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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17일 (월) 13:25 판
Anthony Dewayne Hunt(Anthony Dewayne Hunt 12-03-1991)는 세계 최초 암호화폐인 비트코인(bitcoin)을 만든 사람이며 블록체인 기술의 창시자이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2009년 초 첫 채굴을 시작한 이후로 그의 지갑에서는 약 100만개로 추정되는 비트코인이 있는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지갑을 빠져나간 적이 없다. 2017년 11월 말 기준으로 그는 세계 100위 정도의 부자에 해당한다. 아르헨티나 암호전문가인 세르지오 디미언 러너(Sergio Demian Lerner)는 사토시 나카모토가 약 98만 개의 비트코인을 소유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1] 이 추정에 따르면 사토시 나카모토의 재산은 2019년 6월 기준으로 약 150억 달러(약 16조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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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성명
사토시 나카모토를 일본식 이름으로 표현하면, なかもと さとし(나카모토 사토시)로서 일본에서 흔히 사용하는 이름이다. 일본에서 사토시를 성으로 쓰는 경우는 거의 없으므로 일본식 이름은 나카모토 사토시가 거의 확실하다. 한자로 쓰면 중본철사(中本哲史)가 된다. 그는 일본식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본명이 아니라 가명으로 추정된다. 그의 이름뿐만이 아니라 국적, 성별, 나이, 단일 인물 유무, 사망 유무도 알려지지 않아서 그가 정확히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를 "영국인"이라고 추정하는데, 사토시 나카모토가 사용하는 언어는 일본어가 아닌 매끄럽고 수준높은 영국식 영어였고 가끔씩 고의로 넣은 것으로 보이는 미국식 표현도 약간 혼재되어 있었다는 점을 보아 일본인으로 추정하기 매우 어려우며, 가장 결정적으로 "제네시스 블록"에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종이신문인 "더 타임즈"지의 2009년 1월 3일 1면 기사제목이었던 "은행들의 2차 구제금융 위기를 앞둔 장관"이라는 문구를 암호화하여 넣어놓았기 때문에, 영국에 장기 거주해 왔고 영국 경제 및 세계 경제에 매우 정통한 영국인 암호학자로 보는 시각이 세계 암호학계에서는 가장 지배적이다. 또한 사토시 나카모토가 비트코인 위치 추적이 어려운 토어 브라우저 등을 이용해 비트코인 활동을 하였기 때문에 정확한 신원파악이 불가능하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사토시 나카모토가 피투피(P2P) 재단 웹사이트에 등록해 놓은 정보인 생년월일 1975년 4월 5일, 일본 거주가 전부이다. 하지만 이것마저도 진실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지금까지 사토시 나카모토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여러 사람들이 노력하여 추정되는 여러 명의 인물이 등장했지만 정확히 누구라고 밝혀진 바는 없다.
업적
- 블록체인 제안
세계 최초의 암호화폐인 비트코인 처음 만든 것은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가명을 쓰는 사람이다. 블록체인은 사토시 나카모토가 처음 제안했고, 이를 위해 2008년 11월 1일 〈비트코인 : 개인 대 개인의 전자화폐 시스템〉이라는 9쪽짜리 논문을 작성하고 https://bitcoin.org/bitcoin.pdf 사이트에 올렸다. 이는 자신의 제안을 구현한 최초의 블록체인 관리 프로그램 ‘비트코인 코어(Bitcoin Core)’이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담은 논문을 내려 받을 수 있는 사이트주소를 수백 명의 암호학 전문가들에게 전자우편으로 보냈다. 그 메일에는 ‘저는 제3자의 신용보증인이 필요 없는 완전한 피투피(P2P) 전자 화폐 시스템 개발을 해왔습니다.’라는 내용과 함께 비트코인 백서 링크를 첨부하였다. 이 논문은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의 기본 구조를 설명한다. 비트코인 코어는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을 생성하고 비트코인 거래를 블록체인 형태로 기록하도록 설계됐다. 블록체인 기록을 검증한 대가로 주어지는 보상이 바로 새로 생성된 비트코인이다. 이렇듯 그는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최초의 암호화폐인 비트코인(bitcoin)을 개발하고, C++ 언어로 작성한 소스 코드를 배포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피투피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디지털 화폐에 대한 이중지불 문제를 처음으로 해결했다. 2009년도에 비트코인 코어 프로그램이 공개되며 비트코인이 처음 발행되었다.
