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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수에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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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위치

베니수에프주(영어: Beni Suef Governorate, 아랍어: بني سويف)는 이집트 중부에 위치해 있는 주이다.[1][2]

개요[편집]

베니수에프주의 면적은 1,322㎢이며 인구는 3,561,639명(2023)이다. 주도는 베니수에프이며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약 120km 떨어진 나일강 서쪽 강둑에 자리하고 있다. 이 지역은 이집트 내에서 시멘트 공장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제4왕조와 제12왕조의 피라미드, 제22왕조기의 중(中)이집트의 수도 헤라클레오폴리스의 유적 등이 산재해 있다.

이 지역의 명칭은 표기 방식에 따라 베니 수에프(Beni Suef) 또는 베니 스와이프(Beni Swaif) 등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주의 빈곤율은 60% 이상이지만, 최근 사회 안전망을 통해 일정 수준의 재정 지원과 일자리 기회가 제공되고 있다. 해당 기금은 이집트 재무부와 국제기구의 협력을 통해 조정되고 있다.[3]

산업[편집]

이집트 투자청(GAFI, Egyptian Governing Authority for Investment and Free Zones)과 투자부(Ministry of Investment)에 따르면, 베니수에프주에는 콤 아부 라디(Kom Abu Radi) 산업 단지, 바이아드 알 아랍(Baiad Al Arab) 산업 단지, 산업 단지 31-1, 산업 단지 31-2, 산업 단지 31-3, 산업 단지 31-4, 가발 가레브(Gabal Ghareb) – 중공업 단지, 신(新) 베니 수에프 산업 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관개경작지에서 목화·옥수수·밀·양파·대추야자 등이 재배된다. 그 밖에 제분과 면공업이 활발하며, 베니수에프 부근에서는 앨러바스터가 채취된다.

사회[편집]

무누피아 출신 사람들(메누피, Menoufis)은 이집트 내에서 여러 고정관념의 대상이 되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탐욕스럽다"는 것이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맘루크 술탄국(Mamluk Sultanate) 시대의 한 사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당시 한 맘루크 병사가 사람을 죽였는데, 이를 한 메누피 남성이 목격했다. 맘루크 병사는 증인을 매수하기 위해 그에게 최고급 고기와 음식을 제공하며 거짓 증언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재판 당일, 메누피 남성은 법정에서 진실을 말해버렸고, 결국 맘루크 병사는 감옥에 갔다. 이 사건 이후 "المنوفي لا يوفي" (메누피는 신의를 지키지 않는다)라는 속담이 생겨났다.

군부와 연계된 상류층들은 세속주의 성향이 강한 반면 서민층 사이에서는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이 강한 편이다. 무슬림 형제단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들이 기승을 부리는 이유 역시 이집트 서민들이 이집트 내 빈부격차 및 사실상의 신분제 사회에 대한 대안으로서 이슬람주의 단체들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슬람주의 단체들이 빈부격차 문제에 제대로 된 대안을 내놓을리는 없고 부정부패와 이슬람 근본주의 문제가 겹쳐 이집트의 경제난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사회 분위기가 굉장히 안 좋다.

이집트의 인구가 폭증하기 이전 1940~60년대에는 지금보다 훨씬 개방적인 편이었다. 특히 20세기 중반에는 교육받은 상류층 여성들을 중심으로 히잡이나 차도르 같은 것을 안 입고 다니는 경우가 더 많았는데, 어느 나라나 세속주의자들보다는 종교 근본주의자들이 출산율이 높은 편이고 이집트 내 근본주의자들의 높은 출산율로 이슬람 근본주의가 사회 저변으로 확대되면서 사회 분위기가 변했다. 오늘날 기준으로 해변 관광지가 아닌 이상 노출이 있는 의상을 함부로 입고 다니면 위험하고 이집트 현지인들 중에서는 니캅을 쓰는 경우도 많다. 히잡이나 니캅 등을 안 입을 수 있는 자유는 있고, 이집트가 워낙 더운 사막성 나라라는 걸 생각하면 히잡이나 차도르 등은 기능의류로서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사막성 기후에선 되려 이렇게 얇은 재질의 옷으로 살을 가리는 게 많은 옷이 몸 수분을 덜 마르게 하여 더 오래 견딜 수 있으니까. 이집트에 오랫동안 여행하는 사람들은 누가 쓰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히잡을 쓰고 터번을 두른다. '갈라베야'라는 남녀 공용의 긴 통짜옷도 굉장히 싸고, 얇고, 바람이 잘 통하기 때문에 사막 여행에 매우 효율적이다.

