 보스턴, 제임스타운 등으로 불린 지역들)와 플로리다 반도의 방대한 삼림 지대에 정기적으로 수개월 간 지속되는 불을 놓았는데, 유럽에서 들어온 수많은 전염병으로 인해 16-17세기에 걸쳐 인디언 수가 극적으로 감소하였고 이 삼림이 다시 늘어났다. 불이 나지 않으니 대기 중으로의 이산화탄소 배출은 감소하고 삼림이 늘어나니 이산화탄소 흡수는 늘어났다. 이로 인해 온실 가스가 줄어들어 소빙하기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 원인이 어찌되었건 간에 17세기 소빙하기는 유럽의 농업 생산력을 쇠퇴시켜 마녀사냥, 17세기의 각종 반란(영국 청교도 혁명 및 명예 혁명, 프랑스 프롱드의 난, 러시아 스텐카 라진의 난 등), 30년 전쟁 시기의 혼란 등 사회적으로 분란을 불러 온 간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된다.(17세기 위기론) 1677년과 1683~1684년에는 영국 템스 강이 얼어 회화로 남기도 하였으며,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이 17세기 유명해진 것도 이 시기 소빙하기로 인해 목재 질이 촘촘해지고 음질이 달라졌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또한 조선의 경신대기근 역시 이 소빙하기의 영향이라는 학설도 있다.

한편 미술사에도 이 소빙하기를 접목시키는 연구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미국과 영국 박물관에 소장된 1400년 이후 유럽의 사실주의 풍경화 1만 2천점을 분석한 결과 소빙하기 이전엔 파란 하늘이 묘사된 그림이 65%였지만 소빙하기가 시작된 이후엔 흐리고 어두운 날씨가 70~80%를 차지했다고 한다.

사학계에도 소빙하기를 접목시키려는 시도가 있는데, 중국에서는 명나라청나라의 교체를 소빙하기와 연결지으려는 시도가 있고, 한국에서는 조선시대사를 다루는 서울대학교 이태진 교수가 적극적으로 시도를 한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증보문헌비고』 등의 기록을 종합했을 때 이 시기의 자연재해가 잦았다는 것이 동아시아 측에서도 확인되기도 한다. 조선의 경우 1653년 6월에는 한 여름임에도 강원도에 서리가 끼였다는 이야기가 나오며 1655년 봄과, 1659년 봄에는 동해가 얼어 붙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또한 이 시기 조선에 표류해 전라남도 나주, 여수를 돌며 떠돌이 생활을 당했던 헨드릭 하멜은 자신의 저서 하멜 표류기에 "(1662년) 우리가 산간에 있는 사찰에 갔을 때 어찌나 눈이 많이 왔던지 집과 나무가 다 파묻혀 사람들이 눈 속에 굴을 뚫고 이 집에서 저집으로 다니는 것을 본 일이 있다."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또한 조선 후기의 거대한 재앙이었던 경신대기근이 일어나기도 했다. 일본 에도 막부 역시 화산 활동과 저온 현상 등으로 인한 텐메이 대기근 등의 잦은 대기근에 시달린 기록이 남아 있다. 그리고 폴란드-리투아니아도 소빙하기, 대홍수로 인한 몰락으로 인해 1795년에 분할되는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마냥 부정적으로만 작용 한 것은 아니다. 특히 한반도의 남부와 서해안처럼 리아스식 해안이 발달된 곳들은 소빙하기를 거치면서 바닷물이 얼어붙은 관계로 해수면이 낮아지고 새로 생긴 영토가 많다. 예를 들면 김해 평야 일부분이 그 시절에 생긴 땅이라고 한다.

이 외에 8세기 ~ 9세기 경과 13세기 후반 ~ 14세기 즈음에도 소빙하기가 존재했다는 설이 있다. 8세기 ~ 9세기 소빙기론은 바이킹의 남하, 마야 문명의 쇠퇴, 당과 신라 등지의 혼란 등을 설명하는 데 이용된다. 실제로 삼국사기를 보면 효공왕과 신덕왕 때 음력 3월 ~ 4월에 서리가 내렸다는 기록이 보인다. 13세기 ~ 14세기 소빙하기론은 흑사병과 중세 말기의 이상 기온과 관련되어 나온 학설이다. 좀 더 나아가서는 로마 제국 후기부터 중세 시대의 기온이 상당히 높았던 것의 반작용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강수량과 무방하게 소빙하기 해가 흐린 때가 잦아 일조시간이 매우 적었다. 오히려 2013년 이후 일조시간이 매우 많아진 것과 대조된다.