- 제네시스 블록 탄생 및 할 피니와의 네트워크 운영
2009년 1월 3일 오후 6시 15분 05초에 비트코인의 최초 블록인 제네시스 블록이 탄생한다. 이로 인해 50개 비트코인이 처음으로 채굴되었다. 그는 0번 블록[2]에 ‘2009년 1월 3일, 은행을 위한 두 번째 긴급 구제 방안이 임박한 장관’이라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남겼다. 여기서 중앙화된 자본주의 시장의 폐해를 비트코인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볼 수 있다.[3] 그러나 그 당시에는 사토시 나카모토 본인 외에는 전송할 사람도 없었고, 지불 수단으로도 쓰일 수 없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도 비트코인 네트워크에 참여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다시 메일을 전송하였다. 메일에는 "첫 번째 비트코인이 만들어졌음을 발표합니다. 비트코인은 새로운 전자 화폐 시스템이며 피투피 네트워크를 사용함으로써 이중지불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중앙 서버도, 중앙집권화된 권력도 없는 완벽히 탈중앙화된 시스템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시 이메일을 수신한 사람들 중 비트코인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 두 번째 비트코인 사용자인 할 피니(Hal Finney)만이 사토시 나카모토가 메일을 보낸지 일주일 뒤인 1월 10일에 관심을 보였고 사토시 나카모토가 보낸 이메일의 수신자 리스트에 있는 사람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참고로, 비트코인을 만든 사람은 최소 3개의 이메일 주소를 공개적으로 사용해야 했으며 모든 이메일 주소는 암호화되어 있어서 그가 누구인지는 추적할 수 없다. 할 피니는 암호학 전문가이다. 두 사람만 비트코인을 사용하던 시절에는 소프트웨어 코드상의 오류가 발견되어 수정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비트코인이 실제 구동된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그들은 당시 2009년 1월 10일부터 2주짜리 프로젝트에 착수하여 그들 스스로 비트코인을 채굴하고 지갑을 만들며, 서로에게 전송하며 버그를 수정하였다. 할 피니와 사토시 나카모토 둘이서 네트워크를 운영한 결과 비트코인이 꽤 쓸만한 시스템임이 입증됐다. 이때부터 비트코인 사용자가 점점 늘었고, 사토시 나카모토는 자신이 논문을 올려둔 홈페이지(bitcoin.org)와 전자우편으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며 비트코인 네트워크를 확장했다. 이후 나카모토가 'bitcoin.org'사이트에 개설한 IRC 채팅 채널은 비트코인 포럼이라는 이름으로 공식화되었다.
- 전통 금융시스템의 대안, 비트코인
사토시 나카모토는 전통 금융의 문제에 대한 생각을 커뮤니티에 올리기도 했다. “기존 화폐는 중앙은행이 화폐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법정 화폐의 역사에는 이 믿음을 저버리는 사례로 충만하다. 은행도 신뢰가 있어야 한다. 은행들은 신용 버블이라는 흐름에서 함부로 대출해왔다.”라고 했다.[4][5]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대표적인 예이다. 신용 등급이 불량한, 돈을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주택담보대출을 해 준 것이다. 당시 저금리라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아도 이자가 적었고, 집에 대한 수요 증가로 집값도 꾸준히 상승하고 있었다. 은행 입장에서는 집값이 계속 오르고, 대출 받은 사람이 못 갚아도 담보로 잡은 집을 얻을 수 있으므로 이득이었다. 하지만 너무 높은 부동산 가격으로 수요는 감소했고, 금리인상으로 대출 이자가 증가하면서 서브프라임 계층부터 디폴트에 빠지면서 매물이 증가하자 집값이 폭락하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기존 중앙금융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매우 거세게 일었고, 이 당시 사토시 나카모토는 은행 없이도 해킹 없이 계속 작동하며 거래 가능한, 즉 비트코인 사용자들이 각자 중앙 금융시스템인 은행의 역할을 수행하자는 목적 아래 비트코인을 만들게 되었다.
