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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로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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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로저스(James Rogers)
퀀텀펀드(Quantum Fund)

짐 로저스(Jim Rogers, James Beeland Rogers Jr. 1942년 10월 19일 ~ )는 미국 출신의 사업가이며 투자 전문가이다. 현재 그는 싱가포르에서 거주하며 재정 분석가로 일하고 있다. 조지 소로스와 함께 퀀텀펀드(Quantum Fund)를 공동 창업한 것으로 유명하다. 워렌 버핏, 조지 소로스와 함께 '세계 3대 투자가'라고 불릴 정도로 '투자왕'으로서 유명세를 크게 떨쳤다. 조지 소로스가 암호화폐에 비판적이었다가 우호적으로 돌아서 투자자가 된 것과 달리, 그는 현재도 "암호화폐는 언젠가 없어질 것"이라고 말하며 "화폐로서 실용 가치가 없다"고 말하고 다닌다.[1] 따라서 비트코인에 한 번도 투자해 본 적도 없고, 거래해 본 적도 없다고 한다.

개요[편집]

짐 로저스는 '월가의 전설'이라고 불릴 정도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투자전문가이자 금융계의 큰 손이다. 2015년 기준, 보유한 자산이 3,500억 원에 이를 정도로 그는 부유하다. 그는 조지 소로스와 함께 퀀텀펀드를 설립하여 10여 년 동안 운영하면서 무려 5,200%가 넘는 기록적인 수익률을 기록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로저스는 자기 스스로를 모험가이자 작가라고 소개하기도 한다. 그는 현재 로저스 홀딩스와 비랜드 인터레스트 회장, 아난티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로저스는 37세에 돌연 금융 업계에서 은퇴를 선언하고 세 차례 세계 여행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세계 경제의 중심이 아시아, 그 중에서도 중국으로 옮겨갔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가족과 함께 미국에서 싱가포르로 이주했다.[2] 그 뒤로 그는 특히 아시아의 경제 흐름에 집중하여 각종 관련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로저스는 특히 2015년에 '북한에 전 재산을 투자하고 싶다'는 발언을 하여 화제를 모았는데, 그 뒤에 북한에 두 차례 다녀올 정도로 북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한국에도 여러 차례 방문하여 경제 뿐만이 아닌 한국의 사회 현상 전반에 대한 여러 차례 조언하였다. 로저스는 다양한 강연, 연설, 방송 출연 등을 통해 한국에 호의가 있음을 보였다.

생애[편집]