고대 후기 소빙하기[편집]

200년경 북반구 기온이 조금 내려가기 시작했으나, 세계의 기후계는 400년까지 '암흑시대' 기후계('고대 후기 소빙하기')로 결정적으로 이동하지 않았다. 그후 536년 아이슬란드에서 초대형 화산 폭발이 발생했고, 대략 650년부터 700년까지 주요한 태양 극소기(반달 극소기)가 이어졌다.

400년경 시작된 더 한랭한 세계 기후계의 특징은 북대서양의 해빙 전진, 지중해 일대와 아마 중앙아시아의 겨울철 강우량 증가, 엘니뇨 남방 진동이 더 뚜렷한 엘니뇨 패턴으로 변해 간 영향으로 동아프리카, 인도, 중국의 여름 계절풍 약화 및 아메리카 대륙의 강수량 증가(아울러 극심한 가뭄의 불규칙한 발생) 등이다. '고대 후기'의 세계 기후계는 거의 500년 동안 더 한랭해졌으나, 시베리아 고기압이 청동기 시대 말이나 근대 초의 소빙하기 때처럼 극단적으로 발달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고대 후기' 기후계는 400년경 끝난 고대 최적기와 900년 이후 시작된 중세 최적기를 갈라놓는 '완만한' 반주기 기후계라고 할 수 있다.

영향[편집]

중국 남북조시대의 개막

세계 기후가 전반적으로 더 힘겨운 방향으로 이행하자 아시아 초원 지대의 생태에 변화가 생겼다. 그 결과 초원의 유목민족들이 다시 유라시아 역사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북쪽에서 침공한 유목민족들이 중국 대륙에 전쟁, 기근, 전염병을 가져왔다. 그들은 수많은 한족을 북부에서 장강 유역으로 몰아냈다. 쫓겨난 한족은 전통 작물인 밀과 기장 대신 논에서 벼를 재배해야 했다.

게르만족의 대이동

4세기 게르만족이 변경 밖에서 로마 제국으로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한 세기도 안 돼 서유럽을 대부분 차지했다. 이 급습에는 350~370년 초원 지대에서 일어난 극심한 가뭄이 일정한 영향을 주었다. 그렇지만 4세기 스텝 지대에서 출현해 아틸라 치하에서 카스피해부터 독일에 이르는 영역을 점유한 훈족도 영향을 주었다. 몽골의 유연 제국에서 갈라져 나온 아바르는 560년대에 도착해 동유럽과 아나톨리아 사이에 카간국을 건설했다. 아바르와 뒤섞여 이동한 여러 튀르크계 민족들은 650년경 카스피해 동쪽에 카간국을 수립했다.

6세기부터 북반구의 더 한랭한 기후와 말에게 초지를 제공한 초원 지대의 더 많은 강우량이 유목 민족들의 이동을 촉진했다. 강우량이 증가하면서 중앙아시아 초원 지대에서 습도가 높아지자 페스트가 다시 출현했다. 541년 페스트는 지중해를 강타했고, 아마 중국에도 수백 년간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지중해에서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은 유라시아 가장자리의 인구를 급감시켰다. 중국 인구는 400년까지 반토막이 났고, 인도 인구는 아마도 3분의 1이 줄었을 것이며, 서남아시아, 이집트, 유럽의 인구는 700년까지 절반으로 감소했다. 200년부터 500년까지 이 구세계 핵심 지역의 총 인구는 2억 1100만 명에서 1억 4700만 명으로, 세계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2퍼센트에서 71퍼센트로 줄었다.