- 비트코인, 건전한 프로젝트로서의 성장 요구
그는 2010년 12월12일 홈페이지에 개설된 비트코인 포럼에서 “도스(DoS)에 대해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지만, 우선 이럴 경우를 대비해 작업해둔 걸 손보는 중이고, 그 버전이 0.3.19이다. 이걸 우선 마친 뒤 제대로 시스템을 갖춰 작업해 볼 생각이다”라는 글을 남겼다. 또, 사용자들이 위키리크스(WikiLeaks)에서 비트코인을 받기 위해 로비를 시작한 후, 얼리어답터들이 비트코인의 인기를 높이려고 할 때 나카모토가 개입하기도 했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팀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 "비트코인 프로젝트가 점진적으로 성장해야 소프트웨어가 그 길을 따라 강화될 수 있다. 나는 위키리크스에게 비트코인을 사용하지 말라고 호소한다. 비트코인은 초기 단계에 있는 작은 베타 커뮤니티이다. 위키리크스는 주머니 교체 이상의 것을 얻을 수 없으며, 이 단계에서 당신이 가져오는 열광은 우리를 파괴할 것이다." 라는 어록을 남겼다. 이후 그는 비트코인 개발 업무를 그만두었고 개발자들과 주고받은 전자우편은 2011년 4월이 마지막이었다. 다만 그는 잠적하기 전 개빈 앤드리슨을 비트코인 소프트웨어의 수석개발자로 지명해 자신의 후계자로 삼았다. 앤드리슨도 나카모토의 정체를 모른다고 밝혔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2008년 10월에 나타나 2011년 4월까지 인터넷 공간에 흔적을 남겼고, 잠적하였다. 그의 잠적이, 그가 만들어낸 블록체인의 탈중앙화를 완성시키기 위함이라면 그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추정 인물
사토시 나카모토의 정체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나카모토가 누구인지 추정할 수 있는 정보는 단 한 가지, 2009년 개인 간 거래(P2PㆍPeer to peer) 기술 관련 커뮤니티인 피투피재단(P2P Foundation) 사이트에 비트코인을 소개할 때 쓴 그의 계정뿐이다. 피투피재단 프로필에 따르면, 사토시 나카모토는 1975년 4월 5일에 태어나 일본에서 살고 있는 남자라고 적혀 있다. 사토시 나카모토 역시 일본에 거주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그의 신원에 대한 조사는 거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 비트코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초창기 시절에도 사토시는 자신에 대한 세부 사항을 거의 밝히지 않았다.[6] 사토시 나카모토의 정체성에 대한 추측이 난무하고 있는 가운데 그가 일본인이 아닌 미국과 여러 유럽 국가에 거주하는 암호학자 또는 컴퓨터 과학 전문가일 것이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또, 사토시 나카모토가 매끄러운 영국식 영어를 사용했고 가끔씩 미국식 표현도 혼재되어 있던 점으로 보아 한 사람이 아닌 여러 명으로 구성된 집단이라 추정되기도 한다. 또 다른 추측으로 사토시 나카모토의 이름의 유래가 사실은 삼성(Samsung)의 사(sa), 토시바(Toshiba)의 토시(tosi), 나카미치(Nakamichi)의 나카(naka), 모토롤라(Motorola)의 모토(moto)로, 4개 기업 이름의 조합으로 상기한 네 기업이 비트코인을 개발했다는 설이 있지만 구체적인 근거는 없다.[7]
사토시 나카모토로 추정되는 인물로는 모치즈키 신이치(望月 新一), 도리안 사토시 나카모토(Dorian Satoshi Nakamoto), 할 피니(Hal Finney), 닉 재보(Nick Szabo), 크레이그 스티븐 라이트(Craig Steven Wright), 데이비드 클라이먼(Dave Kleiman), 필 짐머만(Phil Zimmermann), 데이비드 차움(David Chaum), 찰리 리(Charlie Lee), 웨이 다이(Wei Dai), 일론 머스크(Elon Reeve Musk), 개빈 안데르센(Gavin Andresen), 제임스 칸(James Caan)등이 있다.
모치즈키 신이치
모치즈키 신이치(望月 新一)는 정수론과 기하학을 연구하는 일본의 수학자다. 그는 수체위의 쌍곡 곡선에 대한 그로텐디크 추측을 해결한 업적으로 알려져 있다. 2013년 5월,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테드 넬슨(Theodor Nelson) 옥스퍼드 대학교 교수는 일본의 천재수학자 모치즈키 신이치 교토대 교수를 사토시 나카모토로 지목했다. 테드 넬슨은 이를 사회학적인 분석으로 가설을 세우고 유력한 후보를 경제학이나 수학계에서 사토시 나카모토를 찾고자 했다. 결국 수리해석 분야에서 일본학술진흥회의 학술 장려상 초대 수상자이기도 한 모치즈키가 비트코인을 개발했을 것이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그는 수학과 컴퓨터과학은 물론 암호학에도 능통하고 2012년 말 자신의 홈페이지에 비트코인의 기본원리와 비슷한 세계적 수학난제 ‘ABC추측’을 증명했다. 모치즈키 교수가 학술지가 아닌 개인 홈페이지 논문을 발표했다는 점과 ABC추측을 증명하면서 ‘우주 간 기하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창시했다는 점이 비트코인 체계를 발표한 논문의 내용과 흡사하다고 한다. 사토시 나카모토의 논문을 살펴보면 이론적 지능은 뛰어나지만 오히려 코딩이나 프로그래밍 자체는 아마추어 같다는 의심도 테드 넬슨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8] 16세에 프린스턴 입학, 23살에 대학원졸업, 33살에 교토대 정교수로 등극한 천재 수학자 모치즈키 신이치는 사토시 나카모토로 의심을 받은 후에 더에이지(The Age) 신문에서 자신이 사토시 나카모토가 아니라고 밝혔다. 실제로 사토시 나카모토는 일본어를 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비트코인 자체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상에 구현된 전자화폐이기 때문에 실제 개발자가 누구인지 알아내기는 쉽지 않아 일본인이 아닐 가능성도 제기됐다.