짐 로저스는 1942년 미국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애서 태어났다. 이후 그의 가족은 앨라배마 주로 이사하였고 그는 데모폴리스에서 성장했다. 로저스는 5세 때, 야구장에 버려진 빈 병을 모아 팔면서 생애 첫 번째 사업을 시작했다. 그 뒤로 그는 예일 대학교에 진학하여 역사학을 전공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곳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 이후 1970년, 미국과 세계 경제의 중심지인 월가에서 투자자로서의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이 때 그의 나이 22세였다. 그곳에서 주식과 채권을 공부한 로저스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 장학생이 되어 건너갔다.[3] 그곳에서 그는 베일 리얼 칼리지에 다니며 철학, 정치, 경제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1973년 로저스는 '헤지펀드의 대부'라고 불린 조지 소로스와 퀀텀 펀드를 창립하였다. 그가 소로스와 알게 된 건 1968년, 월스트리트의 브로커리지 회사인 '아놀드와 S. 블레이코더'에서 함께 근무했기 때문이었다. 퀀텀펀드는 이후 S&P 500의 평균 수익률이 47%였던 1970년대에 4,200%라는 경이적인 수익률을 기록했고, 로저스는 그를 통해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퀀텀펀드가 처음부터 승승장구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그와 소로스는 1970년 미국 금융증권법의 개정으로 인해 브로커리지 회사가 더 이상 자체적으로 펀드를 운영할 수 없게 되자, 회사로부터 독립하여 퀀텀펀드를 독자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독립 후, 그들은 많은 고난을 겪었다. 특히 1974년에 주식시장이 폭락하여 많은 손실을 봤다. 그 때, 로저스는 예일 대학 동문회에 가서 "나는 예일 대학 동기 중 가장 먼저 파산신청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을 정도로 근심이 많았다. 그러나 로저스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퀀텀펀드를 불사조처럼 부활시켰고, 그는 막대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소로스는 퀀텀펀드를 운영한 경험에 대해 로저스와는 다르게 얘기한다. 로저스는 자신이 항상 소로스와 함께 퀀텀펀드를 설립했다고 말하고 다녔다. 그러나 소로스는 2009년, 중국을 방문해 CCTV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가 동업자가 아니라 그의 밑에 있던 직원 중 한 명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로저스와 자신을 비교해 달라는 질문을 받고서 소로스는 퀀텀펀드에서 함께 일할 당시 로저스가 8명의 애널리스트 일을 혼자서 해내는 훌륭한 증권 분석가였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현업 은퇴 후 투자자로써는 과거만큼의 성과를 보여주지 못 했다고 평가했다. 로저스 역시 미국 언론사와 나눈 인터뷰에서 은퇴 이후 소로스와 교류하지 않고 있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퀀텀펀드를 되살리고 난 후 1980년, 로저스는 37세가 되었을 때 갑자기 '은퇴'를 선언하였다. 그 뒤로 콜럼비아 대학교의 경영대학원 교수가 되어 금융론을 가르쳤고, 다수의 금융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하지만 마냥 일만 한 것이 아니라 그는 또다른 '자신의 꿈'을 이루었다. 바로 오토바이를 타고 세계 일주에 나선 것이다. 이 때, 52개국을 걸쳐 약 16만 킬로미터를 주행하여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하였다.[4] 이후 또 한 차례 바이크로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그리고 환갑을 맞이했던 지난 2002년에는 자체 제작한 벤츠 차량으로 1101일 만에 세계 일주에 성공했다. 이 세 번의 세계 여행을 통해 로저스는 총 116개국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또 다시 기네스북 세계 일주 신기록을 달성했다. [5] 여행 도중에 그는 몇몇 지역에서는 오래 머물기도 하면서 세계 각국의 저평가된 주식, 외환과 원자재까지 골라 투자를 했다. 그런 로저스의 독특한 이력 때문에 타임지는 그를 "세계 금융시장의 인디아나 존스"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 세계 여행은 그의 삶을 뒤바꿔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는 젊은 시절엔 결혼과 자녀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1969년에 로이스 바이너라는 여자와 결혼하였다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파경을 맞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지난 2000년 여행 도중에 만난 페이지 파커와 결혼식을 올렸다. 또 로저스는 과거에 "아이들에게 쏟아야 할 시간과 에너지, 돈이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과 함께할 수 없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2003년에 61세라는 늦은 나이에 첫 딸인 비랜드 앤더슨을 얻고, 5년 뒤에 둘째 딸인 힐튼 아우구스타를 낳은 뒤로는 달라졌다. 로저스가 가진 가족에 대한 가치관만이 변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두 차례에 걸친 세계 일주를 하며 세계 각국의 경제 상황과 투자 환경을 살폈고, 세계 경제의 구조와 방향에 대해 미래를 전망한 책을 두 권 저술했다. 이 책들의 제목은 각각 <월가의 전설 세계를 가다, Investment Biker>와 <어드벤처 캐피털리스트, Adventure Capitalist> 이다. 로저스의 책들은 모두 출간 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리고 두 딸을 얻은 뒤에 로저스는 자신의 인생을 통해 얻은 성공의 비법을 모아 딸들이 자신과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책 한 권을 썼다. 그 책의 이름은 '백만장자가 아빠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그 외에도 그는 '세계 경제의 메가트렌드에 주목하라, '불 인 차이나'와 같은 세계 경제 흐름에 대한 그의 통찰을 담은 서적들을 집필하였다.

이후 2002년에 공식적으로 업계에 복귀하면서 그는 폭스 뉴스를 비롯한 여러 경제 방송에 고정 게스트로 출연했다. 이 당시, 앨런 그리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의 주식시장버블 대응이 또 다른 두 가지 버블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한 가지는 부동산이고 다른 하나는 가계 부채라고 지적했는데, 이는 6년 뒤인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해 국제적으로 금융 위기가 닥치면서 현실이 되었다.

또한 로저스는 세계 여행을 통해서 경제의 중심이 아시아, 그 중에서도 옮겨갔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아시아 시장의 성장 잠재력에 대해 주목하라고 주장한다. 세계 부의 중심이 19세기 영국에서 20세기 미국으로, 21세기에는 아시아로 이동할 것이라는 게 그가 주장하는 요지이다. [6] 2007년, 투자 대비 높은 수익률을 얻어 원래 뉴욕에 있던 저택을 천만 달러에 팔고 가족들과 함께 싱가포르에 삶의 터전을 새로 꾸렸다. 자녀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치는 등 중국의 동향에 크게 주목했다. 그리고 그는 중국 뿐만이 아니라 한국, 일본, 베트남 등 여러 아시아 국가들의 금융 동향을 면밀하게 살피고 있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세계 각국을 누비면서 강연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여담으로 그의 두 딸들은 케이팝(K-pop)을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도 4인조 걸그룹 '블랙핑크'를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로저스는 딸들과 함께 블랙핑크의 콘서트에 가본 적이 있으며, 그 역시 딸들의 영향으로 블랙핑크를 좋아한다고 한다.