모체 문화와 나스카 문화의 몰락

세계 기후는 아메리카 대산계(大山系)의 사회들도 압박했다. 아시아 계절풍이 약해짐에 따라 태평양 건너편 강우량이 증가했다. 400년부터 1000년까지 아메리카의 강우량이 극히 늘어났다. 엘니뇨 암흑시대가 시작되면서 전기 중간기(Early Intermediate Period, 기원전 200년~기원후 600년) 페루의 모체 문화와 나스카 문화가 무너졌다. 기원전 200년경 출현한 두 문화는 6세기 후반 강력한 엘니뇨가 촉발한 홍수와 극심한 가뭄을 견디지 못하고 멸망했다. 같은 시기에 테오티우아칸의 대규모 도시 국가들도 멕시코 산악 지대를 강타한 가뭄에 무너졌다.

모체와 나스카 문화가 사라지는 가운데 엘니뇨의 변덕스러운 충격을 견뎌내기 위해 기존과 다른 정착 전략을 구사하는 중기 호라이즌기(Middle Horizon Period, 기원후 600~1000년)의 새로운 문화가 출현했다. 페루 산악 지대 남부의 국가 와리Wari는 높은 고도에 있는 수원에서 물을 끌어오는 광범한 관개 체계에 투자했다. 티티카카호에서 가깝고 높은 고도에 자리한 티와우아나코는 호수 바닥이 융 한 독특한 지형에서 작물을 재배했다. 두 나라 모두 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응집력 있는 제국으로 수백 년간 존속했다.

유카탄반도에 존재했던 고전기 이전(기원전 2000년~기원후 250년) 마야 문화는 고대 기후 최적기의 비교적 안정적 환경에서 수백 년간 발전하다가 기원후 200년경 극심한 가뭄이 잇따른 시기에 버려졌다. 고전기 마야 문화는 300년 이상 발전하다가 마야 단절기라고 알려진 580년대 멕시코의 테오티우아칸 문화와 페루의 모체 및 나스카 문화가 가뭄에 타격을 받은 시기에 다시 버려졌다. 마야의 고전기(250~900년)는 이 시기를 기준으로 전기와 후기로 나뉜다.

중세 후기 소빙하기[편집]

13세기 초부터 시작해 17세기 후반까지 지속된 소빙하기. 이 시기에 나타난 기온 저하 현상은 세계 각지의 기록에서 나타나 있으며, 포도의 생산량이 저하되고 식생변화가 이루어지는 등의 현상이 일어났으며, 유럽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거나 전염병으로 사망하게 되었다.

영향[편집]

몽골의 건국

세계사에서는 기후가 바뀌는 것이 인류한테 영향을 끼치는 것을 볼 수 있다. 소빙하기 역시 예외는 아니다. 몽골에서는 소빙하기로 인해 초원이 줄어들면서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 마침내 몽골은 하나로 통합됐는데 그 우두머리가 칭기즈 칸이다. 칭기즈 칸은 몽골 제국을 건국했는데 정복을 통해 영토를 넓혔고 동유럽에서 중국까지 이를 정도였다. 어쨌든 이로 인해 대륙 끝에서 다른 대륙 끝까지 인류 최초로 안전하게 갈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서양에서는 동양의 발명품인 화약, 종이 등이 전해졌다.

유럽

유럽은 아시아보다 더 심각했는데 홍수와 가뭄으로 인해 농작물의 생산량이 줄어들어 자연스레 유럽인들은 병약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페스트가 유럽에서 유행하였다. 페스트의 유행이 끝날 때쯤, 유럽인들은 페스트가 유행하기 전의 4분의 3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전혀 예상치 않게도 페스트로 인해 사람들이 많이 죽으면서 일손의 수요가 급증하였고 자연스레 일손의 임금 (경제학)이 늘어났다. 이로 인해 유럽은 호황을 맞게 되고 그렇게 생긴 돈을 탐험에 투자해 아메리카, 오세아니아를 발견했다.(아메리카에 천연두가 전해지면서 천연두가 아메리카 원주민을 싹쓸이했다.) 유럽에서는 모피의 수요가 많았는데 아메리카에서는 이를 얻을 수 있는 동물들이 많았기에 돈 냄새를 맡은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로 건너와 동물들을 사냥했다. 아메리카 원주민과 충돌하기도 했다. 아메리카로 농부 등이 이주하면서 도시들이 생겨났다. 아시다시피 이는 미국의 건국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재앙이 벌어지는데 엄청난 모래폭풍이 미국을 휩쓴 것이다. 농작물 피해가 어마무시했다. 하지만 이를 비료로 극복한다.