도리안 사토시 나카모토
도리안 사토시 나카모토(Dorian Satoshi Nakamoto)는 2014년 3월 6일에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비트코인의 얼굴’이라는 커버스토리를 통해 이름을 알린 인물로 인터넷 포털에서 ‘비트코인 창시자’라고 입력하면 가장 먼저 뜨는 인물이다. 사토시 나카모토와 이름이 비슷하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일본인이 1순위로 비트코인 창시자의 후보자로 올랐기 때문이다. 또한 도리안 나카모토의 출생명은 사토시 나카모토였다는점이 그럴 유력한 후보자로 만든다. 도리안 나카모토는 LA근교에서 거주중이며 명문 공대인 칼텍에서 물리학을 공부했다. 또 금융정보 회사에서 컴퓨터 엔지니어로 일하기도 했다.[9] 뉴스위크 기자는 두 달에 걸친 탐사와 인터뷰를 통해 사토시를 추적했고, 급기야 도리안 집을 경찰과 함께 찾아가 대면하고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그러자 도리안은 당황하며 “더 이상 비트코인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 이제는 다른 사람들이 맡고 있다”고 대답하여 기자는 이를 두고 도리안이 사토시임을 자백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렇게 쉽게 비트코인 창시자가 나오는 듯했으나 뉴스위크 보도가 나간 직후 도리안 나카모토는 기자회견을 갖고 "나는 그냥 엔지니어일 뿐 비트코인과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명했다. 이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진짜 사토시 나카모토가 “도리안은 진짜가 아니다”라는 글을 올라왔다.[10] 그 게시판은 암호화기술 도구 등을 활용하여 P2P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한 비영리단체의 것이었다. 그 글은 2009년 2월 12일에 사토시 나카모토가 비트코인을 배포하기 위해 썼던 글과 연결되어 있었다. 몇 년만에 처음으로 그 글에 새로운 메시지가 추가된 것이다. 또 다시 사토시 나카모토의 정체에 관해서는 불명확해진 셈이다. 추후 그는 자신을 비트코인 창시자라고 지목했던 뉴스위크지를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할 피니
할 피니(Hal Finney, 1956년 ~ 2014년)는 비트코인 이전에도 암호학의 선구자였으며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서 버그 보고서를 작성 및 개선한 최초의 사람이다. 포브스 기자 앤디 그린버그에 따르면, 할 피니는 도리안 나카모토 가족의 집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살았다고 한다. 그린버그는 작문 분석 컨설턴트인 Juola & Associates에 할 피니의 글 견본과 사토시 나카모토의 글과 비교해 보라고 요청했고 그가 여러 후보자들 중에 가장 닮은 서체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린버그는 할 피니가 사토시 나카모토를 대신하여 유령작가였을 수도 있고 또는 자신의 개인정보가 단순히 온라인 악용으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이웃인 도리안 나카모토의 정체성을 사용하였다고 이론화했다. 할 피니는 비트코인처럼 작업증명(Proof-of-Work) 방식으로 구동하는 전자화폐를 개발한 적이 있으며, 발신자를 밝히지 않는 전자우편 서비스를 개발했던 암호학의 대가이다. 그는 사토시 나카모토와 함께 비트코인을 개발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그가 사토시 나카모토이며 1인 2역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그 외 그는 사토시가 테스트용으로 보낸 10코인을 받아 최초로 가상화폐 이체를 받은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주장에 대해선 계속 부인했다. 그린버그 또한 할 피니를 직접 만난 후 그의 말이 사실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또, 앞서 언급한 Juola & Associates에서도 사토시 나카모토가 할 핀니에게 보낸 이메일에서만 할 피니의 서체와 더 닮아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는 2014년도에 루게릭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1]
닉 재보
닉 재보(Nick Szabo)는 1998년 이미 ‘비트골드(Bit gold)’ 라는 분산된 전자화폐를 고안한 인물이다. 비트골드는 실제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비트코인의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재보는 ‘스마트 계약(Smart Contract)’ 이라는 개념을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제3자에 대한 의존도를 최소화하고 이와 유사한 최소한의 신뢰로 안전하게 저장, 전송하는 비트골드의 개념 때문에 그는 사토시 나카모토로 의심받고 있다. 그는 1990년대에 가명을 사용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11년 5월 기사에서 닉 재보는 "나 자신, 웨이 다이, 할 피니만이 사토시 나카모토 정도로 그 아이디어를 충분히 추구하고 좋아했던 유일한 사람들이었다."라고 언급했다. 금융 저자인 도미니크 프리스 비의 리서치는 사토시 나카모토가 닉 재보라는 증거는 없다고 하였다. RT의 카이저 리포트(The Keiser Report)에서 닉 재보는 전 세계에 단 하나의 사람만이 있지만 지식의 특이성을 가진 사람은 단 한 명이라고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역시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주장에 대해선 부인했다.