그리고 맥주의 기원이 된 나라 중 하나답게 술도 마신다. 스텔라 맥주(벨기에산과 다른 라거 맥주)가 바로 이집트산 맥주. 이집트 사회는 이웃의 이슬람교 보수 국가들인 수단과 리비아, 사우디아라비아는 물론 심지어 같은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국가인 모로코보다도 개방적이라는 평이다. 사실 아랍국가에서 이집트에 버금가는 세속국가는 시리아, 레바논, 튀니지 뿐이다.

그나마 약간 남아있던 세속주의 문화마저 무슬림 형제단이 집권한 2012년에 엎어질 뻔했다. 그러나 2013년 1년 만에 광속으로 쿠데타 크리가 터지면서 무슬림 형제단이 축출되는 바람에 원상복구. 비록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보수적인 종교색은 없다시피 하다지만, 이집트의 악명 높은 독재와 인권 탄압은 여전해서 국제 인권단체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하지만 무슬림 형제단을 축출시킨 엘시시 군부가 세속적이라는 이유로 국민들에게 지지 받고 있다.

현지인과 외국인 관광객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면 웬만한 나라 경찰은 현지인 편을 들고 별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집트는 워낙 관광업의 역사가 길고 관광산업의 비중이 큰 편이라 경찰들도 철저히 숙지시켰는지 웬만하면 관광객 편을 들어주는 편이다.

이집트는 권위주의 국가라 경찰의 권력이 한국보다 강한데, 관광객 벗겨먹는 사기꾼, 치한, 소매치기 등 각종 잡범들을 적발시 굉장히 혹독하게 다루는 편이다. 이런 과도한 정의 구현은 상부의 지시도 있거니와, 이런 치한은 대개 경계선 지능 장애인[39]들이라 별로 거슬릴 게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바라크가 실각한 이후에는 상황이 좀 바뀌면서 관광지 치안이 급격히 안 좋아지다가 무르시 정권이 무너지면서 관광지 치안이 다시 잡히는 모양이다. 후르가다 같은 관광지에서는 극단주의 테러리스트들이 경찰을 피해 해변 리조트로 칼을 들고 헤엄쳐와서 외국인 여성 관광객들을 상대로 칼을 휘두르며 살인 테러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보니 군사강국 아니랄까봐 관광객들이 오면 국가에서 장갑차까지 동원해서 관광객을 지킬 정도다.[4]

문화[편집]

북쪽으로 지중해 넘어 유럽(서구 문화권), 동쪽으로는 수에즈 운하 넘어 아시아(아랍 문화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아프리카 본토와는 문화가 완전히 다르다. 아예 아프리카와 이집트는 다른 문화권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흔히 이집트 하면 떠올리는 음악의 스테레오 타입.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런 류의 음악은 아랍풍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지 실제 이집트 음악이 어땠는지는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 기껏해야 당시 사용했다는 악기를 이용해 유추할 뿐이다. 실제로 어느 음반에서는 고대 이집트의 음악을 재현했는데 우리가 아는 그런 흥겨운 음색이 아니라 조선시대 궁중 음악같은 구수한 음색이 흘러나왔다.

이집트 요리는 중동-북아프리카 지방의 전통 요리와 함께 오스만 튀르크의 지배를 받는 과정에서 튀르키예 요리 식의 요리법이 가미되었으며, 특히 이집트가 자랑하는 빵은 나일강의 축복을 받아 곡창지대로 손꼽히던 고대부터 유명했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유대인 출신 총독 요셉이 대기근에 대비해 곡식을 비축했다 주변국에 팔아 막대한 국부를 쌓았다는 내용도 이런 배경에서 비롯한다. 헤로도토스가 이집트인들에 대하여 언급할 때 빠지지 않은 게 바로 빵과 맥주를 먹는 점이었을 정도다. 다른 게 아니라 이집트는 세계에서 맥주를 가장 오래전부터 먹은 나라 중 하나이며, 빵 또한 역사가 오래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포도주도 그리스보다 먼저 마시고 있었다.