재발 가능성 및 전망[편집]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대에 일어날 확률은 거의 없다. 소빙하기의 원인조차 모르는 지금 상황인데, 지구 온난화 등을 필두로 한 기온 상승은 이미 충분히 증명된 사실이다. 초화산의 폭발 등 극단적인 현상으로 태양 에너지의 입사가 원천 차단되지 않는 한, 지구 전체에 걸쳐 통상적인 원인(태양 주기, 해류 변화 등)으로 소빙하기가 올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1914년부터 시작된 태양 주기의 극대기(근현대 태양 극대기, modern solar maximum)가 2007년을 끝으로 종료되었고, 극소기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한편 2020년에 라니냐 현상과 흑점 극소기가 겹치고, 여기에 확인되지 않은 일부 가설(남극 토양 샘플의 소빙하기 500년 주기설) 등으로 초소빙하기(mini ice age)가 온다는 소문들이 오고갔으며, 한반도에 이상저온이 당해년도에 나타나 소문을 부풀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라니냐 및 흑점 주기 등은 주기적인 현상으로, 이것들만으로는 소빙하기의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또한 태양 극소기의 영향력에 대해서는 NASA에서 그 가능성을 다음과 같이 일축하였다.

  • 17세기의 소빙하기의 원인을 위 문단에서도 언급하였듯 마운더 극소기(Mounder minimum)에서 찾는 연구들이 많지만, 학계에서는 아직 근거가 부족하기에 정설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소빙하기의 시작을 보수적으로 산정하더라도 마운더 극소기 이전에 온다는 증거가 여럿 있다. 다른 개입 요소들의 영향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는 한, 이 이론을 정설로 받아들이는 것은 섣부른 예단이다.
  • 또한 만약 마운더 극소기 수준의 태양 활동 저하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태양 에너지의 입사 감소량은 -0.1W/m² 정도로 추정된다. 그런데, 현재 지구상에서 인류가 배출하는 이산화 탄소는 계속 증가하고 있고, 3년분의 증가량만으로 이 입사 감소량을 충분히 상쇄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를 조금 더 해석하면 지구 온난화 자체가 소빙하기의 영향인 기온 저하를 삭제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초소빙하기설이 제시하는 기후 변화(기온 감소 등)이 나타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없거나 극히 적다.
  • 인류가 탄소중립 정책을 통해 21세기 중반까지 화석 연료를 완전히 줄여 온실가스 배출량이 0이 되게 한 후 대기 중 농도의 감소가 시작된다? - 물론 현재 인류가 기후 정책을 서둘러서 1.5도 또는 2도 상승 제한에 성공한다고 해도 일부(영구동토층, 해빙, 해수면 온도 등등)는 임계점을 넘어 회복이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온도 상승이 심화될 수록 회복 속도가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언젠가는 회복 되겠지만 그동안 인류가 배출한 이산화탄소는 대기 중 수백 년까지 머문다고 하니 설령 온실가스가 완전히 배출을 멈추고 하락한다고 해도 소빙하기가 오는 시점은 금세기 내에는 사실상 거의 없고 이 문서를 보고 있는 여러분들이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먼 미래의 일일 것이다.

그 밖에 해류 변화 등의 요소에 대해서도 아직 전 지구적 영향이 어떻게 나타나는지에 대해 학계에서 충분히 검증된 바가 없으며, 지구 전체의 에너지 총량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므로 섣불리 예단해서는 안 된다. 특히 지구 온난화를 부정하는 쪽에서 지구 온난화는 소빙하기 등으로 상쇄될 것이며, 태양 주기, 해류 변화 등에 의해서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 근거들이 하나 같이 제대로 증명되지 않은 것들로 심지어 반박된 것들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따라서 소빙하기는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기상 현상보다는 과거의 기상 현상으로서 분석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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