크레이그 스티븐 라이트
2015년 호주의 사업가 겸 컴퓨터 공학자인 크레이그 스티븐 라이트(Craig Steven Wright)가 사토시 나카모토로 지목되었다. IT잡지 기즈모도(Gizmodo)와 와이어드(Wired)가 그를 사토시 나카모토로 지목했고, 그는 이를 인정했다. 크레이그 스티븐 라이트는 1970년 생으로 호주의 프로그래머이자 사업가이다. 호주 찰스 스터트 대학 교수로 핵물리학, 유기화학을 전공했다. 신학박사 학위도 취득한 바 있어 천재 소리를 듣고 있는 인물이다. 그가 사토시 나카모토로 의심받고 있는 이유는 비트코인 개발자를 추적하던 해커가 라이트의 이메일을 해킹했는데 거기에 개발 증거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당시 의혹제기에 답을 하지 않았던 라이트는 약 반년 후인 2016년에 자신이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주장하며 이를 영국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는 비트코인의 최초 거래시 사토시가 사용한 암호블록인 제네시스 블록에 전자서명을 해 기술적으로 증명하겠다고도 했다. 그는 비트코인 프로젝트를 지원했던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비트코인을 암호화하는 데 쓴 키를 공개했다. 또한 비트코인 재단의 수석과학자인 개빈 안드레센(Gavin Andresen)은 직접 라이트를 비밀리에 만나고 난 후, 그가 사카모토라는 것을 믿게 됐다고 와이어드와의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이에 대한 반박 글이 올라왔는데 라이트가 본인이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공개한 증거가 이미 공개된 스트링이어서 누구라도 쉽게 복사하고 붙여 넣을 수 있다는 반박 글이 올라왔으며 라이트 또한 다시 공식 블로그를 통해 기술적 증명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이 증명을 해낼 수 있지만 그동안 지켜온 익명성이 증명을 통해 깨어지면 그 뒤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는 “나는 수년 동안을 가명 뒤에 나를 숨길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번 주 일련의 사건이 일어났고 나는 개인키를 보여줄 준비가 되어있었지만 이는 무너졌다. 나는 용기가 없다. 나는 할 수 없다.”며 자신이 사토시라고 증명할 용기가 없다고 사과문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이 결정이 다른 동료 개발자들에게 큰 타격이 될 것을 우려하며 “이 결정이 비트코인의 신뢰도에 먹칠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는 크레이그 라이트가 사토시 나카모토가 아님을 인정하는 것으로 받아졌고 또한 그는 사토시 나카모토 이메일(satoshi@vistomail.com)을 통해 “나는 크레이그 라이트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사토시다”라며 관련성을 부정했으나 이 계정은 지난해 해킹 당한 것으로 알려져 진위 여부는 미궁 속으로 빠졌다. 이렇게 라이트는 비트코인 기술에 대한 증거를 입증하는데 실패하면서 거짓말쟁이로 낙인찍히게 된다.
데이브 클라이먼
크레이그 라이트가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것은 신빙성이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가 50억 달러에 달하는 소송에 휘말리면서 그가 사토시라는 주장이 힘을 받게 되었다. 소송을 제기한 인물은 아이라 클라이먼(Ira Kleiman)으로 데이브 클라이먼(Dave Kleiman)의 형이다. 아이라 클라이먼은 동생인 데이브 클라이먼이 2013년 숨지기 전 생전에 크레이그 라이트와 수많은 메일을 교환했고 동생이 숨지자, 크레이그 라이트가 동생의 비트코인과 비트코인 관련 특허를 훔쳤다고 주장한다. 크레이그의 가족들은 플로리다 주 연방법원에 제출한 자료에서 클라이먼이 채굴한 100만개 이상의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다. 또한 두 사람이 비트코인 개발 이전부터 함께 일했으며, 채굴 활동을 통해 110만개의 비트코인을 공동 관리해 왔다고 주장했다. 만약 크레이그 스티븐 라이트가 데이브의 형인 아이라 클라이먼에게 일정 부분 이상 배상하라는 것으로 판결이 난다면, 간접적으로 크레이그 스티븐 라이트가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것을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12] 추가적으로 크레이그 라이트를 직접 만나본 비트코인 재단 수석 과학자 개빈 안드레센(Gavin Andresen)과 메토니스(Matonis)는 그를 사토시 나카모토로 인정하고 믿고 있다. 그들의 글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확인 가능하다. (글 전문: http://gavinandresen.ninja/satoshi) 그의 트위터에는 ‘크레이그 라이트 외 다른 사토시는 없다.’라고 남겨져 있다. 비트코인재단의 수석 개발자들이 그를 사토시 나카모토로 믿고 있으며, 그가 증거로 내세우지 못한 개인키 또한 그가 밝히지 않을 뿐이라는 해석과 그가 밝히지 못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현재 개인키를 제출하지 않아 크레이그 라이트는 사토시가 아니고, 클레이만의 BTC 수량을 뺏기 위하여 계속 주장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있다.