중동에서 영화, 연극, 드라마 제작으로 유명한 나라가 이집트다. 특히 이집트에서 만들어진 영화는 약 4,000개로, 아랍 국가 전체에서 만들어진 영화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이집트의 영화산업은 1896년 첫 영화가 상영된 것부터 시작한다. 그 후 1930년대에 소규모 영화사들이 설립되어 1940년대부터 이집트는 "이집트 영화의 황금기"로 불리는 시대를 맞이한다. 이집트 혁명 이후 이집트 군부는 영화사들을 국유화 했으나, 황금기 시기는 1970년대까지 지속되었으며, 이 시기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유명한 오마르 샤리프, 루슈디 아바자, 누르 샤리프, 파텐 하마마, 수아드 호스니, 레일라 무라드, 샤디야 등의 전설적인 배우들이 배출되었다. 또한 1960년대부터 연극산업도 활발해지면서 현재도 아랍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누리는 아델 이맘 등의 배우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집트가 경제적으로 쇠퇴함으로 이집트 영화산업도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이 때부터 이집트 영화계는 사우디 자본을 투자받게 되었는데, 문제는 이 사우디 투자자들이 이집트 영화제작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면서 이집트 영화 특유의 자유로움이 많이 사라지게 되었다. 작정하고 남자 배우만 나오는 영화를 만들면서 와하비즘을 포교하는 내용을 담았는데, 이렇게 노골적으로 사우디 코인을 노린 어용 영화에서 제대로 된 퀄리티가 나오면 그게 이상한 거다. 또한 90년대부터 등장한 제작자인 엘 소브키 감독은 선정적인 주제(미국으로 치면 B급영화) 로 영화를 만들었는데, 이게 큰 인기를 얻으면서 대부분의 이집트 영화제작사들이 엘 소브키 식의 영화를 제작하게 되면서 이집트 영화는 거기서 거기가 되어버렸다. 또한 2011 이집트 혁명 이후 군부가 집권하게 되면서 검열이 늘어나게 되었다. 결국 현재 이집트 영화산업은 "야쿠비얀 빌딩", "카이로 678" 등 극소수의 대중영화와 독립영화를 제외하곤 전반적으로 질적으로 악화되었다. 또 레바논과 터키가 중동의 새로운 영상 산업 강국으로 떠오르면서 이집트 영상 산업의 헤게모니가 밀린 점도 있다.

교육[편집]

베니수에프대학교[편집]

베니수에프대학교는 이집트 베니수에프에 있는 공립 종합대학교이다. 약칭은 BSU로 불린다. 1975년 카이로대학교에 설립된 상업학부가 기원이다. 이 학부가 2005년 이집트 고등교육부에 의해 카이로대학교로부터 분리되어 독립적인 대학교가 되었다. 캠퍼스는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120km 떨어져 있는 베니수에프에 있다. 베니수에프 도시의 입구와 나일강의 동서 양안에 모두 3 개의 캠퍼스를 두고 있다.

12개 학부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학부가 1년 2학기제로 과정이 운영된다. 의학부는 경우 1주일의 시험기간을 포함해 45주의 단일 학기로 수업을 진행한다. 이 대학교는 교육수준의 향상과 범위의 확대를 위해 새로운 교육과정을 개발하여 도입해왔다. 시장의 수요에 부응하는 대학원과정이 다수 개설되었다. 가난한 가정 출신의 학생을 위해 장학금과 재정지원 제도가 갖추어져 있다. 외국 유수의 대학들과 학생교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외국인 유학생에게 문호가 열려 있으나 실제 등록한 유학생은 거의 없고 대부분이 이집트 각지에서 온 학생들이다.

베니수에프대학교는 2023년 QS 세계대학순위에서 아랍지역 대학 가운데 101-110위권에 포함됐다. 2023년 타임스고등교육의 세계대학평가에서는 세계 801-1,000위권, 설립 50년 미만 신생대학 가운데 세계 251-300위권으로 평가됐다. 2023년 유에스뉴스&월드리포트의 대학평가에서는 세계 959위, 아프리카 대학 중 28위, 이집트 대학 가운데 14위를 기록했다.

베니수에프대학교의 로고는 베니수에프의 랜드마크이자 고대 이집트 문명의 상징인 마이둠 피라미드와 이집트의 대동맥인 나일강, 곡창지대인 베니수에프 지역의 주생산물인 밀 등 이집트와 베니수에프를 대표하는 3가지의 상징물을 형상화한 것이다.[5]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베니수에프주〉, 《위키백과》
  2. "Beni Suef Governorate", Wikipedia
  3. 두산백과: 베니수에프주〉, 《네이버 지식백과》
  4. 이집트〉, 《나무위키》
  5. 세계의 대학: 베니수에프대학교〉,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북아프리카 같이 보기[편집]

북아프리카 국가
북아프리카 도시
북아프리카 지리
북아프리카 바다
북아프리카 문화
북아프리카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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