투자관[편집]

그의 기본적인 투자 원칙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에 투자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로저스는 "현금과 채권 등 투자 수단에만 매몰될 필요가 없다. 자산으로 보유하거나 투자의 매개가 되는 화폐 종류를 잘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를 인터뷰한 기자는 이러한 그의 발언에 대해 투자 수단을 잘 선택해 돈을 벌었더라도 환차손을 보게 된다면 결국 실패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한 말 같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투자 수단에만 목 매지 말라는 발언은 원자재 투자를 선호하는 그의 성향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로저스는 앞서 한 자신의 발에 예를 들어서 설명했다. "5년 전에 일본 엔화 보유 비율을 높였다면 지금 이후에 큰 손해를 봤을 것이다. 화폐를 잘 선택해 묻어두면 돈을 벌 수 있다. 경기 하락 국면에서는 달러의 매력이 커진다. 달러가 예전만큼 확고한 안전 자산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여전히 매력적인 투자처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라고 그는 설명했다. [7]

로저스의 투자 원칙 3가지[편집]

로저스는 2017년 내한했을 때 출연한 KBS의 시사교양 프로그램인 '명견만리'에 출연하여 자신의 투자 원칙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 저평가된, 하지만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곳에 투자하라
  • 청년의 열정에 주목하라
  • 나쁜 빚을 경계하라

로저스의 12가지 투자관[편집]

  • 상품선물과 상품을 원자재로 쓰는 기업, 이 중에서는 상품선물에 투자하는 쪽이 수익률이 높다.
  • 사실 이미 성공한 투자자는 대부분의 투자 기간에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 좋은 투자처에 집중해야 많은 수익을 거둘 수 있다.
  • 상승장에서는 아무나 돈을 번다. 자신이 똑똑해서 수익을 낸 거라 착각하지 마라.
  • 내가 산 종목이 우연히 폭등하는 행운을 바라지 말고 그런 종목을 미리 발견할 수 있도록 공부하라.
  • 국채나 주식보다 원자재가 좋은 투자처이다. 원자재 중에서는 농산물이 최고의 수익을 낼 것이다.
  • 해외 투자는 필수이다.
  • 21세기는 아시아, 그 중에서도 중국의 시대가 될 것이다.
  • 북한, 또는 미얀마에 투자하는 것이 좋다. 미얀마는 적은 임금을 받는 6천만 명의 인구와 각종 천연 자원이 있기 때문에 개발이 진해외면 최고의 수익률을 낼 것이다. 이후 그는 베네수엘라, 짐바브웨 등의 국가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죽은 나라(dead country)가 바뀌면 큰 변화가 생긴다는 것을 오랜 투자 경험에서 터득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는 상황이 안 좋지만 후에 크게 변화할 가능성이 많은 국가들에 주목하고 투자하고자 한다.
  • 인도는 좋은 투자처가 아니다. 이상한 규제가 많기 때문이다.
  • 일본은 부채 규모가 막대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분명 재앙을 마주할 것이다. 가능하면 일본을 떠나라.

이러한 로저스의 투자관에 대해서 기업에 대한 가치 투자를 중시하는 워렌 버핏이나 주식이나 채권시장에 대한 장기 투자분산투자를 강조하는 존 보글 같은 투자자들에 비해 상당히 공격적이고 급진적인 가치관이라는 분석이 있다. 그의 투자관을 종합하면, 로저스는 주식이나 채권보다 현물을 선호하며, 그 중에서도 농산물을 가장 높이 보고 있다. 그리고 선물을 선호하며, 개발도상국에 과감히 투자할 것을 권한다. 그는 전체적으로 투자의 안정성보다는 수익률을 중시한다. 이렇게 보듯이 로저스는 과감한 자신만의 투자 원칙 덕분에 성공했다. 그렇기 때문에 정석적인 투자론과는 상당히 다르며 투자 입문자들이 투자의 롤모델로 삼기에 적합한 인물은 아니다.

이런 관점 때문에 로저스는 북한에 대해 호의적이다. 그래서 그는 CNN과 2015년에 가진 인터뷰에서 '북한에 전 재산을 투자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북한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는 북한에 2번이나 다녀오기도 했다. 특히, 그리고 본래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한 번 더 방문하려 하였으나 회담이 결렬 되면서 물거품이 되었다. 회담 직전, 북한 측에서 먼저 그를 초청했고 미국 정부 역시 이를 승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달랐으나 [8] 또한 2019년 1월 23일, 그는 KBS의 시사교양 프로그램인 '오늘밤 김제동'에 출연하여 "한반도가 통일 되고 완전히 개방 되면 앞으로 20년 간 한반도가 세상에서 가장 주목 받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에 투자하고 싶다는 의지를 다시 한 번 내비치며, 그는 "지금 북한은 1981년의 중국과 같다. 김정은은 북한의 덩샤오핑이다. 그가 한 것과 같은 길을 가는 중"이라고 평가했다. 또 "모든 사람이 변화를 원하고 있다. 북한도 통일을 원하고 있고, 드디어 변화할 준비가 되었다. 남한의 자본과 경영기술, 북한의 풍부한 천연자원과 값싸고 숙련된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고 그것이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 말했다.[9]