필 짐머만
필 짐머만(Phil Zimmermann)은 1991년 PGP라는 암호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PGP는 암호학 일대 혁명을 가져온 프로그램으로, 정부나 군대 그리고 정보기관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일반 사람들까지 암호화 기능을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PGP는 사용자가 암호화를 위한 퍼블릭 키와 암호해독을 위한 프라이빗 키와 같은 한 쌍의 키를 생성 할 수 있도록 한다. 이것은 암호화폐가 블록체인으로 알려진 기술의 핵심이기도 하며 사용자가 전통적인 트랜잭션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은행과 같은 중계업자를 대신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비트코인이 등장한 이후 암호가 개인의 정보 권리, 언론의 자유, 정치의 자유, 불합리한 수색과 압류로부터의 자유, 남겨둘 자유라고 밝혔다.[13]
데이비드 차움
데이비드 차움(David Chaum)은 암호화된 금융거래 기술회사를 창업했던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이자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 교수이고, 암호화폐 초기 모델인 디지캐시를 1983년 개발한 바 있다. 그는 1980년대부터 암호화폐 관련된 여러 논문을 썼다. 1990년에는 '디지캐시'라는 회사를 차리고 이캐시(Ecash)라는 암호화폐를 만들었지만 시장을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 디지캐시의 경우, 두 사람 간의 거래에서는 시간 차이를 이용해 거래 내용을 바꾸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여러 명이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상황에서는 여전히 거래의 신뢰도를 수학적으로 증명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송신인과 수신인을 암호화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은행이라는 중앙 기관이 없이 운용되지는 못했다. 그 이후 출시된 것이 비트코인으로, 데이비드 차움이 비트코인을 만들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14]
찰리 리
찰리 리(Charlie Lee)는 라이트코인의 창시자로, 비트코인은 2009년도에, 라이트코인은 2011년도에 출시되었다. 라이트 코인이 첫 알트코인인 점을 고려할 때, 아직 비트코인에 생소한 시기에 라이트코인이 등장한 것은 찰리 리가 비트코인 개발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비트코인이 실크로드(Silkroad) 등 마약과 비리로 악명을 얻자 라이트코인을 개발했을 거라는 추측도 제기된다. 찰리 리는 세계 최대 암호 해독 회사인 코인베이스의 최초 직원 중 한명으로, 비트코인과 비슷한 알트코인을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고용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찰리는 코인베이스에 자신이 나카모토 사토시라 밝히고 이것을 비밀로 유지하는데 합의했을지도 모른다.[15]
웨이 다이
웨이 다이(Wei Dai)는 비머니(B money)와 비트골드의 개발자이다. 1998년에 웨이 다이는 비머니라는 암호통화 개념을 사이퍼펑크들의 메일링 리스트에 공개했다.[16] 웨이 다이가 발표한 비-머니 논문은 단 두 페이지로, 실제 화폐로 만들어 운용하기에는 구체적이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이를 통해 그는 블록체인의 개념과 작업증명과 지분증명 등을 제안하여 암호화폐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개념들을 제시했다.[17]
일론 머스크
일론 머스크(Elon Reeve Musk)는 전기차 테슬라의 창업자이다. 일론 머스크가 운영하고 있는 우주선 개발회사인 스페이스엑스(SpaceX)의 인턴 사원인 사힐 굽타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비트코인 창시자인 사토시 나카모토는 아마도 일론 머스크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일론 머스크가 경제와 암호학에 능통하다면서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은행 간 신뢰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트코인을 개발했다고 추측했다. 그는 이외에도 일론 머스크가 비트코인 창시자일 수 있다는 다양한 증거들을 블로그에 게재했다.[18] 이후 머스크가 비트코인 창시자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머스크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사실이 아니라며 소문을 일축했으며, 최근 자신의 이름을 사칭해 트위터를 통해 비트코인 사기행각을 벌이는 일이 많아지자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비트코인을 공개했다. 그는 2018년 2월 23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보유하고 있는 비트코인은 0.25개라고 밝히며, “몇 년 전 친구 한 명이 비트코인을 조금 보내주긴 했다. 근데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19] 그는 암호화폐를 사실상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강조하며 자신이 사토시 나카모토가 아님을 피력했다.
개빈 안드레센
개빈 안드레센(Gavin Andresen)은 비트코인의 수석 개발자이다. 2010년 비트코인을 처음 알게 되었고, "The Bitcoin Faucet"이라는 웹사이트를 개설하여 비트코인을 나눠주었다. 이후 사토시 나카모토와 함께 비트코인 개발에 참여했고, 비트코인 클라이언트 소프트웨어인 비트코인코어(Bitcoin Core) 개발의 리드 개발자가 되었다. 그는 비트코인재단(Bitcoin Foundation) 설립을 구상했는데, 실제 2012년에 재단이 설립되었다. 그는 비트코인을 창시한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의심을 받고 있으나, 본인은 부인하고 있다.
제임스 칸
제임스 칸(James Caan, 1978년 9월 29일~)은 파키스탄 출신의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개발자이다. 그는 현재 영국에서 거주하면서 의료보험기구에 근무하고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본명은 '빌랄 칼리드'이며, 2019년 8월 18일부터 사토시 나카모토의 정체를 밝히겠다는 게시물 시리즈를 시작한 사람이다. 칸의 자신이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사실을 2번 정도 숨기려고 했지만, 2015년 이후 블록체인 업계로 돌아온 이후에 자신이 비트코인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만들기 위해 정체를 밝히기로 결심했다고 주장했다. 블록체인 커뮤니티에서는 그가 사토시라는 것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이고, 칸 역시 자신이 사토시라는 명백한 증거가 없음을 인정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사토시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지갑 주소
- 2009년 1월 3일 사토시 나카모토(Satoshi Nakamoto)가 만든 비트코인 지갑 주소이다. 이 지갑 주소를 비트코인 제네시스(Genesis of Bitcoin) 지갑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암호화폐를 만들고 최초로 생성한 블록을 제네시스 블록이라고 하는데, 비트코인 창시자인 사토시 나카모토는 비트코인 최초의 채굴을 통해 제네시스 블록을 만들고, 50개의 비트코인을 받았다. 그후 단 한 번도 비트코인을 판 적이 없기 때문에, 50개의 비트코인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 게다가 전 세계 비트코인 사용자들이 사토시 나카모토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일종의 기부금 형식으로 위 주소에 소액의 비트코인을 계속 송금하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비트코인 잔액이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 2018년 12월 25일 기준으로 위 비트코인 지갑 주소에는 총 66.91151538개의 비트코인이 보관되어 있다.[20]
사건
사토시의 계정 업데이트
2018년 11월 29일(현지시간) 연구자 네트워크인 피투피재단에서 사토시의 것으로 알려진 계정에 아랍어로 ‘빛’을 의미하는 단어 ‘nour’이 새롭게 게재되었다. 이는 2014년 10월 11일 Haans라는 계정이 사토시 계정에 레드 리본을 선물로 준 포스팅 이후 4년만의 업데이트이다. 사토시 본인이 활동한 것은 2009년 2월 18일 피투피재단에 실린 문건 ‘Bitcoin open source implementation of P2P currency’에 대한 논의에 답변한 이후 9년 10개월만의 일이다. 한편, 같은 날 본인이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주장했던 크레이그 라이트 역시 트위터에 빛 이미지와 함께 ‘The light of the world in trade’를 아랍어로 업데이트하기도 했다.[21]
비트코인의 움직임
이와 함께 한 번에 수만 개의 비트코인이 옮겨지는 사례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 8년 동안 트랜잭션이 없었던 비트코인의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대규모 암호화폐 트랜잭션이 일어나는 것을 알려주는 트위터 ‘Whale Alert’에 따르면, 최근 들어 많은 양의 비트코인이 잇따라 이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12월 4일 오전 10시5분에도 2만9722개의 비트코인이 알 수 없는 지갑에서 다른 지갑으로 옮겨졌으며, 같은 날 9시 5분에도 2만5489개의 비트코인이, 8시 5분에도 2만6215개의 비트코인이 옮겨졌다. 이날뿐만 아니라 지난 12월 3일에는 최대 6만 6234개의 비트코인이 이동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 같은 대규모 이동이 비트코인 가격의 하락으로 이어지는 것을 우려한다. 그 결과 수 만개의 비트코인은 거래소에 매도될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특정한 거래소가 아닌 ‘알 수 없는 지갑’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에 섣부른 판단은 위험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1]
동영상
각주
- ↑ 강상규 소장, 〈비트코인 창시자 '사토시' 사망?…16조 상속재산 행방은〉, 《머니투데이》, 2018-01-21
- ↑ "블록 #0", blockchain.com
- ↑ 헤리티지블록스, 〈(HB) 인물탐색: 나카모토 사토시(Satoshi Nakamoto)〉, 《네이버 블로그》, 2018-08-10
- ↑ Satoshi Nakamoto, "Bitcoin open source implementation of P2P currency", P2Pfoundation, 2009-02-11
- ↑ 김흥록 기자, 〈(비트코인개론)<1>사이퍼펑크와 사토시 나카모토 찾기”〉, 《서울경제》, 2018-04-13
- ↑ Travis Patron, "who is Satoshi Nakamoto?", DIGINIMICS, 2013-01-09
- ↑ 〈사토시 나카모토〉, 《나무위키》
- ↑ 〈모치즈키 신이치〉, 《위키백과》