성향[편집]

1998년, 로저스는 RICI(로저스 국제원자재지수)를 설립했다. 이 회사에서 발표하는 원자재 지수는 엘리멘츠(ELEMENTS)라고 표기하는 브랜드인데 현재 ETN으로 상장되어 있다. 이와 관련해 2005년에 출판한 자신의 저서에서 원자재야말로 최고의 투자 수단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 당시 일반적으로 믿던 투자 방법론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그가 중국에 주목한 것은 꽤 오래 된 이야기이다. 로저스는 '천안문 사태'로 서방 국가들이 모두 중국에게서 등을 돌릴 때, "당장 중국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6년에 미국의 금융회사들과 주택건설사들을 대량으로 공매도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그의 행동을 볼 때, 서양의 민주주의 체제에 매우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실제로 로저스가 낙관적으로 전망하는 국가들의 대다수가 한국을 제외하면 독재자가 있거나 권위주의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상단에서 언급한 중국과 북한이 대표적인 예이다.

로저스는 2017년에 아난티의 사외 이사를 맡았는데, 그는 아난티에 투자도 하였다. 그 이유는 아난티가 북한에 있는 리조트를 보유하고 있는데다가 금강산 관광 산업 등 과거에 성공적인 북한 관광산업을 운영하고 영업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저스는 이후 남북한이 통일 되면 북한 정부 가 오랫동안 북한에서 사업을 진행한 아난티를 다른 기업들보다는 우호적으로 다룰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저서 목록[편집]

  • 1994년 : 월가의 전설 세계를 가다: 짐 로저스와 함께하는 세계
  • 2003년 : 짐 로저스의 어드벤처 캐피털리스트
  • 2005년 : 상품시장에 투자하라
  • 2008년 : 불 인 차이나
  • 2009년 : 백만장자 아빠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
  • 2013년 : 짐 로저스의 스트리트 스마트 : 투자는 책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거리에서 배우는 것이다
  • 2014년 : 세계경제의 메가트렌드에 주목하라
  • 2019년 : 세계에서 가장 자극적인 나라 : 짐 로저스의 어떤 예견

암호화폐에 대한 시각[편집]

기존 투자자들과는 남다르고 과감한 투자 원칙을 갖고 있는 짐 로저스이지만 암호화폐 투자에 대해서 그는 부정적인 편이다. 한 인터뷰에서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 투자에 관한 질문을 받자, 그는 블록체인암호화폐를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블록체인 기술은 우리가 아는 모든 걸 바꿀 만한 잠재력이 있지만 암호화폐는 정부 차원에서 도입하지 않는 이상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간 암호화폐 전문가들은 모두 자신들이 정부보다 똑똑하다고 주장하지만, 칼자루를 쥐고 있는 건 정부이기 때문에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로저스는 '1930년대 대공황 시기'를 예로 들었다. 그 당시, 영국에선 금과 은은 물론 설탕과 조개 껍데기까지 화폐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영란은행이 자체적으로 공인한 화폐 외에 다른 것을 사용하면 '반역죄(treaseon)'로 처벌하겠다고 엄포를 놓차 상황이 정리되었다. 로저스는 그와 똑같은 일이 암호화폐에서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다른 인터뷰에서 "블록체인 기술은 전 세계를 뒤집을 혁신적인 기술이지만, 비트코인은 언젠가 없어질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그러면서 "블록체인 기술은 많은 사람들에게, 특히 디지털 화페 분야에 많은 부를 창출할 기회를 주는 반면 많은 일자리가 사라지게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디지털 화폐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잡더라도 화폐 발행은 각국의 중앙은행에서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암호화폐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로저스는 "비트코인에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비트코인이 언젠가 사라질 것이고, 가격은 '제로'에 수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0]

그에 더해 그는 아예 암호화폐가 화폐로서 실용 가치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해서 로저스는 "만약 당신이 장사를 하고있다면, 비트코인을 결제수단으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만약 당신이 비트코인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비트코인의 변동성 때문에 가게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투기로 인한 큰 변동성은 화폐가 가지고 있어야 될 모습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암호화폐는 화폐의 실용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으로 믿을 수 있는 가치를 보유한 수단과 거래 매개체가 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11]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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