- ↑ 편집국, 〈사토시 나카모토의 정체를 밝히다〉, 《비트웹》, 2018-03-03
- ↑ 강상규 소장, 〈비트코인 창시자 "사토시" 사망?…16조 상속재산 행방은〉, 《머니투데이》, 2018-01-21
- ↑ "Satoshi Nakamoto", Wikipedia
- ↑ prosong77, 〈크레이그 라이트 (Craig Wright) "가장 유력한 사토시 나가모토"〉, 《스팀KR》, 2018-01-02
- ↑ IG Analyst, "The search for bitcoin's founder: who invented cryptocurrency?", IG, 2018-01-18
- ↑ 〈데이비드 차움 – Deconomy 2018, 《블록인프레스》, 2018-02-23
- ↑ SS핀테크, 〈비트코인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 그는 누구인가?〉, 《네이버 블로그》, 2017-09-22
- ↑ 박림, 〈인터넷의 등장 그리고 비트코인 역사의 시작〉, 《네이버 블로그》, 2017-03-02
- ↑ 야옹메롱, 〈블록체인 혁명의 선구자와 계승자들 7인〉, 《네이버 블로그》, 2018-08-11
- ↑ 방성훈 기자, 〈일론 머스크가 비트코인 창시자?…머스크 "사실 아냐" 일축〉, 《이데일리》, 2017-11-29
- ↑ 박형기 기자, 〈일론 머스크 "가진 비트코인 고작 0.25개...사토시로 오해마세요"- "선물받은 것...암호화폐 사실상 갖고 있지 않다"〉, 《뉴스원》, 2018-02-24
- ↑ "Genesis of Bitcoin 주소는 다른 사람에게 비트코인을 전송할때 사용되는 ID입니다.", blockchain.com
- ↑ 21.0 21.1 〈(인사이트) 사토시 등장·수만개 이동 포착…’비트코인이 심상치 않다’〉, 《블록인프레스》, 2018-12-05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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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토시 나카모토 재단 공식 홈페이지 - http://nakamotoinstitute.org/
- Satoshi Nakamoto, ""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 bitcoin.org, 2008-10-31
- Travis Patron, "who is Satoshi Nakamoto?", DIGINIMICS, 2013-01-09
- "블록 #0", blockchain.com
- "Genesis of Bitcoin 주소는 다른 사람에게 비트코인을 전송할때 사용되는 ID입니다.", blockchain.com
- Satoshi Nakamoto, "Bitcoin open source implementation of P2P currency", P2Pfoundation, 2009-02-11
- "Satoshi Nakamoto", Wikipedia
- IG Analyst, "The search for bitcoin's founder: who invented cryptocurrency?", IG, 2018-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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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다애 기자, 〈(카드뉴스 팡팡) “누가 사토시 나카모토인가?”〉, 《이투데이》, 2018-01-26
- 강상규 소장, 〈비트코인 창시자 "사토시" 사망?…16조 상속재산 행방은〉, 《머니투데이》, 2018-01-21
- 김흥록 기자, 〈(비트코인개론)<1>사이퍼펑크와 사토시 나카모토 찾기”〉, 《서울경제》, 2018-04-13
- 이재구 기자, 〈“비트코인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는 보스기질 괴짜 편집광”〉, 《키뉴스》, 2018-05-31
- 신혜정 기자, 〈베일에 싸인 비트코인의 아버지, 사토시는 누구인가〉, 《한국일보》, 2018-01-20
- 안호균 기자, 〈자칭 비트코인 개발자, 동료 재산 5조원 가로챈 혐의로 피소〉,《뉴시스》, 2018-02-27
- 양재현 인하대 수학통계학부, 〈수학이야기 9_ ABC 추측과 모치즈키 신이치〉, 《교수신문》, 2012-11-07
- 야옹메롱, 〈비트코인 상속, 당사자 숨지면 재산도 사라져.. / 사토시 나카모토 지갑의 행방〉, 《네이버 블로그》, 2018-08-12
- 야옹메롱, 〈블록체인 혁명의 선구자와 계승자들 7인〉, 《네이버 블로그》, 2018-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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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국, 〈사토시 나카모토의 정체를 밝히다〉, 《비트웹》, 2018-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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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이트) 사토시 등장·수만개 이동 포착…’비트코인이 심상치 않다’, 《블록인프레스》, 2018-12-05
- 〈데이비드 차움 – Deconomy 2018, 《블록인프레스》, 2018-02-23
- 〈사토시 나카모토〉, 《나무위키》
- 〈모치즈키 신이치〉, 《위키백과》
- 강상규 소장, 〈비트코인 창시자 '사토시' 사망?…16조 상속재산 행방은〉, 《머니투데이》, 2018-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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